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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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장편 『유랑가족』 『수수밭으로 오세요』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명랑한 밤길

 

 

비는 거칠게 그리고 지루하게 내렸다. 온 집안에서 습기 냄새가 진동했다. 장마가 시작된 지 일주일째다. 그 일주일 동안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그래도 못 잊어 나 홀로 불러보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비오는 날이면 첫사랑이 생각나네요. 첫사랑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워요. 장마가 일찍 끝났으면 좋겠네요. 성심병원 수간호사… 수와진 파초… 불꽃처럼 살아야 돼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에 풀잎처럼 우리 쓰러지지 말아야 해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 해… 이은미의 목소리로 듣죠,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라디오 소리는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들려올 것 같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도 라디오는 조용필과 윤도현과 수와진과 이은미의 노래를 틀어줄 것 같다. 사람은 가도 라디오는 영원할 것 같다. 이제 갓 환갑을 넘긴 엄마의 분별력은 장마철로 접어든 지난 일주일 동안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다. 사방에 꽉 찬 습기가 엄마의 뼈와 엄마의 살을 아프게 하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야야, 너네 아버지가 날 버렸다.”

엄마한테 치매기가 생긴 건 작년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지 딱 사흘째부터였다. 엄마는 그때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며 슬퍼했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한달 동안 엄마 입에서 같은 말이 반복됐을 때야 그게 치매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한살인 나는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분명한 건 당분간 엄마를 떠나 먼 곳으로는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뿐. 나는 내가 태어나 살던 이 고장을 떠나 먼 곳으로, 도시로 나가 살고 싶은 그 열망 하나로 간호보조학원을 다녔다. 간호보조학원을 마치자마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은 제 살 곳으로 떠났으며 엄마와 나만 남았다. 오빠들은 내게 말했다.

“면소재지에 병원이 두 개나 있다.”

언니도 말했다.

“치과도 있고 한의원도 있어.”

두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언니 중 두 오빠가 신용불량자이고 언니는 이혼하여 모자가정의 가장이다. 두 오빠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연대보증으로 빚을 얻어 한 오빠는 화훼하우스를 하다가 태풍으로 하우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폭싹 망했고 한 오빠는 망한 오빠의 빚을 갚지 못해 망했다.

나는 우산을 받고 마당으로 나가 아욱잎을 뜯는다.

“야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픈 거야.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아욱잎은 열 장만 뜯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열 장을 뜯기가 어려울 만큼 아욱잎은 잔뜩 쇠어 있다.

“야야, 근데 너네 아버지가 진짜 날 버린 거니?”

아욱을 포기해버릴까? 꽃이 핀 아욱을 보면 왈칵 무섬증이 인다. 야들야들한 아욱잎이 주던 기쁨, 그 보드라운 잎을 뜯어 부드러운 아욱 된장국을 끓여먹었던 행복감에 비례해서 부숭부숭하게 꽃이 돋아나기 시작한 직후부터 뻣뻣해진 아욱잎을 보면 생에 대한 아득한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내가 이것을 심어놓고 불과 두 번밖에 끓여먹지 못했구나. 두 번밖에 못 끓여먹어서 절망스러운 게 아니라, 야들야들한 아욱이 어느새 부숭부숭 꽃을 피우는 동안 아욱밭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그 아욱밭을 잊고 있던 동안의 나의 행적이 스스로 무서운 것이다. 아욱이 꽃을 피우고 아욱꽃이 지고 아욱은 늙어가고 이윽고 아욱이 녹아 없어져버린 연후에야 내가 아욱밭에 와서, 아욱밭에 주질러앉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욱을 찾느라 슬피 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도 아직 부드러운 기가 남아 있는 아욱잎을 딴다. 비가 아무리 와도 거름기가 없는 아욱밭은 잇몸이 깎여나간 노인의 이마냥, 단단한 흙의 맨살만이 서슬 푸르게 드러날 뿐이다. 자갈이 많이 섞인 아욱밭에 비해 그래도 고추밭은 비름이랑 강아지풀이 섞여서 제법 찰진 흙냄새를 풍긴다.

“야야, 너네 아버지 온댄다.”

나는 고추를 딱 세 개 땄다. 엄마는 딱 하나만 먹을 거면서 언제나 고추를 더 많이 따기를 원한다. 엄마 거 하나 따는 김에 함께 딴 고추로 나는 오늘 저녁 잔뜩 약오른 고추 두 개를 먹어야 하리라. 그러고 나면 밤에 내 속은 많이 쓰릴 것이다.

