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The Quarterly Changbi

 

이명랑 李明娘

1973년 서울 출생.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를 발표하며 등단. 연작소설집 『삼오식당』,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 『슈거 푸시』 등이 있음. market297@yahoo.co.kr

 

 

널래 날래 까우리로 까이라?

 

 

1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최선생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어진이 퍼즐 짜맞추듯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계획했던 일정들은 쓸모가 없어졌다.

“최선생은 왜 만나려고 하는 겁니까?”

한인 식당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사내가 다가와 어진의 앞자리에 앉았다. 어진은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수상스포츠나 즐기고 태국 미녀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이 낯선 사내가 과연 자신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져줄지 또한 자신이 없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타이항공 629편에 올라타 방콕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진이 최선생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그 분명하던 이유도 이곳, 카오산 로드에서 맞닥뜨린 최선생의 실종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9년 전 겨울, 어진은 진눈깨비로 뿌예진 서울의 하늘을 뒤로하고 방콕으로 떠나왔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4박 5일의 신혼여행일 뿐이었지만 그때 어진은 스물여섯이었고, 한국에서 방콕으로 가는 다섯시간의 비행이 짧게 느껴질 만큼 남편과 함께 할 여행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엇비슷해 보이는 사원들뿐이었고, 길거리 여기저기에 누워 힘겨운 듯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거지들과 털 빠진 개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관광이랍시고 구색을 맞추듯 가이드가 데려간 수상 뷔페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저녁 한끼를 먹는 일정이었다. 그래도 어진의 눈에는 남편과 함께 나눈 그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방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별 다섯개짜리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 갔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부의 얼굴을 하고 지금 죽어도 좋다고까지 말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런 식의 여행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데…… 하며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한 얼굴을 해서 어진을 맥빠지게 했었다.

어진은 남편의 그, 뭐가 하나 모자라다는 듯한 얼굴을 빈틈없이 채워주고 싶었다. 돌아갈 날짜를 하루 남겨두고 남편이 여행사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자고 했을 때, 그래서 어진은 남편보다도 먼저 배낭을 꾸렸다.

“방콕 시내 한복판에 이구아나가 있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한마리도 아니고 일곱마리나 있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니.”

어진 부부는 갑자기 들려온 한국말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진 부부와 눈이 마주치자 오십 중반의 남자는 이리 와서 앉으라며 돌로 만들어진 벤치에 신문지 두장을 까는 것이었다.

“저기, 저깄다! 봤어요? 지금 나왔다 들어갔는데.”

“뭐가 있다고…… 저거요? 세상에, 저게 진짜 이구아납니까?”

남편은 남자가 깔아준 신문지 위에 앉아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호수의 한 점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어진도 덩달아 눈을 부릅떴다.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자 과연, 이구아나처럼 생긴 파충류 몇마리가 호수에서 기어나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웃기지 않습니까? 보세요. 저렇게 큰 놈들이 제집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이 주변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데도 저놈들을 보는 사람이 없어요. 여기 있는 방콕 사람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여기 이구아나가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하구요. 다들 고개를 내저을 겁니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고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할걸요.”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어진 부부 역시 눈뜬장님이었다. 남자와 말을 트기 훨씬 전부터 어진 부부는 호숫가에 앉아 있었고, 공원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시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이 평화롭게 펼쳐진 호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최선생은 그렇게 버젓이 눈앞에 존재하는데도 보지 못하던 것을 어진 부부의 눈앞에 들이대며 그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쪽에서 먼저 사례를 해서라도 안내를 부탁하려던 참에 최선생이 먼저 점심이나 같이 하자며 어진 부부를 시내의 한인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 일대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인지 최선생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알은체를 했다.

