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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애란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3학년.

greentongue@hanmail.net

 

 

 

노크하지 않는 집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그중에는 대학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런 것 같다. 아마도 그녀들은 모두 이십대 초반일 것이다. 그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살며,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집앞에 아침마다 신문이나 우유 따위가 배달되는 일이 없는 걸로 봐서, 이 집이 가정집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는 같은 변기를 쓴다. 나는 가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물을 안 내리고 간 흔적을 내려다본다. 혹은 그녀들의 빨래를 보고, 그녀들이 먹는 음식 냄새를 맡는다.

다섯 명의 여자 중 네 명은 다른 한 명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난 후에도 그 여자가 자기 방에 들어가 문 닫는 소리를 낼 때까지 모두 기다린다. 그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 네 명의 여자는 절대 먼저 문을 열지 않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섯 명의 여자는 문 닫는 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가끔 타이밍을 놓쳤을 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상하리만치 화들짝 놀라 얼른 문을 닫아버린다. 그럴 때 보는 서로의 얼굴이란, 반쪽 혹은 삼분의 일쯤으로 조각난 것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얼굴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가령 몇번 방 아가씨가 어제 울었다든가, 몇번 방 여자가 세탁기를 쓴 후에는 항상 양말 한짝이 남는다든가, 몇번 방 여자는 남자를 자주 들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한번은 삼일 내내 복도에서 술냄새가 난 적이 있었다. 밤새 어떤 남자가 현관문을 발로 차는 소동이 있었고 복도 끝방 여자는 울어댔다. 그 소음을 네 방의 여자들은 각자 잘 참고 있었거나 혹은 무관심했다. 여자는 과음을 했는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시큼한 토사물 냄새는 내 방까지 침투했고 밖의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리고 얼마 후 주위가 잠잠해졌을 때, 화장실에 가던 나는 그녀 방문 앞에 묶여져 놓여 있는 토사물 비닐봉지를 보고, 남자로 인해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다음날 아침 위층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내려왔다. 아주머니는 현관 앞에 서서 다섯 방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고. 반말이었다. 방안에 있던 나는 이불을 품안으로 돌돌 말며 한껏 움츠러들었다. 아주머니에게는 ‘그래서 되겠어? 어?’ 식으로 말끝마다 ‘어?’를 한번씩 더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십분 이상을 혼자 복도에 서서 떠들다 돌아갔다. 당사자든 아니든 굳게 닫힌 다섯 방은 그러나 무덤처럼 조용했다.

그녀들이 언제부터 각자의 방에 살게 됐는지는 모른다. 나는 3개월 전에 이 방으로 이사왔다. 그때 나는 휴학중이었고, 편의점에 시급 25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 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공동의 문제에 대해 효율적으로 이야기도 나눌 겸 해서 반상회 비슷한 모임을 주선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어쩐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것 없이도 평화스럽게 잘 굴러가는 것 같았고, 새로 온 사람이 너무 나대는 것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나는 그 일을 곧 포기하고 말았다.

 

이곳은 대학가 근처에 있는 주택단지 안의 건물이다. 집은 반지하와 1.5층, 2.5층으로 돼 있다. 세 층 모두가 1층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2층 혹은 지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높이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나는 이 집이 한마리 커다란 불구의 짐승처럼 느껴졌다. 건물의 1.5층과 0.5층(즉 반지하)에는 세입자들이 살며, 2.5층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혼자 산다. 그녀는 불은 몸집에 굵은 쌍꺼풀을 가진 오십대 후반의 여자다. 처음 집을 구하러 그녀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내게 유자차를 내주며 벌써 대학강사가 된 자신의 아들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둔해 보이는 외모에 비해 빠른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가끔 못 알아듣는다.

내가 사는 1.5층 안은 거꾸로 된 기역자 모양이다. 기역의 세로획 부분에 화장실과 방 세 개가 마주보고 있고, 가로와 세로획의 접점 부분에 또 방 하나, 그리고 가로획에 해당되는 부분에 나머지 방 하나가 있다. 나는 그중 화장실과 마주한 첫번째 방인, 현관 앞의 방에 들어가게 됐다.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1번방 아가씨라 불렀다.

