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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역사학의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윤해동 『식민지의 회색지대』, 역사비평사 2003
김성보 金聖甫
충북대 교수, 한국사. kimsbo@chungbuk.ac.kr
물이 고이면 썩듯 학문의 세계 또한 끊임없이 바뀌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진통이 따르고 이를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식민지의 회색지대』는 요즈음 한국사학계의 보기 드문 진통과 용기의 산물이다.
20세기말 이래 한국 사학계는 근원적인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사 연구는 ‘국가’와 ‘민족’ ‘진보’와 같은 서구적 근대의 가치를 불변하는 절대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 가치에 위배되는 모든 것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질문들은 우선 역사학계 밖의 학문영역에서 시작되었고, 좀 지나서는 역사학계 안의 서양사학계에서 논의되었으며, 이 책의 저자인 윤해동에 의해 비로소 한국사 연구자들 내부에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저자의 고정관념 해체작업은 우선 민족주의 비판에서 출발한다. 한국사 연구자들은 통상 한국의 민족주의가 서구 내셔널리즘과 달리 역사적으로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정당성을 가졌으며 해방 후 지금도 통일국가의 건설을 위해 유용하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국가주의나 국수주의로 빠질 위험성은 ‘열린 민족주의’나 ‘공공적 민족주의’ ‘대동적 민족주의’의 실현을 통해 회피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이같은 발상으로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민족이라는 집단적 가치를 절대화하는 민족주의는 결국 민족 내부의 다양성 및 개인의 가치와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민족주의는 내파(內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민족주의 비판은 당연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해석을 비판하는 데로 이어진다. 저자는 식민지 경험을 지배와 저항의 이항대립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기성의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식민지의 ‘회색지대’에 위치한 ‘민’의 다양한 삶의 방식, 그리고 그 속에서 관철되는 식민지적 공공성, 근대적 규율권력의 문제를 통해 한국적 근대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저자의 기성 학계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잡은 ‘내재적 발전’의 시각 또한 해체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은 역사란 진보한다는 절대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의 관념은 서구 근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본다. 20세기를 ‘광기의 시대’라고 할 때 그 광기는 진보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근대를 비판,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진보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재적 발전론은 서구 역사의 전개과정을 세계적 보편성으로 삼는 서구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한국 역사학계의 통념 전반에 걸쳐 철저한 회의(懷疑)와 엄밀한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기에 이 책은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오늘날 타성에 젖어 작은 문제의 실증에 그저 만족해하거나 아예 기본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한국사 연구자들에게 뼈아픈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앞으로 한국사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대한 불만은 남는다. 가장 큰 불만은 저자가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 즉 현실로부터 이론을 도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기존의 역사학 이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의 방법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이 책은 지극히 난해하며 때로는 공허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민족주의 비판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민족주의 또는 내셔널리즘이 그 자체로서 선(善)이 아님은 이제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상식이 되었다. 그것이 상식으로 자리잡아간 데에는 저자와 같은 깨어 있는 지성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 점은 분명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민족주의 논의라면 식상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1차적으로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도덕적 원리주의에 가까운 추상적 비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논의가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고 전망하는 데 직접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무수한 문제들이 단지 민족주의를 폐기하고 근대를 비판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까? 냉전체제가 종식되었으나 그를 대신하여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가 확대되는 현실 속에서 국가간 평등 또는 국가간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 한,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내재적 발전론 비판 또한 이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의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내재적 발전론이 기초하고 있는 역사발전단계론의 서구중심주의를 문제삼는다면, 논의는 서구를 넘어선 전세계적 보편성은 과연 무엇이며 그 속에서 다양성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논의의 방향은 서구적 근대에 대한 원리적 비판일 뿐이며, 그 비판의 논거는 상당부분 서구사회에서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중심주의의 틀 안에서 서구적 근대를 서구적 탈근대로 바꾸는 것뿐이지 않는가?
저자가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이론 자원으로 삼고 있는 포스트식민주의론은 제3세계의 주체적 고민을 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가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의식에 전혀 못 미친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내재적 발전론의 한 갈래인 ‘근대화의 두 가지 길’론에서는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식민주의가 어떻게 한국사의 내적 흐름, 특히 위로부터의 근대화 길과 강고하게 결합되었는가를 주요한 연구주제로 삼아왔다. 일제하 실력양성운동은 단순한 친일도 민족운동도 아닌, 지주와 자본가층 위주의 근대화 논리가 식민지 지배의 논리와 ‘타협’한 데서 나온 산물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학계가 새로운 좌표를 찾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음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비판이 힘을 얻으려면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듯이 새로운 역사학의 모색은 과거의 고민과 현재의 고민이 서로 부딪치고 상호작용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고민은 주체적이어야 하며 현실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