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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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강영숙 姜英淑

1966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가 있음. bbum21@hanmail.net

 

 

 

숲속의 시간

 

 

나와 그녀는 자동차를 타고 N시의 동북쪽으로 삼십분가량 달렸다. 그녀는 운전을 했고 나는 나초칩을 먹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운전대가 비스듬히 꺾여 논으로 반쯤 처박힌 경운기, 찢어진 플래카드를 매달고 서 있는 트럭, 녹슨 철골만 세운 채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차례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공기는 무겁게 끈적거렸고 도로는 증발해버릴 듯 고요했다. 도로 주변의 벼들은 아직 덜 익어 푸릇푸릇했고 비에 휩쓸려 군데군데 납작해져버린 곳도 눈에 띄었다.

기점으로 삼아야 하는 과수원 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높은 위치에 심은 과실수들 뒤로 파란 지붕 끄트머리와 주차해놓은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과수원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동서로 연결되었던 길들이 툭 끊어지면서 분지의 지형이 사방으로 무한히 팽창하는 기분이 들었다. 길은 오직 한곳으로만 가게 되어 있는 사막의 하이웨이처럼, 북쪽의 높다란 산과 연결된 일자 도로 하나만 남겨두었다.

“저 산에 그 사람들이 있대.”

십오만 킬로미터를 달린 96년식 라노스의 시동을 끄며 그녀가 말했다. 날씨가 더워 엉덩이가 짓물러터질 지경이었다. 차에서 내려 청바지에 묻은 나초칩 부스러기를 털고 눈앞에 있는 산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N시 북쪽 외곽의 한 마을에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군사요충지 내 환경오염 실태와 시민의식 조사—N시를 중심으로’. 그녀가 다니는 환경단체에서 행정자치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 명칭이었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될 소주제별로 발제자와 논평자가 정해졌고, 이번 취재 쏘스는 몇개의 사례연구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실무적인 일에 쫓겨 도무지 글을 쓸 시간을 낼 수 없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군사문제나 환경문제나 나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N시에서는 그런 이슈들이 아직 중요했고 그런 걸 따라다니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사실은 얼마 전에 혼자 왔었는데 무서워서 못 들어갔어. 나이가 몇인데 이 덩치에 아직도 이렇게 겁이 많은지.”

우리는 다시 라노스에 올라탔다. 발밑에서 바삭거리는 빈 나초칩 봉투를 들어올려 깨알처럼 작은 글자가 적힌 스티커를 읽었다. 엄청난 칼로리가 이미 나와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간 상태여서 앞으로 몇시간 동안 배는 안 고플 것 같았다. 과체중 상태인 두 여자는 항상 이런 식이어서 도무지 개선이라는 게 불가능했다.

산 아래의 일자 도로까지는 바람 말고는 방해하는 것이 없어 달리는 기분이 괜찮았다. 우리는 산의 뒤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쪽의 완만한 커브길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여기 오면 그렇게 답답하니?”

그녀가 나에게 물었고 N시에 대한 나의 추억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았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야. 넌 안 그래?”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이제 시내 한복판을 막고 있던 캠프 레이크가 사라진다니 좀 나아지겠지.”

그녀가 무심하게 덧붙였다. 나는 N시에서 태어나 열세살까지 살았으나 그녀가 태어난 서울에 정착했다. 반면 서울 출신인 그녀는 대학 졸업 후 N시의 환경운동단체에서 십년이 넘게 일하고 있다. 그녀가 N시에서 산 기간이 내가 그곳에서 산 시간보다 길었다.

N시 중앙에 거대한 장막처럼 존재하던 캠프 레이크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나는 그런 일에는 무관심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인가. 그러던 어느날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은 엄마가 그 얘기를 먼저 꺼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도, 죽은 후에도 우린 가급적 N시 얘기는 안하는 편이었다. 엄마의 척추를 찍은 흑백의 엠알아이 사진에서 일자 대열을 이탈해 약간 앞으로 밀려나 있던 3, 4번 뼈, 그리고 그 사이의 검은 허공은 오랜 시간 나의 화두였다. 3, 4번 뼈를 빼낸 뒤 어떤 종류의 인공 척추뼈를, 어떤 방법으로 심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나는 엄마를 뒷자리에 태우고 유명하다는 척추 전문병원은 거의 다 찾아다녔다. 가능하면 피를 적게 흘리게 하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결국 3번과 4번 뼈를 떼어낸 자리에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왔다는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았다. 물론 피도 많이 흘렸고 두달은 거의 인형처럼 누워 지냈다. 최근엔 병원에서 허리둘레에 맞게 제작해준 플라스틱 복대를 차고 집 안에서만, 아주 천천히 왔다갔다했다.

