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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주변부적 시선이 발산하는 열정적 힘들
김종광 소설집 『모내기 블루스』, 창작과비평사 2002
공선옥 소설집 『멋진 한세상』, 창작과비평사 2002
김하기 소설집 『복사꽃 그 자리』, 문학동네 2002
오창은 吳昶銀
문학평론가. 『모색』 편집위원. 주요평론으로 「억압된 기억의 꿈-황석영의 ‘손님’론」 등이 있음. longcau@hanmail.net
1. 소설은 ‘벗어남’이다. 뻔한 이야기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복하는 소설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기대하는 ‘뭔가 다른 것’을 위해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길을 만들고, 부드러운 지혜를 찾아낸다. 독자들은 자기의 일상을 벗어나 작가가 창조해낸 작품 속의 일상을 엿본다. 작품 속 일상을 곁눈질하는 관음증을 즐길 때, 독자들은 자신의 일상도 낯설게 볼 수 있게 된다.
요즘과 같이 냉혹한 시대에 일상에 충실한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흔히들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억압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쟁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은폐하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삶과 일상만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타인의 일상으로 가로질러 들어갈 때 감지될 수 있다. 타인의 생활에 눈을 맞추고, 자신과 타인의 일상이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에 관한 화두를 던져주는 게 문학의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 향하고 있는 ‘뭔가 다른 것’은 ‘이색(異色)’이 아닌 ‘탐색(探索)’이어야 하리라.
최근 간행된 김종광의 『모내기 블루스』,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 김하기의 『복사꽃 그 자리』는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적 태도를 통해 이러한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 김종광은 특유의 해학적 어조로 농촌과 소도시, 서울을 넘나들며 우리 시대의 풍속도를 유희적으로 묘파하고 있으며, 공선옥은 특유의 여성적 당당함을 견지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곳을 데워주고 있다. 김하기 역시 분단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면서도 삶의 깊이를 소설에 담아내려 하고 있다.
2. 김종광(金鍾光)의 소설은 경쾌하다. 그리고 잘 읽힌다. 그는 단편소설의 압축적 성격을 활용하여 빠른 장면전환을 유도한다. 게다가 김종광이 구사하는 소설언어는 거침이 없다. 글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식·무의식적으로 ‘자기방어’의 욕망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김종광은 이러한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능청에 가까운 이러한 자신감은 이야기꾼에게 큰 잇점이다.
그는 농촌에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으면서(「모내기 블루스」 「윷을 던져라」), 농촌과 인접한 중소도시의 풍경묘사에도 탁월하다(「언론낙서백일장」 「서점, 네시」 「당구장 십이시」). 또한 스스로를 불쌍한 71년생 90학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서울 근교 대학 출신의 서울살이를 의뭉스럽게 묘사한다(「노래를 못하면 아, 미운 사람」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열쇠가 없는 사람들」).
표제작인 「모내기 블루스」는 농번기 시골풍경을 통통 튀는 경쾌함으로 펼쳐 보인다. 서른여섯의 노총각 대춘이 서해라는 술집 처자를 농촌에 데려온다는 설정부터 예사롭지 않다. 대춘은 “수컷들한테 치여 산 인생”이 안돼 보여서 그녀를 “며칠 푹 쉬고 가라구 꼬셔”(18면) 온다. 그러나 서해는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농촌일을 넙죽넙죽 해낸다. 그녀는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원시적인 것 같아. (…) 술집년들도 인터넷으로 고객관리하는 세상에, 농촌은 이게 뭐래?”(25면)라고 푸념하면서도 일에 악착같이 매달린다. 결국 서해는 ‘지독한 몸살감기’로 일한 지 하루 만에 굴신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지만 작품의 전체 분위기는 독자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갖게 한다. 근거가 불명확한 이런 낙천성은 김종광이 다듬어낸 유쾌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광은 유희적 글쓰기에 익숙하다. 유희적 글쓰기는 「언론낙서백일장」의 “문학회? 그거 광어회나 우럭회 같은 거면 내가 먹기는 하겠다”(99면)와 같은 언어의 연주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슷한 화음들을 끌어들여 변주하는 유희적 태도가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특히, 김종광이 소설에서 공간을 만들고 사건을 배치할 때 특이한 형식을 선보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풍경,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서사화에 김종광은 유독 뛰어나다.
