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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유종일 柳鍾一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제학. 저서로 External Liberalization in Asia, Post-Socialist Europe, and Brazil(공저)등, 논문으로 「노사관계 변화의 정치경제학」 등이 있음. jyou@kdischool.ac.kr

 

 

1.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5·31 지방선거는 집권여당에게 사상 초유의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말이 지방선거지 실제로는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국민의 평가는 한마디로 F학점이었다. 7·26 재보궐선거는 더욱 극명하게 참여정부에 대한 민심의 향배를 보여주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 조순형 전 의원이 서울 성북을에서 44%의 득표율로, 지난해부터 파죽지세로 재보궐선거를 싹쓸이하던 한나라당의 후보를 이겼을뿐더러 전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인 여당 후보는 겨우 9%를 얻는 데 그친 것이다.

참여정부가 이렇게 참담한 평가를 받은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경제가 신통치 않다는 것, 특히 대다수 서민들의 생활형편이 어렵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민심이반의 전모를 설명할 수는 없다. 경제지표상으로 볼 때 지금이 IMF위기처럼 최악의 상황도 아닌데 선거결과는 너무나 참혹하다.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해줄 열쇠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 속에 있다. 노대통령이 지난 3월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참여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만들어낸 신조어다. 형용모순이요 어불성설이라 할 이 말에 노대통령은“이론적 틀 안에 자꾸 현실을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현실을 해결하는 해법에 좌파든 우파든 열쇠로 써먹을 수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떵 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진보적 언론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말로는 진보와 좌파인 양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노선이 줄기차게 관철되어왔다. (…)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이 가치충돌의 용어는 결국 말로 내세우는 것들과 실제 추진되는 정책 사이의 극명한 모순, 참여정부 국정철학의 혼돈을 압축해서 웅변하고 있다”는 『경향신문』 3월 25일자 사설이 대표적인 예다.

말은 ‘좌파’로 하고 행동은 ‘신자유주의’로 한 결과 참여정부 경제정책은 ‘정책혼선’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게 되었다.이는 무게감 없는 예스맨을 중용하는 인사와 더불어 ‘아마추어정권’ ‘무능정권’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또한 ‘좌파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은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과 함께 개혁과 진보를 기대했던 지지세력이 실망하고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한미FTA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여 언론과 세간의 관심을 사고 있는 이정우(李廷雨)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정태인(鄭太仁) 전 비서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들보다 먼저 좌절하고 돌아섰다. 그렇다고 보수파나 기득권층의 정권에 대한 반감이 누그러진 것도 아니다. 정책은 신자유주의라도 말은 좌파로 하면서 이들의 불안감과 적대감을 고조시킨 탓이다.

이 글에서는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경제정책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본다. 우선 전반적인 경제운영 성과를 거시적으로 평가한 후 분야별로 분배와 개혁이 실종되고 보수적인 정책기조가 등장하는 과정을 짚어본다. 마지막으로는 진보적 개혁정권이라고 믿었던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2. 참여정부의 초라한 경제성적표

 

참여정부의 경제성적은 초라하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집권 3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9%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5% 내외로 평가되는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도는 것이다.1 저조한 성장은 곧 국민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불과 연평균 2.8%에 머물렀고, 취업자 증가율은 겨우 연평균 1.0%를 기록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2002년 3.3%에서 2005년 3.7%로 증가했고, 특히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실업률은 동기간에 8.5%에서 10.2%로 늘어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좀 나아지나 했더니 최근에 다시 김이 빠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두 가지 변명을 한다. 하나는 김대중정부가 조장한 부동산 거품, 신용카드 거품, 벤처 거품 등 3대 거품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경제운용에 부담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는 3년간 성적 부진의 변명이 되지 않는다.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출범하여 집권 초년인 1998년에 -6.9%라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성장을 겪어야 했던 김대중정부의 5년간 연평균 성장률도 4.4%였음에 비추어 참여정부의 성적은 대단히 저조하다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변명은 단기적 경기부양의 유혹을 물리치고 장기적 안목에서 경제운용을 해왔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부양책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대신에 분배를 한 것도 개혁을 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이 대목에서 부동산정책을 들고나올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을 폈는데 참여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어려운 개혁을 단행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물론 ‘세금폭탄’운운하며 정부정책을 적대시하는 보수언론의 시각은 배제하고 하는 말이다.

