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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다시 찾아온 토론의 시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읽고

 

 

최원식 崔元植

문학평론가, 인하대 동양어문학부 교수. 저서로 『문학의 귀환』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민족문학의 논리』 『한국계몽주의문학사론』 등이 있음. ps919@hanmail.net

 

 

1. 대표성의 균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이하 『재인식』)이 언론의 화려한 조명 속에 2006년 벽두 독서계의 주목을 받았다. 2월 둘째주에서 3월 셋째주까지 연속, 교보문고 인문과학 베스트쎌러에 올랐으니, 2권 합쳐 1500여 면에 이르는 방대한 논문선집으로서는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격고(擊鼓)소리가 하 요란하기도 하거니와 언론에 노출된 편자들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지 않은가 하여 내심 혹 빈 수레가 아닐까 하는 저픔도 없지 않았지만, 짬짬이 완독하고 난 첫 느낌은 꽤 충실한 선집이라는 안도감이다. 실증적 작업을 바탕으로 해방전후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파악한 각 논문 필자들의 견해는 그 해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신선했다. 과거이되 일정하게 완결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생생해서 오히려 ‘뜨거운 감자’를 면치 못하는 그 시대를 현재적으로 되감아보기를 원하는 인사들에게 이 선집은 앞으로 필수적인 참고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논문들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편자들의 주장을 상기하자 슬그머니 한 의심이 떠오른다. 편자들은 과연 이 책의 필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가? 편자들과 필자들 사이에 균열이 가로지르고 있다. 논문들을 가려뽑은 편자들의 실제적 안목이 훌륭한 데 비해 그것을 총괄하는 편자들의 시각은 매우 단선적이다. 물론 어떤 편저에도 대표성의 균열이 개재되게 마련이지만 이 책의 편자들은 과도한 대표성을 행사한 것은 아닐까?

편자는 서양사학자 박지향(朴枝香), 한국문학자 김철(金哲), 한국정치학자 김일영(金一榮), 한국경제사학자 이영훈(李榮薰) 네 명인데 흥미롭게도 모두 한국사 비전공자다.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는 물론 전문가지만 한국근현대사를 전공영역으로 하는 사학자는 아니다. 사학처럼 엄밀한 자료학을 바탕으로 하는 분야에서 비전공자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충정이 없는 학문은 죽은 것이지만 충정의 과잉도 학문을 맹목으로 만든다. 추상의 정도를 조절하는 절제를 포기하고 과잉 결정된 일반화로 치달을 위험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적 문제에 대해서는 가까스로 얘기하는 것이 귀하다. 요즘 들어 더욱 절감하는바, 단수로 대상을 잡아채려는 주장에 대한 회의가 깊어진다. 대상의 복잡성을 이 불구의 언어로 어떻게, 뱃속 편한 다원주의로 투항하지 않으면서, 실답게 드러낼 것인가, 이런 고심으로부터 편자들의 발언은 너무나 자유롭다.

그 주장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먼저 『재인식』의 편자들이 강렬히 부정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1979~89, 이하 『인식』)을 잠깐 보자. 『인식』 1권은 1979년 10월 15일 출간되었다. 반유신투쟁이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지배층 내부의 균열 속에 발생한 독재자의 제거라는 매우 불안정한 정변으로 귀결된 10·26사태의 전야에 홀연 나타난 이 책은 필자 가운데 한국사학자가 없다는 사실에서 짐작되듯이 보통의 학술서적이 아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김언호가 설립한 한길사는 70년대 출판운동의 한 거점이었다. 박정희독재에 저항한 재야지식인 송건호 백기완 김도현 염무웅 임헌영 등을 주축으로, 민주화운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현직교수 진덕규 김학준 유인호 등과 친일문제를 선구적으로 천착한 임종국, 그리고 왕년의 혁신계 이동화가 동참한 필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 책은 70년대 민주화투쟁이 다시 쓴 일종의 한국근현대사론이다. 지금은 어느덧 다 잊었지만 유신체제는 엄혹했다. 민주주의를 발화하는 일조차 실존적 투여가 요구되는 ‘겨울공화국’의 시대에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 체제의 역사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식민지와 해방, 미소의 분할점령과 분단국가의 출현, 그리고 한국전쟁과 남북의 적대적 공존이라는 일련의 격동 속에 유신체제를 문맥화하면서, 국사 교과서 바깥으로 추방당한 무궁한 이야기의 세계가 발견됐다. ‘억압당한 것들의 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노예의 문자’즉 엄중한 안팎의 검열과 싸우면서 협상한 결과 획득한 간곡한 마음의 문자로 씌어졌음을 새겨야 한다. 『인식』 1권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분단을 의식하면서 유신체제를 넘어 민주주의를 꿈꾸는, 마음과 마음으로 교신되는 상형문자, 또는 한국판 『심야총서(深夜叢書)』였던 것이다. 그후 1985년에 2권이, 87년에 3권이, 89년에 4,5,6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에야 『인식』이 6권이나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거니와, 내 마음의 『인식』은 어디까지나, 1권이라는 번호 없이, 편자도 없이, 한길사 편집부의 실무적인 머리말만 붙은 채 출간된 그 첫째권일 뿐이다.