“사람들이 즐겁게 살 만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네, 거기가. 그애도 아직 거기 살고 있잖아.”

엄마는 몸이 한쪽으로 기운 불균형한 존재가 되어 느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싱거운 광고카피 같은 말을 했다.

“제발 빨리 걸을 생각이나 하세요.”

나는 엄마의 입을 단번에 막아버렸다.

길이 좁고 울퉁불퉁해지면서 흙냄새가 진해졌다. 알록달록 칠을 한 산장 몇채가 얕은 계곡들 틈에 박혀 있었다. 늙은 라노스의 바퀴가 헛돌면서 엔진이 터지는 소리를 냈다.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지만 사륜구동의 새 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해서 꺼내지도 않았다. 차도 사람도 없는 길이 계속되자 겁이 많은 우리는 우울해졌고, 입을 꽉 다문 채 앞으로만 달려나갔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먼저 만난 것은 분홍색 연꽃잎이 수면을 가득 채운 강이었다. 강이 후텁지근한 열기를 내뿜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연꽃들 위로 반짝거리는 거미줄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졌다. 강을 둘러싼 울창한 침엽수림 위의 높은 하늘로 종이 그림자 같은 비행기 한대가 천천히 지나갔다.

나와 그녀는 단단하게 다져진 붉은 흙길을 걸었다. 거대한 나무 그림자들이 붉은 흙길 위에 누워 휴식중이었다. 분지의 동북쪽, 도심 가까운 산자락에 신들의 사원을 둘러싼 듯한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높다란 키의 전나무, 가문비나무 들이 사원의 입구를 비호하듯 담벼락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울창한 침엽수림의 갈색 몸통들 사이로 뜨거운 여름바람이 한차례씩 지나갔다. 갈색의 나무껍질에 뺨을 대고 눈을 감았다. 어깨가 서늘해지며 코끝이 찡해지는 이곳의 공기가 매우 낯설었다.

햇볕이 담벼락의 한 지점에 머문 순간, 누렇고 거친 담벼락의 문양이 고스란히 눈앞에 드러났다. 담벼락 위로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검은 새떼들처럼, 맑은 개울의 물그림자처럼 흔들렸다.

마을 이름을 새겨넣은 표지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무성한 나뭇잎들을 감싸고 도는 양막과도 같은 거대한 원이 보였다. 흰 원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등신의 구분도 없는 작은 날파리떼였다. 날파리들이 온몸을 날려 비상했다가 수직 하강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겁 많은 두 여자는 커다란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마을 입구로 이어지는 소로만 쳐다보았다.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소리가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저음을 잔뜩 끌어당겨 들려주는 우퍼 스피커에서 나오는 듯한 매미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때 나와 그녀의 발밑으로 매미의 몸통이 툭 떨어졌다. 그녀가 매미의 몸통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내 눈앞에 보여주었다.

“이 매미가 애벌레를 벗어나 저 나무 위에서 저렇게 소리를 내게 되기까지 몇년이 걸릴 것 같니?”

“동식물의 생태엔 관심 없는 거 알잖아.”

그녀는 매미의 몸통을 나무숲으로 던지며 말했다.

“사년에서 칠년, 심지어 십칠년이 걸리는 것도 있어. 그리고 몇달 울다가 이렇게 떨어져 죽는 거지.”

“내공이 장난이 아니네, 매미들. 엉덩이나 좀 터시지.”

그녀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뭔가를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녀는 지역의 환경관련 의제들을 놓고 중앙의 환경단체들과 교류하는 일을 해왔다. 우리 지역에는 너희 중앙과는 다른 이런 문제들도 있다! 태도는 그랬지만 중앙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기 위한 목적이 더 크기 때문에 늘 허탈하다고 했다.

“이틀 뒤 공청회가 관건이야. 환경론자들, 개발론자들이 다 모여. 21만평, 캠프 레이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지금 N시 역사상 제일 뜨거운 행정 이슈야. 아 짜릿해. 정말이지 오랜만에 일 좀 하는 것 같다.”

그녀는 정말 들떠 있었다. 최근엔 사적인 이메일 주고받을 시간도 없이 바빠서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했었다. 그런데 짜릿하다니.