‘투기와의 전쟁’을 한다며 많은 저항을 뚫고 보유세와 양도세를 대폭 강화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분명 박수를 칠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참여정부하에서 부동산가격이 급등했다는 사실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전국적 통계가 없기는 하지만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강남지역의 아파트값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국책 도시개발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가격이 급등했다. 건교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김영삼정부 5년이나 김대중정부 5년 동안 전국의 부동산가격이 각각 100조원 내외 상승한 데 비해, 2003~2005년 참여정부 3년 동안에는 821조원이 상승했다. 물론 이는 부분적으로는 공시지가 현실화를 반영한 결과지만 부동산가격 급등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의 수없이 거듭되는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뛰기만 하는 집값은 참여정부 무능의 상징이고, 서민들의 좌절감은 깊어갔다.

참여정부는 애초에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웠고, 그 덕에 분배를 강조한다며 좌파정권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데 분배가 개선되기는커녕 IMF위기 이후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참여정부 아래서도 다면적으로 진행됐다. 우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통계청의 소득 10분위별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 조사에 따르면, 하위 20%의 평균소득 대비 상위 20%의 평균소득이 2003년 1/4분기에는 7.81이었는데 2006년 1/4분기에는 8.36에 이르렀다. 임금분포도 악화되어 저임금근로자 비중이 2002년 23.2%에서 2005년 26.8%로 증가하여, OECD국가들 중 최고수준인 미국의 24.9%(2005년 기준)를 넘어섰다.

소득분배 측면뿐만 아니라 고용의 양극화도 심화되었다. 참여정부하에서도 비정규직은 크게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정확한 정의는 논란거리이지만 보수적으로 노동부의 자료를 보더라도 비정규직은 2002년 8월 384만명에서 2005년 8월 548만명으로 폭증했으며,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27.4%에서 36.6%로 증가했다.산업구조의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투자격차, 생산성격차, 임금격차가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제조업과 써비스업 간의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는 중이다.

정부는 분배의 악화가 세계화나 정보화 등의 불가항력적인 결과임을 강조하지만 그보다는 정책실패가 더욱 큰 원인이다. 분배를 내세웠으면서도 분배정책이 실종되어버린 것은 말은 ‘좌파’요 행동은 ‘신자유주의’가 된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중요한 단면이다.

 

 

3. 분배정책과 개혁정책의 실종, 그리고 한미FTA

 

참여정부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출범 초기부터 분배정책이나 경제개혁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라는 다분히 성장주의적인 구호를 내세우면서 대선공약에 담겨 있던 개혁지향의 정책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극화 해소를 경제정책의 최대 화두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말이 되어서다. 그나마도 대개는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급기야는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이것이 양극화 해소대책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선 분배와 관련하여 몇가지 대표적인 정책을 살펴보자. 참여정부 들어서자마자 제기된 정책이 법인세 인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야당후보의 법인세 인하 주장에 대해 극소수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면서 반대했는데, 집권 후 결국 성장론자들의 입장을 따라 법인세를 2% 포인트 인하했다. 소득세율도 1% 포인트 인하했는데 이 또한 과반수를 차지하는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임금근로자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고 고소득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이었다. 그 탓에 서민들의 세부담만 늘게 되었다. 반면 서민부담이 큰 유류세, 주류세, 담배세 등은 대폭 인상되었다. 결과적으로 상·하위 20% 계층간 조세부담률 격차는 2003년 5.16배에서 2005년에는 3.59배까지 좁혀졌다.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도입은 성과라고 하겠지만, 또 하나의 성과로 내세우는 근로소득보전세제는 아직 시범사업도 시작되지 않았을뿐더러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책이다.

