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쟁점토론│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묻는다

 

시민단체와 정치참여: 2004년 총선전략

 

 

손호철 孫浩哲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저서로 『한국정치학의 새구상』 『전환기의 한국정치』 『해방 50년의 한국정치』 『3김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학』 등 다수. sonn@mail.sogang.ac.kr

 

정대화 鄭大和

상지대 정치학 교수, 한국정당정치연구소 부소장, 2004 총선물갈이 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2000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역임. dany@mail.sangji.ac.kr

 

 

발제 1: 손호철

 

1. ‘Again 1966’ 재작년 월드컵 당시 이딸리아전에서 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이딸리아를 깬 북한의 신화를 빗대어 ‘붉은악마’가 들고 나온 구호이다. 이처럼 재작년의 화두가 ‘Again 1966’이었다면, 올해의 화두는 단연 ‘Again 2000’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2000년은 2000년 총선을 강타했던 낙선운동을 의미한다.

그렇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차떼기’로 대표되는 정치권의 부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시민사회의 대응에 있어서 2000년 총선과 비교할 때 나타나는 차이이다. 2000년 총선의 경우 민중진영은 아니지만 최소한 시민운동은 총선시민연대라는 거대한 연대체를 구성해 단일전선의 낙선운동을 벌인 바 있다.(반면 민중운동은 대우차, 한전 매각 등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저항하기 위해 김대중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민주당 전략지구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하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민중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운동방식을 놓고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의 경우 2000년과 마찬가지로 부패인사들을 중심으로 낙선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연대체 구성을 제의했다. 한편 일부 시민운동가들은 물갈이연대라는 이름 아래 지지후보를 선정, 발표하는 지지운동 내지 당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고 여성단체들도 여성후보 지지운동을 선언했다. 다른 운동가들은 스스로 후보로 나서는 직접참여전술을 구사할 전망이다. 또 민중진영의 경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반민중후보에 대한 낙선운동과 민주노동당을 통한 직접참여 그리고 진보후보 지지운동 등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2. 이같은 분화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한국의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현실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이제 우리의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은 단일한 연대체를 중심으로 단일한 선거전술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분화되고 다양화되었다. 따라서 당면과제는 일종의 씨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운동들을 건설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기본틀은 일종의 최소주의적인 최대연합을 기본축으로 설정하고 그 위에 더욱 강도높은 운동들을 중층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제안하고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낙선운동은 2000년 낙선운동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지지(최대연합)를 얻을 수 있는 부정부패인물에 대한 낙선운동을 중심으로 하되, 무능하고 반개혁적인 정치인들도 낙선대상에 포함해 정치권의 물갈이를 이끌어내자는 최소주의적 운동이다. 물론 이같은 낙선운동은 지난 2000년 총선이 보여주듯이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같은, 어쩌면 더욱 중요하고 근본적인 정책의제들을 사장하는 부작용이 있을 뿐 아니라, 정치부패 해결에도 역부족일 수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사실 개인적으로 2000년 총선 당시 초기에는 총선시민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문교수단 공동대표로 활동했으나 후반부에는 이같은 이유로 낙선운동에서 손을 떼고 민중운동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전력한 바 있다.)

그러나 부패정치인들의 퇴출이 현 정치정세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고, 가장 광범위하게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가장 광범위한 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기본축이 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 위에 반부패연합에 참여하는 조직들은 부문과 계급적 관점을 반영해, 노동운동은 반노동후보, 평화운동은 반평화후보, 환경운동은 반환경후보, 교육운동은 반교육후보, 인권운동은 반인권후보 등을 선정해 독자적으로 더욱 높은 수준에서의 낙선운동을 벌여나가야 하리라 본다. 두번째의 이 수준에서는 단순한 반부패투쟁을 넘어서 더욱 근본적인 정책의제들이 총선의 투쟁의제들로 자리잡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 경우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은 바로 이 수준에서의 낙선운동이며 우리와 같이 첫번째 수준(부정부패)에서의 낙선운동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부정부패사범의 경우 사면할 수 없도록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 이런 인물에 대한 낙선운동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고 우리도 정책의제에 기초를 둔 낙선운동으로 전환해나가야 할 것이다.

