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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범신 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소설 『풀잎처럼 눕다』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소설집 『흰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있음. wacho@thrunet.com

 

 

 

아버지 골룸

 

 

1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이제 아버지는 다섯 걸음 정도밖에 걷지 못했다. 지난달만 해도 열 걸음 이상 걸었는데 불과 한달 만에 기력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물 좀 갖다주렴.” 침대 머리맡의 작은 물병을 들었다 놓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숨을 헐떡이는데다가 잔뜩 갈라진 쉰 소리였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조차 아버지의 목구멍에선 쌔액쌔액 하는 기분 나쁜 바람소리 같은 게 났다. 어떤 날은 아버지의 목피리가 불어대는 쉰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깰 때도 있었다.

나는 말없이 물병을 받아들었다.

아버지의 침대에서 안방 문까지만 해도 내 걸음으로 무려 열여섯 걸음이나 되니 밤새 목이 말랐어도 아버지로선 어쩔 방도가 없었을 터였다. 거실은 안방보다 세배쯤 넓었다. 나는 씨근벌떡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에 놓인 생수통의 물을 물병에 받았다. “생수통을 아예 아버지 머리맡으로 옮겨와야겠어요.” 내 목소리가 아버지의 그것과 달리 너무 쾌청해서일까, 아버지가 갑자기 비대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에 옮겨놓으면 내가 없을 때나 잠잘 때에도 아버지가 얼마든 물을 마실 수 있잖아요.” “너 혼자 힘으론 안될 게다.” “키는 다른 애들보담 작지만요, 나도 중학생이라구요, 아버지. 푸셥을 서른번이나 해요.” “손자귀아저씨가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아저씨한테 옮겨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점심때나 온댔어요. 지금 일하는 데 들어갈 보랑 도리로 쓸 목재를 골라야 된다나봐요.” 손자귀아저씨는 아버지가 큰 집을 지을 때 여러 해 데리고 다녔던 자귀목수였다. 손으로 나무를 깎을 때 쓰는 연장을 자귀나 손자귀라고 하는데, 먹줄 그은 대로 정확히 나무를 깎으려면 자귀목수의 일솜씨가 깔끔하고 매워야 한다고 애당초 누누이 설명해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요즘이야 새끼목수들이 너나없이 자귀질을 하지만 큰 대궐집이나 대웅전 같은 걸 지을 땐 늘 자귀목수를 따로 두었다고 했다. 손자귀아저씨는 자귀목수 출신이라서 지금도 어쩌다 우리 집에 들를 때 늘 자귀를 들고 왔다. “네가 아직껏 보를 기억하고 있구나. 도리까지.” 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나를 환히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표정이었다. “중도리 처마도리도 다 알아요. 손자귀아저씨가 도목수가 됐다면, 나도 뭐 새끼목수, 아니 지차목수 일쯤은 거뜬히 할 수 있다구요.” “사개맞춤이 무슨 말인지 알겠냐.” “재목에다가 촉과 구멍을 내는 걸 바, 바심이라고 하고요.” 얼핏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만 딴청을 부렸는데, “암, 그렇지.” 아버지는 내가 딴청 부리는 걸 짐짓 모르는 체, 여전히 환한 표정으로 덧붙여 말했다. “바심을 잘해서 못 하나 쓰지 않고 기둥, 도리, 보를 찰떡궁합으로 짜맞추는 일이 사개맞춤이다. 우리네 집들이야 뼈대 맞추는 것부터 다 그렇게 지었거든. 서양집하곤 방식과 재료가 다 딴판이지. 못 박아 짓는 집은 오래 못 간다. 사개맞춤만 잘 해놓으면 나머지 일이야 뭐 공것 같지.” 아버지가 실눈을 뜨고, 그렇지만 여전히 수만 갈래 잔주름을 합족한 얼굴 가득 피워올리면서 멀고 먼 데를 보았다. 먹줄통과 그무개와 수평대와 정과 끌과 손톱과 대패가 든 바랑 하나 달랑 메고 세상 끝까지 떠돌았던 지난날들을 추억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먼저 웃통을 벗어부쳤다.

