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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범신 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 『더러운 책상』 등 다수, 소설집 『흰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있음. www.wacho.net
항아리야 항아리야
별똥별 3
1
늙은 여류작가–오늘날의 여성작가들은 여류라는 말에 짜증을 좀 내겠지만–용화사까지 이어진 굴암산 에움길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나는 들고 있던 군용 쌍안경의 거리촛점을 재빨리 맞추었다. 쌍안경도 있네요. 봄에, 집안에 들어와서도 한참이나 앉지 않고 거실을 둘러보던 늙은 여류작가가 맨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내 집 뒤란에서부터 벋쳐올라간 북쪽 능선과 단무지 공장 뒤란에서부터 벋쳐올라간 남쪽 능선이 미묘한 삼각구도로 교접하는 지점이 먼저 파인더 안에 잡혀들었다. 내 집 뜰에서 볼 때 굴암산의 음부쯤 되는 곳이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이미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해는 완전히 져서 굴암산 서녘 하늘의 놀 속엔 어느덧 저녁어스름이 까뭇까뭇 끼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놀빛의 마지막 잔영이 늙은 여류작가의 양어깨와 머리에 후광으로 얹혀 있었다. 육이오 때 저런 쌍안경을 메고 있는 미군들을 자주 봤어요. 만약 그날, 봄에, 그 말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껏 여류작가의 나이를 겨우 마흔살이나 갓 넘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늙은 여류작가는 얼굴빛이 수은처럼 희고 입술과 광대뼈는 툭 튀어나왔으며 병적으로 마른데다가 도수 높은 뿔테안경을 썼다. 선병질적인 아주 못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주름살은 거의 없어 처음부터 나이는 요령부득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회칠한 가면 같은 얼굴. 쌍안경의 거리촛점을 완벽하게 맞추었을 때, 늙은 여류작가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형 물탱크 옆을 지나오고 있었다. 이를테면 굴암산의 클리토리스를 여류작가가 천천히 걷지도 않는 것처럼, 밟고 지나치는 중이라고 나는 느꼈다. 암회색 바바리에 맞춰 암회색 모자를 쓴 차림이었으나 바바리코트와 모자는 색깔만 같을 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옆은 깃털로 장식하고 앞챙은 짧은 그 모자는 빅토리아 왕조의 백작부인이 말 탈 때나 썼음직한 영국산인데 봄에, 내가 여류작가에게 준 것이었다. 아주 우아하게 생긴 것이 여성용인가봐요……라고, 거실 벽에 걸린 모자를 쓰다듬으면서 늙은 여류작가는 말했고, 좋아 보이면 가지세요…… 나는 익살스런 말투로 툭 내뱉었다. 오래 전 혜인과 영국여행을 할 때 에딘버러에서 혜인에게 선물했던 모자였다. 예전 애인에게 선물했던 것인데요, 청첩장을 갖고 와선 그 모자를 놓고 갔지 뭐예요……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여류작가가 그 모자를 쓴 걸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혹시 내가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전광석화, 잠깐 생각했다.
놀이 암갈색으로 바뀌는 이런 시각에 여류작가가 걸어내려오고 있는 곳에서 창 안쪽의 내 모습이 보일 리는 만무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에움길을 다 돌아빠져 머리가 잘린 듯 평면 슬래브로 마감한 고시원 옆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말이 고시원이지 고시생은 없고 근처의 골프장 캐디들 몇이 들어 있다는 그 건물 아래쪽엔 키큰 소나무로 싸인 목조주택 한채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시근벌떡 솟아 있었다. 혼자 사는 변호사가 지난여름에야 입주한 주택인데 마흔도 채 안된 변호사는 비대한데다가 머리가 훌렁 벗겨져 쉰살은 돼 보였다. 늙은 여류작가가 변호사의 나이라고 하고, 변호사가 늙은 여류작가의 나이라면, 오히려 딱 맞을 것이었다. 십년 전에 썼다는 늙은 여류작가의 마지막 소설책 속에도 나이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육이오 때 본 미군에의 기억을 아직껏 갖고 있다면 늙은 여류작가는 최소한 오십대 중반은 됐을 터였다.
목조주택 앞에서 늙은 여류작가는 잠깐 멈춰섰다.
새 몇마리가 목조주택을 에워싼 키큰 소나무에서 훌쩍 솟구쳐오르더니 곧 단무지 공장 지붕 너머의 골프장 아웃코스 나인홀 페어웨이 쪽으로 날아갔다. 삐이요 삐이요, 하고 울며 파도타기로 날아가는 게 직박구리가 틀림없었다. 내 집 거실에서 정남향에 자리잡은 나인홀 페어웨이엔 벌써 땅거미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난데없이, 선 채로 모자를 벗었다. 직박구리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쌍안경 파인더에 늙은 여류작가가 다시 담겼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한발 뒷걸음질쳐 물러났다.
모자를 벗은 늙은 여류작가가 나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기 때문이었다.
파인더를 통해서지만, 한순간 늙은 여류작가와 내 시선이 딱 맞닥뜨린 느낌이 들었다. 물론 늙은 여류작가와 나 사이는 이백여 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가 있었고, 놀빛이 거의 다 스러져 어둠이 속수무책 먹물로 번져나가는 중이었고, 여류작가는 길에, 나는 불 안 켠 내 집 창 안쪽 거실에 있었다. 착색유리여서 낮에도 밖에선 창 안쪽이 보이지 않으니 늙은 여류작가의 눈에 내가 보인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늙은 여류작가는 나를 보았다……라고 나는 느꼈다. 무엇보다도 여류작가가 늙은 여류작가……이기 때문에 그랬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늘 궁금했어요……라고, 봄에, 내가 말했을 때, 우물 밑을 볼 수 있는 사람이지요…… 여류작가는 대답했다. 내 인식체계 속으로 파죽지세, 늙은……이라는 말이 날아들어온 건 그 순간이었다. 굵은 뿔테안경이 번쩍하고 날아들어오는 것 같았다.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굵은 뿔테안경만으로도 여류작가는 충분히 늙은 여류작가……가 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뿔테안경을 고향집 우물에 빠뜨린 단편적인 기억이 수포가 솟아오르듯 솟아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를테면 채 서른살도 되지 않아 어떤 날 핫팬츠에 구찌나 에스까다 썬글라스를 끼고 홍대 앞 까페 골목을 활보하는 여류작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여류작가는, 암튼, 늙은 여류작가……라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내가 굳이 여성작가들이 언짢아할지 모르는 여류작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류라는 말은 지금보다 더 남성중심의 사회였던 흘러간 연대의 불건강한 말이지만 늙은……이라는 수식 뒤엔 어쨌든 여류가 붙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 것이었다. 깊은 우물 밑을 바라보는 뿔테안경 너머, 수많은 늙은 여류작가의 눈들 때문에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가위에 눌리곤 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곧 그 자리를 떠났고 평소보다 속보로 걸었다.
어스름이 여류작가의 하반신에 잔뜩 엉겨붙어 있어 늙은 여류작가는 상반신만 둥 떠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길은 개천 따라 흘러내려왔다. 늙은 여류작가는 개천을 따라 흐르는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조팝나무 사이로 유연한 장애물경기 선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직선거리 이백여 미터도 되지 않는 가을걷이 끝난 골답을 사이에 두고 현대적 기하학 도형 같은 모던한 두 채의 쌍둥이 양옥이 내 집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니라, 피차 남향집이므로, 내 집은 쌍둥이 양옥을 보고 있으나 쌍둥이 양옥의 뒤통수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친구끼리 같은 설계도면을 가지고 지었다는 쌍둥이 양옥의 왼쪽 집은 영문학 교수 부부가 별장처럼 사용했고, 내 집에서 볼 때 오른쪽 집은 바로 늙은 여류작가가 혼자 상주했다. 단무지 공장은 여류작가의 양옥보다 더 남쪽에 있었고, 마을은 늙은 여류작가의 집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쪽 편을 턱 가로막고 서 있는 굴암산 능선이 용화사 등뒤에서 남북으로 갈려나가 삼태기 같은 아늑한 품을 만들어놓았는데, 나의 집만이 북편 능선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거실에 앉아 있어도 삼태기 품안의 모든 집들이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영문학 여교수와 늙은 여류작가의 집은 골답 너머 정남쪽, 바로 코앞인 셈이었다. 나는 쌍안경을 내려놓고 창 곁 의자에 앉아서 늙은 여류작가가 영문학 여교수 집 앞을 지나 개천 위에 걸린 작은 다리를 돌아들어 자신의 집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는 걸, 보는 듯 세세히 상상했다. 폭 좁은 개천 위의 다리로 들어설 때 늙은 여류작가는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현관열쇠를 꺼내들 것이었다. 대형 항아리를 좌우에 거느린 현관문은 날렵한 쇠문이다. 집을 짓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키큰 소나무와 산벚나무 그늘과 수집해서 줄지어 세워놓은 항아리들 사이를 지나 늙은 여류작가는, 쇠문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을 터였다.
