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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연수 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소설 『7번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내겐 휴가가 필요해

 

 

그날 자료실 열람시간이 모두 끝난 뒤, 직원들은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여름독서교실을 준비하기 위해 3층 강의실로 모였다. 해마다 관내 초등학교 5학년생을 대상으로 닷새간 실시하는 여름독서교실이 성공적으로 끝나야 직원들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올해는 도서관장이 직급이 낮은 직원부터 휴가기간을 정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한 까닭에 여름휴가를 둘러싸고 직원들 사이에 약간 소란이 일었다. 남쪽바다를 바라보고 언덕배기에 서 있는 3층짜리 도서관에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만 하는 자료실은 일반자료실, 어린이자료실, 디지털자료실 등 모두 세곳이었다. 그런데 직원은 사서직 네명, 행정직 한명, 기능직 세명 등 모두 여덟명이었다. 7월 28일에 여름독서교실이 끝나고 그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두사람씩, 그것도 낮은 직급 순으로 휴가를 떠난다면, 나이 많은 직원들은 8월말이나 되어야지 순번이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고참 직원들일수록 아이들의 방학기간에 맞춰 휴가기간을 잡아야만 하는데, 도서관장은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미혼 직원들이 자진해서 휴가 일정을 조금 늦게 잡으면 좋으련만, 그들 쪽에서도 저마다 사정이 있는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도서관의 살림꾼인 사서7급 최가 총대를 멨다. 최는 기능10급 강 등 미혼 직원들을 독서교실 강의실에 모아놓고 합리적으로 휴가기간을 선택하라고 잘 타일렀다. 하지만 그 말투가 워낙 공격적이라 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직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연유로 삼삼오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내내 서로 이야기가 겉도는 등 직원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이 느껴졌다. 분위기가 좀 어색했는지 독서교실 강의실로 돌아오던 중 누군가 며칠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그 노인이 시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관광단지 옆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빅뉴스를 전했다. 그 소식은 이내 강의실에서 여름독서교실에 찾아올 아이들에게 나눠줄 유인물과 책자를 정리하던 강에게도 전해졌다. 강은 프린터로 뽑은 유인물을 세장씩 모아 스테이플러로 천천히 찍던 일을 멈췄다. 도서관에 처음 출근하던 날부터 강은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은 도서관의 전설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 노인이 도서관에 나타난 것은 10여년 전의 일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바코드 프린터도 스캐너도 없었기 때문에 폐가식 관내대출로만 자료실을 운영했다. 서명, 저자명이 가나다순으로 배치된 목록카드함을 뒤져가며 대출하고자 하는 책의 도서카드를 찾아내 대출신청서에 청구기호를 적어 대출대에 제출하면 직원들이 그 책을 찾아오는 식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노인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대출신청서를 내미는 사람이 됐다. 아, 그때는 아직 머리칼도 하얗게 세기 전이었으니까 노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그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자료실 직원들이 그의 존재를 알기 시작한 뒤로 그는 휴관일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읽었다. 언젠가는 그가 청구한 책들이 화제였던 때도 있었다. 그는 청구기호상 300번대와 900번대의 책들을 주로 대출했다.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르면, 300번은 사회과학서를, 900번은 역사서를 뜻했다.