생수대 위에서 물이 반쯤 남은 생수통을 바닥으로 내려놓는데 이미 땀이 나기 시작했다. 생수통의 무게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워낙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어깨는 날로 벌어지고 팔뚝의 이두박근도 쑥쑥 솟아나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키는 영 자라지 않아 중학교 들어와서 받은 출석번호가 일번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손자귀아저씨 오면 옮겨달라고 하라니까 그러는구나.” 열린 문 사이로 여전히 헐떡이는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렸다. “문제없다니까요. 아버지 화장실도 침대 옆으로 옮겼는걸요.” 나는 하하 하고 웃었으나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아버지의 침대 밑에 요강으로 쓸 백자항아리를 가져다놓아준 걸 두고 하는 농담이니 미상불 아버지는 민망한가보았다. 처음엔 소변용으로 쓰다가 지금은 아예 대변용으로까지 쓰고 있으니까 아버지로선 유쾌하게 내 농담을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었다. 나는 창고방에 처박아둔 군용담요를 가지고 나와 이번엔 생수대를 이리 불끈 저리 불끈 담요 위로 올려놓았다. 온몸으로 땀이 비오듯 했다. 벌써 거의 한달째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참이었다. “우리 아들, 청년장사가 다 됐구나. 대들보도 들어올리겠다.” 내가 담요에 태워 생수대를 끌고 오는 걸 보면서 아버지가 역시 합족, 볼우물을 만들고 웃었다. 몸은 날이 갈수록 풍선처럼 부풀어올라서 이제 퀸싸이즈의 침대를 거의 꽉 채울 정도인데 얼굴은 그와 달리 하루가 다르게 근육질이 빠지고 주름살이 늘어나는 게 아버지의 병증이었다. 웃을 때의 아버지는 주름살이 하도 많아 족히 아흔살은 되어 보였다. 어찌 주름살뿐이겠는가. 눈매는 벼이삭이 익어 구부러지는 속도로 내려앉고 주름살은 물살이 번지는 것보다 더 빨리 번졌으며 잇몸이 내려앉고 마침내 이가 힘없이 빠져나오기도 했다. 지난달엔 불과 열흘 사이로 삭은 이가 두개나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 이제 아버지에겐 어금니가 한개뿐이었다. “글쎄요. 병이라고 해야 할지…… 이런 증상은 학계에 보고된 바가 전혀 없어서……” 의사가 아버지의 병증을 두고 한 말이 이러했다. 간단히 말해, 아버지는 급속도로 늙어가는 병을 앓고 있었다. 노쇠과정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쫓아갔을 때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전된 후였다. 그 무렵의 아버지는 한달을 일년처럼 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게, 내 몸으로 느껴진다.” 아버지는 그때에도 지금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몸이 부풀어오르는 것과 반대로 주름살이 빠른 속도로 느는데도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태평스런 얼굴을 했다. 아버지의 몸을 통해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졌다. 작년만 해도 한달이 일년처럼 지나간다고 아버지는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 요즘은 열흘이 일년처럼 지나갔다. 아버지의 몸은 지금 한달마다 삼년의 시간을 통과시키는 셈이었고, 머지않아 하루가 일년의 시간을 통과시키게 될 것이었다. “어떤 땐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급행열차가 막 내 몸속에서 지나가는 것 같은…… 그거, 시간을 느낀다. 조금 있으면 케이티엑스기차가 될 게야. 이쪽 갈빗대를 뚫고 들어온 기차가 기적도 없이 쏵쏵 하고 이쪽 갈빗대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느낌이랄까. 흐흐. 에버랜드 놀이기차 탄 것처럼, 어떤 땐 고소하고 어떤 땐 어지러워.”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며 웃을 때, 합족한 볼에 수많은 주름살이 물결치는 걸 보면, 슬픈 느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 얼굴의 주름살들이 너무도 환해서 내 마음까지 덩달아 환해지곤 했다. “머지않아, 비행기가 지나는 것처럼 될 거다, 아마.” 아버지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별똥별은 어때요, 아버지.” 물새떼 솟아오르는 것같이 내 또랑한 목소리가 솟아나자 아버지의 처진 눈매에 단번에 흰빛이 떠올랐다. “옳거니.” 아버지는 딱 하고 손가락 부러뜨리는 소리를 내고 나서, “별똥별, 그거 좋구나. 암, 별똥별이 지는 거지. 이쪽 갈빗대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내 몸 안을 환히 밝히며 이쪽 갈빗대로 빠져 달아난다, 별똥별이. 정말 멋지구나 멋져.” 아버지는 별똥별이라는 말을 새각시처럼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나이는 쉰네살이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여전히 구릿빛 피부와 떡 벌어진 어깨와 옹이가 박힌 듯한 팔뚝 근육들, 그리고 오로지 집을 지어올리려고 세상 끝까지 안 가본 데 없는 남자가 지녔음직한 형형한 눈빛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호탕한 장부 같았을 터였다. 나와 달리 눈 코 입이 모두 또렷한 명암을 거느렸고 키 또한 훤칠하게 컸으므로,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아버지가 대들보를 타고 앉아 끌질하고 있는 걸 올려다보면, 뭐랄까, 몸의 깊은 심지로부터 불항아리 열꽃들이 사방으로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참, 많이…… 흘러다녔구나.” 아버지가 이윽고 가래 끓는 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별똥별이란 말로부터 비롯된 흰빛은 더이상 아버지의 눈에 남아 있지 않았다. 창 너머 드넓은 뜰엔 정오를 향해 타오르는 햇빛이 막힘없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혼잣말에 대꾸하지 않았으므로 마치 아버지와 나 사이로 별똥별이 지는 것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아버지도 먼 데를 보고 나도 먼 데를 보았다.

배낭을 머리꼭대기까지 오지게 지고서 산맥의 가파른 한 허리를 올라가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이사이 떠올랐다. 아니 산맥의 한 허리인가 했더니 어느새 외진 바닷가 개펄이 되었고, 바닷가인가 했더니 또 어느새 지평선이 보이는 들이 되었다. 아버지는 한결같은 걸음새로 걷고 있는데 밑그림은 빠르게 바뀌면서 흘러갔다. 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비바람 몰아치기도 하고 눈이 날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지금 보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럴 터였다. 땅끝에서 땅끝까지, 도시에서 도시까지 아버지가 흘러가보지 않은 곳은 세상천지 아무 데도 없었다. 막일꾼으로 시작해 새끼목수 지차목수를 거쳐 마침내 먹줄을 튕기는 도목수가 된 것은 아버지 나이 마흔살 때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목재가 들어가는 것으로는 모든 집을 다 지어올릴 줄 알았다. 귀폿집 다폿집은 물론이고 천장이 까마득히 높은 대웅전 같은 것도 아버지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어느 도시에서 한번은 일곱채의 기와집을 도맡아 지은 적도 있었고, 길도 제대로 뚫리지 않은 차령산맥 너머 어느 궁벽진 산중 절을 지을 땐 삼년이나 걸린 적도 있었다. 집을 지으라면 어디든 달려갔으며, 집을 다 짓고 나면 하루도 더 머물지 않고 배낭을 메고 일어서는 게 아버지의 성미였다. 드높은 배낭에 파묻혀 성큼성큼 걷는 아버지의 뒤를 쫓아 어린 나는 매양 다리가 찢어져라 종종걸음을 쳐야만 했다. 집 짓는 공사판이 언제나 내 놀이터였고 흐르는 길이 내 요람이었다. 도목수가 되고도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보나 도리로 쓸 거대한 통나무에 앉아 젊은 새끼목수들로부터 나는 한글쓰기를 처음 익혔고, 절집 보살들이 두루 내 어머니가 되어주었다. 어쩌다 어머니에 대해 물으면 앞서 걷는 아버지의 발걸음이 따라갈 수 없게 빨라졌으므로 나중엔 아예 어머니란 말을 입에 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때맞추어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길이 키웠다, 길이 키웠어.” 잠시 물 밑으로 가라앉았던 주름살이 아버지의 얼굴 전체로 다시 환히 번졌다. 뜻밖에도 아버지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럼요. 길이 아버지였어요.” 나도 아버지 환한 표정을 좇아 노래하는 것처럼 내질렀다. “멋지다. 너는 정말로 시인이 되겠다, 내가 길이라니.” 감흥이 고조되는지 아버지의 목구멍에서 풀무질하는 소리가 났다. 쉰살이 가까워졌을 때 아버지에겐 사실 일감이 별로 없었다. 여염집은 물론이고 절간조차 시멘트콘크리트 위에 더깨로 단청을 들이고 겨우 기와나 올리는 세상이니 먹줄통 수평자 손대패를 울러메고 다니는 아버지를 굳이 찾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 없는 아버지가 불행해 보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일이 없을 땐 자신이 소싯적에 지은 집을 둘러보러 다니는 게 아버지의 일이었다. “이 요사채는 내가 서른세살 때 지었지. 자귀목수였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자귀질이 그리도 재미나더라.” 아버지는 말하곤 했다. 아버지가 지은 집들을 다 둘러보려면 아버지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집을 안 지었으면, 만약 목수가 안됐으면 아버지, 뭘 했을 것 같아요?” 내가 물은 일이 있었다. “많이 배웠으면.” 아버지가 한참동안 뜸을 들이고 나서 부끄러워 얼굴까지 붉히면서 한 대답이 그것이었다. “아마…… 시인이 되고 싶었을 거다.” “시 쓰는, 시인 말인가요?” “그래. 시 짓는 시인……” 그 무렵의 아버지와 나는 이미 이 집터에 들여놓은 컨테이너박스에서 살고 있었다. 전라도 어디 사는 사람이 오래전 멋진 폿집 한 채를 지었는데, 집을 짓고 나서 삽시간에 망하는 바람에 밀린 품삯으로 받은 땅이라고 했다. 받을 때야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버려진 비탈밭이었으나 도시가 외곽으로 늘어나면서 턱밑까지 아파트가 밀고 들어와 있는 땅이었다. 지금 뜰의 동남간에 있는, 늙은 매실나무 밑에 그 컨테이너박스가 있었다. 일 없는 아버지가 일 많았던 당신이 젊은 날 지은 집들을 찾아보느라 그곳에 나를 혼자 처박아두고 한두달씩 먼 길을 다녀오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초인종 소리가 딩동딩동 하고 울렸다.

