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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평화체제와 평화운동(21세기의 한반도 구상 2)

 

가위눌린 한반도, 깨어나야 할 우리

 

 

정욱식 鄭旭湜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평화와 통일 관련 기사를 쓰고 있음. 저서로 『미사일방어체제』 『2003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공저) 『한반도의 선택: 부시의 MD 구상, 무엇을 노리나』(공저) 『전쟁과 평화, 21세기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공저) 등이 있음. civil@peacekorea.org

 

 

 

요즘은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유독 가위에 자주 눌렸다.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참 묘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 가위눌림이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안 들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음 가위눌렸을 때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가 빨리 일어나라고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눈이 떠지지 않으니 그 생소한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혼자 안간힘을 썼지만 식구들이 물리력(?)을 행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어나곤 했다. 가장 찜찜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설거지나 빨래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엄마가 내 뺨을 한대 쳐주는 것이었다. 한번은 식구가 아무도 없을 때 가위눌린 적이 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을 사람도 없었다. “먼 친척 할아버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계속 움직임 없는 발버둥을 치다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부터 열까지 셌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봤다. 그러기를 몇차례, 나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고, 흥건한 땀과 함께 ‘아 살았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때부터 나는 가위눌려도 혼자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물 묻은 엄마의 고무장갑을 겁내지 않게 되었으며, 언제부턴가는 가위눌림 자체로부터도 벗어나게 되었다.

내가 이런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오늘날 한반도가 꼭 가위눌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공포가 조금씩 엄습해오면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은 강한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나라)이 깨워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가장 중요한 미국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를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미국의 오만함과 북한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남한의 무능함 속에서 핵문제가 불거진 지 10개월이 지나도록 문제해결의 실마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핵무기와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답답함과 짜증스러움만 더해가고 있다. 개인의 앞날도 잘 보이지 않으면 답답한 법인데,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미래가 희망없이 떠돈다면 그 답답함과 불안함이야 오죽하겠는가?

불안감을 씻고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면 답답함은 오히려 커진다. “이대로 가다간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답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위기감은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이 지속된다면 민족공동체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노무현정부의 의욕이 ‘말의 성찬’에 불과해 보이는 것은, 미국과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반인 한국의 개혁·진보세력 사이에서 전략도 없이 부유(浮遊)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집권 초기 가위눌린 상태를 스스로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미국이 깨워줄 것을 기대하면서 강력한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부역자로 나서는가 하면, 첫 방미무대에서는 ‘부시의 푸들’이 아시아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굴욕적인 친미외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가 명분과 자존심은 상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한다고 노무현정부는 자평하며 애써 자위하고 있지만, 이라크전 파병이나 방미에서 드러난 노골적인 친미외교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미국 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 이러다가 뒷감당을 못할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하고 다시 균형외교로 복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중순 방미외교에 대해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압력’만 강조했던 데에서 진일보해 6월 방일기간 동안에는 코이즈미(小泉) 총리에게 압력과 함께 대화의 중요성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7월 중국 방문에서는 ‘압력’은 빼고 대화의 모멘텀(momentum)을 계속 살려나가면서, 상황의 악화를 막고 호전시키기 위해 양국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무현정부가 반성을 통한 ‘제자리 찾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압력→대화와 압력 병행→대화의 중요성 강조 순서로 긍정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강대국의 입김이 반영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숙한 외교에 대한 자기반성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예상된 위기

 