그가 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그의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는 직원도 있었다. 그 직원은 그가 몇년 전 현실에 대한 절망감에 양심선언을 하고 교수직에서 물러나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고려대학교 전직 교수라고 우겼다. 하지만 다른 직원이 이내 서가에서 그 전직 교수의 책을 찾아왔고, 다함께 책에 실린 저자사진과 열람실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을 직접 대조해본 뒤에야 그 직원은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사실뿐이라고 인정했다. 그렇긴 해도 그가 서울에서 내려온 교수나 학자이리라는 점만은 직원들의 공통된 추측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고려대학교 교수처럼 정치적인 문제로 학교에서 물러난 뒤, 바닷가에 자리잡은 한적한 도서관에서 연구서를 집필하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틀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록 그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도서관에 나왔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아침이면 일반자료실 입구 옆 원탁에 앉아 300번대와 900번대의 책을 읽었다. 후에 도서관 직원들과 조금씩 안면이 트이고 대화가 이뤄지면서 그가 왜 날마다 도서관에 나와서 책을 읽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그는 학자도 교수도 아니었다. 그는 전직 형사였다. 늘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닌 이유도 형사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였다. 마흔다섯살이 될 때까지 경찰청에서 근무한 그는 수배자를 검거하기 위해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도에 출장을 나섰다가 그만 무인도에 고립되고 말았다. 도시에서 온 다른 낚시꾼들과 함께 배를 한척 빌려 신지도 인근 무인도로 들어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찾는 수배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그들과 함께 소주를 나눠 마신 뒤, 요의를 느끼고 바위 뒤로 돌아갔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오줌을 다 누고, 그는 잠시 바위에 앉아서 파도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수없이 많은 별들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일으킨 뒤에야 그는 어제의 파도가 어제의 바다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에 취한 낚시꾼들은,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선주(船主)가 운전하는 배를 타고 신지도로 모두 돌아가버린 뒤였다. 그렇게 그는 고인 물을 마시며 혼자서 사흘을 보냈다. 그 사흘 동안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으나 이렇게 죽자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도 나름대로 정의로웠다.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죽는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사흘 후, 연일 마신 술이 그제야 서서히 깨면서 아무래도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다고 생각한 선주가 반신반의하며 그를 찾아 배를 몰고 왔을 때, 그는 이제 더이상 형사가 아니었다. 신지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완도까지 나온 그는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는 편지를 경찰청에 보낸 뒤, 친한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퇴직금이 나오면 절반은 가족에게 전해주고 절반은 자신의 계좌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업무의 특성상 자세히 밝힐 수 없는 경로로 몰래 모아놓은 돈이 꽤 있었다. 그는 그 돈으로 남해안의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퇴직금이 계좌로 들어오자 그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우선 도서관에서 걸음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전셋집을 구하고 남은 돈을 차명계좌에 모두 집어넣었다. 처음 한달은 실험의 기간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끊어버렸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끼만 먹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고기를 구워먹었다.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4시에는 일어나 도서관 뒤 공원에서 운동했다. 한달 뒤, 그는 생활비로 은행에 넣어둔 원금을 나눠보았다.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10년 동안은 원금을 빼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원금에 다달이 이자가 붙으니 그 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었다. 그 정도 기간이면 자신이 계획한 일을 모두 끝마칠 수 있으리라. 모든 계산을 마친 그는 그때부터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살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강의실에 모인 직원들은 여름휴가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은 잊어버리고 저마다 그 노인과 얽힌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그를 지켜본 최는 이렇게 가면 결국 자신은 9월이 다 되어서야 여름휴가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완전히 까먹은 채 직원들에게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경력을 과시하려고 들었다. 최가 그 도서관으로 직장을 옮긴 건 그가 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출근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익히던 최에게 그가 찾아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읽고 싶습니다.”

그 말에 최는 사서로서 잠시 생각해봤다.

“글쎄요, 성경인가? 아니면 불경? 그리스로마 신화? 이솝우화? 도대체 뭐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지 저도 모르겠는걸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대출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글쎄, 그게 뭔지 알아야지 대출을 해드릴 게 아닙니까? 제가 좀 확인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출카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서명,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청구기호, 388.3—가57ㅅ’이라고 적혀 있었다. 역시 300번대. 풍속, 민속학.

무척 겸연쩍게 된 최가 말했다.

“아니, 이런 책을 어디다 쓰시려고 읽으세요?”

“거기 혹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최의 말에 강의실에 모였던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다들 어색했던 분위기를 잊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직원들 중 막내인 강만 빼놓고. 그때 사서8급 박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자살한 것일까, 아니면 타살된 것일까? 박의 문제제기에 직원들은 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가 체포한 살인범이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와신상담 모범적으로 수인생활을 마치고 가출옥한 뒤 그를 찾아와 물속으로 던져버린 게 아닐까? 지난 10년 동안 그가 도서관에서 조사한 것은 경찰 내부의 비리였는데, 이제 그 사실을 폭로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경찰 수뇌부가 바닷물로 그의 입을 영영 막아버린 게 아닐까? 혹시 자신이 체포해 사형당한 용의자가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참회하는 심정으로 10년을 보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닐까? 가장 재미있는 추측은 문제를 제기한 박에게서 나왔다. 박은 몇해 전부터 금리가 바닥을 기는 바람에 원금을 다 까먹고 죽을 형편이 되자, 그도 이제 바다 바닥을 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때, 사람들이 저마다 떠드는데도 혼자 생각에 잠겨 멍하니 유인물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강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들 느닷없는 강의 눈물에 당황했다.

