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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영숙 姜英淑
1966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가 있음. bbum21@hanmail.net
씨티투어버스
공항 폐쇄조치가 예고된 그 여름, 밤이 되면 나는 온몸의 상처를 죄다 가리는 검은색 터틀넥 원피스를 입고 씨티투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내다보는 여름밤의 도심은 뜨거운 황색의 물결을 이루어 일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정지된 홀로그램 화면처럼 차갑게 얼어붙곤 했다. 밤이면 가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그때의 바람은 거대한 시멘트 건물들 사이를 휘돌던 복사열의 불규칙적인 충돌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은 여름의 정점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항 폐쇄조치가 예고된 날,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로 나와 삿대질을 해가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모든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폐쇄된 자국 영토 내에서 꼼짝할 수 없으며, 어쨌든 우리들끼리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표면적으로는 잘 받아들였다. 처음엔 거리로 나와 흥분하던 사람들도 달팽이가 더듬이를 감추고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가듯, 시간이 흐르자 집으로들 들어가 틀어박혔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급히 날아온 비행기들이 궁둥이는 땅에 대지도 않은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투하하고는 도망치듯 날아갔다. 자국에는 더이상 놔둘 수 없는 오만가지 배양 세균들, 실험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버려 용도폐기된 일단의 희귀동물들,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 시각이 적나라한 화질 나쁜 섹스비디오 테이프들. 무엇보다 관심의 대상이 됐던 것은 썩은 밧줄에 묶여 내려온 미친개 한마리였다. 개는 낯선 나라의 드넓은 공항에서, 해가 기울고 달이 뜨고 새벽이 오는 걸 보며 고국에서의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공항 관계자들이 그 이상한 것들을 모두 어떻게 처리했는지 저녁 뉴스에서는 더이상 다루지 않았다.
내 남편이었던 R–그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과는 예전의 햇살 따뜻하고 몸 튼튼하고 경제적으로 호황이던 시절에 만나, 길고 긴 불황의 피크였던 그 시절에도 함께 살고 있었다. 순리대로라면 늙고 병들어 상대가 죽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했으나, 그와 나는 상대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 집안의 공기조차도 참을 수 없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과 나는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R은 포크와 나이프와 접시를 만들어 파는 식기 제조판매회사에 성실하게 다녔으며, 나 또한 최신식 복덕방인 부동산 임대회사에 열심히 다녔다. 그는 늘 흥얼거리던 유행가의 한 소절에서 착안하여 보라색 나팔꽃 모양의 접시를 생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옛날 고무신 모양의 그릇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그해의 우수직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십분 동안 모든 전기가 끊긴 최초의 정전사태가 일어난 날 밤이었다. 아파트 밖에서 긴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 화면이 먼저 꺼졌고 실내의 모든 전기가 툭툭 꺼졌다. 올 것이 왔네. R이 말했다. 그 십분 동안 그는 베란다로 나가 서 있었고 나는 접시에 있던 참외껍질을 씹어먹으며 씽크대 앞에 서 있었다. 전기가 다시 들어오자 목운동을 하며 거실에 앉아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미리 겁을 주는군, 이제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겁이 나지만 죽기야 하겠어. 그렇게 대답하며 평소같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근데 왜 머리를 때리냐? 그가 과민하게 반응했고 우리는 장난삼아서 서로의 몸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팔뚝을 꼬집자 그가 방바닥에 있던 신문을 반으로 접어 내 얼굴을 때렸다. 점점 더 힘이 들어간 터치가 몇번이나 오갔다. 아니 이게 진짜. 그가 갑자기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내 뺨을 갈겼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예의 없이 이게라니! 나도 화가 나서 그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그리고 계속 돌진, 그를 의자 아래 바닥으로 넘어뜨리고 재빨리 배 위에 올라탔다. 그는 내가 깔고 앉자 꼼짝도 못하고 한숨만 휘휘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는 용케도 몸을 빼 벌떡 일어나앉더니, 내 팔과 다리를 뒤로 모아 활 자세를 만들고는 마구 발로 차기 시작했다.
너 꼭 소 같다. 싸움이 일시 중지됐을 때 그가 말했다. 하긴 밥을 그토록 처먹어대니 기운도 좋겠지, 처먹고 또 처먹고. 그의 말은 다 맞았다. 내가 그렇게 소처럼 기운이 좋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을 갖고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나 소다, 소답게 행동해주지. 그렇게 싸움은 계속됐고 우리가 그러는 동안 거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동서로 빠르게 왔다갔다했다.
액체 근육진정제를 듬뿍 바르고 온몸의 상처를 죄다 가리는 검은색 터틀넥 원피스를 입었다. 전보다 살이 쪄서 옷이 몸에 꽉 끼었다. 그는 오래 전에 사다 냉장고에 넣어둔 훈제족발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허기가 지긴 마찬가지였지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미련이 없어졌다.