손자귀아저씨였다. 주문에 따라 드물게 도리집을 짓는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 벽돌집이나 콘크리트 집들을 짓고 다니는 손자귀아저씨는 예전 버릇이 남아 자귀 하나를 빙빙 돌리며 들어서더니 아버지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구 형님!” 손자귀아저씨가 거의 비명을 내질렀다. 못 보던 몇달 사이 십년도 더 지난 것처럼 늙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었다. “아따, 이 사람이 놀라기는.”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아버지의 주름살들은 평소보다 더 빠른 세포분열로 새끼를 쳐서 한순간 길을 내고 천지사방 퍼졌다. 웃음이 골골마다 얼마나 깊은지 아버지의 얼굴은 환하다 못해 판타지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이상한 가면을 쓴 것 같았다. 손자귀아저씨는 아버지보다 열두살이나 적었으나 아버지가 병에 붙잡혀 일을 완전히 그만둔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형님이라고 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이제 몸은 붓고 다리는 힘 없어 딱 다섯 걸음밖에 못 걷네.” 손자귀아저씨를 부른 이유에 대해 설명할 차례였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힘들게 설명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내가 또랑하게 설명할 수도 있었으나 두 사람이 너무 다정히 붙어 앉았으므로 나는 짐짓 물러나 내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았다. 매실나무 그늘 속에서 매미가 몇몇 그악스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자네가 알다시피 이 집이 좀 큰가. 거실만 해도 서른평이 넘네. 주방이나 화장실은 물론이고 안방 문지방도 못 넘으니 저 녀석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냐.” “그러게 집 지을 때 내가 뭐랬습니까. 한풀이도 아니고.” “나, 한 없네. 풀고 말고, 그런 거 없다구.” 아버지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도대체 형님, 두 사람 사는 집이, 이게, 말이 됩니까.” “가끔 사람이 거 왜, 돌 때도 있거든. 그땐 내가 돌았던 거지. 자네 말이 귀에 안 들어올밖에.” 아버지는 버릇대로 흐흐흐흐 하고 웃었다. 집을 지을 때 손자귀아저씨가 한사코 집을 크게 짓지 말라고 말린 건 사실이었다. 터가 워낙 넓어서 아파트 업자들이 사흘들이로 땅을 팔라 성화를 부릴 때였다. 아버지는 딱 쉰살이 되던 날 아침, 컨테이너박스 한켠에서 찬물샤워를 하고 나더니 웃통을 벗어부친 채 뜰로 걸어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내 집을 짓는다!” 어디를 보는지 모호한 눈빛이어서 혼잣말인지 내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불과 4년여 전이지만 지금과 달리 그때의 아버지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아주 크고 튼튼하게 짓는다. 이 도시에서 제일 크게 짓는다. 거실만 해도 농구코트를 그려도 될 만하게 짓는다!” 나는 처음에 아버지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정말로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한사코 말리는데도 여덟달에 걸쳐 근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집을 지었다. 평생 남의 집만 짓고 살았으니 한번쯤 떵떵거릴 만한 큰 집을 내 집으로 짓고 싶었던 것인지는 혹시 모를 일이나, 더욱더 이상한 것은 아버지가 지은 집이 시멘트콘크리트 구조라는 사실이었다. 한번도 아버지가 지어본 적도 없고, 지어보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는 집이 시멘트콘크리트 구조의 서양식 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평생 처음 짓는 당신의 집을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로 선택한 것이었다. 집이 완성됐을 때, 사람들은 거대한 우리 집을 가리켜 격납고라고 불렀다.

집은 정말 단단하고 힘차고 그들먹했다.

아버지의 병증을 아버지와 내가 구체적으로 알아차린 것은 집이 완성되고 난 다음이었다. 집을 짓는 동안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십년 이상 늙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말대로라면 그때부터 아버지의 육체 속으로 ‘급행열차’가 지나가기 시작했나보았다. “이미 지난 일,” 아버지가 웃다 말고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 자네를 부른 것은, 이 방에 주방과 화장실 목욕탕을 옮겨 지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야.” “아이구. 아이구 형님!” 손자귀아저씨가 기가 막힌지 자귀로 제 손바닥을 탁 쳤다. “모두 다섯 걸음이면 갈 수 있게 해주셔야 돼요, 아저씨.” 참다 말고 내가 끼어들었다. “방이 넓으니 뭐 충분해요. 씽크대 화장실 샤워방이 모두 아버지 침대에서 다섯 걸음이면 닿도록 안방 안에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여름방학이 끝나면 내가 아버지를 돌보지 못해요. 다섯 걸음 안에 모두 있다면 아버지 혼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나는 공연히 신명이 났다. 화장실과 목욕탕과 주방과 옷방과 다용도실이 줄지어 너른 거실을 지나와 안방으로 모여드는 것 같은 즐거운 환상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화장실 목욕탕 주방을요, 헤쳐 모엿! 그렇게 하자는 거예요.” 내가 웃고 아버지가 따라 웃었다. 아버지와 내가 웃을수록 손자귀아저씨는 더 울상을 했다. “뭐 장난하자는 겁니까.” 손자귀아저씨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사람, 손자귀!” 아버지가 황급히 손자귀아저씨의 소맷부리를 잡았다. “내 말 마저 들어봐.” 맞은편 창턱에서 튕겨져나온 햇빛 한자락이 깊이 내려앉은 아버지의 눈가에 닿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름진 골골마다 괴기 시작한 땀을 갈퀴 같은 손으로 쓰윽 훔쳐내고 덧붙여 말했다. “쟤하곤 그리 상의를 해두었는데 말야, 자네를 기다리다가 생각이 그만 바뀌었네. 화장실 목욕탕 주방을 이 방으로 떠메고 들어오는 거, 미친 짓이지. 그럼. 자다가도 웃을 일이야. 잠시 미쳤었지만, 이제 마지막 얼마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네. 그 계획은 치우고, 그 대신 이 사람, 자귀동생!” 아버지가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손자귀아저씨와 시선을 맞추려고 애썼다. 계획이 바뀌었다니. 내 귀가 쫑긋하고 긴장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뭡니까, 형님.” 손자귀아저씨가 반문했다. “자네 예전 솜씨 발휘해서 새집을 지어주게.” “집을 새로 지어요?” “그렇다니까. 벽돌집 콘크리트집 다 치우고, 한칸짜리 도리집을 지어주게나. 못 한개 쓰지 말고 짓게. 화장실 목욕탕 씽크대가 나 누울 곳에서 다섯 걸음 안쪽에 놓이도록 지으면 돼. 그게 낫지. 암, 새로, 아주 작은, 숨쉬는 집 짓는 거라구.” “어디에 짓는단 말입니까.” “저기.”아버지가 똑바로 창 너머, 여름햇빛이 고요히 쏟아지는 뜰 한켠을 가리켰다. “매실나무 밑에 지어줘. 그쪽으로 이사를 가야겠어.” 아버지는 말을 마치자 기운이 다 빠진 듯 가만히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기운은 빠졌지만 새집으로 이사 들어갈 상상을 하는지 합족한 얼굴을 촘촘히 엮고 있는 아버지의 주름살 골골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고요하고 환했다. 유리창의 반사광이 땀투성이 골마다 아주 작고 귀여운 무지개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2