 

3. 이같은 부문별 낙선운동보다 한 수준 더 높은 운동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새로운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당선운동(또는 지지운동)이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각 지역마다 가장 바람직한 후보를 선정해 국민후보로 발표하고 당선을 돕겠다는 물갈이연대의 운동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선 이 운동은 지역구 갑은 A당 아무개 후보, 을은B당 아무개 후보라는 식으로 후보중심으로 지지후보를 선정하기 때문에 정당의 중요성이 사장되고 탈정당화 추세를 부추긴다는 부작용이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지후보의 선출기준인데, 이는 기술적 문제나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철학과 이념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훨씬 개혁적이지만 당선가능성이 낮은 민주노동당 후보와 상대적으로 덜 개혁적이지만 당선가능성이 높은 열린우리당 후보가 있을 때 과연 누구를 지지후보로 선정할 것이냐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결국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보수정치인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과 (진보적인) 독자후보론 간의 뿌리깊은 논쟁을 지지운동 내에서 재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 운동을 했을 경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야 했을까, 아니면 권영길 후보를 지지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그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정파적 입장, 계급적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잘못할 경우 이같은 운동은 낡은 비판적 지지에 새 옷만 입힌 꼴이 되거나, 사실상 특정정당의 ‘2중대’가 되고 말 위험이 있다. 바로 이같은 문제점 때문에 물갈이연대의 경우 시민단체들은 단체수준의 참여에 난색을 표명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운영되는 실정이다. 물론 가장 높은 수준에서는, ‘중립적인’ 시민운동을 표방하며 개별 후보에 대한 지지운동을 하기보다는 민주노총처럼 확실하게 당파성을 선언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즉, 지지운동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이라는 형식, 중립적인 ‘국민후보’라는 형식이 지지운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처럼 계급성을 선언하고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여성운동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명백히 하고 여성후보들에 대한 당선운동을 펴나가는 것은 문제가 없고 바람직한 것이다.

 

4.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사안은, 우리 시대의 ‘주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무장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관련해 이번 총선에서 반전평화투쟁,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 즉 두번째 수준(부문별 낙선운동)과 세번째 수준(지지운동)을 병행하면서 민중연대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시민운동들을 결합시키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전평화, 반신자유주의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반전평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선거정치에 국한될 수 있는 좁은 문제가 아니고 더욱 광범위한 대중투쟁의 문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의 선거무용론과는 달리 선거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파병과 같은 반전평화의 문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문제에 대한 의정활동 자료를 수집해 각 당과 후보들에게 공개질의를 하고 이에 기초한 낙선운동·지지운동을 하여 반전평화, 반신자유주의 압박을 가해나가야 할 것이다.

 

 

발제 2: 정대화

 

1. 양김 분열과 한국 민주화의 특수한 경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탈군사화의 지연은 1987년 6월항쟁 직후의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양김 분열 때문이다. 이 분열은 민간정부의 등장을 지연시킨 것 외에도 지역주의를 극단적으로 심화시키고, 민주화세력이 수구세력과 연합하여 정권을 장악하거나 정권을 교체하도록 했으며, 개혁의 좌절과 정치적 혼란 등 복잡한 결과를 초래했다. 말하자면 민주화 과정을 왜곡했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수혈’이라는 정치참여의 방식이 나타났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비판적 지지그룹은 다음해 총선에서 김대중의 평민당을 지원하기 위해 입당해 평민연(평화민주연구회)이라는 정책써클을 결성했다. 열린우리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영달·이해찬·이상수·임채정 등이 여기에 속한다. 비판적 지지파의 평민당 입당은 그후 재야인사들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3당합당에 반대한 통일민주당 잔류파에 합류한 민연(민주연합)의 이부영·박계동·원혜영 등이 뒤를 이었고, 3당합당으로 인한 평민당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우정과 신계륜 등의 신민연(신민주연합당준비위원회)이 결성되었다.