“야야, 너네 아버지 언제 온대니?”

아욱국과 된장종지와 고추 세 개가 동그마니 놓인 저녁밥상이다. 수저를 들려다가 문득 토마토밭 쪽에 뭔가 새뜩한 게 어른거린다. 나는 다시 질퍽한 마당으로 급하게 내려섰다. 방울토마토가 딱 두 개 빨갛게 익어 있다. 빨간 방울토마토 두 개가 올라오니 적막한 저녁밥상에 꽃등 두 개가 켜진 것 같다. 빨간 방울토마토 두 개를 가운데 놓고 모녀는 드디어 한없이 느리기만 한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연세가정의원은 토요일이면 오후 세시에 문을 닫는다. 의사는 이미 퇴근하고 나와 수아가 마악 병원문을 잠그려던 순간이었다. 병원문을 잠그고 나서 나는 수아와 함께 면소재지를 휘감아도는 강변 둑방길을 좀 걷다가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먹고 집으로 갈 참이었다. 그 둑방길에서 최근에 수아가 산 엠피쓰리 플레이어로 다운받아놓은 최신 발라드곡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봄이면 둑방길에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 둑방길을 수아와 내가 걸어가면 젊은 여자가 귀한 이 고장의 젊은 남자들이 눈부시게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바람이 불면 수아와 내가 짝맞춰 입고 나온 하늘색 원피스와 녹색 플레어 치마가 우리들 다리에 부드럽게 휘감길 것이다. 그리고 그뿐이다. 우리는 각자 고요한 귀갓길을 서두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아와 나의 동창이자 선배이자 후배인 이 고장의 젊은 남자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즈음에 부쩍 눈에 많이 띄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니.

퇴근길에 농공단지 안 플라스틱공장 사장 만배가 커피 좀 마시고 가라 해서 들어가본 만배의 일터에서 나는 처음으로 실제로 노동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았다. 언제부턴가 야산과 밭과 논 위에 가구공장, 의료기기 공장, 플라스틱공장 들이 지어지더니 그곳이 공식적인 농공단지로 지정되었다. 농공단지 옆에서 만배는 돼지를 한 이백 두쯤 기르다가 불법 하수처리건으로 경찰서에 불려가네 어쩌네 곤욕을 치른 뒤에 돼지막을 플라스틱 사출공장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또 언제부턴가 농공단지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장 안은 사출기 돌아가는 소리, 플라스틱 찍어내는 소리에 라디오 소리가 진동했다. 기계 소리와 라디오 소리는 제각각 악을 쓰며 공장 천장 위로 치솟았다가 공장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트로트를 따라부르며 일을 하던 외국인 노동자 남자가 나를 흘끗거리자 만배가 침을 뱉듯이 거칠게 쏘아붙였다.

“얌마, 함부로 입맛 다시지 말고 빨리빨리 일해, 일.”

그랬더니 얼굴이 검고 목이 검고 손이 검고 몸피가 가늘고 눈이 가는 외국인 노동자 남자가 씨익 웃으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얌마, 하부로 이마싸지 말고 빨리빨리.”

나는 커피고 뭐고 만정이 떨어졌다.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사장이고 사원이고 간에 너무 무식하고 너무 거칠고 너무 교양이 없고 하여간 저질이라고 수아는 질색을 했다. 수아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수아의 말에 동의했다. 하여간 만배는 요주의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장을 경영하는 만배나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일 능력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바라보고 있자면 저절로 신물이 다 날 정도였다. 사정이 아무리 그렇더라도 다방 여자들 빼고 이 고장의 몇 안되는 젊은 여자인 우리가 벚꽃이 휘날리는 둑방길을 걷는 이유는 그래도 우린 젊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젊음이 봄의 꽃길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꽃길 아래서 치마가 다리에 휘감기는 느낌이 간지러워 수아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까르르 웃을 것이다.

그러나 수아와 내가 병원문을 잠그려는 순간, 하얀 지프차가 연세가정의원 앞에 멈추었고 한 잘생긴 남자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나와 수아 앞으로 왔다. 그가 농공단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슴이 몹시 아픕니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것은 거의 신음에 가까웠다. 수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문 닫을 시간인데요.”

