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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갈림길에 선 한국 시와 시비평

 

시와 시대, 그리고 인간

『만인보』론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보들레르와 근대」 「李箱과 식민지근대」 「기형도와 1980년대」 「세계문학에 대한 단상」 등이 있음.  yoohuisok@yahoo.com

 

 

1. 머리말

 

지금까지 나온 고은(高銀)의 『만인보(萬人譜)』(창비 1986~2004)는 20권, 총 2474편이다.1 한국 근대시사 초유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아직 완간되지 않았다고 하니, ‘『만인보』론’은 섣부른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말의 경제는 물론 판단의 유보가 어느정도 따르는 것도 불가피하다.

돌이켜보건대 『세계의 문학』(1986년 봄호)에 물경 51편이 처음으로 게재되고 바로 그해 11월에 전작간행 형식으로 첫 세 권이 묶여 나왔을 때, 『만인보』에 대한 평자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70년대 이래 민족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시인이 봇물 터뜨리듯 쏟아낸 뭇사람의 생생한 초상들을 민족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일종의 ‘보증’으로 받아들였는가 하면,2 “이제 우리도 큰 시인을 하나 갖게 되었구나 하는 감격”을 평문으로 피력한 것이다.3 물론 그때도 (우려 섞인)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4 『만인보』가 9권까지 씌어지고 시인의 회갑 기념 논저인 『고은 문학의 세계』(창작과비평사 1993)가 발간된 싯점에도 시단(詩壇)의 ‘합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12년이 지나고 열한 권이 더 씌어진 지금, 그때의 보증과 감격은 어느 정도나 유효하며, 80년대의 『만인보』 그 아홉 권의 시적 성취가 90년대 이후 출간된 작품에서 과연 얼마나 깊고 넓게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1980년대와는 격세지감을 안겨주는 오늘의 문화환경에서 그간 평자들의 평가에 공감하면서도 고은의 ‘만인들’이 박물관의 박제품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을 떨치지 못한 필자뿐만 아니라 『만인보』를 흥겹게 따라 읽은 독자들도, 그런 의문은 한번쯤 품었을 법하다.

 

 

2.『만인보』 개관

 

거의 20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발행된 『만인보』 스무 권을 개관해보면, 10권에서 가장 큰 분기를 이루고 16권에 와서 이전과는 또 좀 다른 흐름을 형성하는 것 같다. 1~9권까지는 1930~40년대를 배경으로 저자의 ‘기초환경’이 다뤄졌는데, 10권부터 1970년대로 훌쩍 건너뛴다. 그런 10~15권은 민족문학의 구심력이 한창이던 1980년대가 지나고 그 위기가 ‘상식화’된 1990년대 후반, 즉 민족문학의 진영은 물론 그 개념까지도 실질적으로 해체된 상황에서 출간된다.

1950년 한국동란의 참상을 주로 다룬 16~20권이 나온 것은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3년이 지난 다음이다. 알다시피 1980~9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시대의 맥박이 유달리 가쁘게 뛴 시대이고, 그와 연동한 한반도 정치현실도 급격한 (때로는 아찔한) 국면변화를 거쳤다. 바로 그 20년을 통과하여 우리 당대에 걸쳐 있는 『만인보』는 특정한 주제의식으로 씌어진 단일 텍스트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국면에 대응한 작품‘들’의 성격도 아울러 띠기 때문에, 해당 시대를 염두에 두고 묶음별로 읽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뜻에서 1~9권과 10~15권을 각각 1980년대 『만인보』와 1990년대 『만인보』로 분류해볼 수 있겠다. 그럴 경우 2004년의 16~20권은 어디에 더 가까운가, 또는 80년대 및 90년대 모두와 얼마나 창조적으로 결별했는가 하는 물음도 부수적으로 생긴다. 80년대 『만인보』의 성취는 인간의 약분불가한 개별성을 이념적 도상(圖像)으로 흡수한 당대 민족·민중문학의 허와 실을 비판적으로 따져보게 하는 데 있지 않은가 한다. 90년대 『만인보』는 유신정권의 철권통치에 음양으로 저항한 시대적 인물들을 ‘만인’의 주인공으로 채택함으로써 세기말 소위 포스트 담론들의 부황든 실상을 되짚어보도록 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두 『만인보』가 시대의 대세에 대한 ‘응전’의 성격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6·25전쟁을 전면적으로 다룬 16~20권을 남북의 평화공존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그 점에서 80년대 및 90년대와도 확연히 다른―2000년대의 상황에 비추어보는 동시에 그것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시적 성취도 엄밀하게 가늠해야 할 것이다. 물론 『만인보』 16~20권이 앞의 두 『만인보』와 다른 수준의 시적 지평을 실제로 열었는가도 앞으로 논하겠지만, 이 대목에서 일단 ‘제3의 『만인보』’라는 화두를 걸어볼 만하다.