그날 서점이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것이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던 씨티투어버스였다. 버스는 외국 여행객들의 시내관광을 위해 운행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탈 수 있다고 했다. 삼십분 가량 정류장 앞에 서 있었는데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서류가방을 들고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와 외국인 노부부가 승객이었다. 버스 안은 냉방장치가 잘 되어 있어 시원하고 쾌적했다. 한밤중에 도심을 뱅글뱅글 돌아 처음 탔던 자리까지 데려다주는 버스가 있다니 참 신기했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서류가방을 그러안은 채 잠이 들었고, 외국인 노부부는 빼빼 마른 팔로 창밖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오른쪽 갈비뼈 부근과 등이 아팠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졌다. 가끔씩 눈을 뜨고 해가 지는 거리를 내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갑자기 들소떼가 보였다.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무섭게 살이 찌고 흰 뿔이 달린 들소들이 대평원의 한 지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멀리서 들리던 북소리 행렬을 눈앞에서 맞닥뜨린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온몸이 움츠러들어 눈을 꼭 감았다.
날이 갈수록 그와 나는 자주 싸웠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 싸움도 꼭 육박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나를 무섭게 때렸다. 그렇다고 얻어맞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속전속결일 때는 그의 주먹이 효과가 있었지만, 말꼬리를 잡느라 한 말 또 하고, 뚜렷한 이유도 승산도 없고, 점점 지리멸렬한 싸움이 될수록 내가 더 오래 버텼다. 그렇게 싸우고 나면 구운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그 위에 또 땅콩잼을 발라 대여섯 개쯤 먹어야 조금은 느긋하고 아둔한 기분이 되었다.
어느 금요일 밤, 아홉시에 출발하는 씨티투어버스를 탔다. 시에서는 공항 폐쇄조치가 내려지는 날까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의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씨티투어버스의 운행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외국인들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대규모 건물 테러와 교통수단 운행 마비 등을 우려해, 낮에는 호텔방에 들어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몰려나와 산책을 하거나 맥주를 마셨다.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지역인가를 실감한다며, 무사히 빠져나갈 날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발목 끝까지 내려오는 똑같은 디자인의 일자 원피스를 입고, 하나같이 헤어밴드를 두른 뚱뚱한 아프리카 여자들 네 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또 콧날이 오똑하고 키가 큰 외국인 남자 두 명과 엉덩이와 가슴만 겨우 가린 과다노출 상태의 외국인 여자 두 명이 함께 올라탔다. 아프리카 여자들은 자기 나라 이름을 주문처럼 외면서, 오랜 불황에 빠진데다 공항폐쇄 예고조치까지 내려진 이 나라에 자기들이 오게 된 건 명백히 신의 저주라며 울상을 지었다.
또 남편과 싸우고 황색의 밤거리로 나오다!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손에는 소주를 담은 생수병을 들고 통로 왼쪽 자리 중간에 앉아 있었다. 화장품과 영화 카탈로그, 지하철 노선안내도와 머리핀이 뒤엉켜 있는 가방 한구석에서 은박지에 싼 햄을 꺼냈다. 생수병을 입에 대고 조심스럽게 마신 후 햄을 한입 베어먹고 창밖을 내다봤다. 세상이 뒤집혀 이런저런 것들의 생산이 중단되면, 분홍색 햄덩어리의 특이한 생김새와 짭짜름한 맛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버스가 남대문시장에 도착했을 때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젊은 남녀 외국인들이 무리지어 버스에 올라탔다. 짐작하기로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내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너 어제 돈 잃었지? 이제 나한테 돈 빌려달라고 하지 마, 이제 나 돈 없다. 그 일행이 얼마나 큰 소리로 떠드는지 앞에 앉은 아프리카 여자들도 뒤를 돌아보며, 정말 교양 없는 애들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앞쪽에 앉아 있던 두 쌍의 외국인들조차도 그들의 거침없는 소란에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냈다. 그때 왼쪽 창가 앞쪽에 창문 쪽으로 비죽 나와 있는 흰 셔츠자락과 팔이 보였다. 차 안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다른 승객이 있는 걸 몰랐던 것이다.
앞쪽에 앉은 두 쌍의 외국인 중 짧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왜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느냐고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밤이 근사한데 여기서 우리가 담배를 피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여자 말의 요지는 그랬다. 운전기사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여자에게 간청했다. 세상의 어떤 나라가 차 안에서 담배 피우는 걸 그냥 둡니까? 다른 손님들이 싫어합니다. 뒤이어 여자가 기사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걸요. 공항폐쇄까지 될 마당에 이까짓 담배 하나 가지고 진짜 신경질나게 하네. 그때 내 앞자리에 앉은 외국인 중 흰 모자를 쓴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날 보고 웃었다. 그의 모자 뒤엔 쌘디에이고라고 씌어 있었다. 오래 전 직장동료는 쌘디에이고 항구가 아름답다는 말을 했었다. 그는 혼자 여름휴가를 보내던 울릉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바윗돌 위에서 놀다가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했다.
