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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새만금, 호남평야, 황해도시공동체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ARCHIBAN)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학교 건축대학장.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 및 베네찌아대학 건축대학 겸임교수. 주요 작품으로 예술의 전당, 베네찌아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예술종합학교, SBS 탄현스튜디오, 제주영화박물관, 해인사 신불교단지, 뻬이징 경제개발특구 주거단지, 쿠웨이트 자하라 주거단지, 여의도 마스터플랜 등이 있음. RTV 특집씨리즈 ‘새만금, 대안은 있다’에 주도적으로 참여. 저서로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등이 있음. archiban@kornet.net
* 다이어그램과 도면의 상당부분은 2003년 3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회의’와 뉴욕에서 진행된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 설계스튜디오’와 이딸리아에서 열린 ‘OLBIA EXPO 2003’에서 발표된 자료여서 영문으로 표기되었음을 밝힌다.–필자
1. 머리말: 중용의 길, 창조적 대안을 찾아서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법원에 의한 방조제공사 정지처분 이후로 더욱 가열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농토와 갯벌의 비교우위라든가 담수호의 오염여부 등이 모두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이 논의에 참여해온 수많은 당사자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새만금이 전라북도와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한 다음에야, 바다와 갯벌을 육지와 담수호로 만들겠다는 현재의 새만금사업이 어떤 문제점을 지녔는지를 정확히 논할 수 있다.
필자가 『창작과비평』 작년 겨울호(통권 118호)에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을 발표한 것은 새만금문제를 둘러싼 ‘환경보호 대 지역개발’의 해묵은 논란을 넘어설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었다. 즉 새만금사업 자체는 계속하되 아직 막지 않은 4.5km구간을 그대로 두고 해수를 유통시킨 채 마무리공사를 하고 이미 건설된 방조제를 중심으로 ‘바다도시’를 건설함으로써, 바다와 갯벌도 살리면서 당초 목표인 전북의 획기적 발전도 더욱 확실하게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간척을 하려는 정부측과 간척사업을 중단하자는 환경단체 등 반대측 모두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중용의 안을 제안한 것인데, 대선과정에서 제대로 이슈화되지 못했음은 물론, 대선 이후 ‘새만금 신구상’ 논의에서도 공론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대다수의 환경운동가들은 바다도시 구상도 또하나의 개발논리에 불과하다고 외면하였고, 전북 당국자나 농림부 및 농업기반공사측은 그나마 확보해놓은 사업과 예산에 집착하여 간척사업 이외의 어떠한 대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 자신의 구상 속에는 농지 이외의 용도는 물론, 해수를 계속 유통시키는 방안까지도 포함되었다는 기미가 충분히 엿보였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든 아니면 부처이기주의를 제어하지 못해서든, 모호한 발언과 무결단의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태는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4호방조제 물막이공사가 강행되어 군산반도측의 갯벌 파괴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 상태에서, 담수호의 수질을 확보할 수 없음을 주된 이유로 법원에서 방조제공사의 중단 결정을 내렸다. 담수호의 오염 여부가 결코 새만금문제의 본질은 아니지만 어쨌든 새로운 모색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결정이었는데, 다시 대통령의 조속한 공사재개 촉구 발표가 이어지고 법원에서는 ‘보강공사’를 허용함으로써 물막이공사를 계속 강행할 빌미를 주는 등, 혼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바다도시 구상이 충분한 주목을 못 받은 데는 구상 자체가 아직 미완성 단계인 탓도 있다. 특히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지난번 글은 우선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선언적 제안’의 성격이었다. 이 글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경위에 대해서는 그후 디지털창비 웹매거진(www.changbi.com/webzine) ‘특집’에 실은 「새만금 바다도시: 반론에 대한 답변과 배경설명」(2003. 4)에서, 5년 전 중국 칭화(淸華)대학 및 미국 하바드대학의 동료들과 ‘동북아 도시화’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일부터, 시민방송 RTV 개국(2002. 9)을 계기로 백낙청 교수의 권유로 ‘새만금, 대안은 있다’라는 특별기획에 적극 참여하게 된 일 등을 소개한 바 있다. “첫째 아직 무르익지 않은 구상을 서둘러 발표하게 된 동기를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둘째로 비록 초기단계의 구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장기간의 준비 없이 나온 제안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 과정에서 연구와 설계에 협력한 동료들 외에 지난 2, 3년간 백낙청 교수와 많은 것을 상의했다. 물론 그가 나의 모든 제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새만금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서 상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해왔다. 그간의 경위를 백교수 나름의 관점에서 정리한 ‘중간평가보고’가 중간쎄미나(2003. 3)에서 발표되었고 그후 보완된 내용이 『녹색평론』(2003년 5-6월호)에 「새만금 갯벌보존과 바다도시 논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으니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창비 기고문에서의 ‘선언적 제안’ 이후 좀더 구체화된 구상을 처음 발표한 것은 2002년 12월 2일 중앙일보·RTV·명지대 공동주최로 국내외의 학자와 전문가를 초빙해 마련한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학술회의’에서였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창비 웹매거진에 「새만금 개발의 대안, 바다도시」(2002. 12)를 발표했는데, 올해 3월 14일 다시 전문가그룹과의 워크숍(‘중간쎄미나’)에서 수정 보완된 그림을 제시했다. 이 발제문은 당일 배포된 자료집 이외에는 아직 활자화된 바 없으나, 내용의 일부는 위에서 말한 「새만금 바다도시: 반론에 대한 답변과 배경설명」에 화면자료와 함께 소개되어 있으며 올해 10월 ‘새만금 마스터플랜’과 함께 한글과 영문으로 출간될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지난 5월 22일 원광대 ‘열린 정신 포럼’에서 “새만금 바다도시와 호남평야 도시연합”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또 한번 수정된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의 대중강연이라 자세한 설명을 할 기회도 없었지만,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했던 ‘호남평야 도시연합’ 구상을 부각시키는 것이 그 강연의 주목적이었다. 애초부터 새만금 바다도시는 호남평야 도시연합의 형성 없이는 불가능하고, 역으로 호남평야 도시들의 상호연계된 발전 또한 새만금 바다도시를 통한 황해도시공동체로의 열림이 절대적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이번 글에서 그동안의 구상들을 총정리해서 개념도(槪念圖)로서는 거의 완성된 안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본고 4장에 가서 최근의 구상을 설명할 예정이기도 하다. 작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원고나 12월 국제회의 당시의 마스터플랜을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많은 면에서 변화가 있음이 눈에 띌 것이다. 2003년 3월의 중간쎄미나 당시의 수정된 마스터플랜과 비교한다면 항만과 박람도시에 대한 구상에는 변화가 없으나 봉화산 일대의 ‘중간도시’를 없애고 기존의 군장공단과 과거의 간척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 구상의 현실성을 높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의 완성된 그림’과는 거리가 멀고 그사이 준비했던 구체적 자료도 대부분 생략하기로 했다. 필자의 연구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이 너무도 유동적이며 혼란스러운 상황인 만큼 일정한 신축성을 남겨둘 필요를 느꼈다. 또 한가지는,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어쨌든 전체적인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필자가 그려낸 바다도시 계획에서 특정부분만을 임의로 떼어내어 전혀 다른 목적에 편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구상 자체에 대한 합의가 좀더 무르익을 때까지 아껴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시급한 것은 국민들과 전북도민들이 새만금사업에 따른 득과 실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어떻게 내릴까 하는 기본적인 문제이다.