80년대〓이념, 90년대〓탈이념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두 『만인보』의 면모가 작품 차원에서도 조건없이 긍정할 만한 것인지 하는 의문도 바로 그 화두에서 생긴다. 『만인보』 비평에 관한 한,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는 시의 비판적 성찰기능이 시적 성취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물음은 자주 잊혀질뿐더러, 그 둘을 혼동하는 논자도 적지 않다. 현재 시단의 편향, 즉 민족·민중을 내세우는 시각 및 그와 대척점에 선 개인과 자유주의를 시적 성취의 명시적·암묵적 판단기준으로 삼는 태도도 그런 물음의 결핍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원균(韓元均)의 학술 저작에서 80년대와 90년대 『만인보』가 분별되지 않고 한 덩어리로 취급된 것도 그런 기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5 알다시피 전자는 80년대의 (이제는 냉정하게 분별해야 할) 대표적인 유산이요, 후자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 90년대 이후 득세한 (지금은 저항해야 마땅한) 관점이다. 특정한 관점이나 이론을 앞세워 입맛대로 요리하는 비평계의 병통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고은은 가령 모더니스트로 통하는 기형도(奇亨度)와는 다른 이유로―상찬이든 비난이든―상투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그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초기의 탐미주의·허무주의에서 70년대 민족민중운동으로 일대 전환으로 이루고 외세와 분단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를 멈추지 않는 시인의 ‘확신범’으로서의 행보에 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또한 『만인보』 곳곳에 숨쉬고 있는 실존 역사인물들의―그 탁발한 자취를 칭송하고 과오를 징치(懲治)함으로써 민족적 자존을 일깨우는―묘사방식에서 단적으로 확인되는 것처럼 민족주의나 자유주의를 들먹이는 비평들의 근거가 전혀 없달 수도 없다.

그러나 (특히 80년대) 『만인보』의 시적 성취나 한계를 민족주의 내지는 자유주의 담론틀로 환원하여 평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80년대 일부 진보진영의 낯익은 구습과 그에 대한 90년대의 세기말적 반동 모두를 되풀이하는 꼴이다. 형사(形似)와 신운(神韻) 모두를 살림으로써 그런 구습과 반동을 반성하게 하는 적지 않은 시들이 『만인보』에 있거니와, 이념의 이름으로 개인을 주눅들게 했던 80년대와 개인의 이름으로 역사를 부정하기 일쑤였던 90년대의 무수한 작품들 가운데 근대적 자유의 비원(悲願)을 품은 비루한 존재들에게 인간적 존엄을 제대로 부여한 경우가 얼마나 될지도 냉철하게 따져볼 일이다.

 

전쟁이 났다 한다

서울놈들

울며불며 도망치느라고 야단이라 한다

부자놈들 돈자루 메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야단이라 한다

 

소 풀 뜯기러

버들방천에 나온 장도셉이

그런 전쟁 소식에 벌떡 고추 서서 힘이 났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힘껏

돌멩이 하나 공중에 던졌다

 

억울하고 또 억울한 신세

지겨운 신세

아무런 가망도 없는 신세

머슴 장도셉이

풀밭에 앉았다가 일어섰다 또 앉았다가 일어섰다

이제 내 세상 온다

풍덩 냇물에 들어가 가라앉은 냇물 잔뜩 휘저어놓았다

 

물 속에서 고추가 뻣뻣했다

―「머슴 장도셉이」(17권) 전문

 