부시행정부가 출범한 지 달포 정도 지났을 때(2001년 3월 초), 나는 한 여성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2003~2004년에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 근거로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정치외교적인 협상보다는 군사주의에 주안점을 둘 것이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비롯한 군사력의 획기적인 증강으로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이 북한에 더욱 불리해질 것이며, 2003년까지 경수로 1기가 완공되어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극히 적어 북한 핵사찰 및 전력 보상을 놓고 북미간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동시에, 2003년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가 만료되는 해라는 점 등을 제시했다. 그때 많은 참석자들은 “너무 지나친 추론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2002년 3월, 2003년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는 남북한 및 미국의 정책담당자에게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라고 불릴 만큼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 입안 및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당시 한 토론회에서, “1년 이내에 상당한 수준의 북미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2003년) 한반도에 1994년 북한 핵위기와 같은 안보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해 정부의 위기의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토머스 슈워츠 주한미군 사령관도 2003년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그 근거로 2002년 12월 한국의 대선, 2003년까지 완공 예정인 경수로 공사 지연,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기간의 완료를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열거하면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제네바합의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라며 한반도 상황이 1994년 수준의 전쟁위기로 회귀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북한의 위기의식도 커져갔다.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발언 및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미국의 전쟁책동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2002년 당시 남·북·미 모두에서 핵심관료들의 위기의식은 커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새삼스럽게 옛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위기 예측 및 예방적 대응에 대한 우리의 역량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이다. 물론 많은 외신기자들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 문제만큼이나 앞날을 가늠하기 힘든 문제도 없다. 근본적으로 한반도는 남북한과 주변 4강의 이해관계가 중첩되어 있고, 민주화 이후 국내정치도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도박’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우리의 나태함이나 무능을 변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는 비단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던 노무현정부는 햇볕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계승조차도 못하고 있다. 특히 출범 이후 드러나고 있는 ‘전략의 부재’는 미국의 오만함과 북한의 고집스러움 못지않게 불안감의 요인이 되고 있다. 국회 역시 ‘전쟁과 평화’라는 근본적인 갈림길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2004년 총선에 정신이 팔려 ‘식물국회’임을 자처하고 있다. 시민사회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한쪽에서는 ‘반전 반미’를, 다른 한쪽에서는 ‘반핵 반김’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오늘날 위기해소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야 할 국민의 힘과 지혜를 유실시키고 있다.

정부·국회·시민사회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중국 고사가 떠오른다. 이 고사는 진시황이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胡,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진(秦)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자식인 호해(胡亥)였다는 의미로, 외부의 위협에만 주목하다가 내부의 문제를 소홀히하면 망국(亡國)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확고한 무게중심을 세우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노무현정부, 국가적·민족적 위기보다 총선을 겨냥한 신당 논의에 정신이 팔린 민주당과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한나라당,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핵문제를 반북·반DJ·반노무현을 확산시키는 데 악용하고 있는 보수언론, 그리고 ‘반전=반미’ ‘반핵=반북’이라는 이상한 등식을 바탕으로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시민사회의 모습 등은 우리가 과연 이 난국을 헤쳐갈 지혜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케 한다. 이 사이에서 북한의 핵무장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위기도 바라지 않는 다수 국민들의 여론이 점차 분노와 짜증으로 뒤범벅이 되고 있다. 이는 문제해결을 위한 소중한 힘과 지혜가 우리 사회의 미성숙으로 인해 유실되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위기 악화의 원인을 북한이나 미국 등 ‘외부’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남한 내부에도 있음에 주목해 이를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미국의 대선과 한반도 전쟁위기

 

오늘날 위기의 심각성은 전쟁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설마 전쟁이야 나겠어?”라며 애써 불안감을 씻어보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전쟁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 없을뿐더러, 그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다. 가령 내년 미국 대선 이전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10% 정도 된다면, 이를 낮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어느 길을 지나다가 벼락맞을 확률이 10%라면 그 길을 걸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 확률을 로또복권 1등 당첨확률과 비교해보면, 로또복권에 당첨돼 ‘인생 역전’이 될 확률보다 한반도가 잿더미로 변할 확률이 약 80만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10분의 1에 대한 불안감보다 8백만분의 1에 대한 희망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면, 이는 결코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 필요 이상으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듯 우리는 분명 전쟁가능성에 극히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함수관계는 대단히 복잡하고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 북한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본질적인 의도 및 이에 대한 북한의 해석과 핵무장 여부를 포함한 대응전략,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다자회담의 성패, 미국의 대북한 제재 및 봉쇄의 수위와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그리고 이에 따른 우발적 충돌가능성, 미국의 대북한 폭격 추진시 남한과 중국 등 관련국가들의 입장, 대선을 앞둔 부시행정부의 득실관계 판단, 그리고 대북한 전쟁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군사적 자신감 및 전쟁 강행시 세계전략 차원의 이해관계, 미국의 이라크 점령계획의 차질 등 여러가지 변수들이 어떻게 화학적인 결합을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전쟁 여부는 결정될 것이다. 물론 이 변수들 가운데에는 전쟁가능성을 낮추는 것도, 반대로 높이는 것도 존재한다.