『재인식』의 「머리말」은 “편집위원들을 대신해 박지향”이 집필한 것으로 이 책 전체의 총론에 해당하는 글이다. 그런데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와 견해가 달라서라기보다는 논리의 분열로 논술이 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균형 잡힌 역사관”(15면)의 회복을 겨냥하는 이 책이 “어디까지나 우리 학계의 학문적 발전을 위한 것이고 어떤 정치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12면)을 누누이 강조하고, “그동안 일부 언론이 이 책의 내용을 지레짐작해서 이리저리 기사를 써”(같은 곳)왔다고 탓하면서 의도의 순수성을 다시 천명한다. 나도 믿고 싶다. 균형론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 표명이라는 근본주의를 들어 그의 순수성을 해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언론에 의한 오용을 비판하지 못하고 언론에 활용의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는 그의 우유부단함을 비판할 뜻도 없다. 그런데 그의 의식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바로 정치적이다. 이 글 모두에서 그녀는 이 책의 기획이 우리 현대사를 부정하는 참여정부 집권층의 역사의식을 교정하기 위한 역사학자의 책임감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대중적 역사소비시대에 일종의 유령으로 배회하는 정치적 수사(修辭)를 타격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일이 과연 학문적인 것인가? 그녀와 동지들은 현 집권층에 ‘못된’역사의식을 주입한 배후주범으로 『인식』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죄목은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13면). 아, 왕년 공안검찰의 논고를 어쩌면 그리 닮았는가! “세계 12위의 수출대국이 된 지금 나라 망할 것을 걱정하느냐는 식의 안일한 태도가 왜 문제인지는 역사상 강대했던 많은 국가들이 어떻게 왜소화되거나 사라져갔는지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족할 것이다.”(14면) 혁명 전야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원할 잔다르끄를 자임하는 그의 순진한 우국충정이 놀랍다. 전평(全評)의 붕괴과정을 남로당, 이승만세력, 그리고 미군정 내부 강온파의 대응 속에서 치밀하게 분석한 논문(박지향 「한국의 노동운동과 미국, 1945~1950」, 『재인식』2)의 필자가 어떻게 이 머리말에서는 이리 변신할 수 있을까? 이 글에는 사학의 바탕 중의 바탕인 실증적 접근이 부재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인식』은 단일저작이 아니다. 책임편자도 없다. 더구나 출간연대의 단층이 엄연하다. 우선 엄중한 시기에 나온 1권과 상대적 해빙기에 출현한 나머지 권들 사이를 분간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의 어떤 글이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작업방식이 아닐까? 『인식』이 정말로 문제라면 총서 6권을 풍문에 의거하여 단매에 뭉뚱그릴 것이 아니라 정밀히 검토해서 ‘문제의 역사’를 새로이 구성하는 엄격한 선행작업이 요구될 것이다.

