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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판식 朴判植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lifediver@hanmail.net
칠월
고통으로 물집 잡힌 포도들, 여름의 나무들은 손가락을 얻었다
비록 아무것도 쥘 수 없지만
방직공장의 처녀들은 실을 잣고 오솔길은 굽이치는 향기를 풀어낸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빗어내리는 믿어지지 않는 햇빛의 손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감춰두었던 조개껍데기를 내민다
아홉 가닥 연뿌리가 진흙을 빠져나온다
아홉 가닥 푸른 피라고 여자가 말한다
강의 금빛 모래, 흙을 토해내는 조개의 입술에 작은 여자들이 매달린다
즐거움은 손 안에 있다
일곱번 색을 바꾼 꽃이 있다
그러나 이제 두번밖에 남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리운 가족
결점투성이 피와 피를 잇는 꽃과 나뭇잎
엉겨붙은 혈관을 풀어 여덟 갈래로 소생하는 기적은 너무도 사소한 일
나뭇잎은 자라지 않는다 나뭇잎은 본래의 모양을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병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나뭇잎들의 뼈가 서걱거린다 피가 도는 푸른 혈관이 보인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처럼 나는 희망의 기후를 촉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균을 저울질하며 눈물이 부풀어오르진 않는다
바람은 나뭇잎들의 위태로운 차양을 찢어놓는다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좀처럼 한가지 생각에 촛점을 맞추지 못한다
한랭의 기후를 견뎌낸 나무들을 누군가 전지하고 있다
그것은 갈고리 달린 창으로 발목을 끊어내는 고대의 살육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피가 솟구치는 일은 없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잘 여문 나뭇잎이 불가분의 운명으로 떨어져내릴 때
비명을 내지르는 것은 분명히 우스꽝스러운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