남자가 수아를 외면하고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나는 서둘러 병원문을 열었다. 의사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얼마전 이혼한 의사는 요새 연애에 정신이 팔려서 특히 토요일에는 환자 보기도 건성이다. 그는 이 고장 여자들에게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다. 그는 업무가 끝나자마자 자동차로 한시간 반이 걸리는 시내의 거처로 돌아갔다. 이 고장에 산다면 행여 이 고장 여자들 중 누군가가 밤에 그의 거처를 습격이라도 할까봐 그는 시내에 사는지도 몰랐다. 일이 끝나고 수아와 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말 한마디 부드럽게 건네주지 않는 의사 흉을 보았다. 의사는 시내에 나가서 여기 사는 우리 흉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의사도 없는 의원 병상에 우선 남자를 누이고 윗옷 단추를 끌렀다. 그리고 다시 의사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수아는 환자를 나에게 맡기고 가버렸다. 나와 환자만 남았다. 간호보조원인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남자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남자가 물을 마셨다. 그래도 가슴의 통증은 멈추지 않는 듯했다. 나는 남자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남자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남자의 팔다리도 주물러주었다. 이마의 땀도 닦아주었다. 간호보조원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간호했다.

이윽고 환자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나는 환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환자도 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환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환자가, 아니 남자가 순간적으로 씨익 웃었다. 좀전에 땀을 닦아주었는데도 또다시 새로운 땀방울이 남자의 이마 가득 맺혀 있었다. 나는 간호하는 사람 특유의 본능으로 남자의 이마에 수건을 갖다댔다. 남자가 괜찮다고 말했다. 지극한 찰나의 순간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직업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과 잘생기고 낯선 이성 앞에 섰을 때의 부끄러움이 동시에 일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몸둘 바를 몰라 쩔쩔맸다. 남자는 쩔쩔매는 나를 해맑은 미소를 띠면서 바라보았다. 남자가 약간 더듬거리면서 또 말했다.

“담배를 끊어야겠어요. 건 그렇고 제가, 제가 은혜를 갚아야겠지요?”

“은혜라니요?”

나는 이번에는 펄쩍 뛰었다. 남자의 고맙다는 말에 몸둘 바를 모르는 나. 그리고 또 은혜 갚는다는 말에 펄쩍 뛰는 나. 나는 이제 겨우 스물한살이었다. 남자가 이번에는 더듬거리지 않고 좀더 울림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은 내 목숨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떨리는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 생생하게 요동쳤다. 나는 남자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안 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우겨우 허락했다.

“그러세요, 그럼.”

다시 한번 남자가 고맙다고, 울림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내 전화번호를 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고 갔다. 그날은 은혜를 갚을 시간이 없는 모양이었다.

 

밤에 수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남자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우선 윗옷 단추를 끌러줬다고 말했다.

“윗옷 단추를 끌렀다고?”

그 다음에는 물을 갖다주고 등을 두드려주었다고 말했다.

“등을 두드려줬다고?”

그 다음에는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고 말했다. 수아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까악!”

나는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말 계속해도 돼?”

수아가 그러라고 했다.

“이마에 땀이 나서 내가 닦아주니까 고맙다고 했어. 그리고 은혜를 갚겠다고.”

“은혜를 갚겠대?”

“응. 은혜를 갚겠다고 내 전화번호를 가져갔어.”

수아 쪽에서 뚜우뚜우, 소리가 났다. 수아는 통화중에 딴 데서 전화가 오면 신호해주는 장치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장치를 하려면 또 어디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 줄은 나도 알았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짐짓 놀라며 물었다.

“무슨 소리니?”

“응, 다른 전화가 왔나봐. 연이야, 내가 이거 한가지만 말할게. 맘에 들수록 남자한테는 냉정해야 한다, 너.”

“알았어.”

수아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왜?”

“은혜를 갚고 싶군요.”

수아가 아니었다. 남자의 전화였다. 수아처럼 해야지, 냉정하게.

“……밤이, 밤이 늦었어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그리고 나는 이미 전화기를 붙들고 옷을 입고 있었다. 봄밤은 차가왔다. 급하게 입고 나온 얇은 블라우스 속 맨살에 소름이 돋아났다.남자가 몰고 온 하얀 레저용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남자가 히터를 틀어주었다. 음악도 틀어주었다. 나는 낮게 읊조렸다. 별이 빛나는 밤에.

“프랑끄 뿌르쎌의 메르씨 셰리예요.”

나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남자가 존경스러워졌다. 뭔가를 정확히 가르쳐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는 여자에게 확실히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부끄럽고 남자가 존경스러운 것이 슬펐다. 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의 씨그널 음악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남자는 누구의 어떤 음악이라는 것으로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남자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음을 느꼈고 그래서 슬펐다. 슬퍼도 하는 수 없는 그런 슬픔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차를 몰고 별이 빛나는 밤길을 십분쯤 달렸다. 남자는 나를 자신의 거처로 안내했다.