군인들이 드나들던 작고 비좁은 문들, 어릴 때의 캠프 레이크를 떠올리면 그 문들이 먼저 생각났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너무 작고 좁아서 군인들의 커다란 몸이 빠져나가고 나면 금세 다시 닫혔다. 언제나 닫혀 있는 작은 문들, 검은색과 흰색의 경고문들, 그리고 높은 담벼락 위에 쳐놓은 둥근 철조망,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캠프 레이크 주변의 풍경은 더할 수 없이 초라했다. 정작 군인들은 드나들지 않는 성매매 여성들의 집단 거주지, 하루종일 헬리콥터 소음만 들리고 쉽사리 퇴색을 벗지 못하는 낡은 주택가, 집도 학교도 철조망보다 높게는 지을 수 없는 고도제한지대가 바로 그곳이었다.

도심의 정중앙을 내준 N시는 드넓은 분지와 호수를 끼고 옆으로 옆으로 팽창해나갔다. 사람들은 점점 더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 살 곳을 정하고 일터를 잡았다. 분지 정중앙의 그곳은 사람들에게 무감각의 영토가 되어 잊혀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드디어 담벼락 사이에 난 좁은 문을 지나 마을 입구로 이어지는 소로로 들어섰다. 무릎 높이의 주홍색 원추리꽃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쳐들고 서서 우리를 감시했다. 그녀와 나는 순간 동시에 생수병을 꺼내 물을 마셨다. 원추리꽃 행렬의 끝에 뭔가가 보였다. 머리가 잘려나가고 상반신만 남은 거대한 석상 하나가 비스듬히 몸을 틀고 앉아 숲의 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팔이 두개씩 모두 네개가 달려 있었는데 덩그렇게 빈 머리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그 뒤로는 어른 키만한 크기의 다른 석상들이 앞의 석상 하나를 보호하듯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석상이 향한 방향 쪽으로 널찍하면서도 굴곡진 길이 보였다. 왠지 사방이 지나치게 고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어디선가 휘파람소리가 끼어들었다. 정말 사람이 부는 휘파람소리였다. 굴곡진 길 저 앞에서 갑자기 자전거 한대가 나타났다. 모자를 쓰고 유니폼을 입은 우체부였다. 우체부는 브레이크를 잡아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원군을 만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행정구역상 아무런 표시도 없다고 했잖아.”

“글쎄 그랬는데.”

굴곡진 길을 몇분쯤 더 걷자 길이 왼쪽으로 꺾이며 약간의 경사가 생겼다. 숨을 헐떡이며 경사진 길을 한참 걸어내려가자 바닥이 평평해지면서 길 끝에 뭔가 보였다.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숲 한켠에, 잘라놓은 케이크의 단면처럼 층층이 색이 다른 흙을 높이 쌓아올린 조형물이 있었다. 그 위에는 돌을 깎아 만든 커다란 코뿔소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생경한 풍경에 놀라 꼼짝도 못하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코뿔소 가까이 다가갔다. 코뿔소 몸통에 선명하게 표현된 인간의 전신상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고 몸을 돌려 숲을 돌아봤다. 숲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로부터 멀어지려는 것 같았고 우리는 뜻 모를 상실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전에 이곳에서 우체부가 나왔다는 것을 모든 의혹을 부정하는 증거로 삼은 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경사진 길을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골반이 아파.”

그녀의 말에 피식 웃기도 했지만 우리는 다시 긴장했다.

경사진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시야가 트이고 넓어졌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 햇볕이 붉은 흙길을 비췄다. 그때 길의 전방에 뭔가 보였다. 거대한 호리병 모양의 항아리를 세워놓은 듯한 붉은 흙집은 5단 높이의 석탑 모양으로 꼭대기가 뾰족했다. 흙집의 표면은 풍화에 의해 뭉그러졌지만 중간쯤에 있는 작은 구멍은 네모반듯했다. 그녀가 흙집 앞으로 다가가 잔뜩 뜸을 들이다가 구멍 안으로 팔을 넣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다가가 얼굴을 대고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검고 어두운 흙집 내부는 네모반듯한 구멍으로 들어오는 최소한의 흰 빛만 흐르고 나머지는 모두 검었다.

해가 지려는지 숲이 짙은 청색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붉은 흙집들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나왔다. 또 흙집들 뒤로 연결된 작은 숲길로도 여러번 들어갔다가 흙집 앞으로 나오길 반복했다. 우리가 홀린 듯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숲속 어디선가 나직한 전자음 같은 것이 들려왔다.