“뭐 학자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떠돌다보니 우리 것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젊었을 때 유엔에서 일을 했는데, 어떻게 동남아 일대만 떠돌게 됐지요. 소수부족들을 많이 보다보니 어, 이거 이상한데? 이 사람들 이거 우리 민족 아니야? 뿌리를 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도저히 된장국이라고 할 수 없는 된장국과 출처불명의 김치를 앞에 놓고, 최선생은 우리 것과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선생의 말에 의하면, 한국 내에서도 우리 민족의 ‘우랄알타이어족설’과 ‘단일민족설’을 부정하는 학자가 있는데 이곳 동남아 일대에 퍼져 있는 소수민족들과 오래 지내다보니 그 학자의 의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몇몇 소수부족의 경우에는 말이나 춤, 의복이 우리 것과 너무 똑같아서 이들을 우리 민족과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남편은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최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자주 들른다는 여행사 사무실에 가서 최선생이 표지에 자신의 이름이 뚜렷이 인쇄되어 있는 책 두권을 주었을 때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이 남편의 얼굴에 뚫려 있던 빈틈은 남김없이 메워져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남편은 최선생의 저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여행사의 판에 박힌 일정을 포기하자마자 얻게 된 최선생과의 하루를 남편은 값진 선물처럼 여겼고, 심지어는 한국어족(韓國語族)을 창설해야 한다는 최선생의 의견을 박사논문 주제로 다뤄봐야겠다고까지 말해서 어진을 놀라게 했었다.

이제는 전남편이 되어버린 남자가 서랍 속에 처박아두고 잊어버린 그 두권의 책을 배낭에 꾸려넣고 어진은 이곳, 카오산 로드로 최선생을 만나러 온 것이다.

“치앙라이 일대에 고구려 후손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놓고 어진은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다리를 떨어댈 때마다 목에서 흔들리는 금목걸이를 부적이나 되는 듯이 만지작거리는 사내 앞에서는 고구려니 후손이니 하는 말들이 턱없이 공허하기만 했다.

“아, 소수부족? 그거 뭐 꼭 최선생이 있어야 되나. 가이드 한명 붙여줄까요? 하루 일당 팔만원만 주면 되는데. 어때, 불러요?”

 

 

2

 

허리춤에 칼을 꽂은 조련사들이 쓰레빠를 끌고 다니듯 여기저기로 코끼리들을 끌고 다녔다. 코끼리들의 배설물 위로 또다른 배설물처럼 쏟아져내리는 이국의 언어와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어진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한 사내에게 붙박여 있었다.

치앙라이 공항으로 어진을 마중나온 사내는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일당을 먼저 요구했다. 어진이 지갑을 꺼내자 사내는 뻔뻔스러울 만큼 빤히 어진의 지갑을 들여다보았다. 오로지 어진의 지갑이 얼마나 두툼한가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빳빳하네.”

어진에게서 건네받은 달러를 청바지 앞주머니에 쑤셔넣고, 사내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검은 썬글라스를 눈썹 위로 밀어올리며 ‘타이 한’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진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인물이 과거 속에서 걸어나와 말을 건넨 것이다. 어진의 입술은 제멋대로 벌어졌고, 사내는 어진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눈썹 위로 추켜올렸던 썬글라스를 재빨리 밑으로 내렸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어진에게 화가 난 듯도 했고, 어진이 기억해낸 자신의 과거에 화가 난 듯도 했다.

어진이 타이 한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과 서너해뿐이었다고는 해도 한때는 그 이름만 대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십대가 열광했던 스타였으니 말이다. 최소한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만은 ‘몰락’이라고 해도 될 만큼 초라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

통성명을 한 뒤로 타이 한은 어진에게 내처 등만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어진에게 말을 걸어올 때라고는 오로지 돈 내라고 할 때뿐이었다. 한두번인가 어진은 다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미 돈은 건네졌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타이 한이라는 사내를 믿고 따라가보는 것 외에 어진에게 달리 뾰족한 수라고는 없었다.

새벽녘의 알싸한 공기 속에서 어진이 자신의 팔목보다도 가는 대나무 기둥을 붙들고 서서 발아래 펼쳐진 아수라장을 내려다보는 동안에도 타이 한은 어진에게 등을 돌린 채 코끼리 조련사와 흥정하기에 바빴다.

“이 바나나도 원래는 돈 주고 사야 되는 겁니다.”