전쟁가능성을 낮추는 것으로는, 북한이 여전히 ‘핵문제와 체제안전보장 문제를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협상’을 원하고 있고, 북한의 핵무장도 한반도에서의 전쟁도 원하지 않는 남한·중국 등의 활발한 다자회담 성사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북폭 추진시 예상되는 남한과 중국의 반발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 이어 또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대선을 앞둔 부시행정부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될 조짐을 보이는 점 등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전쟁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는, 북·미 양자 사이의 입장차이 및 상호간의 불신이 여전히 크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북한은 핵억제력 확보에, 미국은 대북한 제재 및 봉쇄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체제가 막강해 부시행정부가 대북한 군사행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다.

특히 핵심적인 변수가 될 2004년 11월 미국 대선과 부시행정부의 북폭 단행 사이에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 당연히 부시행정부로서는 북핵문제를 대선에서의 득실관계로 접근할 것이다. 북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그냥 방치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시행정부는 대선 전까지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면서 ‘현상유지’ 차원에서 북핵문제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즉,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북한위협론’을 빌미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및 한미·미일 군사동맹 강화 등 정치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서 최종적인 결단은 대선 이후로 미루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가 현상유지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2004년 미국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막연히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미래를 운명에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북한은 가능한한 빨리 담판을 지으려고 할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로 인해 체제의 내구성이 떨어지는 점 역시 북한으로 하여금 장기전을 선택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부시행정부가 “시간은 우리편이다”며 핵문제를 장기화하고 있는 이유를 체제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북한이 미국의 장기화 전술에 맞장구를 쳐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가능한한 빨리 대타협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미국에 대한 불신감이 어느 때보다 강한 북한은 전쟁이 벌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면서 미국과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북한이 줄곧 미국에 협상을 촉구하면서도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식으로 미국의 위협행위에는 철저하게 맞서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02년 10월 핵문제가 불거진 직후 미국이 중유 제공을 중단하자 북한은 영변에서 활동하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했고, 미국이 대북한 제재의사를 밝히자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또한 미국이 유엔을 통한 제재의사를 밝히자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며 자위적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잇따라 경고했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핵억제력 확보를 공공연히 거론하면서 핵무기 보유설과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완료를 미국측에 흘리기도 했다. 대화에는 대화로, 제재에는 보복으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맞서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강온 양면전략은 부시행정부가 내심 기대하는 방향, 즉 내년 대선까지 본격적인 협상도 전쟁도 벌이지 않는 현상유지 상태로 한반도 정세가 흐르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계속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고수하면서 ‘시간 끌기’ 전략으로 일관할 경우, 북한은 여러차례 공언한 것처럼 핵억제력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는 부시행정부에게 ‘최후통첩’과도 같은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설을 흘리는 것은 미국에 빨리 협상에 나서든지, 아니면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든지, 이것도 아니면 전쟁을 선택하라는 강력한 메씨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 역시 비공개로 자신의 핵무기 보유설을 미국에 알리는 것을 넘어, 핵실험을 단행하거나 공개적으로 핵보유를 선언하는 등의 파격적인 행동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이 임박한 싯점만 아니라면,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 대해 겉으로는 강력히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한시적인’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이를 군비증강의 명분으로 삼는 동시에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는 외교전에 나설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은 재선 가도에 스스로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에 의해 대표적인 ‘깡패국가’(rogue state)로 묘사되어온 북한이,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인 핵무기 비확산체제에 균열을 낸다는 것은 미국 대외정책에서 최대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더구나 9·11 테러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최대목표로 내세우면서 대량살상무기가 있지도 않은 이라크를 침공했던 부시행정부가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한다면 대선을 앞두고 치명타를 입는 것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2005년에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있는 싯점에서, NPT 회원국이었던 북한이 이 조약을 탈퇴해 핵무장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를 만든다면, NPT 체제는 그야말로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1993~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북폭까지 불사하며 북한의 핵무장을 막으려 했던 배경 가운데 1995년도에 NPT 연장회의가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약하자면, 대선을 앞둔 부시행정부는 자신의 희망과 상관없이 협상이든 무력사용이든, 아니면 단시일 내에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는 고강도의 제재 및 봉쇄든,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시행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좌우할 핵심변수는 두말할 나위 없이 대선에서의 득실관계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록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배제할 수 없는 씨나리오는, 변수들 사이의 최악의 조합과 이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군사주의적 선택이다. 변수의 최악의 조합이란 최근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다자회담이 불발되거나 양측의 입장차이만 확인하고는 성과없이 끝날 경우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은 ‘외교의 실패’ 운운하면서 무력증강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북한 제재 및 봉쇄를 추진할 것이고, ‘최후의 수단’인 무력사용 준비도 갖춰나갈 것이다. 이에 맞서 북한 역시 공언한 것처럼 전쟁 억제력 확보 차원에서 핵무기와 미사일 전력을 강화시켜나갈 것이고, 이에 따라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특히 이라크 점령 이후에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미군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문제가 내년도 미국 대선에서 핵심적인 변수가 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자 명예로운 탈출구를 북한에서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 필승 코리아’와 ‘오 피스 코리아’

