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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동아시아사’의 가능성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하여
나리따 류우이찌 成田龍一
니혼죠시대학(日本女子大學) 교수. 일본근현대사, 특히 도시사·사학사 전공. 주요 저서로 『「故鄕」という物語』 『歷史學のスタイル』 『近代都市空間の文化經驗』 등이 있음. ry1-nrtair@sage.ocn.ne.jp
ⓒ 成田龍一 2006/한국어판 ⓒ(주)창비 2006
1. 2005년의 동아시아
2005년에는 동아시아에서 역사인식의 온도차를 실감케 하는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예컨대 봄에 한국과 중국에서 발생한 시위에 대해 일본 언론은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보도했다. 일본의 외교정책과 외교자세에 반대한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은 일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위인 양 보도하면서 비난을 가했던 것이다. 역사교과서 문제와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 참배문제에 대한 아시아의 비판에 관해서는 아시아 각국의 ‘반발’이라는 표현을 써서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곧 전쟁에 대한 기억방식이나 오늘날의 동아시아와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련된 문제를 곧 일본에 대한 반발로 취급하는 자세로서, 중국·한국과의 온도차를 좁히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2005년은 일본 내에서는 ‘전후(戰後) 60주년’으로서 강조되었다. 2005년은 이밖에도 ‘해방 60주년’ ‘을사조약 100주년’ ‘한일조약 40주년’ ‘베트남전쟁 종결 30주년’등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로지 전후 60주년에만 촛점이 맞춰졌다. 게다가 실제로는 전후 60주년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노골적인 ‘국익’론이 버젓이 통용되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전후 60주년이라는 인식 자체도 일국사적인 역사인식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 ‘전후’를 60주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 과연 얼마나 될까”1 하는 인식 자체가 희박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 관한 텍스트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한겨레신문사 2005)2가 간행되었다. 일본·한국·중국의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편집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책이 각국에서 동시에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라 부교재를 표방하지만, 역사교육의 현장에서 사용될 것을 지향한만큼 각종 제약과 곤란이 따랐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교육은 각 ‘국가’마다 제도의 차이가 있을뿐더러 ‘국민’을 육성한다는 목적이 있는만큼 내셔널한 틀로 짙게 채색된다. 또 국가와 국민의 틀을 상대화하려 할 때도 각국의 역사교육이 안고 있는 과제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여러 제약과 곤란이 가로놓여 있는 가운데서도 『미래를 여는 역사』를 편찬·간행하는 데 힘쓴 분들께 먼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일본에서는 특히 1990년대 이후로 노골적인 내셔널리즘이 배회하고 있다. 역사교육의 현장에서도 ‘역사수정주의(歷史修正主義)’를 내세운 후소오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2002년에 등장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해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비판을 가할 필요가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대안을 제시할 필요성도 요청되므로 『미래를 여는 역사』의 간행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렇지만 역사교육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과 운동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이 책에서 제시된 역사상(歷史像)과 역사서술에 대해서는 정확한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저 운동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로만 취급하고 책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는 것은 『미래를 여는 역사』의 집필자들도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으로 어떠한 역사상이 제시되는가 하는 점은 운동의 측면에서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역사학적·사학사(史學史)적 관점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독해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국·중국과는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 같은 텍스트를 읽고 언어를 실처럼 자아내어 한국·중국 분들과 대화를 나눌 실마리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일본측 집필자는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전후역사학’이라 불리는 입장에 선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다. 전후역사학은 1945년 8월 이후의 ‘전후민주주의’를 구현한 역사학으로서 사회경제사의 성과를 기반으로 역사를 묘사하며 일본제국의 군국주의적 행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역사학이다. 전후 전개과정에서 일본 역사학의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이 전후역사학으로 집약되었고 이에 맞서 역사수정주의가 대두함으로써, 전후역사학과 역사수정주의가 상호 대립하는 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1990년 전후부터 이 두 파 외에 새로이 ‘사회사연구’가 대두한 후로는 전후역사학, 역사수정주의, 사회사연구의 3파정립(鼎立) 상황이 출현한다. 사회사연구는 언어론적 전환의 논의를 의식하여 역사구성주의의 입장을 취하는데, 이런 면에서 실증주의, 즉 본질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전후역사학과 대립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사회사연구의 역사학자들도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실로 성가신 문제지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가 결코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종래의 ‘대동아전쟁 긍정론’같은 복고적인 역사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역사구성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논점인 ‘이야기(narrative)로서의 역사론’까지 내세우고 있다. 사학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새로운 역사수정주의로서 등장한 것이다.3 일본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논점과 대항관계가 대두한 3파정립 상황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가 간행되었다.