‘새만금사업의 득실’을 말할 때 ‘새만금의 싸이트’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부터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간척사업 대상에 해당하는 방조제 안쪽의 바다와 갯벌 및 하구 일대가 ‘새만금 제1싸이트’라고 한다면, 정작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직접적 영향을 받는 호남평야는 ‘새만금 제2싸이트’이며, 새만금 바깥바다와 백두대간 사이 전북 일원이 새만금사업의 영향권 안에 있는 ‘새만금 제3싸이트’가 된다. 이들 각 싸이트의 입장에서 새만금사업을 통해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바다를 막아서 새만금 제1싸이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2만8천ha의 농토와 1만2천ha의 담수호이며, 신구상기획단이 의도한 대로 설계변경을 한다 해도 공단·물류기지·관광단지 등을 위한 토지뿐이다. 전북의 인구와 산업경쟁력을 생각해본다면 기존의 농토와 공단을 활성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한 일이지, 농토와 공단을 더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얻을 수 있는 것은 경쟁력없는 농토와 공단 그리고 오염될 수밖에 없는 담수호인 것이다.
그에 비해 현재의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잃게 될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새만금이 가진 자연이고, 둘째는 새만금과 호남평야와 전북의 더 큰 미래이다.
환경단체들이 지난 수년간 보존을 주장해온 갯벌은 새만금사업으로 해서 잃게 될 자연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만경강·동진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생긴 하구갯벌인 새만금은 세계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은 인류의 자연유산이다. 그러나 갯벌말고 또 잃게 되는 것이 만경강과 동진강의 생명이다. 호남평야는 만경강·동진강에 의해서 생명을 갖게 되는데 갑문으로 최소한의 유통만 남긴 채 방조제로 이들의 흐름을 막아버리면 두 강과 호남평야는 생명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새만금을 막으면 백두대간이 호남평야를 지나 새만금으로 이어지던 것이 차단돼 한반도 생태계의 큰 흐름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방조제를 완전히 막으면 세계적인 하구갯벌이 사라지고, 호남평야와 두 강이 죽고, 백두대간과 서해바다 사이의 흐름이 차단되는 것이다.
새만금사업으로 영원히 잃게 되는 자연에 대해서는 그동안 환경운동가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호남평야와 전북의 더 큰 미래를 잃게 된다는 인식은 부족했던 것 같다. 하기는 새만금과 호남평야와 전북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발론자들도 인식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만금에서 호남평야와 전북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바다와 갯벌로 되어 있는 21세기 한반도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논리로 잘못 시작된 사업이었건 어쨌건 그간의 대규모 방조제공사를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베네찌아의 라구나(Laguna, 內海) 못지않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거대한 안바다가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아직은 바닷물이 유통하고 있는 새만금 안바다를 어떻게 해야 황해공동체의 요충이 되게 할 수 있는지, 호남평야·도시연합은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 참다운 지방분권을 이룰 수 있는 전북의 발전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구상을 전제로 새만금의 미래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는 일방적인 아집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 원칙없는 절충으로도 확보될 수 없다. 새만금과 호남평야와 전북의 미래를 여는 창조적 대안이 필요하고 비상한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개발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개발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과 환경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동시에 얻으면서 실제로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어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새만금이 가야 할 중용의 길이다.
이를 위한 발상의 전환을 필자는 지난번의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 이래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본고에서 일부 되풀이되는 것도 있겠지만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21세기가 어떤 시대인가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여 새만금과 호남평야의 가능성을 새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2. 한반도의 21세기
(1) 황해도시공동체의 도전과 한반도 공간전략
21세기의 가장 괄목할 세계경제권의 하나가 될 황해도시공동체의 부상과 황해연안 대도시권(메가씨티, mega-city)들의 등장은 새로운 동북아 경제중심들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뻬이징(北京)-톈진(天津), 따롄(大連)-션양(瀋陽), 양쯔(揚子)델타-샹하이(上海) 등이 국가스케일의 경제권역을 이루며 황해경제권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화뻬이(華北)지역, 동북3성, 양쯔강 유역으로 확대되는 동북아 경제중심을 이루어가고 있는 데 비해, 한반도는 아직도 황해경제권, 황해도시공동체의 도전에 따른 한반도 공간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황해경제권에서 한반도의 역할을 알기 위해 황해가 동북아의 경제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백여년 전 한반도의 상황과 비교해보자.
명(明)나라 이래 동아시아 3국의 쇄국정책으로 활기를 잃었던 황해가 19세기말의 격변과정에서 동북아의 중심으로 다시 등장하면서 한반도에는 새로운 항만도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항만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철도가 부설되고 한반도의 국토인프라가 크게 변했다. 인천·목포·부산·신의주·원산 등이 한반도의 주요 항만으로 등장하고 서울과 연결되는 경인선·호남선·경부선·경의선·경원선이 한반도의 기간인프라가 되었다. 어떤 의미로 삼국시대 이후 지속되어온 한반도의 도시공간에 거대한 변화가 온 것이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한반도가 분단된 후 근 50년 동안 한반도 서해안과 중국대륙의 동해안을 아우르는 황해 일원은 다시 아무런 교역도 일어나지 않는 죽은 바다가 되었고 한반도의 공간형국은 분단체제로 재편되었으며, 아직도 그것이 한반도의 기본적인 공간구조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 중국의 개방이 황해안(및 동중국 해안)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중국과의 교류가 재개되면서 19세기 후반과는 규모와 차원이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가 바다공항의 등장과 고속철도다.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교역은 항만과 철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공항이 바다에 자리잡으면서 공항과 항만이 바로 연결되고 고속철도를 통한 내륙도시와의 새로운 네트워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지만 유럽연합과 달리 철도를 통한 소통의 비중이 매우 낮은 황해공동체에서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변화이다.