“말하자면 난리가/머슴 노릇 종 노릇 면해주고/사람 노릇 시켜”준(8권 「머슴 석주」) 현실을 포착하면서도 “억울하고 또 억울한” 밑바닥 인생 나름의 절실한 사연도 시인은 들려주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만인보』가 우리 근현대사에서 ‘과거’가 되어버린 인물들을 주로 다룬 것은 사실이다. 해방 전후와 1950년대, 1970년대를 다룬 『만인보』를 통틀어 1987년 6·10항쟁 이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대두된, ‘근대성의 축복과 해악’에 노출된 도시 인간들의 면면을 고은이 아직 그려내지는 못한 셈인데, 『만인보』에 먼저 주문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씌어질 『만인보』를 기대하면서 그 점을 좀더 엄정하게 검증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백낙청(白樂晴)이 환기한 『만인보』의 소설적 면모를 부연해볼 수 있다. 이 글의 4절에서도 논하겠지만 이번에는 각도를 달리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한다면, 먼저 서사적 재미도 쏠쏠한, 천여편에 이르는 80년대 시편들만 하더라도 언젠가는 평자들의 정선(精選), 또는 시인의 자선(自選) 『만인보』도 필요하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1~9권까지의―인용자) 『만인보』 시편들은 필요 이상으로 사설적인 것이 흠이”라는 지적이 이미 있었다.6 이는 이야기시이자 인물시로서의 서사성이 시적 밀도를 충분히 획득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상통한다. 단편소설이나 꽁뜨처럼 읽히는 서사성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인물 소묘에 집중하는 이야기시가 원칙적으로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소설’의 서사구조를 능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발적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천편이나 되는 연작시라면 문제는 다르다. ‘보(譜)’라 함은 계통을 좇아 열기(列記)한다는 뜻이거니와, 그런 집중을 적절히 안배하면서 이야기를 담은 인물시 특유의 극적 긴장을 유장하게 잇는 전술이 필수적이다. 『만인보』를 읽다가 떠올릴 법한 서양의 운문문학 중에는 초서(G.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가 있는데, 가히 인간희극을 방불하는 각계각층 30여명 인물들이 순례여행의 도상에서 주고받는 (때로는 서로 연관되게 짜여진) 이야기들과 대비하면 『만인보』 형식의 무정형성이 안고 있는 문제는 더 크게 보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러 평자들이 80년대 『만인보』에 찬사와 경의를 바친 것은, 훌륭한 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절로 느껴지는 즐거움과 부담없이 누릴 수 있는 진짜배기 우리말 고유의 찰진 맛을 사람살이의 온갖 국면에서 최대한 살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당(未堂)의 요술 같은 시도 고은의 이 거대한 ‘활동시(活動詩)’ 앞에서 무색해진다는 평가도 과장만은 아니다.7 예컨대, “괜찮아요 머/나 어머니하고 살다 죽을래/시집 안 갈래/그러던 옆집 턱점백이 그 말이 씨가 되어/다음해 맞배 병아리 깐 뒤/중신에미 문턱 낮춰 드나들더라”에 이어지는 대목,

 

그렇게 되자

턱점백이 어머니가

시집갈 딸 턱점백이에게

이것저것 일러주고 야단이더라

시집가서

첫째 요강에 오줌 쌀 때 소리 죽여야 혀

부엌 살강 밑에서

아무도 없다고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어

살강 밑에 살강영감 계시니

애기 둘 낳기 전까지는

서방님 말에 말대꾸하지 말어

아무리 원통한 일 생겨도

친정 생각 하지 말어

친정부모는 저승부모여 저승부모

―「턱점백이」(3권) 부분

 

같이 우리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듯한 걸쌍스런 시골 아낙들의 삶을 담은 구수한 정경도 그러하거니와,

 

속으로는

어디 너 이년 오늘밤

소리 안 지르고 배기나 보자

하기야 도둑놈이 먼저 다녀간 길이면

소리 지르는 척만 하면 되지

하고 뒤뚱 가마를 출렁댄다

아무리 가마가 앞뒤에서 출렁거려도

가마 안 신부야

멀미 날 지경이지만

가마 안 신부야 입이 달렸나

꿈속같이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겠나

 

먼 뒷날 그 신부 헌 각시 되어

아이 낳아 업고 친정 왔을 때

그 쌍놈 서달봉인가 뭔가

아직 안 죽었어!

―「상놈 달봉이」(4권) 부분

 

처럼 여러개의―가마꾼 ‘달봉이’와 화자, ‘헌 각시’의―시선과 목소리가 복합적으로 동시에 작동하는 날래고 익살스런 시편들을 읽는 재미도 일품이다. 80년대 인물시들의 ‘소설적 흥취’는 짤막한 시적 공간에 겹겹의 목소리와 시선을 운문의 리듬을 살려 풀고 압축하는 과정에서 살아난다. 비애어린 골계(滑稽), 해학적인 슬픔, 해방적 풍자, 해탈의 역설, 교훈적 반어, 토속적인 비어, 육담 등을 통해 ‘비루한 것들’을 꾸짖고 어르고 다스리는 과정에 빠져드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대동세계(大同世界)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90년대 『만인보』가 그려낸 1970년대와 그 사람들은 어떤가?