“어라, 너 우니? 니가 왜 우는 거니?”

강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휴가 건이 떠올라 기분이 불쾌해진 최가 쏘아붙였다. 한번 눈물을 주르르 흘린 강은 이제 코를 훌쩍일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순식간에 마스카라가 번진 강의 얼굴은 보기 흉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으로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다시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말을 해봐, 얘. 니가 지금 왜 우는 거니? 왜? 억울하니?”

최가 싸늘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러자 다시 울먹울먹 강이 말했다.

“저는 좀 쉬어야겠어요. 쉬어야겠다구요.”

그 말과 함께 다시 울음이 터진 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최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세상에. 오 마이 갓! 빌어먹을 놈의 여름휴가.

 

다음날 도서관으로 그의 아들이라는 남자가 찾아왔다. 10여년째 행방불명이던 아버지가 남해안의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은 망설임 끝에 그래도 유품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도시를 찾았을 뿐, 애당초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비겁하게 사라진 아버지의 진실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그 이유는 이웃들에게 아버지가 10년 동안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도서관을 찾아가 책을 읽었다는 말을 전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집에서 본 점퍼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집은 한국전쟁 당시 북쪽에서 밀려내려온 피난민들이 임시로 지은 바라크집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목 옆 축대 위에 앉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때의 바라크집들은 기와집이나 함석집, 혹은 양철집으로 바뀌었지만 골목의 형태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러번 시멘트를 덧씌운 흔적이 남아 있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 군데군데 군청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깥에서 볼 때와 달리 의외로 나지막한 담장을 따라 해바라기, 파초 등 관상용 식물을 심어놓은 손바닥만한 화단이, 역시 시멘트를 발라놓은 마당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푸른색 함석지붕 아래 널빤지로 조악하게 짜맞춘 마루에 앉아 낮은 담장 너머를 굽어보면 섬들 사이로 남쪽바다가 보였다. 그 아름다운 남쪽바다는 방 안의 창문을 통해서도 내다볼 수 있었다.

그가 살던 방은 그 아름다운 창문 쪽으로 들여놓은 앉은뱅이책상과 방석, 그리고 한쪽에다 잘 개켜놓은 침구와 여행가방 하나를 제외하곤 텅 비어 있었다. 수행자의 방이라고 해도 그보다는 정감이 넘칠 것 같았다. 떠나고자 하는 마음만 먹는다면 자다가도 떠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그런 방이었다. 그 베이지색 점퍼는 벽에 박힌 못에 걸려 있었다. 고무줄이 들어간 소매 부분이 너무나 길어 이제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는 80년대풍의 촌스런 점퍼. 그 집을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처럼 자신 역시 이제 그를 깨끗하게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벽에 걸린 그 베이지색 점퍼를 보는 순간,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동차로 불과 다섯시간 남짓 떨어진 도시의 어느 방에 그 베이지색 점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아들을 괴롭혔다. 아들에게 그는 결코 자랑스러울 게 없는 아버지였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가족을 버리고 그 도시까지 흘러가게 됐는지 알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밤새도록 벽에 걸린 그 베이지색 점퍼를 바라보면서 아들은 여행가방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지난 10년 동안 뭘 했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도서관을 찾아간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도서관을 찾아가 책을 읽었다고들 말했으니까.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그날은 여름독서교실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도서관 직원들에게는 아들을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절대로 휴가기간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그 전날 강의실에서 뛰쳐나간 것만으로도 모자라 아침까지도 강이 도서관에 나오지 않은 탓에 손이 모자랐다. 강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나 나빠진 최는 그가 매일 도서관에 찾아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해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다고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 순간에도 3층 쪽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최는 그가 왜 매일 도서관에 나와 책을 읽었는지, 또 무슨 글 같은 것을 쓰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내용인지는 당연히 모른다고 아들에게 말하고는 3층에 전화를 걸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박에게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아들에게 최가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그러니까 그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읽은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최가 아들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아들은 별다른 부끄러움도 없이 아버지의 전력에 대해 들려줬다. 최의 귀가 솔깃해졌다.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강이 최에게 전화를 걸어와 몸이 아파서 도저히 출근할 수 없으니 하루 쉬겠다고 말했다. 그 전화에 최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최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아들은 슬그머니 일어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들은 일반자료실을 찾아갔다. 아들은 최가 말한 원탁 쪽으로 갔다. 혹시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나 자세히 살펴보려는 것처럼 아들은 원탁 주위의 의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앉아 있기에 그 고동색 나무의자들은 너무나 딱딱해 보였다. 아들은 그중 한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서가 쪽을 바라봤다. 한동안 원탁을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던 아들은 이윽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들은 먼저 300번대 서가를, 그리고 열람석을 비치한 가운데 통로를 두고 대각선으로 서 있는 900번대 서가를 훑어봤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읽는다면, 10년이면 충분히 읽고도 남을 분량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아들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됐다면 문학서를 뜻하는 800번대를 읽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10년이 지날 때까지도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랬다면 아버지는 여전히 원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망상 끝에 더이상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알아낼 게 없다고 생각한 아들은 도서관을 떠나버렸다.