우물 밑을 볼 수 있는 사람이지요.
나는 여류작가의 목소리를 뚜렷이 들었다.
깊고 어두운 우물 밑을 보고 사니 열쇠구멍을 못 찾아 더듬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었다. 하나, 둘…… 나는 소리내어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아래층은 부엌과 거실로 꾸며져 있으나 식사 때 이외엔 거의 사용하지 않으므로 늙은 여류작가는 곧장 이층으로 올라가 바바리코트를 벗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열을 세는 것과 동시에 이층의 불이 켜지면 내가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먹으러 읍내로 나갈 작정이었다. 내가 정면으로 보고 있는 곳은 늙은 여류작가의 집에선 북쪽이기 때문에 창이 유난히 높고 작았다. 커튼을 닫지 않으면 늙은 여류작가가 켤, 이층 서재의 불빛은 단번에 내 눈까지 뛰어들어올 게 확실했다. 일곱, 여덟, 아홉, 열……에서 과연 이층 창의 안광 같은 불빛이 내 눈을 찔렀다. 나는 만족하여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날로 요술집 같은 새 여관들이 들어서고 있는 읍내 천변 여관촌 어귀에 내가 단골로 드나드는 장어구이집이 있었다.
나는 고소한 장어의 육질을 혀끝으로 느끼곤 꼴칵 생침을 삼켰다.
2
반 고흐는 썼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미치광이 반 고흐는 또한 덧붙였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라고. 반 고흐의 그 말을 해준 것은 늙은 여류작가였다. 늙은 여류작가는 반 고흐에 대해 명색이 화가라고 불리는 나보다 훨씬 더 상세히 알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장어구이를 목구멍까지 찰 만큼 먹고, 끈적한 포만감 때문에 갑자기, 혹시 부드러운 명주천 살 데가 없을까, 용인천변의 오일장을 어슬렁거리다가 늙은 여류작가와 딱 맞닥뜨린 날이었다. 여류작가가 앞서 들어간 지하 까페의 한쪽 벽면에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의 복사화 한점이 먼지 뒤집어쓴 채 걸려 있었다. 나는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다 좋아해요……라고, 늙은 여류작가는 말했고, 둥글잖아요……라고, 이내 덧붙였다.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라기 중 어떤 해바라기는 꽃잎이 달려 있고 어떤 해바라기는 꽃잎이 떨어져 씨만 촘촘히 박혀 있었다. 반 고흐가 해바라기를 주로 그린 것은 아를르에서 고갱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고갱을 위하여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다고, 반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걸 나는 기억해냈다.
둥글잖아요……
늙은 여류작가의 그 말이 내 안에서 둥, 울렸다.
이쪽 편의 동의를 구하겠다는 것인지, 스스로 자기에게 묻는 것인지 애매했지만,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라고, 둥글잖아요……라는 말이 그후로도 계속 나의 텅 빈 중심, 텅 빈 어떤 대롱 속에, 계속 꼬리를 물고 울려나가는 걸 나는 느꼈다.
내가 늙은 여류작가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늙은 여류작가와 단둘이 차를 마신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더러 영문학 교수 부부와 섞여 내 집이나 그 집 뜰에서 차를 마신 일은 있었다. 또 늙은 여류작가가 이사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밤, 한번은 해열진통제를 그 집에 가져다준 적도 있기는 있었다. 저, 저기요……라고, 숨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머,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요, 혹시, 혹시, 게보린이나 펜잘 같은 게 있나 해서요……라고, 늙은 여류작가가 전화기 저 너머에서 말했을 때, 거실 벽시계는 한시 사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반적 규범으로 보면, 단지 머리가 아파서 혼자 사는 여자가 혼자 사는 남자에게 한밤중 전화를 걸어 해열진통제를 찾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비록 속이 텅 빈, 그림을 완성해본 것이 벌써 몇년 전일 뿐인 화가 아닌 화가일지라도, 늙은 여류작가가 언젠가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한 바, 인생의 본문을 다 써버린 마흔한살이나 되었으니, 삶의 모든 시간이 규범대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늙은 여류작가는 마지막 책을 출간한 이후, 아직껏 완성되지 않은 ‘필생의 야심작’을 쓰고 있었다. 쓰고 있다……라고 여류작가는 현재형으로 말했다.
개구리들이 악쓰고 울어대는 봄밤이었다.
맨 처음 이 골짜기로 들어왔을 때, 너무도 적막해서였을까, 한동안 나 또한 두통에 시달렸던 일을 나는 상기했다. 늙은 여류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게보린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의 천박한 상상을 깨고, 늙은 여류작가는, 언제나 그랬듯이, 셔츠의 단추를 맨 위까지 단단히 끼운 차림으로, 이편이 행여 무슨 짓이라도 할까 경계하는 빛이 역력한 포즈로, 겨우 한뼘쯤만 현관문을 열고 말없이 게보린을 받았다. 열도 있으신가요……라고, 내가 어색하게 말을 건넸을 때, 늙은 여류작가는 이미 현관문을 닫고 있었다. 딸그락 하고 현관자물쇠와 안전 보조키가 차례로 잠기는 소리가 사뭇 사납게 들렸다. 나는 고흐의 복사화,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잠시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밤의 일에 대해 감사의 인사는커녕 마치 아무 기억도 안 난다는 듯 여지껏 단 한마디도 해오지 않는 늙은 여류작가를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어느 편이냐 하면 늙은 여류작가는 항상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잠갔고, 허드렛말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차를 마실 때에도 소리내는 법이 없었다. 단단하고 반듯하니 예의범절에서도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신열에 들떠 그날 밤의 일은 모두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고흐의 복사화를 바라보는 늙은 여류작가의 표정에 그때 충만감이 떠올랐다. 둥글기로 치면 꽃잎이 달린 해바라기보다 꽃잎이 떨어지고 씨앗만 잔뜩 품고 있는 해바라기가 훨씬 더 둥글었다. 그것은 단순히 둥글다기보다 내면으로부터 아주 강력하게, 둥근 것들이 마구 밀려나오는 것 같았다.
수많은…… 아이를 배고 있어요. 저 해바라기.
그 말을 할 때 늙은 여류작가의 얼굴이 홀연히 둥글어졌다.