 

그날 밤 이상한 소리 때문에 나는 잠을 깼다. 달빛이 창을 통해 막힘없이 흘러들고 있었다. 오줌을 눈 것일까. 누가, 아버지의 요강인 백자항아리를 끌어안고 아버지의 침대 밑에서 소리죽여 울고 있는 게 보였다. 몸은 살이 너무 많아서 살들이 시시각각 방바닥으로 주저앉아 고이고 쌓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은 하마인가 했지만 분명 하마는 아니었다. 비대한 살덩어리 위에 붙어 있는 얼굴은 육질이 쏙 빠져 주먹만한데다가 모눈종이를 덮어쓴 것처럼 주름이 많았다. 달빛이 수많은 눈금들을 핥고 내려와 출렁출렁 살덩어리 언덕을 넘어 지상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하아, 골룸이네. 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어느 순간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생긴 것만으로 보면 그는 영락없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보았던 ‘골룸’이었다. (아버지가 내 말을 들었으면 ‘골룸이 아니라 고름이겠지’하고 어깃장을 놨을 것이다.) 살이 찐 골룸은 몸과 얼굴의 균형이 도무지 맞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나는 가만히 돌아누우면서 아무도 몰래 자꾸 웃었다. 사기항아리는 코코넛 열매 같기도 했다. 비대할대로 비대해진, 수백년을 혼자 살아온 골룸이 도시의 사막에서 코코넛 열매 하나를 끌어안고 주저앉아 우는 모습이 잠의 깊은 우물 속까지 따라들어왔다.

 

 

3

 

집을 짓는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고 나자 주문한 목재들이 들어왔다. 기둥과 보와 도리로 쓸 목재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뜰에 그득 쌓이자 내 마음은 한없이 부풀어올랐다.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아버지도 연방 흐흐흐 웃으면서 말했다. “좋으냐.” “좋아요, 아버지. 손자귀아저씨는 도목수고 나는 새끼목수예요.” “내가 손을 놓으니 다들 한 계급씩 올라서는구나.” 손자귀아저씨는 아버지가 쓰던 먹줄통 대신 싸인펜으로 먹을 그었다. 재목의 마름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치수를 정확히 재는 것과 촉이나 구멍을 정확히 파내는 일이었다. “치수를 재는 것은,” 창에 기대앉아 아버지가 또 말했다. “목재의 중심선에서 중심선까지를 재야 한다. 한치만 어긋나도 상량할 때 문제가 생기거든.” 손자귀아저씨는 아버지가 일일이 설명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형님은 지독했어요. 삼년이 지나도 먹줄통 한번 못 만지게 했지요.” “먹줄통 놔버리면 도목수로선 죽은 목숨이니까 그럴밖에.” 기세가 오르자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더 성긴 바람소리가 났다. 공사판에서 먹줄통을 만지고도 혼나지 않는 사람은 어린 나뿐이었다. 강원도 어디에선가 절집을 지을 땐 내가 먹줄통을 갖고 놀다 물에 빠뜨린 일까지 있었다. 다른 새끼목수였다면 당장 산을 내려가게 했을 터인데, 아버지는 말없이 쩝, 입맛 한번 다시고 나서 먹줄통만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것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진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막일꾼들은 물론이고 새끼목수 자귀목수가 모두 내 덕분에 하루를 쉰 셈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먹줄을 튕길 때는 아무도 말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말소리를 내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라, 먹줄을 튕기는 아버지 표정이 워낙 진지하고 정갈해 저절로 일판 분위기가 그리 잡혔다. 심심한 내가 목재들을 타고 앉아 공깃돌이라도 굴릴 때, 망치소리 끌질소리 자귀소리 대패소리가 갑자기 멈추고 솔바람소리만 아스라이 들려 고개 휙 돌려보면, 허드렛일꾼부터 새끼목수 지차목수까지, 아버지가 먹줄통을 잡고 있는데도 푼수없이 공깃돌이나 굴리는 내게 질책의 눈길을 쏘아보내고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여러번이었다. 아버지가 대웅전 보나 화려한 폿집 기둥에 먹줄을 튕길 때는 더욱 그랬다. 팽팽히 당겨진 먹줄을, 아버지는 두 손 합장한 스님 같은 표정이 되어, 가만히, 그렇지만 힘있게 당겼다가 놓는 것인데, 먹줄이 마름질 잘된 아름드리 기둥 속살을 찰싹 하고 때릴 때, 나는 번번이 온몸을 한차례 푸르게 떨곤 했다. 먹줄이 내 몸을 때리고, 찰싹 하는 소리는 물 넘고 산 넘어 우주 밖으로까지 쏘아져 날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집은 삼량집으로 짓는다고 했다.