2.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하여
일본과 동아시아 각국 사이에는 한국과의 교류를 비롯해서 국가간·단체간의 각종 역사교육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일본과 한국은 민간차원, 중국은 국가차원)을 출발점으로 한 교류의 일환으로서 2002년 3월에 열린 난징(南京) 포럼 이래 준비를 거듭해왔다고 한다. 같은 해 8월에 서울에서 부교재 작성을 위한 회의가 열린 뒤 일본에서 4회, 중국에서 4회, 한국에서 2회의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들 회합의 성과를 토대로 『미래를 여는 역사』가 간행되었다. 일본측 집필자와 관계자 들에 따르면, 이 책은 2005년 3국에서 동시발매되어 일본에서 7만부, 중국에서 12만부, 한국에서는 3만부가 팔렸다고 한다.4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일본·중국·한국 공동편집’형태를 취해 각 절을 ‘담당국’이 집필했고, 책 말미에 집필 분담이 명시되어 있다.5
일본·중국·한국 3국간의 교류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시도된 바 있다. 예컨대 일본을 무대로 해서는 1982년에 발족된 ‘비교사·비교역사교육 연구회’가 있다. 이 연구회는 1984년 8월 ‘동아시아 역사교육 심포지엄: 자국사와 세계사’를 개최했다.6 이 시도 역시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1982년의 경우 3국간의 주제가 (역사교육의) ‘비교’인 반면,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는 ‘공통’(의 교재 작성)을 지향하고 있어서, 이 20년간의 추이와 경험의 축적을 엿볼 수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일본측 편집위원회는 주로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 ‘역사교육 아시아 네트워크 JAPAN’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전후역사학의 성과를 받아들여 교과서 문제에 대처하는 ‘양식파’혹은 ‘양심파’그룹이 전후역사학에 입각해서 집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대안을 제시하리라 기대했고, 그것이 앞에서 본 높은 판매부수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를 공동으로 편집하고 출판하는 데 여러 제약이 있었던 것은 관계자들이 전하는 바와 같다. 또 집필자들 스스로 이 책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7 현상황에서는 사이또오 카즈하루(齊藤一晴)의 말처럼 3국 관계자들이 역사교육을 놓고 ‘공통’의 교재를 작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무엇보다 3국에서 대안을 검토하고 제공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여는 역사』는 꼼꼼히 검토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거기에 들어간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책을 검토하는 까닭은 이 책에 기울여진 노력과 시도를 무위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전체 구성과 연관된 문제로서, 이 책의 구상과 서술, 즉 집필의 틀거리와 집필의 실제가 서로 어긋나 있다는 지적에서부터 시작하자.
