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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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崔金眞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재학중. upthere@hitel.net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외 4편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 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과일가게 앞의 개들 

 

 

생선의 해진 살점처럼 구름이 떠다니는 거리는 비릿하다

러닝셔츠만 걸치고 여름을 나던 시절이 사내를 거쳐 지나와

다시 과일가게 앞에서 모기향을 피우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 색깔을 뒤집어쓰고 파리들은 맴돈다

사내가 펼쳐드는 부채는 잎맥까지 다 말라버린 나뭇잎 같다

바람이 코앞에서 우수수 떨어져 꼼짝도 않는다

몽롱해진 정신 속에 이따금 손님처럼 졸음이 찾아오고

검은 씨들이 검버섯으로 박혀 있는 사내의 꿈이 깜짝 놀라

깨어질 때, 수박 속살을 파먹는 파리들은

아무리 쫓아도 얼굴과 수박의 붉은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내가 러닝셔츠를 들춰올리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배꼽만 남아 배꼽이 썩어가는 배꼽참외들의 냄새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느냐는 듯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으름장을 놓는 사내의 가게 앞으로

비루먹은 개들이 떼지어 지나간다

제 몸을 다 토해내기라도 할 듯 헐떡이며

입 안 가득 상한 생선냄새를 질질 흘리며

사내는 사과를 하나 집어 러닝셔츠 안쪽으로 닦는다

바라보는 시선들을 깔보며 으적으적 깨물어 먹는다

목구멍까지 주름이 잡힌 갈증들이 바닥에 고개를 떨군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오후가 툭, 비닐봉지 속으로 던져진다      

 

 

 

무엇이 그녀를 역전에 박아놓았나

 

 

역전 광장에 앉아 있는 거지 여자의 하루가

신신파스처럼 욱신거린다

멍은 그녀의 오갈든 잎사귀

얼굴과 팔과 가슴에 매달고 그녀는 웃는다

담배를 입에 물고 숨을 쉬며

죽은 새의 영혼 같은 입김을 꺼내놓는다

가끔 연기로 도넛을 만들어 집어먹는 시늉을 하며

추억의 허기로 바싹 마른 여자의 젖가슴이 흔들린다

침을 삼키며 시비를 걸어오는

덕지덕지 피딱지가 앉은 사내의 흐릿한 눈

서로의 추운 몸을 깊이깊이 박아넣고 쉬어가자고

헤헤헤, 남자의 술병에 매달리는 여자의

등뒤로 꽁지 뽑힌 비둘기들이 난다

광장에 달라붙은 껌자국처럼 어둑해진 눈으로

오후 여섯시의 시계탑이 그들을 내려다본다

불빛 켜지는 뒷골목마다 깨진 소주병이 퍼렇다

 

 

 

바짝 마른 붉은색의 추억

 

 

죄지은 것이 많아 장미는 얼굴을 들지 못하는가

마침내 열반에 들려는가 뼈다귀로

노를 저어 하늘에 이르려는가

 

바닥이 드러나는 저 붉은 사해바다 속으로

발 없는 귀신처럼 나비들이

떠다닌다 깨진 유리병 거꾸로 박혀

고행의 깊이를 재어보는 콘크리트 담장 위에서

 

마른 줄기를 펼쳐

서로의 인연을 이어보려는 줄장미들아

온몸의 피를 올려 지난날을 게워내는구나

가시관에 너덜거리는 홍포를 입고

면벽하고 섰구나 곪아터질 듯

하늘이 부풀어오르고

 

소금냄새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오후

누군가 창문을 열고 주르륵

걸레를 비틀어 짠다

 

 

 

운동과 정지 사이에 공이 구른다

 

 

주위의 긴장을 다 집어삼키며 공이 구른다

각질이 앉은 뱃가죽을 밀며 미끄러진다

풀숲에선 스스스 살 떠는 소리가 들린다

검은 비늘을 달고 아스팔트의 관절이 꿈틀거린다

어둠은 똬리를 틀고 저녁 속에서 눈을 반짝인다

공기는 소름이 돋아 차가워진다

공은 안 보이는 다리가 두 개

어스름 속, 사람들이 이무기처럼 걸어다닌다

노을 속에 꺼내놓은 둥근 해를 다시 삼키고

지구도 천천히 우주의 풀숲으로 기어들고 있다

제 몸보다 큰 어스름을 한꺼번에 먹어치운

신호등의 붉은 눈알이 반들거리고

차들이 일제히 급브레이크 밟는다

공이 떼구르르 웃으며

희미한 내리막의 경사를 따라 아래로 굴러간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