나는 막 가져온 커피를 마시다 말고 늙은 여류작가의 둥근 시선을 따라 고흐의 복사화를 또다시 노려보았다. 노란 배경과 노란 꽃병 때문에 열네 송이 해바라기는 보면 볼수록 팽창을 거듭하고 있었다. 수많은 태아들이 촘촘히 박힌 정면의 어떤 해바라기에선 내부 팽창에 따른 놀라운 빅뱅이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한번 폭발하면, 신생아들은 빛의 속도로 천지사방 날아갈 것이었다. 수백 수천의 해바라기 둥근 신생아들이 전 우주를 향해, 둥글게 둥글게, 날아가는 상상이 내 몸의 중심으로 사정없이 틈입해왔다. 내가 이제껏 좋아했던 반 고흐의 그림은 야릇하게도, 일찍이 스케치한 적은 있었지만, 죽기 두세 달 전에 비로소 완성했다고 알려진 유화 「울고 있는 노인」이었다. 수의 같은 푸르스름한 작업복을 입은 머리 빠진 대머리 노인이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아 두 주먹으로 얼굴 가린 채 울고 있는 그림으로서, 그 「울고 있는 노인」은, 중심이 여전히 텅 비어 있을 말년의 나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시간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그림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빅뱅을 향해 둥글게 부풀어오르고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서, 나는 한순간 대머리 노인에겐 아이를 밸 아기보가 평생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의 천적이 바로 아기보라는 것을, 늙은 여류작가가 천연스런 표정으로 내게 일러준 셈이었다. 나는 해바라기를 보고, 늙은 여류작가를 보았다. 늙은 여류작가의 얼굴에선 어느덧 좀전에 떠올랐던, 둥근 충만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목까지 단추를 단단히 여며 채운 하얀 셔츠 위에 검은 정장을 갖춰입은 늙은 여류작가는 이미 고흐의 해바라기로부터 빠져나와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었다. 함부로 셔츠의 단추를 열고 사는 헐렁한 나의 스타일과 너무도 다른 곳에 늙은 여류작가는 앉아 있었다.
편하게…… 헐렁하게…… 옷 입은 건, 한번도 못 봤어요.
내 입에서 생각하지 않은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과연 늙은 여류작가는 단번에 천박한 그 무엇을 본 듯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것처럼, 늙은 여류작가가 도수 높은 뿔테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명주천을 살까 했거든요. 명주천으로 목을 매달면…… 혹시…… 부드러워서, 혹시 덜 아프지 않을까요……라고, 나는 이내 당황하여 딴소리를 했다. 장어구이를 목구멍에 찰 때까지 먹으면서, 끈적한 포만감이 오면 죽고 싶어진다는 걸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살해욕구는 밑도끝도없이 찾아오고 밑도끝도없이 사라지니 물론 아무런 실천적 힘도 없었다. 용인 시내에서 질 좋은 명주천을 구하는 일도 불가능할 터였다. 늙은 여류작가는 내가 썰렁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심하다는 듯 상반신을 살짝 펴들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때, 나는 보았다. 병적으로 말랐으니 특별히 포만한 둥근 것들을 늙은 여류작가가 갖고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가보다. 내 가슴에서 둥 하고 북소리가 났다. 숨이, 늙은 여류작가의 숨구멍을 흘러내려가 앙가슴을 고요히 울리고 강하할 때, 늙은 여류작가의 젖가슴이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둥글다는 걸 선연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늙은 여류작가의 젖가슴엔 해바라기 씨앗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깡마른 몸집과 달리, 뜻밖에, 늙은 여류작가의 젖가슴이 왕릉처럼 크다는 걸 나는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전 우주를 향해 둥글게 둥글게, 수많은 신생아의 씨앗들을 날릴, 빅뱅의 순간을 그것은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탁자 밑에 웅크리고 있던 내 자지가 속수무책, 포신처럼 일어났다.
천변여관에서 불러주는 젊은 처녀들이 정성껏 빨아줄 때조차 한사코 누워 있던 놈이었다. 내가 쌍안경을 끄집어내 잘 닦은 것은 그날 밤이었다. 나는 작가가 아니므로, 늙은 여류작가와 달리, 깊고 어두운 우물 밑을 볼 수 없었다. 나의 그림들은 오래 전부터 중심이 텅 비어 있었고, 가을은 날로 깊어 산지사방 열매들이 익어 떨어졌다. 나는 밤마다 늙은 여류작가가 밥먹고 똥싸고 잠자는, 손바닥만한 이층 서재 창을 쌍안경으로 바라보았다. 창은 너무 높고 작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불이 켜져 있을 때, 그 작은 창은 내가 우주로 들어가는 문 같았고, 그 문을 통과해 실제로 먼 별들로 둥글게 둥글게, 날아가는 짜릿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나의 자지 끝에서 날아간 씨앗들은 그 환한 창문을 통과해 정말 둥글게 퍼졌으며,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라고, 우주로 날아간 씨앗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리치는 것도 나는 들었다.
깜찍한 내 신생아들이 내는 소리였다.
3
결혼한 혜인은 다시 내게 오지 않았다.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식은 하객이 천명 이상 될 만큼 규모가 컸고 화려했다. 요즘은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는 알바도 있대……라고 언젠가 혜인은 말한 일이 있었다. 이미 저명한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른 혜인에게도 하객들은 적지 않았겠지만 사고무친한 그녀로선 어쩌면 친척이나 친구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동원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웨딩드레스는 빠리에서 패션디자인스쿨을 다닐 때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십몇년의 시간에 박힌 낡은 사진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가 꺼지곤 했다. 상처투성이 어린시절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유달리 야망이 강했던 그녀가 유일하게 실수한 것이 있다면, 애를 낳고 싶어……라는 한마디 말이었다. 나는 물론 스무살이 되기 전부터 사랑을 믿지 않았다. 결혼이라니, 그것은 물론 사랑보다 끔찍했다. 어떻게 사랑과 결혼을 가리켜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 있나요……라고, 늙은 여류작가는 봄에, 내 집 거실에서, 연민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낮게 소리쳤다. 에딘버러에서 혜인에게 선물했던 영국산 모자가 늙은 여류작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가 쉰살을 훨씬 넘길 때까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혜인의 결혼식은 과연 끔찍했다. 하객들은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엄청난 식욕으로 뷔페음식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화장실과 축의금 접수대 앞엔 금 장신구를 주렁주렁 단 중년여자들이 줄지어 섰으며, 무엇보다도 유리구슬로 아름답게 치장된 웨딩드레스의 앞가슴이 당당한 원형으로 과도하게 솟아 있었다. 그사이 씰리콘 주머니라도 넣은 것일까. 혜인은 원래 젖가슴의 볼륨이 거의 없었고, 그 대신 대학 3학년 때부터, 유난히 크고 검은 젖꼭지를 갖고 있었다. 찰진 고약 같은 젖꼭지를 혀끝으로 건드려 일으키면서, 굉장해, 이놈이 글쎄, 내 성기 같아……라고 말하던 날들을 나는 생각했다. 나는 행여 혜인의 시선에 뜨일세라 맨 뒤에 숨듯 이 서서 유리구슬들을 앞쪽으로 밀어내고 있는 그녀의 가짜 젖가슴을 보고 있었다. 우물 밑을 볼 수 있는 늙은 여류작가가 그곳에 있었다면 혜인의 웨딩드레스 앞을 둥글게 밀어내고 있는 중심이 텅 빈 것도 들여다보았을 터이지만, 멍청한 하객들은 아무도 그 빈 중심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고통은 광기보다 강한 법이다……라고 반 고흐는 말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돼 있는 고흐의 「쓰러진 해바라기」는 바람에 날리는 유선형 잎들에 둘러싸여 둥글다기보다 중심이 쭈그러져 파인 것처럼 보였다. 나의 문제는 고통도 광기도 모른다는 사실에 있었고, 혜인의 문제는 가난을 고통으로, 야망을 천재적 광기로 혼동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다만 형태를 가졌을 뿐 아무런 둥근 것도 품지 못한 불모, 혹은 불임(不妊)……에서 결혼한 혜인과 결혼하지 않은 내가 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늙은 여류작가는, 고통은 광기보다 강한 법이다……라는 반 고흐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람에 대해 유난히 의심이 많은 나로선 드문 일이었다. 매일, 늙은 여류작가는 굴암산 용화사를 터닝 포인트 삼아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했고 나는 쌍안경을 통해 늙은 여류작가를 보았다. 재수가 좋은 날은 뜰의 한켠에 나와 앉은 늙은 여류작가를 볼 수도 있었다. 한번은 뜰에 앉아 있던 늙은 여류작가가 안경을 벗어든 채 방심한 포즈로 하품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방심한 순간은 본 적이 없었으므로, 온종일 마음이 들떠 지냈다. 나는 아침마다 하던 아령체조를 한밤에도 했다. 이뻐, 팔뚝이……라고 혜인은 노상 말하곤 했다. 오래 전부터 혜인은 새벽마다 수영을 했고, 나는 아침마다 아령체조를 하고 역기를 삼백번씩 들었다. 내 팔뚝과 대퇴부의 단단한 근육질은 내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이뻐, 팔뚝이……라고 말하면서, 혜인은 몇시간이고 나의 이쁜 팔뚝과 팔뚝 같은 전신을 빨아먹었다. 하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보고 싶은 것은 늙은 여류작가가 내밀하게 품고 있을 그 어떤, 둥근 것이었다. 둥글게 둥글게, 수만광년의 우주까지, 둥글게 둥글게, 날아가고 말 씨앗들을 품고 있는.