코끼리 등에 올라탄 어진에게 바나나 한다발을 던져주면서도 타이 한은 생색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진을 태운 코끼리는 당장이라도 붉은 흙이 쏟아져내릴 듯한 민둥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산 사이로 난 길은 비좁았고 군데군데 도랑이 파여 있어 코끼리는 자주 걸음을 멈췄고 그때마다 코끼리의 목덜미에 앉아 있던 조련사는 낡은 쓰레빠로 코끼리의 귀를 걷어찼다. 얼마나 오랜 시간 걷어차였는지 조련사의 쓰레빠가 닿는 부분이 허옇게 닳아 있었다. 조련사의 쓰레빠 밑창도 코끼리의 귀만큼이나 나달나달해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사가 심한 언덕 몇개를 넘어 평지가 나오자 조련사는 엉덩이를 한번 들썩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몸을 날려 길 위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어진을 태운 코끼리는 바나나를 주면 걷고, 바나나를 주지 않으면 걸음을 멈췄다. 하는 짓이 괘씸해 주지 않으려고 해도 어찌나 무서운 기세로 콧바람을 불어대는지 주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바나나가 떨어져서 이거 곤란하게 됐구나 싶으면 바로 코앞에 바나나를 파는 가게가 나타났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바나나 가게만 나타나면 이 코끼리란 놈이 먼저 알고 멈춰 서는 것이었다. 치앙라이에 도착한 뒤로 타이 한이라는 사내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자신의 지갑을 노리는 것 같아 어진은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다 저 멀리 무슨 보호구역이나 되는 듯이 빙 둘러 울타리를 쳐놓은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앞에 늘어선 수많은 코끼리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하던 스산함은 감쪽같이 속았다는 배신감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사진이나 몇장 박지 그래요?”

타이 한이 나무로 엉성하게 지은 집에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있는 카렌족 여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들 모두 목에 놋쇠고리를 걸고 있었다. 이들이 왜, 언제부터 목에 놋쇠고리를 걸기 시작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카렌족 여자들의 목 늘이기는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그들 부족만의 풍습이었다. 목에 놋쇠고리를 걸어 목을 늘여놓으면 타부족과의 전쟁에 패했을 때도 그 흉측한 모습 때문에 타부족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일만은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목에 놋쇠고리를 걸어도 목뼈가 늘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목뼈는 부러지고 목뼈 대신 놋쇠고리가 목을 받치게 된다. 날이 더워 놋쇠고리를 건 자리에 염증이라도 생기면 놋쇠고리를 빼내다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카렌족 여자들은 목이 긴 여자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미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에 놋쇠고리를 걸고 촛점 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앞만 바라보던 여자들이 어진을 향해 미소지었다. 어진은 그녀들의 판에 박힌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들은 태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받는 부락에 거주하면서 목 늘이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진에게는 그녀들이 마치 바나나 가게 앞에 멈춰 서서 바나나를 사 내놓을 때까지 연신 콧김을 내뿜던 코끼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진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더이상 목 늘이기를 하지 않으면 이 부락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찌됐든 그녀들의 목 늘이기는 짭짤한 관광사업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어진은 보고 싶었다. 한때는 자신들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종족의 형님뻘이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왕인 쿠시두가 지배하는 죽음의 나라로 들어가 내세에서도 현세와 마찬가지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다고 믿던 사람들,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기 위해 그 집 앞에 서서 몇번이고 유혹의 노래를 부르는 사내들과 한개, 두개, 그녀들의 목에 걸리는 놋쇠고리가 늘어날 때마다 행복해지는 여자들을. 늘 앞만, 자기만 바라보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와, 죽을 때까지 고개 한번 옆으로 돌려보지 못하지만 기꺼이 그 한 남자만을 바라보기 위해 목에 놋쇠고리를 거는 여자를. 목에 건 놋쇠고리를 벗어던지면 곧 부러져버리는 목과 함께 죽고 마는 운명을 기꺼이 선택하는 여자와 그 여자의 운명이 된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는 남자를 어진은 보고 싶었다. 타인의 이해를 거부하는 그들 부족만의 사랑의 모습을.

타이 한은 얇은 종이에 대마를 말아 피우며 지나가는 금발의 여자들에게 신통치 않은 영어 몇마디로 수작을 걸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풍습이라기보다는 단지 신기한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목 늘이기를 바라보다 어진은 벌떡 일어나 타이 한의 눈에서 썬글라스를 벗겨냈다.

타이 한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나는 관광이나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어진이 소리치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대마를 입에 물고 있었다. 어진이, 나는 고구려의 후손을 만나러 왔다고 악에 받치듯 소리치자 타이 한은 약 기운이 퍼지는지 점점 더 붉어져가는 눈동자를 치켜뜨며 어진에게 물었다.

“지프 하나 구해야 되는데…… 그 돈은 있구?”

