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안병직 외 『세계의 과거사 청산』, 푸른역사 2005

상처의 시대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한정숙 韓貞淑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cliohan@snu.ac.kr

 

 

세계의과거사청산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아니라 “과거사를 물읍시다”가 여러 사회의 화두이다. 여기서 과거사란 당대인들이 겪거나 당대의 삶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 ‘살아있는 불행한 과거’이다. 전쟁과 내전, 식민지배, 좌우익의 독재정치, 인종차별정책이 초래한 거대한 인간집단의 희생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이것이 광기와 야만임을, 반인륜범죄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범죄와 죄악은 한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기도 했고 단일사회의 테두리를 넘기도 했지만, 가해와 피해의 기억들은 사회 전체를 찢어놓아서 이를 그대로 두고는 구성원들의 공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거를 넘어서서 원칙과 기준을 달리하는 사회적 삶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과정을 과거사 청산이라 부르며, 수많은 나라들이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이를 겪고 있다. 뉘른베르크 재판 같은 국제전범재판의 실행, ‘반인륜범죄’개념의 성립, 세계적 차원의 인권관념 확산과 민주화 진전 등에 따라 인간의 존엄한 사회적 삶에 대한 요청이 확산된 결과이다. 한국에서도 과거사 청산을 둘러싸고 회피론과 당위론이 격돌하며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지만, 이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사회들마다 과거사 청산이라는 과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자체가 격론의 대상이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인간 드라마의 현장이다.

『세계의 과거사 청산』은 일곱 나라(독일,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띠나, 칠레, 스페인, 소련)에서 진행된 과거사 청산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진지한 문제의식과 성실한 연구성과가 돋보이는 책이다. 독재자와 전범, 식민지배자,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이름은 달랐으되, 자신(들)의 절대지배를 위해 대량학살과 고문을 명령하고 집행하고 방조한 세력으로서, 똑같은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야만을 대면하고 야만이 초래한 사회적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과 과정은 달랐다.

이 책은 과거사 청산을 세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첫째,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나찌 전범과 부역자들에 대한 사법적 청산과 숙청을 단행했다. 독일의 경우, 나찌 범죄의 극단성이 던진 충격과 2차대전 패배로 인해 강요당한 자기비판의 필요성 앞에서 전범재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반인륜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프랑스는 드골 정권의 권력기반 강화와 대혁명 이후의 공화주의 전통 수호의지가 맞물려 나찌 협력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특히 문인–지식인층의 대독협력에 대한 응징은 강경했다. 둘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철폐 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군부독재 종식 후의 아르헨띠나, 칠레의 과거청산작업은 진상규명과 가해자 사면을 특징으로 하는 유형이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에서는 민주정권이 진실규명을 위해 가해자들에게 처음부터 사면을 약속했지만, 남미 두 나라에서는 옛 군부와 타협하고 때로는 진실도 묻어두고자 하는 문민정권의 태도와 철저한 진실규명 및 가해자 처벌을 위한 피해자들의 요구가 교차했기 때문에, 구체적 양상은 사뭇 다르다. 셋째, 민주화 이행기의 스페인과 체제전환 후의 러시아, 그리고 알제리 식민지배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처럼 사회성원들이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기보다는 일단 덮어두거나 역사서술이라는 형태의 기억 속에 담아두는 데 잠정적으로 합의한 경우도 있다.

역사와 문학을 연구하는 이 책의 필자들 열한 명은 과거사 청산에 대해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대상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그중에서도 대표필자의 입장과 다른 필자들의 평균적 입장의 차이는 두드러져 보인다. 개별필자들은 각 사회의 성숙도, 외적 강제 등에 따라 전개된 과거청산의 양상들을 서술하는 데 주력한다. 대표필자 안병직(安秉稷) 교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사법처리 위주로 이루어지는 과거사 청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일반론을 전개한다. 그는 서설에서 과거청산이 독선과 흑백 이분법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과거청산은 과거규명보다 과거성찰에 더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꼬(Franco) 사망 후 스페인 사회가 일시적으로 과거청산 문제를 덮어두기로 망각협정을 맺었던 사례도 “과거의 질곡과 족쇄에 얽매이지 않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정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보론에서는 범죄적 정권에 대한 순응과 저항, 가해와 피해가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상사의 복합적 성격을 지적하면서 문제가 되는 시대에 대해 세분화되고 차별화된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거규명과 과거성찰은 동떨어진 것일까? 진실의 규명 없이 성찰이 가능할까? 그리고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 자체에까지 ‘독선’과 ‘흑백 이분법’이라는 비난이 가해지는 현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과거사 청산이 집단가해에 대한 집단보복의 형태를 띠어선 안된다. 과거청산은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관용의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과거사 청산은 사회적 상처의 치유과정이라는 이 책의 기본관점은 타당하다. 그러나 ‘제대로 화해하는 법’이 무엇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관용과 화해는 진실이 명백히 밝혀진 후 피해자 측에서 베푸는 것이며, 가해자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따를 때에만 허용된다. 화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빎으로써 ‘뻔뻔스러움을 넘어서서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피해자도 이러한 가해자에게 관용을 베풂으로써 복수심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큰 악의 무자각적 하수인이 되어 타인에게 고통을 가했다가 그 경험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화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반성치 않는 ‘거대한 악’의 주역들에게 먼저 관용을 베풀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경우, 사법적 처리가 문제가 아니라 엄정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해와 피해가 뒤얽힌 경우는 하나의 세부유형으로, 그에 합당한 화해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청산은 진실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한다. 사회적 의지와 역량, 자기성찰이 부족하면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한 사회는 시민사회가 성숙한 그 정도만큼 과거청산을 할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프랑꼬 사후 얼마간은 프랑꼬파 세력이 너무 강했기에 민주세력이 이들과 망각협정을 맺어야 했으나, 민주주의 정착 후에는 새로운 과거청산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반면 흐루시쵸프의 스딸린 비판 시기와 뻬레스뜨로이까 시기에 과거청산 움직임이 활발했던 러시아에서는 현재 소련 붕괴와 체제전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혼란이 계속되고 시민들 사이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면서 스딸린시대를 그리워하는,“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마저 일고 있다. 현재의 고통이 과거의 고통에 대한 기억을 일시적이나마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과거청산은 문명의 단계전환을 의미한다. 과거사는 청산되어서 현재의 우리와는 상관없는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삶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성찰의 근거가 되며, 인간은 이러한 과거성찰을 통해 더 고양된 존재가 될 수 있다. 반면, 가해자가 아무리 수백 번 사과를 해도 똑같은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의미를 가질 수 가 없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국제관계에서 일본의 과거청산 의지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도 바로 이런 명시적 과거청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과거사 청산』은 이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려를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