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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과연 이번 정부는 해낼 수 있을까?

 

전성인 全聖寅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로 『화폐와 신용의 경제학』 『경제학원론』(공저) 등이 있음. sjun@hongik.ac.kr

 

 

1.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제약조건

 

경제학을 정의할 때 흔히 “제약조건하에서 목적함수를 극대화하는 방법에 관한 논리”라는 표현을 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경제정책은 역사적·정치적·경제적인 제약하에서 특정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여정부가 직면한 객관적 혹은 주관적인 제약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이번 정부는 소위 ‘3김씨’로 대표되는 과거 정치세력이 정치 일선에서 퇴장한 후 등장한 첫번째 정부이다. 특히 국민들은 보수와 안정 이미지를 대표하는 야당후보 대신에 진보와 개혁 이미지를 앞세운 현재의 정부에 집권을 허락했다. 혹자는 지난 선거를 알맹이 없는 미디어 선거의 승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이번 정부의 집권은 무엇인가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 다수의 뜻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 집권한 참여정부는 어떤 형식으로든 “변화의 몸짓”을 억지로라도 지어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다음으로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현정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제약조건은 소수당의 집권이라는 점이다. 물론 소수당이 집권에 성공하는 것이 그리 드문 현상만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연륜이나 카리스마가 이전의 3김씨에 비할 바가 못되는 현재의 정권에 이것은 상당한 압박이었다. 총리의 국회인준조차 가슴을 졸이고 지켜봐야 하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결국은 변화나 개혁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행정의 달인’을 내세움으로써 거대야당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정권이 출범하고도 며칠이 지나도록 주요 내각인선조차 마무리하지 못하는 파행으로 나타났다.

소수당이라는 제약은 내각인선의 파행에서 멈추지 않고, 내년 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의 승리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승격시킴으로써 참여정부의 첫 일년 동안의 행보를 결정적으로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집권 핵심부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처럼 생각된다. “이번 일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총선 승리만이 지상과제일 뿐이다. 다만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로 내보일 수는 없으니 몇몇 분야에서 변화의 흉내만 조금 내보이자.” 필자는 “경제분야는 안정형 장관, 사회분야는 개혁적 장관”이라는 초기의 각료인선 원칙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연유로 경제 관련 부처의 장은 공정거래위원회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잘하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인 관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의 제약조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우선 ‘국민의 정부’ 시절 억지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저금리정책을 썼던 폐해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금융권에는 더이상 숨기는 것이 거북할 정도의 부실채권이 쌓여만 가고, 턱밑까지 빚이 차오른 소비자들은 모든 소비행위를 중단한 채, 불나비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일확천금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재정은 공적자금의 상환압력, 공적보험과 연금재정의 파탄,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 등으로 실질적인 적자로 반전해 있었다. 이에 더하여 북핵사태는 경기변동 주기와 경제성장 주기 모두에 있어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제 아무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제일 잘하는 것으로 여기는 관료라고 할지라도 무엇인가 대책을 수립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참여정부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2. 반년 동안의 방황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정책당국이 펴는 경제정책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현재 발생한 문제점을 일단 덮어두는 것이다. 마치 아이에게 억지로 청소를 맡기면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그리고 눈에 보이는 쓰레기만) 모두 적당히 카펫 밑으로 밀어넣듯이, 관료들이 펼치는 경제정책 역시 당장 그때그때의 어려움만을 모면하자는 것이었다.