이영훈의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는 1부의 머리에 나오지만 1부를 개괄하기보다는 「머리말」을 보완하는 또 하나의 총론이다. 나는 평소, 그의 주장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실증적 작업에 기초한 그의 견해들에 대해서 관련 학계가 성실히 응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글은 달랐다. ‘백두산 이야기’를 탈신화화하는 서두의 해체론 흉내나, 역사가는 “고독한 아웃사이더”(36면)라는 좀 감상적인 명제에 의거하여 장황한 사론을 펼치는 2절 또한 그답지 않거니와, 『인식』 2권의 총론격인 강만길의 「해방전후사 인식의 방향」에서 단 두 대목을 따 이 글을 “민족지상주의”(42면)로 단정하고, 4권의 총설 최장집·정해구의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을 친북혁명론으로 간단히 요약하는 3절에 이르면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전자의 핵심은 “분단체제 내적인 시각을 넘어서서 전체 민족적 시각”(『인식』2, 20면) 즉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당면과제에 비추어 기존의 남 중심, 북 중심 시각들을 상대화하여 해방전후사를 다시 보자는 것이지 통일을 절대가치로 모시는 순진한 또는 우직한 민족지상주의는 아니다. 후자에는 분명 편향이 있다. 나 자신도 이 글이 1989년에 총론으로 집필되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신체제의 종언이 신군부의 집권으로 귀결된 80년대 초의 아득한 절망감에서 배태된 급진적 경향의 대두를 당대의 문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변호하지도 않겠다. 그렇다고 이 글을 “젊은 시절 한때 그 혁명에 영혼이 팔려본 사람이면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45면)다는 식의 독심술까지 동원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술적 엄밀성을 누구보다 주창하는 이영훈과 어울리지 않는다.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한국에서 좌파민족주의의 정치적 영향력이 결코 쇠퇴하지 않”(49면)게 된 연유를 탄식 속에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민간공안을 뺨친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 없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드디어 집권세력의 일각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49~50면) 그는 급기야 『인식』 전체가 “북한을 민족의 ‘민주기지’로 평가”하는 것을 전제한 “한국 민중과 미국제국주의의 대립구도”를 기본축으로 삼는 사회주의혁명론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한다(47면). 80년대에 이런 급진적 경향이 대두한 것은 중반경인데(그 갈래는 또 얼마나 복잡한가) 79년부터 89년까지 출간된 이 총서 전체를 이렇게 과감히 단수화하다니, 이 글이야말로 그가 통탄해 마지않은, “역사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45면)은 글쓰기의 전형이다.

 

 

2. 봉인된 위기 또는 자기갱신

 

수록된 글들은 대체로 90년대 이후의 성과들인데, 아주 특이한 예외가 이만갑의 「1950년대 한국농촌의 사회구조」(1960)다. 이영훈과 류상윤이 요약하고 이영훈이 논평을 붙인 형태로 소개된 이만갑의 선구적 작업을 알게 된 것은 『재인식』을 읽은 보람의 하나다.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의 6개 촌락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현장조사(1958)에 기초한 이만갑의 이 충실한 리포트는 한국전쟁이 한국사회 특히 농촌에 가한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영훈이 지적하고 있듯이, 1950년대가 여전히 “전통사회”(391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4월혁명(1960)과 5·16쿠데타(1961) 이후 한국사회가 본격적 단절의 시대로 이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면, 식민지근대화론 또한 탁상에서 구성된 과잉 결정된 담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침략과 저항, 독재와 반독재, 또는 통일과 반통일이라는 이항대립 속에서만 우리가 통과한 근현대사를 재구성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역도 성립한다. 각 시대를 그 시대의 알맹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중층적으로 파악하는 복안(複眼)을 훈련하기 위해서도 이만갑의 실사구시적 작업의 종요로움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최근 성과를 반영한 국내연구자들의 논문들 중에서도 생각을 다시 가다듬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많았다. 식민지시대를 다룬 주익종 이철우 김낙년, 농지개혁을 새로이 정리한 장시원, 그리고 50년대를 분석한 유영익 이철순의 글이 특히 그렇다. 역시 난분분(亂紛紛)한 풍문에 의지하지 말고 텍스트에 직접 귀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다. 각 시대를 단선화하지 않는 나름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어서 앞으로 본격적 토론을 기대할 만하다.

