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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평화체제와 평화운동(21세기의 한반도 구상 2)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과 북일관계

 

 

강상중 姜尙中

일본 토오꾜오대학 사회정보연구소 교수. 저서 중에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가 국내에 소개돼 있음.

ⓒ 姜尙中 2003/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3

 

*이 글은 『日朝交涉–課題と展望』(姜尙中·水野直樹·李鍾元 編, 岩波書店 2003)에 수록된 「北東アジア共同の家に向けて」와 최근에 이루어진 필자와의 대담을 묶어 편집한 것이다.

 

 

위기의 갈림길에서

 

북미관계는 미군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1993년경의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미국이 테러리즘과 압제자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한 ‘선제 공격’(preemptive attack) 독트린을 선언한 2002년 9월의 ‘국가안전보장전략’에 의하면, ‘핵동결 해제’를 선언(2002년 12월 12일)한 ‘불량국가’ 북한(원문에는 ‘북조선’과 ‘한국’이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각각 ‘북한’과 ‘남한’으로 번역함–옮긴이)에 대해서 정밀조준폭격을 가할 공산이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정권은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을 부정하고, 당면의 외교적 노력에 의한 평화해결을 제시하면서, 대(對)이라크와는 다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영변에 있는 주요 핵시설의 봉인 해제를 완료했다고 발표함으로써, 핵개발을 둘러싼 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듯하다.

미국 의회에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 대한 출자 정지와 더불어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가 사실상 파기되면서, 합의의 이행과 핵무기 개발계획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형식으로 포기할 것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미국과, 상호불가침과 현체제의 유지와 존중의 약속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의 사이에 전면충돌의 가능성마저 예측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북미의 전면대결은 남한은 물론 일본도 가장 걱정하는 일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남한은 2000년 6월에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키고, 일본은 2002년 9월 17일의북일정상회담을 이뤄낸 것이다.

특히 북일 국교정상화는 북한 내의 개혁과 개방을 촉구하는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는 ‘납치문제’만 부각되면서 일본 국내여론이 경색되어, 교섭 그 자체는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형편이다. 그래서 지금은 북일 국교교섭의 좌절을 계기로, 북미관계는 서서히 동북아시아(원문에는 모두 ‘북동아시아’라고 되어 있으나 ‘동북아시아’로 바꿈–옮긴이) 전역에 걸친 안전보장상의 위기로 치닫는 중이다.

이와 같이 상황파악을 하는 한, 안이한 낙관론에는 전혀 전망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현상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려 과거의 위험한 상황으로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남한 내의 변화이다. 현재 남한 내에서는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공전의 반미시위가 확산되어, 부시정권 내의 강경파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미 새로운 대통령이 된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은 김대중정권의 ‘포용정책-햇볕정책’의 계승을 표방하고, 그 위에 한미간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시정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남북관계를 시야에 넣는 더욱 통합적인 민족주의를 자극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자세를 견제하는 흐름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량살상무기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북한에 대한 미군의 정밀조준폭격이라는 ‘최후의 선택’도 남한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런 의미에서 군사적인 선택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미완의 포용정책’은 노무현정권의 탄생으로 인해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막다른 길에 들어선 북미와 북일 관계 안에서, 남북관계가 다시금 상대적으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한·미·일 3국의 보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북한의 ‘고등전술’에 말려들 빈틈을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으로 북한이 ‘포용정책’의 계승을 주장하는 새로운 정권과 제2차 정상회담에 과감히 나와, 국면 타개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김정일 총서기의 남한 방문이 실현되면 한반도의 긴장완화 분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두번째, 2001년의 ‘9·11’ 이후 부시정권이 ‘악의 축’에 대한 군사력을 동원한 ‘위협’전술에 변화가 생긴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주요 미디어가 이라크에서도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대규모 핵시설 건설이 밝혀졌다고 보도하고 있어, 부시정권은 전지구적인 대(對)테러 전쟁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 ‘악의 축’ 국가에 대한 대응에 급급한 처지에 놓였고, 그 ‘전술’에 대한 실질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반도에서 부시정권은 평화적인 외교수단을 통해 관계국과의 협의에 의한 문제해결을 꾀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방침은 더욱 현실감을 띠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번째, 과열된 ‘납치문제’ 보도에서 외교의 리얼리즘조차도 잃고 만 듯한 일본이지만, 여론과 미디어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생겨나고 있으며, 북일 국교교섭의 진전을 바라는 60%에 가까운 여론의 목소리가 다시 교섭 재개를 위한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납치문제’만이 아니라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안전보장상의 위험이 본격화하면 ‘제2차 한반도 위기’ 상황이 더욱 절박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고, 그때는 교섭 재개의 기운이 높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상의 세 가지 새로운 사태를 예상한다면 벼랑끝 위기는 동시에 문제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북일 평양선언은 이같은 돌파구의 토대가 되는 선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나라 사이의 선언이라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전후(해방 후) 동북아시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북일간 국교정상화 과정이 이 지역의 다국간 협의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음을 밝힌 획기적인 문서이기 때문이다. 선언을 부연하자면, 한반도의 평화적인 공존과 통일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다자간 신뢰구축을 통해서 실현됨과 동시에 역으로 지역적인 안보와 평화는 한반도의 안정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내외에 밝혔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일간의 국교교섭은 북일 두 나라 사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남북대화와 북미협상,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평화적인’ 개입과 연동(連動)돼 있으며, 다국간 관계의 중층적인 전개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국간 혹은 다국간 관계의 복합적인 상호교섭과정과 그 성과의 축적을 통해서 동북아시아의 완만한 지역안전보장의 틀이 형성되고 지역통합의 기운이 확대되어갈 앞날에는 초국적(transnational) 지역주의의 구상이 당연히 부상하게 될 것이다. 그 구상을 필자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이라 부르고 그 실현을 주장해왔다. 여기에서는 북일 평양선언의 의의를 검토한 뒤에, 그러한 ‘공동의 집’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road map)에 대한 개략을 밝혀보고자 한다.