『미래를 여는 역사』의 부제는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 한국, 중국에 의해 동아시아가 대표·대행되고 있을 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만, 몽골, 또 러시아, 베트남 등은 제외되어 있다. 물론 이들 나라가 전부 모여서 협의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역사상을 재구성하면서도 3국으로만 한정했다는 자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자각을 결여하고는 ‘동아시아’를 그려낼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의 ‘서양’과 3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국가·민족 들이 엮어내는 관계성의 다발로서 동아시아의 역사상을 그려낼 때, 일본·중국·한국으로 그 역사상을 제한하는 의미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3국’이라고 해서, 인식과 서술에서, 또 집필 분담에서도 현재의 국민국가를 단위로 삼고 있다.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민족’은 일단 『미래를 여는 역사』의 무대에는 등장할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근현대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통시적으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만을 다룬다. 처음 논의에서는 고대사부터 서술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회의가 거듭되는 가운데 고대부터의 통사(通史)를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근현대사로 한정했다고 한다. 한편 『미래를 여는 역사』는 ‘통사’가 아니라 ‘주제별’내용, 즉 ‘일본의 침략전쟁을 둘러싼 역사 사실을 3국이 공유하는’시도라고 한다.8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고찰할 때 일본의 침략전쟁이 중심축이 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과연 그 역사상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만 수렴해도 좋은 것일까? 일본의 침략전쟁이 초래한 대항과 모순은 그냥 고스란히 21세기로 이전된 것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냉전체제의 모순이 일본의 침략전쟁이 남긴 상흔에 상승작용을 가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이를 과연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과제로 설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과 같은 인식에 입각해서 아래서는 『미래를 여는 역사』의 주제 선택과 서술에 주목하면서 각 장별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서장 「개항 이전의 3국」에서는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일본, 중국,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해서 서술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전근대의 역사상은 근대의 국민국가에 의해 정리된 것이라는 인식, 즉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위해 역사가 이용된다는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1장 「개항과 근대화」는 ‘서양 열강의 압력과 3국의 대응’을 서술한다. ‘아시아’라는 인식 자체가 서양의 진출과정에서 형성되었을 터인데, 이 장에서는 ‘서양 열강’에 대항하는 ‘3국의 대응’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서도 현재의 국민국가가 이미 전제조건이다. 즉, 19세기까지 동아시아에 존재한 중국의 지배질서가 서양 열강에 의해서 변용된다는 시각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완결된 ‘대응’이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서양’에 의해 ‘아시아’가 자각되고, 이에 맞서 동아시아에 국민국가가 형성된다는 시각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3국의 분쟁’ 즉 ‘조선을 둘러싼 일본과 청의 갈등’도 ‘서양 열강’에 의한 동아시아의 ‘근대화’ 즉 국민국가 형성이 창출한 모순과 갈등·대항 속에서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국가로 완결해버리는 서술방식은, 각국에 출현한 ‘개혁운동’이 각국 정부와의 대항으로만 이해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 개혁운동은 각각의 ‘근대’(동아시아의 근대)를 구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각국 정부의 근대 구상과 항쟁했던 것이다.
이 장에서 ‘3국 민중의 생활과 문화’라는 절은 심사숙고한 서술로 되어 있어 무척 흥미롭다. 사회사적 시각에서 철도, 역법과 시간, 매체와 교육 등을 다루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근대의 ‘문화’가 국민문화로서 전개되었다는 시각은 보이지 않는다.
2장 「일본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에서는 표제가 ‘양국’으로 되어 있어서 국가를 단위로 한 저항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서는 적어도 ‘민족’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1장과 2장은 ‘일본의 침략’과 ‘민중의 저항’을 골격으로 삼고 있지만 국민국가 체제를 제국—식민지주의의 체제로 보는 인식은 눈에 띄지 않으며, 신해혁명이 동아시아에서 갖는 의의에 관해서는 서술되지 않은 채로 끝난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서술을 한국측이 모두 담당하고 있다. 이런 분담방식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즉 일본 식민지 지배의 가혹성을 분명히 드러내기는 하지만, 일본이 가해성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가 하는 논점은 상실되고 말기 때문이다. 2장의 ‘사회와 문화의 변화’라는 절에서는 각국 대도시의 대중문화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흥미롭다. 다만 서술에서 ‘여성’의 풍속이 강조되고 있는데, 여성에 촛점이 맞춰지고 여성이 줄곧 논의의 대상이 되는 점에 대한 비평은 피해가고 있다.
