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한창훈 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청춘가를 불러요』, 장편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등이 있음. kkunha@naver.com

 

 

 

나는 여기가 좋다

 

 

저쪽에는 좀 남았구나 싶던 붉은 기운이 순간 사라지자 사방은 분간이 어려운 칠흑 같은 어둠이다. 섬에서 일직선으로 달려온 배는, 그사이 옅은 노을이 지고 어두워졌기에, 어둠을 목표로 항해를 한 듯하다. 멀고 가까운 가늠이 사라져버린 곳에 밤의 혼령이 함뿍 쏟아져내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질감이 들어찬다. 바다나 허공이나 하늘이나 온통 한 색깔로 뒤섞이자 이번에는 마치 세상이 뒤집혀 바닷물이 하늘을 향해 쏟아진 것 같다. 바닷물이 허공을 적시고 구름과 별을 물들인 것이다.

터져 부서지고 말 것처럼 달아오른 엔진 소음 때문에 배는 공동묘지 가운데를 울면서 뛰어가는 아이처럼 급하기 짝이 없다. 그 탓에 뱃부리는 편할 틈이 없다. 끊임없이 치솟아올라 허공과 멈칫, 부딪친 다음 급한 원을 그리며 떨어지다가 부르르 떨면서 다시 솟구쳐오른다. 거기에서 날아온 물방울이 조타실 창문에 총알처럼 부딪친다. 배가 운다.

GPS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내의 얼굴은 푸른빛이 옮아와 혼령의 그것처럼 변한다. 해저 수심이 50에서 60, 70, 급하게 꺾여간다.

“멀미 난가?”

사내는 조타실 구석을 바라보며 묻는다. 아내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그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항해등을 켠다. 어둠속에 숨어 있던 갑판이 달려들듯 확 밝아지고 갑판이 밝아지자 배를 중심으로 빛의 우산이 만들어진다. 퍽, 튀어오른 물방울이 한순간 반짝 빛난다. 우산 속으로 은빛 비가 내린다.

뱃전에서 부서지는 물보라도 빛을 받아 몸통은 바다 깊은 곳에 숨기고 긴 혀만 날름거리는 괴물의 그것처럼 변했다. 항해등 불빛은 아내의 머리칼에도 찾아왔다. 끝이 흰색으로 변해 마치 머리카락부터 늙는 병에 걸린 듯 보인다.

머리칼뿐만이 아니다. 크림 바른 곳이 빛나기는 하지만 주름과 거친 피부를 애써 감추려는 표시 같아 처량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그와 떨어져 문에 몸을 기대고 있는데 바닷물이 창을 덮칠 때마다 움찔거린다. 늙었다. 하긴 곧 쉰이다. 눈자위는 처지고 손에 근육도 생겼다. 사내한테 시집와 자식 낳고 이십오년을 살았다. 그 시간이면 팔팔한 처녀가 염색약 사러 다니는 아줌마로 변하는 데 충분하다. 가슴속에서 울컥 치솟는 열정 식혀 반듯하게 누이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다 보내고 나서야 아내는 떠나겠단다. 영영 가겠단다. 왜, 어디로.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참소.”

하긴 어둠을 도착항으로 삼았으니, 어두워졌다는 것은 도착할 때가 됐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아내 입에는 불만이 들어 있다.

“파도가 너무 치요. 그냥 돌아갑시다. 사람 죽겠구만.”

“주의보 내린 것도 아닌디 이 정도 파도에.”

GPS에 도착지점 표시가 나타난다. 엔진을 다운시키자 거친 폭발음이 사라진다. 곤두박질과 솟구치기를 되풀이하며 거칠게 돌진하던 배는 순간 어쩔 줄 몰라 한다. 남아 있는 관성과 파도의 저항이 뒤엉켜 갈피를 못 잡고 좌우로 급하게 요동을 친다. 휘청, 아내는 선반 모서리를 붙잡고 쓰러지는 것을 간신히 모면한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납치되어 끌려온 모습이다. 하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왔기는 했다.

사내는 고개를 뽑아 주변을 살핀다. 보이는 것이라곤 제가 밝혀놓은 등불뿐이다. 먹물 한점 떨어져 무색의 수면에 검은 방울 만들듯, 바다 위의 불빛은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여전히 주변 서너 발 정도만 비추고 있다. 그 빛은, 당장 눈앞은 밝았지만 결국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보이는 것은 없다. 빛의 장막 너머 파도 일렁이는, 무한대의 바다만 있을 뿐이다. 근처를 떠도는 혼령이 본다면 감히 사람의 눈으로 어둠의 깊이를 측정하고 있다고 타박할 것이다. 하지만 배를 멈추면 좌우를 살피는 것이 그의, 어부의, 오랜 습관이다.