이사한 지 석달이 지나도록 나는 나머지 네 방의 여자들을 한번도 정면에서 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처음엔, 다른 여자들은 아침이면 집을 나가는데, 나만 오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의 여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끔 나는 내 앞방에 사는 거구의 여자가 널어놓은 헐렁한 면팬티를 보고, 일곱시면 일어나 출근을 하는 옆방 여자가 방문 앞에 묶어놓은 쓰레기 봉투를 보고, 자정이 지나면 각각의 방문 앞에 놓인 슬리퍼들을 본다. 끝방 여자의 슬리퍼는 안창이 볼록볼록한 지압용 슬리퍼라는 것은, 이곳에 온 지 한달 정도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3번방 여자는 지나치게 이불을 자주 빠는 것 같고, 5번방 여자는 빨래를 세탁기에 담아놓고 곧잘 잊어버리곤 한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이 집의 길고 좁은 복도 중앙에는 우리 모두가 쓰는 빨래건조대가 하나 있다. 빨래건조대는 2번방 앞에 펼쳐져 있는데, 안쪽의 4번방 여자와 5번방 여자가 1번방인 내 방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선 게처럼 옆걸음을 하여 복도와 빨래건조대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와야 한다. 내가 5번방 옆에 있는 다용도실에 가기 위해서도 그녀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곳을 지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모두 돌아가며 그곳에 빨래를 넌다. 건조대 사용에 대한 서로의 특별한 약속도 규칙도 없으나, 별 무리 없이 우리는 그것을 공평하게 잘 사용하는 편이다. 그것은 아마도 각자가 방안에서 숨죽이고 듣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나, 빨래를 터는 소리, 혹은 복도를 오고 갈 때 보이는 빨래건조대를 신호로, 서로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말에 빨래가 겹쳤는데, 건조대에 누군가의 빨래가 차 있는 경우,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각자의 방안에다 빨래를 넌다. 그럴 경우엔 아무래도 불편하고 방안이 복잡해진다.

한번은 내게 하도 건조대의 순서가 오지를 않아 입고 갈 속옷이 떨어진 적이 있다. 나는 빨래건조대의 사용 여부를 틈틈이 살폈는데, 며칠이고 빨래 걷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게으른 여자가 있었다. 좀더 기다릴까 하다가 나는 욕실에서 빨간 다라이를 꺼내어 그곳에 상대방의 빨래를 개어놓기로 했다. 네 켤레의 실내화는 모두 현관문 앞에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집에는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건조대에 널린 옷들은 대개가 평범한 기성복이었다. 싸이즈는 유난히 컸다. 아마도 내 방 맞은편에 사는 뚱뚱한 여자의 것이리라. 몸에 긴장을 주는 옷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자의 직업은 사무직이 아닌 것 같았다. 커다란 옷들은 보풀이 일어난 채 건조대에 피로하게 걸쳐져 있었고, 늙은 팬티 앞면엔 하나같이 누르스름한 얼룩이 배어 있었다. 갑자기 ‘여자에게는 애인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들은 모두 바삭하게 잘 말라 있었는데, 건조대 끝, 널어놓은 지 얼마 안된 코르셋 하나가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무겁게 걸쳐져 있었다. 나는 코르셋을 제외한 나머지 빨래들을 다라이에 곱게 담아 2번방 문앞에 얌전히 놓아두었다. 어쩌면 직장에서 돌아온 그녀가 곱게 개어진 이 빨래들을 보면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빈 다라이 바닥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한장을 보았다.

–내 옷에 손대지 마시오.

 

나는 내가 아는 한 이 집의 여자들 중에 유일한 흡연자였다. 하지만 이사 후 몇주 동안, 나는 주위의 시선이나 피해를 생각해 실내 흡연 욕구를 참았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자연스레 화장실이나 방에서 담배를 피우게 됐다. 담배는 주로 화장실 창가에서 까치발을 들고 초조하게 빤다. 나는 혹 위층에서 내려오던 주인 아주머니가 우연히 연기를 보게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한다. 담배를 반도 못 태운 채 끄고, 나는 창문을 열고 바닥에 향기 나는 섬유유연제를 뿌려놓고 기다린다. 한참 후, 화장실에 계속 있기도 뭣해 나는 욕실을 나온다. 그러면 누군가 내가 어서 나와주기를, 너 때문에 배가 아파 문고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쩐지 그런 소리, 그런 속도에 신경이 쓰인다.

그날 저녁, 나는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 문앞에 전에 없던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방에서 불을 사용하는 사람은 조심합시다. 우리 모두를 위해.

나는 괜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언가 사무적이고 서툰 그녀들의 목소리. 나는 미리 열린 방문 뒤로 얼른 숨어버리는 그녀들의 반쪽 혹은 삼분의 일의 얼굴을 상상했다. 어쩌면 깊숙이 파묻힌 나머지 한쪽 눈동자가 저 문 안쪽에서 한없이 피부 안으로 함몰되듯 오그라들고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녀들, 얼굴 반쪽에 화상이라도 당한 건 아닐까? 네 여자 모두 똑같이 전부 화상당한 반쪽 얼굴을 가지고 다섯 개의 방이 있는 이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몰라. 그걸 나만 모르거나 넷 다 모르는 건 아닐까? 어쩌면 한날 한시 이 집에 불이 났고, 그녀들은, 그녀들은 뭐 그런 거 아닐까?

그러나 나는 이 집에 화재가 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다섯 명 중 한 명쯤은 어쩐지 퍽 귀엽고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즐거운 일이다, 그건.