4
그룹전에 출품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여름 끝물이었다.
나는 집광력이 육안의 265배나 되는 굴절식 망원경을 갖고 있었다. 별이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물론 심심하기 때문이었다. 밥먹고 똥쌀 때, 그림을 그릴 때, 혜인의 찰진 고약 같은 젖꼭지, 혹은 용인 시내 여관촌에서 불러준 젖통 큰 여자들에게 잠자는 내 자지를 물릴 때, 장어구이를 꾸역꾸역 목구멍 속으로 밀어넣을 때, 심지어 잠의 터널 속에 빠져 있을 때조차 나는 심심했다. 굴암산 아래 나의 외딴집엔 혜인이 결혼한 이후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버려둔 뜰에선 잡초와 덩굴식물들이 내 키를 넘겨 자라 있었고, 추녀 밑엔 거미들이 진을 쳤으며 현관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은 함부로 썩어 주저앉았다. 만약 여름이 좀더 길다면 풀이 추녀보다 높이 자라 내 집은 잡초 우거진 거대한 봉분처럼 될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날 나는 망원경을 육백여만원이나 주고 샀다. 접안렌즈만 해도 31.7밀리미터 되는 망원경이었다. 한동안 나는 별에 빠져 지냈고 성도(星圖)를 참고해 88개의 별자리를 밤마다 찾아헤맸다. 거문고좌는 헤라클라스와 고니 사이 하늘 한가운데 있었고 카시오페이아, 큰곰좌는 북쪽에, 전갈, 켄타우루스, 바다염소, 물병좌, 활잡이, 안타레스, 이리는 남쪽 하늘에 있었다. 오르페우스의 정한이 깃든 거문고자리의 으뜸별 직녀성을 망원경으로 볼 때, 나는 그 백색 광채가 너무 눈부셔 여러번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망원경으로 보는 별들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희고 푸르고 노랗고 또 붉었다. 붉은색보다는 노란색, 노란색보다는 청백색의 별이 더 온도가 높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가 신생의 빅뱅을 일으켜 우주로 날아가 박힌다면 대략 6천도의 빛깔을 보여줄 터였다. 청백색 직녀성은 그러므로 26광년의 거리에서 섭씨 1만도가 넘는 온도로 불타고 있는 셈이었다. 차가운 청백색 광채와 섭씨 1만도의 경계에서, 다만 팔뚝이 이쁠…… 뿐인 내가 빛의 속도로 26년을 날아온 직녀성의 광채에 속절없이 젖고 있었다. 나는 울었다. 직녀성의 청백색 광채가 여섯 자도 되지 않는 내 몸을 품어준다고 느꼈던 것일까. 마침내, 나는 거실로 후닥닥 들어와 벌써 오래 전부터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캔버스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먼저 캔버스의 변방에 여러 각을 가진 도형들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떠오르는 도형들은, 내 관념 속에선 별이었다. 나는 삼각형의 도형들과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도형들을 그렸다. 캔버스의 중심에 자리잡게 될 하늘의 아크라이트 알파별은 점안하듯 맨 나중에 그릴 작정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본래부터 중심에 대한 아무런 신념도 없었으므로 나는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은하수는 날이 갈수록 기울었고, 캔버스의 중심은 계속 비어 있었다. 어쩌다 폭발 직전의 초신성을 보거나 혜성을 발견할 때도 있었으나 그 광채들은 재빨리 나의 내부를 통과해 지나가버렸으며, 그래서 캔버스 앞에 앉으면 처음 망원경으로 보았던 알파, 직녀성을 형상화해낼 수가 없었다. 직녀성의 청백색 광채가 준 감동은 너무도 찰나적인 것이었다.
나는 절망에 차서 깊은 밤 자주 늙은 여류작가의 뜰에까지 찾아갔다.
가을이 아주 깊어진 어느날 밤엔 늙은 여류작가의 이층 침실 외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잠든 적도 있었다. 고흐의 고통과 광기를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둥근 것을 품고 있는 늙은 여류작가라면, 알파별의 흰 광채가 품은 선과 색과 공간도 알고 있으리라, 나는 믿었다.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여류작가 목에 밧줄을 걸어서라도 내 망원경 앞으로 끌고 오고 싶었다. 망원경으로 황홀하게 퍼져나가는 성단의 스펙트럼을 보면서,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라고 말해주기를 나는 너무도 간절히 바랐다.
늙은 여류작가는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뜰엔 소나무와 벚나무가 있었다. 나는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늙은 여류작가의 너른 서재창과 침실창을 보았으나 커튼이 내 시선을 차단했다. 굴암산을 관상할 요량으로 만든 서창과 내 집을 향해 난 손바닥만한 북쪽 창은 들여다볼 방법도 없었다. 여류작가는 아직도,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필생의 야심작……을 쓰고 있을 터였다. 십년 전부터 쓰고 있고, 쓰고 있는, 쓰고 있을 뿐인. 직접 볼 수 없다면 하다 못해 쓰고 있는…… 소리라도 듣고 싶어 침실 외벽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먼 우주로부터 대성단이 지나는 것 같은 소리가 어쩌다 들렸지만 늙은 여류작가가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한번은 서창 밑에 엎어져 있는 커다란 항아리 위에 올라서려는데 옆집의 영문학 교수 부부가 뜰로 나오는 바람에 들킬 뻔한 적도 있었다. 나는 얼결에 황급히 항아리 곁에 앉았고, 그 순간, 항아리가 내 곁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항아리……라고, 나는 입속으로 발음해보았다.
별빛들은 항아리의 포만된 외피에서 미끄럼을 타고 흘러내렸다.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라고, 늙은 여류작가가 말하는 소리를 나는 뚜렷이 들었다. 늙은 여류작가의 마당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많았다. 어떤 것들은 나란히 있고 어떤 것들은 포개져 있었다. 담장도 없이 휑 열려 있는 대문자리의 양쪽에 놓인 대형 항아리를 가리키며 전라도 구례에서 직접 화물차에 싣고 왔다고 설명할 때, 여류작가는 환하게 미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항아리들을 나는 무심히 보아넘겼다. 교외의 어떤 까페나 음식점 마당에서도 용도 없이 포개져 놓인 항아리들을 여러번 보았으므로 공연히 옛것들을 앞세우는 요즘의 키치적 문화현상쯤 여기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항아리 곁에서, 둥글잖아요…… 늙은 여류작가의 한마디를 생생히 상기하고 나자 침침한 뜰의 이곳저곳에 놓인 항아리들이 이상한 광채를 내뿜고 내게 다가드는 걸 나는 느꼈다. 어둠속에서, 어두운 빛깔의 항아리들이 어둠에 묻혀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둠을 당당히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에 나는 당황했다. 항아리들의 중심은 텅 빈 속이 아니라 임산부처럼 배가 잔뜩 부풀어진 팽창 부위에 있었다. 어둠속이기 때문에 항아리들은 더욱 부풀었고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유없이, 부푼 항아리들로부터 뒷걸음질쳤다.
둥글잖아요……라고 늙은 여류작가가 말할 때 보았던 고흐의 「열네 송이 해바라기」와 달리, 항아리들은, 만삭의 터질 듯한 배로 내게 이상야릇한 공포감을 주었으며, 나를 위협했고, 나를 몰아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한밤중의 논두렁길을 달려 내 집으로 돌아왔다.