이 자리는 그가 살고 있는 섬과 제주도 중간쯤으로 갈치어장이 형성되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어장이 죽어버린데다 그나마 철이 지나 아무도 없다. 망망한 밤바다 한가운데 불빛 하나 정지하고, 한 시간 넘게 맹렬하게 달려온 배는 비로소 숨을 몰아쉰다.

배는 이년 어장을 다니다 삼년 내리 선착장에 묶여 있었다. 어장이 죽고 나자 선원들 인건비와 기름값이 안 빠졌다. 놀면 손해가, 움직이면 손해가 되었다가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손해로 바뀌었다. 그는 끝내 배를 내놓았다. 그 기간 동안 욕심 부려 큰 배를 장만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말리는 아내 말을 들을걸, 했다.

이 행보는 혼자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제주도 사람이 와서 배를 보고 갔다. 팔리기 전에, 이제 내 배를 가지고 어장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기에, 마지막으로 낚시 한번 가보자, 했던 것이다. 철은 지났지만 그래도 식구들 한동안 먹을 것은 낚아놓을 수 있겠지, 싶었다.

배는 결국 어제 팔렸다. 이틀 뒤 잔금 들고 와서 가지고 가겠다고 했으니 그게 내일이다. 오늘이 지나면 그는 선주도, 선장도 아니다. 그냥 섬사람인 것이다. 선장을 처음 맡았던 스무살 이래, 몇년간의 상선(商船) 선원 생활을 빼고는, 선장 명함을 내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선장으로서 첫 행보 때 동중국해 거친 파도 뚫고 나가 배 가라앉을 정도로 민어와 농어를 잡아 만선(滿船)으로 돌아오던 그 기억은 이제 배 잃은 섬 중년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그는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배가 팔렸다고 하자 아내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소. 하소. 난 이제 섬을 떠날 거요. 가서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요.

아침에 일어나 수협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갚을 돈을 헤아려보았다. 뱃값을 모두 주어도, 잔금에 연체이자 더해 한 척은 더 팔아야 하는 액수가 남아 있었다.

친구가 하는 양식장에 들러 시간 보내다가 들어오자 아내는 방 청소를, 분명하게 말해보면 짐을 싸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떠난다니, 택도읎는 소리지. 난 진심이요, 오래오래 생각한 것이니 흘려듣지 마시오.

아내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는 아내가 정말 간다는 것을 눈빛 보고 알았다. 눈을 만났을 때 그 속에는 수평선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애원도, 원망도 없었다.

세상 일이 어디 맘대로 돼집디여.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다보믄 분명 좋은 날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께, 영화 아부지, 속상하다고 성질내지 말고, 안 있소, 어쨌든 가족 울타리 안에서는 화목해야 안되겠소. 이렇게 애원하던 눈빛은 딸아이의 것을 닮았었다. 그런 눈빛을 할 때면 찌개를 끓이고 숟가락을 가지런히 놓았다.

원망과 분노의 눈빛도 있었다. 그것은 그를 노려보던 아들의 눈빛과 같았다. 아부지가 어장도 안되고 빚만 자꾸 늘어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래부렀다, 미안하다. 만약에 한번만 더 그러면 아부지가 물에 빠져 죽어불란다, 하면 어쩔 수 없이 순해지던 눈빛까지도. 모두 그가 상심에 지쳐 취해버린 그 다음날이었다.

그동안 수평선 같은 눈빛은 한번도 본 적 없었다.

나는 내일 섬을 뜰 것이요. 자꾸 뭔 소리여. 영화랑 살 거요, 영식이 제대하믄 영화는 졸업하니께. 무슨 수로 살어? 뭔 일을 해서든 아그들 굶기지는 않을 것이요. 어허 이 사람이, 꼭 배 팔리기 기다렸단 듯이. 그렇소, 배 팔리기 기다렸소. 진짜 갈란가? 말했잖소.

 

“누워 있으소.”

“바람이라도 쐬게 나갈라요. 무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소리가 작다. 어둠속으로 들어와버린 배. 뒤집힐 듯 출렁이는 바다. 지나가는 배 한 척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고립. 아내는 무서운 것이다. 그는 집어등도 켠다. 엔진을 약하게 해놓은 탓에 보통의 백열등을 켜놓은 것만 하다. 갑판이 조금 더 밝아지고 어둠의 혼령들은 반 뼘 정도 뒤로 물러난다. 물러나서 혀를 내밀고 춤을 춘다.

“오다 생각했는디 말이여.”

그는 갑판 어창에서 낚싯줄을 꺼내며 입을 연다.

섬 하나 없는 난바다이지만 한여름 갈치어장이 시작되면 이곳은 야경만으로 하나의 도시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가 살고 있는 섬과 제주도에서, 소식 듣고 서해나 동해에서까지 배가 몰려와 집어등을 켰다. 집터 고르고 골목 만들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집어등 불빛은 바다 수면에 용접을 하는 듯도 하고 보석가게 하나 새로 개업한 듯도 했다.