항만이 조성되고 철도가 부설되는 것이 20세기 중반의 산업화사회의 도시발전 형국이었다면, 20세기 후반부터는 바다공항과 항만의 글로벌 인프라가 고속철도로 연결된 내륙도시들과 함께 거대 어번 네트워크(urban network)를 구축하면서 준(準)국가적 스케일의 경제권역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싱가포르·홍콩·샹하이 등은 공항과 항만이 고속철도로 내륙도시와 연결되어 준국가적 스케일의 경제권으로 성장하였다.
중국 동해안이 변화하고 있는 동안 한반도에서는 물류를 중심으로 항만도시들이 확대되고 있을 뿐 항만과 바다공항과 내륙도시가 결합하여 강력한 도시권역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인천공항이 들어서서 인천항과 서울이 연계되어 수도권 일원을 황해경제권의 주요 경제권역으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한반도 변화의 시작이었으나 고속철도를 통한 해안도시와 내륙도시의 일체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수도권 일대는 과밀상태인데다 국토의 나머지를 황폐화하는 과잉집중 현상으로 효율성이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수도권 과잉집중을 해소하면서 중국의 동해안 경제중심들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중심이 서해안에 자리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소도시들이 연합하고 주변의 산업클러스터(industrial cluster)및 농촌지역과 더불어 자족할 수 있는 규모의 어번 클러스터(urban cluster)를 이루어 메가씨티와 경쟁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21세기가 요구하는 한반도 공간전략에서 필수적이면서 상징적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입지가 새만금 일원인 것이다.
19세기 후반 인천이 한반도 공간전략의 한 거점으로 역할했던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가진 것이 새만금 일원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인천항 계획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천은 제물포라는 어촌에 불과했다.) 당시 인천이 가졌던 가능성보다 오늘 새만금이 가진 가능성이 더 크다. 우선 그 스케일에 있어 황해 일대에 그만한 곳이 없고, 인천·목포·광양·부산을 잇는 해안링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에 적절한 위치일 뿐 아니라, 거대한 안바다라는 아무도 모방하기 힘든 호재를 뜻밖에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호남평야의 ‘미개발’ 덕분에 거대도시가 없고 낡은 산업인프라가 적어서 중소도시들과 농어촌이 결합된 새로운 유형의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기에는 오히려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전북의 발전은 물론 21세기 한반도의 생존전략에도 필수적인 황해도시공동체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 있는 곳이 새만금인 것이다.
(2) ‘동북아 경제중심’과 지방분권
동북아의 경제중심은 국가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단위를 초월한 복수의 중심적 경제권역을 상정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경제중심’은 구체적인 경제권역을 단위로 생각해야 하며, 동북아에서 그것은 여러 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뻬이징-톈진, 따롄-션양, 샹하이-양쯔델타, 홍콩-션젼(沈圳)과 서울-인천, 오오사까-코오베, 토오꾜오-요꼬하마 등이 현재 ‘동북아의 경제중심’의 이름에 값하는 경제권들이다.
그러므로 동북아 경제중심이 될 수 있는 도시권역을 만들어내는 것이 국정과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말과 지방분권이라는 말은 같은 말인 것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은 국가의 목표이고 지방분권은 지방의 목표인 것이 아니다. 동북아 경제중심이 될 만한 수도권 이외의 지방을 만들어내는 일이 바로 국정지표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방분권이라는 이름 아래 그나마 경쟁력있는 수도권 도시요소들을 지방에 보내는 것은 지방분권이 아니라 지방분배이다. 제대로 된 지방분권은 국가의 지방화가 아니라 지방의 국가화, 더 정확히 말하면 준국가화에서 이루어진다.
지방으로 내려간 수도권의 핵심기능이 지방에서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정부종합청사가 대부분 내려가 있는 과천이나 과학기술인력이 대거 이전한 대덕이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수도권 이외에 그나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곳은 수도권의 기능이 옮겨간 곳이 아니라 스스로 산업을 창출해낸 지방이다. 울산-포항-대구-구미 일대와 부산-마산-창원-광양 일대의 산업클러스터는 각기 수도권의 기능과 상관없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된 곳들이다. 전통적 교육도시였던 대구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의 인력을 바탕으로 울산과 포항의 항만산업도시와 구미의 내륙공단들이 대구·경북 일원의 산업클러스터를 이루었으며 부산항의 물류를 바탕으로 마산·창원공단과 거제·광양 항만도시가 부산·남해안 산업클러스터를 이룬 것이다.
문제는 대구·경북 일원의 산업클러스터를 지방국가라 할 만한 단계로 도약하게 하는 국가전략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구·경북 일원의 산업클러스터가 천년도시 경주의 역사문화 인프라를 중심으로 경북 일원의 중소도시와 농촌을 집합시킬 때 비로소 지방국가화 내지 준국가화가 가능하고, 부산-마산-창원-광양을 잇는 남해안 산업클러스터도 가야 일원의 문화권을 중심으로 경남 일원의 해안도시와 내륙을 집합시켜 남해안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어야만 준국가 스케일의 지방분권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주로 산업적인 상호연관성에 국한된 ‘산업클러스터’와, 장기적으로도 수도권의 흡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지방국가적 성격의 경제권에 해당하는 ‘어번 클러스터’(都市集積體 또는 都市星群)의 차이다. 동시에 이는 특정한 대도시가 중심이 되어 주변도시들을 종속시켜 대도시 중심의 거대도시권역을 이룬 ‘메가씨티’와도 대비되는 개념이며, 메가씨티와 경쟁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권역이다.
대전 중부권과 호남 일대에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산업클러스터도 없고 그것을 선도할 산업이나 특성화할 만한 인적·물적 자원도 부족하다. 이럴 때 대전·중부권이나 호남권이 지방분권을 이루어 지방국가가 될 만한 경제적 동력을 가지려면 황해경제권이라는 더 큰 영역에서 역할을 찾아야 된다. 지방분권은 한반도 안에서의 역할분담이 아니라, 황해경제공동체·동북아경제권에서 지방이 자기 역할을 찾아 자립하여 경제력을 갖도록 하는 요소를 찾고, 그러한 요소를 개발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새만금과 호남평야 일원이 동북아와 황해경제공동체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 일어서는 일이 곧 새만금이 가야 할 길인 것이다.
(3) 해안과 내륙의 도시연대
21세기 한반도의 또 하나의 도전은 해안과 내륙의 도시연대이다.