 

물론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숙명론처럼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전쟁위기에 대한 실감은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창출하기 위한 조건이지, 체념이나 탈출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평화를 위한 국민적·민족적 ‘집합의지’(collective will)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정파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갈등이 비집고 들어오는 현실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전쟁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출발점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라는 격언을 되새기는 것에 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은 0%도 100%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전쟁가능성을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이를 극대화하는 정치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외교력은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동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실행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반전 반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의지’(general will)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개혁·진보세력은 반전 반미를, 극우·보수세력은 반핵 반김을 내걸고 운동하는 방식으로서는 한반도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국민의 힘’ 창출은 고사하고 정부로 하여금 제 역할을 하게 만들기도 어렵다.

나는 최근 우리 사회의 시위장면을 떠올려본다. 어느날에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성조기를 불태우면서 “양키 고 홈”을 외치고, 또 다른 날에는 인공기를 불태우면서 “김정일은 자폭하라”는 구호가 시청 앞 광장을 뒤덮을 때 느껴지는 ‘시민의 힘’은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물론 사안의 복잡성과 모호성 때문에, 사람에 따라 한반도 위기의 책임소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진영이 서로를 향해 ‘친미사대주의자’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여론을 갈라놓는 것은 정작 위기해소에 도움이 안된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도 미국의 북한 폭격이나 고사작전도 원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의 의사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도대체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제사회에 명확한 메씨지를 전달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수백 수천만명의 함성이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작년 월드컵 대회. 외국 평화운동가 몇명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의 평화운동이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Oh, Peace Korea’를 외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오 필승 코리아’를 ‘오 피스 코리아’로 잘못 알아들은 그들에게 한국인들이 외친 것은 ‘Oh Victory Korea’라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동시에 2003~2004년 전쟁위기를 걱정해온 나로서는, ‘만약 한반도 전쟁위기가 다가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 피스 코리아를 외치게 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월드컵 1년 후 여기저기에서 ‘오 피스 코리아’라는 함성이 들려오고 있지만, 1년 전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오 필승 코리아’와 비교해보면 초라한 수준이다. 아직 꿈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과 같이 민족공동체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기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공통점을 찾아내 ‘반전반핵 평화운동’의 국민적 결집을 시도하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평화운동, 이제부터 시작이다