3장 「침략전쟁과 민중의 피해」에서는 만주사변 이래 ‘일본의 침략’과 ‘중국민중에 대한 잔학행위’가 묘사되는데, 이 부분은 모두 중국측 담당으로 되어 있다. 전시의 식민지 지배에 관해서는 ‘한국의 전쟁기지화’라는 파악에 근거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한국이 모두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는 ‘일본의 침략’에 의한 전쟁수행체제의 형성, 그리고 식민지 지배의 극한적 격화라는 인식이 드러나는데, 서술의 분담에서 이런 부분들을 일본이 쓰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장에서는 조선인민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언급되고 ‘일본 민중의 가해와 피해’(오끼나와 전투, 히로시마·나가사끼 원폭, 〔토오꾜오 등지의〕 공습)가 거론되며 하세가와 테루(長谷川テル)나 일본군 반전(反戰)동맹 등도 기술되어9 폭넓은 시야에서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4장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아시아」에서는 패전 후 ‘3국의 새로운 출발’이 그려진다. 여기서는 전시와 전후의 연속성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일본의 과거청산이 남긴 문제’라는 절에서 일본의 전후처리가 현재 싯점에서 고찰된다. 하지만 이 장은 외교 차원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종장과 마찬가지로 그리 많은 면수를 차지하지 못한다. 전쟁책임은 전후책임과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인식에 선다면, 이 부분의 서술은 더 풍부해도 좋지 않았을까?
동아시아의 ‘전후’에는 새로운 국경선이 그어지고 종래와 다른 경계가 설정되면서 각국이 재편성되는데, 그러한 역동성을 여기서의 서술로는 짚어내기 힘들다. 이 장에서 취급하는 사건들은 현재진행형의 정치·외교 문제와 밀착되어 있다. 만일 여기에 역점을 두었더라면, 이 책이 원래 의도한 대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전후의 대응관계가 분명해졌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 결코 과거사가 아니라는 것, 현재의 국가관계—국제관계와 연동하고 있다는 것이 좀더 잘 서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한국전쟁의 서술을 일본이 담당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중국이나 한국이 맡을 경우 서술(관점)의 차이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면, 오히려 역사인식의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종장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는 개인보상, 위안부, 역사교과서, 야스꾸니신사 문제와 전쟁에 관한 것이 주제의 대종을 이루지만, 전후에 형성된 새로운 모순, 즉 냉전에 관해서는 거의 서술되지 않았다.
3. 텍스트로서의 『미래를 여는 역사』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일본제국의 침략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점은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읽을 때, 몇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번째 문제는 동아시아지역의 역사적 주체에 관한 것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서술에서는 침략이라는 부정적 행위를 한 일본이 주체가 되고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행위 때문에 피해를 입고 저항했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즉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행동하는 이차적인 주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제국의 역사로 되어 있어서, 한국과 중국은 일본제국의 종속변수로 서술될 뿐 독자적인 역할과 의미를 지닌 역사의 주체로서는 묘사되지 못한 듯하다.
두번째 문제는 내셔널리즘에 관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주체성은 일본제국에 대한 저항으로서 서술되는데, 그럼으로써 한국·중국이 국가로서 발현하는 내셔널리즘은 온존된다. 이를 말해주듯이 2장의 표제는 앞서 본 것처럼 ‘일본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 관해서도 일본제국이 지닌 ‘확장’하는 내셔널리즘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전후 형성된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과녁에서 비껴나 있다. 바꿔 말해서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는 동아시아라는 공간이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환원되고, 이를 서술할 때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국민국가의 질서를 전제로 논의가 전개된다. 곧 제2차대전 이후 오늘날의 국가질서를 전제로 소급해 올라간 동아시아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때그때의 과정에서 항쟁과 대항이 새로운 모순을 낳고 일본에 대한 대항이 주축이 되는 동시에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대립이 나타났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3국 사이에 대립만이 아니라 유착과 융합의 복잡한 관계가 있었음을 묘사해내는 작업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질 때, 국경을 뛰어넘는 저항, 젠더에 의한 연대 같은 새로운 가능성의 추구도 비로소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유익했던 부분은 칼럼(‘역사 들여다보기’)이다. 