 

 

북일 평양선언의 의의

 

북일 정상회담 직후 일본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일본 외교의 ‘승리’를 축하하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북한이 한일조약의 기본적인 합의 라인에 동의를 표하고, 일본측의 주장에 근거한 국교교섭의 조건이 정비되어갔기 때문이다. 과거 식민지 지배의 ‘청산’이라는 최대 현안에 관한 한, 일본측은 북한으로부터 ‘적금의 만기 통지’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외교적 승리에 대한 자기도취는 ‘납치문제’의 충격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고, 북일은 ‘납치문제’를 둘러싼 쌍방의 체면을 건 지구전에 들어가고 말았다. 사태는 교착되어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미 밝힌 것처럼 타개의 돌파구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은 아니다. 또한 북일 평양선언의 역사적 의의가 ‘납치문제’로 인해 훼손된 것도 아니다.

선언은 한반도의 위기를 해결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지역의 다자간 협력관계와 신뢰구축을 꾀하는 포괄적인 틀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고, 두 나라 관계를 다국간 관계의 포괄적인 틀 형성에 링크(link)시켰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큰 틀에 입각해서 선언의 세 가지 의의를 지적할 수 있다.

첫번째 의의는 선언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전제로 국교정상화를 꾀하려 한다는 점이다. 클린턴정권 말기에 발표된 ‘페리보고서’의 기본개념은 ‘바람직한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교섭상대로 승인하고 관계정상화를 꾀하는 것이었는데, 일본도 이 개념을 답습하여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하려 했고, 북한을 동북아시아 지역 안으로 편입시켜감으로써 북한의 점진적인 국내 개혁을 촉진하는 방침을 채용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현 북한체제의 전복 혹은 개혁을 주장하는 하드 랜딩(hard landing)의 강경방침 목소리도 분출되고 있지만, 일본정부의 외교당국은 선언에서 사실상 강경방침을 부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승인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일 양국 정부가 그러한 점에 합의를 이루었다는 사실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대북관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국제환경의 동향을 점칠 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인정하고 그 위에 북한의 국내 개혁을 지원하는 국제협력체제를 만들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바람직한 북한’을 향해 체제전복의 국제협력체제를 지향할 것인가에 따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서 일본은 분명히 전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며, 이 점은 대북관계를 둘러싼 한일의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를 전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한·미·일 3자의 협력관계를 통해서 한일이 결절점(結節点)이 되어, 대북과 대미 관계를 결합시키고 북미 쌍방의 강경자세를 완화시키는 중개자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납치문제’ 일색인 듯한 일본의 대북 교섭상황을 보고 있으면 외교의 ‘뇌사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외교적인 구상력과 전략,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원의 동원과 여론의 지지라는 점에서 북일정상회담 이후 일본외교는 반북 캠페인의 반동적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리보고서’와 통하는 ‘현실적인’ 대북정책과 그것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문제와 관련해 포괄적인 틀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두번째 의의는 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지역의 다국간 협력 및 신뢰구축과 표리관계에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제까지 미국만을 주요한 교섭상대로 여기고, 남한과 일본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존재라는 지위만을 부여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다자주의적 접근 인정은 커다란 진전이다.