명동을 지나면서 도로가 정체상태에 빠졌다. 차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딱정벌레처럼 붉고 검은 색깔의 싸이클 운동복을 차려입은 산악자전거족들만 용이하게 빠져나갔다. 땅속에 비축해둔 기름을 아껴야 한다고 캠페인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차 안에서 담배꽁초며 음료수 깡통을 마구 내던지고, 라디오 볼륨을 잔뜩 높인 채 목청껏 노래를 따라불렀다. 그때 황색의 거리에는 공항폐쇄가 예고된 상태의 팽팽한 긴장감도 있었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일탈 욕구도 함께 있었다. 그때까지도 뒤에 앉은 외국인들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말이 길어질수록 나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피로를 느꼈다. 그때, 앞에 앉은 아프리카 여자들이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거려가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멜로디는 익숙한 것 같았지만 아는 노래는 아니었다. 여자들의 목소리는 느리고 구성졌다. 그때 툭 툭 툭, 도심의 불빛들이 여기저기서 순서도 없이 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공항폐쇄가 예고된 이후 발생하는 정전사태 때마다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동작그만 상태에서 침묵했다. 사람들은 앞으로 닥쳐올 상황의 일각을 미리 본 듯 돌처럼 굳은 채 떨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토록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던 머리 짧은 외국 여자가 결국은 담배를 피워물었고, 아무도 여자에게 담배를 꺼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프리카 여자들은 이제 삼중창으로, 좀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때였다,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무섭게 살이 찌고 흰 뿔이 달린 들소들이 대평원의 한 지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들소들은 겁에 질려서 무엇에 쫓기는 줄도 모르는 채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을 수도 뜰 수도 없었다. 그런 정전사태가 몇분간이나 지속되었을까. 저만치서부터 황색 불빛들이 화드득 켜지기 시작했고 거리의 사람들은 제어할 수 없는 자동인형처럼 사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용산 전쟁기념관 앞을 지나 이태원으로 갔다. 남대문시장에서 탄 외국인들이 용산 미군기지 앞 정류장에 모두 내렸고, 아프리카 여자들을 포함해 광화문에서 탄 외국인들은 이태원에 모두 내렸다. 운전기사는 그들에게 친절하게 작별인사를 했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때까지도 앞자리의 흰 셔츠는 창가에 붙어앉아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승객은 줄곧 흰 셔츠와 나 둘뿐이었다. 광화문에서 내릴 때 잠깐 흰 셔츠를 돌아봤다. 얼굴이 아주 어려 보였는데 또 어떻게 보면 나이가 아주 많아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 알 수 없는 특이한 외모였지만 여자가 분명했다.
그 무렵의 부동산 투자회사는 때가 때인지라, 실제로 사고파는 일은 없이 주택매매에 관한 문의전화에만 붙들려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무슨 점쟁이로 아는지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달라고 했고, 지금 이 싯점에서 재산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달라고 했다. 빌딩 매물이 나온 게 있으면 보여달라고 찾아온 한 남자가 있었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지하부터 지상 5층까지를 샅샅이 살펴보고 일일이 메모까지 했다. 정말 치밀하고 실력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건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물론, 실금이 간 벽의 위치와 방화시설까지도 확인을 했다. 놀랍게도 그 건물의 환기구는 뚜껑만 달려 있는 가짜였다. 그는 헤어질 때 복권이 맞으면 꼭 다시 와서 사겠다며 명함을 한장 주고 갔다.
또 한번은 다세대주택을 사겠다는 일가족 다섯 명이 찾아왔는데,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을 보여달라고 했다. 부녀자들은 내 차에 태우고, 나머지 청년 둘은 택시를 타고 북한산 줄기의 평창동까지 갔다. 그들은 매매를 의뢰한 다세대주택 3층에 들어가자마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와 침실, 거실 앞 창문 등에 따로따로 붙어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툭 트인 시내만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집주인이 자꾸만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은 내가 방을 보여주고 집 구조를 설명해줘도 별 반응 없이 고개만 끄떡거렸다. 여자애들 둘이 그 집 애들 인형을 갖고 놀겠다고 떼를 쓰긴 했지만 그것도 잠깐, 그들은 모두 굼뜨게 일어나 집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마침 집주인이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며 생수병을 꺼내놓았다. 식탁 주위에 모여서서 컵 하나로 커다란 생수 한통을 차례대로 나눠마신 그들은, 또 차례대로 베란다 쪽으로 나가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도심을 한번 더 내려다보고는 조용히 그 집에서 나왔다. 계단을 내려와 현관 앞에 섰을 때 그들의 어머니가 말했다. 집이 아주 시원하네, 그래도 영세민이 젤 편해! 내가 사무실로 돌아가 날 더운데 고생만 했다고 투덜거리자,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사람을 볼 줄 모르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며 혀를 찼다.