「친일파와 한간(漢奸)」 「멀었던 고국」 등 본문에서 언급되지 않은 화제들을 다루고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주제 선택은 이러한 역사과정과 역사인식을 단축시키고 결락시킨다. 또 서양과의 대항관계에서 (동아시아의) 근대화라는 관점은 희박한 상태에서 그 주제를 넓은 의미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특화시킨다. 이와 관련해서 제2차대전 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점령에 대한 관심도 거의 보이지 않아,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가 아니라 ‘일본제국의 형성과 침략의 근현대사’가 되어 있다. 과제를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추궁으로 제한해서 설정한 것이라면 집필 배분에 좀더 신경을 써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라는 이 책의 의도에 비추어보자면, 식민지적 근대의 논의가 불가결했을 텐데 이런 관점도 찾아볼 수 없다. 대만과 한국에서, 또 부분적으로는 중국에서도 일본과 서양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통해 근대가 도입되며, 이것이 각각의 역사를 규정하게 된다. 1장의 ‘3국 민중의 생활과 문화’에서 다뤄진철도, 역법과 시간, 매체와 교육, 또 2장의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서 다뤄진 도시화 등은 그런 논점을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소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사회사연구는 문명화가 서양화인 동시에 제국화이며, 국민국가 형성에 대응하는 마음과 몸, 그리고 유대(紐帶)10의 근대적 규범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더 나아가 식민지화에 의해 근대가 수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대만의 ‘공통어’제정, 한국·중국의 ‘위생’제도와 ‘위생’적 신체의 형성은, 일본(그리고 서양)에 의한 식민지화 과정에서 수행된 것이다. 역법의 경우, 일본제국은 식민지에 태양력인 일본의 역법을 강제했다. 그러나 농업에는 이용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종주국의 강제이기 때문에 한반도 사람들은 신역법 사용을 거부하였고 그것이 종주국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다. 또 전시에는 대동아공영권을 대상범위로 한 ‘대동아 역법’의 구상도 생겨나, 역법은 일본제국과 식민지·점령지 간의 항쟁의 장이 된다.11 철도도 이런 관점에서 서술·분석할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이같은 문제군은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 거론되어 있지 않다.
요컨대 이 책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항이라는 단단한 틀에 입각해 서술할 뿐, 동아시아의 근현대란 어떤 시대였는가에 대한 전체상은 묘사하고 있지 않다. 『미래를 여는 역사』가 그 주요한 문제의식을 ‘일본의 침략전쟁을 둘러싼 역사사실을 3국에서 공유하는’시도에만 한정한 것이 내포한 문제가 여기서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마도 이 책의 관계자들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아직 역사화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주제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도달했을 것이다. 일본의 전후보상도 불충분하고 역사인식이 여전히 외교문제가 되는 현상황에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전면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역사상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의해 형성된 모순과 대항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전후’의 ‘냉전’의 모순, 더 나아가 ‘전후후(戰後後)’, ‘냉전후’의 모순과 중첩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가 주제를 한정한 것은 아무래도 궁색했다.
이상은 주로 역사인식과 관련하여 드러나는 문제점이지만, 서술, 즉 이야기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더 크다. 이 책에서는 주어, 즉 역사의 주체로서 국민국가가 자명한 존재로 간주된다. 또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침략에 맞선 ‘저항’과 ‘독립’에 있을 뿐, 침략에 ‘협력’하면서 ‘저항’한 사례나 ‘저항·독립’의 틈새에서 생겨나는 갈등이나 모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서술의 분담이 곧 국가를 대표해버리면서 일본의 시책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한국과 중국의 저항을 민족·국가를 대표해서 묘사한다. 이 점은 책에서 국민국가를 주어로 한 ‘3국’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라고 했을 때, 국가의 상위에 있을 터인 동아시아의 시점(즉, 평가의 축)이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민족’의 개념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민족간의 대립이나 항쟁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애당초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논할 때 시간과 공간의 문제, 즉 동아시아라는 공간은 언제, 어떻게, 어떤 범위까지, 어떤 근거로 일괄되어 거론되었는지를 『미래를 여는 역사』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오늘날 동아시아의 국민국가 질서를 전제로 해서 현존하는 국민국가를 주체(주어)로 삼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는 내셔널 히스토리(국사)를 넘어서지 못했으며 오히려 내셔널 히스토리를 강화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위생, 철도, 교육 같은 주제를 통해 제국과 식민지 관계의 복잡한 양상을 묘사하면서 국가를 기준으로 삼는 데서 벗어난 역사상을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은 곧 중층적이고 전이(轉移)하는 국민국가의 모순과 민족의 대항이라는 시점이 『미래를 여는 역사』에는 희박함을 뜻한다. 