캔버스의 중심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나는 다음날 청계천으로 나가 인터넷을 통해 미리 수소문해둔 몰래카메라용의 초소형 카메라 장비를 구입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가끔 여러 날씩 집을 비웠으므로 찬스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백오십은 최소한 주셔야 합니다……라고 늙수그레한 중년남자가 말했다. 27만 화소에 이르는 직경 1밀리미터의 초소형 고화질 일제카메라였다. DVC-P332를 차의 뒷자리에 싣고 한강대교 남단을 지나 고속도로 어귀로 들어설 때, 비상경적을 울리며 앰뷸런스 한대가 압구정동 쪽으로 돌아들어가는 게 얼핏 보였다. 앰뷸런스가 진행하는 방향의 로데오 거리 어디쯤 욕망의 돛을 높이 세우고 자본주의 바다를 향해 파죽지세, 날로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는 혜인의 의상실이 있을 것이다. 그 남자는 일찍이 정관수술 했다니까 이 나이에 아이 낳을 일은 없을 거야……라고, 결혼 이야기를 처음 꺼내던 날 혜인이 한 말을 나는 상기했다. 상처한 지 십년 만에 재혼한 혜인의 남편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내 눈에 잠깐 동안, 내가 일으켜 세워주곤 했던, 검은 고약과 같은 부리부리한 혜인의 젖꼭지를 밤마다 일으켜 세우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 한 초로의 남자가 씰루엣으로 떠올랐다. 슬프고 참혹한 상상이었다. 세상에 대해 앙갚음해야 할 것이 아직 혜인에겐 많이 남아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혜인의 힘이었다. 야망을 좇아 평생 달려온 혜인의 항아리는 세계화의 수선스런 길목에서 더욱더 팽창하여 날로 배가 불러가고 있을 터였다. 그룹전 출품시한은 이미 지나갔다. 나는 빵 하고 자동차 클랙션을 괜히 눌렀다.
혜인의 둥근 것……은 항아리처럼 속이 텅 비어 있었다.
5
가을은 재빨리 스러졌다.
첫서리가 내린 날 정오에 나는 잎이 다 져버린 굴암산 숲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밝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굴 앞에서 동제(洞祭)를 지내고 했다는 말은 여러번 들은 적이 있었으나 문제의 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은 기필코 굴암산 중심에 있다는 굴을 찾아보자고 생각하고 나선 길이었다. 굴 앞에서 연기를 피우면 그 연기가 글쎄 몇십리 밖 남한산성 어느 구멍에서 솟아나온다는 말을 어른들한테 들은 적도 있지요……라고, 나와 동갑내기 마을 이장은 말했다. 좁은 구멍으로 한참 기어가면 수십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음직한 넓은 데가 나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육이오 때는 몇몇 사람들이 굴속으로 피신해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길은 산자락을 지나자마자 금방 끊어졌다.
길 없는 숲길엔 낙엽이 켜켜로 쌓여 있었고, 쌓인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낙엽들은 밟힐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경쾌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장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준 굴암산 중심부에 도달했으나 굴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년이 나하고 숨바꼭질을 오래할 셈이군…… 하고, 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하긴 작년만 해도 몇차례나 찾아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한 굴이었다. 아무나, 찾아오는 대로 제 몸 안의 굴을 스스로 열어주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 서쪽으로는 마을이, 동쪽으로는 인적없는 쇠락한 용화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처승인 용화사 주지는 고령으로 오랫동안 몸져누운 상태였는데, 주지의 아내이자 유일한 거주자인 초로의 보살이 대웅전 앞마당을 쓸고 있었다. 주지가 죽고 나면 아직껏 고운 티가 가시지 않은 보살 혼자서 절을 지키게 될 터였다. 가시덩굴이 유난히 많은 곳이었으므로, 장갑 착용은 물론 트레이닝복으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찍히고 긁힌 상처들이 생겼다. 어쩌면 천둥번개를 맞고 돌들이 우르르 무너져내려 굴의 입구가 아예 막혔는지도 몰랐다. 굴은 둥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땅속 몇십리를 둥글게 둥글게, 은밀하고도 매혹적으로 흘러가고 있을 둥근 길로 갑자기 곱게 성장(盛裝)한 젊은 어머니가 두리둥실, 신묘한 광채에 싸여 흘러오는 것 같은 환영을 일순간 나는 보았다. 아니, 젊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떤 고혹적 예감을 좇아 고개를 홱 산 아래로 돌렸을 때, 뜨락의 항아리들 사이에 나와 선 늙은 여류작가가 어머니 대신 나의 눈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늙은 여류작가는 이쪽 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공연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래서 나는 곧 덤불 사이로 몸을 낮추었다. 항아리들은 때마침 서쪽으로 한껏 기운 햇빛을 날카롭게 반사해내고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를 보는 건 대략 두 주일 만이었다.
동네 어귀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문학 여교수의 말에 따르면, 늙은 여류작가는 그동안 멀고 먼 타클라마칸 사막에 다녀왔을 것이었다. 갑자기 미치도록 사막이 보고 싶다면서, 황급히 떠났어요……라고 영문학 여교수는 말해주었다. 지도에서 찾아본 타클라마칸 사막은 파미르고원과 톈샨산맥(天山山脈) 쿤룬산맥(崑崙山脈)에 싸여 아시아 중앙부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유연하고 둥근 사구들의 씰루엣을 늙은 여류작가가 집을 비운 동안 여러번 꿈속에서 보았다. 그것들은 둥글었지만 불안했다. 남북 길이가 천리 동서 길이가 삼천리나 된다고 하지 않는가. 꿈속에서 거대한 타클라마칸의 사구들은 끝없이, 불가항력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는지도 몰라……라고, 한밤중 늙은 여류작가의 무덤속 같은 서재로 숨어들어가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늙은 여류작가가 열쇠를 어디에 숨기고 다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커튼을 열자 흘러드는 외등 불빛에 이층 서재가 서서히 제 그림자를 드러냈다.
이층은 서재와 침실로 나뉘어 있었다.
묵은 서책들과 몇몇 작은 항아리들과 오디오와 앉은뱅이책상 사이를 나는 어슬렁거리고 걸어다녔다. 그리고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인 액자 속의 사진을 나는 한참이나 외등 잔영에 비춰보았다. 부동자세로 딱딱하게 서 있는 한 젊은 군인과 한 자쯤 떨어진 곳에 역시 긴장한 듯 잔뜩 찡그리고 있는 쌍갈래 머리를 한 한 여고생이 서 있었는데, 늙은 여류작가였다. 젊은 군인이 여고생의 오빠인지 아니면 남자친구인지는 물론 알 수 없었다. 젊은 군인도 똑바로 앞을 보고 있었고 여고생인 늙은 여류작가도 똑바로 앞을 보고 있었다. 평행선은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완강해 보였다.
나는 또 늙은 여류작가의 침실에도 들어가보았다.
수도자의 침실처럼 정결했다. 키작은 화장대와 옷장과 희끄무레한 무명천으로 감싼 씽글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거실이든 침실이든 장식품이라 할 만한 것은 몇몇 항아리들뿐 거의 전무했고, 묵은 서책들과 최소한의 생활용품들도 단순한 설계도면처럼 흐트러진 거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언제나 단추를 목까지 채운, 백랍같이 창백한 늙은 여류작가의 모습이 그 어두운 무덤속에 찍혀 있는 걸 나는 오래오래 보았다. 늙은 여류작가의 흰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보기도 했는데, 아주 조용했고 아무런 냄새도 없었다. 나는 오디오의 스피커에 청계천에서 구입한 직경 1밀리미터의 초소형 고화질 카메라를 숨겨 달았다. 서재의 중앙부와 침실, 화장실문을 동시에 염탐해볼 수 있는 위치였다. 무선 씨스템이니 이젠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밖에서도 늙은 여류작가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해가 설핏 기울었다.