이 집의 화장실은 한 평 남짓한 크기이며 욕조와 세면대는 없고 샤워기와 좌변기만 있다. 벽에는 두 개의 선반이 놓여 있다. 선반에는 다섯 개의 목욕 바구니에 다섯 개의 비누, 다섯 개의 칫솔, 다섯 개의 타월이 있을 것이다. 치약은 내놓고 쓰지 않는 모양인데, 아마도 누군가 치약을 욕실에 두고 썼다가 일주일 만에 홀쭉해진 것을 보고, 서로가 민망해진 까닭이리라. 내 것이 없을 때 네 것을 쓰기도, 내 것이 있지만 네 것을 쓰기도 하는 거 같다, 다섯 여자는.

욕실의 좌변기는 절수형이며, 좌변기 앞에는 슬리퍼로 앞발을 밟으면 뚜껑이 열리는 휴지통이 있다. 욕실의 쓰레기 수거 및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씩 주인 아주머니가 해준다. 그래서 욕실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나 휴지통의 쓰레기는 언제나 철철 넘친다. 그것은 쓰레기 봉투 한장이 우리가 4일을 쓸 수 있는 용량이라면, 아주머니는 7일을 쓰라고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나는 생리대가 비어져나오는 것이 보기 싫어 볼일을 본 뒤 습관적으로 휴지통에 발을 넣어 꾸욱 밟곤 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욕실에 있는 젖은 슬리퍼를 신기가 무척 싫었다. 그래서 항상 욕실을 쓰고 난 뒤, 슬리퍼를 욕실 문턱에 기울여놓곤 했다. 그후로는 모두는 아니어도 몇명은 그렇게 해주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몇명과 몇명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얼굴을 본 적은 없어도 나는 선입견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있었다. 가만 보면 씻은 후 빠진 머리카락을 치워놓는 사람은 언제나 그랬고, 안하는 사람은 죽어도 안하는 것 같았다. 남들 출근시간에 욕실에 들어가 한시간은 족히 씻고 나오는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람인 것 같았고, 샤워 후 좌변기를 젖게 만들어 앉을 때 불편을 주는 사람도 항상 그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슬리퍼로 구분했다.

물론 그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다. 화장실 벽에 주인 아주머니가 맞춤법을 틀려가며 적어놓은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그것은 이십년이 넘게 따로 자라온 다섯 여자들의 ‘습관’ 때문이리라. 1번방 여자에겐 괜찮은 일이 3번방 여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고, 4번방 여자에겐 이해될 수 없는 일이 2번방 여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수 있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혼자서만 살아봤던 내가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데는 한달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종종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난다. 밤마다 자기 방에서 엠티라도 여는 듯한 4번방 여자의 소음. 내가 보일러 온도를 낮출 때마다 다투듯 온도를 다시 올려놓는 3번방 여자의 이기심. 빨래를 걷어주는 것을 싫어하면서, 자기가 걷는 것도 아닌 2번방 여자의 게으름.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너무 커,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는 5번방 여자의 덜렁댐. 그러면서 방안에 웅크린 채 항의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 사실은 눈과 귀를 모두 열어놓고 있는 1, 2, 3, 4, 5. 우리는 너무 가까이 살고 있고 그러므로 너무 멀다.

그러나 이러한 집들은 여기말고도 주위에 너무나 많았고, 또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도 이 집 바로 뒤편에 3층짜리 건물 하나가 바싹 들어서고 있다. 나는 아침마다 시끄러운 공사음에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잠을 설쳐야 했고, 주인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그곳 인부들과 싸웠다. 처음에는 “우리 학생들 주말에 잠도 못 자게 이게 뭐냐”에서부터 “거기 시멘트가 여기까지 흘러와 하수구가 막히지 않냐” “여기 건물주 누구냐” 그리고 종내에는 “나도 내 재산 지켜야 되겠다”고 오열했다. 그리고 곧 우리들이 사는 층으로 올라온 아주머니는 복도에 놓인 쓰레기 봉투를 보고는 대뜸 “얘들은 여기가 쓰레기장인 줄 알어?”라고 소리쳤다. 다섯 방의 여자들이 각자 ‘방안에 놓으면 냄새가 나요, 아주머니’라고 말하고 싶었을 때, 여자는 “낮에 형광등을 켜놓으면 어떡해? 응?”이라고 연달아 화를 냈고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여긴 어두워요, 아주머니’라고 모두가 말하고 싶었을 때, 여자는 “누가 보일러를 아직도 온수로 해놨어? 응?” 하고 추궁했다. 나는 꼼짝 않고 이불 위에 누워 “그건 내가 안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여기 처음 이사왔을 때, 내게 유자차를 끓여주며 아들 자랑을 하던 아주머니는 그렇게 빈 복도에서 한참을 씩씩대다가 나갔다. 몇분 후 누군가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집의 신발정리를 한다. 이 여관식 자취방의 공동장소는 주인 아주머니가 관리와 청소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신발정리까지는 그녀가 할 수 없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 집의 신발정리를 내가 하는 것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다.

