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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진성 朴鎭星
1978년 충남 연기 출생. 2001년 『현대시』로 등단. darkred0604@hanmail.net
아라리[a_ra_ri]: 1. 귀로 들어왔다 아우라지 지날 때 이명처럼 울먹이던 겨울나무의 고요는 아라리 몸을 빌려 바람분다 아리랑 쓰리랑 합방하던 날처럼 支流 합쳐지는 곳에서 물고기 튀어올랐다
2. 1996년 정신병동, 팽팽한 신경 속으로 파고드는 어머니 울음, 전율하면 우두둑 대나무가 부러졌지만 아파서 의사가 왔던 것인지 의사가 와서 아팠던 것인지 어머니, 나무가 몸뚱어리 마구 흔들어 바람붑니다 공주 학하리 함양…… 어디로 더 간단 말입니까 아라리요,
3. 풍란이거나 건란 뿌리 드러내면 거실바닥 날벌레 가득하고 걸레로 닦아내며 만져보는 날벌레 뒷다리와 뒤엉켜 햇살 받고 기어다니고 시집과 시집 사이 침엽수림, 엷은 잠 속에서 아라리는 뾰족했다
4. 아라리 몸에 들이고 약을 밀어냈다 자주 알프라졸람과 바리움 열꽃 피듯 몸에 번지면 거실에 쏟아지는 햇살이거나 창문 틈으로 죽어라 달려드는 눈발이거나 같이 뒹굴었다 끊어질 듯 빳빳한 신경줄의 우울을 고요로 만들기 위해 뒹굴었다 아라리의 낟알은 오래 몸에 쌓아두었던 알약을 닮아 있었다
5. 많이 늙으신 어머니 주름에서 아라리 노곤한 몸뚱어리 출렁이면 물빛 저녁, 시장에서 몰고 온 간고등어 도마에서 팔딱거린다 물결무늬 손에 들인 어머니의 아라리가 아우라지 아우라지 病의 오래된 꼬리를 잘라낸다 남을 위해 울어본 적 있느냐, 저녁 먹는다 아라리 먹는다
밤나무에 묻다
절름발이 명수 아버지는 간암 선고받고 목매달았다 신촌리 윗말 밤나무에 매달려 밤이 되었다 어린 내 볼에 그가 얼굴 부비면 밤송이처럼 환하게 열리던 공포, 한쪽 다리에 월남 원시림 품고 그이는 금강으로 갔다
가난은 울음이 아니다, 江心으로 나아가는 배는 침묵을 싣고 무거워진다 다리뼈 하나만큼 안개 절뚝이며 살갗에 닿는다 나는 흐린 시야에 기대어 뻣뻣한 다리를 만지작거린다 윗말 명수네 우물 속 밤송이 몇개 제힘으로 열리고 있으리라
가난한 밤나무가 금강 물줄기를 끌어올리는가
배가 먼 산에 매달리고 있었다
폐가
제 몸 뒤집은 밤나무 한그루 뿌리를 만지는데 무너진 토담 사이 뱀들이 기어다닌다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면 울울창창 밤나무숲, 유월의 밤나무숲은 弔花다 솟아오르려는 듯 흰 꽃 매달고 서 있는, 유월의 밤나무숲은 성가대다
밤나무 패서 만든 장작은 잘 말라 쉽게 불타오를 것이다 끝내 이 집에서 내려오지 않던 할머니가 쌓아둔 장작더미, 외할머니 다리처럼 死後强直 오는지 뻣뻣한 침묵으로 집을 떠받치고 있다 광목천 걷어올리고 당신 몸 만지다 배꼽 근처 옹이처럼 돋아난 종기를 보았다 이제 뿌리는 수액을 밀어올리지 않는다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잔솔가지 위에 밤나무 장작을 얹는다 밤나무는 저리 쉽게 점화되기 위해 자신의 육체 말리고 있었던 거다 마른 장작 타닥타닥 불티 뿜어내고 耳鳴처럼 그레고리안 성가 들린다 밤나무숲은 머지않아 이 집으로 내려올 것이다
폐가는 음악처럼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