언제인가 수아가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고 말한 바로 그 집이었다. 퇴근길에 수아는 나를 바로 이 집 앞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부터 치자면 병원과 우리 집과 남자의 집과 수아 집이 차례로 있었다. 나는 퇴근길에 남자의 집을 거치지 않지만 수아는 언제나 남자의 집을 거친다. 거치는 동안에 어느날부턴가 남자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어떤 낯선 기미를 수아는 알아챈 모양이다. 밤이었다. 남자의 집에서는 음악소리가 옅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아가 속삭였다.

“난 언젠가 꼭 이 집 안에 들어가보고 싶어.”

“누가 사는지 알아?”

“모르긴 몰라도 멋진 남자가 혼자 살고 있을 거야.”

“걸 어떻게 아는데?”

“빨래가 늘 한 사람 거야.”

집은 겉보기에 평범했다. 그냥 보통 시골집이었다. 다른 집과 조금 다른 것은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팬지꽃이 몇포기 심겨 있다는 것. 이 고장 사람들은 결코 팬지꽃 따위는 심지 않는다. 남자는 차를 대문간에 세워두고 나를 마치 비밀의 화원으로 안내하듯이 어딘가 비밀스런 몸짓으로 자신의 집 안으로 들였다. 남자가 방문을 열자 거기에는 여태까지 내가 보통 집에서는 본 적이 없는 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책은 책장에도 꽂혀 있고 방바닥에도 쌓여 있었다. 책뿐이 아니었다. 책장과 벽에는 영화포스터와 엽서와 사진과 오려진 신문기사 조각들이 압정에 꽂혀 있었다. 방안은 대체로 정갈했다. 남자는 집 안에 들어와서도 음악을 틀었다. 나는 이번에는 소리내지 않고 입만 달싹여서 노래를 기억해냈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아니 에스콰이어인가? 남자가 커피를 끓여 내왔다. 진한 커피향이 방 안에 가득 찼다.

“알지요? 빌리 할리데이, 스목게츠인유어아이스.”

나로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 제목을 남자는 유연하게, 그리고 야속하게도 너무 빠르게 발음했다. 남자가 발음하는 노래 제목들이 나는 낯설고 생경했다. 이상하게 조금씩 화가 나려고 했다. 문득, 뭐 하나가 묻고 싶어졌다. 커피 주고 음악 틀어주는 게 은혜 갚는 건가요? 엄마는 지금 몰래 빠져나간 딸의 행방을 찾아 마당을 서성이고 있을까. 비척거리고 골목을 나와 지팡이로 땅바닥을 치며 울고 있을까. 그래서 누가 물으면 엄마는 울면서, 애가 날 버렸어요. 지 애비처럼 우리 애가 날 버렸다구요, 이 에미 밥해먹이기 싫고 빨래해주기 싫고 같이 살기 싫다고 가버렸다구요, 쿨쩍거리고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쉽게 일어서지도 못했다. 뭔가 낯설고 낯설어서 달착지근한 공기가 내 몸속에 스미고 내 영혼을 적시고 있는 느낌이 꼭 싫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남자가 이 고장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흥분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남자는 처음에는 이따금 밤에 전화를 해서 나를 불러냈다. 남자는 나를 데리러 왔고 나를 데려다주었다. 남자는 차 안에서도, 집에서도 음악을 틀었다. 더러 내 귀에 익은 음악도 있었고 생전 처음 듣는 것도 있었다. 남자와 내가 첫키스를 하던 날 들은 음악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가 내게 그 음악의 제목을 말해주길 원했다. 남자가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렇지만 남자가 말해주는 음악의 제목들을 내가 귀담아 들으려고 해도 귀에 담아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로서는 몹시 어렵고 먼 곳의 음악들이었다.

“지금 나오는 음악 제목이 뭐예요?”

남자는 내 입술 위에 뜨거운 숨결을 퍼부어대며, 음악 제목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얼른 말해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마리아 베르곤자라고 베빈다의 파두야.”