휴일이면 그는 혼자서 낚시를 갔다. 그가 낚시를 가면 나는 그의 회사에서 할인가로 사온 보라색 나팔꽃 모양의 접시에 밥을 듬뿍 담고 그 위에 고기를 얹고, 다시 그 위에 쏘스를 얹고 다시 그 위에 토마토를 얹어서 아주 천천히 먹었다. 그것도 부족하면 다시 밥과 고기와 쏘스와 토마토를 같은 순서로 똑같이 얹어서 또 한번 먹었다. 그리고 그가 낚시터에서 돌아오면 또 싸웠다. 당장은 우리의 부모로부터 시작해 점차 얼굴을 모르는 그 윗세대 부모와 집안환경까지 들먹거려가며 싸웠는데, 싸우다보면 왜 싸웠는지를 잊었다. 어쨌든 핵심은 돈문제였다. 오랜 불황에 저축도 별로 없던 상태에서 내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는 그 돈으로 온몸이 굳어가던 엄마의 수술비를 댔다. 경솔하게 돈만 빌려주지 않았어도 우린 지금보다 훨씬 괜찮았을 거야. 내가 그 돈으로 투자만 좀 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이토록 불안하지는 않았을 거야. 유가 그토록 원하는 애도 낳았겠지, 벌써 초등학교는 갔겠네. 그의 시비에 대한 내 대답은 설득력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아, 우리가 지금 굶어? 남의 집 처마밑에서 자?
그리고 그 무렵 아주 놀랍게도 그에게 연애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오호 제법인데! 정말 나는 감탄했다. 그가 나보다 훨씬 가능성있는 인간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경찰을 불러 간통현장을 잡고, 구치소에 처넣고, 쥐꼬리만한 재산이지만 다 몰수하고 팬티만 입혀 내쫓는 것, 나 역시 모든 조강지처들의 이혼 씨나리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흥신용역쎈터 직원인 P는 아주 바빴다. 돈을 돌려줄 테니 의뢰를 취소해달라는 말까지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추적 의뢰가 많아 바빠 죽겠다고 했다. 세상이 이렇게 된 마당에 사람들이 남녀관계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죠? 내 말에 P는 인삼즙이 담긴 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사람 몸이야 어디로 갑니까, 사모님. P는 두차례 정도 남편의 뒤를 추적하고는 김빠지는 소리만 했다. 여자를 만나긴 하지만 사모님 남편은 아냐, 피씨방에 들어가서 게임이나 하구, 사람도 없는 외진 낚시터에 가서 낚시도 안하구 내 졸기만 해. 그리구 말이지 딴 여자가 생긴 남자들이 풍기는 냄새라는 게 있는데 그 아저씬 내가 볼 때 아냐. 혹시 사모님이 잘못 안 거 아냐? 그러더니 P가 인삼즙 컵을 옆으로 밀쳐놓고 몸을 탁자 쪽으로 당기며 물었다. 잠자리 같이 안한 지 얼마나 됐어? 나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두달? 야 독하네! 그럼 맞는데 이상하네.
씨티투어버스의 도심순환코스는 총 한시간 사십분이 걸렸다. 총 아홉 개의 정류장을 거쳤고 ‘즐겁고 짜릿한 대탐험’이라는 글자가 언제나 머리 위 버스 천장에 박혀 있었다. 공항폐쇄 이후 씨티투어버스는 운행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가끔 버스 안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때 버스를 탔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날은 해가 질 무렵에 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태원 중앙 삼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서 있었다. 그때 내 자리 바로 옆으로 맥주를 가득 실은 트럭이 와 섰다. 트럭기사는 창문을 다 열어놓은 채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검은 얼굴과 더운 입김이 차창을 통해 내 얼굴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신호가 바뀌려는 순간 트럭기사가 옆자리에서 뭔가를 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한글과 영어로 ‘오 필승 코리아’라고 적혀 있었다.
이태원에서 크라운호텔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앤티크(antique) 상점들이 많았다. 상점들 앞에 켜놓은 붉은 등불들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다 부서지고 없지만 예전의 우리집에도 고상한 밤색의 팔걸이의자가 두 개 있었다. 그 거리엔 야채행상 트럭의 스피커 소리만 요란할 뿐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가 남산 국립극장 앞을 지나갔다. 결혼 초에 국립극장 맞은편의 자동차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봤다. 스페인 영화였는데 변심한 애인 때문에 주인공이 흰눈이 쌓인 성당 마당에서 자살을 한다. 흰눈 위에 떨어지는 붉은 피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서 밥을 비벼먹으며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서도 히히덕거리던 기억이 난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한때 좋아하던 사람과, 서로 때리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씨티투어버스가 남산 서울타워를 향해 올라갔다. 운전기사가 에어컨을 끄고 출입문을 열었다. 도심의 밤공기는 건조하고 뜨거웠지만 남산의 공기는 비교적 서늘했다. 산책로를 걷던 사람들이 텅 빈 차를 올려다봤는데 도둑고양이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우거진 나무들 아래로 언뜻언뜻 한강 불빛이 보였다.