현관에 바글바글한 신발들을 보면 언제나 나는 짜증이 났다. 내가 그토록 신발정리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현관 앞이 복잡한 게 싫었다기보다는, 저녁 시간, 다섯 개의 방이 전부 차면 화가 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제 방 주인이고, 모두가 제자리에 가 있는 것뿐인데, 나는 숨이 막혔다. 이 집은 보통 오후나 주말에는 두 개의 방 정도에만 사람이 있다. 그러면 나는 안락한 마음으로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들으며 방안에서 뒹굴곤 했다. 그때는 욕실을 쓸 때도, 빨래를 널 때도, 마음이 훨씬 편했다. 그런데 밤에는 사정이 달랐다. 아침에는 모두가 나가버리지만, 밤에는 모두가 돌아왔다. 아울러 밤에는, 그 주인들과 함께 나간 신발들도 돌아왔다.

그녀들의 신발은 다채롭다. 투박한 것에서부터 미끈한 것까지, 그리고 어느 것은 평범하고 또 어느 것은 굉장히 감각적이다. 싸이즈도 제각각인데, 그중 유독 거대한 운동화가 하나 있다. 아마 그것은 2번방 여자의 것이리라. 나는 신발들을 하나하나 집어 신발장에 넣는다. 신발들이 모두 신발장 안으로 숨겨지고, 현관 앞이 말끔하게 비워지고 나면 나는 이상하게 안도가 되는 것이다.

어느날, 현관 앞에 세번째 포스트잇이 붙었다.

–나갈 때 꼭 문을 잠그고 나갑시다. 신발 도둑맞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그 종이를 붙인 사람이 신발의 주인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실종된 신발, 누군가 슬며시 들어와 타인의 신발만 신고 다시 슬며시 나갔다는 사실은 분명 금전적 도난보다 더 서늘한 부분이 있다. 어쩌면 그녀가 내부를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것은 네 명의 여자를 향한 점잖은 항의일까?

신발 주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도난사건이 이 집을 물기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집에서도 생기는 일이 이 집에서도 생겨줘야 우리 다섯 여자는 서로를 덜 무서워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들의 운동화 밑창을 내려다보며 신발장 문을 연다.

 

큰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뭄이 어떻고 단비가 어떻고 농부들이 어떻다는 엄기영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옆방에서 간헐적으로 들린다. 아홉시 뉴스다. 그러나 그녀가 뉴스를 규칙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곧 화장실 문을 잠근다. 알루미늄이 지긋이 퉁겨진다. 누군가 현관으로 올라온다.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지금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고 있다. 현관을 여는, 철커덕 소리. 내 앞방의 여자는 라디오를 듣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나처럼 배를 깔고 바닥에 엎드려 있을 거다. 복도 끝, 다용도실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세탁기는 밤에 자주 돈다. 아니, 전체적으로 이 집은 주로 낮보다는 밤에 활기를 띤다. 그러나 밤 세탁이 실제로 허용된 것은 아니다. 다용도실 바로 옆방의 아가씨가 써놨음직한 메모가 다용도실 문앞에 붙어 있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읽었으므로.

–밤 열시 넘어서는 세탁기를 돌리지 맙시다.

내 방은 세 평 남짓한 크기이다. 방안에는 세 칸짜리 분홍색 서랍장 하나, 오른쪽 모서리 귀가 닳은 한 칸짜리 금성냉장고 하나, 그리고 생리중에 흘린 피가 까맣게 말라 있는 아이보리색 요 한 채와 장미가 무더기로 그려진 이불이 있다. 세 칸짜리 서랍장 중 언제나 한 칸은 양말이나 티셔츠가 기어나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이가 물려 있고, 냉장고 옆의 책장에는 몇개 안되는 씨디와 책들이 있다. 대개 서태지, 김현철, 이승환, 너바나, 비틀즈 등의 씨디다. 방문 쪽 콘센트에는 항상 핸드폰 충전기가 노란불을 켠 채 충전돼 있고 방바닥엔 군데군데 담배빵 자국이 나 있다. 다른 여자들의 방을 본 적은 없으나, 우리들 방앞엔 각기 비슷한 크기의 쓰레기 봉투가 문패처럼, 혹은 문앞을 지키는 개처럼 웅크리고 있다.

 

한 여자가 이사를 갔다. 얼마 후 또다른 여자가 이사를 왔다. 짐이 적어 이사는 순식간에 끝났고 복도에서 들리는 말소리와 기척만으로 나는 그들의 들고 남을 알았다. 실제로 여기 방주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주 바뀌는지도 모른다. 이 집 현관문 앞에는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우편물이 쌓이곤 한다. 무수한 옛 주인들의 이름은 그렇게 쌓여 있거나, 비에 젖거나, 실종되거나, 버려진다.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 외에는 떼는 사람이 없는 족발, 피자, 중국집 전단지들. 누군가에겐 무용한 것이 누군가에는 유용하기도 한 모양이어서, 간혹 그중 한 집을 골라 무언가를 시켜먹는 여자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부엌이 없는 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란, 매우 드물었다.