국민국가의 형성에는 각종 모순이 끼여들고 그것이 식민지주의로 전이해나간다. 이런 인식을 결여할 경우, 일본제국이 지닌 모순은 외재적 민족주의로 축소되어버리고 만다. 오끼나와 연구는 (오끼나와인이) ‘일본인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에 대해서 최근 십년간 논의를 거듭해왔는데,12 이 책에는 이런 성과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미래를 여는 역사』에서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항관계가 서술된 것처럼 전후역사학의 성과는 충분히 활용되고 있다. 반면에 사회사연구의 성과는 단편적으로 소개될 뿐 사건이나 현상에 국한되어 있다. 사회사연구는 국민국가를 참조틀로 삼는 것을 비판하고 국민국가를 역사적 존재로 삼음으로써 내셔널 히스토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990년대에 논의된 이 내셔널 히스토리 비판의 논점이 『미래를 여는 역사』에는 소거되어 있어서 사학사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국민국가 형성시의 내부모순(민족, 변혁주체, 서양에 대한 대응)이 대외적인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 다시 말해 국내의 차이의 통합이 ‘국가’로서의 행위를 규정해나가는 것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일본의 국민국가 형성은 동아시아의 질서(긴장) 속에서 서양과의 긴장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긴장을 동아시아로 갖고 들어왔다는 것, 나아가서 마찬가지의 행위가 한국과 중국에서도 나타난 것에 대한 언급도 없다. 동아시아에서 국민국가 형성(체제)이 만들어낸 모순, 그것이 제국—식민지 관계로 연쇄되고 중첩되는 양상, 이런 점을 과제로 설정한 1990년대 역사학의 실천과 성과가 『미래를 여는 역사』에는 완전히 빠져 있다.
전후역사학과 사회사연구는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대항관계에 있지만, 역사상의 제공에서는 각자 나름의 유효성과 유용성을 갖고 있다. 쌍방이 어떤 관계를 가질 때 역사의 리얼리티가 좀더 잘 드러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런 협력이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를 대상으로 어떠한 서술의 가능성을 열게 될 것인가? 이같은 질문에 대해 실천적으로 응답해나가는 일이야말로 사람들이 『미래를 여는 역사』에 기대하는 바가 아닐까?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수정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 역사상을 제시할 방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4. 동아시아사 혹은 ‘한중일 3국 공통 역사교재’의 가능성
지금까지 비판적인 언급만 많이 늘어놓았지만, 『미래를 여는 역사』에 대한 이같은 검토작업은 결국 동아시아사를 구상할 수 있는가라는 고찰로 이어지게 된다. 이 문제를 네 가지 논점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는 동아시아사를 묘사할 때 ‘일본의 침략전쟁을 둘러싼 역사인식의 공유’(사이또오)를 중심축으로 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거듭해서 논점으로 지적했지만, 이 물음에 대해서는 ‘그렇다’와 ‘아니다’라는 답변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라는 답변은 일본에서 제국의식(식민지 소유를 했던 것)이 여전히 자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 또 ‘전전(戰前)’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전후’의 가치를 조명하는 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운데 전후의식이 제국의식을 소거해왔던 것을 배경으로 한다. 애초에 후자의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그려질 전쟁상은 『미래를 여는 역사』의 서술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전쟁상을 제공하는 사례로는 현재 간행중인 『이와나미 강좌 아시아·태평양전쟁』13을 들 수 있겠다.
‘아니다’라는 답변은 20세기 전반의 모순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침략전쟁만으로는 이 모순 위에 새롭게 부가된 전후(냉전)의 모순이나, 나아가 그후의 모순, 즉 ‘냉전후’나 ‘전후후’라고 할 1990년대 이후의 모순이 과소평가된다. 또한 동아시아 내부 각국간의 상호모순과 그 중첩이 일원적·일방적으로 일본의 모순으로만 파악되어 단순화되고 만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동아시아사는 서양에 대한 저항에 의해 한데 묶인 공간과 시간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공간적으로 동아시아는 국민국가 체제(〓제국체제)가 도입됨으로써 발생한 내부의 침략(즉 일본의 침략)과 피침략, 서양과의 유착과 대항의 공간이다. 시간적으로 동아시아사는 서양과의 긴장의 시기(19세기 후반), 내부의 침략이 가해진 시기(20세기 전반), 미국과의 긴장이 중심이 된 시기(20세기 후반)로 구분될 수 있다. 각 시기마다 서양에 대한 대응의 유형이 국민국가 형성을 지향한 각국에서 나타나는데, 그 공액성(共軶性)14이 동아시아로서의 특징을 만들어낼 것이다.