키스를 멈추고 남자가 내 블라우스의 단추를 끄를 때 나온 음악은 나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나는 저 음악을 언제 어디서 들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스피드 공일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탄성을 지른 것이 그의 손길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배고픈 어린 짐승처럼 내 가슴을 파고드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그의 집을 가려면 강둑을 지나서 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고 농로를 지나고 지금은 폐쇄된 방앗간을 지나야 했다. 방앗간은 벌겋게 녹슨 양철지붕을 인 채로 거기 논 가운데 3년째 방치되고 있었다. 그는 늘 방앗간 앞을 지날 때 차를 멈칫거리곤 했다. 나는 그가 무슨 행동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방앗간 안으로 나를 밀어넣지는 못했다. 단지 방앗간 앞에서 문득 차를 멈추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작은 그의 머리통을 힘껏 안아주었을 뿐이다. 그럴 때 그의 머리에서는 나로서는 처음 맡는 샴푸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샴푸에서 나는 냄새의 이름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 샴푸 냄새의 이름이 뭐냐고 물을 용기가 없어서 나는 그만, 샴푸 이름을 묻고 말았다. 그는 내가 그의 이마에 난 땀을 닦아주려고 수건을 그 이마에 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떠 블 리 찌 샴푸.”

나는 나의 스물한살 봄밤을 그와 함께 먼먼 나라, 그가 없으면 닿을 수 없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만 같았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낯설고 아득한 나라를. 그가 있어야만 닿을 수 있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그래서 슬펐다. 아름답고 슬프고 쓰라린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번에는 낯익고 낯익어서 슬픈 풍경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엄마는 나를 기다리며 먼지 푸석푸석한 마당에서 밤중 내 맴을 돌았다.

 

어느날부터인가 남자가 전화만 하고 데리러 오지 않았다. 남자는 말했다.

“택시 타고 와.”

‘택시비는 줄 건가요?’

그러나 나는 묵묵히 있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한번 내 귓불에 더운 김을 불어넣듯이 속삭였다.

“빨리 보고 싶단 말야.”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러면 차를 가지고 오세요.’

“지금 맛있는 거 만들고 있어.”

‘음식 만드느라, 나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거구나.’

나는 택시를 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의 어서 와, 소리가 부드럽게 감겨왔다. 그가 만든 음식은 꽁치통조림 찌개였다. 찌개를 한숟갈 뜨다가 문득 그가 말했다.

“집에서 혹시 농사 좀 짓니?”

“네.”

우리 집은 이제 농사지을 땅도, 농사지을 사람도 없다.

“누가?”

“엄마가요.”

이제 갓 환갑을 넘긴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는 말을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야, 좋겠다. 시골 살면 농사도 짓고 해야 하는데 말야.”

그날 밤은 음악이 없었다. 계속 거짓말하기도 뭣하여 내가 화제를 돌렸다.

“음악 안 틀어요?”

“음악? 노트북이 고장났어. 완전 맛이 갔나봐.”

“노트북 없으면 음악 못 들어요?”

“음악만 못 듣냐? 글도 못 쓰지.”

나는 그래서 그가 무슨 글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글쓰는 사람’임을 알았다.

“건 그렇고 농사는 무슨 농사 짓는데?”

“여러가지요. 고추, 파, 시금치, 상추, 쑥갓, 가지, 치커리, 토마토, 방울토마토, 아욱.”

“야아, 맛있겠다. 직접 기른 채소들은 맛도 좋아, 그치?”

“네. 근데, 왜 농사짓느냐고 물으셨어요?”

“이 찌개에다가 직접 농사지은 무공해 고추랑 파 좀 썰어넣으면 완전 예술일 텐데 싶어서 그렇지 뭐.”

“제가 갖다드릴게요.”

“정말?”

“네.”

남자가 화들짝 기뻐하며 내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너를 내가 지켜줄게.”

그날 밤, 노트북 없으면 글을 못 쓰는 ‘글쓰는 사람’은 술에 취해서 나를 데려다주지 못했다. 나는 밤길을 걸었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했다. 이런 밤에, 엄마가 나를 기다리면서 마당을 뱅뱅 돌지 않게 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나는 엄마에게 농사를 짓게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치매에는 손을 놀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엄마는 화투도 칠 줄 모르고, 그렇다고 나이든 엄마를 손 놀리게 한답시고 피아노학원에 보낼 수도 없고, 우울증적 치매에는 무엇보다 녹색세상을 열어주는 것이 좋다는 말을 라디오에서 들은 것도 같아서 나는 나름대로 판단을 내린 것이다. 더구나 엄마는 농사경험도 풍부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 집은 농토는커녕 텃밭도 없다. 옆집에서 우리 집 텃밭자리까지 사들여서 어느날 시멘트 블록을 잔뜩 올려 외국인 노동자들을 겨냥한 빌라 비슷한 건물을 지은 탓에 예전의 기름진 텃밭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다른 집 다 하는 시멘트 마당을 안한 것은 돈이 없어서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처사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채소를 직접 길러 먹으면, 부식비는 절약될 것이다.