그 예는 도처에 널려 있다. 집권 초기에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던 SK글로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부실화된 계열기업을 정리할 때 정책당국이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계열기업의 부실이 해당기업 수준에서 멈추도록 함으로써 계열 전체나 경제 전체로 파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SK글로벌이 어찌 되건간에 다른 계열기업, 이를테면 SK텔레콤이 부당하게 부실을 뒤집어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SK글로벌을 법원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만 모든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처지에 합당한 정도의 발언권을 가지고 사태의 해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당국이 현재까지 시도한 방향은 이와 정반대였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보다는 덮어버리는 데 급급했던 정부는 일단 누가 얼마의 손실을 분담하건간에 사태 자체가 더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라는 악법을 또다시 이용해 국내 채권금융기관의 희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SK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에 응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 SK글로벌 문제가 어떻게 최종 정리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제까지 정부가 선택했던 정책방향은 정확히 억지로 빗자루를 잡게 된 청소하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주먹구구식 단기처방의 두번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소위 ‘4·3 대책’으로 불리는 신용카드사의 부실에 대한 처리문제였다. 먼저 확실히 해두어야 할 점은 신용카드사의 부실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미증유의 사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용카드사가 지하철과 대형 할인매장 앞에서 아름다운 도우미들을 앞세워 호객행위를 할 때부터 오늘날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고 말 것임을 예견했던 사람들은 많았다. 감독당국 역시 작년부터 부분적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난 3월 카드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을 때 문제의 해결 못지않게 중요했던 점은,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되었으며, 누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책임추궁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기존 금융감독당국이 내놓은 대책에서 뼈아픈 자기반성의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은 반성은커녕 마치 이 문제가 경제를 결딴낼 엄청난 (그리고 예상하기도 어려웠던) 체제적 위기인 양 호들갑을 떨면서, 그들에 대한 감독권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은행에 쌈짓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잘못을 저지른 카드사를 지원하기에 급급하였다.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때 필자를 만나면 다음과 같이 묻곤 하였다. “아니, 잘못을 저지른 카드사는 즉시 퇴출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금감원이나 금감위의 담당자도 목을 잘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때로는 멀리 있는 사람이 숲의 모습을 더 잘 보는 법이다.

당장의 문제에만 매달리는 행태는 계속된다. 경기부양과 관련한 정부의 태도 역시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4분기의 경제성장이 여러가지 이유로 저조한 양상을 보이면서 선거를 코앞에 둔 집권층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관료들이 내놓은 답변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앞뒤 재볼 것 없는 총력 경기부양”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은 금리인하와 조세감면이었다. 혹자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경기가 불황일 때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사용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그리고 금리정책이나 조세감면은 대표적인 거시경제정책 수단이 아닌가?”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그러나 그런 대답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경기부양 수단이 잘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금리정책부터 살펴보자. 금리정책의 당사자인 한국은행조차도 시인하듯이 콜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해서 얻는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한국은행은 이 정책의 의미를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당국의 의지를 과시”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 아무런 효과가 없는 정책을 펴면서 과연 “의지가 과시”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시장 주체들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히 이런 의지는 불신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책당국의 신뢰성 추락은 다른 측면에서 매우 큰 비용을 치르는 문제이다. 통화금융정책에는 언제나 소위 동태적 비일관성(dynamic inconsistency)의 문제가 따른다. 동태적 비일관성이란 어떤 사람이 특정한 약속을 한 경우 다른 사람들이 이 약속에 근거해 행동하게 되면 사후에 그 약속을 파기할 유인(誘因)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관련해 이 문제를 살펴보자.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약속을 믿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근로자들은 급격한 명목임금 인상요구를 자제하고 적정한 선에서 임금타결에 동의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통화당국의 실제 목적이 경기부양에 있을 경우 통화당국은 근로자들의 임금협상이 낮은 수준에서 타결될 때까지 기다린 후 갑작스럽게 통화를 팽창시키면 경기도 부양하고 물가상승도 감내할 만한 수준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후적으로 중앙은행은 약속을 파기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때로는 물가안정만을 유일한 목표로 지정하여 통화당국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기도 한다. 지난 1997년말 한국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우리도 명시적으로 물가안정만을 유일한 통화정책의 목표로 지정해버렸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은행이 효과도 없는 통화정책을 단순히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신뢰성 추락이라는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집행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올해의 물가나 내년의 예상물가는 현재 그리 만만한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다음으로 세금감면을 통한 경기부양 문제를 생각해보자. 정부가 7월 중순경에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보면 그야말로 세금감면을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이 망라된 느낌이다. 사치품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도 인하하고, 법인세도 인하하고, 투자하기만 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등 기업에 대한 선심공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 이제 다 된 것일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기업들은 자신들이 아쉬운 소리를 하면 할수록 당근이 늘어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번 대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것의 귀결은 무엇인가? 이쯤 해서 덥석 당근을 받아먹고 하라는 대로 할 것인가? 아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은 어떨까? 아예 이번 기회에 그동안 정부에 대해 원하던 것을 통째로 다 얻어내는 것은 어떨까? 수출이 안된다고 환율을 절하시켜달라고 해볼까? 아니면 정규직 근로자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달라고 해볼까? 수도권에 공장 못 짓도록 되어 있는 규제도 이번 기회에 확 풀어달라고 할까? 부당내부거래나 회계부정 같은 시끄러운 일들이 있으면 투자할 수 없는데 이것 좀 어떻게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을까? 그들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세금감면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앞에서 공적자금의 상환이나 연기금의 재정적 파탄 등의 문제로 인해 재정건전성의 확보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경제적 과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당장 이번 하반기부터 공적자금의 만기가 도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깎을 수 있는 세금은 다 깎아주는” 정책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정책이다. 지난 시절 국민의 정부가 공적자금을 흥청망청 쓰면서 그 만기도래일을 모조리 이번 정권으로 미뤄놓은 것처럼 현재의 정부도 모든 골치아픈 문제는 다 내년도 총선 이후로 미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총선 이후에는 경제운영의 부담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3. 과제