이들과 달리 민중당은 노동자와 민중의 독자정당을 추구했다. 그러나 민중당이 1992년 총선에서 실패한 후 이재오·이우재·김문수·정태윤 등 핵심인사들은 김영삼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신한국당에 참여했다. 그후에는 다시 김근태 등의 국민회의 인사들이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했고, 마지막으로 386세대로 불리는 80년대 학생운동권 젊은 인사들이 새천년민주당에 참여했다.

이렇게 볼 때 6월항쟁은 그 이념을 실천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재야인사들은 대부분 양김이 주도하는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반면 6월항쟁의 운동적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운동은 오히려 정치참여를 부정하는 정치적 중립성 위에서 현실정치와 거리를 유지하며 정치제도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의 공백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2. 성공적인 민주화, 실패한 정치세력화

하나의 항쟁은 하나의 정치적 성과물을 낳는다. 서구 역사에서 봉건제에 대한 저항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좌파 정치세력, 좌파에 대한 실망은 시민적 정치세력을 낳았다. 제3세계에서의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도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였다. 4월혁명의 성과는 민주당에 귀속되었고 6월항쟁의 성과는 양김에 귀속되었다. 항쟁의 정치적 성과물을 만들지 못한 반면 일부 세력의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수혈’로 나타났다. 민주화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었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시민운동의 급성장은 민주화의 결과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기형적인 민주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민주화된 공간에서 분출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요구를 시민운동적 방식으로, 즉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수용했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대한 갈망이 충족되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운동은 그 욕구를 비정치적으로 대체한 것이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단체를 ‘준정당’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시민운동은 민주화 과정에서 분출하는 개혁욕구를 충족시킬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재로 인한 그 대체물의 위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지 못하고, 재야인사들의 정치참여 역시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비정치적 영역에 국한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가 실현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것이다.

2000년 총선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이 낙선운동을 전개한 것은 이러한 모순구조가 극단적으로 확대된 것에 대한 일시적인 대응이었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기존 정치세력이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운동의 제한적 개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시민운동단체들이 스스로 설정한 시민운동의 영역을 넘어 낙선운동을 감행했던 것이다.

 

3.정치적 공백과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

지난해 9월 시민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1000인 선언을 한 것 역시 민주화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의 낙선운동이 단기적 성공과 중장기적 실패로 평가받아 대안적 운동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중립성’ 논의 때문에 시민운동단체들이 낙선운동 이상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1000인 선언이 추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1000인 선언이 단기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논의과정이 짧았으며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체계적인 추진이 어려웠고 대외적으로는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의 창당이라는 정치적 격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논점은 정치상황의 변화나 주체세력의 준비부족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진로에 작용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문제였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정면 돌파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체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1000인 선언을 추진한 결과 결국 실천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위한 1000인 선언은 앞으로의 정치적 논의에서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하나는 정치개혁이 정치권 바깥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이 추진하는 정치제도개혁론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주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4. 시민사회의 다양성 속에서의 새로운 진로 모색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한 역사적인 형태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운동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연후에,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권하는 수구정당과 수구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물론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이 비단 수구세력에 의해서만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전문가 운동이나 공정한 운동은 가능하지만 추상적이고 집합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 사안에 대해 중립을 선언하거나 특정 단체가 중립성을 표방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특정 시민운동이 정치적 중립성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시민운동은 이미 이념적으로 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분화도 시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지향성을 뚜렷하게 표방하는 시민운동의 출현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개혁의 방법론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정치개혁이 정치권 바깥의 시민운동에 의한 정치제도개혁이었다면 앞으로는 제도개혁과 인적 교체가 함께 추진되다가 궁극적으로는 인적 개혁과 구조개혁에 집중될 것이다. 제도개혁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제도개혁의 요구는 사라지고 인적 개혁과 구조개혁이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적 개혁과 구조개혁을 둘러싼 문제가 정치개혁의 핵심적인 과제로 부각되면서 시민사회의 정치참여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등장하리라 예상된다.