나는 남자에게 무공해 채소를 조달해주기 위해 텃발을 일구려는 게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누누이 각인시켰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일구어 채소밭을 만들고 드디어 첫물 고추가 열렸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남자를 생각했다. 그가 다시 나를 불러주기를. 그러나 그는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고추는 저러다 가지가 휘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저리주저리 열렸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고추를 보면 그만큼 늘어난 고추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상추는 또 어떤가. 엄마가 울면서 빽빽이 돋아나온 상추를 솎아주었다. 농작물을 자식 대하듯 하는 엄마의 심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야야, 너네 아버지가 왜 이걸 솎아주지도 않는대니?”

상추는 솎아주지 않으면 어느 한날 비에 다 녹아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을 엄마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엄마는 솎은 상추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야야, 너네 아버지상에 상추김치 놓아드려라.”

나는 엄마와 적막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엄마가 솎아놓은 상추를 다듬어 신문지에 싸고 고추를 가지런히 찬통에 담고 치커리도 뜯어 봉지에 넣어서 남자의 집으로 갔다. 엄마는 아버지상에 상추김치를 놓아주라고 했던 말을 잊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게 무공해 채소를 가져다줄 거냐고 물으며 좋아했던 것을 잊은 것이 틀림없는 남자에게 나는 상추김치를 만들어주러 갔다. 남자는 어쩐 일인지 나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남자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걸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은 여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수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가 가로막고 선 다리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신발이 수아의 쌘들과 비슷하다,고도 나는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 수아가 지난 일년간 착실히 부어온 적금을 깼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수아가 시내 전자랜드에 간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수아는 전자랜드에 가서 노트북을 샀을까. 지금 남자의 집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저 음악소리는 수아가 사온 노트북에서 나는 것일까. 나는 내가 가지고 간 것들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남자가 감탄을 연발했다. 남자의 감탄은 깍듯했다. 나를 더이상 부르지 않으면서부터 남자는 내게 깍듯하게 대하기로 결심한 것일까.

“잘 먹을게요. 근데 고추가 너무 많네요.”

“네, 고추가 많아요. 지난 봄에, 시장에서 오십 주 사다가 심었어요. 상추도 씨앗을 너무 많이 뿌렸나봐요. 거름발이 좋지 않은데도 우후죽순으로 났지 뭐예요. 거기 치커리 있잖아요? 보기에는 뻣뻣한 것 같아도 노지 거라 고소해요. 벌써 색깔부터 다르잖아요?”

“그래요, 잘 먹을게요.”

“근데요, 저기 있잖아요. 여기 마당이요, 우리 집 마당보다 거름발 좋거든요. 풀 우거져 있는 것보다 채소 우거진 게 보기도 좋을 거예요. 언제 제가 일구어드리면 안될까요?”

“괜찮아, 신경쓰지 말아요.”

“저, 원래가 농사짓는 집에서 자라서 농사일은 잘하는데.”

“알았어요. 근데 오늘은 안돼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남자의 집을 나와 밤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엄마가 어두운 마당에 주질러앉아 달빛 아래서 상추를 솎고 있었다.

“야야, 너네 아버지상에 상추김치 놓아드렸니?”

“네, 엄마.”

나는 연세가정의원을 그만두고 확장개업할 예정인 김한의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연세가정의원이 편하고 돈도 더 많이 주었지만, 나는 밤이면 남자에게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수아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함께 일할 자신이 없었다. 연세가정의원을 그만두고 김한의원이 새롭게 문을 여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에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비는 거칠고 그리고 지루하게 내렸다.

 

나는 저녁밥을 먹고 고추와 상추와 치커리와 가지를 땄다. 그것들을 신문지에 싸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야야, 너네 아버지 밥상에 상추김치 올려라.”

“알았어요 엄마. 아버지한테 상추김치 올리고 올게요.”

나는 스물한살의 처녀답게 명랑하게 대답했다.