 

그렇다면 이제 집권당이 그토록 중시하는 총선이 일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경로를 지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필자는 비록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경제정책도 제대로 펴고 또 그를 통해 총선에서 승리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단추는 경제각료의 인적 구성을 재편하는 것이다. ‘개혁적 장관’들로 경제부처를 다시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일관된 정책을 펴면서 그런 정책에 대해 자신들을 지지해준 국민대중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이래야 경제도 바로 서고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총선에서의 승리도 얻을 수 있다.

‘개혁적 장관’이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개혁이다. 그중 첫번째 과제는 재벌개혁이다. 그리고 또 그중 최우선 과제는 삼성자동차와 삼성생명의 처리이다.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를 촉발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삼성자동차의 처리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채권단이 입은 막대한 손실을 보전한답시고 삼성그룹의 총수가 내놓은 돈은 아직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의 부실을 채권단과 국민에 떠넘기면서 은근슬쩍 삼성생명을 상장하려 했던 시도는 사회 각층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일단 좌절되었지만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완전히 동결된 상태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혹시 이번 하반기에 정부가 삼성생명의 상장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개혁적 장관이 해야 할 일은 궁극적으로 삼성생명을 상장시키되 상장시의 이익이 부당하게 기존 주주에게 귀속되지 않도록 하고, 상장 후의 삼성생명이 잘 조직된 기업지배구조를 가지고 모범적인 금융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다.

두번째 과제는 금융개혁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과거 금융부실의 찌꺼기가 아직도 일부 투신권에 숨어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이것을 정리해야 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 측면이 중요하다. 하나는 물론 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두번째 측면이다. 금융감독기구의 운영행태를 철저히 재점검하여 과실과 태만, 무능을 추방하고 새로운 감독관행을 정착하는 것이다. 이런 반성과 새출발이 없는 금융개혁은 ‘돈먹는 하마’일 뿐이다. 아울러 현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통합금융감독기구에 대한 재평가가 시도되어야 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다음으로 금융개혁이 어느정도 마무리되면 중장기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에 옮겨야 한다. 앞으로 재정수요는 폭발할 것이다. 공적자금의 상환, 건강보험 등 각종 공적보험과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의 재정파탄,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 등은 모두 잘 알려진 지뢰밭이다. 게다가 북한 핵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질 경우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의 역할은 아마도 ‘돈주머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수요가 이처럼 폭발함에 비해 재정수입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과거처럼 두 자리 수의 성장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세부과에 따르는 비효율은 줄여야 하겠지만 국민의 조세부담 자체는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국민과 끊임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의 비효율을 몰아내기 위한 제도정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 국민의 정부 집권기간 동안 회사법과 증권거래법 그리고 도산관련법 측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새로운 법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의 가장 밑바닥에는 소송이 자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소송의 위협에 의할 때만 대부분의 제도는 유효성을 확보한다. 따라서 이번 참여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어떻게 소송의 유효성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현재 증권분야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된 집단소송제를 민사소송의 전분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방위적인 집단소송제는 제조물책임법과 결합하여 생산물 시장에서의 규율을 확보하고, 공시 및 회계 제도와 결합하여 자본시장에서의 규율을 확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가 지금 이것을 결행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결국 이런 방향착오는 내년 봄 국민의 준엄한 심판으로 보답받을 것이다. 그사이 망가지는 경제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