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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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崔泳喆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야성은 빛나다』 등이 있음. cyc5244@hanmail.net

 

 

 

뒷간이 멀어서 생긴 일

 

 

오줌이 강을 이룬 적이 있었다

밥상머리에 곯아떨어지는 아이들을 일으켜

간신히 오줌을 뉘고

다음은 초저녁잠이 많은 노인들

다음은 그 틈에 합궁하고 난 젊은 부부

새벽녘에 일어난 노인들은 넘칠락말락 출렁이는

요강을 집 앞 개울에 씻었다

얼굴도 씻고 입도 헹궜다

둥근 요강에서 밤새 뒤섞여 짜한 냄새가 나는

할아버지 어머니 손주의 오줌이

새벽 개울물에 소용돌이치며 한번 더 자리를 바꾸며

동구 밖 천리를 달려갔다

달리기에 느린 할머니 오줌을 아버지가 들쳐업고

아이들 종종걸음이 놓칠세라 그 뒤를 따랐다

이른 아침 일어나 마당 수돗가에

아직 뜨뜻한 기운 남은 요강을 비우는데

그때 개울가에서처럼 네 식구의 오줌이 마구 소용돌이친다

야호 함성을 지르며 하수구로 흘러들어간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오줌은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 것이라고

흘러가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머나먼 육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피붙이 오줌들은 오랜만에 한통속이 되어 짜한 냄새를 풍긴다

 

 

 

밥상이 있는 오후

 

 

누가 먼저 먹고 간 식탁에

남은 밥그릇에 남은 국그릇에

시뻘건 피

 

몇 숟갈 밥알 위로

벌건 양념이

포탄자국처럼 번쩍

밥알을 씹느라 벌어진 입술이

흘린 피

그 사이 영롱하게 박힌 침

 

늦은 오후

햇살의 파편이 출렁

물론 그것은 시뻘건 반찬들이 뿌린 양념의 잔해

물론 그것은 양념의 잔해가 아닌

밥 한상 받기 위해 치르고 온 전투의 잔해

 

나날의 생이여 어떻게 이렇게

피를 제대로 닦지도 않고 식사를

전우의 시체를 치우지도 않고 진격을

 

곯아터진 말들의 긴 혓바닥

밥상까지 오느라 널브러지고 토막 나

뒤죽박죽 양념이 묻은 오장육부

젖은 수건이 와서

쓰윽 닦아주고 간 오후

 

 

 

냉동창고

 

 

얼음조끼를 껴입은 생선들이 줄줄이 누워 있다

줄줄이 엎어져 있다

지난겨울 연행되어 사지가 묶인 것들

방탄조끼를 껴입고 면회갔다

그들의 적의가 얼마나 살얼음 같은지

감옥 안이 다 꽁꽁 얼었다  

일찍이 바다감옥에서

수도 없이 탈옥을 감행하다가

전과에 전과가 쌓여

바다 건너 이 철통요새 독방으로 이감되었다

차가운 종신감옥에 갇혀서도

호시탐탐 도망갈 방도만 찾고 있는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시퍼렇다

스르르 적당히 눈감는 놈이 없는지

서로 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