서울타워 정류장에서는 늘 십분 정도를 쉬었다. 나는 서울타워 정상에 버스가 도착한 다음에야 뒷자리에 누가 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흰색 셔츠, 바로 그애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애는 접근금지구역 쪽의 쇠창살 밑으로 가서 토하기 시작했다. 그애는 흰색 셔츠와 흰색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나는 휴지를 들고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아요? 등 좀 두드려줄까요? 그애가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저만치서 담배를 피우던 운전기사가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남산 상공에 헬리콥터가 날기 시작했다. 얼마나 낮게 날았는지 머리며 옷이 납작하게 될 정도였다. 아이구 깜짝야, 귀신인 줄 알았네.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잠자던 노인이 헬리콥터 소리에 놀라 깨서는 나한테 화를 냈다. 저승사자가 날 데리러 온 줄 알았잖아, 젊은 사람 옷이 그게 뭐야, 시커멓고 치렁치렁하고. 헬리콥터 소리가 잠잠해지기까지 노인은 눈을 감고 앉은 채 졸다가 주변이 조용해지자 옆에 누운 친구 노인들 쪽을 보고 다시 누웠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는데, 한 할머니가 출입문에 다리를 걸친 채 운전기사를 붙들고 승강이를 벌였다. 아 왜 시청역엘 안 가? 내가 아까 이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어, 이 차 타고 왔으니까 이 차가 날 시청역까지 데려다줘야 할 거 아냐? 할머니 이 차는 이제 시청역에 안 가요, 시청역은 이미 지나왔다구요. 아 그래? 그럼 서대문엔 가나? 서대문도 안 가요, 어딜 가실 건지 저한테 말씀하시면 가까운 데다 내려드리고 갈게요. 젊은 사람 참 고맙네, 그럼 서울역엔 가겠지? 이 할머니 참 미치겠네, 아 젊긴 누가 젊어요, 할머니랑 나랑 몇살 차이 안 나요, 할머니 어쨌든 차에 타세요, 이 밤에 어떻게 가실려구, 애들이나 어른이나 다들, 에이! 운전기사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와의 승강이를 지켜보던 나는 막 생수병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때 출입문으로 그애가 들어왔고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와 말했다. 저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수병을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애는 실망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로 갔다.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할 때가 있다. 나는 뒤로 가서 생수병을 그애에게 주고는 얼른 내 자리로 돌아온 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미성년자는 아닌 게 분명했다.
버스가 남산 산책로를 따라 남산도서관 쪽으로 내려갔다. 밤이 되면 온몸에 잡힌 멍이 더 근실거렸다. 진통 소염제로 진정시킨 검은색 터틀넥 속은 사실 오색찬란했다. 어린애들이 조각칼로 군데군데 파놓은 고구마처럼 흉터가 생긴 팔뚝, 싸인펜이 번진 듯 불그죽죽한 가슴패기, 붉은색 파랑색 보라색으로 피부 깊숙이 박힌 멍색깔들이 아주 오묘했다. 버스가 관광객이 없어 썰렁한 신라호텔을 한바퀴 돌아 동대문운동장 쪽으로 나올 때까지 나는 연신 몸을 긁적거렸다.
뒤차와의 배차간격 때문에 동대문시장에서 오분 정도를 더 쉬었다. 대규모 의류쇼핑몰 앞에서는 여전히 댄스경연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쟁반을 머리에 인 채 밥배달에 나선 여자들,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택시를 잡는 상인들, 잔뜩 술에 취한 채 땅바닥에 앉아 구두는 이미 벗었고 막 양말을 벗는 할아버지, 가무잡잡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어딘가로 가는 아랍 남자들의 무리. 나는 잠깐 공항폐쇄 이후의 동대문시장을 상상했지만 어떤 모습일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꼬치와 국수를 파는 포장마차 앞에서 운전기사가 담배를 피웠다. 저, 국수 좀 드실래요? 일회용 용기에 담긴 국수 두 그릇을 든 그애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 그애의 얼굴은 아주 작고 예민해 보였다. 소주를 마신 뒤에 먹는 뜨거운 국수 국물은 뜻밖에도 통증을 가시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날 버스가 기점인 광화문에 도착한 시간은 아홉시 삼십분이었다. 서울타워에서 탄 할머니는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를 깨우러 앞자리로 갔을 때 할머니의 손에는 먹다 남은 빵이 들려 있었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외국인 남자 세 명이 양복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담배를 피워대며 열시 삼십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가끔 버스에 타서 줄곧 책만 읽는 키가 작고 머리가 긴 여자애도 운동복 차림으로 그들 뒤에 서 있었다. 국수를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려는데 그애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금세 없어져 보이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말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이 도시에서 안전한 곳은 도심을 뱅글뱅글 도는 씨티투어버스밖에는 없다는 듯이.