어느날 늦은 오후, 평소대로라면 모두가 나갔음직한 시간이 분명한데 밖이 소란스럽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참으며 가만히 누워 밖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나이 많은 여자 하나, 젊은 여자 하나, 그리고 중년의 남자 하나다.

“아니 학생, 어쩌다 열쇠를 안에 두고 잠갔어. 이거 비상 키도 없는데……”

나이 많은 여자, 그녀는 위층 주인 아주머니다. 목소리는 상냥한 듯하나 여전히 신경질적이다.

“………”

젊은 여자, 그녀는 아마도 네번째 방쯤의 여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면구스러워하고 있으리라.

철컥.

“다 됐네요.”

중년의 남자, 그는 열쇠가게의 주인이다.

“만원입니다.”

남자가 말한다. 잠시 부스럭 소리가 나고 남자와 여자가 나간다. 나는 그들이 나가는 소리를 확인하고 화장실에 가려고 슬그머니 나온다. 그러다 얼핏, 네번째 방으로 들어가는 4번방 여자의 뒷모습을 아주 짧게, 스치듯 본다. 보통 키에 하늘색 옷을 입은 것 같은데, 정말 순간적이었다. 그녀는 공기가 흡입되듯 4번방으로 쑤욱 빨려들어갔다. ‘왠지 저 여잔 호리호리할 거 같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여자가 사는 방을 바라보며 나는 화장실 문을 연다. 갑자기 화장실 안에서 역한 냄새가 확 풍겨온다. 나는 순간 뒷걸음질치며 고개 돌린다. 아마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이 욕실을 쓴 사람은 우리 중 제일 커다란 신발을 신는 거구의 여자이리라. 나는 이 냄새를 안다. 꼭 내 앞방의 문이 열렸다 닫히면 욕실에서 이 냄새가 났다. 그건 뚱뚱한 사람들이 풍기는 이상한 비린내 같은 거였다. 나는 욕실에 있는 각기 다른 종류의 세안도구와 샴푸들을 훑어보며 그녀를 욕한다. 그리고 손에 닿는 대로 남의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욕실을 나온 나는 다용도실 앞 메모도 생각나고 해서 늦기 전에 빨래를 한다. 빨래는 꽤 많다. 나는 서둘러 빨래를 널고 편의점에 간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을 아는 친구는 없다. 나는 휴학 후 학교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이곳으로 이사했고, 편의점 일은 생각보다 힘들어 누굴 부르거나 만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누구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이 집은 내가 구한 것이고, 부모님은 시골에서 월 이십만원씩 송금만 해주신다.

졸업을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나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일 출근을 하는 3번방 여자나 2번방 여자는 나와 다를 바 없을 거라 믿는다. 내가 편의점에서 돌아온 것은 새벽 한시가 넘어서였다.

나는 현관문을 따고 제일 먼저 바닥을 본다. 어쩐 일로 신발이 없다. 복도를 보니 각 방에 네 켤레의 실내화가 나란히 놓여 있다. 모두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신발을 정리한 모양인데…… 미안해서였을까? 나는 의아해하며 방문을 딴다. 철커덕. 오늘밤 이 소리는 유난히 크다. 왠지 네 방 여자들의 잠을 모조리 깨우는 거 같아 나는 조심스럽다. 나는 여느때처럼 방에 들어가 클렌징을 하고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네 여자의 머리카락이 뭉쳐, 뱀 똬리처럼 둥글게 감겨 있는 수챗구멍의 찌끼를 집게로 집어 휴지통에 버린다. 이것 역시 내가 수시로 하는 일 중의 하나며, 아마 그녀들도 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욕실을 나와, 낮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는다. 방안에 들어온 나는 빨래를 개어 서랍장에 넣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갠 빨래들을 천천히 훑어본다. 속옷 몇벌이 부족했다. 순간 나는 볼이 화끈거렸다. 여고시절 자주 보았던 성도착 환자일까? 예전의 그 신발 도둑이 슬그머니 또 들어왔던 것일까? 나는 수치심과 불쾌감이 든다. 누굴까? 생각해보니 꽤 비싼 속옷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일단 이 일에 대해선 묵인하기로 했다. 사실 포스트잇 따위를 붙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해왔다.

다음날도 나는 늦게 일어난다. 옆방 여자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잠이 묻은 얼굴로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본다. 그녀가 출근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이상해서 다시 요일을 보니 일요일이다. 정오를 지나고 있는데 여자들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일요일이니까, 하고 나도 다시 잠을 청한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것 혹은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게 친근하고 낯설다. 깨어났을 땐 다시 새벽이었다.