하지만 연이은 폐업으로 끝내 그 기능을 잃어버린 시장처럼, 용접공도 철수해버리고 보석가게도 문닫고 잠수해버렸다. 그는 그곳으로 낚시를 던진다. 파도치는 와중에도, 풍덩, 추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집어등 불빛에 멸치가 모이고 멸치를 주식으로 삼는 것들이 따라와 빛을 반사하는 바늘을 무는 게 순서다.

“당신도 늙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네.”

“간 세월이 얼만디……”

아내 말에는 힘이 없다. 당장의 멀미 때문이겠지만 더이상 의욕이 없는 사람의 특징 같아도 보인다. 미련을 버리면 말이 담담하게 나오는 법이니까. 그녀는 몸을 약간 틀어 밤바다 속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신 정말 이뻤는디.”

사라진 것 유독 아깝듯이 떠나는 사람 새삼 정드는 법인가. 그의 눈에는 파도와 어둠이 잠시 사라지고 작은 입술을 한일자로 앙다물고 있던 처녀가 떠오른다. 다방 탁자의 밀크잔도, 유행하는 여배우처럼 화려하게 파마를 한 머리카락도 보인다.

그는 왼쪽 팔에 짓눌려 튀어나와 있는, 예전에는 처녀였던 아내의 가슴을 훔쳐보듯 바라본다. 저 품에 기대어 얼마나 많은 잠을 잤나. 오랜 항해와 작업의 피곤은 바다에서 쌓인 것이라 바다가 풀어주지는 않았다. 천근만근 맨살이 찢어질 것 같던 그 피로를 저 몸이 맡았다. 수협에 생선 위판을 하고 돌아오면 저 몸은 늘 집에 있었다. 고생했소. 집은 별일 읎었는가. 예, 파도는 심하지 않았소? 흑산도 지날 때 고생 좀 했구만. 좀 잡히기는 했소? 늘 그 정도지 뭐. 그리고 아내 위에 몸을 실었다. 젖가슴과 아랫도리도 어디 가지 않고 늘 그곳에 붙어 있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몸을 밀고 들어가면 돌풍 만난 배처럼 떨렸고 이윽고 깊고 진한 피곤이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그렇게 살았다.

아내는 피식 웃는다.

“그런 소리로 날 잡으요?”

“글쎄, 가버린다는 말 자체가 워낙 느닷없는 거여서.”

“하긴 당신도 정말 잘난 사내였소이. 크고 딱 벌어진 몸에 스무살에 마이구리(만선)한 소년 선장으로 유명했으니께. 당신 아니었으믄 죽어도 이 섬에서는 결혼 안했을 거요.”

사내도 슬쩍 웃음이 난다. 그러자 이 상황이 무슨 연극 한 대목처럼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에이, 자꾸 장난하지 마, 툭 치면 아내도 배도, 알았어 알아, 농담이었어, 이러며 배시시 웃을 것 같다.

입질이 없다. 그는 다시 줄을 끌어올린 다음 던진다. 막연한 희망과 충동의 분노가 이 배와 함께했다. 잘살고 싶었다. 우리나라 바다의 생선을 몽땅 독차지해서라도 잘살고 싶었다. 배에 돈다발을 가득 실어 아내와 자식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어장도 첨단화의 경쟁. 크고 좋은 배에 좋은 장비가 돈을 벌어들였다. 그래서 욕심을 냈고 그리고 마침내 도끼로 자근자근 조각내버리고도 싶었다. 이젠 그 배가 없어진다. 섬에서 배가 없다는 것은 괭이 없이 갱도에 들어간 광부와 같은 것. 총 없이 전투에 나가는 군인과 다를 바 없는 것. 이제 그 꼴이 된다.

“난 전생에 뭔가 큰 죄를 졌어라우.”

그녀는 깊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뭔 말인가.”

“섬에서 태어났응께.”

“난 좋기만 하구만.”

“그래서 사내들은 몰르요. 여자한테 바다와 섬이 뭔지. 한번도 내색을 안했응게 모를 것이요.”

“………”

“옛날에, 언젠가 배에서 나 오줌 마렵다고 했을 때 당신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그냥 대충 누라고 했겄지. 배에 변소가 어딨다고.”

“섬에서 여자란 게 그것 같은 것이요.”

“배가 다 그렇지. 그럼 어쩌다 마지못해 타는 당신 위해 변소를 만드라고? 다른 여자들은 그냥 대충 잘도 처리하등만.”

아내는 머리를 팔꿈치에 묻는다. 가슴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게 그 소리요. 나는 그런 여자들처럼 못한단 말이요. 탔다 하믄 꼭 멀미하는 것 보고도 모르요? 배뿐만 아니요. 여기 섬이란 것은 몇발짝만 걸으면 바다, 뒤로 걸어도 바다, 옆으로 걸어도 바다. 길 아닌 곳은 모두 밭 아니믄 산……이렇게 갈 곳 몇개만 정해져 있는 것이 섬 여자요.”