신라를 중심으로 한반도가 통일되면서 통일신라는 삼국시대에 비하면 내륙에 치중한 제한된 발전만을 이루었다. 후삼국시대에 들어 해양세력이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지방분권시대가 도래했다. 이때는 고구려의 만주 벌판을 포기한 한반도 안에서의 3국 정립이었지만 그래도 고려·후백제·신라가 나름대로의 영역을 가지고 지리적 가능성을 극대화한 시기였다. 고려시대까지도 이러한 전통이 일부 이어졌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내륙 중심의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면서 지방은 중앙에 종속되어갔고 그것이 한반도가 근대 이후 일본열도에 뒤떨어지게 된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일본에 합병된 후 한반도의 공간구조 재편이 이루어졌다. 다섯 항구로부터 서울에 이르는 경부선·경의선·경인선·경원선·호남선이 국토의 기본인프라가 되면서 비록 제한적이지만 대륙과 해양으로의 열림과 연대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식민통치와 대륙경영의 방편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의 균형적 개발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남한과 중국의 교류가 차단된 후 경부선이 한반도 공간구조의 기본축이 되면서 수도권과 영남 일원에 산업화와 도시화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 황해경제권이 급부상하면서 서해안의 가능성이 확대되었으나 아직은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다.
부산과 광양은 아시아와 미대륙을 잇는 라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항만으로서의 경쟁적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황해도시공동체의 허브로서는 적절한 입지가 아니며, 반면에 서해안 항만들은 이제까지 한반도와 중국과의 한정된 교역을 담당해온 수준이므로 자립적 스케일을 갖지 못해서 새로운 황해시대 항만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수도권이 2천만 인구의 산업과 시장을 배경으로 중국 동해안의 주요 도시권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를 가진 데 비해 서해안 항만들은 배후지역이 취약하고 연계지역이 제한되어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뻬이징-톈진과 따롄-션양 등은 화뻬이지방과 동북3성을 아우르는 준국가 스케일의 도시권역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의 서해안 도시는 스케일과 콘텐츠 모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해안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스케일을 키우고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안과 내륙의 도시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서해안이 황해경제권의 주요 도시권으로 부상하려면 항만과 공항과 내륙의 도시들을 연합하고 중국과의 교역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산업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 가능한 지역은 수도권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달한 수도권의 경쟁력을 더 올리기는 어렵고 오히려 하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황해경제권에서 한반도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해안과 내륙의 도시연합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한 곳은 현재 호남평야 일원뿐이다. 새만금 일원에 황해의 거점항만과 발해만의 허브항만을 만들고, 허브항만을 중심으로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하며, 호남평야의 도시연합과 함께 전북의 농촌도시를 연대하여 어번 클러스터를 만들면 황해경제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스케일과 콘텐츠를 갖춘 경제중심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한반도에서 그나마 국제경쟁력 있는 수도권과 대구·경북의 산업클러스터, 부산-광양의 산업클러스터 등은 모두 해안과 내륙의 도시연합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새만금을 생각해야 한다. 새만금이 바다로 남아야 인천·목포·광양·부산을 잇는 해안링크의 건널목 역할을 할 수 있고 새만금을 중심으로 호남평야의 도시를 해안으로 끌고 나와 황해도시공동체의 주요 어번 클러스터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백두대간-서해안 어번 링크와 호남평야 도시연합
(1) 서해안과 백두대간 사이의 어번 링크
새만금의 미래를 이러한 큰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은 『창작과비평』 작년 겨울호에 다섯 개의 키워드를 말할 때부터 거듭 강조해온 점이다. ‘농토(또는 산업단지)냐 갯벌이냐, 또는 담수호가 오염될 것이냐 안될 것이냐’는 논란의 차원을 넘어 ‘황해도시공동체’라는 첫번째 키워드에 유념하면서 새만금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다도시’와 ‘호남평야 도시연합’ 등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도출되었다.
키워드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그사이 약간의 변화도 있었다. ‘중간도시’가 주요개념으로서는 삭제되었으며, 남은 개념들도 딱히 다섯 개로 고정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황해도시공동체’와 더불어 ‘바다도시’와 ‘도시연합’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현실적으로 바다도시와 도시연합을 가능케 하는 것이 그간의 방조제공사로 형성되었다가 지금 소멸할 위기에 놓인 ‘안바다’이다.
이번 글에서는 호남평야 도시연합의 개념을 더욱 확대하면서 새만금 안바다 및 바다도시와의 연관성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백두대간에서부터 출발하여 논의를 보강하고자 한다.
아시아대륙이 태평양으로 뻗어나간 한반도에서 척추와 같은 것이 백두대간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이러한 생태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어 삼국시대 때 이미 세계 최초로 추정되는 강과 바다를 조절하는 벽골제와 황등제가 만들어졌고 호남평야와 새만금 일대가 거대한 생태계의 보고로 유지되어왔다. 그러다가 산업사회에 들어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태계의 파괴가 시작되었다. 농경사회에서뿐 아니라 산업사회나 정보화사회에서도 백두대간과 거기서 강물이 흘러드는 바다 사이의 생태계 흐름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미 도시화가 진행된 이상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기 위한 어번 링크(urban link, 도시연대)가 필요하나 메가씨티의 경우와 같은 농촌의 도시화가 아닌, 도시와 농촌의 공존을 전제로 한 도시간 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새만금 갯벌은 백두대간과 서해바다가 만나서 이룬 생명의 공간이다. 새만금은 서해안의 해안링크와 백두대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한반도의 단전(丹田)과 같은 곳이다. 새만금을 기점으로 호남평야의 도시들과 전북 일원의 농촌과 어촌이 연대하여 어번 클러스터를 이루려면 자연의 흐름을 따라 바다와 내륙을 잇는 어번 링크를 이루어야 한다. 수도권 일원에서는 비록 메가씨티의 존재로 인한 생태계의 왜곡 문제가 있으나 어쨌든 백두대간과 해안 사이에는 어번 링크가 성립하고 있지만, 새만금 일원과 백두대간 사이는 어번 링크가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다. 새만금 안바다의 산업클러스터와 호남평야의 도시연합과 전북 일원의 농어촌이 집합하여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고군산군도와 백두대간 사이의 어번 링크를 이루는 종합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2) 호남평야 도시연합과 통합신도시
현재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한 전북 일원에 2000년부터 2020년까지 4차 국토종합개발에 의한 여러가지 계획이 진행중이지만, 원대한 구상 아래 함께 이루어진 계획이라기보다 각 시와 군이 각자 개발한 발상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현재 호남평야에서 기획하고 있는 신도시개발을 보면 전주 업무행정 신시가지, 김제 새만금 배후신도시 등 모두 7개의 신도시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7개의 신도시를 건설해서는 어느 곳도 제대로 성공하기 힘들다. 또한 이미 세 곳에 국가공단이 건설되었고 지방산업공단도 12군데나 만들어지고 있으며 첨단산업의 원형벨트와 생명공학과 문화산업 써클도 계획되고 각 도시마다 신도시를 계획하는 등 인구 200만도 되지 않은 전북지역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291면의 그림 참조).
