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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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에 부쳐 | 대만 홍콩 중국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의 자산으로

 

 

쳔 꽝싱 陳光興

Inter-Asia Cultural Studies 편집위원 khchen@mx.nthu.edu.tw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운동들』(Inter-Asia Cultural Studies: Movements)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영광이다. 내가 알기로 『창비』는 사회 전반과 소통하는 독립적인 지식인의 잡지이며 계간지로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판매부수를 갖고 있다. 어떤 언어로 씌어지든 계간지 가운데 기관지를 제외하면 이만큼 탄탄한 독자층을 가진 잡지는 찾을 수가 없다. 이런 ‘한국의 기적’은 『창비』가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권위주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으며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도전에 맞서 스스로를 갱신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컨대 『창비』는 지속적으로 질 높은 내용물을 출판함으로써 체제비판적인 한국인들 사이에서 신뢰와 평판을 얻은 것이다.

『창비』에 비하면 『인터아시아 문화연구』(www.inter-asia.org)는 역사가 훨씬 짧은 편이다. 이 잡지는 2000년 영국의 루틀리지(Routledge) 출판사를 통해 처음 출간되어, 2005년 이전에는 1년에 3호씩 발행되다가 현재는 1년에 4호씩 발행되고 있다. 또 루틀리지사와 계약을 맺어 단행본 씨리즈도 펴내기 시작했다.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개략적인 목표는 물론 지식생산의 층위에서 아시아의 통합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영역에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최초의 국제지로서 우리의 사명은 아시아에서 직접 생산된 문화연구 관련 분야의 질 높은 학문간 연구성과를 출간하고 유통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시아 문화에 관한 영어 간행물들이 주로 아시아 바깥에서 출판되었다. 영어로 된 국제출판물이 아시아에서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시아 언어로 된 학술적 성과를 영어로 번역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아시아의 지적 작업은 다소간 세계의 유통망과 단절되었던 것이다. 본지는 아시아가 낳은 지적 생산물을 영어로 접할 수 있게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국제적인 문화연구 분야에서 이미 지구적 지식인공동체의 지식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과거 아시아 지식인들의 시선은 ‘서구’를 향해 있었고 그 때문에 아시아의 지식인집단은 서로 단절되었다. 각 지역의 집단을 이어주기 위한 우리 잡지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의 지적 공동체의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다. 따라서 본지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하나는 아시아를 지구적 공동체에 연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공동체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기획은 아시아에 기반을 두면서도 폐쇄적이지 않다. 우리는 전세계의 지적 공동체들과 활발하게 유대를 맺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 점은 국제적인 면면을 지닌 편집고문단의 진용에도 반영되어 있다.

아시아의 언어로 씌어진 저작을 출판하는 데 주력하는만큼, 우리는 번역작업, 지역에 기반을 둔 주요 잡지들과의 제휴 그리고 상호번역의 촉진에 특히 힘을 쏟았다. 지금까지 본지에 실린 글들은 한국어나 일본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같은 아시아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런 언어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언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업이 진척됨에 따라 우리가 아시아 내에서 이룩한 결합이 더 확장되어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가길 희망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영어잡지의 편집위원들은 대개 같은 나라 출신이거나 아니면 한두 나라에 몰려 있다. 이에 비해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경우 아시아 전체에 기반을 둔다. 잡지의 임무가 아시아대륙을 연결하는 것이므로 편집진도 (미국과 호주를 포함하여) 아시아태평양 전역의 15개국 스무 도시에 자리잡은—출신국에서 탁월한 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알려진—2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편집위원들이 이렇듯 지리적으로 넓게 퍼진 사례는 드물며 인터넷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본지는 조직화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소지역 규모의 교류를 조정할 실무위원회와 더불어—하나는 동북아시아에, 또 하나는 동남아시아에 기반을 둔—공동편집 구조를 갖추었다. 문화연구가 학문간 연구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므로 편집진의 학문적 배경도 사회학, 인류학, 영문학, 영화연구, 의사소통과 매체연구, 비교문학, 정치이론, 번역학, 지성사, 정치경제학, 정치사회학, 사회사, 젠더연구, 동성애연구, 도시학을 아우른다.

1998년 이래 편집진은 해마다 두 번씩 매번 아시아의 다른 도시에서 모임을 가졌고 그때마다 해당지역의 지식인들과 만나기 위한 워크샵과 쎄미나를 열었다. 편집진은 또한 더 큰 규모의 회의를 세 차례 개최하여 여러 다른 집단과 네트워크가 합류하도록 했고 그런 회의를 통해 출판할 자료들이 만들어졌다. 첫번째 회의는 1998년 타이뻬이, 두번째는 2000년 일본의 후꾸오까, 세번째는 2004년 1월 인도의 방갈로르, 그리고 네번째 회의는 2005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2004년 방갈로르 회의에서는 다양한 학회, 기획, 단체들을 한데 연결하고 잡지사업이 시작한 개별 학자들의 네트워크를 뛰어넘는 국제교류를 촉진하도록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협회가 발족되었다.

아시아에서 지식인의 잡지가 수행하는 역할은 중요하다. 그것은 비판의 목소리가 공적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올 공간, 그리고 지식인과 사회와 정치의 세계를 연결할 공간을 마련한다. 더 나아가 지식인으로 하여금 잡지라는 집단적 기획으로 함께 생각하고 쓰고 행동하게 해준다. 바로 그같은 잡지 생산과정에서 개인은 더이상 고립되지 않고 합당한 소속을 갖게 되므로 잡지는 참여하는 지식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다른 지적인 실천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창비』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창비』의 편집진이 독자적인 출판력을 갖추었다는 것도 박수를 보낼 일이며, 나아가 그들이 민주주의의 의제를 밀고 나갈 책무를 감당하는 동시에 한국사회 전반에 기여할 ‘영예로운’ 공간을 점유한다는 점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비판적 시선을 겸비한 연대의식으로 ‘창비 프로젝트’를 더욱 발전시켜 자족적인 성취가 아닌 하나의 모범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 앞으로 『창비』의 성패는 자체의 비판적 전통을 계승하여 한층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젊은 지식인 세대를 편집진에 합류시킴으로써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내부의 조건에 더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지구화시대에 『창비』는 더이상 한국인들만의 자산이 아니라 전체 아시아인의 자산이란 사실이다. 40년 동안 문화역량을 축적해온 『창비』는 이제 이 지역의 비판적 지식인들로부터 아시아의 통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창비』와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프로젝트가 만나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황정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