파도 하나가 배를 높이 들었다가 툭 떨어뜨렸다. 사내 몸 휘청거리고 아내는 갑판에 달라붙는다.

“다 마찬가지지. 그냥 사는 거지 뭐.”

“그냥 사는 것은 육지에서도 할 수 있소.”

“………”

“내 평생 생각한 것이, 내가 왜 섬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것이요. 죄를 지어 벌을 받았다는 것말고는 해답이 안 나왔소.”

“그러면 여기에서 죄 갚음 한다고 생각하고 사소.”

“그 죄가 기억이 나믄 좋겄소. 기억에 읎으니 억울하요.”

그때 입질이 왔고 그는 반사적으로 줄을 낚아챈다. 다행히 물었다. 올라온 놈은 갈치. 놈은 무지갯빛 몸뚱이를 거칠게 털다가 바닥에 눕는다. 등지느러미가 날렵하면서도 우아하게 물결을 탄다. 수정처럼 눈이 맑다. 깊은 바닷속을 제멋대로 헤엄치다 한순간에 사내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 소유권이 저 스스로에서 사내에게 옮겨온 것. 불빛 찬란하게 반사되는 놈을 보며 그는 잠깐 아득해진다.

바로 이 맛에 어장을 해왔다. 이것으로 먹고살았고, 이것 때문에 빚을 졌다. 이것 때문에 즐거웠고 이것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자 마치 독약으로 빚어놓은 고운 구슬 하나 보는 듯하다. 연이어 한마리 더 올라온다. 휑하던 갑판 위에 소박한 활기가 돈다.

아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도마와 칼을 집어온다. 아무 말 없이, 그중 한 녀석 은색 가루를 벗겨내고 칼끝으로 지느러미 끊어낸 다음 포를 뜬다. 그가 평생 어부로 살아왔듯이 그녀도 어부의 아내로 살아온 것이다. 싫든 좋든, 산골이 싫어 뛰쳐나온 사람이 결국 나무하고 불 때는 짓을 제일 잘 하듯, 그녀는 노련하게 칼질을 한다. 갈치는 제 살이 발라지는 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등뼈와 꼬리만 쥔 채 풍덩, 고향으로 돌아간다. 접시에 가지런한 살점만 남는다.

“잡수시오.”

양념장 찍어 한점 씹으며 그는 무겁게 입을 연다.

“정말 갈 건가?”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고 했잖소. 당신이 어떻게 할 건가만 정하시오.”

“내가 안 따라가겠다믄 어떡할란가.”

“이혼합시다.”

어쩌면 아내는 마지막 상을 차려준 것인지도 몰랐다.

“이혼이 동네 개 이름이여? 그렇게 쉽게 내뱉게.”

“세상을 당신 혼자만 산 거 아니요. 당신 말대로 나도 늙어가는 사람이요.”

“아 그래,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나서 인자사 뭐 한다고.”

“당신 소원이 이런 배 하나 가지는 거였소. 그때 말리는 나한테 뭐랬는지 기억하요? 어장 안돼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좋다고, 이런 배 하나 못 부려보면 죽어서도 후회할 거라고 했소. 내 심정이 그러요.”

그는 그 달던 갈치살 맛을 잘 모르겠다. 어둠속에서 바람이 몰려와 접시를 기웃거리다가 반대편으로 휭 사라진다. 바닷물에 젖은 먹장구름이 바람 따라 흘러가는데 워낙 층층 두터워 하늘이 통째로 움직이는 듯하다. 아내가 바라보며 묻는다.

“당신은 바다가 좋지라우?”

바다가 좋다. 동료 어부들과 술 한잔 하면 흔히들 떠드는 소리가 그거였다. 관광객이 지나다 물어도 그 대답. 그런데 바다가 좋은 걸까. 정말로 바다를 사랑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번이라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오래지 않아 깨닫는다.

새벽 검푸른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붉은 해. 그곳을 향해 배를 몰고 나갈 때, 브이자로 퍼지는 흰 물결. 그물에 가득 잡힌 생선. 만선으로 돌아올 때의 기쁨. 수평선 너머로 퍼지는 노을. 밤바다를 장식하는 집어등의 빛. 고된 어장을 끝내고 나서의 달콤한 휴식. 그래, 다들 아름답다. 근데 그걸 좋아하는 걸까.

아버지는 왼쪽 엄지발가락이 없었다. 발가락 관절 아래 발톱 부분이 깨끗하게 깎여나간 채 굳어 있었다. 아부지, 발 왜 이러요? 어린 그가 물었다. 쥐가 묵은 거다. 쥐가 묵어요? 남태평양 갔을 때여, 나흘을 내리 다랑어를 잡다가 잠이 들었는디 일어나보니 이만한 쥐가 갉아묵고 있드라, 살 갉아묵고 피를 싹싹 핥는디 얼매나 무서운지 아픈 줄도 모르겄드라, 부식이 다 떨어져서 묵을 것이 읎은께 사람 살한테 달려든 거여.