“삼량집이 뭔데요, 아버지?” 내가 묻고 “도리가 세 줄이다, 삼량집은. 도리가 다섯 줄이면 오량집이 되고 일곱 줄이면 칠량집이 되지.” 아버지는 대답했다. 평수가 작으니까 삼량집이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큰 집 큰 집 하시던 양반이 이제 작은 집 작은 집 하시네요.” 손자귀아저씨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다. 손자귀아저씨는 기둥으로 쓸 목재에 걸터앉아 새참으로 빵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작은 평수의 집 기둥으론 한눈에 보아도 너무 우람한 기둥들이었다. 우유갑을 거꾸로 들어올려 마시다 말고 손자귀아저씨가 기어코 덧붙였다. “삼량집에 다섯치 기둥이라니, 돼지우리에 주석자물쇠 물리기지, 이게 어디 어울립니까.” “다섯치 기둥도 내 마음에 차지 않네.” 아버지가 창틀을 톡톡톡 두들기며 설명했다. 나는 자귀를 들었다놨다 하면서 손자귀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대들보나 도리까진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서까래 하나는 내 손으로 직접 마름질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그랬듯 손자귀아저씨 역시 내가 자귀만 들고 나서면 냉큼 호랑이눈을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차목수나 자귀목수까진 아니라고 해도 할 말 없으나, 도대체 목재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투의 대접은 정말 억울했다. 핏덩어리 때부터 대들보를 타고 놀고 기둥에 올랐던 내가 아닌가. “그나마 다섯치 기둥으로 정한 건 흙벽돌을 겹으로 쌓아 안쪽에 안 뵈도록 들이기 위해서야.” 아버지가 설명했고, 손자귀아저씨가 다 마신 우유갑을 내 쪽으로 심술 사납게 던지면서 대꾸했다. “겹으로 쌓는단 말인가요, 이 한칸통 집을?” “작은 집이니 더욱 그래야지. 우리네 보통사람들 살던 옛집은 외풍이 문제였어. 얇은 벽두께 때문이지. 도리집으로 하더라도 안벽 바깥벽을 쌓아 지으면 벽두께가 한자를 훨씬 넘으니까 외풍이 없을 게야. 집 자체는 안팎으로 숨을 쉬면서도,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겠지.” “지붕은 뭘로 잡을까요?” “물매 깊이 잡아 더그매를 넓게 하고 반자 위엔 연탄재 알매흙을 깔면 돼. 지붕마감은 그냥 기와로 하세. 예전에 우리, 경주 어딘가에서 그리 지었잖나. 효율이 높은 방식이었네. 자네도 좋다고 했었는걸. 연탄재는 불에 탔으니까 소독도 잘된 셈이고, 석회를 좀 섞으면 뭐 벌레 생길 염려도 없구.” “참, 형님도. 요즘 세상에 연탄재를 어디서 구합니까.” “이 사람, 다섯 걸음밖에 못 걷는 나보다 세상물정을 더 모르네그려. 저기, 저쪽 산동네 좀 봐. 저 동네 사람들 다 연탄 때고 살아. 비오는 날이면 연탄가스 냄새가 예까지 흘러올 때도 있는데, 고소해. 회충이 막 뱃속에서 좋아라 날뛰는, 그런 냄새야.” 아버지는 자신의 비유에 만족한 듯이 흐흐 웃었으나 손자귀아저씨는 볼이 부어올랐다. 대충 지을 줄 알았는데 재게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아버지 입에서 날로 주문이 늘어나니까 심술보에 슬쩍 바람이 드는 눈치였다.

매일 날씨가 좋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바심이 끝난 도리와 보와 기둥 들을 못 하나 박지 않고 사개맞춤으로 짜맞추어 상량을 하는 날은 정말이지 불볕더위였다. 손자귀아저씨 혼잣일로는 도저히 안되니까 몇몇 인부가 손자귀아저씨 뒤를 따라왔다. 상량을 끝내고 난 다음엔 그래서 자연 소주잔이 돌아갔다. 인중에 팥알만한 점이 박힌 점박이는 ‘쓰미’(벽돌쌓기)출신이라 했고, 앞니 하나를 금으로 해박은 금니박이는 부동산업자라 했고, 터를 닦을 때 이미 본 적이 있는 ‘백바지’는 터닦이출신이라고 했다. 연립주택 지으러 돌아다니다가 친구가 되어 패거리를 이루었다고 손자귀아저씨는 묻지도 않은 말을 보태주었다. 터닦이가 하얀 바지를 차려입은 것이 너무 웃기는지 아버지는 ‘백바지’만 보면 흐흐흐 하고 버릇처럼 웃었다. “야, 너 나가서 담배 좀 몇갑 사와라.” 백바지가 말했고 손자귀아저씨가 돈을 주었다. 고추장을 가져오라 물을 가져오라 커피를 타오라, 낮부터 삼가는 빛 하나 없이 잔심부름을 시켜오는 그 패거리 때문에 속이 벌써 여러번 뒤집혔지만, 일꾼으로 계속 부려먹을 참이라서 나는 암말 없이 담배를 사다주었다. 소주잔이 한 순배 돌아가고 나자 패거리들의 목청이 점점 고조되었고, 나중엔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드넓은 거실은 엉망진창이었다. 시켜다 먹은 중국음식 그릇이 이곳저곳 널려 있는데다가 양말은 물론 바지까지 벗어 팽개쳐두었으니 안방에서 나와 화장실이나 주방으로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발을 디뎌야 할 참이었다. “살다살다 이렇게 멍청하게 큰 집 첨 봤네.” 술에 취하니까 스스럼없이 그런 말도 나왔다. “식구도 둘인데, 저 양반 온전한 대갈빡인가?” 금니박이가 자기 딴에 목소리를 낮춰서 한답시고 우렁우렁 아버지를 비난하며 말했고 “냅다 밀어내고 앞뒤로 빌라를 두동만 지어 분양하면 노가 날 자리야. 단번에 열배 스무배 뻥튀기할 수 있는데, 눈뜬 봉사도 아니고, 마당귀에 안채 변소깐만한 흙벽돌집을 짓다니, 거참, 알다가 모를 게 사람이라.” 백바지가 대거리를 놓았다. 밤이 꽤 이슥해졌는데도 돌아갈 눈치가 없으니 그 또한 뻔뻔했다. “괜찮다, 얘야.” 참다못한 내가 불끈해서 몸을 일으키니까 아버지가 손을 들어 보이고 한쪽 눈을 찔끔 감았다 뜨면서 말했다. “일꾼들은 저렇게 한번씩 왁자하게 놀아야 돼. 일 신명도 다 노는 데서 나오거든. 그냥 냅둬라. 집도 넓고 하니, 갈 놈은 가고 안 갈 놈은 엎드러져 자겠지 뭐.” 다른 사람이야 낯모르니까 그런다고 치더라도 아버지가 여러 해 데리고 다니면서 먹이고 가르쳐온 터라 누구보다 믿어온 손자귀아저씨까지 나 몰라라 제 집처럼 방자하게 구는 건 정말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량을 끝내고 나서부터 일은 일사천리였다.