 

 

3

 

낡은 지프의 바퀴가 구를 때마다 바싹 마른 건기의 숲은 매캐한 흙먼지를 일으켜 시야를 가렸다. 흙먼지와 나뭇가지에 가려 앞을 분간하기 힘든데도 타이 한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끝이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와 나무들 사이에서 아랫도리를 내놓은 아이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프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고, 어진은 진땀을 흘리며 조수석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부여잡아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은 소가 똥을 싸지를 때도 어진은 손잡이를 부여잡은 손에서 힘을 뺄 수 없었다. 타이 한은 엉덩이가 얼얼해질 만큼 거칠게 지프를 몰았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설 때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액셀을 밟곤 했다.

처음엔 숲에서 새 한마리만 날아올라도 푸드덕 소리에 놀라 비명을 내지르던 어진도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마음을 졸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타이 한이 입에 물고 있던 대마가 운전대 위로 떨어지고 거칠 것 없다는 듯이 내달리던 지프가 자갈길 위에 급하게 멈춰 섰을 때는 어진의 입에서 다시 울음 섞인 비명이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나뭇가지에 가려 지붕이 반쯤 보이지 않는 움막 뒤에서 시작되어 지프의 차창까지 뒤흔든 것은 분명히 총소리였다.

“누가 죽었나본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서 주절거리는 타이 한의 목소리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것이었다. 모처럼 곤하게 자고 있는데 누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영 기분을 잡쳤다는 얼굴로 타이 한은 움막을 가리켰다. 저기 나무 뒤로 마을이 하나 있는데 이 부족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총을 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신이 응답한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바로 총을 쏘고 화약을 터뜨리는데, 중국 쪽에서 넘어온 풍습 같기도 하고……”

중국이라는 말에 어진은 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진의 마음을 읽었는지 타이 한은 씨발, 뭐 속아서만 살았나,라고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하고는 지프를 마을 입구에 가져다 댔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어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마을 정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신목(神木)이었다. 외부인의 공격이나 접촉으로부터 이 마을을 지키려는 듯이 얕은 산들이 마을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고, 마을의 움막들은 다시 신목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의 신목은, 어설픈 못질로 대충 지어 틈 사이로 집 안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움막들이나 야트막한 산들의 보호 따위는 필요없다는 듯이 저 혼자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네개의 기둥이 마른땅에 뿌리를 내려 땅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하늘로 내뻗은 가지들은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여 그 생기로 헐벗은 마을을 푸르게 물들였다.

메마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신목 끝에 매달린 원색의 천들이 나부꼈다. 그러면 신목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기도에 신이 응답이라도 해준 듯이 기뻐하며 춤췄다. 뒤늦게 산에서 나무 한그루씩 뽑아들고 내려온 사내들은 꺾어온 나무를 서둘러 집 앞에 세워두고 신목 주위를 돌며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설이 가까워오면 신이 강림했다고 생각되는 나무를 집마다 세워놓고 신목 주위를 돌며 춤추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다 어진은 미소지었다. 최선생이 이야기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솟대를 세우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와 흡사한 춤을 춘다는, 고구려의 후손일지도 모르는 바로 그 부족 사람들을 이제야말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어진은 남다른 감회에 젖어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의 움막들은 하나같이 부실해 보였고, 그 부실한 벽에 아무렇게나 박아놓은 못에는 고깃덩이와 빨래 들이 내걸려 있었다. 빨지 않아 때에 찌든 치마를 입은 여자는 엄지손톱만한 파리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고깃덩이들 아래에서 젖가슴을 드러내고 앉아 갓난아기와 집에서 기르는 새끼 돼지 둘 모두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아이들은 밑창이 뜯겨나간 운동화를 공 대신 차며 놀았다. ‘가난’이나 ‘배고픔’이라는 단어 몇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 사람들과 비행기로 불과 다섯 시간 정도의 거리에 살고 있는 자신이 한 민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진은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굿이나 한판 보고 갈래요?”

