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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에 부쳐 | 대만 홍콩 중국

 

뚜슈(讀書)

우리의 공동 사명을 위하여

 

 

왕 후이 汪暉

『讀書』주간 wanghui1010@yahoo.com.cn

 

 

『뚜슈』는 1979년 4월 창간된 이래 올해로 27년이 되었다. 창간호의 표제 “독서에 금역은 없다”는 말은 문화대혁명 후 사상해방운동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각 시대마다 금기와 지배이데올로기가 있는만큼, 이 구호는 특정 시대의 특정 금기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매 시대에 발생하는 모든 새로운 금기에 대항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뚜슈』의 필자는 몇세대에 걸쳐 있다. 그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면서, 각자의 글을 통해 개혁시대 중국의 변화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1979년에서 1984년 사이 『뚜슈』는 당시 사상해방운동과 결합했고,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제기된 맑스주의적 휴머니즘 문제는 중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1985년을 전후해서는 젊은 신세대 지식인들이 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서구 현대사상의 경전적 저작들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데 주력했고, 문화와 전통의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토론을 벌였다. 『뚜슈』가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해 보인 정열적인 관심은 사상과 이론 그리고 학술의 방식을 통해 표현되었고, 그러한 방식으로 중국의 현실에 개입함으로써 후대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1996년 초부터 싼롄서점(三聯書店)의 요청으로 『뚜슈』의 주간을 맡아왔다. 후에 사회과학자 황 핑(黃平)을 초빙하여 함께 작업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은 우리의 방침은 『뚜슈』의 전통을 계승하되, 훨씬 더 광범위한 관심과 토론을 이끌어내는 공공의 토론장이 되기 위해 대폭적인 조정을 가하는 것이었다. 1996년부터 『뚜슈』가 제출한 일련의 문제들은 지식계의 중심 논제가 되어왔다. 대중민주주의와 헌법 문제, 전지구화와 아시아 문제, 20세기의 전쟁과 혁명, 금융위기, 삼농(三農) 문제, 테러리즘,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 법률과 민주, 내셔널리즘, 페미니즘, 기업개혁과 재산권 문제, 생태위기, 화인(華人) 화교와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문제 등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 어떤 것은 전사회적 토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월간 『뚜슈』의 발행부수는 현재까지 10만부 정도이다. 이는 독자들이 우리의 편집방향을 지지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의 지배적 패권, 전쟁, 냉전의 잔영, 신자유주의의 전지구화 압력, 한반도와 타이완해협의 분열국면과 전쟁의 위기, 시장을 배경으로 민족국가간의 상호경쟁을 외피로 한 자원쟁탈전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동북아 지역번영과 화해와 안정을 위협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과거 10년간 『뚜슈』는 동아시아 문제와 지역 문제에 대해 다수의 글을 발표했다(십년 이래 동아시아, 일본, 한국에 관해 발표한 글은 이미 100편을 상회한다). 우리는 중국지식계의 논쟁이 서구, 특히 미국에 치중되는 편향을 바로잡고자 애써왔다. 한반도의 핵위기와 관련해서는 한국 학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했고, 타이완 식민의 역사와 목전의 정치상황에 관해서는 타이완의 지식인들에게 글을 요청했다. 또한 동아시아지역의 전쟁의 역사에 관해 한국, 일본, 중국(타이완과 홍콩 포함)의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특집 토론회를 몇차례에 걸쳐 마련했다. 국가와 지역 그리고 전지구적 네트워크로부터, 신자유주의의 전지구화에 대항하는 다양한 사고들이 『뚜슈』의 지면에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

『뚜슈』는 지역통합의 난제들에 대해 고민을 지속할 것이나, 이미 주어진 형태의 지역프로젝트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의 문제든 지역의 문제든, 현재 세계의 전반적인 변화에서 떨어져 고립적으로 분석을 진행해선 안된다. 아시아 지역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유는 중국의 발전과정 및 기타 사회문제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전개될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비판적 잡지들간에는 상호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많은 공통된 입장, 상관된 논제, 그리고 비판적인 지식인 들이 있다. 이들 간행물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투쟁을 통해 비판적 위치를 확보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얻어냈다.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박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잡지들간의 상호추동을 통해 각 지역의 지식인들의 관심사가 타지역에 소개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각 지역의 비판적 집단들 사이에 안정적 대화의 통로를 수립하여 그것을 지역에 뿌리내리고, 동시에 (언어를 포함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셋째, 이같은 ‘공용 공간’으로서의 잡지의 지면에 각자의 사회운동을 연관시켜야 한다. 이러한 상호간 추동과 합작은 장차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공해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각자 속한 지역에서 벌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이 민족주의나 보수주의로 흐르지 않고, 개방적이고 상호협력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견인할 것이다.

비판적 잡지는 이제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각자의 사회에서 어떻게 훨씬 더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운동과 관련을 맺되, 엘리뜨문화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수준 높은 토론의 질을 담보해낼 것인가. 이는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리고 비판적 잡지들 사이에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자유로운 교류를 달성하는 것 역시 우리가 노력해야 할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시대에, 비판적 잡지가 어떻게 그들에 대해 비판적 칼날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비판적 잡지가 향후 새로운 발전의 여지를 획득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관건이기도 하다.

40년이라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창작과비평』은 국내외 반독재 및 민주주의를 위해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했으며, 한반도 민족통일과 아시아 지역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토론을 벌여왔다. 비판적 지식인의 간행물로서 『창비』는 20세기 동아시아 진보적 지식인의 비판정신을 계승하고 있으며, 동시에 당대 비판문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창비』 필자의 한명이자 『뚜슈』의 편집자로서, 나는 『창비』와 그 편집자들, 그리고 필자와 독자집단을 생각할 때 늘 마음속에 일종의 ‘동지적’ 경애를 느낀다. ‘동지’라는 말은 오늘날 중국에서는 더이상 쓰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심정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창비』는 어떤 곤경이나 압력 속에서도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그러한 고집스러움이 교조주의와는 무관하다는 데 가장 큰 미덕이 있다. 역사발전의 다양한 단계에서, 『창비』는 시대의 변화와 맥박을 예민하게 관찰함으로써, 부단히 새로운 과제와 시야를 제시해왔다. 지식계의 비판적 전통, 사회운동의 성숙도, 민주화과정의 지난한 역정, 그리고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특수한 입장 속에서, 『창비』를 비롯한 한국의 지식계는 아시아지역의 진보진영에서 시종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역사적 조건을 맞아, 이러한 귀중한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론화할 것인가. 그리고 아시아와 세계의 진보적 단계의 경험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 이는 우리 모두의 공동 사명이다. 『뚜슈』는 그 속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상호협력과 호응을 고대한다. 그리고 전체 중국어권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한단계 상승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백지운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