아버지는 이빨자국 그대로 살이 굳은 발가락을, 마치 새로 심은 씨앗에 물 주듯, 씻고 또 씻었다. 그러나 그 작은 발가락 하나 끝내 새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꼭 훌륭한 선장이 되거라.

그것은 아버지가 발가락 하나 쥐 뱃속에 남겨두고 저세상으로 돌아가면서 그에게 남겨둔 말이다. 선원으로만 살았던 아버지는 쥐에게 먹히지 않을 방법으로 선장이 되는 것을 꼽았던 것이다.

유언이 아니라도 그는 뱃사람이, 바다가 좋았다. 너는 울다가도 뱃소리만 들으면 울음을 그쳐부렀어, 바다에만 나가면 해가 저물어도 돌아올 줄을 몰랐다니께. 그가 기억 못하는 그의 과거는 그런 것이었다. 증언은 틀리지 않았다. 어린 그는 학교 가서도 유리창 너머로 들리는 통통통 기계 소리 미세한 차이로 누구네 배라는 것을 알아맞히곤 했다. 학교 파하면 동네 배마다 건드려보고 다녔다. 엔진을 만져보고 소음기를 들여다보느라 얼굴이나 손바닥이나 검댕이 가실 날 없었다. 공부 안하고 딴짓 한다는 어른도 있었지만, 바다에 관한 호기심과 배에 대한 관심을 누구보다도 흐뭇해한 이는 아버지였다.

또래들 중에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수영도 제일 잘했고 바다에 관한 지식과 물때 알아맞히는 데도 최고였다. 스무살 되던 해 그는 가장 어린 나이로 고깃배 선장이 되었다. 넓은 대양을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고 싶어 상선을 타고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다니기도 했다.

 

훌륭한 선장. 어쩌면 그것은 훌륭한 남편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훌륭한 남편이, 아버지가 되는지 알 듯하면서도 번번이 잘 모르듯, 그는 자신이 훌륭한 선장이 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선 잘 잡는 선장? 파도 잘 타는 선장? 풍랑에 겁 안 먹는 선장? 배를 잘 관리하는 선장? 안방에 하루 누워 있는 것보다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열흘 떠 있는 것을 선택하는 선장?

물론 그는 늘 그랬다. 그 모든 것에서 남들보다 나았다. 그런데 훌륭한 선장은 못된 듯하다. 훌륭한 선장은 끝까지 제 배를 포기하지 않는 이 아닌가.

“잘 모르겄어.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지.”

“습관이요.”

“그러겄지. 배 타는 것말고는 하나도 안해봤으니까.”

“그랬소, 당신은. 늘 바다와 배만 보고 살았소. 그러다 이렇게 된 거요. 인자 여기서 뭘 어떻게 하겄소?”

“흐음.”

“사실 옛날부터 이 말이 하고 싶었소이. 그런데 바다와 배를 쳐다보는 당신 눈빛이 불타는 것 같어서 미루고 또 미루었소. 이 배 지을 때, 내 말 안 듣고 빚 얻어 이렇게 크게 지을 때, 그때는 혼자 밤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소. 근데, 차마 못했소, 내가 먼저 판은 깨지 말아야겠어서.”

“그랬는가?”

“배 내놓았을 때도 참았소. 배만 팔리면, 배만 팔리면 빚도 좀 줄어들 테고 그때 말하자, 했었소.”

“그래, 그랬을 것 같네. 고생 너무 시켜 미안하네.”

“지금이 그때요. 인자는 이렇게는 못 살겄소. 난 갈 거요.”

수평선 같은 눈을 들여다보기 버거워 눈을 돌린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배를 한번 살펴본다. 너울을 타 위로 치솟았다가 곤두박질을 치는 앞부리가 먼저 들어온다. 배는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아내처럼 수평선 같은 것을 하고 저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곤두박질을 칠 때마다 뱃전에서는 물보라가 튕겨나오는데, 언뜻 보아 왈칵 왈칵 우는 듯도 싶다.

거대한 닻이 양옆으로 누워 있고 각단지게 밧줄이 묶여 있다. 저 닻줄을 풀어본 게 언제던가. 쿠르릉, 바닥을 향해 닻 풀던 소리가 갑자기 귀에 선하다. 따져볼 것도 없이, 저 배를 어선중개쎈터와 저 멀리 제주도 ‘교차로’에 내놓은 이래, 삼년 동안 늘 저 자리였다. 그 아래 갑판도 마찬가지다. 타원형의 외곽 가운데 차례대로 창고 어창 물칸이 있다. 물론 지금은 다 비어 있고 맨 위쪽의 창고 칸에 쓰다만 그물이나 장화나 장갑 따위가 가지런하게, 그러나 오래도록 움직임 없이 퀴퀴하게 누워 있을 것이다.