비가 그친 저녁하늘 한귀퉁이에 오랜만에 별이 보였다. 별은 두터운 구름 사이, 간신히 찢어진 틈으로 위태롭게 빛나고 있었다. 남자의 집까지는 걸어서 한시간이다. 나는 밤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병원에서 늦게 퇴근하거나 면소재지에서 놀다가 집에 오는 길이 무서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애써 가꾼, 무공해로 가꾼 고추와 상추와 치커리와 가지를 주면서 나는 남자에게 물어볼 것이다. 지난날의 어느 한밤에 당신이 보고 싶다고 나를 불러내어서 한 말을 잊었느냐고. 내 귓불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곤 하던 어느 한밤에 당신이 내게 무공해 채소들을 정말로 가져다줄 거냐고 묻지 않았느냐고.또한 그러한 날 밤에, 내 가슴에 머리를 처박고 한 말들을 잊었느냐고.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던 밤에 그가 내게 한 말과 행위 들을. 그걸 모른다 하면 그는 내게 죄를 지은 것이다.

그는 집에 있었다. 집 안에서는 음악소리가 났고 그리고 그는 여전히 나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지고 간 것들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위태롭게 반짝거리던 몇낱의 별들은 어느 사이 다시 두터운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무공해 채소예요.”

“무공해고 뭐고 이제 그만 가져오세요.”

“나는 당신에게 이 채소들을 갖다주기 위해 지난봄 내내 마당을 일구어 텃밭으로 만들었어요. 텃밭을 일구는 동안 손에서 피가 나기도 했죠.”

“나는 연이씨에게 손에서 피가 나도록 텃밭을 일구라고 한 적이 없어요.”

“나는 당신 집에 오는 택시비 때문에 사람들 다 하는…… 통화중에 다른 전화 왔다고 신호해주는 장치도 못했어요.”

내가 그랬던가? 그러나 나는 그에게 어떤 말로 내 마음의 슬픔을, 분노를, 낯선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화중 대기장치 따위의 엉뚱한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는 진짜 내 속마음을 말하기가 나는 두려웠다.

“무슨 장치?”

나는 문득 무안해져서 말하지 않았다.

“그건 장치한다고 하지 않고 설정한다고 하는 거야. 것도 모르니?”

남자가 조소했다. 그 조소가 순간적으로 내게 용기를 주었다.

“장치든, 설정이든 하여간요. 난 누구처럼 엠피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에게 노트북도 사줄 수 없어요.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무공해 채소뿐이었어요. 나를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나는 이제 겨우 스물한살이에요. 스물한살 처녀한테 이러시면 죄받겠죠? 더군다나 당신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고 비록 노트북 없으면 못 쓰지만 이런 집도 구해서 글도 쓰고 하는 사람이잖아요?”

심장은 격렬하게 떨려왔지만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야, 그동안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래? 너 올 때마다 내가 음식 해주고 음악 들려주고 했던 거 생각 안 나? 생각난다면 이러면 안되지. 너가 이러는 거 행패 부리는 거야. 행패 부리자면 너만 부릴 줄 알어? 나도 부릴 줄 알어. 하지만 내가 언제 너한테 행패 부린 적이나 있어? 단적인 예로 방앗간 건만 해도 그래. 내가 나쁜 맘만 먹었어도 방앗간 지날 때 너 가만 안뒀지. 근데 나 너한테 한번도 험하게는 안했잖아. 그리고 내가 굳이 너 같은 애한테까지 깊은 속얘기 할 필요가 없어서 안했는데, 내가 잘나가는 사람 같으면 뭐 이런 데서 이러고 있겠냐? 나도 누구처럼 여건만 된다면 너같이 돼먹지 못한 계집애한테 이런 수모를 당할 사람이 아니란 거 너 알어? 야, 내가 아무리 이런 집에서 이렇게 산다고 니 눈에 내가 거지로 보이냐? 이거 필요 없으니 가져가, 썅. 촌년이 발랑 까져가지구서는. 에잇 재수없어.”

나는 남자가 내던진 비닐봉지에서 쏟아져나온 나의 고추와 상추와 치커리와 가지를 수습했다. 손이 심하게 떨리고 심장은 그보다 더 떨렸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비에 젖어 걸을 때, 내 뒤에서 누군가도 비에 젖어 걸어오고 있었다. 칠흑같은 밤이다. 남자다. 대화를 나누는 걸로 봐서 두 사람이다. 나는 겁이 났다. 남자 집으로 갈 때는 악에 받친 어떤 기운 때문에 무섬증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무서웠다. 나에게 융단폭격 같은 말폭격을 퍼부어대던 남자가 무섭고 칠흑같은 밤이 무섭고 내 뒤에 오는 누군가가 무서웠다. 나는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그날 밤 뼈저리게 체험했던 것이다. 나는 소리없이 뛰었다. 그때서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 발을 헛디뎠다. 신발이 벗겨지고 뭔가 날카로운 것이 발바닥을 찔렀다. 방앗간 안으로 몸을 숨긴 뒤에야 나는 채소 봉지를 놓친 것을 알았다. 남자들이 방앗간 앞에서 딱 멈추었다.

