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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이라크파병 논란

국익, 국가정체성, 평화운동

 

 

박순성 朴淳成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저서로 『북한 경제와 한반도 통일』 『북한경제개혁연구』(공편) 『한반도 평화보고서』(공저) 등이 있음. sunsong@dongguk.edu

 

 

파병논란과 한국사회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는 파병원칙을 결정하고 말았다. 여론수렴을 바탕으로 했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어떤 형식으로 얼마나 충분히 여론이 수렴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정부가 내린 결정은 그대로인데, 상황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의 결의가 내려진 이후 파병을 요청받았던 국가들이 파병을 오히려 거부하고, 이라크 내부의 정세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하지만, 정부는 추가파병원칙에 대해 더이상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파병을 둘러싼 논의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국민은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 사회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라크파병을 둘러싼 논란 자체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제일의 가치로 삼아 체제경쟁에 매진해온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남북정상회담, 월드컵 축제,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화해·협력과 평화를 새로운 시대의 지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말 시작된 경제위기와 구조개혁, 2002년 10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북·미 갈등은 한국이 성장과 안보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논란이 일어났다. 한편에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았으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로부터 여전히 강요당하고 있는 성장과 안보라는 현실적 목표를 두고, 다른 한편에는 변화를 갈구하는 민족구성원이 바라는 시대적 요청인 화해·협력과 평화라는 새로운 이상을 놓고, 한국사회는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파병논란이 갖는 역사적 무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논의 지평은 너무도 단순하다. 국익과 명분이라는 이분법이 모든 논의를 재단하고 만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은 무시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맹목적이다.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은 불분명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논의는 경멸당한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부정되고 말았다. 과거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난 현실주의와 현실로부터 예상되는 전망을 고려한 이상주의가 만날 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우리 사회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도덕적 비판에 열려 있는 현실주의와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이상주의가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실과 전망 사이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파병논란과 관련한 쟁점들을 하나씩 따져보는 것이 21세기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북한핵문제, 군사안보 그리고 한미군사동맹

 

미국이 전투병 파병을 요청한 순간부터, 아니 이미 미국 지도부가 한국에게 파병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한 때부터, 한미군사동맹은 파병논의의 핵심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파병요청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의 지도부에 한미군사동맹은 파병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기반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과 주한미군의 재배치 또는 철수 논의가 한반도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군사동맹의 강화를 위해 이라크파병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쉽게 부정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군사안보에서 기본축인 한미군사동맹은 고정불변의 질서가 아니다. 시작에서부터 갈등을 내포하고 있던 한미군사동맹은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변화해왔으며 앞으로도 변화해갈 것이다. 최근에 많이 강조되고 있듯이, 군사안보 차원에서 비대칭적이고(힘의 비대칭성) 불균등한(이익분배의 불균등성) 한미동맹관계는 한국에는 필수불가결한 안전장치이면서도 동시에 외교·안보전략의 새로운 모색을 가로막는 제약조건이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발전하면 할수록 한미동맹은 도전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도전은 일차적으로 인식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민의식의 변화이다. 촛불시위에 이어 이라크파병과 관련한 논란은 변화를 보여주는 또하나의 단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을 놓고 벌어지는 이라크파병 관련논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파병을 찬성하는 논자들에 따르면, 북핵문제가 한·미 공조에 기초하여 해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파병요청 거절은 미국행정부 내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강화해 북·미 갈등의 심화와 한반도 안보상황 악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논지는 미국이 이라크사태와 북·미 갈등 모두에서 핵심행위자이며 두 문제 모두를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논리는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이 근본성격에서 이라크사태와 다르며 파병과 북·미 갈등 해결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물론 미국이 파병거부의 경우 감정상의 대응을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를 따져보면 오히려 한국의 파병이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을 정당화하는 국제적 행동으로 해석되고 미국내 강경파들을 지원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을 거부하지 못하고 부추기게 되는 자가당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최근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한 다자적이고 장기적인 해결과정에 들어갔다.

다음으로, 역시 파병찬성 논지에 따르면, 한국의 파병거부가 한미군사동맹을 약화시킴으로써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한국의 대북억지력과 전반적인 군사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한·미간에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고, 이는 한국의 안보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지는 일면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동안 잘못 인식된 한미군사동맹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에 불과하다. 한미동맹은 근본적으로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한미동맹은 군사적 차원에서 안보동맹이자, 문명적 차원에서 가치동맹(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동맹)이다. 이러한 이중적 동맹으로서 한미동맹은 비대칭성과 불균등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깨어질 수 없는 동맹이다. 한국의 파병거부가 한미군사동맹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추론은 지나친 예단일 뿐이다. 오히려 한미동맹에서 최근의 문제는 동북아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변화시켜 한미군사동맹을 미국의 동북아지역 패권유지전략에 더욱더 종속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안보동맹이 가치동맹을,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성격의 강화가 동맹의 유지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한미동맹에서 이익의 공유는 점점 줄어들고 이익의 독점과 분화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강화가 한국사회에 진정 바람직한 일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 두 가지 논지를 검토하면서 한반도 안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지나치게 미국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또한 한미군사동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전략은 미국의 안보전략을 일차적 고려요인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이 한국의 안보전략을 미국의 패권전략에 종속시켜야 하고 미국식 군사전략을 한국 국방전략의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구축 등과 관련하여 우리의 전망과 계획을 가져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지난 50년간 유지되어온 민족분단과 한미군사동맹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자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과를 안보차원으로까지 확산하는 길이다.1