나는 목이 말라 머리맡에 있던 소형 금성냉장고를 더듬었다. 물이 없다. 너무도 갈증이 났기 때문에 지갑을 들고 당장 편의점에 가려 했다. 현관문을 나선다. 그런데 내 신발이 사라졌다. 두번째 도난. 나는 당황한다. 이건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이건 내부의 짓일 거라고. 만일 외부 도둑이라면 속옷이며 뭐며 그렇게 내 것만 골라서 가져갈 수는 없을 거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서로 누구의 신발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걸까? 그런데 누가 이토록 미련맞은 도둑질을 할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여분의 운동화를 끌고 나가며 나는 편의점으로 매우 느린 걸음을 옮긴다. 사실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절도의 혐의를 묻는 일이란 서로가 너무 민망하고 어색한 일이다. 한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그 반쪽짜리 얼굴의 여자들에게 당당하게 전면 공개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집은 평온하고 나름대로 질서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나는 반드시 당당하게 주장해야 할 것이다. 소리나 냄새가 아닌 실제 얼굴을 보고 말이다.

 

나는 두 번의 도난사건이 있은 후 절대 내 물건들을 밖에 놔두지 않았다. 빨래는 습기가 차더라도 방안에다 널었고, 급하게 구한 단벌 구두도 책상 아래 상자에 넣어두었다. 복도와 현관에서 생긴 일이니, 현관문 단속이 철저하지 않은 이상 같은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꽤 긴장된 나날들을 보냈고 그러한 긴장이 보름쯤 가자 오히려 스스로 시들해져버렸다. 왜냐하면 그 보름 사이 나에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느정도 도난사건을 잊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리를 내며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고, 샤워를 하고, 집 안팎을 드나드는 기척을 부지런히 내주었으며, 라디오를 듣고, 티브이를 보고, 세탁기를 돌리고, 신발도 정리했다. 간간이 전화로 누군가와 수다도 떠는 것 같았으나 목소리가 희미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편의점 일이 손에 익어 느슨해졌으며, 간혹 만취되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돌아와보니, 방 한가운데 며칠 전 잃어버린 내 구두가 놓여 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굴까? 나는 다시 묻는다. 누굴까? 자기 발에 맞지 않아 도로 갖다놓은 것일까? 하지만 이 문을 어떻게 땄을까? 속옷은 그냥 갖고 있을까? 누군가 술이 취해 자기 방과 내 방을 혼동한 게 아닐까? 지난번에도 누군가 내 방문을 실수로 열려는 것을 기겁을 하고 안에서 막은 적이 있잖아? 밖에서 무어라 사과를 하고 비틀거리며 지나간 것 같았는데, 그 여자는 몇번 방 여자였더라? 아, 5번방이었다. 혹시 자기 빨래를 만졌다고 불쾌해한 2번방 여자는 아닐까? 아니다. 그 여자는 발이 크다. 아니면 내가 보일러 온도를 올릴 때마다 도로 내려놓는 3번방 여자가 혹시 골이 나서 그랬을까? 아니면 4번? 아니, 5번? 아니 다시 2번? 누군가 한명쯤은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것은 어리석다. 나는 각 방의 여자들을 의심한다.

나는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내 구두를 내려다본다. 갑자기 며칠 전 이곳에 왔던 열쇠가게 아저씨가 생각난다. 당당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이건 억울한 일이다. 내부의 장난이라면 나는 밝혀내야겠다. 누군가 내 나머지 속옷을 갖고 있을 거다. 내일은 네 방의 문을 모두 따 내 속옷을, 그리고 그것을 훔친 여자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밖에선 갑자기 누군가 카악, 하고 양칫물을 뱉는다.

 

“열쇠를 안에 두고 잠가서요……”

나는 한낮에 찾아온 열쇠가게 남자에게 해명을 한다. 여자들은 모두 방에 없다. 그들은 대부분 저녁때 돌아온다. 그는 별 의심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준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데다 아마 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5번방 문을 능숙하게 딴다. 나는 주의깊게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나는 어쩐지 모든 여자들의 방을 뒤지는 게 미안해 우선 가장 심증이 가는 5번방 여자의 방만 먼저 보기로 했다. 그녀가 만일 맞다면, 나머지 세 방의 여자들에게 덜 미안하리라. 5번방을 먼저 본 후, 그곳에 내 속옷들이 없다면, 나는 다른 열쇠가게에 전화를 걸어 두번째로 심증이 가는 방을 열어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그녀들이 돌아오기 전에 신중히, 그리고 신속히 이뤄져야 하리라. 그녀들의 방을 따는 일이란 의외로 참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남자에게 출장비용을 지불한다. 그가 갔다. 방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인다. 밖에서는 여전히 드릴 소리, 망치질 소리 등 공사음이 시끄럽게 들린다. 나는 용기를 내어 방문을 활짝 연다. 발걸음 소리라도 나면 이대로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의 방을 연다.

5번방. 드디어 안이 보인다. 나는 방안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방안에는 세 칸짜리 분홍색 서랍장 하나, 오른쪽 모서리 귀가 닳은 한 칸짜리 금성냉장고 하나, 그리고 생리중에 흘린 피가 까맣게 말라 있는 아이보리색 요 한 채와 장미가 무더기로 그려진 이불이 있다. 세 칸짜리 서랍장 중 한 칸은 양말이나 티셔츠가 기어나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이가 물려 있고 냉장고 옆의 책장에는 몇개 안되는 씨디와 책들이 있다. 서태지, 김현철, 이승환, 너바나, 비틀즈의 씨디다. 방문 쪽 콘센트를 본다. 핸드폰 충전기가 노란불을 켠 채 충전돼 있고 방바닥엔 군데군데 담배빵 자국이 나 있다.