그날 퇴근하는 직원들에게 최는 아침에 도서관을 찾아온 그의 아들에게서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듣고 싶은 사람은 길 건너 호프집으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여름독서교실을 준비하느라 전날도 늦도록 야근한 탓에 직원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지만 휴가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결근한 강 때문에 하루종일 최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라 울며 맥주 마시기를 해야만 했다. 10년이 지나도록 제 아버지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아들에게서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겠느냐마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최가 들은 이야기는 길기도 길어 도무지 술자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빌어먹을 놈의 여름휴가.

그러니까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 가을에 그는 증발해버렸다. 먼저 흘러간 그해의 다른 나날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상 앞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아침을 먹은 뒤, 아내가 새로 사온 베이지색 점퍼 차림으로 그는 대문을 나섰다. 가을비가 떨어지던 그날 밤,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그는 잠에서 덜 깬 아내에게 갑작스레 며칠 출장을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그가 속옷도 챙기지 못한 채 출장을 떠나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을 뿐, 행선지도 일정도 묻지 않았다. 도경찰청 대공과로 전근하기 전에도 갑작스런 출장은 여러차례 있었으니까. 그렇긴 해도 출장중에 집으로 전화하는 일을 빼먹지 않던 사람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물론 전화의 내용이라는 건 간단했다. 집에는 별일이 없느냐? 별일이 없다. 나는 잘 있다. 밥을 꼭 챙겨먹으라.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전화가 없었다. 대신에 신문기자라며 그를 찾는 전화가 서너번 걸려왔을 뿐이었다. 그가 출장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나자, 아내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아내는 도경찰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연결을 거쳐서 전화를 받은 남자는 도경찰청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아내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아내는 어쩌면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남편이 자신과 같은 곳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생각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그가 도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좌익사범을 담당하는 대공4과는 분실의 형태로 청사 외부에 나가 있었다. 전화상으로 신분을 확인하는 등 몇번의 절차를 거쳐 아내는 간신히 양정물산이라는 회사의 전화번호를 얻게 됐다. 양정물산이 그의 실제 근무처였다. 전화로 연결된, 그의 직속상관이라는 김상무는 그를 고형사라고도 고경위라고도 부르지 않고 다만 고부장이라고 호칭했다.

김상무는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그가 무단결근중이라서 회사에서도 다들 걱정하던 참이었다고 말하더니 무단결근이 계속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암시했다. 본능적으로 남편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내는 부하직원이 일주일 넘게 무단결근을 해 걱정하던 참이었다면 왜 단 한번도 집으로 연락해보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상무는 양정물산이 특수조직이라는 점을 유념해달라고 대답했다. 다리 많은 벌레가 스멀스멀 귓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음색으로. 그 목소리 덕분에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단순한 징후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걱정하기로는 양정물산이라는 유령회사 직원들보다 신문기자들이 더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똥겨줬다.