 

 

3. 『만인보』 10~15권: 시대와 시

 

‘머리말’에서 고은 자신은 “이 전작시를 문학으로 읽으나 시대로 읽으나 그것을 내가 개의치 않겠다”라고 했지만(10권 4면), 시대로만 읽히는 시라면 그 예술적 수명도 제한되게 마련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분분한 “탄압과 건설이/행여 뒤질세라/모든 곡선들은/거듭된 5개년계획과 함께/새마을 슬레이트지붕/고속도로의 직선으로 교체”된(11권 「박정희」)―1970년대를 다룬 시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1970년대를 주도한 유신정권의 인사들, 정관계의 인물뿐만 아니라 그와 대척점에 선 노동계·종교계·법조계·학계 등에 포진한 민주화운동의 숱한 주역들과 그 사이에 낀 가난한 인간군상들,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개성들이 등장하는 90년대 『만인보』가 시대를 증언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대를 넘어서는 시로서의 증언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그 점에서도 박정희정권에 음양으로 맞선 이들이 ‘70년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각광을 받은 것은 다각도로 생각할 거리다. 전태일의 분신자결(1970년 11월 13일)에서 대오각성,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시인이 누구보다 먼저 ‘동지들’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달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대중적 호소력을 비교적 손쉽게 확보하는 길도 된다. “모든 성찰의 시간 떠나간”(13권 「김현옥」) 고속성장의 그늘에서 빛난 인간다움이기에 더욱 그렇다. 반면에 그런 인간다움을 주로 노래할 때 인간본성에 관한 탐구로서 시인이 구사할 수 있는 음역이 단조로워질 위험도 따른다. 그럼에도 90년대 『만인보』에서 70년대 민주인사들의 초상이 집중적으로 그려진 것은, 민족문학 진영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대열이 흐트러진 형국이면서도 4·19 이래 고난의 역정인 민주화운동의 결실이 문민정부를 거쳐 김대중정부의 탄생으로 나타난 1990년대 후반의 복잡한 정세에 대한 시인 특유의 인식이 작용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런 짐작이 터무니없는 게 아닌 것이, 박정권의 야만성에 항거한 무수한 지사와 열사, 고뇌에 찬 지식인들, 처참한 노동현실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을 그리는 시인의 태도가 잊혀진 뜨거운 이름들을 추념하고 되살리려는 자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따위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온데간데없다

이런 모래알 사건들이

시대의 격류 밑창에 가라앉아

조약돌로 깔려 있음

그런 조약돌 쌓이고 쌓이면

끝내 격류의 물길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음

―「어떤 조약돌」(15권) 부분

 

이런 무명씨 ‘조약돌’들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역사가로서의 시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기도 할진대, 거기에는 4·19의 좌절 이후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그 방을 생각하며」)고 말하면서도 “나는 얼마큼 작으냐”(「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되뇔 수밖에 없었던 김수영(金洙暎)의 60년대와는 또다른 성격의 각성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70년대의 ‘대학 마당’에서 “지식 따위 싹 작파해버리고” 나타난 탈춤 같은 민중극을 회고하면서 고은이 일갈한 그런 각성 말이다. “탈이란 뭔가/제 낯짝 위에/다른 낯짝 덮은 것 아닌가/그것을 민중의 전형이라 하건대/이 소름끼치는 오류!”(15권 「탈」)

그러나 그런 오류가 번득이는 재기와 감성의 순발력 못지않게 시나브로 천리를 가는 소걸음의 탁마를 통해 오류임이 드러날 때 탈을 방편삼은 민중들의 본모습도 제대로 살아나리라 본다. 충실한 역사공부가 되는 인물시편들도, 불의와 폭정에 맞선 도덕성의 드높음도,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기상도, 그런 드높음과 기상이 드리운 인간적인 약점, 슬픔, 아픔도 고도로 농축된 하나의 시적 발화가 됨으로써 독자를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실명시(實名詩)의 성격을 띠는 『만인보』에 따라붙게 마련인 특정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같은 말썽을 피하는 바람직한 길이기도 하다. 표현을 약간 달리한다면, 「전태일」(10권)처럼 시대에 대한 물음을 ‘잠재우는’ 진실을 고지식하게 노래하는 시도 좋지만, “야 이 새끼들아/전태일만 팔아먹는 새끼들아/청계천 바닥에서/숯덩어리 되어 죽은/전태일만 팔아먹는 새끼들아/(…)/왜 이 나라는/죽는 놈들만/죽은 놈 위패만 금이야 옥이야/받들어 모시고 지랄들이냐”(15권 「반전태일」)라는, 일상의 안주(安住)를 뒤흔드는 반문을 낳는 시도 읽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 반문을 제대로 받아 곱씹어보는 것은 엄밀한 시읽기의 요건 가운데 하나일 터, 1970년대는 어떤 시대인가라는 물음도 거기서 나온다. 그 당대의 ‘현실’ 중에는, 이시영(李時英) 시인이 「일만이 형」 같은 시에서 애틋하게 노래한 것처럼 훗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경제성장을 이룩한 노동하는 민중의 자부심, 보릿고개를 넘긴 자들의 안도감과 희망 등이 가혹한 노동탄압의 현실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며, 고향을 등진 인간 특유의 원대한 포부와 지독한 환멸도 어김없이 있었을 법하다. 그런가 하면, 골목 구비구비마다 서린 달동네의 인간적인 애환은 물론이고, 개발의 거품에 울고 웃는 ‘경제동물들’의 아귀다툼도 엄연했을 것이다.