2004년 총선은 이러한 변화의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시민운동의 참여방식이 다양하게 실험되는 국면이 될 것이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 일변도로 전개되던 참여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의 분화를 반영하여 참여운동(여성), 당선운동(물갈이연대), 낙선운동(참여연대), 시민정치교육운동(YMCA), 감시운동(경실련), 유권자운동(대학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 과정을 거쳐 시민운동은 전통적인 시민운동과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04년 총선은 2000년 총선과 낙선운동의 복고적 국면이 아니라 새로운 실험을 거쳐 2004년 총선 이후의 상황을 모색하고 준비해 나갈 전환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구호 역시 ‘again 2000’의 복고풍이 아니라 ‘new 2004’이거나 적어도 ‘forward 2008’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토론: 정대화

손호철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2004년 총선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다양한 대응은 시민사회의 분화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 당시의 상황에서 총선연대에 참여했다가 후반부에는 손을 떼었다고 한 손교수가 2000년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2004년의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다시 낙선운동의 가치를 옹호하면서 당선운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은 낯설게 보인다.

2000년 당시에 총선연대의 대변인으로서 낙선운동에 끝까지 참여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필자로서는 당시 상황에서 낙선운동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비록 지금은 낙선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낙선운동을 이해하는 편이다. 다만, 낙선운동만으로는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선운동을 추진하는 필자의 견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물갈이연대의 당선운동에 대한 손교수의 비판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손교수는 물갈이연대의 당선운동이 탈정당화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 비판은 논리적으로 옳다. 그러나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이 모두 인물평가 위주의 운동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낙선운동에 참여한 학자가 당선운동을 탈정당화로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물며 부패하고 지역주의적인 현재의 낡은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를 주장하면서 판갈이의 핵심인 정당체제의 해체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손교수의 억측은 “훨씬 개혁적이지만 당선가능성이 낮은 민주노동당 후보와 상대적으로 덜 개혁적이지만 당선가능성이 높은 열린우리당 후보가 있을 때 과연 누구를 지지후보로 선정할 것이냐”에 대한 판단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물갈이연대도 모르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손교수는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싶다. 하물며 이 대목에서 손교수가 ‘2중대’ 운운한 것은 과도한 표현이며 물갈이연대의 ‘위장된’ 당파성보다는 민주노총과 여성단체의 ‘공공연한’ 당파성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힌다. 손교수의 글이 무엇을 위한 비판인지 모르겠다.

 

토론: 손호철

‘물갈이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대화 교수는 우리 사회가 87년 이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라고 불리는 정치권의 비민주성의 개혁에 실패해왔다며 이제 정치권 스스로 정치개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성의 신화와 낙선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당선운동 등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위한 정치세력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교수가 지적했듯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민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탈계급적이고 중립적인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은 사실 시민운동이 아니라 중산층운동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낙선운동 등 그간의 시민운동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운동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운동이었다. 그러나 최소주의적인 낙선운동과 달리 당선운동은 아주 구체적인 정치성 즉 정파성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당선운동은 이미 지적했듯이 그 이념과 정파성을 명백히 하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교수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정치주체, 새로운 정치세력화, 당선운동 등은 그같은 이념과 정파성을 명백히 하지 않고 예전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민운동 틀 내지 외향을 유지한 채 이를 추구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정교수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정치주체가 민주노동당을 의미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이념의 내용을 밝히고 그에 기초한 운동을 해야 한다. 가령 당선운동의 주요기준인 개혁성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개혁인가? 개악인가? 이는 이념의 문제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운동은 정치적이며 당선운동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운동이 정치적이며 중립적이지 않으면서도 실제 당선운동(물갈이연대)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이념과 정파성을 선언하지 않고 중립적인 시민운동의 이미지와 권위를 빌려 국민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려고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