또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일안보기축(基軸)론’에 얽매여 아시아 부재의 외교가 계속되어온 것을 생각하면, 과장된 말 같지만 이 선언은 ‘미일 양국간 증후군’에서 탈각하여, 다각적인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세번째로 선언에서는 핵 및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의 여러 문제를 동북아시아 지역의 관련국가간의 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필요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이미 북한에 대한 대체에너지의 공급 동결이 결정되어 KEDO뿐만 아니라 북미협상의 틀 자체가 폐기될 수밖에 없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렇다고 아직 합의가 정식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다. 엄연히 실낱 같은 선으로나마 이어져 있다.

물론 핵문제와 미사일의 개발과 배치, 그리고 수출 등에서 안전보장상의 위기가 불식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통상병력의 감축이라는 북한의 존속과 관련한 중대한 의미를 지닌 문제도 남아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 해결은 북미협상과 남북대화, 북일 국교교섭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비관리와 군축, 다극(多極)적인 안보협의와 신뢰구축의 포괄적인 틀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평양선언은 그런 틀의 필요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미 필자는 일본 중의원의 헌법조사회에서 행했던 참고인 발언을 토대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을 제창해왔는데, 그 구상은 평양선언과 같은 맥락에 있으며, 선언이라는 공식문서에 의해서 정치적인 의미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구상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을 기초로 주변 4강(미·일·중·러)이 남북의 각각과 교차승인을 달성하고, ‘2(남·북)+2(미·중)+2(러·일)’의 여섯 국가의 다자간 협의의 포럼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포괄적인 지역안전보장 문제를 협의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통상병력의 문제, 그리고 주한미군의 단계적인 철수 문제 등을 검토하는 동북아시아 안보협의를 주장한 것이다.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은 이런 안보협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미래의 구상으로서 이 지역의 완만한 통합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그 기본적인 출발점이 되는 지역안보의 구상은 북일 평양선언의 기본이념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선언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

 

그렇다면 제1단계의 안보협의로부터 동북아시아 지역안보의 항구적인 협의기구의 창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로드맵이 상정될 수 있을 것인가.

첫번째로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의 중심에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과 통일문제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치는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이제까지 주변 강대국의 각축장으로서 격동의 역사를 겪어왔다. 전후(해방후)만으로 한정하더라도, 한국전쟁은 냉전체제 확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도 실질적인 탈냉전 후의 지역질서 형성의 과도기에 있어서 분쟁의 발화점이 되기 쉬운 가연물을 안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보아 주변 4강이 개입하는 지역은 한반도 외에는 없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번째로 확인해두고 싶은 것은, 현재의 남북관계는 확실히 균형을 잃고 있고, 비대칭적이라 할 정도로 힘의 불균형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력만 비교해도 남한의 압도적인 우세가 두드러지며, 또 1999년 6월에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발발한 북한 인민군 함정과 남한 해군 함정 사이의 총격전 결과가 시사하는 것처럼, 통상병력에서도 한국군이 우세한 것은 분명하다. 현재 남한의 군병력과 장비로 보아, 주한미군의 존재를 무시하더라도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한 억지력을 단독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같은 남북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막기 위해 북한은 핵개발을 협상카드로 사용하고 있고, 미사일 개발과 배치에 힘을 기울여왔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남한이 주변 4강과 정상적인 국교관계를 맺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전쟁 동결을 의미하는 휴전협정만을 미국과 맺고 있으며, 거기에다 구종주국(舊宗主國) 일본과는 국교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균형을 잃은 이와 같은 비대칭적인 관계를 수정하고 남북 공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미와 북일의 국교정상화가 불가피하다. 그 경우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람직한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라는 기본개념이다. 이 기본개념이 무시되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향한 다국간 협의의 틀은 붕괴하고 다른 한쪽의 선택만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제2차 한국전쟁’의 발발로 이어지는 심대한 희생과 참화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

김대중정권의 ‘포용정책’은 그런 최악의 위험을 피하고 억지력을 키워나가면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의 동력이 되는 국제환경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포용정책’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전제로 동북아시아 지역 관련국가에 의한 다극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적극적인 ‘관여정책’이다. 부시정권의 탄생과 김대중정권 내의 불상사가 겹치면서 눈부신 성과를 남기진 못했지만, ‘포용정책’의 기본적인 이념과 전략은 앞으로도 계속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또 북일 평양선언을 달리 바라보면 그러한 포용정책이 낳은 큰 성과로서 평가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대북정책에 관한 한일의 접근은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를 완화시킨다는 의미에서도 분명히 중요하다.

