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조동범 趙東釩

1970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02년 『문학동네』로 등단. stopaids@hanmail.net

 

 

 

마술을 파는 심야

 

 

홀연히 그가 등장했다.

망또도 없이 등장한, 도심의 마술 판매원. 그는 좌판을 펼쳐 마술을 진열한다. 마술을 펼치는 그의 손바닥 위로 메마른 강바닥이 드러난다. 화석처럼 단단해진 손금을 따라 고단한 일상이 흘러간다. 그는 몇가지 마술을 손바닥 위에 펼친다. 어둠을 부여잡은 손 위로 고요가 쏟아지고, 그의 주먹 안으로 들어간 것들은 마술이 되어 이내 사라진다. 마술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손바닥에는 갈 곳을 잃은 손금만이 수없이 많은 길을 내고 있다.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마술 판매원의 눈이 캄캄하게 빛난다. 어쩌면 그는 마법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술 판매원은 손금을 풀어 길을 만들어 보인다. 아득히 휘어진 길의 끝이 안개 속에 잠긴다.

안개 속에 잠겨

마술 판매원, 홀연히

사라진다.

캄캄한 마술이 되어

 

 

 

폐계

 

 

닭은 머리를 내밀고

차갑게 갈라지는 바람을 바라보고 있다.

트럭에 실려 떠나는,

마지막 길을 따라

닭의 시선이 서늘하게 놓인다.

수탉의 냄새 한번 맡아보지 못한,

텅 빈 자궁을 안고 떠나는 길.

철망을 움켜잡은 닭의 발은

마지막 남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한없이 휘어져 있다.

가벼워지기 위해

제 몸을 비웠던 것일까.

닭은 텅 빈 자궁을 안고

철망에 매달린 깃털의 떨림을 바라본다.

깃털의 결을 따라 서성이던 바람이

닭의 눈에 상처처럼 박힌다.

닭은 무정란 무수히 쏟아지던

상처를 기억해내며

텅 빈 자궁 속,

아득한 모성을 더듬는다.

백열등 치욕처럼 빛나던,

멀고 먼,

산란의 한때를 더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