“더 못 가겠다. 그냥 가자.”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들떴다. 나 또한 겁이 나서 심장이 벌렁거렸고 그 반동으로 뱃살들이 지나치게 출렁거렸다. 흥분한 상태에서 뒤로 돌아서던 나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주저앉으면서 왼쪽 다리의 복사뼈를 접질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지만 멀쩡하던 배가 아프고 사지의 힘이 빠졌다.

“그럼 여길 또 오자는 거야? 그건 싫어.”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내 복사뼈를 내려다보며 똑같이 싫다고 말했다. 그리고 땀에 젖어 축 늘어진 옷을 추스른 뒤 좀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묶어놓은 해먹이 보였다. 해먹의 그물 사이로 반파된 듯한 건물의 귀퉁이가 비스듬히 보였다. 우리는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무너진 사원 벽의 일부를 떼어 옮겨놓은 것처럼 한쪽 벽면만 남은 건물의 색깔은 짙은 회색이었다. 땅과의 접촉면에는 색이 짙고 커다란 열대의 이끼가 붙어 있고 흰 나무뿌리들이 담쟁이넝쿨처럼 벽을 타고 하늘로 뻗쳐오르는 중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벽면 여기저기에 그림이 부조되어 있었다. 머리에 손을 올리고 춤추는 여자, 얼굴이 없는 여자, 한쪽 팔만 남은 남자, 몸은 사라지고 발만 남은 사람들, 다양한 몸짓의 사람들로 벽면이 꽉 차 있었다.

그때 아까의 그 전자음이 좀더 확연하고 큰 소리로 들려왔다. 좁은 금속관을 통해 들리는 여자의 음성은 높지도 낮지도 않았고 가볍게 몸이 흔들릴 정도의 경쾌한 리듬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어려운 시절에 많이 불렀다는 대중가요 벵가완 솔로였다. 솔로 강가에서 지나간 추억과 사랑을 생각한다. 나는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그냥 주현미 아냐?”

그녀의 말에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하늘은 짙은 청회색으로 물들었고 반파된 집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들 뒤로 몰려온 어둠이 서서히 발밑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 반파된 건물을 지나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숲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시적으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길 반복했다.

요새처럼 숨어 있는 마을이 보였다. 평평한 공터 위에 약간의 경사를 둔 채 물웅덩이처럼 파인 안정된 저지대에 숨어 있었다. 동서로 집이 한채씩 우뚝 서 있고, 공터의 한가운데에는 석상과 제단처럼 쌓아올려진 돌조각들이 있었으며 집 뒤로는 짙은 숲이 몇겹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서쪽의 흰 집, 동쪽의 붉은 집은 멀쩡해 보였다. 다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경사진 언덕 위쪽이고,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어서 눈앞에 있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좀더 아래로 내려갔다.

숲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들 뒤로 서둘러 몰려온 어둠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마술나라 오즈에 떨어진 금발의 도로시처럼 뱅글뱅글 몸을 돌리며 하늘만 쳐다봤다. 우리는 어느새 마을 한가운데 서 있었고 이쯤에서는 뭔가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했다.

“저기, 여보세요. 아무도 안 계시나요?”