흥신용역쎈터의 P는 나에게 간통을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편이 기회를 만들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늦게 퇴근했고 지방출장을 간다며 나가서 돌아다녔다. 그래도 P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여자랑 만나서 얘기만 한다니까요, 그 사람들 서로 안 친해요. P는 머리카락 끝을 손끝으로 꼬며 그들을 두둔했고,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가 요즘 자주 가는 곳 중의 하나가 납골묘라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아는 한 납골묘에 모신 조상은 그때까지는 없었다. P는 이런 시국에 한가하게 그러고 다닐 시간이 이제는 없지 않느냐며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장원에 가서 긴 머리카락을 가능한 한 짧게 잘라달라고 했다. 흥신용역쎈터 P가 보여준 사진 속 여자의 단발머리가 생각났다. 머리를 다 다듬은 내 모습은 아주 단정해 보였다. 약간만 살이 빠지면 사진 속의 그 여자와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여자와 자매처럼 보일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흥신용역쎈터 P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퇴근 후 여자를 만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가 여자를 만나기로 한 모텔은 옆건물의 계단에서 사진을 찍어도 좋을 만큼 큰 창이 있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아울러 나는 꼭 사진을 봐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젠 아주 미쳤구나, 사람을 이런 데까지 불러내고. 알려준 방 호수를 찾아들어온 그가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서로 때리지 않고 얘기라는 것을 했다. 내가 까페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가 코웃음을 쳤다. 너 아주 미쳤구나. 그가 만나는 여자는 그가 다니는 식기 제조판매회사의 직원 부인이었다. 손잡이 부분이 기역자로 생긴 특이한 모양의 수저를 고안한 그 여자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고, 이런저런 뒷정리를 도와주느라 그 여자를 자주 만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납골묘는 그 남자가 있는 곳, 그럼 혹시 그 남자랑 좋아했던 거 아냐? 내 말에 그가 버럭 화를 내며 팔을 치켜들었다. 내가 이래서 널 때릴 수밖에 없다. 그 말끝에 내가 먼저 그를 벽으로 세게 밀어붙였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안했다. 나는 뒤에서 그의 정강이를 발로 눌러 넘어뜨렸다. 그리고 엉덩이를 발로 차 침대 위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다른 때처럼 힘이 나지 않아 동작들이 마구 엉켰다. 열린 창문으로 소음이 왈칵 밀려들어왔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넌 너무 힘이 세, 이렇게 같이 살다가는 내가 잡아먹힐 거야. 그러면서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에게서 시큼한 땀냄새가 났다. 그 땀냄새는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었다. R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환취(幻臭)에 시달린다.
그날 나는 내 돈을 빌려가 마비상태에 빠진 엄마를 수술시킨 후 사라져 연락이 없는 친구네 집을 찾아갔다. 서울 외곽의 그 도시까지는 전철로 연결이 됐다. 가뭄이 들어 시커먼 바닥을 드러낸 하천과 높이 솟은 송전탑의 끝없는 전선들이 목을 휘감아왔다. 전철에서 보는 풍경은 내가 전에 살던 어떤 도시와 흡사했다. 껍질 벗긴 귤을 손녀의 입에 넣어주는 할머니와 손녀의 얼굴은 묘하게도 비슷했다. 개 한마리를 안고 슬리퍼를 신은 채 전동차를 탄 여자애는 강아지 등에다 자꾸만 글자를 새겼다. 눈썹 문신을 한 중년여자는 휴대폰에 대고 온갖 쌍욕들을 쏟아놓더니만 어느새 무릎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아무리 가도 사람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때 내가 탄 전동차의 맞은편 선로 위에 턱 버티고 서 있는 검은 들소 한마리가 보였다. 빨리 달려와, 와서 내 몸을 부숴버려,라고 들소의 눈빛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들소의 환영이 두려웠다. 나는 전동차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술집이 성행하고 삐끼들이 판을 치는 그 도시는 불야성이었다. 몇이 나타나서 광고판에 포스터를 붙이고 사라지면 또다른 몇이 나타나서 조금 전에 붙인 포스터를 떼어내고 새걸 붙였다. 길거리에서는 중국산 웅담을 팔았고 약국에서는 비아그라 유사품을 팔았다. 난전에서는 성장을 멈춘 강아지와 원숭이를 팔았고, 그 옆 난전에서는 보들보들 윤이 나는 여자들의 속옷을 팔았다. 긴 머리의 어린 여자애들은 바짓단을 땅에 질질 끌며 무리지어 광장을 오가다가 머리를 맞대고 웃었고, 그때 광장 저쪽에 있던 남자애들이 그 여자애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친구네 집은 큰길에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 작은 골목들 여럿을 지나 거의 언덕 끝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는 커다란 대추나무 아랫집이었다. 