이러한 형식을 김종광식 ‘마당놀이 서사’라고 지칭할 수 있으리라. 그의 첫 작품집 『경찰서여, 안녕』(2000)에 실린 「많이많이 축하드려유」가 수작으로 평가된 이유도 이러한 형식실험 때문이다. ‘마당놀이식 서사’가 이번에는 「윷을 던져라」와 「당구장 십이시」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윷을 던져라」는 ‘안골친목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회원의 집을 번갈아가며 매년 설과 추석에 개최되는 친목회는 군대를 다녀온 이십대부터 오십대까지 안골 출신 모두가 회원이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 결산보고와 회장선출, 경로잔치 등이 진행된 후 윷놀이로 대미를 장식한다. 단편소설에 어울리지 않게 2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전원일기’의 마을잔치를 연상시키며 생동감을 발산한다. 「당구장 십이시」도 각각의 사연을 갖고 있는 24명의 등장인물과 강아지, 귀신 등이 당구장에서 카니발과 같은 난장(亂場)을 벌인다. 사연과 사연이 맞부딪치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사건과 사건들이 충돌해 흥건한 이야기의 진창을 만들어내는 것이 ‘마당놀이식 서사’의 특징이다. 특정 공간에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사건을 풀어헤치는 자체가 우리 시대의 풍속화이다.
하지만 김종광의 소설은 서사적 갈등이 모호하다는 약점 또한 갖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위악적인 형태로라도 구체적인 ‘갈등의 대상’이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 내 비리를 다루고 있는 「배신」의 경우 국장이 악역을 자처하고 있지만 그의 ‘악’은 구조적인 파생물로 치환되면서 뭉뚱그려지고 만다. 김종광 소설의 따뜻함은 아마도 구체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이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너그러움, 혹은 세상을 용인하는 태도로 지속될 것 같아 우려된다. 삶 자체가 싸움의 연속이라고 할 때, 김종광이 자신의 강점인 따뜻한 싸움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차가움을 발산하는 구체적 모순을 묘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3. 공선옥(孔善玉) 소설은 당당하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역할에 연연해하지 않는 의연함이 공선옥 소설에는 내재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누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작가들의 글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된다. 문제는 얼마나 예민하게 감각의 촉수를 벼리느냐이다. 신체에 가해지는 억압은 쉽게 감지될 수 있지만, 무의식 세계에 스며든 모세혈관적 억압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자신을 철저히 부정했을 때 비로소 그 구체적 면모가 파악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멋진 한세상』은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재배치한 공선옥의 면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성으로서 싸우는 것은 피억압자로서 싸우는 것이고, ‘여성=피억압자’라는 인식이 겹쳐질 때 사회적 연대의식이 확보된다. 더불어 자신의 일상에 개입해 들어오는 소수자들에게 작가적 일상을 열어놓는 것은 소중한 덕목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것은 인생」 「정처 없는 이 발길」 「관가행차」는 약간 투박한 면모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연대의 감성에 기반해 씌어졌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인생」은 영구임대주택 화재사건 뒤에 감춰져 있는 한 소녀의 죽음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이웃들을 보여준다. 「정처 없는 이 발길」도 전북 진안의 용담댐 건설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힘들어하는 갑생씨의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관가행차」는 권위주의적 얼굴로 행세하는 군청 풍경을 국가에 환수된 토지를 되찾으려는 부칠이를 통해 풍자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연상시키는데, 누추한 시대가 왜 이다지도 질기게 반복되고 있는가를 성찰하게 만든다. 시대의 그늘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작가의 시선 또한 연민 이상의 동감을 획득하고 있어 훈훈하다. 각각의 사연들에 대해 작가는 소설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래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력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태도가 공선옥의 최근 소설에는 내재돼 있다.