둘째는 동아시아에서 ‘공통교과서’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관계자들은 『미래를 여는 역사』가 앞으로 공통 역사교재가 되어 교육현장인 교실에서 사용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문제는 3국의 ‘공통’이라는 차원, 그리고 ‘교과서’라는 차원의 두 가지 내용을 갖는데, 나는 두 가지 모두 곤란하리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우선 ‘공통’의 역사인식은 각 국민국가에서 기억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공통의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오히려 3국의 관계자들이 ‘겹쳐쓰기’를 함으로써 각자 기억의 존재방식을 자기점검하는 편이 유효하지 않을까? 또한 ‘교과서’는 교육제도와 연관되어 있는데, 역사교육은 현상적으로는 ‘국민’을 육성하는 제도가 될 수밖에 없고 교과서는 ‘통사’ ‘통설’ ‘종합사’일 것을 요청받게 마련이다. 교과서에 요청되는 이들 요소는 모두 내셔널 히스토리의 강고한 거점이 되어 그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3국 공통의 교과서는 현재로서는 내셔널 히스토리를 좀더 강화한 것, 즉 각국의 내셔널리즘을 좀더 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되고 말 공산이 크다.
셋째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가치기준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게 바로 아시아주의가 아니냐는 답변도 가능할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사회사연구나 식민지적 근대의 논의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논의는 그동안 국경이라는 경계, 국민이라는 규범에 의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지역의 관계, 공동성의 창출방식과 교류의 방식이 변모하면서 ‘국가’ ‘국민’ ‘민족’이 특권화되고 말았음을 밝혀왔다.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경계와 규범에 의해 은폐되어버렸던 관계성의 존재방식을 탐색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국민국가를 넘어선 가치기준의 내용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사학사 속에서 가능성을 도출하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안이한 생태사관(生態史觀)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아시아에 공화제와 사회주의가 존재했던 것이 내포하는 역사적 의미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또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과 불신 때문에 편의적으로 아시아주의가 대두하고 있지만, 그것은 반미나 반서양의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근현대사의 역사상이 내셔널 히스토리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자각이 필요하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말하자면 ‘좋은 내셔널리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상은 결코 내셔널리즘의 배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단일하고 균일한 역사상이 아니라 모든 ‘복수성(複數性)’을 의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복수의 ‘일본’, 복수의 ‘한국’, 복수의 ‘중국’이 서로 복수성으로 관계를 맺는 ‘복수의 동아시아’라는 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코스도 결코 단선적이지 않고 복수로 존재했음을 인식하는 것이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중요하리라 본다. 이 점과 관련해서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의 서술은 내셔널 히스토리로 환원되지 않을 역사서술의 방법적 실천이라고 생각한다.15 또 역사나 역사학을 보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이하는 복수성에 있는데, 백영서가 사학사에 촛점을 맞추면서 사학사를 짜넣은 역사서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시사점을 던진다.16 그런 가운데서 ‘인식’과 ‘이야기’쌍방을 의식하는 것, 즉 말을 실처럼 자아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아쉽게도 『미래를 여는 역사』는 이런 과제에 응답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서로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논의의 장을 넓혀나갈 계기는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문제점만 지적한 감이 있지만, 이상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3국간뿐만 아니라 각 국민국가 내부에도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차이, 즉 온도차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를 도모하기 위한 비판적 제언이었다.