아버지는 흙벽돌을 삼화토로 빚게 하라고 했다. 본래의 아버지 생각은 삼화토 흙벽돌을 쇠틀로 직접 찍어내 쓰자는 것이었으나 손자귀아저씨가 워낙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전라도 고흥에 사는 아버지 아는 분에게 특별히 주문을 해 실어올렸다. “삼화토가 뭔데요, 아버지?” 내가 물었고 “진흙과 모래와 석회를 일대 일대 일로 섞은 흙이 삼화토다. 그렇게 해서 찍어낸 삼화토 흙벽돌을 쌓아놓으면 총알도 뚫지 못한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벽돌 쌓는 일은 주로 점박이 차지였다. 점박이는 한시도 입을 닫지 못하고 온갖 유행가를 불러대며 벽돌을 쌓았는데 점박이의 일솜씨가 미덥지 않은지 벽돌을 쌓는 날 아버지는 한번도 웃지 않았다. “몸뚱어리에 기운만 있다 하면 한칸집 짓는 데 나는 딴 일꾼 쓰지 않았을 거네. 혼자도 여반장이지.” 참지 못하고 아버지가 손자귀아저씨에게 지청구를 했다. “요샛세상, 형님 세상 아니우!” 손자귀아저씨가 불퉁하게 맞받아쳤다. 손자귀아저씨가 그렇게 살찬 표정으로 아버지의 말을 맞받아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내 세상도 아니고, 암튼 다른 세상이우. 나도 뭐 사장소리 듣고 사는데, 형님 부탁 아녔으면 이깟것, 흙벽돌집, 내가 뭐 발라먹을 거 있다고 맡아 짓겠수!” 창틀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속이 더 상하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물에 불은 듯한 몸을 굴려 침대로 내려갔다. 가래가 끓는 쉰 숨소리가 가파르게 들렸다. 속이 뒤집히기는 손자귀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날 점박이가 일을 단도리하고 돌아간 다음에도 아저씨는 혼자 남아 꽤 늦게까지 백열등 켜놓고서 천장의 반자틀을 짰다. “소백산 어느 절에서 산신각을 짓고 있을 때였어.” 손자귀아저씨가 말도 없이 돌아가고 나서야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하루는 등짐이라도 지겠다고 누가 찾아왔는데, 눈은 쑥 들어가고 허리는 호리낭창한 것이 등짐은커녕 대패질도 못하게 생겼지 뭐냐. 어디서 왔느냐니까 산에서 왔대, 산에서. 뭣에 씌었던 건지 산맥을 따라 그냥 떠돌다가 배가 고파 일판으로 찾아온 게지. 바로 손자귀아저씨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켰어요, 아버지?” “일은 무슨.”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비로소 빙긋 웃었다. 그사이 더 늘어난 입가의 크고 작은 주름살들이 사방으로 너울을 지어 번져나갔다. “그 몸뚱어리로 무슨 일인들 할 수 있겠나 했지만, 손가락들이 길고 걀쭉해 배우면 소목은 해먹겠구나, 그래 거두었지. 속셈으로는 너를 염두에 두었고.” “나를, 왜요?” “네가 아마 그때 세살인가 뭐 그랬어. 절집 보살들이 봐주긴 했다만 자귀 그놈 손을 보다가 옳지, 이 친구한테 애를 맡기면 되겠네 싶었다. 애 보기 좋은 손이었거든. 니가 한때는, 손자귀아저씨 손으로 컸다. 작은아버지로 알고 잘해드려야 한다.” 아버지 밑에서 일할 때의 손자귀아저씨는 늘 말이 없었다. 나무로 인형을 깎아주거나 풀피리 만들어 입에 물려줄 때에도 씩 웃곤 그만이었다. 무등을 태워달라고 졸라도 웃었고 깎아준 인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일부러 이퉁을 부려도 웃었고 심지어 아버지가 지청구를 해도 웃었다. 술좌석에서 노래 한자락이라도 시키면 수줍어 얼굴부터 벌겋게 달아오르던 사람이 바로 예전의 손자귀아저씨였다.

지붕을 올리고 나자 한차례 비가 왔다.

오랜만에 단비를 맞은 뜰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기가 죽어 있던 여름꽃들과 성미 급한 가을꽃들이 다투어 벙긋벙긋 입을 벌렸다. 작년만 해도 불편하긴 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풀도 매고 산꽃들도 옮겨 심고 했었는데, 이제 다시 그런 날이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꽃밭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쓸쓸했다. “코스모스가 벌써 피는구나.” 아버지도 좀 처량한지 입맛을 쩝 다시고 말했다. 작년에 맺은 씨앗들이 땅에 묻혔다가 스스로 싹트고 자라서 피는 꽃들이었다. 누가 심은 적도 없는데 저절로 터를 잡은 취꽃의 흰 꽃잎들이 터져나온 것 또한 비온 다음날이었다. 취꽃 무리 뒤엔 전에 보지 못했던 노란색 꽃들도 피어 있었다. “그건 상사화야.” 내가 노란색 꽃들을 굽어보고 있자 창 안쪽에서 아버지가 합족하게 미소짓곤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너무도 오래 길에서 길로 흘러다녀 모르는 꽃도 없고 모르는 나무도 없었다. “상사화가 어찌 거기에 심지를 박고 컸는지 모르겠구나. 이별초라고도 하지. 봄에 잎이 나와 여름에 다 말라붙으면 그제서야 꽃이 핀단다. 나하고…… 세상하고 그랬던 것 같아. 잎과 꽃이 엇박자라 영 만날 수가 없는 거지. 지리산자락 어디, 절집 지을 때 마당귀에 저 꽃이 가득했다. 살 속 뽀얀 젊은 보살이 하나 있어 밤잠 설치던…… 그게 네가 몇살 때였는지 까마득하다. 인연이란 욕심대로 맺고 풀어지는 게 하나도 없어. 봐라, 코스모스도 그렇고, 취꽃 저것들도 가을과 연을 맺어 꽃이 나와야 옳은데, 가뭄 끝에 비가 오니까 저것들 몸속의 시계도 나 닮았던 것인지, 급행열차처럼 시간을 앞질러 꽃을 피웠구나.” 아버지의 반쯤 감긴 깊은 눈과 수천의 주름들 속에서 먼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살 속 뽀얀 보살……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토를 붙여 묻고 싶은 말들이 갑자기 속에서 아우성치며 솟구쳤지만 나는 아버지의 고요한 마음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참고 말았다. 아버지의 눈 속에 살결 뽀얗고 속눈썹 푸르른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흘러가는 듯 마는 듯 했다.