다음날, 약속시간을 두시간이나 넘겨서야 영등포구 시장골목의 지하다방에 나타난 김상무는, 마흔줄에 들어서자마자 일찌감치 양쪽 귀밑으로 새치가 생겨나기 시작한 그에 비해 10년은 젊어 보였다. 김상무는 한층 격렬해지는 학생시위 때문에 회사의 업무량이 폭주해 시간을 내기가 아주 어렵다며 구차하게 변명하더니 혹시 최근 들어 그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그의 아내는 학생시위 때문에 바쁘다니 양정물산이 최루탄을 만드는 회사인지, 뭣 하는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남편이 조금 달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상무는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고 지적하며 남편이 서툴게 일하는 바람에 지금 회사가 큰 위기에 몰렸는데, 그 때문에 남편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편이 저지른 잘못이 뭐냐고 그의 아내가 물었지만, 김상무는 불독처럼 얼굴만 잔뜩 찌푸릴 뿐 대답이 없었다.

“사모님,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파리가 있는데”라며, 입을 다물고 있던 김상무가 느릿느릿 말했다.“하나는 더러운 날파리, 그다음으로는 더 더러운 똥파리,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파리는 신문기자 새끼들이지요. 지금 댁의 바깥양반께서 싸질러놓은 똥덩어리로 그 파리 새끼들이 지들도 한 주둥아리 들이밀자고 꼬여드는 중입니다. 그 파리 새끼들을 만나면 가능한 한 똥 본 듯이 피해다니세요. 그러면 바깥양반은 곧 돌아옵니다. 안 그러면……”김상무는 말을 끊었다. 아내는 남편의 생사여탈이 김상무의 그 입에 달려 있는 양 바라봤다.“똥 싼 게 다 드러나잖아요. 온세상에 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사모님도 그걸 바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세요. 댁의 남편은 지금 무단결근중이에요. 그 파리 새끼들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면 바람나서 도망쳤다고 그러세요. 뭐, 어때요? 차라리 그랬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일로 도망갔다면 내가 그 입에 뽀뽀를 하라고 해도 골백번은 했을 겁니다.”

그가 도대체 얼마나 큰 똥을 싼 것인지는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김상무의 말처럼 신문기자들은 쉴새없이 전화를 걸어와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 어떤 전화에도 아내가 완강하게 입을 열지 않자, 신문기자들이 그녀를 다그쳤다. 이렇게 숨겨둔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댁의 남편이 양정물산의 핵심인물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가 뒤집히려고 하는데, 양정물산에서는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댁의 남편에게 그 모든 똥물을 다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중이라구요. 아니, 집에 텔레비전도 없습니까? 양정물산에 들어갔던 학생 하나가 죽어서 나왔단 말입니다. 남편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주면 우리가 그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세요. 아니, 바람을 불라는 게 아니구요! 뭐라구요? 누구랑 바람이 났다구요? 김상무? 김상무가 누구예요? 아니, 이 아줌마가! 정말 남편 죽는 꼴 보고 싶어서 환장을 한 거야, 뭐야!