재정지출 분야에서 복지지출이 약간 확대되기는 했지만 큰 변화는 아니며,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문제 등 보편적 복지기반의 구축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조세정책, 재정지출, 사회보험제도 등을 통해 소득분배를 개선한 정도를 측정했을 때, 김대중정부 시기에는 약간의 진전이 있었으나 참여정부의 성과는 전무했다.2

비정규직 급증은 참여정부 출범 이전부터 양극화의 핵심문제로 인식되었고,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보호 강화는 대선공약에서도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차별해소 남용방지’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은 늘어만 갔으며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도 계속 벌어졌다. 더구나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가려져 차별받는 비정규직 양산이 고용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일자리 만들기는 성장의존적인 정책으로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목표와 결합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저임금노동자 보호에서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최저임금제도 개선이나 비정규 보호정책이 계속 늦춰진 것이다.

분배정책 면에서도 중요한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실패의 과정과 까닭은 이렇다. 우선 정부의 정책의지에 문제가 있었다.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장기대책으로 보유세 강화, 단기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핵심이라는 것은 경제이론의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작년 8·31대책과 금년 3·30대책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내용들을 제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미 부동산값은 엄청나게 뛴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은 항상 뒷북치기였고, 혹시나 시장에 충격을 줄까 염려라도 하는 듯 매우 미약한 내용이 반복되었다. 적극적으로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부동산 거품의 붕괴가 가져올 경기에 대한 부담을 염려하여 결과적으로는 거품을 키웠다.

또한 정책혼선도 거듭되었다. 정부와 당과 청와대가 걸핏하면 엇박자를 내면서 정책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한편으로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투기를 부추기는 각종 개발정책을 남발하여 부동산가격 앙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최근 행정개혁시민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경제학자와 부동산학자 들은 부동산가격 급등원인으로 ‘현정부의 무분별한 전국적 개발정책 탓’을 첫째로 꼽았고, 이에 따라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100점 만점에 47.2점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 7월초까지 발표된 총 971건의 부동산정책을 분석한 결과, 개발지향적 정책이 전체의 31.7%를 차지해 28.4%를 차지한 투기억제지향적 정책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참여정부는 경제개혁에서도 뒷걸음질로 일관했다. 2003년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하고 이에 따라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등 금산분리의 강화와 공정거래 강화 등의 개혁정책을 추진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후기 들어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이 제대로 추진되길 기대한 이들은 정권 초기부터 당황하고 실망하기 시작했다.

정권 출범과 더불어 등장한 경제현안은 SK그룹의 분식회계 사건과 카드사 채권문제였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경제현안을 통해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안정논리에 치우쳐 개혁을 실종시켰다(장하성 「개혁만이 안정과 성장을 달성하는 길이다」, 『철학과 현실』 2003년 가을호 참조). 특히 SK사태와 관련해서는 어려운 경제현실 운운하면서 검찰수사를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정권 핵심부에서부터 나왔다. 결국 천문학적 부실이 드러난 SK글로벌을 퇴출시키지 않고 계열사들을 동원하여 회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카드채 문제에서도 구태의연한 관치금융 수법을 동원하여 유동성 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책당국이 개입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수수방관하다가 최악의 수법으로 개입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개혁 후퇴의 적나라한 실상은 금산법(金産法) 논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4년 금감위는 재벌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일제조사를 통해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을 포함한 총 10개 금융계열사들이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사실을 적발했다. 다른 회사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법위반 상태를 해소할 계획을 보고하고 또 실제로 이행했으나 유독 삼성만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정부가 2004년 말 시정명령권과 벌칙조항 등을 집어넣은 금산법 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하기에 이르렀으나, 막상 이듬해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엉뚱하게도 삼성의 과거 법위반에 대해 완벽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었다. 열린우리당 박영선(朴映宣)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정부는 삼성이 한 법무법인에 의뢰해 작성한 소견서를 기초로 입법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후 금산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매우 미약한 내용의 수정안이 재경위를 통과했으나 아직도 그 향배는 미궁에 빠져 있다.

