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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말선 趙末先
1965년 경남 김해 출생.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매우 가벼운 담론』이 있음. chomalsun@naver.com
달맞이꽃
나는 들고양이를 맞는다
나는 야간운전자를 맞는다
나는 불길한 구급차를 맞는다
나는 취객을 맞는다
나는 먹구름을 맞는다
나는 우산을 맞는다
나는 치마를 활짝 걷어올리고 검은 도둑을 맞는다
사정하는 새벽이슬을 맞는다
나는 햇살과 화살과 급살을 막는다
나는 도도한 행성의 정공법을 막는다
나는 벌어진 치마를 한 손에 비틀어쥐고
벌건 대낮까지 쫓아온 달을 막는다
그러니 니가 달맞이 할래?
한 접시
한 접시 요리를 관통하는 맛 한 접시 요리를 더럽히는 소스 한 접시 요리 안에 어울리게 자리한 식구들 얼굴 위로 찌익 미소가 연고를 짠다 한 접시로 마감된 요리 자주 한 접시로 때우는 끼니 안방에는 소스에 더럽혀진 아버지 얼굴 부엌에는 소스에 더럽혀진 엄마 얼굴 마루에는 소스에 더럽혀진 내 얼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스가 문지방을 넘어 문턱을 넘어 접시 안에 가득 고인다 이 소스는 공통으로 늙은 상처의 고름? 이 소스는 공통으로 늙은 미래? 아버지와 엄마와 나는 늘 다른 소스를 주문하지만 같은 소스에 더럽혀진다 아버지를 지나서 엄마를 지나서 나에게로 소문을 앞세우는 검은 그림자 아버지를 지나서 엄마를 지나서 나에게로 냄새를 먼저 풍기는 붉은 혈액 친절한 이웃처럼 포크와 나이프가 폼나게 훼손하는 한 접시 이 놈의 집구석 엎어버리면 그만이지 으름장이 난무하는 한 접시 깨지기 쉬운 한 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