지붕을 올리고부터는 비가 와도 상관없었다.

내장공사를 시작하고부터 손자귀아저씨는 더 자주 점박이 패거리를 집으로 불러들였고, 밤새 술판을 벌이거나 노름판을 벌였다. 심지어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패거리에 끼어올 때도 있었다. 그런 날 아버지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눈치였다. “손자귀아저씨!”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시끄러워 잠을 못 주무세요.” “손자귀라고 부르지 마라. 난 손자귀가 아니다.” “너무해요, 아저씨.” “공사 끝나면 안 온다. 쬐끄만 녀석이 주먹까지 쥐고 째려보면 어쩌겠다는 거냐. 어른한테 그럼 못쓴다.” 이미 예전의 손자귀아저씨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선잠이 든 다음에도 계속해서 쌔액쌔액, 풀무질소리를 냈다.

아버지와 손자귀아저씨가 다시 언쟁을 한 것은 문과 창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문과 창을 모두 전통방식에 따라 하기를 원했고 손자귀아저씨는 옛날식의 문짝들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우겼다. “다 형님 편하게 지내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무리 흙벽돌집을 지었다고 해도 요즘 누가 판장문 골판문에 닥종이 완자창을 찾습니까. 고릿적 얘기는 하지도 마세요.” “나는 유리 많이 쓰는 거 싫어. 집은 제 땅에서 나는 제 재료를 써야 숨을 쉬어.” “아이구, 형님은 그래서 시멘트콘크리트 집을 이리 걸지게 지었습니까.” “이 사람아, 그것은.” “뭡니까, 그게?” “그만두세나.” 아버지는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손자귀아저씨는 아버지 말에 대거리를 달거나 어깃장을 놓았다. 장판만 해도 그 경우였다. 아버지가 하라는 것은 기름먹인 종이장판을 바르고 들기름 섞은 콩댐을 하라는 것이었다. “콩댐이라니요?” “콩댐 모르던가. 콩을 물에 불려서 빻은 다음에 면자루에 담아 방바닥을 문지르는 거야. 언젠가 나주에서 대갓집 지을 때, 자네가 콩자루를 문질렀던 것 같은데.” “모릅니다. 난 그런 것 기억 안 나요. 집을 맡겼으면 제발 좀 내게 맡겨주세요. 아, 옛날식으로 다 하자 하면 보일러도 놓지 말고 부엌도 무쇠솥에 아궁이를 들여야지요. 다 막살하고 그럼 그렇게 해드릴까요?” 다음날 손자귀아저씨는 자기 마음대로 수입마루를 뚜르르 깔아버리고 말았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아버지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쩔 방도가 없었다. 수입마루를 깔고 난 날에도 손자귀아저씨는 밤새 패거리를 몰고 와 고스톱을 쳤다. 손자귀아저씨가 집주인이고 아버지와 내가 더부살이를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좀 거칠어서 그렇지, 집 짓는 걸로 먹고사는 사람 중에는 자고로 악종이 없다.” 깊은 밤, 거실의 고스톱판이 한창 달아올라 왁자지껄할 때,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아버지가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혼잣말하듯 창 너머로 고개를 돌려대고 말했다. 별똥별 하나가 멀리 흘러가는 게 얼핏 내 눈에까지 들어왔다. 흐흐흐, 하고 아버지가 짐짓 소리내어 웃었다.

 

 

4

 

집을 짓는 동안 손자귀아저씨와 나는 물론이고 심지어 아버지 자신까지 미처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노화가 마침내 초특급열차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사이 아버지의 머리는 완전한 백발에 그나마 반 이상이 빠져 달아나 대머리백발이 됐고, 허리가 사십오도쯤 굽어 다시 펴지지 않았으며, 저승꽃이 덕지덕지 피어 온몸이 동굴처럼 어두웠다. 귀도 어두워서 소리치듯 말해야 알아들었고 눈곱이 끼고 눈물도 자주 났다. 또 가깝게 접근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뭔가 썩어가는 냄새가 몸에서 났다. 샤워를 해도 가시지 않는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진한 냄새였다. 그리고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이제 아버지가 혼신의 힘을 다해도 두 발자국 이상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몸뚱이만 부풀어올랐지 얼굴과 목은 물론 종아리 발목은 밭을 대로 밭아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 됐다. 새로 지은 작은 집은 모든 공간과 공간의 거리가 아버지에게 맞춰 다섯 걸음으로 되어 있었다. 공사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걸을 수 있는 것이 다섯 걸음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누울 보료로부터 안방문까지가 다섯 걸음, 안방문에서 씽크대, 화장실까지가 다섯 걸음, 씽크대에서 현관문까지가 다섯 걸음, 현관문에서 아버지가 앉아 쉴 수 있게 새로 짠 나무의자까지가 모두 다섯 걸음이었다. 동화 속 집처럼 모든 게 다 앙증맞고 오순도순 정다웠다. 문이나 창, 또는 장판 등 내장공사에서 몇가지 아버지 뜻대로 하지 못한 것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집은 우리 땅 우리 산에서 나는 재료로 못 하나 안 박고 지었으며, 그래서 아버지 말대로 ‘숨쉬는 집’이 되었는데, 정작 아버지는 이미 두 발자국 이상 걸을 수 없어서 누가 돕지 않고선 집 안의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래도 얘, 이 냄새 좀 맡아봐.” 아버지는 그러나 애써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이 나무냄새. 이거 적송냄새다. 창틀도 니스칠 같은 거 안하고 콩기름만 먹이니까 얼마나 좋냐. 너도 좋으냐.” “정말 좋아요, 아버지. 숲속에 누운 것 같아요.” “내가 마침내, 평생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됐구나.” 아버지는 몇년 전 당신 스스로 거대한 시멘트콘크리트 집을 지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씩 웃으면서 말했다. 집 짓는 사이 두배 이상 늘어난 주름살들이 웃음에 떼밀려 나무향기 가득한 집 안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아버지와 달리…… 너는 진짜…… 시 짓는…… 시인이 될 것이다.” 손을 뻗어 아버지가 내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버지가 누워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버지.” 나는 명랑한 어조로 불렀다. 이제 여름도 다 지나가고, 창 너머로 노랗게 물든 매실나무 잎새가 몇몇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두 걸음밖에 걷지 못했으나 벽을 짚거나 하면 지척인 화장실에 다녀오는 건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요강으로 쓰던 백자항아리를 이미 버렸던 것이다. “아버지, 어디 계세요? 오늘 아침 무밥을 하려고요, 무를 사다놨거든요. 아버지, 무밥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아버지의 목피리가 불어주는 쉰 바람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열쇠를 찾아 열쇠구멍에 끼우고 돌렸는데도 화장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변기에 앉았다가 앞으로 쓰러진 채 영원히 눈감고 만 아버지의 거대한 몸이 화장실 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긋한 적송냄새가 화장실에 꽉 차 있었다.