그사이 고등어 갈치 섞여 몇마리 더 올라온다. 아내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더니 파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듯 다시 앉는다. 얼굴빛이 푸르스름한 게 멀미 기운이 올라온 게 완연하다.

“소주 한잔 먹어버리소.”

대답이 없다. 대신 물보라만 다시 왈칵 올라온다. 그는 갑판 어창에 싣고 온 얼음봉지를 뜯는다. 잡아놓은 것을 얼음조각으로 채우고 나서 소주병을 따고 따른다.

“한잔 묵어버리라니께.”

“싫소. 그만 갑시다.”

“한 상자는 채워야지.”

“한 상자 채워서 뭐할라고.”

“당신이랑 아그들이랑 묵으라고.”

“내가 고기 잡아달랍디까? 잡아주믄 좋아서 춤이라도 출 줄 알았소?”

“그래도 잡아노면 누가 묵어도 묵지.”

“이제 새끼들하고 어떡해서든 살 궁리 해봐야 할 판국에 이 고기 한 상자 어딨다 쓰겄소.”

“내가 해줄 것이 뭐 있간디.”

글쎄, 좀 뜬금없기는 하지만 이런 밤, 어찌되었든 그는 이 짓말고는 할 게 없기는 했다.

“뭘, 해주고 싶소?”

“………”

“그럼 여기 깨끗하게 정리하고 같이 가자니깐.”

“가서 난 뭘 하고.”

“영화 아부지. 당신 아직 안 늙었소.”

“안 늙어서 그래, 뭘 하라고.”

“요즘은 환갑도 너무 젊어 잔치 안하요이. 근디 인자 오십이요. 당신 근력이믄 육지 가서 뭘 못하겄소.”

“나보고 노가다 하라 그 말인가?”

“나도 당신이 노가다 같은 것 하믄 싫지만, 그렇지만, 노가다라도 해볼 생각을 해야지. 이 섬에서 뭘로 산다고 미련을 못 버리요. 인자 배도 읎는 사람이.”

그러는데 입질이 그중 무거웠고 올라온 것은 어른 뼘 굵기의 갈치이다.

“굵소.”

아내의 그 말이 아니라도 그는 잠시 복잡한 심정에서 빠져나온다. 이 정도 굵기는 모처럼 만이다. 그는 흐뭇하여 강렬하게 반사되는 무지갯빛만 바라본다.

“지져묵으라고 영화한테 보내믄 쓰겄네.”

“아그들이 당신이 보낸 생선은 입도 안 댄단 거 아시오? 이건 좀 팔았으믄 좋겄다.”

그새 바람이 좀 모질게 불었나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먹구름 한쪽이 터지면서 아스라이 별 무더기가 뜬다. 떴다 해도 날이 갠 것은 아니라서 바람은 여전하다, 바람이 문질러 별은 발버둥치는 듯 아른거린다.

“윽.”

끝내 아내는 탈이 나고 만다. 비틀비틀 일어서는데 창백한 얼굴이 아예 사색이 된다. 머잖아 고물 쪽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가볼까 말까 망설인다. 멀미 때문에 싫다는 것을 억지로 태운 것이 후회도 된다. 허나, 이런 밤 이런 낚시말고는 딱히 할 일 없듯이, 떠나겠다는 아내를 방에 두고 혼자 나오지도 못할 일이었다.

 

육지에서 배를 타러 들어온 신참들이 종종 있었다. 선원인력관리소를 통해서 들어온 그애들은, 눈이 째졌거나 광대뼈가 튀어나왔거나 팔목에 문신을 했거나 이를 악물고 있거나 곧 싸울 것 같은 자세거나 좀 멍하니 얼이 빠져 있거나 했다. 도망쳐왔든 사람들에게 내밀렸든 가족 생계를 책임지러 왔든 무작정 호기심에 왔든 그것은 물어볼 게 못됐다.

밧줄 한번 당겨보지 못한 애들이지만 그나마 없으면 출항조차 못했다. 그애들을 데리고 제주해 중국해까지 갔다. 첫날부터 멀미를 했다. 제아무리 눈에 힘준들, 문신이 꿈틀대든 말든 얼굴이 샛노래지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소주를 먹였다. 플라스틱 바가지에 가득 소주를 따라주면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하며 두 손을 저었다.

먹을래, 아니면 저 바닷속으로 들어갈래.

그 말 하나에 두 눈 질끈 감고 마시는데, 입 떼믄 죽어, 끝까지 묵어, 이렇게 억지로 먹이면, 열에 아홉은 마침내 얼굴에 화색이 돌고 멀미가 멈췄다. 일은 비로소 시작된다. 그것은 괴롭힘이 아니었다. 이미 무덤으로 들어가버린 어부들의 시대부터 내려온, 더이상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하긴 그랬다. 그도 맨 처음 어선에 올랐던 사춘기부터 잠을 생선과 바꾸었던 숱한 조업과 태평양 대서양 넘던 상선의 시절에도 그 방법을 썼다. 몸이 아프면 소주, 외로움이 사무치면 소주, 작업중에 잠이 쏟아지면 소주, 일할 기운이 안 나면 소주, 다쳐 피가 철철 흘러도 소주.