나 자신도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일본의 교과서는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교과서회사의 논리(자본의 논리)와 긴장관계를 가지면서 원고를 쓰고, 다시 문부과학성의 검정(이번에는 국가의 논리)을 받고, 각급 교육위원회를 통해 채택이 결정되는 순서를 밟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제약이 있고 교과서에 개인적 견해를 집어넣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점을 익히 알면서도 내가 교과서 집필에 관여한 것은 후소오샤판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집필과 간행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도를 찾을 수 있다. 또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고도 엿보인다. 나의 비판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비판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이 글은 일본에서 역사학과 역사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필자의 독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독해에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필자의 에게 떠맡겨진 일본의 현상이 투영되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복수의 배경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논의할 때 분명히 풍성한 논점과 역사상이 제공될 것이다. 이 글도 그런 시도들 가운데 하나이다.
| 任城模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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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目取眞俊 『沖繩「戰後」ゼロ年』, NHK出版 2005.↩
- 일본어판 제목은 『未來をひらく歷史: 日本·中國·韓國〓共同編集 東アジア3國の近現代史』, 高文硏 2005이다.(중국어판 제목은 『東亞三國的近現代史』,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5이다—옮긴이.)↩
- 이 점에 관해서는 졸고 「歷史を敎科書に書くこと」, 『世界』 2001년 5월호 참조.↩
- 齊藤一晴 「『未來をひらく歷史』作成のる經過と論點」 上·下, 『季刊戰爭責任硏究』 48/49, 2005.6.9.↩
- 일본어판에는 각국별 집필항목표가 붙어 있으나 한국어판과 중국어판에는 각국별 집필자만 소개되어 있다—옮긴이.↩
- 당시의 기록은 『自國史と世界史』, ほるぷ出版 1985로 간행되었으며, 제3회 회의도 同會 編 『黑船と日淸戰爭』, 未來社 1996으로 간행되었다.↩
- 齊藤一晴, 같은 글.↩
- 齊藤一晴, 같은 글.↩
- 하세가와 테루(1912~47)는 좌익문화운동을 하다 퇴학당한 뒤 중국인 유학생과 결혼, 중일전쟁 직후샹하이에서 일본에 대한 반전방송에 투신했던 여성활동가다. 일본군 반전동맹은 일본의 전쟁을 제국주의전쟁으로 규정하고 일본군에게 투항과 전선이탈을 호소한 일본인 조직을 말한다—옮긴이.↩
- 일본의 저명한 서양사회사 연구자 니노미야 히로유끼(二宮宏之)의 ‘사회적 결합(sociabilité)’론에 사용된 개념이다. 니노미야는 사회적 결합의 두 측면을 유대(きずな)와 구속(しがらみ)에서 찾는다. 유대는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관계’, 구속은 ‘타율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다. 근대의 사회적 결합은 유대에서 구속으로 전환되면서 정치성을 드러내게 된다. 필자는 그 대표적 사례를 도시화 과정에서의 동향(同鄕) 조직에서 찾고 있다—옮긴이.↩
- 졸고 「近代日本の「とき」意識」, 佐藤次高·福井憲彦 編 『地域の世界史 6: ときの地域史』, 山川出版社 1999.↩
- 이 주제에 관해 국내에 소개된 대표적 성과로서 토미야마 이찌로오(富山一郞) 지음, 임성모 옮김 『전장의 기억』, 이산 2002를 참고할 수 있다—옮긴이.↩
- 倉澤愛子·成田龍一 外 編 『岩波講座 アジア·太平洋戰爭』(전8권), 岩波書店 2005~2006.(필자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씨리즈는 2006년 1월 현재 3권까지 간행되었다. 권별 주제는 ①왜, 지금 아시아·태평양전쟁인가? ②전쟁의 정치학 ③동원, 저항, 익찬(翼贊) ④제국의 전쟁경험 ⑤전장(戰場)의 제상(諸相) ⑥일상생활 속의 총력전 ⑦지배와 폭력 ⑧20세기 속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시아·전체상을 주제별로 망라한 일본 최초의 학제적 시도로서 주목된다—옮긴이.)↩
- 점, 선, 수 등을 서로 바꾸어놓아도 성질에 변화가 없을 경우, 그 쌍의 관계를 가리키는 수학용어. 켤레성이라도 한다—옮긴이.↩
- 졸고 「韓洪九『韓洪九の韓國現代史』, あるいは「同時代史」の敍述について」, 『UP』 2004. 11 참조.↩
- 백영서 「‘동양사학’의 탄생과 쇠퇴」, 『창작과비평』 2004년 겨울호를 가리킴—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