시의 성취와 사실적 인식의 문제는 지난 연대 ‘시와 리얼리즘’ 논쟁에서 중요한 논점이었거니와, 여기서 그런 ‘정서적 사실들’을 환기하는 취지가 90년대 『만인보』를 70년대 현실의 재현 여부를 기준으로 재단하자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풍속을 다루는 이야기시의 성격을 겸비한 인물시라면, 90년대 『만인보』의 성패도 결국은 ‘만인들’이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존재로 얼마나 살아 있느냐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13~15권이 상대적으로 10~12권보다 풍성하고 충실하다고 판단되는 『만인보』의 경우 고은 자신이 기리고자 한 인물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태일의 ‘소신공양’에서 각성하고 거듭났을지언정 그런 분신의 진실과 때로 상관없이 살았던 그 시대의 무명씨들에게도 떳떳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부여하는 시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인물 소묘에서도 시인의 애정이 깊고 그윽할망정 「천승세」(13권)처럼 한 강렬한 개성을 집약적인 은유로써 살려낸 시가 아쉬워진다. 마치 ‘인물열전’을 방불하는, 70년대와 최대치로 싸운 지식인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90년대 『만인보』를 지배하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한 이념 지향이 강해지면서 시 자체도 시대정신이라는 추상적 지표가 인물의 개성을 주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80년대 『만인보』에도 ‘두레의 윤리’라고 부름직한 이념적 지향은 존재한다. 또한 90년대 『만인보』가 전체적으로 ‘인물열전’의 성격을 띤다고 했지만, 그 초상(肖像)에는 동지들과 뜨겁게 교유한 시인의 숨결이 배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私)’를 통해 공공(公共)의 역사를 이만큼 기록하는 것도 쉽지 않음은 물론인데, 불의의 시대를 묵묵히 살아낸 서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시리게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떨치고 일어난 사람들에게도 나름으로 공감하기에 90년대 『만인보』가 드러낸 70년대의 시대적 진실도 통속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련의 세월에 “잔정보다/묵은 정/묵은 정 속의 굵직한 척추”(13권 「공덕귀」)를 저마다의 위치에서 지켜낸 인물들의 진실을 통속적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상찬이 주를 이루는 인물열전이 어떤 정형화된 틀이나 시각에서 나온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시인이 뭇 생령들에 스며들어 그들 자신의 모습을 되돌려주는 80년대 『만인보』와는 대조적으로 90년대 『만인보』의 목소리는 기념비의 글귀에 집착하는 자의 것이다.

그런 집착이 시적 어조의 스펙트럼을 좁히리라는 것은 뻔하다. 90년대 『만인보』를 80년대 『만인보』와 대비해볼 때 전체적으로 언어 구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아무래도 풍자와 해학, 반어가 약화되는 현상이다. 1930~40년대에서 70년대로 옮겨간만큼 어휘선택은 물론이고, 사십대의 시인이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면서 만난 인물들을 그릴 때 어조나 화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세월의 흐름에 따른 시대의 감수성 자체가 변한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90년대 『만인보』가 그 점을 충분히 숙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물 소묘에서 풍자와 해학, 반어 등의 약화가 단순히 시읽기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것만은 아니다.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도 대상에 스미고 번지면서 ‘나’와 대상의 경계를 흐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가슴에 시취(詩趣)를 지피는 이 세 가지 수사는 시인으로 하여금 행위자와 관객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하고 그로써 인물이 자기의 삶을 증언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 그런 동력에 의탁함으로써 시인은 시에서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것이다. 영탄, 돈호, 청유, 감탄, 야유 등을 자연스럽게 동반하면서 인칭(人稱)을 가로지르는 다성적인 목소리들은 90년대 『만인보』에 와서는 ‘~이다’체를 반복하는 단성(單聲)으로 모아진다.(윤영천이 언급한) 관극시(觀劇詩)로서의 신축자재한 묘미가 시에서 시대성이 커지는 것에 비례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70년대 사회의 풍경도 세태묘사의 선을 크게 넘지 않는데, 예컨대 「공중변소 낙서꾼」(10권), 「민주화운동의 어떤 영감」(11권), 「복부인 오여사」(13권), 「어떤 아이」(15권) 등에서도 어떤 극적 상황에 놓인 인물의 개성적인 목소리보다는 시인의 서술적인 육성이 앞선다.

