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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병준 『한국전쟁』, 돌베개 2006

한국전쟁 연구의 새로운 지평

 

 

서동만 徐東晩

상지대 교수, 정치학 suhdm12@sanji.ac.kr

 

 

한국전쟁

한 분야에서 대작으로 꼽을 만한 저작이 나오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한국전쟁(이하 6·25전쟁)이란 주제에 가장 들어맞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해당 학자가 기울인 노력뿐 아니라 시대상황의 진전, 사료의 공개를 포함한 연구환경의 변화 등 많은 여건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6·25전쟁은 교전당사자 남북한, 미국, 중국뿐 아니라 소련, 일본 등도 개입한 동북아시아 전쟁이었고, 아직까지 휴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진행형이라는 복잡다단한 현실과도 얽혀 있다. 이런 가운데 목포대 교수 정병준(鄭秉峻)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와다 하루끼(和田春樹), 박명림(朴明林) 등의 대표적인 선발업적에 필적하며 쟁점에 따라서는 이를 넘어서는 대작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을 내놓았다.

이 책에서 정병준은 스스로도 강조하듯이 이전 저자들과는 다른 독자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해서 1945년 8월 한반도의 한복판을 가로지른 38도선의 형성, 이를 둘러싼 미소의 갈등과 충돌 및 협상, 이후 남북한 사이의 소규모 알력에서 국지적인 군사적 충돌, 급기야는 전쟁에 이르는 전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다른 저작들이 미소관계, 남북 각각의 정부수립과 이에 따른 남북관계, 북중소·미중·한미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등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을 중시한 데 반해, 이 책은 1945년부터 50년에 이르기까지 38도선의 충돌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시적’접근을 하고 있다.

특히 이 38도선을 둘러싼 미소관계는 45년 해방 당시 미소에 의한 38도선 획정문제가 일찍부터 학계의 최대 쟁점이 됨에 따라 ‘얄따밀약설’과 ‘군사적 편의주의설’의 대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후 학계의 관심에서 사라졌다가, 전쟁발발과 관련하여 48~49년 남북간의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 6·25전쟁 발발 직전의 옹진공격설, 해주점령설로 다시 관심을 끌게 된다. 메릴, 커밍스, 양영조 등이 이 문제를 전쟁개시의 원인과 결부시키고, 무엇보다도 커밍스가 남측 선제도발에 의한 미국 ‘유인설’을 주장하면서 연구의 촛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38도선과 관련된 연구의 공백, 즉 46~48년 38도선을 둘러싼 미소점령군의 관계에 대한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이 대목을 이 저작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소 모두 38도선의 우발적 충돌이나 알력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채널을 유지하면서도 정작 남북 각각의 만남이나 교류 등은 공식적으로 일절 허용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38도선이 한반도 주민들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면서도 해당지역의 현장에서는 지표상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상의 선에 지나지 않았다는 저자의 발견은 그 자체로 한반도 분단에 대한 분노와 비애를 자아내게 하는 학문적 성취이다.

또한 이 책은 49년 7월 남측의 군사적 공세를 집중 분석하여 당시 형성된 남북 군사관계가 북측의 ‘도발받은 정의의 반공격’구상을 낳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실증하고 있다. 특히 49년 7월까지 우세했던 남측의 군사력이 이때를 기점으로 북측의 군비증강을 촉발하여 50년 6월 싯점에서 북측의 군사적 우위로 귀결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묘사한다. 남과 북, 미국과 소련 측 자료를 입체적으로 비교하며 개전 당시 남측의 옹진공격설, 해주공격설이 허구였음을 입증하는 작업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이 대목은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에서 제기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작업으로, 상당부분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학계에서 가장 논쟁이 치열한 전쟁의 성격과 관련해서 저자는 ‘내쟁 같은 국제전쟁’ ‘외전 같은 동족전쟁’으로 규정하며, 내전과 국제전이 결합된 복합적인 전쟁으로 보고 있다. 전쟁이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요 연구자들의 견해에 대해 당초부터 복합적 성격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38도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소가 전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발하려는 저자의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소련이 정당한 근거 없이 38도선을 획정하고 서로 인정했으나 그 속에서 38도선 인정을 거부하는 두개의 정부가 수립되어 마침내 이를 돌파하려는 전쟁이 발발했다는 기막힌 역설적 사태의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내 연구와 관련한 논평에서 저자는 박명림의 연구가 거시적·구조적 분석을 시도했으나 전쟁의 성격에 관해서는 전통주의적 침략전쟁론에 결론을 맞추어 사실분석을 꾀했다고 비판한다. 사료활용에서 출처의 확인과 그 성격 평가를 방기하는 등 문제점이 있었음도 적절히 지적한다. 이 책은 추가적 사료공개라는 후발연구의 혜택을 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밀한 사료비판을 통해 박명림의 작업을 능가하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 다만 미시적 접근을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38도선의 군사사(軍事史)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업적을 이루었으나, 거꾸로 거시적·구조적 측면이 소홀해졌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김일성이 스딸린의 전략게임의 졸(卒)에 지나지 않았다는 해석을 가하면서 스딸린의 전쟁개입을 중시한다. 러시아의 사료공개가 김일성, 박헌영의 주도를 강조하고 소련의 역할은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건전한 비판이다. 다만 이 문제를 38도선의 군사사 차원만으로 충분히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조선의 정권수립, 중국혁명의 성공을 포함한 북중소의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에 대한 좀더 거시적인 분석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그토록 전쟁개시를 주저하던 스딸린이 마침내 결심하게 된 원인으로 중국혁명의 성공을 들며 중국혁명과 6·25전쟁의 좀더 깊숙한 연관을 강조한 와다 하루끼의 연구와 비교해보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나아가 내전과 국제전의 결합이라는 전쟁의 성격 규정에서도 이 책의 과제는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소련과 중국이 배후에서 개입하고는 있었으나 북측의 남측에 대한 개전단계를 거친 다음 미국이 참전하고 이어서 중국이 참전하면서 각각의 작전지휘권도 미중이 장악하는 확전단계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전쟁의 단계에 따른 성격변화를 어떻게 파악하는가의 문제이다. 내전으로 개시된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들도 당초부터 국제전적 성격이 내포되어 있음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