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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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黃圭官

1968년 전북 전주 출생. 199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등이 있음. grleaf@hanmail.net

 

 

 

쇳소리

 

 

아내에게서 쇳소리가 난다

가난 때문에, 가난을 메우려고

놀려야 하는 몸뚱이가 새끼들의 떼에 부딪히고

내 무능에 긁혀지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온다 붉은 영혼이 검게 변해가는 소리다

그게 사실은 내게서 건너간 것이지만

삶은 끝없는 자학일 뿐인가

가난해서 성자가 되는 길을 나는 모른다

겨우내 허공 가득히 써놓은 눈발의 언어를

끝내 잘못 읽은 것이다

내 꿈은 은행빚을 탕감받는 게 아니라

이 비루함을 더 큰 비루함으로 완성하는 것,

그게 혼자 끙끙대는 혁명이다

이제 나를 소모시키는 일 없이 사는 꿈을 버리마

바람에 부유할 먼지만한 힘이 남아 있다면

소모가 곧 창조가 되는 바늘구멍만한 길을

다시, 처음부터 걷겠다는 생각이

아내에게서 나는 쇳소리를 듣고 들었다

내 대신 악다구니를 쓰는 아내로부터

 

 

 

집을 나간 아내에게

 

 

당신과 내가 멀어지니 이렇게 좋군

아이들을 위해

가장 가깝게 뜨겁게 살았을 적에

세상은 얼마나 징그러웠었나

조금만 더 멀어지면

아니 이렇게 마지막을 느끼면서

가만히 어루만질 거리마저 생기고 나니

장미꽃이 유독 붉군

생각해봐 우리는 지금껏 색맹이었어

딸애의 피아노를 위해

다달이 갚아야 할 대출금 이자를 위해

혹은 (무엇보다도 하찮은) 과한 내 술욕심 때문에

함께 꽃잎 한장 바라보지 못했다는 게

정말 말이나 되나?

이렇게 멀어지니 좋군, 참 좋아

우린 너무 가깝게 뜨겁게 살아왔어

당신이 정말 내 곁을 떠난대도

사랑이라는 거 좀 유치한 행복이라는 거 대신

그냥 웃을 수 있다는 뜻은 말야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지

늦진 않았지만,

이제야 당신이 생각나고

생각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

그리고 마지막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

이렇게 좋군 나마저 달라지는군

 

 

 

폭설

 

 

어머니가 빙판에 미끄러져 손목이 부러졌다

시골 터미널 앞 병원에 도착하니

퉁퉁 부은 노모의 오른손

한가하게 산보하다 맞은 날벼락이 아니라

당신이 사는 아파트 청소를 하고

달에 40만원 벌다 당한 산재다

환갑을 넘긴 양반이, 산재라니!

(병원비 걱정은 없겠구나)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병원 계단에서

끊은 담배를 깊이 태웠다

하늘이 너무 파래 어지러웠다

10만원권 한장 못 내놓고 병원문 나설 때

내 마음이 길바닥보다 더 빙판임을

너무 오래 몰랐다는 걸 알았다

삶이 재앙이라는 생각,

이제 그만 떨쳐내고 싶었는데

해 떨어져 씨 다른 동생과 돼지 삼겹살을 구울 때

난데없이 폭설이 내렸다

 

세상에서 내가 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