“잠깐만, 이게 뭘까?”

두 남자가 방앗간 처마 밑에서 뭔가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어둠속에 몸을 바짝 숨기고 숨을 죽였다.

“깐쭈, 그거 돈 아니야?”

“이건 고추야, 싸부딘. 상추도 있어. 월급날, 소주 마시고 삼겹살을 상추에 싸먹어.”

생각만 해도 즐거운가. 깐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했나봐 잊을 수 없나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후회하나봐 널 기다리나봐…

나는 어둠속에 몸을 숨긴 채로 그러나 나도 모르게 입을 달싹여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바보인가봐 한마디 못하는 잘 지내냐는 그 쉬운 인사도 행복한가봐 여전한 미소는 자꾸만 날 작아지게 만들어…

남자들이 노래를 뚝 멈추었다. 나도 입을 다물었다. 빗소리는 점점 더 거세졌다.

“싸부딘, 사장이 너무 불쌍해.”

“난 사장 죽도록 미웠어. 깐쭈, 너 때문에 오늘 일 다 망친 거야.”

“난 사장님, 돈 줘 소리 못하겠어. 사장 돈 없어, 몸 아파, 어머니 아파, 사장 슬퍼.”

“그래도 사장한테 말을 해야 했어.”

“나는 사장님 돈 줘, 소리 못해. 왜냐, 사장 돈 없어.”

“깐쭈, 언제 떠나?”

“모레. 오늘밤, 내일밤 자고 모레. 내일은 시내 가서 윤도현 음악씨디하고 고무장갑하고 소주하고 옷하고 신발하고 여러가지를 살 거야. 난 윤도현 왕팬이야.”

“깐쭈, 넌 너희 나라 가면 뭐 할 거야?”

“모르겠어. 가면, 엄마 아버지 누나 여동생 사촌 들 만나고 산에 올라 달을 볼 거야. 우리나라 네팔 달 볼 거야. 내가 뭘 할 건지, 달한테 물어볼 거야. 싸부딘은?”

“여동생이 한국사람과 결혼했어. 시골이야. 동생이 남편한테 맞았어. 동생 많이 슬퍼. 형이 한국여자랑 결혼했어. 형여자 도망갔어. 조카 있어. 형이랑 조카 많이 슬퍼. 부모님 돌아가셨어. 우리나라, 방글라데시 가도 나는 아무도 없어. 한국에 다 있어. 난 갈 수 없어. 형 다쳤어. 손가락 잘렸어. 조카 살려야 해.”

“싸부딘, 난 한국에서 슬플 때 노래했어. 한국 발라드야. 사장이 막 욕해. 나 여기, 심장 막 뛰어. 손가락 막 떨려. 눈물 막 흘러. 그럼 노래했어. 사랑 못했어. 억울했어. 그러면 또 노래했어. 그러면 잠이 왔어. 그러면 꿈속에서 달을 봤어, 크고 아름다운 네팔 달이야.”

깐쭈가 다시 노래한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멀리 가는 걸 보네…

나는 어둠속에 몸을 숨긴 채 또다시 따라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싸부딘도 노래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더이상 내게 이러시면 안돼요…

노랫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쌀겨 냄새 가득한 방앗간 안으로 스며들었다.

“싸부딘, 여기 상추도 있고 고추도 있어. 집에 고추장 있어. 소주는 사야 해. 삼겹살은 없어. 삼겹살도 사야 해. 우리 소주 마시자.”

“좋아.”

두 사람이 빗속으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명랑하게 사라졌다. 싸부딘과 깐쭈가 사라진 길 너머로 내가 지나온 길이 보였다. 그 길 너머 그 남자네 집이 보였다. 겨우 가라앉았던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요동쳐오기 시작했다. 나는 노래 불렀다.

사랑했나봐 잊을 수 없나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후회하나봐 널 기다리나봐…

나는 방앗간을 나섰다. 나는 빗속에서 악을 썼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노래 불렀다. 저기, 네팔의 설산에 떠오른 달이 보인다. 나는 달을 향해 나아갔다. 비를 맞으며 천천히, 뚜벅뚜벅, 명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