중심도시인 전주와 해상교통의 관문인 군산과 내륙교통의 요충인 익산을 집합시키는 정도의 스케일로는 산업클러스터를 이룰 수 없다. 호남평야의 도시들이 도시연합을 이루면서 핵심지역을 구축하고 그 핵심지역이 전체 어번 클러스터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해안링크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공항 사이에 군산·익산·전주·김제를 잇는 통합신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5월의 원광대 강연에서 전주와 익산을 연결해 두 도시를 잇는 ‘회랑도시(回廊都市)’의 건설을 제안한 바 있으나 ‘통합신도시’를 거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실은 둘이 비슷한 개념으로서, 기존의 신도시 개념과 달리 기존 도시들을 연결시키면서 유기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구역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한다. 아직 연구가 미비한 탓도 있지만, 이 문제는 통합신도시의 주요소가 되는 고속철도와 국제공항의 입지와 관련된 주민들의 이해득실, 부동산문제 등 온갖 사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때이른 공개는 그야말로 공론의 장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어쨌든 호남평야의 네 도시가 함께할 수 있는 통합신도시를 집중개발하고 항만과 국제공항으로 이어지는 외부세계와의 네트워크를 호남평야 내부의 인프라와 연계할 수 있는 강력한 어번 링크를 구축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호남고속철도, 그리고 군산항과 김제공항을 잇는 어번 링크 속에 도시마다 계획중인 금융과 정보와 인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전북 전체가 농업단지와 관광단지이면서 정보와 인력과 자본이 집중된 정보산업도시권역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호남평야 통합신도시를 중심으로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서 강력한 경제권을 이루는 것이 바로 호남평야 도시연합이 나아갈 길이다. (원래는 정읍을 포함한 다섯 도시의 도시연합을 구상했으나 통합신도시로 한층 긴밀하게 연결한다고 할 때 정읍을 포함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정읍은 무주·남원 등과 더불어 좀더 넓은 범위의 어번 클러스터의 일원이 되어야 하리라 본다.)
(3) 황해공동체의 공동시장과 물류기지와 사계절 관광단지
그러나 아무리 원대하고 훌륭한 계획이 있더라도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려면 전북이 외국자본을 유치하거나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신기술을 만드는 길밖에 없는데 지금 전북의 인구와 경제규모로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게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눈을 바깥으로 돌려야 한다. 앞으로 세계최대의 시장은 중국이며 황해경제권은 중국시장의 핵심지역이다. 그런데 바로 호남평야를 황해를 향해 열어주는 새만금에 지난 12년 동안 1조5천억원을 들여 방조제를 쌓아 황해에서 가장 큰 안바다를 갖게 된 것이다.
황해가 세계최대의 경제권역이 된다면 그 어딘가에 주요도시권역간의 교역과 교류의 중심이 되는 공동시장과 물류기지가 있게 마련이다. 지식정보사회가 되어도 재래시장은 커지고 물류는 더욱더 다양해진다. 유럽에서 끊임없이 열리고 있는 메쎄(Messe, 견본시장 박람회)는 결국 재래시장이 현대화·세계화한 것이다. 국가보다 도시권을 중심으로 무역이 이루어질 때 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야말로 어떠한 신기술보다 앞선 산업이다. 황해경제권의 공동시장이라면 모든 경제권으로부터 접근이 양호해야 하고 시장중심이 될 만한 스케일이 있어야 한다. 인천공항이 당분간 허브공항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황해는 상대적으로 작은 바다이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신기술 선박으로 다섯 시간 안에 중국 해안과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 새만금은 허브공항과 직접 연결되며 황해안도시군들과 직접 배로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바깥바다의 풍랑으로부터 보호되는 1억2천만평의 안바다가 만들어져 있어 황해공동체의 공동시장, 허브마켓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중국 해안에 이만한 크기의 안바다가 필요하다 해서 새롭게 만들자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1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황해경제권의 공동시장을 만들려면 황해의 메가씨티와 어번 클러스터에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1억평 정도의 안바다가 필요한데 그것이 새만금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새만금이 황해경제권의 물류기지가 되어 황해도시공동체의 상설 엑스포가 열리는 공동시장이 되고 세계적인 메쎄의 아시아본부가 새만금에 만들어지면 어떠한 신기술도 이루지 못하는 새로운 산업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새만금 바다도시 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검토된 것이다. 새만금 제1싸이트에 황해공동체의 물류기지와 공동시장을 이룰 수 있으면 새만금 제2싸이트에 호남평야 도시연합을 이룰 수 있고 서해안과 백두대간을 있는 새만금 제3싸이트를 세계적인 관광단지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만금 제3싸이트에 관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호남평야의 바깥 백두대간의 덕유산 무주리조트의 존재를 짚어보려 한다. 고군산군도 바깥바다와 방조제 일대에 세워질 세 바다도시, 호남평야 네 도시들이 서해안과 백두대간을 연결하는 어번 링크를 이룰 때, 새만금 바다도시가 무주리조트와도 접속되는 대구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새만금은 호남평야만이 아니라 백두대간까지를 자기 것으로 삼게 되고 덕유산과 무주리조트는 호남평야와 새만금 안바다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 관광지가 되려면 사계절 리조트가 되어야 한다. 새만금 제3싸이트에 산과 바다를 연결하고 봄과 가을을 아우를 수 있는 관광을 결합시키면 여름에는 고군산군도를 중심으로, 봄·가을에는 새만금 안바다를 중심으로, 겨울에는 무주리조트를 중심으로 한 사계절 관광을 이룰 수 있다. 황해경제권·황해도시공동체의 관광수요는 이미 세계 최대의 규모에 속하며 역내 관광수요가 대부분이다. 황해공동체가 해안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수요는 바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큰 추세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해안과 해안을 잇는 관광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해안과 내륙이 이어지며 바깥바다와 안바다, 안바다와 호남평야, 호남평야와 백두대간이 서로 이어지면서 사계절을 순환하는 관광이 만들어질 때 새만금 바다도시와 무주리조트에 황해경제권의 관광중심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만금 제1싸이트에 물류기지와 공동시장이 들어서 산업클러스터를 이루고 새만금 제2싸이트에 통합신도시가 호남평야 도시연합을 이루고 새만금 제3싸이트가 사계절 관광단지가 되면 전북의 신산업의 미래가 열릴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새만금에 있는 것이다.
4. 방조제의 세 바다도시
새만금 바다도시는 안바다를 중심으로 방조제와 군산반도, 고군산군도, 변산반도 사이에 황해경제권의 물류기지인 복합항만과 공동시장인 장터도시와 해양생명공학도시인 해상공단으로 이루어지는 산업클러스터 도시군이다.