노동개혁도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시작한 참여정부의 노사관계정책은 오히려 심각한 노정갈등에 휩싸이면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했던 박태주가“참여정부는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을 내세우더니 실제 정책에 있어서는 ‘노동배제적 노사관계 정책’을 추진하였고 종국에는 ‘노동의 위기’를 낳고 말았다”는 평가를 내놓는 실정이다(「노동의 위기, 사회의 위기」, 『참여정부의 정책과제와 향후전망』, SK경제경영연구소 2005).

‘좌파 신자유주의’정책은 분배정책과 개혁정책의 실종을 낳았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적극적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한미FTA의 추진에까지 이르렀다. 한미FTA는 졸속 추진이나 밀어붙이기식 강행도 문제지만, 양극화 심화나 금융 불안정, 심지어는 공공정책의 제약이나 왜곡 등을 초래할 수도 있어 그 자체로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크게 우려되는 정책이다. 한미FTA추진의 배경에는 ‘선진통상국가론’에 의한 경제발전과 한미동맹 강화에 입각한 안보 확보를 양축으로 하는 국가발전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길일 뿐만 아니라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선진국으로 가는 방법이라는 ‘숭미주의(崇美主義)’적 태도와 ‘탈아입미(脫亞入美)’적 사고방식이 배후에 깔려 있는 것이다. 유럽식 모델을 선호한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선택하고, ‘동북아중심국가’와 ‘동북아균형자론’을 주창하더니 미국과의 경제·안보동맹 강화로 나아가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지만 ‘좌파 신자유주의’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4. 왜 이렇게 되었나

 

참여정부가 대선공약과 지지세력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분배와 개혁을 외면한 채 구태의연한 성장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회귀한 까닭은 무엇일까? 세 가지 가설을 설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구조적 제약론’이다. 경제정책의 결정에는 정부의 의지와는 별개로 자본주의구조나 시장논리가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누가 집권하든 대체로 성장을 우선시하고 시장을 존중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가설이다. 80년대초 최초의 사회당 출신 프랑스 대통령 미떼랑이 초기에 다소 급진적인 경제정책을 시도하다가 자본유출 등으로 한계에 부딪치면서 우선회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이는 원래 체제내의 개혁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급진좌파들의 논리인데, 우파인사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The Lexus and the Olive Tree)에서 제기한,“세계화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경제성장은 얻지만 경제정책의 선택권은 잃는다”는 소위 ‘황금 구속복’(golden straightjacket)론도 유사한 논리다. 정치권에서는 책임회피용으로 자주 쓰인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약속했던 개혁적 경제정책을 실시하지 못한 것을 채권시장의 압력 탓으로 돌린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봄에“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분배와 개혁을 추진하다가 시장의 저항에 부딪쳐 정책을 수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범 초기부터 보수적이고 구태에 젖은 경제관료들에게 정책을 맡겼으며, 분배와 개혁은 간데없이 2만 달러 구호와 재벌에 대한 투자 구걸이 등장했다. 초기에 이정우 정책실장이나 이동걸(李東傑) 금감위 부위원장 등 소수의 개혁적 인사가 참여하기는 했으나, 이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정책결정의 주요 포스트는 모두 경제관료들로 채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적 인사들은 그나마도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제는 의사결정 라인이 거의 완벽하게 경제관료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둘째, ‘권력주체 한계론’이다. 노대통령 개인의 한계, 소위 386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실세참모들의 한계, 그리고 영남 개혁세력의 한계 등에 주목하는 것이다. 노대통령 개인의 한계는 강준만(康俊晩)이 강조한 바 있다. 어설픈 마끼아벨리가 되어 끊임없이 극한투쟁을 추구하고, 아부를 좋아하여 무조건적 충성파를 곁에 두고, ‘허풍의 악순환’에 빠져 언행일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리는 노무현」, 『인물과사상』 2004년 9월호).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개혁적 학자 중 하나인 서동만(徐東晩)도 『오마이뉴스』에 2006년 7월 19일 게재된 인터뷰에서 청와대 수석급 관리들이 모두 예스맨으로 채워진 것이 정책실패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최장집(崔章集)은 386세대 권력주체들의 한계를 지적했다. “오늘날 386은 더이상 운동권도 아니고, 재야인사도 아니고, 시민사회의 비판세력도 아니다. 운동세력이 민주정부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으면서 권력을 갖고 조건도 갖추었으나 비전과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낼 실력이 부족하여, 여기저기에 이미 있는 것이나 혹은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끌어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득이익, 권력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였다는 것이다(「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주화세대의 과제」, 코리아연구원 개원 연설문, 2005.4.21). 임원혁(林源赫)은 집권당내 소수파로서 정권을 잡은 영남 민주화세력이, 민주화라는 가치보다는 영남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고 했기 때문에 양극화 해소처럼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닦고 광범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보다 대연정 제안처럼 자기정체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분석한다(「영남 민주화세력의 고민」, 『한겨레』 2005.8.30).