나는 무언가 얻어맞은 듯 큰 충격에 휩싸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내 방 열쇠를 꺼낸다. 이번엔 4번방 앞에 가서 선다. 나는 나도 모르게 4번방 문고리에 내 방 열쇠를 집어넣어본다. 쇠 마찰소리가 나고 마침내 구멍이 열쇠를 삼키는 소리. 내 방 열쇠가 4번방 문을 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하게도 잘 열린다.

철커덕, 4번방이 열린다. 4번방에는 세 칸짜리 분홍색 서랍장 하나, 오른쪽 모서리 귀가 닳은 한 칸짜리 금성냉장고 하나, 그리고 생리중에 흘린 피가 까맣게 말라 있는 아이보리색 요 한 채와 장미가 무더기로 그려진 이불이 있다. 세 칸짜리 서랍장 중 한 칸은 양말이나 티셔츠가 기어나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이가 물려 있고 냉장고 옆의 책장에는 몇개 안되는 씨디와 책들이 있다. 서태지, 김현철, 이승환, 너바나, 비틀즈의 씨디다. 방문 쪽 콘센트를 본다. 핸드폰 충전기가 노란불을 켠 채 충전돼 있고 방바닥엔 군데군데 담배빵 자국이 나 있다.

그리고 세번째, 그리고, 끝끝내 마지막 방까지.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러면서도 나는 기어이 목격하고야 만다. 내 방과 가구에서부터 옷, 장신구, 책, 그리고 방바닥에 난 담배빵 자국까지 하나의 오차도 없이 징그럽게 똑같은 네 사람의 방을.

그녀들의 방엔, 어디에나 내 속옷이 있었고, 어디에도 내 속옷은 없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다시 내 방에 있다. 시간을 보니 아홉시다. 나는 얼굴이 흙빛이 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다시 시계를 본다. 아홉시. 그녀들이, 아, 그녀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가다가 그녀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돌아온 그녀들은 내가 자신들의 방에 들어갔다 나온 걸 알게 될까?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꼼짝없이 내 방에 갇혀 있다. 시간은 죽은 듯 천천히 가고 잠시 후 그녀들은 하나 둘 좀비처럼 모여들 것이다.

첫번째 여자. 그것은 나이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중에 들어올 그녀들이 나의 귀가를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참 후 드디어 먼 곳에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현관문이 열린다.

철커덕. 두번째 여자가 들어왔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천천히 슬리퍼 소리를 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타는 듯한 초조를 느끼며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오늘밤은 지독하게 적막하다. 이런 밤은 특히 아주 작은 소리라도 잘 들리게 마련이다.

철커덕. 세번째 여자가 들어왔다. 나는 핸드폰을 더듬는다. 갑자기 전화벨이라도 요란스레 울려댈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러면 어쩐지 세번째 여자는 산속에서 적을 발견한 군인처럼 소리없이 내게 푸욱 칼을 꽂아댈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왠지 그녀들이 모두 내 방을 거쳐가며 이쪽을 한번씩 노려보고 갔을 거란 상상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조용하다. 오늘은 라디오도 안 듣는 걸까?

철커덕. 네번째 여자가 들어온다. 나는 흠칫 놀란다. 마음이 급하다. 나는 전화를 한다. 이제는 정말 누군가 필요한 시간. 그러나 최근 애인이 생긴 친구는 한시간째 통화중이다. 초조한 나는 계속 핸드폰의 센드 버튼을 누른다. 누르고, 부재를 확인하고, 끊고, 다시 누르고, 확인한다. 그러다가 종내, 지금 저희 고객이 통화중이어서,라는 말에 섬뜩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받지 않는다. 나는 결국 친한 사람부터 범위를 넓혀가며 정신없이 전화를 건다. 그러나 오늘밤은 이상하게 모두가 통화중이거나 부재중이다. 나는 무섭다. 못 견디게 무섭다. 그때 철커덕,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섯번째 여자가 들어온다. 복도를 가로질러 가는 그녀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고 또각, 방문 손잡이 꼭지를 누르는 소리가 난다. 나는 가슴이 터질 듯하여,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가 나머지 방들을 향해 소리지르며 그녀들의 방문을 사정없이 두들기고 싶다. 그러나 나는 끝끝내 그녀들의 얼굴을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또각, 다섯번째 여자가 방문을 잠그는 순간, 나는 드디어 한 친구와의 통화연결에 성공한다. 친구는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나 역시 친구에게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곧이어 친구는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순간 나는 내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번 더 “누구세요?” 묻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황한 나는 내 친구이거나, 선배이거나, 친구의 친구일지 모르는 사람에게 절박한 목소리로 되레 묻는다. “누구세요?” 경계하듯 저편에선 잠시 말이 없다. 그리하여, 행여 저편에서 수화기를 놓을까봐 조급해하며 내가 연이어 “누구세요?” “누구시죠?” “누구셨죠?”를 울듯 묻고 있을 때, 각각의 방은 무덤처럼 조용했는지 어땠는지, 네 명의 여자가 모두 내 방으로 달려왔는지 어땠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다. 다만 주의력이 좋은 여자였다면 다섯 여자 중 한 명은 아침에 내가 화장실 앞에 처음으로 붙여놓은 ‘미안해요. 무서워서 그랬습니다’라는 포스트잇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순간 하고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소설 | 심사평