 

 

4. 『만인보』 16~20권: 한국동란과 인간

 

1950년대 한국동란을 주로 다룸으로써 시중(時中)을 정확히 맞췄다는 점에서는 『만인보』 16~20권, 719편은 90년대 『만인보』의 연장선에 있다. 고은의 북한방문과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감회는 『늦은 노래』(민음사 2002)로 직접적으로 선보였고 기행시 형식의 『남과 북』(창작과비평사 2000)에서는 좀더 풍성하게 결실 맺었는바, 2000년대 『만인보』가 전쟁의 참화에 집중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대한 시인 나름의 계산된 개입이라는 것이다. 그런 개입에서 눈여겨볼 점은, 유년시절에 만난 인물들을 다성적으로 재현하면서 생기를 불어넣은 80년대 『만인보』나 실명 주인공과 거리를 두면서도 그 내면에 ‘다른 나’(alter ego)로 스며들어 진실을 대변하는 90년대 『만인보』와는 다르게, 이번에는―특히 6·25전쟁의 격전현장이나 좌우익 학살을 증언할 때―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그때의 진상을 가감없이 보고하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작품이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이 태도는 시인이 1950년대에 관한 미시사적 사료(史料)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한데, 시에서 때때로 구체적인 일시나 장소, 신원에 관한 정보들이 거의 무가공 상태로 제시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김병익(金炳翼)도 해설에서 언급한 바 있는(20권, 351~52면) 「송호식 모자」 「오라리」 「9·28수복 직후의 어느 풍경」(19권) 「홍문봉의 집」(20권) 등은 사실의 무가공과도 약간 다른 느낌을 주는 시로서, 소위 인간상실의 극한을 보여준다.

 

치안대원 열서넛이

생솔가지불 둘레에 서 있다

 

강대장이 사위를 몽둥이로 쳤다

저년과 붙어봐

장모의 옷도 다 벗겨졌다

저년과 붙어봐 이새끼야

몽둥이로 쳤다

놀라운 일이었다

사위 김백철의 성기가 일어났다

장모를 몽둥이로 쳤다 장모와 사위가 붙어버렸다

 

장모의 꼬인 두 다리가 풀렸다

몽둥이를 쳤다

장모와 사위가 숨가쁘게 진행했다

이윽고

장모와 사위가 절정을 이루었다

멍든 등짝

핏물 튀긴 엉덩이 들썩이며

절정을 이루었다

 

강대장 담뱃불을 비벼 껐다

이런 짐승은 살려둘 수 없어

 

그의 총탄이

눈 감은 장모와

눈 감은 사위 김백철에게 박혔다

―「9·28수복 직후의 어느 풍경」(19권) 부분

 

“사람이 무서울 때 사람이 아름다”운(17권 「어떤 김소희」) 모습을 그린 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족간 이념전쟁의 피비린내와 전율적인 패악만큼 평화의 당위를 절감케 하는 게 있을까. “아 이렇게도 보복해야 할 증오더냐/아 그렇게도 복수하고 또 복수해야 할/원한이더냐”(20권 「현재」)는 탄식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자력으로 민족해방을 쟁취하지 못하고 외세에 휘둘린 역사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그런 인간(성) 말살의 위협이 거의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반도국가의 숙명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시고 뭐고 다 떠나서 그 말살현장에 대한 (일체의 감상을 배제한) 증언부터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니 그럴수록 “〈아아 50년대!〉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논리를 등지고 불치의 감탄사로써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8 6·25의 비극을 평화체제 이행의 동력으로 전환하려는 창작행위도, 「9·28수복 직후의 어느 풍경」이 내뿜는 충격효과도 시의 전제조건이 될 수 있을지언정 시 자체는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앞서 80년대 『만인보』의 소설적 성격을 환기했지만, ‘9·28수복 직후의 풍경’에는 극악무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놈들/울며불며 도망치느라고 야단”이었던 당시 서울 상황은 세태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을망정 염상섭의 『취우』(驟雨, 1952~1953)가 사실적으로 차분하게 묘사한 바 있는데, 16~20권을 평가하는 데는 당대 소설문학을 상기해보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끊어진 대동강에 가교를 놓아 피난민들을 구하는―『1950년대』의 138~42면에 걸쳐 기술되기도 한―「선우휘」(18권)는 박영준의 「도하기」(渡河記, 1956)의 시적 각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거니와, 전쟁통에 월남했지만 두고 온 북녘 고향을 잊지 못하고 실성하여 돌아가자는 말만 되뇌는 「만수 할머니」(16권)나 「신노인」(17, 18권)은9 바로 이범선의 단편 「오발탄」(1959)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손자와 할아버지를 서로 맞세워 따귀를 때리게 하는 제주도 토벌대원의 만행을 그린 「오라리」(19권)의 상황도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에서 언급된 것이다.