이러한 ‘권력주체 한계론’은 부분적으로 일리있는 지적이겠지만, 역시 일면적인 설명일 뿐이다. 이들의 한계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이들을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견인한 힘 또한 규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가설은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재벌, 특히 삼성의 영향력에 주목한다. 대선 당시 공약과는 무관하게 삼성 등의 영향력 때문에 경제정책은 시작부터 ‘개혁과 분배’보다는 ‘안정과 성장’쪽으로 방향이 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에 의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노대통령은 후보시절 유세를 다니면서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정책자료집을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으며, 정부 출범 직전에도 이 연구소로부터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대한 어젠다’란 제목의 방대한 보고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경제중심국가론’이나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은 삼성경제연구소 쪽에서 먼저 던진 화두였다고 한다. 이 연구소의 각별한 영향력은 윤순봉(尹淳奉) 부사장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광재(李光宰) 의원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쎈터 창립 심포지엄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제언’을 발표한 사실에서도 드러났다. 또한 삼성경제연구소가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등 핵심 경제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합숙훈련을 실시한 데서도 삼성의 영향력이 나타난다(「양대 민간경제硏 삼성—LG의 다른 행보」, 『동아일보』 2005.6.14).

소위 ‘삼성공화국론’은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좀 안다는 이들 사이에 회자되었지만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 뒷소문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수면 위로 드러난 것처럼 삼성경제연구소를 매개로 한 관계만 보더라도 정부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보아 금산법 개정안의 처리, 소위 삼성 X파일 사건의 처리, 생보사 상장 자문위원회의 결론, 공인회계사회의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면죄부 수여 등 일방적으로 삼성에 유리한 결정들이 줄줄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황이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보수적 경제관료를 중용하고 ‘개혁과 분배’보다는 ‘안정과 성장’쪽으로 치달은 속사정과 관련되어 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노무현정부는 집권 엘리뜨—경제관료—삼성그룹 간의 결합체로서 ‘정서적 급진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스타일과 실제 내용에서 ‘보수적 경제정책’의 기묘한 결합에 불과하다”는 최장집의 지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사회적 시민권 없는 한국민주주의의 위기」, 『노동의 위기』, 후마니타스 2005).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정체성 붕괴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권력자에 의해 정당이 수시로 바뀌는 현실을 극복하고 정체성이 분명한 진정한 정책정당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진보적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 재벌개혁은 경제의 효율적 작동과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되어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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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잠재성장률은 경기가 과열되지도 침체되지도 않은 완전고용상태를 유지할 때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일컫는 것으로서 여러 기관에서 전망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전망에 따르면 2003~2007년 기간에 낙관적인 씨나리오의 경우 5.4%, 비관적인 씨나리오의 경우 4.8%라고 한다(한진희·최경수·김동석·임경묵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전망: 2003~2012』, 한국개발연구원 2002).
  2. 2005년 OECD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소득분배 개선도는 OECD평균(29.2%)의 7분의 1에 불과한 4.5%로 나타났다. 스웨덴 54.9%, 프랑스 48.2%에 비하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국 24.6%, 일본 15.7%에 비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대한상공회의소 『우리나라 소득재분배 효과의 현황과 시사점』 2006). 2003년 기준으로는 5.11%의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연구결과(한국조세연구원 『조세제도가 소득분배 및 자원배분에 미치는 효과분석 및 시사점』 2004)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참여정부에서 분배정책이 후퇴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