이와 같이 한일 공동보조를 축으로, 부시정권이 ‘페리보고서’를 사문화시키지 않고 그 선상에서 대북문제에 접근하도록 제휴를 통해 적극적으로 요구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도 북일 국교를 조기에 실현시키고 그것을 계기로 북미 국교교섭의 진전을 위해 노력해가야 한다.

북일 국교교섭의 정체(停滯) 혹은 중단은 북미협상의 문을 닫는 것임과 동시에, 결과적으로 남북의 비대칭적인 구조적 불균형을 확대하고,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납치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납치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교섭 자체가 끊겼다고 판단되는 이상,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국교를 정상화하고, 인적 교류와 왕래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북일 평양선언에 따른 국교정상화 즉 ‘경제협력’의 실시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국교정상화 후 쌍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라고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국교정상화 후 ‘납치문제’ 해결의 추이를 보면서 ‘적절한’ 시기에 ‘경제협력’을 실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국교를 맺으면 ‘경제협력’에 의해서 북한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견해는 문제를 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납치문제’가 북일 사이의 인적 교류와 왕래의 길이 두절된 때문에 일어난 이상, 그 ‘이상(異常)한’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교류를 증진하는 것이 ‘납치문제’를 해결하는 바른 길이다. 납치 희생자와 그 가족의 상호왕래가 실현되고, 개개인의 의지와 가족의 협의를 통해서 영주지를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적어도 ‘납치문제’의 당면 현안은 해소될 것이다. 진상해명과 관계자 처벌, 보상문제 등은 국교정상화 후 구체적인 관계기관을 통해서 해결해가면 된다.

이와 같이 ‘납치문제’와 국교정상화는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의 해결을 위해서도 후자의 국교교섭은 진행돼야만 하는 것이다. 단지 핵 및 미사일, 통상병력의 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의 현안은 북미협상, 남북대화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의도 등이 얽혀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미국이 수용하고 그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국교를 맺는 것인 이상, 체제 존속을 ‘보장’하는 ‘담보’ 없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이라는 두 가지의 카드를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라는 기본개념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적인 공존과 동북아시아 지역안보를 구상하는 것이라면, 북미 사이의 불가침조약 체결은 바람직한 선택이다. 휴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도적인 조치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그후 국교정상화를 진전시켜가는 과정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대량살상무기 문제와 불가침조약 체결 문제를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 제시된다면, 북한이 핵사찰에 응하고 핵개발 포기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미사일 수출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협의할 필요성이 있지만, 그 실험과 개발, 그리고 배치의 동결을 지속시키는 것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통상병력의 삭감과 재검토에 관해서는 김정일 체제의 ‘선군(先軍)정치’의 토대가 되는 군부의 합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며, 북한이 일방적인 통상병력의 삭감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반도의 군비관리와 군축이라는 전체적인 병력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쌍방의 통상병력 삭감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통상병역의 삭감에 관해서는 남북과 미국의 3자에 의한 협의가 불가피하며, 군비와 통상병력의 단계적인 삭감조치를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국이 보장하는 포괄적인 군비관리와 군축을 위한 포럼이 필요하다.

그 경우 커다란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존재이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있는 병력과 장비와 그 전략에 관한 단독주의적인 결정권을 부분적으로라도 다자간 안보협의의 장에 위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북미 국교정상화가 실현되고, 북한이 동북아시아 지역안보협의의 장에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주한미군의 존재에 관한 재검토 기운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근거로, 1991년에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남북 화해, 상호불가침 및 남북 교류·협력–가 이행된다면, 한반도의 평화적인 공존과 상호교류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지역 안전보장의 포괄적인 틀의 형성에 관한 앞길이 당연히 보일 터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동북아시아 지역안보의 포괄적인 틀과 병행하여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남북공동선언’을 근거로 국가연합으로의 이행이 시작될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국방과 외교권이 현재의 상태로 두 정부에 있음을 주장한 북한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사실상 같은 것이며, 그 단계에 대한 전망이 확실해지면 남북통일로의 접근은 더욱 현실감을 증가시켜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동북아시아 지역안보의 포괄적인 틀은, 그 성격과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어떤 집단안전보장기구의 창설을 위한 모색과 실천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에 대한 확실한 ‘담보’가 될 것이다.