그제야 김상무가 말한 똥이며, 신문기자들이 말한 똥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그의 아내는 전화코드를 뽑아버리고 텔레비전을 내다버린 뒤,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대문 너머에서는 학생을 물고문한 경찰관은 단 한명으로, 그의 단독범행임이 밝혀졌으나 사건 발생 직후에 잠적해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다는 경찰 특별조사단의 대단히 특별한 발표를 다들 비웃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의 아내는 그런저런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밤낮으로 그의 아내가 생각한 것은 오직 남편이 입고 나간 점퍼의 색깔뿐이었다. 그 색깔이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 평범한 베이지색이어서 남편이 그 점퍼를 입고 10미터 앞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로서는 알아볼 재간이 없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홑겹 점퍼로 이제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넘긴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다가올 겨울이 걱정돼 견딜 수 없었던 그의 아내는 김상무를 수소문했다. 몇번의 시도 끝에 그녀는 가까스로 김상무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김상무는 며칠 전에 그의 사직서가 도착해 이미 수리됐으니 더이상 회사로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그의 아내가 통곡을 시작하자, 김상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최의 핸드폰이 울렸다. 최는 핸드폰을 켠 채, 직원들에게 김상무가 한 말을 흉내내어 말했다. 직원들은 모두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최가 핸드폰을 귀에 갖다댔을 때,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강이었다. 이게 정말, 사람을 가지고 노네. 휴가와 결근 문제로 다시 기분이 언짢아진 최가 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강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 아침이었다. 눈을 떴다가 몸도 좋지 않고 출근할 기분도 아니어서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던 강은 결국 정오가 가까워서야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결근을 알렸다. 그래서 강이 얻은 것이라고는 어쨌든 그날만은 그의 아들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최와의 전화통화는 두번 다시 생각하기 싫을 만큼 끔찍스러웠다. 하필이면 여름독서교실 첫날, 자신이 결근했으니 이런저런 잡무를 처리할 사람이 없어서 곤란하겠다는 사실은 잘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프다는 동료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늘 이기적으로 굴면서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고? 좋다. 정신은 어디다가 놓고 다니는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이 문제만 일으킨다고? 그것도 좋다. 하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에게, 남자만 보면 실실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주제라니. 이번에는 또 어떤 놈팡이가 걸려들었는지 모르지만 한여름에 휴가가려는 그 음흉한 속을 다 아니까 똑바로 처신하라니. 이럴 줄 알았다면 몸이 힘들더라도 도서관에 나갈걸 괜히 하루 쉬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속만 더 아프게 됐다고 생각했다. 강은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울었다. 그렇게 자다가 깨다가 울다가 자다가 저녁 무렵에 깨어난 강은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밥을 지어먹었다. 따뜻한 밥이 들어가니 조금 기운이 났다. 그러자 최가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하면 그녀도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 전날, 자신이 울면서 강의실을 박차고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 왜 그날 출근도 못할 정도로 아팠는지. 강은 핸드폰 주소록에서 최의 전화번호를 검색한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든 건 강에게만 일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신규대출증을 발급하는 일에서부터 대출과 반납을 접수하고 연체도서를 관리하는 일은 물론이고 비치희망도서 목록을 정리하고 신착자료 목록을 게시판에 붙이는 등의 일까지, 일반자료실의 대출과 관련한 온갖 잡일은 모두 강의 담당이었다. 도서관에서 일한다면 최처럼 커피나 홀짝이며 읽고 싶은 책이나 읽는 줄 알았지, 하루종일 대출대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앉아서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앵무새처럼“반납일은 다음달 6일까지입니다”라고 되뇌고 있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도서관 입구의 무인반납함에서 간밤에 반납된 도서들을 들고 올라와 다시 서가에 꽂는 일은 책도 많지 않고 그래도 아침이라 좀 느긋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지만, 폐관이 가까워올 무렵 낮 동안 반납된 도서와 열람석 여기저기 흩어진 도서를 다시 서가에 꽂는 일은 늘 조급하기만 했다. 저녁에 약속이라도 있는 날에는 저자기호까지 맞춰서 책을 꽂는 게 너무 힘들어 대충 분류기호만 맞게 꽂아둔 적도 많았다. 웬만한 사서들도 저자기호까지 완벽하게 맞춰서 책을 꽂는 일은 드물지만, 그래도 저자의 이름 두번째 글자를 기호화한, 가운데 숫자 부분까지는 맞춰놓는다. 그런데 강은 저자기호를 무시하고 그냥 분류기호만으로 꽂아뒀으니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가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이라면 보기 흉하다고 할 정도로 엉망이 돼버렸다.