이번 작품집에서 공선옥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은 「홀로어멈」이다. 주목을 끌었던 「타관 사람」(『내 생의 알리바이』)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폐교를 살림집으로 쓰며 아이 셋을 키우는 어머니의 좌충우돌하는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도시적 생활관습에 익숙한 정옥은 마을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재혼을 주선하려는 친구 순아와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또 “엄마 시집가게 생겼다”면서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130〜31면)라며 서럽게 우는 두 딸들의 난데없는 해프닝에 심란해하기도 한다. 「홀로어멈」은 그간 공선옥이 작품으로 형상화해온 ‘억척어멈’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의 개성적 변형이다. ‘아버지와 남편이 집에 없는 것이 정상’인 이러한 모계 중심의 가정은 「고적」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등의 핵심적 주제이기도 하다. 공선옥은 IMF 등 경제적 피폐로 가정을 버린, 혹은 책임을 회피하는 남편들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책임을 떠맡게 된 피곤함에 지쳐 도피를 꿈꾸는 엄마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무책임한 남편처럼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이유는 없다」). 그 엄마는 “아빠 없을 때 커”버린 아이의 입장에서 “우리집 냄새가 나지 않는 아빠”에게 항상 당당하려고 한다(「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멋진 한세상』에는 유년의 성장기를 회고하는 작품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어린시절 누에치기에 동원됐던 세 자매를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의 처지에 비유한다든지(「나비」), 광주민중항쟁을 비롯한 한국사의 사건들을 한 여성의 성장사적 관점에서 서술하기도 한다(「멋진 한세상」). 또한 구어체 문장의 실험을 통해 유토피아의 형상을 닮은 시골마을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이 한장의 흑백사진」). 특이한 지점은 유년시절, 혹은 작가가 회고하는 과거가 모두 여성 등장인물 중심의 모계사회의 형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핍된 가정에서의 성장을 원죄(原罪)의 형태로 재현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해의 맥락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기원(起源)을 향하고 있는 듯한 작품들은 공선옥이 남성 없는 가정을 주요 소설공간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변호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사회는 남성중심의 전통적 관습이 지배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되는 남성 이데올로기는 엄혹하기만 하다. 공선옥이 가정을 모계사회로 재편하는 진지전이 아닌, 공생의 포용력으로 진지마저도 허물어버리는 새로운 여성주의 소설을 창작했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4. 1989년 김하기의 「살아 있는 무덤」이 발표됐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대 지하왕릉의 음침함에 빗대어진 비전향 장기수들의 특별사동은 상상만으로도 공포의 공간이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김하기의 소설이 있기 전에 비전향 장기수는 남한사회에서 깨끗이 잊혀진 존재였다. 그리고 1993년 3월 19일 이인모옹(翁)의 북한송환이 이뤄졌고,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송환됐다. 게다가 취중 월북이기는 하지만 1996년 8월 김하기 또한 북한을 다녀온 바 있다. 그동안 그에게 붙여진 분단시대 대표작가라는 바코드는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됐을까?
그의 세번째 소설집 『복사꽃 그 자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전향한 장기수로 북한송환이 거부된 인물을 형상화한 중편 「미귀(未歸)」다. 살인범, 강도강간범, 조폭 등 흉악범들을 동원한 공작으로 인해 전향서에 지장을 찍었던 김길만은 출소 이후 시골농장, H신문 보급소 총무, 중고서점 점원, 아파트 경비원을 전전하다 지금은 취로사업에 나가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북에서는 국제관계 대학을 나와 철도부 공안원으로 근무한 엘리뜨지만, 그런 이력이 남한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남으로부터는 빨갱이로, 북으로부터는 전향한 배신자로 단죄되어 버림받은”(214면) 전향수들의 고단한 삶은 비극적이다. 전향수 김길만의 형상은 통일 이후에도 지속될 상처를 보여주고 있어 예사롭지 않다. 남한체제와 북한체제 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전향수들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외된 자들’이다.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는 얼마나 아픈가? 존재가 지워진 존재의 현존은 얼마나 낯선가? 분단체제의 가장 생생한 반영인 이들은 어쩌면 통일 이후에도 ‘망각의 구렁텅이’로 내몰릴지 모른다. 김하기가 전향한 장기수를 소설로 포착해냈다는 점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복사꽃 그 자리』에는 분단문제와 관련이 있는 「미귀」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옛 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의 의도도 강하다. 과거의 열정적 경험이 현재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거나 기억의 흔적에 대해 아파하기도 하며(「용늪 가는 길」 「폭설」 「님을 위한 행진곡」), 부도로 희망을 잃고 바닥까지 내려간 이의 성찰을 보여주거나(「고추방에 누워」) 상처받은 매매춘 여성의 고통을 어루만지기도 한다(「복사꽃 그 자리」).