고군산군도와 2호방조제의 복합항만과 4호방조제와 군산반도의 해상공단과 1호방조제와 변산반도의 장터도시로 이루어지는 산업클러스터는 새만금 안바다를 중심으로 호남평야 도시연합과 전북 일원의 농어촌을 연대하여 준국가적 경제권역을 이루는 기반이 될 것이다.
(1) 새만금 복합항만
새만금의 바다와 갯벌의 생명적 가치는 환경운동·생태운동에서 누누이 강조해왔다. 특히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에 형성된 하구언 갯벌은 갯벌 중에서도 특히 소중한 자연유산일 뿐 아니라 백두대간으로부터의 생태계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생태계의 요구가 전북의 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새만금의 항만으로서의 역할과 부합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새만금은 항만 역할을 한 적이 없지만 항만으로서 서해안 어디보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항만물류의 국내외 여건변화에 따른 새만금의 항만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부산·광양이 컨테이너 중심 허브항으로 동북아권역 환적화물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중국경제의 급부상으로 인한 중국 북안 도시권으로의 항만물량 증가를 겨냥한 서해안의 새로운 거점항만이 필요하다.
새만금 지역은 중국과의 교역을 대상으로 할 때는 서해안에서 가장 유리한 자리에 있다. 새만금 지역은 여름철의 태풍, 겨울철의 북서방향의 계절풍을 받는 지역이나 비안도와 고군산군도 사이에 방파제를 건설하면 훌륭한 항만을 건설할 수 있다. 좋은 항만이 되자면 수심만이 아니라 조류와 해류, 수시로 불어오는 바람·태풍·해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라야 된다. 새만금 바깥바다는 고군산군도와 비안도가 바람을 가로막고 바깥으로 열린 깊은 수심을 갖고 있으면서 태풍과 해일로부터 보호되는 바다이다. 게다가 황해경제공동체 안에서 특히 유리한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황해권의 메가씨티인 서울-인천, 뻬이징-톈진, 샹하이-난징(南京) 권역은 과밀현상으로 허브기능의 효율이 저하되고 있어 대안으로 새만금 항만과 바다도시 건설의 가능성이 크며 선박의 대형화·고속화로 인한 기항지 제한으로 수심이 얕은 중국 동북해안의 환적화물이 많아 항만조건이 양호하고 가장 근접거리에 있는 새만금 지역이 중계물류 거점항만을 건설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바다도시 구상 가운데 항만 부분에 대해서는 베네찌아를 연상하는 데서 오는 불필요한 오해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새만금에는 베네찌아에 해당하는 도시가 있을 수 없고 새만금 복합항만의 주된 항만은 안바다가 아니라 2호 방조제 바깥에 건설되는 외항이라는 점을 밝힌 뒤에도, 방조제 미완성구간(Gap)의 유속(流速)이라든가 새만금 일대의 조차(潮差, 조석간만의 차이) 등에 대한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디지털창비 웹매거진의 「새만금 바다도시: 반론에 대한 답변과 배경설명」에서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새만금은 고군산군도와 비안도가 천혜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새만금의 해상조건은 기존 서해안 항만도시인 인천, 군산, 평택보다 좋다는 것은 항만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2호 방조제와 고군산군도와 비안도 사이의 새만금 외항 예정지는 수심이 15~20m에 이르고 북서풍을 고군산군도가, 남서풍을 비안도가 막아주고 있어 서측에 인공방파제를 구축하고 2호 방조제 안과 밖에 2원구조의 외항과 내항을 만들면 서해안 특유의 최고 항만을 만들 수 있다. (…) 주 항만이 2호방조제 외곽에 건설되므로 Gap 1, Gap 2의 유속은 문제될 것이 없다. 새만금방조제 개방구간은 4〜5m/s의 빠른 물살 때문에 배가 24시간 출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주항만 예정지인 고군산군도와 2호 방조제 사이는 유속 1m/s 정도이므로 선박의 입출항에 지장이 없고, 외항에서 내항으로 드나드는 배들만이 유속이 빠른 시간을 피하면 되며, 방조제 개방구간의 유속도 베네찌아의 라구나 입구들처럼 보조방파제를 건설해서 유속을 조정할 수 있다.
새만금 항만은 고군산군도와 세 방조제와 Gap 1, 2, 3을 포함한 안바다 모두를 대상으로 여러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크고 작은 항구들의 복합체로서, 고군산군도의 크루즈항만과 고군산군도와 비안도를 연결하는 물류기지와 2호방조제와 물류기지 사이의 외항과 방조제 안의 내항 모두를 아우르는 복합항만(port complex)인 것이다.
조석간만의 문제는 물론 항만뿐 아니라 바다도시 건설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도 위의 글에서 필자는 “베네찌아는 조위간만의 차이가 1m 미만이지만 새만금에서는 6〜7m나 되기 때문에 도시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베네찌아는 바로 바다에 면해 건축된 도시이고 새만금 바다도시는 평균 15˚ 경사인 방조제와 경사가 그보다도 더욱 완만한 해안에 세우는 건축물들이므로 6〜7m의 간만의 차이는 실제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직접 바다에 닿은 부분도 이중 데크(deck)로 되어 있어 오히려 다양한 입출입이 가능하다. 인천항의 경우 조위간만의 차이가 최고 11m나 되지만 바다에 면한 도시건설이 가능한 것은 서해안의 완만한 경사로 인해 조위의 차이가 수백 미터, 많게는 수 킬로미터 이상의 너비에 걸쳐 반영되기 때문에 건물에 닿는 수면의 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임을 해명한 바 있다. 물론 건물의 일부는 인공섬에 지어지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안바다 내부에 신축될 방조제로 막힌 공간이므로 조차가 문제될 바 없다.
방조제의 연장공사가 ‘천문학적 비용’을 소요할 것이라는 또다른 문제제기도 있다. 비용문제는 구체적인 설계를 놓고 예상 지출과 이득을 동시에 검토할 문제지만, 간척을 완료해서 농지나 공장부지 또는 지상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비하면 오히려 약소하다 할 것이다. 간척공사를 주장하는 측에서 새만금 항만 제안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으나 새만금 항만은 안바다가 있어야 가능한 복합항만인 점을 알아야 한다. 새만금 안바다가 없으면 새만금 항만은 황해경제권의 물류중심과 공동시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2) 새만금 장터도시
새만금이 황해경제권의 공동시장 허브마켓(hub market, 거점시장)이 되려면 호남평야 도시연합의 성립·발전도 중요하지만 새만금 자체에 황해도시공동체의 스케일과 콘텐츠를 감당할 만한 입지와 크기를 갖춘 장터도시가 자리잡아야 한다. 새만금 바다도시의 일환으로 메쎄씨티(Messe city, 박람·견본시장 도시)를 처음부터 구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황해공동체는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안공동체이므로 모든 곳으로부터 접근이 가능한 바다 위의 공동시장이 이상적이다. 따라서 파랑과 태풍과 해일로부터 자유로운 호수와 같은 안바다가 필요한 것이다. 황해경제권역에서는 샹하이와 새만금이 황해도시공동체의 공동시장이 될 만한 입지와 스케일을 갖고 있다. 샹하이도 루챠오(蘆潮)신항만도시 건설을 기획하고 있으나 이미 새만금은 10년을 앞서 있는 것이다.