그러고 보니 함께 배를 탔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스무살 선장 시절 경남 어디에서 왔던, 어린 선장이 기분 나빠 한사코 입을 안 열던 기관장은, 송출선(외국 선주의 상선) 함께 탔던 사람들은, 제주 바다에서 소주 바가지를 던지고 바다로 몸을 던져버린, 덕분에 그가 뛰어들어 끌어올렸던, 서울에서 왔던 그놈은, 지금쯤 어디에서 뭐 할까.

갑자기 모든 것이 약속이나 한 듯 떠나버린 것 같다.

그는 아내 토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섬에서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를 잠깐 생각한다. 한번도 불만을 품어본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모두 사라지는 날을 앞두고 있자니 혹 자신도 아내처럼 무슨 죄 때문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새끼까지 싹쓸이를 해야 돼. 아주 씨새끼까지 다 훑어 잡아묵어부러 바다가 망해야 된당게. 씨팔, 피티병 이런 거 바로 던져야 돼. 마구 오염을 시켜야 돼. 그래야 미련을 끊고 여기를 떠날 수가 있어. 그래야 새끼한테 이 일을 안 물려줄 수가 있는 거여.

이렇게 주정하던 오선장은 이곳을 뜬 지가 이미 오년째이다. 서울 인근 어디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다는 풍문이 얼핏 들려오기도 했다.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자식에게 뱃일을 안 물려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고향 떠난 이가 소식이 없다는 것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 볼 낯짝이 없다는 표시라는 것을 그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내 나이 오십. 워낙 튼튼한 몸이라 근력도 괜찮은 편이다. 뱃일 자체가 가장 힘든 일이므로 다른 일이 겁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새로운 일이나 기술을 배울 시기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났다는 것이다. 배는 도사지만 차 운전조차 할 줄 모른다. 그런데 아내는 나가자고 한다.

상자가 거의 차간다. 파르르거리던 놈들은 얼음 사이에 반듯하게 누워있다. 이것으로 이곳에서의 볼일도 슬슬 마친 것이다.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섬으로 돌아가는 순간, 꿈꾼 듯이, 배와 아내가 훌쩍 사라질 것 같다.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빈손으로 홀로 방에 앉아 있는 풍경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그래, 모처럼 옛날 마누라랑, 배랑 잘 만나봤느냐, 이런 말이 하늘에서 들려올 것도 같다.

돌아온 아내는 그사이 더 상해 있다. 멀미 난 얼굴이 아니라 오십년 동안 형벌지에서 감옥생활을 한 수인(囚人)의 모습이다.

“소주 한잔 넣어버리라니까.”

“사람이 이런디 돌아갈 생각은 안하고 뭔 소주요. 소주가 약이요?”

아내는 새된 소리로 악을 지른다.

“도대체 바다가 뭐요? 뭐냐고 당신한테.”

그래놓고 몸을 획 돌려 울컥, 쓴물 한모금을 또 토해낸다. 신음이 목구멍이 아니라 뼈와 뼈가 잇대어 있는 곳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하필 그때 입질이 와서 그는 고등어 한 마리를 낚아올릴 수밖에 없다.

“알았네. 간다니께.”

“대답해보시요, 바다가 뭐냐고.”

“………”

“당신이야 바다가 좋겠지만 우린 아니여.”

그러면서 바다를 향해 입 안에 괸 것을 뱉는다. 경멸과 저주의 침이 있다면 저런 형태일 것이다.

“당신 몇년 동안 상선 타고 외국 나가 있을 때도 영화 낳아 기르면서 여기서 시집살이 내색 한번 안하고 당신 기다렸소.”

입질이 왔고 챘으나 놓친다. 그는 놓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어쩌면 상선 탈 때나 귀국해서 남의 배 선장으로 다닐 때가 더 나았소.”

“………”

“이 배 지어놓고 선주 되고 나서는 그놈의 빚 때문에 기도 못 피고, 사람들 만날 때마다 주눅이 들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빚과 보증인 눈빛에 눌려 살았던 지난 몇년이 그의 뇌리를 스친다.

“맞소, 나도 내가 내조를 잘해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했으면 좋겠소. 인생역전 할 수만 있다면, 내조 아니라 내조 할애비라도 할 생각이었소. 당신이 치킨 장사를 한다믄 치킨 들고 동네방네 다리 부러져라 댕길 수도 있고 슈퍼를 한다믄 스물네시간 슈퍼를 지키고 앉을 수도 있겄소. 근디 뭐요. 어장도 못하고 있는 어부의 마누라는 뭘 해야 돼요? 그나마 그 배마저 달아매놓고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디 내가 뭘 해야 돼요?”