굴은 끝끝내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수십리의 땅속 깊은 어둠 사이로 흘러가고 있을 둥근, 길 없는 길과 달리, 내가 걸어내려오는 산길은 더욱 위태롭고 어두웠다. 다리는 무겁고 팔꿈치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뒤란의 숲으로부터 내 집 뜰로 내려설 때, 나는 아, 하고 가볍게 탄성을 내질렀다. 열흘 동안 내내 캄캄했던 늙은 여류작가의 창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반가워 콧날이 다 시큰해졌다. 이제 참으로 더욱 깊고 더욱 둥근 것을 밤마다 볼 수 있을 테니, 그까짓 굴암산의 굴이야 찾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14인치짜리 모니터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클라마칸이란 위구르어(語)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여류작가는, 늙은 여류작가이기 때문에, 타클라마칸의 흐르는 사구를 지나 다시 돌아왔다고 나는 생각했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나는 웃통을 벗은 채 대형거울 앞에 서서 다른 때보다 훨씬 오래 아령체조를 했다. 무선으로의 송수신 거리가 청계천 상인의 말과 달리 예상보다 짧았으므로 늙은 여류작가의 모습을 GCN-1014N에 담아내려면 늙은 여류작가와 우리집 사이에 놓인 골답의 반은 건너가야 할 터였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끝없이 흐르는 둥글고 둥근 사구 사이를 늙은 여류작가가 어떻게 얹혀 흐르는지, 어떻게 둥근 것들을 지나왔는지 낱낱이 보게 될 것이었다. 땀이 투두둑 떨어졌다. 이뻐, 팔뚝이…… 하면서, 만날 때마다 혜인이가 파먹던 상박근(上膊筋)과 가슴살이 산맥처럼 골을 만들고 부풀어오르는 걸 나는 거울 속에서 보았다. 쇄골과 갈비뼈는 있는 대로 날렵하게 솟았고 근육의 산맥들은 뼈들과 교묘하게 접합되어 아령 든 손의 동선에 따라 고혹적으로 움직였다.
상현달이 엷은 구름 위로 지나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 가방을 들고, 밤이 이슥해졌을 때, 마을과 맞붙은 비닐하우스 사잇길로 해서 야행성동물처럼 소리없이, 늙은 여류작가의 어둠침침한 뜰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은 물론 삼태기 같은 골 안이 모두 고요했다. 나는 소나무 그늘로 들어가 대형 항아리를 가리개 삼아 은신해 앉았다. 늙은 여류작가의 이층 창은 불빛이 어슴푸레 밝았고 오디오를 켜놨는지 가느다란 현악기의 소리가 울려나왔다. 잠옷에, 내가 옷장 속에서 보았던 치렁한 씰크 가운을 입고 있을까.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고 입안은 타는 듯했다. 끝없이 광활한 충적토 위를 윙윙거리며 날아가는 머나먼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폭풍이 보이는 것 같았다.
모니터를 켜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진실로 말하건대, 실망하진 않았다. 나는 성적 자극만을 찾아헤매는 상투적 색광도 아니었고 변태적 관음증 환자도 아니었다. 단지 탄탄한 젖가슴과 개미 같은 허리와 깊은 굴속 같은 음부의 성긴 털이나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에도 여자를 열명쯤 불러올 수 있었다. 많은 포르노 테이프도 갖고 있었고, 또 수많은 인터넷 섹스싸이트의 주소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미학적이라고 생각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잠옷차림이 아니라 평상시 입던 긴 치마와 남방셔츠, 카디건 차림이었다. 남방셔츠의 목까지 단추를 채웠음은 물론이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은 자세도 단아했다. 스탠드 불빛을 코끝에 받으면서, 늙은 여류작가는 이마를 살짝 숙인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잠옷 차림의 흐트러진 자세보다 나는 오히려 그런 늙은 여류작가의 모습이 좋았다. 뭔지 모르게 마음이 탁 놓이며, 두근거리던 가슴도 가라앉았다. 늙은 여류작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무 골똘하게 빠져 있어 한참 동안 모니터를 보고 있자 늙은 여류작가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착각이었다.
달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의 정물 같은 포즈는 계속됐고, 시간은 달보다 빨리 흘렀으며, 그리하여 계속 늙은 여류작가와 함께 책을 읽는 자세에 빠져 있을 것인지, 모니터를 끄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는지 결정해야 할 때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밤공기는 차디찼다.
하지만 모니터를 끄려다 말고 나는 멈칫했다.
스탠드 불빛을 반사시키며, 눈물인가, 늙은 여류작가의 볼을 타고 어떤 광채가 주르륵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놀랍게도 늙은 여류작가는 울고 있었다. 필생의 야심작……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해 우는 건지, 읽던 책의 내용에 감동받아 우는 건지, 아니면 두고 온 타클라마칸의 사구들이 그리워 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면도날로 살짝 긋고 가는 듯한 통증이 내 가슴에 지나갔다. 울고는 있었지만, 늙은 여류작가는 결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소리없이, 아주 정결하게 울었다. 그것은 우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임 같았다. 차라리 소리쳐 울었다면 내가 그처럼 마음 아프진 않았을 터였다.
가을이 굴암산 품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광대한 대지 위로 날아가는 모래폭풍들과 신생의 아침, 이곳저곳에 새로 만들어져 있을 풍만한 모래언덕들이 떠올랐다. 타클라마칸 둥근 모래의 집 속에 눕는다면 이승 바깥 사람인 듯, 늙은 여류작가의 저 눈물처럼 고요하고 편안해질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타클라마칸에서 방금 돌아온 늙은 여류작가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6
나는 마침내 보았다.
내가 그 희한하고 감동적인 삽화를 목격한 것은 달이 완전히 차올라 완형(完形)을 이룬 날이었다. 초저녁엔 구름이 제법 끼어 있던 날씨였는데 자정을 넘기고 나자 구름은 씻은 듯 없어지고 휘영청 달이 밝았다. 나는 새벽 두시가 넘을 때까지도 내 집 거실에 앉아서 무연히 월색에 젖은 빈 논과 쓸쓸하면서도 차 있는 굴암산 숲과 맞은편 집들을 바라보았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고 나서 불켜진 곳은 늙은 여류작가의 이층 서재와 침실뿐이었다. 밤이 늦었는데도 모니터를 싸들고 늙은 여류작가를 보러 가지 않은 것은 처음 기대하고 흥분했던 것에 비해 갑자기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론 그사이 나의 모니터를 통해 열심히, 아주 진지하게 늙은 여류작가를 만나고 보았다. 모니터를 들고 나갈 늦은 시각을 기다리기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늙은 여류작가는 여러 날이 지나도 변화가 전혀 없었다. 대개는 첫날 보았던 대로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썼으며, 아주 가끔 창밖을 내다보면서 음악을 들었고, 어쩌다간 장식용으로 놓인 빈 항아리들을 가만가만 닦았다.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는 것처럼 정결한 표정으로 항아리를 닦을 때의 여류작가는 아름다웠으나 책을 읽고 있을 때의 표정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조차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었던 적이 전혀 없었다. 사람도 아니네……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더이상 우는 일도 없었고, 밤참으로 뭘 먹는 일도 없었고, 코를 풀거나 하품을 한 일도 없었고, 남방셔츠의 단추 하나 편하게 열어놓은 걸 보여준 일도 없었다. 초소형 카메라가 전송해오는 그림은 항상 똑같았다. 곧 싫증을 느꼈고, 그래서 어떤 순간은 모니터를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음력으로 치면 시월 상달이었다.
구름이 다 비켜나자 달빛은 더욱 흐드러지게 흘렀고, 달빛에 젖은 풍경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모두 허물어져 모노크롬의 화면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늙은 여류작가의 침실과 내 침실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어 조청같이 서로 엉겨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모니터 가방을 들고 내가 논두렁길을 건너간 것은 그러므로 늙은 여류작가에 대한 흥미 때문이 아니라 둥근 것들을 더욱 둥글게 하고 모난 것들조차 모두 둥글게 하는 달의 미혹 때문이었다. 마을 어느 한켠에서 컹컹컹 하고 개 몇마리 짖다가 말았다. 영문학 교수의 별장은 며칠 새 비어 있었다. 나는 늘 그래왔듯이 소나무 그늘 속의 대형 항아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모니터에 떠오른 서재는 처음에 텅 비어 있었다.