무슨 스포츠중계라도 보러 가자는 투로 타이 한은 어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손바닥을 내밀고 1달러를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여 손등으로 붉어진 눈시울을 훔쳐 닦던 어진은 아직 젖멍울도 생기지 않은 여자애의 엉덩이를 툭툭 치고 있는 타이 한을 보자 목구멍으로 욕지기가 치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진의 기분 따위야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타이 한은 입구에 빨강, 노랑, 파랑, 원색의 천들이 내걸려 있는 움막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움막 안에는 남자 무당과 몇몇의 여자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나뭇가지를 태우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로 불꽃이 일어날 때마다 향냄새를 풍기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그 연기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듯했다. 샤먼과 여자들 모두 불꽃이 일어나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다투듯 연기를 들이마셨다. 르아보라는 이름의 무당은 48년 동안 무당 생활을 했는데 슬하에 아들 셋, 딸 셋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는 까맣게 변색된 이빨을 내보이며 웃었다.

“그쪽도 이거나 하나 씹어요. 이거 많이 하면 저 사람들처럼 이빨이 까매지기는 해도 약발은 조금 먹히거든. 뭐, 대마보다는 못하지만.”

어진이 고개를 가로젓자 타이 한은 어진에게 내밀었던 후추열매까지 챙겨가지고 가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타이 한의 입술은 후추열매에서 흘러내린 즙으로 벌써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굿은 언제 시작되는 거냐고 어진이 묻자 타이 한은 어진의 목에 걸린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가리키며 사진이나 몇방 박아주라고 했다.

불꽃이 잦아들 때마다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던지고는 그렇게 하면 신이 내려오기라도 할 것처럼 움막 천장을 올려다보던 무당이 어진을 향해 돌아앉았다. 어진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무당에게 건네주었다. 무당과 여자들은 사진 속에 들어가 박힌 자신들의 얼굴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킬킬거렸다.

움막 입구로 서양인들 몇이 카메라를 들고 들어올 때까지 어진은 굿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몇번이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건네주어야 했다. 굿을 보기 위해 온 서양인들과 함께 쭈그려 앉아 어진은 지금이라도 당장 무당이 벌떡 일어나 온몸을 떨어대며 불붙은 기름을 입에 물기를 기다렸다. 신이 내려와 무당의 몸을 뒤흔들면 무당은 이 세상의 논리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에 이끌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불붙은 기름을 내뿜으며 축복의 말을 전하리라.

그러나 이제 곧 자기 머리 위로 신이 내려올 거라고 장담했던 무당은 어진이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챙겨가지고는 움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 마을에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신이 그리로 가서 이쪽으로는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양인들 몇이 무당의 등뒤에다 대고 왜 이제야 그 이야기를 하느냐고 고함을 질러댔다.

몇몇의 여자들은 여전히 연기를 들이마시고 있었고, 또 몇몇의 여자들은 나뭇잎에 싼 찹쌀밥을 베어물고 있었고, 또 몇몇의 사내들은 후추열매를 씹으며 서로의 어깨나 등짝을 두드려대며 킬킬거렸고, 그 옆에서 타이 한은 다리를 뻗고 누워 촛점이 풀린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움막 밖에서는 아직도 한떼의 사람들이 신목 주위를 돌며 춤추고 있었다. 어진은 밖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저 노래가 바로 싸움에 져서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설이 가까워오면 신목을 세우고 지신밟기를 하고 고구려식 절을 하는, 우리 민족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노래라고 스스로에게 되풀이해서 말해보았다. 그러나 이곳, 치앙라이의 깊은 산속까지 찾아와 보고자 했던 것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어진은 또 어쩔 수 없이 허탈해지고 말았다.

 

 

4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지. 이해 못하는 걸 무서워하는 인간과 이해 못하는 걸 찾고 만들려 하는 인간.”

타이 한은 어진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지프의 운전대를 잡았다. 타이 한의 어깨 너머로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서쪽으로 한다발의 구름이 몰려 있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진은 타이 한의 말을 곱씹었다. 한때는 텔레비전을 통해 하루에도 몇번씩 그 얼굴을 봤다고는 해도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변했는지도 모르는 남자를 앞세우고 낯선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자신의 행동이야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걸 찾고 만들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하게 된다 해도 이대로 차를 돌려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까지 와서 라후족 마을을 들르지 않고 갈 수는 없었다. 이곳 치앙라이 일대에 살고 있는 소수부족들 중에서도 색동옷을 입고 씨름을 하고 호랑이를 숭배하며 정선아리랑 가락의 노래를 부른다는 라후족이야말로 고구려 유민의 후예가 틀림없다고, 최선생은 몇번씩이나 강조했던 것이다.

