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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민 崔旻
1944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69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상실』 등이 있음. chmin@knua.ac.kr
어느날 꿈에
웬 낙하산부대가 오밤중
열 지어 탱크로 진입하다
게임 끝
온 백성 큰길에 나와 춤추고 울부짖다
만국기 휘날리던 날
내가 태어난 깡패의 나라에서는
깡패를 존경해야 한다
깡패는 분명하다
깡패는 단호하다
깡패는 애국한다
깡패는 지조가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건 죄다
흐리멍덩한 것들뿐
탁한 물속의 빛
신기루 또는 한낮의 안개
곤혹
빚진 자의 양심 따위
이를테면
나의 도덕감이
싹쓸이로
무시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
진창 또는
창녀의 사랑 같은 것
어느날 꿈에
나는
사자(獅子)들이 떼지어
길을 건너가는 걸 보았다
방에 들어서면 두렵다
내 방에 들어서면 두렵다
몇날 며칠
불면이 두렵고
둥그런 천장이 두렵고 사방 벽지가 두렵다
생각하기가 싫어
방에
갇히는 것이 다시 두렵다
드러누워
방 밖에서 이른바
역사가 소리치고 지나가는 걸 듣기도
민망하다
믿지 않는다
나를 믿지 않는다
살아 있다고 생각 안한다
남들이 살아 있다고도 생각 안한다
죽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좀비라는 말이 아니라
죽고 사는 게 뭔지 모르니까
믿고 자시고 없다
천국에는 각방이 있을까
무서워하지 않고
긴 복도로 나가
하느님 방을 찾아나서면 재밌겠지
천국에는
써비스 끝내주는
특실 같은 것이 있을까
기다려진다
방에 들어서면 두렵다
미친 童話
연약한 마음은
열 개의 문이 있지만
그것들을 다 열어젖혀도
나갈 데가 없다
보이는 것이 없다
짐짓
불안해진 도로 따위가
앞쪽으로 길게 뻗쳐 있지만
움직이지 못한다
실패한 섹스처럼
주저앉음
제자리
임금님이 망루에서 하염없이 울고 싶다
막내공주가 완전히 돌았다
모든 이가 열네살에 꾸는 꿈이
모든 이의 평생 저주가 되어
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으니
모두 미쳤다
모두 미쳤기 때문에
같이 산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