 

 

경제적 국익과 한국경제

 

파병찬성 논지에서 경제적 국익은 핵심적 논거의 하나이다. 경제성장을 최고 가치의 하나로 추구해온 한국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첫번째 논의는 대외신인도와 관련되어 있다. 파병거부, 한미동맹 약화, 북·미 갈등 심화 또는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 철회, 한반도 안보불안 증대,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 저하, 이것이 대외신인도와 관련된 핵심논지이다. 북핵문제로 인한 북·미 갈등의 경우에도 전쟁발발 자체보다도 안보불안이 남한경제의 불안으로, 남한사회 전체의 불안으로 곧바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전쟁 이전에 이미 한국은 최악의 위기사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특히 미국에 대한–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가 경제행위자들의 심리상태와 현실판단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지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무의식적 신념에 해당하거나 증명이 불필요한 진리에 가깝다고 인정받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두 가지 주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먼저 국민경제의 양적인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이 국민경제가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제위기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했듯이 한국경제의 허약성은 높은 대외의존도가 아니라 제도적·구조적 한계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철저한 구조개혁과 경제제도 개선이 한국 경제의 핵심과제로 대두되었다. 물론 대외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핵심 무역상대국이 압박을 가한다면 대외신인도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점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한국경제의 장래를 위해 이제는 대외경제관계의 구성을 바꾸어나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2

다음으로 최근 한반도의 안보정세는 한미동맹 자체보다는 남북관계 현황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진전,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개방조치와 남북 철도·도로 연결은 한반도 안보상황의 개선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2년 10월 이후 2차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대외신인도가 악화되지 않았으며 또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중국과 남한의 노력으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한반도의 안보정세가 당분간 비관적이지 않을 것임을 잘 보여준다. 국제정치에 대한 냉정한 계산에 따른다면, 이라크사태의 지속은 당분간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한 미국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남북관계의 동향이 한반도 안보상황에 더욱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덧붙인다면 파병을 통해 한반도의 안보정세를 안정화하고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약간의 효과를 거둘지 모르지만,3 중장기적으로는 파병에 따른 사회통합력의 약화와 불안 등으로 한국의 군사안보와 경제안보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은 현재 21세기 국가전략과 관련하여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병문제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선택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분기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제적 국익과 관련된 두번째 논의는 파병에 따라 예상되는 직접적 이익이라고 할, 석유자원 확보와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 석유자원의 확보라는 논지에 대해서는 한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에너지자원의 다변화와 안정적 공급체계 구축을 추진해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라크파병과 석유자원 확보가 국제법적으로나 현실정치논리 차원에서나 무관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또한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가 갖는 경제적 효과와 관련해서는 파병을 했다고 재건사업 참여가 결코 보장되지 않으며 한국경제에서 해외건설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너무도 감소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될 것이다.4

 

 

명분과 국가정체성

 

파병과 관련하여 현재 논의되고 있는 명분은 국익계산 끝에 달려 있는 사족이거나 위선일 뿐이다. 파병찬성을 위한 기묘한 논리에 따르면,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전쟁 이후의 불안정한 상황은 이라크 민중에게 고통이기 때문에, 치안유지를 위한 파병은 이라크 민중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군의 앞에서 또는 미군을 대신하여 행하는 치안유지활동이 실제로 이라크 민중을 위한 행동일 수는 없다. 독재자가 사라졌다는 결과가 전쟁을 사후적으로 정당화시켜줄 수 없듯이,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분이 점령군의 주둔과 파병을 정당화시켜줄 수 없다. 심지어 점령군의 뒤에서 재건을 돕는 일조차 점령의 명분을 강화시켜준다는 점에서 부당한 일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의 결의(1511호)도 결코 명분이 되지 못한다. 미국의 유일패권 하에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은 유엔헌장의 기본정신에 따라 엄격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10월 16일에 통과된 결의안은 이라크 주권회복 일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으면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주둔기간을 이라크 정부수립까지로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미군의 장기주둔을 정당화하고 있다.5 더욱이 결의안에 동의한 국가들조차 군사적 지원은 고사하고 경제적 지원마저 거부한 상태에서, 결의안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오히려 파병요청을 받은 국가들이 결의안 통과 이후에 파병을 거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터키조차 정부당국이 파병을 재고하고 있다. 이제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패권전략이 21세기 지구공간정치에서 유지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장이 되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의 파병결정은 한국사회의 미래와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21세기 초반 세계사의 흐름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명분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소극적 명분이 아니라 적극적 명분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이라크 민중의 삶을 위한,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한국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남북의 화해·협력을 추진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바라보는 현재의 싯점에서, 한국은 미국의 그림자 아래에서 자신의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는 국가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국익만이 발언권을 가진다고 말하지 말자. 명분과 국익의 이분법은 근대세계정치의 부정적 유산일 뿐이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쟁 자체의 정당성이 사라져버린 21세기에 인류는 명분과 국익이 분리되지 않는 세계질서, 안보와 이익의 협력체를 추구해야 한다. 그 속에서 모든 국가는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나아가 국익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가지게 될 것이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의 협력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협력을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일이다. 한국정부는 시민사회와 함께 파병이 아니라 이라크 민중을 위한 국제협력을 제안하고 조직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전쟁반대·파병반대 운동에서 일상적 평화운동으로