나는 서쪽의 흰 집, 그녀는 동쪽의 붉은 집 가까이 다가가며 각자 목소리를 냈다. 허공에다 대고 두번쯤 소리를 질렀을 때 흰 집 출입문에 달린 커튼이 천천히 들리며 그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녀는 놀라 내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기척도 없이 나온 사람은 키가 작고 마른 남자였다. 남자는 눈자위를 심하게 굴리며 문밖으로 나오더니 세개의 계단을 천천히 밟고 내려와 우리 앞에 섰다. 눈을 감고 있었으므로 나이를 잘 알 수 없었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겁에 질려 남자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남자는 한참동안 눈동자를 굴렸고 콧등을 실룩이며 눈앞을 응시하려고 노력했다. 저들에게 빛의 파장은 어떤 무늬로 보일까. 정말 희미한 빛 한줄기조차도 보이지 않을까. 눈먼 사람들은 정말 완벽한 암흑의 세계만 볼 수 있을까. 나는 알고 싶었다. 눈먼 남자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고 콧등을 실룩이며 냄새를 맡았다. 잡히지 않는 어떤 것을 잡으려고 온 감각기관을 총동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우리는 땀냄새 나는 자신의 몰골을 살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느린 걸음으로 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나와 동쪽의 붉은 집으로 갔다. 문앞에 서서 지팡이로 문틀을 탁탁 쳤다. 그러자 그 집에서도 체구가 작고 눈먼 남자들이 하나둘 밖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팔 한짝이 없거나 다리 한짝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어두워지는 숲속에서, 눈먼 사람들이 평평한 공터의 한곳을 향해 천천히 모여들었다. 우리는 점점 거리를 좁혀들어오는 눈먼 사람들에게 둘러싸였고 겁에 질려 공터 한가운데 서 있는 석상 옆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피커에서 갑자기 벵가완 솔로의 볼륨이 거의 최대치가 되어 흘러나왔다. 그러자 눈먼 사람들은 상체만 곧추세운 채 집 안으로, 집 뒤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숲속에서 또다른 눈먼 사람 하나가 공터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개구리처럼 들뛰던 사람들은 각각 나무막대기며 칼이며 곡괭이를 하나씩 들고 몸을 끌다시피 움직여 공터로 다시 모였다. 그리고 남자의 발밑에 모여 앉아 모두 고개를 바짝 든 채 부동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싸쥔 채 거의 울상이 되었다. 땀에 젖은 옷이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때 그녀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소지품 가방 버클이 뚝 끊어져버렸다. 가방이 땅으로 떨어졌고 지퍼가 열린 틈에서 담배가 나왔다. 놀랍게도 눈먼 사람들이 일제히 코를 흠흠거리며 팔을 치켜들고 뭔가를 달라는 시늉을 했다. 담배였다. 그녀가 담배 한갑을 열어 한개비씩 다 돌리자 눈먼 사람들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눈먼 사람들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어떤 사람은 반쯤을 남겨 담배를 받지 못한 옆사람에게 돌렸다. 모두 스무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여기에 모여 사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분위기가 나아졌다고 생각한 그녀가 정중하게 말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뭉근한 음식 냄새가 퍼져오기 시작했다. 벵가완 솔로는 여전히 들려왔고 누군가는 마당 한가운데 솥을 걸고 불을 피웠고 누군가는 밥그릇을 가져왔다. 누군가는 사원에 불을 켜듯 촛불을 켜 돌기둥들 위에 올려놓았다. 눈먼 사람들의 눈자위는 더 검게 꺼져들어갔다. 그들은 작은 그릇에 담긴 죽을 떠먹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입가에 흘렸다.

우리는 몸을 동그랗게 굽히고 입과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겁이 나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죽을 다 먹은 한두 사람이 먼저 일어나 집 앞을 배회하거나 입고 있는 옷을 벗어 꼼꼼히 털었다. 식사가 끝나자 눈먼 사람들은 서쪽의 흰 집, 동쪽의 붉은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기 시작했고 겁에 질린 우리는 집 안에 켜진 희미한 불빛만을 의지한 채 그들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창이 나 있어 답답하지도 않았고 한사람 한사람이 눕거나 앉아 지낼 수 있게 자리가 깔려 있었다. 눈먼 사람들은 등만 보인 채 허공을 보고 앉아 있었다. 눈먼 사람들은 천장에 매단 줄에 걸린 널따란 흰 천의 한 귀퉁이를 자신의 재봉틀 속으로 끌어와 끊임없이 재봉틀을 돌렸다. 눈먼 사람들은 눈자위는 허공을 향한 채 두 손으로 나무 위에 음각을 새겨넣고 있었다. 벽마다 켜진 등은 조도가 매우 낮아 눈먼 사람들의 몸에 짙은 그늘이 졌다.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던 눈먼 사람이 갑자기 몸을 돌려 내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눈꺼풀을 심하게 껌뻑거리며 내 다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남자는 다친 왼쪽 복사뼈를 금세 찾아냈다. 누가 누구를 취재하러 왔는지, 어쩌다 상황이 역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복사뼈 위의 도드라지게 부어오른 살 부근에 압력이 들어간 남자의 손이 멎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남자는 몸을 일으켜 벽 쪽에 높이 세워둔 종이상자 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상자를 여러개 내리더니 그중 한 상자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비닐봉지 속에는 바싹 마른 풀이 들어 있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집 바깥으로 나와 계단 앞에 앉았다. 눈먼 남자는 마른 풀을 돌로 찧었다. 왼손에 들린 약초와 오른손에 들린 돌멩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눈먼 남자는 찔꺽거리는 약초를 내 복사뼈 위에 올렸다. 나는 힘줄이 도드라진 남자의 손과 연신 실룩거리는 그의 눈자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가 허리를 굽히고 남자에게 물었다.