서가가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그였다. 비록 분류기호나 저자기호 같은 것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는 그 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책의 위치는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다가오는 휴관일이 전 직원이 나서서 서가를 정리하는 정기 세부 배가(排架) 작업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날, 강은 늦도록 저자기호가 뒤죽박죽 뒤섞인 책들을 정리하느라 끙끙대야만 했다. 아마도 그가 아니었다면 그날 강은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해 책들을 제자리에 꽂았는데 청구기호를 따져가며 확인해보면 과연 정확한 자리에 꽂혀 있어서 강으로서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강은 그와 함께 책을 정리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그는 책에서 읽은 것들을 꼭 자신이 겪은 일처럼 들려주는 비상한 재주를 지녔다. 도서관 직원들은 그가 300번대와 900번대의 책만 읽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800번대의 문학서나 600번대의 예술서는 물론 100번대의 철학서나 400번대의 과학서, 심지어는 500번대의 기술서까지도 섭렵하고 있었다. 따라서 동서고금의 문학과 예술과 과학과 철학을 다룬 책들의 주옥같은 내용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도 선생님처럼 그렇게 하루종일 책만 읽는 게 소원이에요. 선생님처럼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서가 정리를 마치고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길에 강이 그에게 말했다. 강의 말에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1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는 그렇게 책만 읽었습니다. 이제는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떠날 때가 됐죠.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 인생은 오히려 더 불행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읽지 말 것을 그랬습니다.”

“선생님처럼 돈이나 가족 걱정하지 않고 하루종일 마음껏 책만 읽는데 왜 불행해져요?”

“하하하. 말하자면 긴 이야기인데 어디 가서 맥주나 마시면서 얘기할까요?”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도서관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관광단지의 호텔 바로 갔다. 피아노연주가 울려퍼지는 바에 앉아 있으니 밤바다가 보였다. 검은 밤 안에서 검은 물결이 출렁거렸다. 서로 감명깊게 읽은 책에 대해 맞장구를 치면서 얘기하는 동안, 테이블 위의 빈 술병은 늘어만 갔다. 점점 말수가 줄어든 그가 출렁거리는 검은 물결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에도 한번쯤은 진실된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이 강력반 형사로 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들을 강에게 들려줬다. 예컨대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자신이 강력반에서 근무하던 7, 80년대까지만 해도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이 죽어가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얼굴은 대부분 자신이 잘 알던 사람의 얼굴이라는 둥, 살인자가 피해자보다 훨씬 힘이 센 경우에는 외상이 잘 보이지 않지만 살인자가 피해자보다 힘이 약한 경우에는 오히려 끔찍할 정도로 난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힘이 센 피해자가 다시 살아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둥, 교살 즉 목이 졸려 질식사된 사체는 대부분 월등하게 힘이 센 상대에게 당한 경우라는 둥 강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교살을 설명하면서 그는 두손으로 강의 목덜미를 만지기까지 했는데도, 강은 그 손길에 별다른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에는 강도 어느정도 취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형사로 생활하면서 겪은 것 중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눈빛이 하나 있는데, 사실은 신지도 근처의 무인도에서 경찰을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내야겠다고 결심한 까닭도 그 눈빛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서로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고 또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었던 그 눈빛. 하지만 이제 그 눈빛을 자신의 눈에서 털어낼 수 없게 된 그와 마찬가지로 무덤까지 그의 모습을 가져갔을 그 눈동자.

“그게 누구의 눈빛이었는데요?”

강의 물음에 어느새 옆자리로 와 그녀의 손을 매만지던 그가 화들짝 놀랐다.

“대학생이었습니다.”

“미모의 여대생?”

그가 대답하지 않자, 강이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툭 쳤다.

“맞구나? 그러니까 그 여대생하고 사랑에 빠져서 가족을 버리고 여기까지 도망쳐온 거군요. 그 여대생은 어떻게 됐나요? 죽었나요?”

“저는 그 눈빛을 잊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료를 모아서 책을 쓸 작정이었어요. 올바른 가치관을 담아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의 역사를. 그때는 모든 게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돼왔는지 모르니까 젊은이들이 자꾸만 그릇된 가치관으로 매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잊으려고 해도 자꾸 그 눈빛이 생각났겠죠. 그러게 소설을 쓰시지, 왜 하필이면 역사책을 쓰려고 하셨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왜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그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나였어야만 했는지, 아직도 고통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피생활 중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밝히는 책을 쓴 뒤, 당당히 검찰에 출두하겠다던 계획은 도서관에 틀어박힌 지 일년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서가를 가득 메운 책들과, 마음만 먹는다면 그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길었던 시간 때문이었다. 책들 속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생의 행로를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인생의 굴곡을 거칠 때마다 거품처럼 일어나는 여러 감정들로 인해 원치 않았던 다른 인생 속으로 빠져들었으나 그래도 그들이 자살하지 않은 까닭은 단순한 문장들 때문이었다. 그가 책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든가‘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등의. 그게 역사서든, 과학서든, 철학서든, 일년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뒤 그가 알게 된 진리는 그처럼 단순했다. 그동안에는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그걸 몰랐을 뿐이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 대학생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눈빛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책을 읽는 게 아니었다.

