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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재닛 아부-루고드 『유럽 패권 이전』, 까치 2006
유럽 패권 이전 세계체제는 존재했는가
남종국 南宗局
동국대 사학과 교수 namjk0513@hanmail.net
재닛 아부-루고드(JanetL. Abu-Lughod)의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 1250—1350, 박흥식·이은정 옮김)는 유럽이 16세기 이후 세계사의 흐름에서 패권을 장악하게 된 역사적 기원을 밝히려 한다. 아부-루고드는 16세기 이후 유럽의 패권 장악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설명한 기존의 이론들, 특히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론을 일부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하고자 한다. 월러스틴은 16세기 이전에는 세계체제라 불릴 만한 전지구적인 교역패턴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월러스틴을 포함한 다수의 유럽 학자들은 주로 유럽이 세계사에서 패권을 장악하게 되는 16세기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아부-루고드는 16세기 이후 서양의 융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패권을 잡기 이전의 시기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며, 바로 이것이 이 책의 과제라고 역설한다.(24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바로 13세기 세계체제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13세기경에 이미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아메리카대륙 제외)을 포괄하는 매우 발전된 세계체제가 형성되었으며, 그 체제가 16세기 근대 세계체제의 토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1250~1350년 사이 북서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존재하던 다양한 경제적 중심지들을 포괄하는 상업적 네트워크, 즉 “13세기 세계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통합한 몽골제국이 13세기 세계체제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몽골제국이 제공하는 육상교통로를 통해 유럽이 중국과 최초로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13세기 세계체제는 정치·문화적으로 상이한 북서유럽, 중동, 중국이라는 3개의 핵심지역을 상호 연결시킨 8개의 하위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핵심지역마다 중심지가 한두 개 있긴 했지만 하나의 하위체제가 나머지 하위체제 전부를 아우르는 패권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13세기 세계체제는 14세기 중엽에 와해되는데, 특히 몽골이 구축한 제국의 분열 및 쇠퇴와 전지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 흑사병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저자는 13세기 세계체제가 붕괴한 이후 150년간의 역사발전이 16세기 이후 유럽이 융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그 전제조건은 16세기 서양이 융성하기 전에 동양이 먼저 쇠퇴했다는 것이다. 흑사병은 당시까지만 해도 가장 선진지역이었던 중국의 경제적 활력을 약화시켰고, 몽골제국을 무너뜨린 명(明)은 경제적 붕괴로 15세기 중엽 인도양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중국이 세계체제로부터 분리되고 그에 따라 인도양에서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결국 유럽이 이 지역으로 진출해 주도권을 쉽게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유럽 패권 이전』은 1500년을 세계사의 전환점으로 가정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음으로써 세계사 서술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나아가 기존의 담론들이 지닌 서구중심적인 역사인식을 수정했다. 서구중심적인 해석에 따르자면 유럽이 근대세계 형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양문명에 내재한 특별한 능력의 결과이다. 아부-루고드는 서구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들을 강조하며 “서양의 융성”을 다루는 서양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하면서(36면) “16세기에 ‘서양은 승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오로지 서양의 제도들과 문화만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385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중요한 학문적 기여가 있긴 하지만 13세기 세계체제론이 충분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가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유럽 순회로의 경우 저자가 선택한 제노바와 베네찌아—샹빠뉴 정기시(定期市)—플랑드르의 상공업 도시라는 앙쌍블은 13세기 세계체제의 전성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이 샹빠뉴 정기시를 중심으로 하는 씨스템은 대서양으로 가는 직항로가 개설되는 13세기말 이후 쇠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방으로 가는 세 갈래 길—흑해에서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북동노선,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를 통과하는 중앙의 신드바드의 길, 이집트와 홍해를 통과하는 남방노선—에 대한 설명 또한 일부 수정되어야 한다. 저자는 몽골제국의 성립으로 중앙노선이 쇠퇴하고 북동노선이 성장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1291년 십자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아크레가 몰락하면서 중앙노선이 일시적으로 쇠퇴했으나 이후 키프로스 왕국과 소아르메니아 왕국을 매개로 한 밀무역을 통해 서방 기독교 상인들이 시리아나 팔레스타인과 무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3세기 몽골족에 의한 제국의 통합으로 형성된 세계체제가 14세기 중엽 몽골제국의 와해와 동시에 해체된다는 저자의 핵심주장 또한 완벽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선 몽골제국의 와해가 기존의 국제교역 네트워크에 큰 충격을 가하긴 했지만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동방과의 교역은 구조조정된 교역로와 교역세력들에 의해 계속되었고, 흑사병의 충격이 완화된 이후에는 그 규모 또한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흑사병의 영향과 그 회복에 관해서도 저자는 공정하지 못한 듯하다.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서양에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어떻게 서양이 더 빨리 흑사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아부-루고드의 13세기 세계체제론은 사회과학의 거대담론이 범하기 쉬운 생략과 과장이라는 오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유럽 패권 이전』은 이렇게 세부적인 부분에서의 비판보다는 전체적으로 칭찬을 더 많이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미국 사회학협회는 『유럽 패권 이전』의 연구범위가 월러스틴과 브로델(F.Braudel)의 그것에 필적할 정도로 폭넓다고 평했다. 이 책은 국내에 이미 번역 소개된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맥닐(W. McNeill)의 『전염병의 세계사』처럼 세계사를 통합적·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조망하고 있다. 13세기 세계체제론이 단순히 피상적인 거대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닌 까닭은 저자가 1250년에서 1350년 사이 북서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상업적 네트워크를 설명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조사(2천개 이상의 도서카드 작성)를 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이,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기와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국내학계에 큰 붐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를 수정 보완하는 아부-루고드의 『유럽 패권 이전』이 다시 한번 16세기 서양의 융성이라는 세계사의 큰 주제에 관한 진지한 관심과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