“캠프 레이크가 없어진다는 소식 들으셨죠? 여기 계신 분들이 거기 땅주인이라고 주장하셨다면서요? 시청에 불을 지르셨죠?”

눈먼 남자는 손을 뻗어 내 복사뼈 위에 올린 약초를 꼭꼭 눌렀다. 입으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눈먼 남자가 내 손을 가져다가 손바닥 위에 무엇인가를 썼다.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가 사진을 한장 보여줬다. 크기가 작고 색이 바랜 옛날 사진이었다. 총을 든 병사가 어딘가에 기대어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도, 지명도, 심지어 얼굴마저도 뭉그러져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눈먼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그만 가라는 뜻이었다.

벵가완 솔로는 점점 귀에서 멀어졌다. 밤의 습기가 온몸을 감싸고 붉은 흙기운이 숨통을 막았다. 몹시 추워 몸이 떨렸다. 나와 그녀는 눈먼 사람들 몇이 줄을 서서 비춰주는 긴 불빛을 따라 밤의 숲속을 걸어나왔다. 그들은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침소리조차도 내지 않았다. 내 가방 속에는 눈먼 남자가 넣어준 약초가 든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눈먼 사람들의 행렬이 천천히 움직여 후미가 선두가 되고, 선두가 후미가 되어 숲으로 사라지는 풍경은 유장하고 아름다웠다. 나와 그녀는 눈먼 사람들의 행렬의 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죽어라 뛰었다.

 

N시에서의 시간은 하루가 더 남아 있었다. 그녀는 몸살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준비 때문에 일찍 출근했고 나는 그녀의 집에서 짐을 싸들고 나왔다. 커피집에 들어가 독한 커피를 마셨다. 길 건너편에 있는 한의원이 보였다. 커피집에서 나와 한의원까지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접질린 복사뼈에 부항을 뜨고 침을 놓았다. 사십분 정도 치료를 받고 나오려고 할 때 한의사가 말했다.

“덩치가 큰 분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타격을 입을 수 있어요. 항상 조심하세요.”

나는 얌전하게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대답했다. 발걸음이 자연스레 가까운 시장 쪽으로 향했다. 수산물과 청과물을 파는 가게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들이 보였다. 머리는 텅 비었는데도 내 아픈 다리는 열살 무렵 부모의 손을 잡고 자주 갔던 순대국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비좁은 시장골목을 뱅글뱅글 돌아도 돼지머리가 놓여 있고 뜨거운 국물이 펄펄 끓는 무쇠솥이 두개나 걸려 있던 순대국집은 찾을 수 없었다. 순대국집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찐빵가게 또한 찾을 수 없었다.

불편한 걸음걸이 탓에 괜히 남의 가게 앞에 놓인 빗물받이통이나 발로 건드리고, 안 그래도 손님이 없는 좌판 아주머니들 신경만 거스른 것 같았다. 결국 어느 골목 한귀퉁이 식당에 들어가 순대국을 먹긴 했다. 오소리감투나 순대나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누린내가 심해서 생전 처음으로 구토가 나려고 했다.

너무나 작은 도시여서 캠프 레이크 주변을 한바퀴 도는 데 택시로 삼십분이면 충분했다. 분지의 정중앙을 차지한 그곳은 전쟁이 끝난 어느 싯점부터 내내 이 도시에 있었다. 그 안의 일부나마 공개된 것은 중국 민항기가 연료가 떨어져 불시착했을 때뿐이었다.

그곳의 담벼락 바로 아래에 있는 N시의 기차 종착역 쪽에서 본 풍경은 훨씬 더 음산했다. 기차역은 리모델링을 위해 폐쇄되었고 역사 주변에 있던 다방, 당구장, 식당 건물들도 비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N시의 끝에 자리한 기차역의 위치가 실제 시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보다 훨씬 뒤로 밀려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역은 캠프 레이크의 중간쯤에 세워졌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둥근 철조망이 쳐진 허공 위로 잠자리 날개 모양의 로터를 단 헬리콥터들이 날아가지 않을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강 쪽에서 진입하며 바라보는 캠프 레이크의 풍경이 역시 제일 괜찮았다. 도시가 얼마나 작은지 운전사는 시내를 다 돌고는 차를 세우며 말했다.“여기가 끝이오!”

배다른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학교 체육관에서 연습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일이 빨리 끝나면 학교로 가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여러번 N시에 왔고, 그를 불러내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씨뮬레이션을 수없이 했지만 한번도 그래본 적은 없었다.