물론 북일 국교교섭에서부터 그와 같은 지역안보와 통합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긴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을 답파할 때 비로소 동북아시아 지역은 전쟁의 참화를 입었던 과거 역사를 넘어서 평화와 번영을 실현해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식민지 지배의 청산과 역사인식 면에서, 한일조약과 다가올 북일조약이 ‘미비(未備)’할지언정 민족주의의 질곡을 넘어 지역적인 상호협력과 이해를 통해서 진정한 ‘화해’의 길을 개척해가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낙관적인 ‘어리석은 사람(癡人)의 꿈’이라고 일축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납치’라는 북한의 국가범죄는 일본 국민에게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감과 적개심을 심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그 충격의 깊은 곳에서 부상해오는 것은 전후 일본이 아시아 부재의 외교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이상함이 아닐까. 지금은 그 이상한 상태를 깨닫고 시정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에 축을 둔 외교와 안전보장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갈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 부재의 외교와 표리일체가 된 미일안보체제를 더욱 군사적으로 강화해갈 것인가라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야말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에 이르는 길이다.

[朴光賢 옮김]

 

 

■ 덧붙임

 

강상중 교수는 이번 특집의 원고를 청탁받고 새로운 글을 쓰기보다는 위의 글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를 희망하였다.편집진은 그 뜻을 존중하되 최근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보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본지 편집위원인 박명규 교수가 8월 11일 토오꾜오대학 사회정보연구소에서 오후 3시부터 약 2시간 반에 걸쳐 대담하였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첨부함으로써 보론을 대신하기로 한다.

먼저 최근 개최가 합의되고 조만간 그 첫 모임이 예상되는 6자회담에 대해 강교수는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하면서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이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주변국들의 체제보장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구축에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내다보았다. 그는 이런 변화가 북일 갈등을 빌미로 일본 안에서 힘을 더해가고 있는 ‘신우익’(new right)의 힘을 견제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임을 강조했다.

강교수는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주변국들, 특히 미국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지만, 무엇보다도 북한의 냉철한 상황판단과 정치적 결단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번 기회를 북한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의 제재조치들, 예컨대 유엔의 경제제재가 불가피해지고 그때는 중국도 반대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이것이 북한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적극적인 문제해결 노력을 촉구하였다.

6자회담에서 한국이 어떤 독자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와 관련해 강교수는 여러가지 가능성과 과제들을 언급했는데, 다음의 세 가지를 특히 강조했다. 하나는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군비축소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다. 지속적인 군비팽창과 군사주의로 치닫는 대립의 악순환을 극복하고 낮은 수준에서의 군사적 균형상태를 이루어내는 방향을 모색하는 일에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국제사회가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다시 회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일의 비핵화지대 창설 논의를 한국이 주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특히 6자회담이라는 틀 속에는 한미, 한일, 남북과 같은 2자관계나 한·미·일 같은 3자관계가 중첩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차원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영역이 결코 좁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 한국사회의 반미감정 및 반미운동과 관련하여 그는 그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존재에 대한 냉철하고도 객관적인 인식이 더욱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미국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으며 미국의 구체적인 전략에 있어서도 중동과 한반도 정책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라크전쟁의 경험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사회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서 그는 1980년 이래 일본사회의 변화추세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일본의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사회구조적 안전망이 해체되고 중류시민층의 좌절과 불만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현상이 우경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새로운 국가를 구상하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는 젊은층에게서 역설적이게도 정치적 민주화나 역사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현저하다는 점을 우려하였다. 이런 움직임이 그가 말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신우익’의 태동이다. 여기에 정신적 충격을 준 것이 작년 평양선언으로 돌출된 납치문제이다. 9·11사건이 미국인에게 준 충격에 비견될 이 사태는 일본의 대국화·군사화 지향이 공공연히 표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 6월 6일 의회에서 ‘유사법제(有事法制)’가 통과된 것이다. 전시대응법으로 마련된 이 법제에서 말하는 ‘유사’란 사실상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상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보수적 지식인들이 세계화의 흐름, 또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비하여,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세계적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채 국내문제에만 몰두한 결과 나타난 지적 대응력의 부재도 한계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자유무역지대(FTA) 논의와 관련해서는 이것이 금융영역에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적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진행돼야 함을 역설하였다. 통화의 다양한 유통을 보장하면서도 금융위기를 초래하지 않을 수 있는 메커니즘의 구축은 결코 신자유주의적 논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다자적인 협력과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과제이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 확대될 동아시아 경제교류 속에서 북한을 준식민지적인 대상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책임을 나누어질 파트너로서 고려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