원시인들은 달빛이 처녀막을 뚫고 들어와 애를 배게 한다고 믿었다……라는 문장이 밑도끝도없이 떠올랐다.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인지 기왕에 입력돼 있는 정보를 조합한 나의 문장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남성의 성기능은 단지 여성의 처녀막을 찢어 달빛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통로를 넓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믿는 종족의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만월의 망(望)으로부터 삭(朔), 신월(新月)의 삭으로부터 다시 망까지 부풀어올랐다가 꺼지고 다시 부풀기를 반복하는 자궁 속을 나는 상상했다. 더구나 말[馬]에게 시루떡 동제를 올리곤 했던 상마일(上馬日)로서, 달리는 말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월 상달의 만월이었다. 모니터에 비춰진 서재의 둥근 스탠드 불빛은 물론, 달빛에 흥건히 젖어 나무와 논과 건물들의 경계도 다 사라진 삼태기형 골짜기 전체가, 내 눈에 한껏 부풀어오른 자궁 속 같아 보인 건 순간적 감흥이었다. 아아, 말[馬]이 되어 저기 굴암산 둥근 골을 내달릴 수 있다면……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부풀 대로 부푼 굴암산 골은 세상의 모든 부푼 것들을 다 빨아들여 더욱 둥글어졌고, 나는 그 속에 잔뜩 사지를 오그린 채 앉아 있었다. 그것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으며, 동시에 어둠과 밝음을 모두 빨아들여 간직한 둥근 원형(原形) 혹은 둥근 원형(原型)이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만약 화장실에 들어갔다면 볼일을 보고 나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혹시 잠든 것일까.
그때, 아주 낮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나발처럼 열고 감각을 집중시켰다. 물이 흐르는 소리인가 했으나 물이 흐르는 소리가 아니었고 바람이 숲을 건드리고 자맥질해 들어가는 소리인가 했으나 바람소리가 아니었다. 좀더 문제의 소리가 고조됐을 때, 나는 그것이 화장실 쪽에서 나는 울음소리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소리내어 울다니, 뜻밖의 사태였다. 울 때조차 너무도 단단하고 빈틈없이 자신을 절제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이므로, 늙은 여류작가가 깊은 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내어 울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단속적으로 내뱉는 말소리도 사이사이 들렸는데, 혼잣말이라기보다 누군가, 분명히 대상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럼 혹시 누구랑 함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연 긴장했다. 내가 기억하는 늙은 여류작가의 화장실 역시 침실과 서재가 그렇듯 거의 장식이 없는 휑한 공간이었다. 인상적인 게 있었다면 꽤 넓은 화장실의 한쪽 벽면이 온통 거울로 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눈만 뜨면 언제든 막힘없이 거울에 비쳐든 자기자신을 보게 될 것이었다. 방문객이라곤 거의 없이 혼자 사는 늙은 여류작가에게, 그렇다면 혹시 거울 속에 숨겨놓은 정부라도 있었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대형거울에 비치는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떠오르다가 재빨리 사라졌다. 만약 정부가 있다면 울고 있는 늙은 여류작가를 어떤 말로써라도 달래야 할 터인데, 늙은 여류작가의 말소리뿐 대거리하는 낯선 목소리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여보……라고, 늙은 여류작가가 누군가를 불렀다고 느낀 순간, 여보……가 아닌, 아가……라는 말이 난데없이 내 귓구멍 속으로 박혀들어왔다.
아가……라니,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거울 안으로 난 은밀한 길을 어쩜 늙은 여류작가는 알고 있을는지도 몰랐다. 거울 안으로 난 길은 세상의 모든 우물을 지나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굴암산 깊은 굴속까지 닿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둡고 환한, 어둡지도 않고 환하지도 않은 미로에서 불러낸 늙은 여류작가의 아가……를 나는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아주 둥근,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아가를.
마침내 화장실 문이 빠끔 열렸다.
손돌추위라서 내 온몸은 이미 뻣뻣이 얼어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늙은 여류작가의 화장실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이제까지 내가 보고 아는 늙은 여류작가와는 아주 다른, 오래오래 잊지 못할 늙은 여류작가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강력한 예감을 느꼈다. 쪽찌거나 묶었던 늙은 여류작가의 머리는 산발로 자유롭게 풀려 있었다.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길고 치렁한 머릿결은 모니터 속에서도 빛이 났다. 그토록 자유롭게 풀린 빛나는 머릿결을 전엔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나로선 충분히 감동했을 터인데, 늙은 여류작가는 머리만 풀어 산발한 게 아니라 옷도 완전히 벗고 있었다.
나는 헙, 하고 숨을 막았다.
마치 내 오관에 마른번개가 번쩍 친 듯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벌거벗은 채 아주 희한한 말 위에 올라앉은 채 화장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말[馬]이 분명했다. 화장을 하고 있었던지, 아니면 울면서 화장을 한 것인지, 마스카라가 번져 검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입술은 선홍빛이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 잔등 위에 위풍당당 앉아 있었다. 호, 호, 호피티(hoppity)……라고, 나는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서너살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고무제품의 말이었다. 오래 전 어느 후배화가의 첫아이 돌 때 내가 직접 골라 사간 적도 있는, 요즘은 자취를 감추어버린 구식 장난감으로서, 귓구멍엔 두 개의 손잡이가 있고 몸통은 머리에 비해 턱없이 큰 완구형(完球形)인데, 바람을 빵빵히 넣고서 공 위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뜀뛰며 놀 수 있게 설계된 것이었다. 히이히잉…… 하고, 늙은 여류작가의 입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났다. 병적으로 말랐다고만 생각해왔으나 병적으로 마른 곳은 얼굴과 목과 허리와 대퇴부와 종아리였다. 늙은 여류작가의 젖가슴은 정말 놀랄 만큼 풍만했고, 고무말 위에 앉혀진 엉덩이도 터질 것 같은 호피티의 배보다 더 둥글게, 만월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히잉히잉히잉…… 말은 기세좋게 울면서 늙은 여류작가를 태운 채 원을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눈물이 호피티의 목언저리에 뚝, 뚝, 뚝 떨어졌다. 늙은 여자가 뛰어오를 때마다 치렁한 머리 또한 하늘로 솟았다가 꺼지기를 반복했으며 한껏 부푼 젖가슴도 배부른 말과 함께 힘차게 출렁였다. 그것은 단숨에 굴암산 겨울숲을 가로질러가 멀고 먼, 둥근 우주에까지 달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고흐의 해바라기와 달리, 씨앗을 품고 있지 않은, 불모의, 중심이 텅 빈 항아리였다.
나는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어 모니터의 스위치를 껐다.
아니, 끄려고 하는 순간, 달리던 말이 갑자기 멈추는 듯하더니, 쨍 하고 빛나는 광채, 늙은 여류작가의 시선이 초소형 카메라에 똑바로 꽂혔다. 늙은 여류작가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찰나적으로 초소형 카메라를 통해 딱 맞닥뜨렸다고 나는 느꼈다. 나는 황급히 모니터 스위치를 껐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쳤다.
늙은 여류작가는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나는 내 집 거실로 돌아와 비로소 확신했다. 카메라는 너무도 작았으며 오디오 스피커에 교묘히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늙은 여류작가는 어떻게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보았을까. 말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날이 샐 때까지 늙은 여류작가는 무기물의, 오직 배가 부를 뿐인 말을 타고 히잉히잉, 불모의 우주를 향해 날아갈 것이었다. 나는 옷을 다 벗고 차가운 거실바닥에 엎드렸다.
항아리야, 항아리야……
나는 소리내어 말하면서, 내 엉덩이를 쓰다듬어보았다. 항아리야, 항아리야, 항아리야……라고 말했을 때, 돌연 나의 성기가 쭈뼛 머리 들고 일어나는 걸 나는 느꼈다. 헛배가 불러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아리야, 항아리야, 항아리야, 항아리야, 항아리야……에서 후두둑,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둥근 나의 헛배를 안고, 비틀거리며 이젤 앞으로 다가갔다.