 

개인적으로 평화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1996년 4월 군복무를 마치고 건강상의 문제로 나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기도 힘들었을 때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접하게 되었다. 우연히 밤늦게 텔레비전에서 압록강 가에서 따스한 봄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숨을 거두던 한 모자(母子)의 모습을 본 것은 나에게 가위눌림 이상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먹자노(먹고 자고 놀고) 대학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몇몇 사람들과 함께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한반도 평화 이전에 가정의 평화부터 돌볼 생각이나 하라”는 여동생의 핀잔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졸업을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여기셨던 부모님께 너무나도 죄송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안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거친 노동이 밴 부모님의 앓는 소리는 나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강단있었던 초심이 요즘 많이 퇴색되었음을 느낀다. 거대한 제국 미국에 맞선다는 것도, 무모할 정도로 경직된 태도로 미국에 맞서고 있는 북한을 설득한다는 것도, 대북문제에 있어서 ‘제2의 김대중’이 될 것 같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변신과 안일함을 비판한다는 것도, 그래서 총체적인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 민족공동체를 되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의지도 머릿속에서 맴돌 뿐, 가슴 한구석에서는 공허함과 무력감으로 변질되곤 한다. 하여 요즘만큼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힐 글을 쓰는 것만큼 고역도 없다. 그저 그동안 머릿속 한켠에 저장해놓은 파일들을 불러내서 재생 버튼을 누르는 관성만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이제 타자(他者)를 향해 빼어든 비판의 칼을 잠시 거두고 회고와 반성, 그리고 전망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아마 이 글이 『창작과비평』을 통해 소개될 때, 나는 리스본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유람선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평화운동단체인 ‘피스보트’의 도움으로 나 자신과 대면할 소중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의 기회를 우리의 운동진영과 시민사회와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밖’을 상대로 운동할 때만큼이나 치열하게 ‘안’을 향해 운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9·11 테러 사건과 미국의 잇따른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이라는 세계적 이슈를 거치면서, 그리고 부시행정부의 대북한 강경책 및 여중생 사망사건 등 한반도 차원의 이슈를 접하면서 한반도 평화운동은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2002년 12월, 전국 각지의 밤거리를 수놓은 촛불의 힘은 2003년 위기설을 기우로 만들 수 있는 시민의 힘을 잉태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한반도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촛불의 힘은 퇴색되기 시작했고, 2002년 6월과 12월 한국의 힘을 상징했던 시청 앞 광장은, 친미와 반미 시위가 번갈아 열리면서 어느새 갈등과 반목과 분열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체념하자는 것이 아니다. 낙담하자는 것도 아니다. 반성하고 진단하면서 처방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사실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부시행정부의 최근 행태는 평화운동의 부활과 발전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평화운동은 죽었다”고 현실을 한탄하던 서구의 활동가들은 1960년대 반전운동과 80년대 반핵운동을 주도했던 옛 동료들을 모으고 젊은이들을 독려하면서 다시 운동화끈을 묶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영 합동군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을 때, 『뉴욕타임즈』도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라는 제국에 맞설 또하나의 슈퍼파워의 등장을 알리는 반전평화운동을 조직해냈다. 이제 막 평화운동이 싹트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수백개의 단체들이 함께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외치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힘없고 공허하게 들릴 수 있는 반전평화의 메씨지를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발걸음은 이제 막 내딛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운동은 죽었다”는 한탄을 거대한 슈퍼파워로 부활시킨 서구의 평화운동을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들과 연대하면서 반전·반핵·평화실현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싸우는 ‘세계의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반전과 반핵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한반도의 우리’로부터 나와야 한다. “평화운동,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겸손하지만 당찬 의지를 되새기며 가위눌린 한반도를 깨워야 할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