이 선집은 나라 밖의 성과들을 대폭 수용한 것이 큰 특색이다. 국내 한국학과 국외 한국학의 단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학의 종가를 자부하는 전자는 한반도를 직간접으로 통어하려는 학지(學知)의 축적욕에서 태어난 후자를 못내 의심하면서 괄호치고, 후자는 후자대로 전자를 민족주의의 과잉으로 부담스러워하는 평행선이 여전한데, 이번에 국외논문들을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이제 그 분절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특히 후지나가 타께시(藤永壯)의 「샹하이의 일본군 위안소와 조선인」(『재인식』 1)은 인상적이다. 샹하이에 국한하여 그야말로 신중하고 치밀한 고증작업을 통해 공창제도가 도입되는 1단계, 해군 위안소가 정착하는 2단계, 군 직영의 위안소가 개설되는 3단계를 구분하면서, 이 최종단계에서 민간의 위안소를 운영한 조선인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런데 그는 그것조차도 “조선인 여성을 일본형 매매춘 메커니즘에 편입시킨 조선 식민지지배”(384면)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함으로써 얽힌 삼실을 푸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물론 국외논문 가운데 단순한 것들도 없지 않다. 키무라 미쯔히꼬(木村光彦)의 「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재인식』 1)는 그 예의 하나다. “공산주의 러시아와 국가사회주의 독일 두 체제 사이의 혐오스러운 유사성”(737면)을 잣대로 “스딸린주의와 일본의 천황제적 파시즘이라는 두 이데올로기의 혼합이 북한 경제정책의 주류를 형성했다”(760면)는 결론으로 달려간 이 글은 날씬한 해체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객관으로 포장된 이 철저한 타자적 시각은 북에 대한 내재적 접근만큼이나 우리의 성숙한 인식에 적지 않은 장애를 조성하곤 하는 것이다. 개중에는 날카로운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가, 갸우뚱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최정희의 단편 「노기꾸쇼오(野菊抄)」(1942)를 다시 읽은 최경희의 「친일문학의 또다른 층위」(『재인식』 1)를 보자. “ ‘친일파’연구에 있어서 가장 간과되어온 관점 중 하나는 ‘젠더’의 관점”(393면)이라는 문제의식에서 그는 이 단편에서 “조선의 어머니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전쟁에 내보내도록 독려”(401면)하는 표층서사에 반란하는 하위서사를 간파해낸다. 여주인공은 미혼모요 아들은 사생아라는 설정에 대한 자상한 분석을 통해 이 단편의 하위서사에서 “남자의 무책임성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414면)을 발견하는 그의 독해는 예리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식이 이른바 성전의 제물이 되는 준비과정에 스스로도 공모자가 되어야만 하는 조선의 어머니의 좌절감”(421면)을 묻어둠으로써 “상반되는 메씨지를 위장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문학적 가장무도회를 연출”(426면)했다는 데 이르면 과잉보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젠더를 지렛대로 삼은 절묘한 자기변증에 갇혔다고 보는 것이 더 실상에 가깝지 않은가 한다.

그런데 친일문제를 내재적으로 파악하려는 이 책의 기조에 비추어볼 때 좀 어긋지는 것이 김철의 「몰락하는 신생: ‘만주’의 꿈과 「농군」의 오독」(『재인식』 1)이다. 그는 이 글에서 이태준의 「농군」(1939)이 “ ‘만주경영’이라는 제국주의의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편승한, 다시 말해 당대의 ‘국책(國策)’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소설”(481면)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그의 정치한 고증을 통해 이 단편의 한계가 더욱 분명히 부각된 점은 평가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이처럼 폄하하는 것에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민족과 제국은 서로 그렇게 길항하면서 협조하는 관계”(『재인식』 2, 626면)라고 좌담에서 그가 지적했듯, 이 단편이야말로 ‘만주붐’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편승하면서 안으로 식민지 민중의 간난을 발신하는 중층서사의 곤경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 친일문학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누구보다 주창하는 그가 왜 유독 이 단편에 대해서는 이처럼 단호할까?

이 편저는 1권에 주로 식민지시대를 다룬 논문들을 4부로 나누어 싣고, 2권에는 해방 직후와 50년대를 분석한 글들을 4부로 편제하였다. 그리고 2권 끝에 편자 4인의 좌담 「해방전후사의 새로운 지평」을 두어 대미를 장식한다. 이 좌담이 명백히 보여주듯이, 『재인식』의 편자들은 요컨대, 개혁정권들의 연속 속에서 훼손된 한국근현대사의 ‘적통’즉 식민지시대와 이승만시대와 박정희시대의 일관성을 총체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민족해방운동과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분단극복의 통일운동을 축으로 삼는 진보파의 사관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반격이다. 그런데 진보세력이 이 반동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먼저 확인하고 싶다. 생활세계의 급진적 변화에 대한 예민한 관찰을 바탕으로 사관과 이념을 재조정하는 중대한 작업에 나태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도처에서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났건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다. 위기의 봉인이 『재인식』의 등장으로 따졌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재인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를 냉철히 점검하고 『인식』에서 폐기할 것은 무엇인지를 엄정히 분간하면서 진보세력의 자기갱신을 진검하게 실험할 때다. 이 위기국면이 분단체제의 와해와 조응하고 있다는 인식 위에 지루한 성공으로 가는 길의 단초를 정성스레 마련하는 간곡한 마음으로 진보세력 안팎의 생산적 토론을 조직하고 성찰적 대안을 합의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우리들의 시대에 창조적으로 응답하는 길이라는 점을 다시금 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