 

우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응모된 작품편수(총 385편)이다. 신인작가들을 뽑는 신춘문예나 기성 문예지에 응모되는 양을 웃돌면 웃돌았지 모자라지 않았다. 양만 그런 게 아니라 투고된 작품의 수준 또한 그에 못지않아서 그중 한두편을 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젊은 대학생들의 문학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을 뿌듯한 마음으로 밝혀둔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숙고한 작품들은 김재영(한국외대)의 「반환점」, 장지훈(고려대)의 「마스타베이션」, 김애란(한국예술종합학교)의 「노크하지 않는 집」, 이정은(추계예대)의 「독어(毒魚)」, 김명호(원광대)의 「호루라기 불다」였다.

「반환점」은 심사위원들 사이에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다. 연변이라는 공간을 이처럼 세밀하고 현실감있게 다룬 작품은 기성작가들 중에서도 흔치 않다는 평이었다. 연변에서는 양쪽 다 이방인인 북한여자 혜순과 남한남자 지훈의 삶 또한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었으며 이야기가 사소설을 벗어나 민족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응모기준(80매 내외)을 넘어서는 200매 가까운 분량이라 일단 그 자격에 제동이 걸렸다. 너무 능란해 오히려 신선미가 떨어지는 것이 단점일 정도로 잘 쓴 작품이었는데 아쉽다. 「마스타베이션」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의 촛점이 흐트러져 있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되었으며, 「독어(毒魚)」는 전문가라고 여겨질 만큼 낚시에 대한 묘사가 정확했다. 낚시를 인생에 비유해 아포리즘을 유발해내는 솜씨 등을 높이 샀으나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이 너무 차분해서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위의 세 작품을 먼저 뒤로 돌리고 나니 「노크하지 않는 집」과 「호루라기 불다」가 남았다. 이 두 작품 중 「노크하지 않는 집」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일은 매우 순조로웠다. 「호루라기 불다」는 법정소설이다. 투고된 작품 중에서 법정소설이라는 점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부분부분 서툴기도 했다. 호루라기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고 타자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장치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으나 표현이 문제가 된 부분이 몇군데 있었다. 재산싸움으로 인하여 파괴되어가는 가족간의 갈등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탁기에 들어가 자살을 하는 어머니, 밤늦은 지하철 안에서 만난 여자의 핸드폰 끈에 달려 있는 호루라기를 불고 싶어 그녀를 쫓아가다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장면 등 끝까지 서사를 탄탄히 이끌어나간 점을 사서 먼저 가작으로 선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은 매우 참신한 작품이다. 단편소설로서 단점도 거의 없다. 한집의 똑같은 방에 세들어 사는, 이름이 없는 사람들. 1호 2호 3호 같은 번호로 지칭되는 여자들. 그들은 변별점이 없이 기호화되어 있는데 그것이 현대인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데 중요한 장치가 되어주었다. 가장 가까이 살지만 서로를 알지 못하는 익명성으로 인해 저질러지는 일들은 시시하게 떨어져버릴 수도 있는 이 작품에 에너지를 발사한다. 똑같아 보이는 것을 시시각각 다르게 묘사해나가는 속도감있는 문장은 이 작품의 후광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 추진력에 의해 단숨에 읽게 되는데 다름을 구분해냈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대목이 압권이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崔元植 李舜源 申京淑〕

 

 

 

소설 | 당선소감

 

사람이 일평생 자기 자신에게 크게 한번 사기쳐보는 순간이 있다면, 나에겐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일 것이다.

얼굴이 빨개져 있는 나의 졸고를 등 떠밀며 한번 덜 무서워보자고, 한번 덜 주저해보자고 지금 나는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떤 방주는 타조가 물고 날아오는 풀잎을 기다리며 사막으로 간다고.

그러나 만일, ‘작가란 독자를 구원하는 존재가 아닌 위로하는 존재’라는 한 스승의 말이 가능하다면, 그리하여 좋은 눈과 튼튼한 엉덩이 이것만으로도 인간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다음번에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속이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면, ‘식은땀을 흘리며 하고 있는 이 농담’ 안에서조차 나는 언젠가 진실의 얼굴을 반쯤은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학교에 계신 네 분의 극작가와 한 분의 시인, 그리고 나의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대산대학문학상이 내미는 이 따뜻한 악수가 하도 낯설어, 나는 아직까지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엉거주춤 서 있기만 하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