제 말에 의하면 부모 빽이 없어 대학도 못 간 이십팔세의 미혼 청년. 학생시절 내내 수륙양용의 운동선수였으나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한 불운아. 현재 직업은 N시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우리는 한밤중에 가끔 문자메씨지를 주고받았다.‘언니, 나 음주운전으로 면허 또 취소됐어. 벌금만 모았어도 집 샀겠다.’그러다 막상 통화를 하게 되면 너무나 어색해지는 두 사람. 어쨌든 그는 나를 누나라는 호칭 대신‘언니’라고 불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올라간 학교는 방학중이라 조용했다. 체육관 가까이 다가가자 탕탕 울리는 농구공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체육관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려던 나는 그만 몸을 숨기고 말았다. 저만치 골대 앞에 서 있는 그와 농구부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가 앞줄에 서 있는 대여섯명의 뺨을 차례로 때렸다. 아이들은 키가 크고 비쩍 말랐지만 멀리서 봐도 반항기가 짙었다. 그에게 뺨을 맞은 한 아이가 손에 든 공을 그를 향해 날려버렸다. 공이 탕탕 소리를 내며 체육관 바닥으로 굴러가는 사이, 두 사람은 유도선수들처럼 엉켜붙었다. 고요하던 체육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학교에서 걸어내려오면서 내내 망설였다. 그러다 골목 끝 제과점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전화를 걸었다. 싸움이 끝났는지 그는 샤워를 하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와 나는 팥빙수를 시키고 제과점에 마주앉아 천장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선풍기만 쳐다봤다. 그가 자꾸 한쪽 팔목을 돌렸다.

“팔 아프니?”

“응. 이거 옛날에 다친 건데 요새 자꾸 아프네. 덩치는 여전하네, 언니. 그래 웬일이유?”

“취재가 있어서 왔어. 그래, 넌 잘 지내니? 아버지 제사는 잘 챙기구?”

그는 여전히 팔목을 돌리며 씩 웃었다.

“한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언니는 책상 앞에 앉아 글쓰며 편안히 사는데, 난 왜 이렇게 몸뚱이를 굴려먹고 살아야 하는지. 우라지게 고단하네.”

“어머니는 잘 지내시지?”

“잘 지내겠지 뭐. 내가 말 안했나? 시집갔잖아.”

그는 팥빙수 그릇을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무슨 취재야? 여기 취재할 게 뭐 있어?”

“캠프 레이크.”

“아 그거. 그게 왜? 난 거기다 오백층짜리 빌딩이나 하나 지었으면 좋겠어. 오백층짜리면 대충 이천 미터쯤 되겠네. 여기 있는 제일 높은 산보다 더 높게 짓는 거야. 승강기 타고 몇분 만에 오백층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지. 매일 그거 타고 올라가서 동쪽바다나 실컷 내려다봤으면 좋겠다. 내가 옛날에 리바운드가 영 아니어서 게임만 끝나면 선배들에게 싸대기 맞았거든. 어때? 끝내주는 리바운드잖아.”

그와 헤어진 후 N시 전체가 잘 내려다보이는 호텔로 갔다. 호텔 정원 옆에 딸린 작은 수영장이 보였다. 수영장은 비어 있었다. 나뭇잎들, 플라스틱 조각들이 수면 위에 떨어져 있었다. 물에 손을 담근 채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물속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 타고 다시 시내로 나갔다. 투엑스라지 싸이즈 수영복은 서울이나 N시나 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후에도 수영장은 비어 있었다. 비치타월은 호텔에서 빌려줬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파라솔 밑에 핸드폰과 가방을 올려놓았다. 물은 아주 파랗고 차가워서 다리를 담그기조차도 어려웠다. 그나마 햇볕이 따뜻한 게 다행이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물속에 몸을 넣었다. 물속은 오히려 따뜻했다. 다른 수영장들처럼 소독약 냄새가 지독하지 않은 게 제일 좋았다. 물은 굉장히 미끄러웠고 몸이 잘 떴다.

십 미터도 안되는 풀을 몇번 왔다갔다했다. 눈을 감으면 숲속의 시간이 떠올랐고 미끈거리는 물이 내 몸을 죄는 느낌이 들어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숨이 차서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나뭇잎이 입가에 붙어 있었다. 몸에 힘을 줄 때마다 왼쪽 복사뼈 부근이 뻐근했다. 풀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길 여러번 반복했다.

배가 고파서 쌘드위치를 주문해 빵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후로도 물속에서 한참을 더 놀았다. 해가 지기 직전까지도 물 색깔은 아주 파란색이었다.