그는 도경찰청 대공4과로 전근가면서부터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일년이 지난 뒤부터는 오직 고통, 순수한 고통만이 존재했다.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 그는 다른 책을, 더 많은 책을 펼쳐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고통은 커져만 갔다. 도서관에 있는 그 어떤 책을 들춰봐도 거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또 늙은 노인이 다시 젊어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번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제 죽는 그날까지 단 한순간도 그 눈빛을 잊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명백해지면서 그는 절망의 파도 속으로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필사적으로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는 그처럼 많은 책이 있으니, 그중에는 단 한권뿐일지라도 자기 같은 인생도 이 세상에 필요했다고 말해주는 책이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술을 다시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은 그 도서관에 무슨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다 알게 됐을 즈음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귀신이나 살 만한 그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혼자서 술집을 전전했다. 술에 취하면 그는 바닷가로 내려가 출렁거리는 그 검은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 검은 물결 속으로 익사하기 위해 자신은 지난 10년 동안 매일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10년 동안, 혈액보다 염분농도가 높은 바닷물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그리하여 그의 몸 안에 있던 모든 수분이 폐의 혈관으로 집중되고 마침내 폐 속의 모세혈관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져나갈 때까지, 또한 마침내 폐에서 생긴 점액질이 입과 콧구멍 주변으로 빠져나오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그의 몸은 얼굴을 아래로 하고 팔다리를 드리운 채로 떠돌게 될 것이다. 물 위를 떠도는 대부분의 사체가 그렇듯이. 얼굴과 몸통 상체와 손과 팔뚝과 장딴지와 발에는 더이상 심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들이 고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자신은 절망의 바다 속에서 그렇게 익사해온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그는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 목을 조를 수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그리하여 어느 아침, 해변에서 발견된 자신의 사체를 부검했을 때, 눈썹 주위나 입안에 질식으로 인한 일혈점(溢血點)을 발견할 수 있도록. 또한 그는 입을 벌리고 더 많은 물을, 가능한 한 많은 물을 폐 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했다. 죽은 자신의 폐 속에, 그리고 혈액 속에 수많은 플랑크톤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그러니까 10여년 전, 그가 욕조에 얼굴을 밀어넣어 죽인 그 학생의 몸에서 사람들이 발견한 흔적과 똑같이. 오오, 그때는 부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부디.

밤바다를 바라보던 그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강은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이처럼 간절하게 참회한다면 그 학생도 그를 용서해주지 않겠느냐고 강이 위로했다. 강은 그를 안았다. 그의 눈물이 강의 셔츠를 흥건하게 적셨다. 강은 두려움에 벌벌 떠는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 학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선생님을 사랑했을 거예요. 선생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행복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태어나서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것만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미워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괜찮아요, 선생님. 선생님은 어쩔 수 없었던 거예요. 그 학생은 벌써 선생님을 용서했을 거예요. 하지만 심야 호텔 바에서 느닷없이 울려퍼진 통곡소리는 좀체 멈출 줄을 몰랐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강은 그가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몸과 마음이 아파온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설명하는데 어느 누가 강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제아무리 여름휴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강의 전화를 받자마자 최는 그 정나미 떨어지는 매정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고함을 질렀다.

“아줌마, 퇴직금은 조만간 월급통장으로 입금될 테니 앞으로 이렇게 전화걸어서 닦달하지 마시오, 잉.”

어디에 있는 것인지 최의 그 말에 사람들이 박수까지 치면서 떠들썩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울상이 된 강은 핸드폰을 끊고 방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방 한구석에 처박힌 핸드폰이 저 혼자서 부르르 떠는 동안, 강은 결심했다. 여름독서교실이 끝나는 즉시 휴가를 가겠다고. 최의 말에 기분이 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지금 자신에게는 휴가가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