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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부키 2004

위험한 성공사례 한국이 낳은 불온한 책

 

 

유철규 劉哲奎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yoocg@mail.skhu.ac.kr

 

 

사다리걷어차기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 재무성과 그 주변기관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은 지난 30여년 동안 일관된 하나의 메씨지를 개발도상국에 전달해왔다. 성장과 고용창출, 그리고 생활수준 개선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무역과 투자 자유화, 민영화와 정부개입 축소, 그리고 자본활동에 대한 규제완화가 그 방법이다,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이 메씨지는 자문에 그치지 않고 원조·차관·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그리고 국가 신용평가상의 불이익을 통해 ‘강요’되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가 역동성을 잃고 성장을 멈추는 상태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물론 준비된 대답은 있다. 여전히 불충분한 민영화, 불충분한 규제완화,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정부개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산업화 과정에서 앞서가는 타국을 따라잡기 위해 이제 개발도상국들에게는 금기시하는 직접적인 산업진흥정책을 사용했다는 것은 역사의 사실이다. 다만 망각되어왔을 뿐이다. 이 망각이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말했듯이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자가 그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24면) 행위라면 아주 고약한 일이다.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풍성한 책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는 고약해서 쉽게 참아줄 일이 아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기 쉬운 이런 일을 정면으로 고발한다. 서구인들이 개발도상국에는 드러내놓고 싶어하지 않는 역사, 따라서 최소한 서구 지식인들끼리는 서로 알고 있을 그 역사의 이면을 우리에게 까뒤집어 보게 했다.

한글 번역본은 2002년에 출간된 영문판과는 목차 구성이 약간 달라지기는 했지만, 크게 세 가지 주장이 본문의 각 장들을 채우고 있다. 첫째, 영국·미국·독일·프랑스 그리고 그밖의 유럽 국가들과 일본 및 동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에 이르기까지 산업화를 달성한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뚜렷한 정책 목표와 의도를 띠고 있는 산업정책·무역정책·기술정책은 성장과 산업구조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었다. 둘째,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불리는 지적 재산권, 금융제도, 기업지배구조와 같은 여러 서구적 제도들은 성장과 산업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서구 자신이 그러한 제도들을 구축하는 데 수세기를 소모했다. 셋째, 자유무역과 자본자유화의 신화는 ‘개혁’의 관점이 아닌 ‘사다리 걷어차기’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뒤표지에 있는 이 책에 대한 짧은 서평들에서도 언급되듯이 대단히 도발적인 주장들이다.

1997년 경제위기 때 장하준 교수와 이국에서 만났던 몇몇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구제의 조건으로 내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단편적이나마 받아들고 함께 분노한 적이 있다. “이건 너무 하잖아.” “법률을 다 바꾸라니, 마치 2차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국이 감수해야 할 조건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때 모였던 분노의 한 조각을 학문의 냉정함으로 두들겨 장하준 교수가 먼저 펼쳐 내었다.그것도 유럽 진보경제학회의 쟁쟁한 ‘미르달 상’을 받다니.

그가 책에 암묵적으로 담으려 했던 논지는 참 많다. 오늘날 국제개발정책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개발도상국에 ‘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모든 정책수단들, 즉 ‘인위적으로 산업을 일으키려 하지 말고,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 하지 말고, 서구 자본이 불편해할 만한 일을 하지 말고…… 하지 말고’ 등에 들어 있는 정책은 오히려 바로 선진국들이 그들의 산업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이 주장은 대중을 위한 고발이다. 이와 함께 역사에 애써 무지하려는 현대 경제학의 약점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는 책 전체의 내용으로 보여준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사회과학계를 위한 제안이다.

이 책은 2003년의 터키어판을 포함하여 최소한 5개 언어 이상으로 번역되었거나 번역될 예정이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독자들이 이 책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국민의 빈곤, 불평등한 소득분배,1차 산품에 고정되어가는 산업구조의 낙후성, 열악한 노동조건과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을 어떻게 해서든 개선해보려고 애쓰는(물론 애쓰지 않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개발도상국의 지식인과 정책가들이 부딪치는 첫번째 문제는 ‘우리가 노력하면 우리가 원하는 산업구조를 가질 수 있을까?’이다. 굳이 장하준 교수의 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서구가 이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아니다’이다. 인위적으로 산업구조를 바꾸려고 애쓰고 개입하면 할수록 결과는 더 나빠진다는 교리가 반복될 뿐이다.

기계제 대공업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 산업화의 측면에서만 보면, 한국은 식민지를 겪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례이다. 그런데 이 성공사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국가의 광범위한 시장개입 기간에 이루어졌다. 앞의 첫 질문에 부딪힌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사례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간에 한국은 서구의 교리를 무시한 채 스스로 원하는 산업구조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제개발정책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성공사례는 다른 개도국이 본받으면 안되는 위험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험은 특수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다른 지역에 ‘복제’될 수 없다는 결론은 국제통화기금의 무수한 보고서에 등장하는 상투적 결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 위험한 사례의 나라 한국 출신의 학자가 서구중심의 세계경제질서에 대해 불온한 주장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 책이 전세계의 개발도상국에서 출판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의 도발성 때문에 비판은 많을 수밖에 없다. 책에 담긴 내용과 상반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므로 전문 경제사가의 비판도 있을 것이다. 개발도상국, 나아가 한국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가도 좋은 비판주제가 된다. 그러나 적어도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다시 하자는 말이냐’ 식으로 몰지는 말자. 어느 사회나 그 발전단계에 맞는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 단계에 맞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을, 유신시기의 정치적 선전용어였던 ‘한국형 민주주의, 한국형 자본주의’와 같은 것이라서 틀렸다라고 모는 것은 ‘모 아니면 도’ 식의 우리 풍토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저자가 던지는 메씨지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싶다.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선진국이 된 거의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자신의 방법을 찾으려 했고 아마도 찾았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문제를 보고 우리 사회의 필요성과 현실에 기반한 해법을 찾아보자. 삶이 그래도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