캔버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캔버스의 중심에 과연 무엇을 그려야 할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헛배인지, 헛배가 아닌지, 암튼 나의 배는 점점 불러와 이제 곧 터질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여류작가의 호피티가 되고 싶었다. 나는 모처럼 붓을 잡았고, 눈을 부릅떴고, 무기물의 말이 불모의 우주를 향해 달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캔버스 한가운데 일필휘지, 나는 먼저 원 하나를 크게 그렸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싶었던 것을 그리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둥근 말들의 최고조에 달한 울음소리가 골답 너머, 시월 상달의 만월에 둘러싸인 늙은 여류작가의 서재로부터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7
다음날부터 나는 늙은 여류작가의 집 근처에 더이상 가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내부로부터 쑥 빠져나간 듯 힘이 없었고 심심했다. 모처럼 시작한 그림은 알록달록한 어릿광대의 얼굴 같은 형상으로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가 정해진 시각 산책코스에 나타났다고 느낄 때에도 짐짓 창밖을 내다보진 않았다. 혜인은 여전히 전화 한통 걸어오지 않았는데, 서울과 빠리에서 대규모 서혜인 패션쇼가 열린다는 신문기사를 본 일은 있었다. 계획된 길을 계획했던 대로 혜인은 가고 있었다. 나는 가끔 용인 읍내로 나가 천변 여관촌 어귀에서 장어구이를 먹었고, 여관에서 불러준 젊은 여자들과 섹스를 시도했다. 내 궁둥이를 이렇게 쓰다듬으면서, 항아리야, 항아리야 해봐……라고 나는 화류항의 처녀들에게 주문했다. 아저씨 같은 변태는 처음 봐……라고 어떤 여자는 말했다. 여자들은 내 엉덩이를 둥글게 둥글게 쓰다듬으면서, 항아리야, 항아리야, 항아리야…… 노래를 불렀다. 어떤 순간은 자지가 섰고 어떤 순간은 여전히 죽어 있었다. 외피가 화려한 천변 여관촌에도 자주 북풍이 불어왔고, 그러면 창문들이 이따금 드르르르 드르르르 하고 떠는 소리를 냈다. 육덕이 좋아 덩달아 젖이 큰 한 여자는 유난히 목청이 좋아, 항아리야, 항아리야…… 그 가락이 곱고 슬펐다.
나는 엎드린 채 멀고 먼 별들을 자주 생각했다.
거문고자리의 직녀성을 떠올릴 땐 눈이 부셨고, 오른손엔 종려나무 잎새를, 왼손엔 밀 이삭을 든 형상의 처녀자리를 떠올릴 땐 황홀했고, ㄹ자(字)로 휘어져 흐르는 에리다누스강을 떠올릴 땐 슬펐다. 오리온좌가 나타내는 거인의 발밑을 구부러져 흐르는 별자리 에리다누스강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강이었다. 그 강엔 하프의 명인이었던 오르페우스의 정한 많은 신화가 깃들여 있었다. 항아리야 항아리야……가 너무 쓸쓸해서 차라리 에리다누스강으로 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겨울이 그렇게 깊어졌다.
삭(朔)으로부터 망(望)으로 차오른 달은 다시 삭으로 짚불처럼 꺼져내리며 임종과 만났다. 항아리야……를 아무리 노래불러도 세상의 모든 둥근 것들이 꺼지고 말 때, 이를테면 달은 이승과 저승 사이, 에리다누스강을 달마다 넘어가는 것이었다. 별이라도 뜨면 좋으련만, 구름이 끼었는지 온통 캄캄한 어둠의 절벽 안에 갇힌 밤에, 깊은 겨울에, 늙은 여류작가가 전화를 했다. 새벽 세시쯤의 일이었다.
혹시…… 망치 있나요……
늙은 여류작가는 지하실을 울리고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막 잠들 뻔하다가 퍼뜩 깨어난 내 눈에 헛배 빵빵히 부른 호피티가 떠올랐고, 시멘트 못을 박을 일이 있는데…… 망치가 없어서요……라고, 늙은 여류작가는 덧붙였다. 내겐 물론 망치가 있었으며, 늙은 여류작가에게도 망치가 있을 터였다.
망치…… 없는데요.
그럼…… 드라이버는 있나요……
……드라이버도 없는데요.
커튼 틈새로 늙은 여류작가의 밝은 서재 창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의 이층 창을 빼고 골 안의 문득 산 것들은 다 캄캄한 어둠속에 있었다. 너무도 캄캄해서 서재의 불 밝은 사각창이야말로 유일한 세계의 숨구멍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잠시 침묵했다. 비잉, 하고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금속성이 늙은 여류작가와 나 사이를 간신히 잇고 있었으나 캄캄절벽 어둠에 비해 너무도 연약한 이음선이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한참 동안 말을 끊고 있다가 좀전보다 훨씬 더 또렷해진 사무적인 목소리로 세번째 물었다.
머리가 너무도 아파서요. 혹시 펜잘이나 게보린은 없나요.
없습니다. 펜잘도 게보린도 없습니다.
똑 전화가 끊어졌다. 펜잘과 게보린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늙은 여류작가의 어조를 따라, 없습니다, 펜잘도 게보린도 없습니다…… 나의 마지막 말이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가책을 느끼진 않았다. 나는 여류작가의 창을 짐짓 보지 않으려고 커튼을 빈틈없이 닫아버리고 곧 잠들었다.
다음날 늦잠에서 깨어났을 때.
늙은 여류작가의 집 앞에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와 있는 걸 나는 보았다. 겨울 햇빛이 아주 투명한 날이었다. 한밤중 외출했던 것인지 현관문이 열려 있는 걸 이상히 여긴 영문학 여교수가 집안에 들어가봤을 때 늙은 여류작가는 이미 에리다누스강을 건너간 후였다. 어디서 구했을까, 늙은 여류작가는 아주 부드럽고 질 좋은 명주천으로 층계참에 목을 맸다고 했다. 유서는 없었다. 남동생에 의해 화장된 늙은 여류작가의 유해는 오래 몸져누웠다가 간신히 일어난 노스님에 의해 인적 없는 굴암산 용화사에 안치되었다.
나는 거의 완성된 내 그림을 보았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평면을 구획한 어릿광대 같은 둥그런 얼굴 하나를 나는 그렸는데, 늙은 여류작가의 유해를 안치하던 날 밤에 다시 보니, 홀연히 스위스 출신의 화가 파울 클레가 내 그림에 겹쳐 떠올랐다. 내가 오랜만에 그린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니라 파울 클레의 「세네치오」를 모사한 것이었다. 빠리에서 지낼 때 나는 잠시 분석적인 군더더기를 대담히 잘라내버린 듯한 클레의 그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가면은 예술을 의미하고, 그 배후에 인간이 숨어 있다……라고 파울 클레는 말했다. 「세네치오」의 원화를 본 것은 스위스 베른의 미술관에서였다. 오래 전에 내 안에 입력된 가면의 둥근 어릿광대 얼굴 「세네치오」가 둥근 것에 대한 욕망에 이끌려나와 캔버스에 단순히 인화된 셈이었다.
8
가끔, 나는 늙은 여류작가의 빈집으로 갔다.
항아리들은 어둠속에 그대로 있고,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빈 서재는 단무지 공장 앞의 외등 잔영을 받아 희끄무레했는데, 자궁 속처럼 은밀하고 고요했다. 달은 여전히 차올랐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해가 지나가는 섣달 그믐께야 나는 비로소 고물상을 통해 호피티 하나를 구해 집으로 돌아왔다. 늙은 여류작가가 그랬듯이, 벌거벗고서 무기질의 배부른 호피티를 타고 히잉히잉, 나는 밤새 놀았는데,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호피티의 둥근 배는, 씨를 품고 있지 않아서, 고흐의 해바라기와 달리 쓸쓸하게 헛배만 부를 뿐이었다. 호피티를 타고선 우주로 갈 수 없었다. 모처럼 달이 밝은 밤이었고, 나는 달빛에 듬뿍 젖어 늙은 여류작가의 빈집을 찾아갔다. 모니터는 더이상 필요없었고, 굴암산 둥근 골엔 바람도 불지 않았다. 늙은 여류작가의 항아리들은 달빛 아래에서 둥글게 둥글게, 한껏 부풀어올라 있었다.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라고, 에리다누스강 건너편에서 고혹적으로 속삭이는 늙은 여류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형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