 

안보와 성장이 최고의 가치였던 한국사회에서 평화는 위험한 반체제 가치였다. 경제영역에서조차 전쟁은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경제전쟁)가 되거나, 평화는 현실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노사평화)로 전락하였다. 민주화와 남북화해는 이러한 가치체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유일패권국가의 군사주의가 한국의 현실을 지배할 때, 평화는 여전히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구호로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전쟁반대·파병반대라는 부정적 구호로만 평화가 등장할 때,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평화로부터 거리가 먼 상태에 놓여 있다.

전쟁반대·파병반대를 위한 사회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나뉘어져 있던 민중운동, 시민운동, 통일운동을 하나의 가치 아래로 모이게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몇차례의 연대회의를 거쳐 촛불시위에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평화운동은 한국 사회운동에서 핵심영역의 하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평화운동은 아직도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이라는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문명이 지니고 있는 물질만능·자연파괴 경향과 자본주의세계체제의 약탈적·착취적 경향은 세계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우리 사회 내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평화운동은 위기대응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불평등하고 약탈적인 사회문화를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운동으로 발전해야만 한다. 국가가 그동안 장악하고 있던 군사·안보문제를 시민사회의 품으로 가져와야 하며, 나아가 야만의 얼굴을 한 사회경제체제를 인간화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평화운동은 빈곤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세계사회운동에 맞닿아 있다.

아직 파병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논란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세계시민사회와 미국 부시정부의 대립도 진행중이다. 정부가 파병원칙을 결정하면서 내세웠던 국민 여론, 국익, 한미관계, 유엔 안보리 결의 그 어느 것도 파병원칙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 3~4월과 비교할 때 파병반대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하겠다. 지금부터 본격화될 파병반대운동이 조그마한 성과를 거두면서 일상화된 평화운동으로 발전할 때,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한 단계 전진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우리의 국익에 대한 관점과 한미관계의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사회의 변화는 군사주의와 결합한 세계화를 견제하는 주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멀리 보면서 또 한걸음 나아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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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보차원에서 파병이 한국군에게 실전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은 두 가지 함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현대전이 과연 실전경험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 하는 점과 이라크에서 과연 한국군이 원하는 형태의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실제로 이라크에서 한국군의 실전경험이 가능하다면 이는 북한군의 대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이다. 한반도에서 이미 군사적 열세에 놓여 있는 북한군에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전력 차원의 불균형 심화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비대칭적 무기의 개발과 군사력의 전진배치를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2. 한국의 대미, 대중동 수출입 의존도를 살펴보자.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1.8%에서 2001년 20.7%, 2002년 20.2%, 2003년 8월말 현재 17.6%로 떨어지고 있다. 수입의 경우에도 비중은 18.2%, 15.9%, 15.1%, 14.4%로 감소하고 있다. 중동의 경우 수출입 비중은 10% 수준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무역구조가 대외경제관계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역구조의 변화는 대외경제관계 변화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지표이다.
  3. 이것조차 확실하지 않다. 지난 4월 1차 파병결정이 한국의 대외신인도 상승 또는 안정화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는 사실상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이 한 국가의 신용등급은 어떤 개별적인 사건보다는 경제의 전반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4. 현재의 재건사업 참가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 내 공화당과 관계가 깊은 회사들이 이라크 전후복구사업을 거의 독식한 상태이다. 영국조차 전후복구사업에 참가하지 못해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재건비용과 군비를 지출한 국가들에게 재건사업 참가권이 주어질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예산을 들이고 기업이 찾아오는, 그것도 일부만 찾아오는 형식이다. 한편, 1980년대 초반 한국의 해외건설공사의 규모는 수출의 규모에 비교할 때 60% 전후에 달하였으며, 그중에서 중동지역 건설수주가 90% 전후를 차지하였다. 2000년대 들어 이 수치는 각각 3% 전후, 60% 전후이다. 한국 경제에서 해외건설공사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건설공사가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감소한 것이다. 오히려 대중동 수출입 자체가 갖는 경제적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하겠다.
  5. 결의안 1511호의 근본적 문제점은 유엔 안보리가 미국 주도의 침략전쟁과 부시의 선제공격 독트린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있다. 부시대통령은 결의안 통과 직후 선제공격 독트린을 다시 강조했으며, 다른 강대국들 역시 선제공격 독트린의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수립하고 구성한 과도통치위원회와 과도내각을 인정했다는 점 역시 이라크인의 기본권과 자결권을 부정한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