가슴이 막혔는지 아내는 말을 멈추고 주먹으로 목을 누른다. 눈물에 마스카라가 번진다. 입질이 다시 왔고 이번에는 물린다. 그는 아내 바라보느라 손을 쉬었고 갈치가 목을 돌려 물려는 것을 반사적으로 느끼고 낚싯바늘 걸린 상태로 목줄을 잡아당겨 목뼈를 부러뜨려논다. 곧바로 놈은 얌전해진다.

“당신은 결국 뱃놈이요.”

순간 그는 발끈한다.

“그래 나 뱃놈인 거 몰랐어, 모르고 시집왔어?”

“내가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요.”

목에 무언가 걸린 목소리다.

“그럼 뭐여.”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그 말에 발끈한 게 한순간에 발목 잡힌다.

“여기서는 모두 잘났다고 추켜세워주는디, 육지 가믄 그렇지를 못하니께, 그게 겁나서 못 가는 것 아니요?”

“………”

“결국 바다가 당신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요? 생각해보시요. 이 배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기 전에는 당신 이러지 않았소. 술 취해 행패 부리지 않았단 말이요…… 사람 사는 곳은 여기가 아니고 육지란 말이요. 거길 놔두고 뭐가 좋다고 바다 한가운데 이 판때기 위에서만 살라고 그러요.”

그는 다시 눈앞이 아득해진다. 하긴 표주박처럼 살았다. 바다 한가운데 몇뼘 땅일 뿐인 섬과 몇발자국 나무판자인 배에 떠서 살았던 것이다. 아주 넓게,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막힌다.

“아버님이 당신한테 했던 것처럼 영식이한테도 그렇게 말할라요?”

아내 목소리는 가라앉았는데, 노쇠한 모습이었고 그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짠한 마음을 일으킨다. 어찌 보면 우는 대신 늙어버리는 것을 택한 듯도 하다. 그러자 사내는 공연히 한바탕 울어버리고도 싶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훌륭한 선장이 되거라. 그 말을 아들한테 할 생각은 물론 없다.

“그렇다면 애들한테 보여주시오. 육지에서 사는 방법을.”

그녀는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다시 토한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아내의 헛구역질은 가슴 깊숙이 박힌 무언가를 뽑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평생 도리질하고 의심하고 원망하던 것을 기어이 내팽개치려는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쓰러질 듯 조타실로 들어간다.

잠시 파도와 바람과 어둠 속에 앉아 있다가 고기 상자를 내려다본다. 얼음 뒤집어쓴 갈치와 고등어는 푸른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본다. 날 버리고 갈 건가요?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자취하는 딸아이 좀 보내주고 한동안 반찬거리라도 할 생각이었는디, 결국 니들은 섬을 버리고 떠나는 나의 길양식이 되거나 혼자 길을 나서는 마누라의 보따리가 되겄구나이. 그는 그 말을 속으로 했는지 바깥으로 내놓았는지 스스로도 분간이 안된다.

그러자니 몸속에서 심장이나 간이나 콩팥 따위가, 마치 생선 칼질할 때처럼, 한 쾌에 묶여 주르륵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횟집 수족관의 참돔처럼, 호흡 가쁜 허공에서 아가미와 내장 뜯겨나가고, 피가 흐르고, 척추를 흔들며 마지막 숨을 가까스로 내보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바다가 당신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요? 아내 사라진 빈 갑판에 혼령 하나 척 하니 들어앉아 말을 흉내내고 있다. 당신은 육지를 겁내고 있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바다가 좋아서가 아니라 여기를 벗어나는 게 무섭고 싫은 것일 게다. 쥐똥이 된 아버지 발가락은 어느 구석에서 구르고 있을까.

그는 보공 채워둔 얼음 사이에서 아직도 처연히 올려다보는 생선을 관 덮듯 천 대어 묶어놓고 상주처럼 무겁게 조타실로 들어간다.

“금방 갈 테니께 조금만 참소.”

구부린 채 누운 아내는 중환자실 환자처럼 신음만 내뱉는다. GPS는 목표점에서 2km 벗어났다고 반짝거리고 있다. 그는 집어등을 끈다. 불빛 우산이 확 줄어들면서 제 세상 만난 어둠이 배를 휘감는다.

손때가 묻은 운전대를 그는 한번 쓸어본다. 잘 가라. 좋은 주인 만나라. 그릉그릉 엔진을 올리며 대답을 하고는 배는 이윽고 속도를 높인다. 바람을 등에 업은 탓에 롤링이 심하다. 고르게 파도를 타지 못하고 좌우 함부로 쏠리며 거칠게 질주를 한다. 물보라가 거듭 조타실 창문을 때린다. 그는 그게 제 마음만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