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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에 부쳐 | 한국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혹은 한국문학의 보람

 

 

류보선 柳潽善

『문학동네』 편집위원 critic@kunsan.ac.kr

 

 

여전한 활력 때문에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건만 『창작과비평』이 어느덧 40주년을 맞는단다. 대단한 일이다.

아니, 『창비』가 헤쳐나온 그 40년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놀라운 일이라고 하는 것이 좀더 합당할지 모르겠다. 『창비』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한 작가는 “나는 식민지 반봉건사회에 태어나서, 제3세계적 개발독재사회에서 교육받고, 예속적 국가독점 자본주의사회에서 젊은 날을 보냈으며, 이제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민가고 있다. 나는 혼란스럽다”(주인석 『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 열음사 1992, 12면)라고 쓴 바 있거니와, 『창비』는 이러한 극적인 반전과 전회들이 오히려 일상적이라 할 만큼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그간 『창비』는 분단이나 외세, 그리고 비민주적 정치상황 등 우리 민족의 특수한 상황을 현실주의적으로 재현하는 민족문학이라는 문학이념을 형성한 것은 물론, 그렇게 형성된 민족문학을 세계문학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당위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의미있는 문학원리로 격상시킨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운동이라는 적극적인 실천모델을 계발함으로써 절대권력에 의해 어두워진 세계에서 고독한 등불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창비』는 일그러진 역사 속에서 가치있는 문학적 실천을 행하기 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이러한 끊임없는 진리에의 의지와 그것을 현실화하려는 용기와 결단은 『창비』를 평범한 문학계간지가 아니라 어려운 시대의 양심과 지성을 대변하는 시대정신의 총화로 우뚝 서게 했다. 『창비』 40년의 역사를 놀랍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창비』의 40년이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시간들이 권위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하위주체들을 발견하고 호명하면서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창비』의 출발이 얼마나 야심만만했는가는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창비』가 일관되게 구현하고자 한 민족문학론은 자연발생적인, 혹은 타성에 젖은 한국문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자리에서 출발한 바 있다. 이러한 새로운 중심의 설정은 기존의 문학관념 전반을 순식간에 전도시켜 결국은 기존의 보편성에 가려져 있던 민중의 생활세계와 분단 등 한국의 특수한 현실을 한국문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역능을 행하기에 이른다. 그런 까닭에 초기 『창비』에는 항시 기존의 담론에 의해 폐기처분되거나 억압되었던 낯선 현장과 하위주체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창비』의 이러한 역동성이 기존의 보편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중심으로 올라서는 그 시기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전체의 튼실한 중심으로 자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40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지금에도 『창비』에는 여전히 낯선 현상과 목소리들이 넘쳐나고 새로운 시대적 징후를 읽어내는 치열한 담론들이 무궁무진하다. 아마도 고유의 변증법적 정신 때문일 것이다. 『창비』의 이념적 뿌리인 민족문학론은 어떻게 보면 태생부터 변증법적 구조를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민족문학론은 그 탄생 지점에서 “민족문학의 개념은 철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즉 어디까지나 그 개념에 내실을 부여하는 역사적 상황이 존재하는 한에서 의의있는 개념이고, 상황이 변하는 경우 그것은 부정되거나 보다 차원높은 개념 속에 흡수될 운명에 놓여 있는 것”(백낙청 『민족문학과 세계문학Ⅰ』, 창작과비평사 1978, 125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천명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민족문학이라는 개념 자체의 상대화 혹은 역사화는 『창비』를 끊임없이 역동적이게 한 원동력이다. 즉 민족문학/론은 상황이 변하면 부정되거나 다른 개념에 흡수되어야 할 운명이므로 그 개념을 유지하려는 한 현실이 변화할 때마다 숙명처럼 그 변화된 현실을 자기화해야 했고 또 그 안에서 자신의 존립근거를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창비』에는 출발지점부터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스며 있으며, 이는 『창비』가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창비』 40년은 문학잡지 역사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사실 『창비』는 이전 시대와의 결정적인 단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는 『창비』의 40년으로 인하여 더이상 『창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창비』가 우리 문학사에서 지니는 진정한 가치이자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창비』 40년이 절대선의 역사였으며 또한 문학에 관한 거의 유일한 진리를 찾아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창비』의 역사에도 그늘은 있으며, 또 최근으로 올수록, 특히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특유의 역동성이 탄력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 민족문학론의 출생과정에 그 기원이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민족문학론은 그 출발부터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그 대다수 구성원의 복지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위기의식”(백낙청, 같은 곳)에 촛점을 맞추어왔고, 그 위협의 구체적 내용을 분단이나 반민주적·반민중적 권력 등 정치적인 문제로 한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위기의식의 강조는 독재정권이 분단을 빌미삼아 절대권력을 행사하려 한 그 싯점, 그러니까 민족문학이 탄생하던 그 싯점에는 나름대로 효과적이고 강력한 저항이념이었을지 모르나, 우리 사회의 위기 내용을 지나치게 좁게 잡은 감도 없지 않다. 그 결과 민족문학에서는 비록 식민지나 독재권력에 의한 근대화 혹은 산업화라 할지라도 근대화되고 산업화되었기에 존재하는 근대사회 일반의 실존적 위험들을 모두 부차화시킬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허위의식의 산물로 배제하는 면모를 보인다. 해서 민족문학론은 분단의 고통이나 정치적 폭압이 약화되는 시기마다, 또는 그것보다 더 근원적 모순이 제기되는 순간마다 민족문학의 해소를 촉구하는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야 했고, 특히 소위 ‘포스트모던’ 담론이 대세를 이룬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존립근거를 상실한, 그래서 이제 역사적 운명을 다한 개념틀로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진 바 있다. 이렇듯 민족문학 해소론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모두 민족문학론이 우리 민족과 민족구성원의 주체적 생존과 위협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상정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는 민족문학론이 안고 있는 그늘의 정확한 반영인 듯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현대인의 삶이 모던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상황에 의해 규정되어 젊은 작가들 대부분이 그러한 현실과 대결하며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지리지를 마련하고 있을 때, 민족문학론은 자칫 그 신진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민족문학을 전면에 내세우면 새로운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게 되고 그들을 인정하면 민족문학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 이 상황이야말로 현재 민족문학론이 처한 아포리아이자 동시에 『창비』에서 예전만한 역동성을 느끼지 못하는 요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족문학 해소론이 제기될 때마다 민족문학론, 그리고 『창비』는 매번 회생해온 것이 사실이다. 즉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문학론의 존재근거를 더욱더 정교하고 날카롭게 벼리고 가다듬어왔으며, 『창비』의 40년이 값진 것은 바로 이 팽팽한 긴장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40년의 역사를 가지면서도 여전히 젊은 『창비』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축복과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창비』에 뒤이어 나름대로 경쟁하며 문학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축복처럼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창비』가 내 앞에, 나의 세대 앞에 있다는 것이 때로는 두렵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창비』가 영원하길, 그래서 우리도 좀더 정교하고 날카로운 논리로 경쟁할 수 있길, 그리고 종내에는 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한국문학 전체가 더욱 풍요로워지길, 감히 기대해본다. 욕심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