이런 예는 물론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80년대와 90년대 『만인보』와는 달리 대다수 시편이 시인이 직접 알거나 교류한 경험에 근거를 두고 씌어진 것이 아닌데, 이러한 16~20권의 시적 특성을 당대 소설과 대비하는 데서 핵심은 그같은 ‘소설적 상황’을 얼마나 운문의 맛을 살려 시로 만들어냈느냐일 것이다. 가령 제주도는 『제주가집』(濟州歌集, 인문서점 1967)을 낸 고은에게도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을 터인데, 모두 28편이 수록된 4·3사건 관련 작품들을 보자. 여기서 좌우로 갈려 서로 총부리를 들이댄 비극에는 외세와 식민주의자들이 깊이 개입했음은 물론이고, 그런 비극을 일깨움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가 왜 우리에게 사활적인 문제인가를 절절하게 고발하고 일깨우는 역사교육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2000년대 『만인보』의 값어치는 결코 작지 않다. 반면에 그 시대적 진실이라는 값어치가 주로 ‘고발과 교육’에 치중한 데서 생긴다면, 독자는 그것이 다른 무엇이 아닌 시로서의 고발과 교육인가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때 90년대 『만인보』와는 달리 「기섭이」(17권)처럼 무명씨들을 그린 시편이 상대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공간이나 6·25의 상황을 다룬 80년대 『만인보』, 가령 「김병천」(3권), 「은옥이」 「대천 박형사 마누라」(8권) 등과 비교하면 4·3사건 관련 시편들은 사료를 산문적으로 재구성한 것처럼 심심하다. 고발과 교육 의도가 강할수록 작가의 이념이 작품보다 앞서는 현상도 왕왕 벌어진다는 말인데, 「한라산」(20권)이나 「좌달육」(20권)처럼 제주도 자체를 민족적으로 각성한 공간으로 상징화하는 무리도 거기서 나온다.

이런 비판에서도 요점은, 아무리 작가의 역사의식이 절박하더라도 사실성에 치중하는 것만으로는 한시적인 충격 또는 고발효과 이상의 어떤 시적 성취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성)에 대한 가없는 탐구정신은 진실을 밝히고 종국에는 진리에 이르는 물음을 낳는 문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지만, 그것도 말을 시적으로 부림으로써 고양되는 이야기시의 ‘재미’가 따르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 자체를 움직이는 언어예술 특유의 위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취우』의 사실주의를 『만인보』 읽기에서 연상하는 것도 그 점을 깊이 생각해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지만, 그런 방편을 통해서나마 확인되는 것 중 하나는 사실(성) 자체를 시적으로 농축하는 과정이 4·3사건 관련 시에서도 너무 속성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엇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도 그 때문인 듯싶다. 반면에 2000년대 『만인보』의 ‘소설적인 재미’는 마치 일지(日誌)처럼 씌어진 시들에서 더 느껴진다. 가령 17권에서 연이어지는 「논」 「파트너」 「임재열」 「머슴 장도셉이」 「김금덕」 등을 읽는 재미는 단순히 병풍처럼 펼쳐진 사변(事變)의 사회사적 풍경을 관찰하는 것과는 다른 흥취가 있다. 사변중 농촌의 평화로운 들녘을 정물화처럼 제시하다가(「논」) 느닷없이 첫 포성 당시 남한군대의 해이한―“농익은 파트너의 흰 알몸과 엉겨 널브러”진(「파트너」)―기강으로 시선을 돌리는가 하면, 순박한 “사내의 눈에 살기를 불어넣은” 전쟁의 광기를―“이년아/이 오라비 죽으러 가니/얼마나 시원하냐 이년아 이년아/오빠/오빠/오빠 미쳤어 왜 이려”(「임재열」)―폭로하다가 바로 그런 전쟁이 한바탕 ‘살판나는’ 세상을 열어젖힌 머슴 장도섭 같은 인물의 인생유전도 소개한다.