시멘트 담벼락 너머로 마루며 집안이 들여다보였다. 친구와 나는 작은방에서 수다를 떨면서 밤이 되길 기다리곤 했다. 친구 언니의 원피스나 치마로 갈아입고 둘이서 돈을 모아 산 립스틱을 바르고는 밤거리로 나갔었다. 친구 엄마가 한손에 파란색 그릇을 들고 오른쪽으로 약간 기운 걸음으로 수돗가로 나왔다. 그 집의 모든 것도 언젠가는 폭삭 내려앉을 것처럼 우측으로 기울어 보였다. 그새 누가 결혼을 했는지 갈래머리를 한 여자애가 연필을 손에 든 채 방과 마루를 왔다갔다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집은 그대로였다. 친구의 엄마는 지붕 아래 매달린 백열등을 켰고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가지고 나와 수돗가에 앉았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찐 양배추에 삶은 돼지고기 쌈이 저녁 반찬이었다. 친구의 엄마는 자꾸만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친구의 언니는 속옷차림으로 밥은 먹지도 않고 담배를 피웠다. 저렇게 될 줄 알았으면 뭐하러 수술을 했겠니, 장장 여덟 시간 동안 수술을 했다는 거 아니니, 목숨은 건졌는데 완전히 정신이 나갔잖아. 하긴 밥하고 빨래하는 것만 해도 큰 축복이지. 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린 엄마 수술비를 빌려준 너를 원망한 적도 있어 얘. 친구 언니는 골목길을 같이 걸어내려오면서 자기가 다니는 성인나이트클럽의 명함을 줬다. 우울할 때 놀러 와라 부킹 백프로 책임진다! 과도한 헤어드라이어의 사용으로 끝이 다 갈라져버린 긴 황색 머리칼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쳐다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불빛이 환한 대로까지 나왔다. 서둘러 탄 전철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 열차는 C역까지 가는 오늘 운행되는 마지막 열차입니다. C역에서 더 먼 곳으로 가실 분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밤엔 달빛도 없습니다. 나는 갑자기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를 잊고 있었다. 그건 내가 세상에 나와서 들은 가장 슬픈 안내방송이었다.
마지막으로 씨티투어버스를 탄 날은 공항 폐쇄조치가 예고된 지 이십구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무렵 R과 나는 입씨름을 하지도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다. 여관에서 그를 만난 후 나는 흥신용역쎈터의 P로부터 몇장의 사진을 받았다. 사진은 아주 낯설었다. 사진 속에 있는 여자와 남자의 얼굴은 열려 있는 창틀에 걸려 아슬아슬하게 보일락말락했다. 그러니까 목 잘린 남녀의 섹스 사진인 셈이었다. 그는 최근 잡은 사진 중에서 가장 리얼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역시 복고풍이 좋단 말이지, 디테일이 충분히 사는 고전적인 사진이 좋아. 나는 그에게 약속한 잔금을 치르고 영수증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헤어지자마자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 사진들을 가족앨범에 붙이고 날짜와 장소를 적은 종이를 끼워넣었다.
도심순환코스의 막차를 타기 전,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패스트푸드점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노란 치즈와 두툼한 고기가 든 커다란 햄버거와 감자튀김 세트를 사가지고 밖이 내다보이는 일자형 의자에 가 앉았다. 햄버거 맛이 좀 이상했다. 쏘스는 물과 기름이 분리되어 쟁반 위로 뚝뚝 떨어졌고, 빵에서는 수돗물 냄새가 났으며 콜라맛도 이상했다. 나는 멍하니 건너편 건물 옥상에 걸려 있는 대형 뉴스화면을 쳐다봤다. 사상 초유의 공항폐쇄, 국경폐쇄 조치. 그때 가게 앞 쓰레기 더미 앞에서 햄버거 집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앞치마를 두른 채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그 직원의 발밑에 죽은 쥐가 뻗어 있었다. 그 직원이 태연히 쥐를 집게로 집어 길 옆 화단의 흙속에 파묻고는 햄버거 집으로 들어왔다. 씨티투어버스에서 만난 그애였다.
버스 출발시간인 열시가 되자 그애가 배낭을 메고 씨티투어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내가 그애한테 먼저 다가갔다. 안녕! 그애가 꾸벅 인사를 받더니 말했다. 지난번엔 감사했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은 물을 두 병 사왔어요. 그애가 배낭을 열고 물 한병을 꺼내주었다. 어둠속이었지만 그애의 손은 나이답지 않게 붉고 뭉툭하게 보였다. 술 취한 외국인 남자 두 명이 운전기사 뒤에 앉아 계속해서 떠들었다. 그애와 나는 생수병을 들고 뒷자리에 앉았다. 생수병에 든 것은 목줄기를 뜨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애는 보리차를 마시듯 생수병에 든 것을 목으로 계속 넘기고 있었다. 그애한테 물었다. 지난번엔 왜 그렇게 토했어? 그애가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말했다. 하루종일 햄버거 냄새를 맡으면 멀쩡하던 속도 뒤집혀요. 게다가 요즘엔 재료공급이 원활치가 않아서 옛날에 통관에 걸려 냉동고 속에 넣어두었던 것들을 꺼내다 쓰거든요, 그 냄새들 정말 끔찍해요. 얼마나 지독한지 제 몸에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몰라요, 제 스스로가 느끼하게 생각돼서 죽어버리고 싶기까지 해요.