시장을 육상에 만들려면 엄청난 마켓 인프라를 만들어야 되지만 안바다에 시장을 만들 때는 바다 위에 수상도시 형태로 시장을 쉽게 띄울 수 있다. 세계적 메쎄를 현지에서 단기간의 박람회가 끝나는 대로 통째로 싣고 와서 새만금 안바다에 띄우고, 방조제와 인공섬에 황해경제권(내지는 중국의 내륙도 포함하는 동아시아) 주요도시들의 패빌리언(pavilion, 박람회의 분관·전시관)을 지을 부지를 제공하여 엑스포 상설관과 동아시아 도시관을 만들어 전세계의 바이어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오게 하는 동북아의 장터를 세우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아시아 관문도시’(Asian Gate-city)라고 부르기도 했다. 바다를 통한 황해경제권에서의 직접적인 접근과 동북아 허브공항인 인천공항을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서울·수도권과 고속철도라인의 로컬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세계적 장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메쎄씨티의 중심구역은 기존의 구상에서 밝힌 대로 1호 방조제 안쪽에 담수호와 함께 자리잡은 인공섬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항만의 경우처럼 장터도시 또한 바다도시 전체가 복합적인 메쎄씨티이자 관광도시라는 발상이 중요하다. 이제 시장기능은 컨벤션 및 관광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컨벤션은 결국은 또다른 형태의 시장이다. 새만금시장은 거대한 도시관광과 함께할 것이다. 고군산군도의 바다가 33km의 도시화된 방조제를 통해서 안바다를 거슬러 호남평야를 지나 백두대간에 이르는 자연의 큰 흐름 속에 만들어지는 도시관광이 새만금 장터의 또하나의 모습이다. 장터는 축제의 장소이고 시장의 장소이며 관광의 장소이기도 하다. 관광이라는 관점에서도 새만금 전체, 즉 고군산군도나 방조제 일부의 해상공원뿐 아니라 항만과 해상공단 및 안바다의 갯벌 모두가 관광자원이다. 이번 글에서 ‘관광도시’라는 항목을 따로 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방조제 위에 건물을 짓는 작업의 공학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작년 12월의 국제학술회의에서 예술의 전당, 이국빌딩, 인천공항 등을 구조 설계한 이창남 센구조연구소장의 검증이 있었고 「새만금 바다도시: 반론에 대한 답변과 배경설명」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는 메쎄씨티의 인프라 일부가 될 담수호에 관해서만 설명하기로 한다.
기존의 새만금 간척사업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공인된 것이 담수호의 오염 가능성이지만, 실은 전북의 실질적인 수요라는 면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타당성을 지니는 대목이 담수호 조성이라 볼 수 있다. 전북의 물 수요는 실제로 심각하며 새만금을 어떤 식으로든 개발한다면 용수 문제가 특히 절실해진다. 더구나 새만금과 호남평야 일대가 준국가적 자립성을 지닌 경제권역으로 성립하려면 용수를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새만금 간척지의 담수호가 시화호 이상으로 오염될 것이라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동진강과 만경강의 흐름을 방조제로 막아서 조성하는 호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강은 방조제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수질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강물이 바다로 흐르게 해놓은 채 수질을 개선하기는 그래도 쉬운 편인데다, 바다도시의 담수호는 수질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동진강과 담수호 사이에 수문을 설치하여 강물의 수질이 가장 좋은 시기에 취수하게 된다. 이 담수호를 통해 약 3억톤의 용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담수호를 만들자면 방조제로 바다를 막고 내부에 방수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Gap 1, Gap 2가 열린 채 해수가 유통하게 되면 담수호를 막을 제방도 방조제가 되어야 하므로 특단의 공법을 개발해야 한다. 북가력도와 계화도를 인공섬과 이중 공간옹벽으로 잇고 이 이중 공간옹벽 사이에 새만금 내항을 만들고 인공섬에 장터도시를 만들게 되면 담수호 외곽공사가 바로 장터도시의 어번 인프라 구축이 되기도 하며, 공간옹벽과 인공섬으로 계화도에 이어진 방수·방조제는 새만금 항만을 호남평야의 통합신도시와 잇는 간선도로망이 된다. 담수호 만들기와 공동시장 장터도시 건설을 하나의 사업으로 진행할 때 비상한 경제방안이 생기는 것이다.
(3) 새만금 해상공단
새만금 일원이 복합항만이 되고 새만금에 황해경제권의 공동시장, 관문도시가 건설된다 해서 새만금과 전북 일원이 자립적 경제권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스베이거스나 디즈니랜드처럼 세계적 경제인구를 대상으로 한 위락과 관광과 컨벤션 비즈니스가 있을 때는 가능하지만, 새만금은 그만한 스케일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새만금 항만과 장터도시 이외 호남평야의 도시군과 연대한 신산업이 필요하다. 전북이 지식정보사회에 맞는 특성화된 사업을 이룸으로써만 항만과 시장과 더불어 지방분권의 자립적 어번 클러스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만금과 호남평야가 강과 갯벌 및 바다를 아우르는 생명의 보고인 점을 지식산업의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백두대간과 서해바다, 내륙과 바다의 흐름이 새만금이라는 거대한 하구갯벌을 통해서 호남평야와 호흡하는 새만금 제1싸이트야말로 생명공학의 해상공단을 세울 수 있는 곳이다. 새만금이 황해공동체의 복합항만이 되고 허브마켓이 되고 어번 관광의 한 중심이 되면 바다를 중심으로 한 특성화된 대학과 연구소들을 모을 수 있다. 전북 일원의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을 새만금 일원에 집합시키고 세계적인 연구소를 끌어오려면 무엇보다도 바다를 중심으로 한 생명공학산업을 유치해야 한다.