썬베드 위로 올라가 앉아 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나무들 사이로 펼쳐진 조금은 산만한 듯한 대낮의 분지 풍경도 내려다봤다. 비치타월을 덮고 누워 눈을 감았다. 한참 후, 감색 정장을 입은 호텔 직원이 눈앞에 서 있어서 잠에서 깨어났다. 해가 지고 난 뒤였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N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N시의 한가운데 검게 떠 있는 캠프 레이크가 동공처럼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공청회가 끝나고 밤이 늦어서야 그녀가 왔다. 회의장 안에서는 분명하게 편이 갈려 격론을 벌였고, 회의장 밖에서는 장내로 들어가 자신들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몰려와 몸싸움을 벌였다고 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종아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는 그녀, 들어오자마자 스타킹을 벗고 바닥에 엎드렸다.

“다리 좀 밟아주라.”

나는 아프지 않은 발에 살살 힘을 주어 그녀의 종아리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의 다리를 밟아주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인 것 같기도 했다.

“회의중에 갑자기 회의장 창으로 보이는 건너편 호수에서 불길이 치솟는 거야. 그 호수 다리 위의 아치에 불이 붙어서 소방차 오고 정말 난리였어. 산에 있던 그 사람들 아닐까? 전에도 시청에 불이 났었어. 넌 하루종일 뭐 했니?”

“그냥 잤어. 눈먼 사람들이 무슨 불을 질러? 그래서 그 자리엔 뭘 한대?”

“땅밑은 기름범벅, 아무것도 못 짓는다네. 그만 얘기하자.”

“그래도 뭘 하든 땅은 파야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야. 거기 기름보다 더한 게 묻혀 있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니니. 졸려 죽겠다.”

그때 마침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동료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머리손질을 하고 립스틱을 바르더니 통화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집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냥 가?”

내가 볼멘소리를 하자 그녀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빨리 엎드려. 시간 없어.”

이번엔 그녀가 내 다리를 밟아줄 차례였다.

“일년 후 이맘때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이나 가자. 누가 그러는데 암스테르담이 끈적끈적하고 낭만적이어서 여행하기에 참 좋대.”

얼마나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그녀의 발바닥이 핫팩처럼 뜨거웠다. 그녀는 나가기 전 문앞에 서서 우리가 헤어질 때마다 하는 말을 잊지 않고 했다.

“그때까지 살 좀 빼보자! 그런데 나 이번에 너무 놀라서 좀 빠진 거 같아, 그렇지 않니?”

수영을 한 탓인지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 금세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나는 숲속에 눈먼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거대한 나무들과 초록의 그늘, 목이 잘린 석상들, 세상을 꿰뚫어보는 듯한 돌 속의 얼굴들, 열기로 꽉 찬 숲속에서 나는 읊조리는 듯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숲 저쪽에서 척추를 쓰지 못하고 누워 있던 엄마가, 사뿐한 걸음걸이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흰 바지에 분홍 셔츠를 입고 숲 한가운데를 향해 예쁘게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는 아주 젊고 말짱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서울로 가는 직행버스 시간까지는 세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배다른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시내로 나오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팔목을 잡아 돌리고 있었다. 나와 그는 식당에 들어가 불고기백반을 시켰다. 풋고추와 상추, 열무김치와 된장찌개를 곁들인 푸짐한 밥상이었다. 밥값을 내려고 했더니 그는 굳이 대접을 하겠다며 덩치 큰 나를 단숨에 식당 밖으로 밀쳐냈다.

식당에서 준 커피를 들고 나와 시내를 걸었다. 너무나 작은 도시여서 금세 또 시내를 다 돌고 할 일이 없어졌다.

어디 간다는 말은 안하고 무조건 한의원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딱딱한 침대에 엎드려 한의사가 놔주는 침을 맞은 나와 그는 분홍색 커튼을 사이에 두고 엎어져 있었다. 그는 어깨와 뒷목 그리고 허리까지 거의 전신에 침을 맞았다. 한의사 말로는 그의 몸속에 멍이 들어 있다고 했다. 멍이 몸속을 돌아다녔을 거라며 그동안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숲에서 접질린 복사뼈에 부항을 떴다. 한의사는 고맙게도 덩치 큰 분들은 항상 뼈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또 했다. 잠시 후, 커튼 옆에서 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부항 뜬 발목을 비추는 주홍색 불빛이 몸을 따뜻하게 했다. 주변이 너무나 고요했고, 고요함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침을 흘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갑자기 이완되었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