그런데도 『복사꽃 그 자리』에는 80년대식 분위기가 아릿하게 남아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화자는 소설가다. ‘나’는 1981년 P사건과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과 군무이탈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선배의 권유로 명예회복 신청을 하기로 하고 P사건과 관련된 인우보증을 신재숙에게 부탁하게 된다. 신재숙은 끝까지 명예회복신청을 거부한 채 제주도에서 해녀로 생활하고 있는 상태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깊은 곳의 한과 응어리를 ‘숨비소리’로 토해내듯 풀어낸다. “결국 이 사회를 천박하게 하는 것은 사회를 바꾸겠다고 말로만 떠드는 치들, 바로 우리 자신들이라구요. 우리 자신들. 알겠어요? 자신들을 돌이켜봐요. 얼마나 천박한지.”(243면) ‘나’는 결국 제주도까지 내려가 받아낸 신재숙의 인우보증서를 찢어 없앰으로써 과거와 결별하려 한다. 과거의 것은 과거로 돌려줘야 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는 과거에 대한 어떤 미련마저도 포기하려는 김하기의 의식적 노력이 담겨 있다.
근 10여년간 반복되고 있는 이른바 후일담 소설은 과거의 상처가 그만큼 깊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김하기는 상처 후에 남은 흔적을 중용(中庸)의 도(道)로 치유하려고 하고 있다. 그는 “남북관계든 인생살이든 너무 높아도 안되고 너무 낮아도 안된다”(36면)는 삶의 지혜를 강조하기도 하고, “고추를 말릴 때는 햇빛만 받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응달진 곳이 필요”(71면)하다는 진리를 내비친다. 뭐든지 극단으로 가면 꼭 사단이 나고 만다는 깨달음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그 깨달음이 둥글게 살고자 하는 내면의 표현인지, 더욱 큰 세계를 껴안기 위한 자기 고뇌인지는 김하기의 이후 작업들이 말해줄 것이다.
5. 작가들은 글을 쓰면서, 혹은 글쓰는 직업 자체 때문에 일상 속에서 항상 ‘불안’해한다. 작가의 불안은 글로써 자신을 노출시켜야 한다는 자의식에서 유발된 것일 수도 있고,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문자매체를 움켜쥐고 이미지의 시대, 대중소비문화의 시대에 맞서야 한다는 작가적 사명감에서 파생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쓰기는 불안을 작가적 숙명으로 인식하고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았을 때 비로소 폭발적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 전범을 우리는 김종광·공선옥·김하기에게서 발견한다. 이들은 모두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김종광은 보령과 안성을 작품의 근거지로 했다가 안산에 정착했으며, 공선옥은 여수에서 최근 춘천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김하기는 붙박이로 부산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주변부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불안의식은 남다를 것이다. 이러한 불안의식 때문에 김하기는 ‘소설 쓰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고 중얼거리고, 공선옥은 ‘최소한의 생활경비로 생활하기’에 익숙해진다. 김종광도 몇개월째 임금이 나오지 않는 회사에서 버티며 삶을 관찰하는 끈기를 갖게 된다. 그런데도 김종광·공선옥·김하기는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듬직하다.
현대인들도 일상 속의 개인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불안을 공유한다. 그러나 작가라는 직업은 사회안전망에 쉽게 의탁할 수 없는 존재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 존재의 우연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작가는 우연이라는 숙명에 대항하는 일탈자여야 한다. 김종광·공선옥·김하기는 주변부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기에 일탈자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소설적 몸짓이 격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소설가들이 ‘작가의 숙명적 불안’마저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