외국인 남자들이 귀를 붙잡고 뽀뽀를 해대고 소란을 피우다가 이태원에서 내렸고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애와 나는 말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씨티투어버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해진 코스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돌았다.
동대문시장에서 대학로로 진입하면서 차가 아예 움직이질 않았다. 대학로에서는 영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배꼽을 드러낸 채 웃는 여배우 사진이 도열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 멈췄는데 사람들이 지나갈 틈새도 없이 차들이 다 점령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저 혼자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고 있었다. 그애가 말했다. 제가 옛날에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잡혀간 적이 있거든요. 횡단보도에서는 길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아요.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애들은 눈먼 사람들처럼 허공만 보고 떠들었어요. 그때 잡혀가서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완전히 끝장나는 줄 알았어요. 물론 맞아서 제 얼굴이 이렇게 됐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제 얼굴은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애의 표정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황량했다.
차들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도로 위에 그냥 서 있었다. 운전기사는 시동을 끄고 밖으로 나가 맨손체조를 했고 그애와 나도 엉겁결에 차에서 내렸다. 영화제가 열리는 광장은 울긋불긋한 장식물들과 조명들 때문에 기온이 더 높았다. 광장 여기저기에 붙은 여배우의 휘장 사진이 가끔씩 펄럭거렸다. 막 영화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극장에서 광장으로 쏟아져나왔다. 한쪽에서 여자애들이 긴 머리채를 흔들며 춤을 췄다. 제발 벗겨줘요 랄랄랄라, 제발 벗겨줘요 랄랄랄라, 잠깐 잠깐만이라도 제발 벗겨줘요. 여자애들은 상체를 격렬하게 흔들며 그런 노래를 불렀다. 그 옛날 남자 중창 가수가 불렀다는 ‘한번만 만나줘요’를 패러디한 창녀송이라는 소개까지 덧붙이는 아이들은 아주 유쾌해 보였다. 한쪽에서는 싸움이 벌어졌다. 한 남자애가 상대방 남자애를 때렸는데 피가 났다. 너 오늘 내가 죽여줄까. 서로 질 기세가 아니었다. 다른 한쪽에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녀석이 상대 여자애를 훑어보며 말했다. 뭣같이 생긴 년이. 녀석에게 다가가 멱살을 쥐고 따지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런데 순간 녀석의 등뒤로 들소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들소와 내 눈이 번쩍하고 마주쳤다. 들소는 사람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나타났다. 그때 물류회사 트럭 한대가 수많은 차량들을 피해 광장 한가운데를 향해 질주해 들어오는 게 보였다. 트럭은 눈부신 불빛을 냈고 그때 나는 광장 서쪽 끝 건물에서 광장 중앙을 향해 달려오는 검은 들소를 보았다. 트럭이 브레이크를 잡는 것과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났다. 정지한 트럭 불빛 아래 검고 무거운 피륙을 뒤집어쓴 것 같은 들소가 누워 있었다. 피륙 주변으로 검은 액체가 점차로 퍼지고 있었다. 들소가 죽었다. 죽은 들소 옆으로 다가가 아직도 깜빡이고 있는 크고 물기어린 눈을 내려다봤다. 광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트럭 뒤로 몰려갔고 트럭 안에서 나온 것은 어느 통신회사에서 제공한 샌드위치와 여배우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였다. 내가 들소를 끌고 갈 흰 줄을 찾느라 헤매는 동안 트럭은 광장에서 빠져나갔고 그애도 보이지 않았다.
들소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애가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샌드위치를 받았는지 광장 한구석에 앉아 물먹은 스펀지 같은 표정으로 다리를 긁적거리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비트가 강한 음악이 들려왔고 광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중심을 만들어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대평원에서 쫓기고 있는 들소떼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들소떼는 겁에 질려서 무엇에 쫓기는 줄도 모르는 채 대평원의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참을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먼지가 일어 대평원을 어지럽게 했다. 들소떼는 먼지에 휩싸인 채 저만치 앞 벼랑끝을 향해 맹렬히 달려갔다. 앞에서 달리던 들소들은 뒤에서 달려오는 들소들에게 밀려 높고 가파른 벼랑 아래로 순식간에 떨어져내렸다. 거대한 들소들이 후두둑 벼랑 아래로 떨어질 때, 대평원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창밖에서 긴 싸이렌 소리가 들려온 시간은 자정이었다. 늘 동으로 서로 왔다갔다하던 어항 속의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물고기는 입속에 먹이를 가득 문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그날은 공항 폐쇄조치가 예고된 지 삼십일째 되는 날이었고 예정대로 그날 새벽 자정을 기해 공항은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