이같은 ‘재미’는 가령 18권에서도 연속되는 「이태랑 중령」 「이원섭 대위」 「어느 장교」 「홍덕영」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개별 인간의 개성보다는 1950년 6월 25일을 전후한 일촉즉발의 상황을 파노라마로 포착한 시편들인데, 그렇게 잇대어짐으로써 발생하는 효과 가운데 하나는, 단발적인 상황묘사와는 달리 극도로 건조한 언어에 스냅사진들을 연속적으로 넘기는 듯한 생동감이 실림으로써 서사 위주의 이야기시와도 다른 운문의 맛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어차피 한때 피붙이처럼 알고 지낸 고향의 마을 사람이나 동고동락한 동지였던 70년대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에 던져진 1950년대의 인간군상을 다루는 거라면, 2000년대 『만인보』에서 이런 식의 연결이 실험적으로 더 집요하게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10

 

 

5. 맺음말을 대신하여

 

그런 실험은 80년대와 90년대의 『만인보』 모두와 결별하는 ‘제3의 작품’라는 화두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에 대한 우리의 바람이 딱히 고은의 이 대작에만 국한될 것인가. 제3의 『만인보』의 경우 80년대의 넉넉한 성취를 주밀한 시적 형식으로 정제하면서 50년대나 70년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문제들이 속출하는 우리 당대와 정면으로 대면하는 데서 가능하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한데, 그런 작품이라면 작금의 한반도에 내려앉을 듯 말 듯한 평화의 기운을 하나의 현실로 만드는 싸움도 필경 북돋을 것이다. 민족문학의 이름으로 창작된 『만인보』 같은 작품을 제대로 읽고 (재)평가하여 각성한 대중과의 공감을 넓히는 일도 바로 그런 싸움의 일부다. 다만 그것도 경제나 정치의 영역이 아닌 문학인의 싸움인 동시에 시의 기능인 한, 사람의 닫힌 마음에 길을 트고 이어주는 언어예술 특유의 ‘시적 감화력’이 앞서야 하며, 비평 역시 그같은 감화력에 허심하게 반응하는 읽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70년대의 잊혀진 진실을 일깨우고 남녘은 물론 북녘 동포에게까지도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할 절박한 당위를 느끼게 하는 데 일정부분 성공한 작품을 두고 그 한계에만 집착하는 것도 비평의 본분에는 어긋나겠지만, 고은 자신은 물론 그를 아끼는 독자들도 『만인보』가 아직 미완임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부디 그 완성이 21세기 한반도의 ‘통일문학’을 여는 길과 행복하게 합치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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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3권(303편, 1986), 4~6권(327편, 1988), 7~9권(397편, 1989), 10~12권(345편, 1996), 13~15권(383편, 1997), 16~20권(719편, 2004).
  2. 백낙청 「통일운동과 문학」 및 「『만인보』에 관하여」 참조. 각각 『민족문학의 새 단계』, 창작과비평사 1990, 102~106면, 268~73면.
  3. 김영무 「고은의 시 II」, 『시의 언어와 삶의 언어』, 창작과비평사 1990, 148면.
  4. 김흥규 「個體와 歷史」, 『세계의 문학』 1987년 봄호 346~47면; 임우기 「이야기꾼으로서의 시인」, 『살림의 문학』, 문학과지성사 1990, 255~56면 참조.
  5. 한원균 『高銀詩의 美學』,한길사 2001, 138~52면 참조.
  6. 윤영천 「인물시의 새로운 가능성」, 『고은 문학의 세계』, 창작과비평사 1993, 196면.
  7. 김영무, 앞의 글 참조.
  8. 고은 『1950년대』, 청하 1989, 17면.
  9. 『1950년대』에 소개된 몇몇 실존인물들은 『만인보』 16~20권에도 거의 그대로 반복되고 엇비슷한 내용을 담은 시편도 적잖이 눈에 띄는데, 「신노인」도 그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정선 또는 자선 『만인보』의 필요성은 이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10. 719편에 달하는 2000년대 『만인보』의 시적 밀도가 모두 고른 것은 아니다. 그중 시대적 풍경이 다채롭고 오밀조밀하게 펼쳐지는 17권이 가장 인상적이지 않은가 한다. 그에 비하면 16권은 ‘사실들’의 가공이 불충분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싱거운데, 18~19권도 일부 시편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권에서 50년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고난과 사회사적 풍속을 절실하게 그려낸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