새만금 일원이 특성화된 항만이 되고 동북아 주요도시들의 패빌리언이 모여 있는 엑스포와 세계적 메쎄들의 아시아본부가 있는 바다도시가 된다면 그 속에 세계적인 생명공학도시인 해상공단을 만들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이 있어서 씰리콘 밸리가 가능했고 맨해튼의 미드타운과 다운타운이 있어서 씰리콘 앨리(Silicon Alley)가 가능했듯이 새만금 항만과 새만금 시장이 있어서 새만금 해상공단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첫번째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때부터 이 단지의 위치는 4호방조제와 군산반도와 군산공항 사이로 설정되었다. 군산항·군산공항·군장단지 등 기존의 도시와 산업인프라를 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생명과학단지의 위치와 규모는 이번 글에서 더 세밀하게 명시하기보다 오히려 변동의 여지를 남길 필요를 느낀다. 먼저 이곳은 4호방조제의 물막이 완공에 의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 이미 상당부분 훼손된 갯벌이 추가로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조사해봐야 한다. 또한 막힌 부분을 다시 뚫는다 해도 얼마나 뚫으며 그에 따른 환경영향은 어떤 것인지도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다.
4호방조제의 틈새(Gap 3)가 열려 있다면 아예 이곳을 간척하지 말고 기존의 군장공단 일부와 주변의 휴경지를 이용해서 생명과학단지를 조성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이때 금강 물을 운하를 파서 끌어들이면 (원래 지금의 군장공단 일대는 섬이었다) 수질에 도움을 줄뿐더러, Gap 3에서 조력발전을 할 경우 발전량을 크게 증대시키고 해상공원으로서의 장관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반면에 생명과학단지의 수요에 따라 이곳에 적정량의 간척지를 마련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생명의 보고’로서의 새만금과 전북에 걸맞은 산업인 동시에 밖으로는 호남평야 도시연합과 안으로는 항만·장터·관광도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해양생명과학단지라는 대전제가 중요하다.
5. 대안 모색과 실행 과정에 관하여
끝으로 결론을 대신하여 기존의 새만금사업의 대안을 찾고 이를 실행해나가는 과정에 대해 몇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도시건설은 경제의 기반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예산과 공정을 생각하지 않는 안은 무의미하다. 더구나 우리가 제안하는 호남평야 통합신도시와 새만금 바다도시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반도에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지방분권화된 준국가적 경제권역을 건설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사업방식을 요구한다.
지금 민주당에서 구성한 새만금 신구상특별위원회는, 원내 제1당과 그동안 간척사업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제기를 해온 환경·시민단체들이 배제되었다는 원천적인 문제점이 있는데다가, 위원회에서 난상토론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독립적인 특별기구가 구성되어야 함은 물론, 그 역할은 새로운 새만금사업의 기본성격에 해당하는 큰 원칙을 정하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예컨대 해수가 계속 유통되어야 한다든가, 기왕에 쌓은 방조제는 적절히 보완하여 활용한다든가, 전북 전체의 획기적인 발전과 맞물린 새만금 개발의 큰 윤곽을 제시하고 각 분야의 투자주체(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국내외 기업 등)를 구분한다든가 하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백낙청 교수의 표현대로 일종의 ‘새만금 헌장’을 작성하는 작업인데, 물론 여기에는 이 원칙들에 의한 사업이 본격화하기까지의 경과조치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공사를 중단하지 않은 채 방향을 선회케 하는 1단계 작업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확정하고 실행하는 다음 단계의 작업들은 이 ‘헌장’에 따라 구성된 대통령직속 특별기구가 담당하며 별도의 입법을 통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더구나 바다를 중심으로 방조제 위에 세우려는 도시에는 지금까지의 도시건설 법령이 해당되지 않기에 제도와 법령의 정비가 불가피하다. 프랑스의 미떼랑 대통령 재임중 빠리 근교에 라데팡스 신도시를 건설할 때 일곱 부처의 장관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에서 기본과 방향을 정한 후 조직을 만들어 집행하도록 했는데, 이런 선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새만금의 큰 흐름을 정할 때이지 구체적 설계를 말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새만금의 미래를 위한 새만금특별법을 만들어야 하고 21세기 한반도 공간전략을 기반으로 한 새만금 경제기획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바다도시 구상을 두고 예산 문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는 대강의 원론만 말하고자 한다. 도시건설 예산은 토지예산과 도시하부구조 예산, 도시상부구조 예산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새만금은 공유수면이므로 방조제건설 비용만이 토지예산이 될 것이다. 분당·일산 등의 신도시는 토지매입과 도시하부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개발주체는 역할을 끝내고 민간자본이 들어와서 도시를 건설하였다. 보문단지나 중문단지 경우도 마찬가지다. 포항제철이나 광양항 같은 경우는 토지매입과 도시하부구조와 도시상부구조가 한 주체에 의해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번 새만금의 세 바다도시 경우는 항만은 중앙정부가 주체가 되고, 허브마켓과 해상공단의 경우에는 인공섬과 방수제·방조제 건설은 농업기반공사가, 인프라 건설은 새로운 도시건설의 주체가, 상부구조건설은 해외자본이 각기 맡는 방식이 유리할 것이며, 통합신도시의 경우는 지방자치단체 연합이 맡아 도시의 싸이트를 만들고 도시의 인프라를 건설한 후 도시의 콘텐츠는 싸이트 내부의 각 블록에 개별 도시와 투자가들이 참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리라 본다.
해외자본에 관해서는 새만금에 외자를 들여온다는 발상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이도 없지 않으나, 양질의 외자 유치는 한국뿐 아니라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일치된 국정목표로 되어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김포매립지, 송도매립지 등에 토지를 만들고 해외자본 유치를 시도하였으나 각서만 오갔을 뿐 구체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외국자본이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 위험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구태의연한 발상으로는 아무리 정부의 ‘획기적 지원’이 따르더라도 기업을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구나 전북은 인구가 200만도 되지 않고 자립적 경제규모라 할 산업도 시장도 없다. 오로지 중국으로 열린 거대한 1억2천만평의 안바다가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 더없는 호재다. 황해경제권의 허브항만이 될 수 있는 절묘한 입지에 이런 안바다가 있는데다가 고군산군도 일대에 발해만의 허브항만이 될 항만건설이 이루어지고 군산공단과 새만금 주변에 새로운 해상공단이 들어서고 황해경제공동체의 공동시장을 만들어 인천공항과 항만과 내륙의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네트워크화한다고 할 때 비로소 설득의 여지가 생긴다. 그렇더라도 프랑스의 라데팡스나 통일독일의 새 수도 베를린의 포츠다머플라츠와 같이 투자가 쉽게 회수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며 이미 인프라가 다 만들어져 있지도 않다. 오로지 황해도시공동체가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공동체가 되고 시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꿈과 비전을 갖고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새만금은 그것이 가능한 곳이다. 12년간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한 공사를 기반으로 낙후한 전북의 획기적 발전, 지방분권에 입각한 21세기 한반도의 공간전략, 세계적인 자연유산의 보존과 양립하는 새로운 개발패러다임의 개척,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지점이 새만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