 

 

5

 

아침에 트럭이 한대 대문간에 와 서더니 시멘트와 블록을 잔뜩 부려놓고 갔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부동산업자 금니박이와 손자귀아저씨가 데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터닦이 백바지와 점박이가 시멘트를 개고 있었다. 가을이었다. 나는 토스트 한쪽으로 아침을 때우고 학교를 가기 위해 막 현관을 나서다가 그것을 보았다. 그 무렵의 나는 사실 계속하여 아주 불안하고 불편한 생활을 했다. 손자귀아저씨 패거리가 도무지 시멘트콘크리트 집을 비울 눈치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우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건축자재 같은 걸 뜰 한켠에 산더미처럼 날라다 쌓아두기도 했다. “이제 아저씬 나가주세요.” 내가 말했다. “다 너를 위해서야.” 손자귀아저씨는 다정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 너를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키겠냐. 니가 천지간에 피붙이 하나 없고 사고무친하니, 형님도 간곡히 너를 내게 부탁하셨고.” “거짓말이에요. 아버지가 아저씨한테 그런 부탁 했을 리 없어요. 내 집에서 모두들 나가주세요.” 내가 불퉁한 소리로 메어붙이자 백바지가 갑자기 도끼눈을 하더니 옆에 있던 톱으로 데크난간을 확 후려쳤다. 톱날이 반토막으로 부러졌다. “듣자듣자 하니까 쥐방울만한 새끼가 못하는 말이 없네. 어린 저를 돌보겠다는 어른한테 고맙다곤 못할망정 눈깔 똑바로 뜨고 내지르는 말뽄새 좀 봐. 싸가지 없는 새끼!” “허어, 친구.” 손자귀아저씨가 손사래를 쳤다. “애가 철없어 그러는 걸, 그리 화를 낼 건 뭐 있나. 자넨 그게 문제야. 콩밥 먹고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 사람아.” “나 백바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새끼 싸가지 좀 없는 건 못 봐!” 백바지가 꽥 소리질렀고, 손자귀아저씨는 혀를 찼다.

나는 아버지가 그리워 핑 하고 눈물이 도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버지가 ‘내 집’이라고 불렀던 그 작은, ‘숨쉬는 집’에서 떠난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이 깊으면 자주 아버지가 부는 목피리의 쉰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눈 감으면 천지사방으로 너울너울 번져가는 아버지의 환한 주름도 볼 수 있었다. 고스톱판에서 핏대를 올리거나 술판 벌여놓고 온갖 새살을 떠는 저들 패거리의 소음 때문에 아버지가 깊은 잠을 들 수 없는 것이 나는 꿈속에서 매양 화가 났다. “니가 우리들 꼴 보기 싫어하니까 담을 쌓기로 했다.”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향해 점박이가 말했다. 담을? 나는 무슨 말인가 몰라 고개를 돌렸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한쪽 눈까지 찡긋해 보이는 점박이가 보기 싫어 겨우 입속으로 반문을 할 뿐이었다. 날씨는 하루종일 맑았고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무슨 담을 쌓는다는 말인가.

나는 종일 궁금하고 불안했기 때문에 학교가 파하자마자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앞엔 대형 이삿짐 트럭이 와서 장롱이며 세간살이며, 한창 이삿짐을 부리는 중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도 두엇 눈에 띄었다. “왔냐.” 대문간에 서 있던 손자귀아저씨가 눈웃음을 치고 말했다. “내가 아예 이사를 들어오기로 했구나. 큰 집을 계속 비워둘 수도 없고.” “………” “너 공부하기도 좋게, 따로 담을 쌓았다. 출입문은 내일 동쪽편으로 새로 내주마.”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뽀얗게 흐려져서 뜰로 들어서다 말고 나는 비틀 주저앉았다. 내가 기거하는 작은 집과 시멘트콘크리트 집 사이에 새로 쌓은 블록담장이 우뚝 높았다. 아니 두 집 사이에 쌓은 담이라기보다도 새로 지은 작은 집을 블록담으로 빙 둘러쳐 시멘트콘크리트 구조의 큰 집으로부터 격리시켜놓은 꼴이었다. 집터가 워낙 넓어서 담을 쌓고도 큰 집 뜰은 툭 트인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담장 속에 파묻힌 작은 집은 여백도 많지 않아 아주 이상한 감옥 같아 보였다. “어차피 너는 내가 돌보겠지만, 네 앞으로 사십평을 분할 등기해두었다. 측량한 경계선대로 담을 쌓았으니 그리 알면 된다. 돌아가신 네 아버지 뜻에 따른 거야. 모든 걸 내게 위임하셨지.” 손자귀아저씨가 주저앉은 나의 어깨를 다정히 두들겼다. “그리고 얘.” 눈높이를 낮추고 내 눈을 그윽히 들여다보다가 손자귀아저씨는 이윽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난 더이상 자귀질 안한다. 그러니, 앞으론 삼촌이라고 불러라.” 매실나무 잎새들이 우수수우수수 지고 있었다.

작은 감옥 안의 방에서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숨쉬는 집’이 시멘트로 만든 블록담장 안에 갇혀버렸으므로 아버지는 물론 ‘숨쉬는 집’조차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풀무질소리를 가파르게 냈다. “너 혼자 힘으론 안될 게다.” 아버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고 “키는 다른 애들보담 작지만요, 나도 중학생이라구요, 아버지. 푸셥을 서른번이나 해요.” 나는 쾌청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평생 메고 다녔던 낡은 배낭 속엔 먹줄통을 비롯하여 곱자 줄자 그무개 그림쇠 끌 정 끌망치 메 손대패 타태송곳 수평대 들이 들어 있고, 그리고 반지르르 아직도 윤이 나는 손자귀가 들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자귀를 힘있게 쥐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새로 쌓은 블록담 너머의 시멘트콘크리트 큰 집에선 손자귀아저씨네 집들이를 하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계속 났다. “이제 나는 자귀목수가 될 거예요.” 내가 먼저 말했고 “너 혼자 힘으론 안된다니까 그러는구나.” 아버지가 대꾸했다. 자귀질은 무엇보다 깔끔하고 매워야 한다고 애당초 누누이 설명해준 것은 아버지였다. “할 수 있어요, 아버지.” 나는 짐짓 자귀를 힘껏 들어올렸다. 아버지가 그려놓은 먹줄을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해 정확하고 맵게 내려치면 될 일이었다. 손자귀아저씨의 목에 그려진 먹줄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