라후족 마을은 산의 등줄기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마을 밑으로 비탈길이 나 있고, 비탈길 위로 트럭과 오토바이 들이 남긴 바퀴자국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어진을 태운 지프가 짧아진 나무 그림자들을 밟고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지붕에 태국 깃발이 꽂혀 있는 학교 건물 앞에 일렬로 줄지어 서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프에 와서 꽂혔다. 어찌나 빤히 쳐다보던지 어진은 자신의 빈손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일본 혹은 중국에서 온 듯한 사내들 몇이 커다란 종이상자에서 학용품을 꺼내 나눠주고 있었다. 사내들의 손이 상자 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물건이 떨어지면 어쩌나, 애를 졸이면서도 아이들은 저보다 먼저 공책이나 연필 하나씩을 받아들고 뛰어가는 제 동무의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이박자의 태국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을의 청년들은 노랫소리에 맞춰 다리를 떨어대며 사내들이 나눠준 헌옷을 서로 바꿔 입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옷을 얻어 입은 청년들은 벌써 중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마을 아래로 내려가는 비탈길을 향해 전조등을 비추고 있었다. 마을의 소녀들은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뒤꽁지에 TOYOTA라고 씌어 있는 트럭 짐칸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그 소녀들의 눈은 어스름한 저녁길을 달려내려가는 오토바이보다도 먼저 산 아래 도시로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땅바닥에 놓인 돌 위에 합판 하나를 올려놓고 그 위에 펩시콜라와 과자 따위를 늘어놓고 앉아 있던 사내가 타이 한을 알아보고는 달려나와 움막 뒤로 그를 끌고 갔다. 잠시 후에 타이 한은 배가 불룩한 누런 종이봉투를 들고 나왔는데, 안에 든 대마를 어진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씨가 없는 게 진짜 좋은 거라며 흐뭇해하기까지 했다.

모처럼 질 좋은 대마를 구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는지 타이 한은 어진이 부탁하기도 전에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기역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 움막들 중에서도 꽤 큰 움막 안으로 타이 한이 먼저 고개를 들이밀었다.

“씨발놈!”

움막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던 타이 한은 뭐에 또 마음이 상했는지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왔다. 어진이 흘낏 안을 들여다보자 어린 소녀를 곁에 두고 앉아 있던 백인 사내 한명이 멋쩍게 웃었다.

“저 새끼도 저거 에이즈 환자야.”

타이 한은 백인 사내를 가리키며 피우던 대마를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현재 태국의 에이즈 환자 수는 100만명이 넘는데, 이곳 치앙라이 일대의 소수부족들도 빠른 속도로 감염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소수부족의 마을이든 저런 서양놈 한명씩 없는 곳이 없는데 에이즈나 죽을병에 걸리면 재산을 다 정리해가지고 들어와서는 1달러짜리를 뿌려대며 왕처럼 살다가 뒈진다는 것이었다.

“여기 사는 여자애들은 에이즈가 뭔지도 모른다구.”

1달러를 벌려다가 뭔지도 모르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들, 그 소녀들의 몸과 그 소녀들의 연인과 그 연인의 아비와 어미와, 헐벗었으나 수천년 동안 힘들게 지켜온 그네들만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는 1달러에 대해 다른 사람 아닌 타이 한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진은 그 순간만큼은 타이 한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약기운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허름한 움막 안으로 들어가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낸 1달러짜리 몇장을 흔들며 부족의 아낙에게 어린 소녀를 불러오라고 소리치는 타이 한의 얼굴은 방금 전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딴판이 되어 있었다.

부족의 아낙은 주름과 검버섯으로 뒤덮인 손으로 타이 한이 들이민 돈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낙이 나가고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던 사내 둘이 움막 안으로 들어왔다. 사내들은 일본에서 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러자 타이 한은 여기는 내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려면 내 도움 없이는 어려울 거라며 거들먹거렸다. 일본에서 온 사내들은 타이 한이 내민 손을 잡으며 이곳에 숯공장을 하나 세울 계획인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몇차례 그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간 뒤에, 타이 한은 사내들에게 여기서 하룻밤을 보낼 작정이라면 여자를 사서 같이 자보지 않겠느냐고 떠보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자기들끼리 이것저것 따져보더니 그럼 하룻밤에 몇달러나 내면 되느냐고 물었다. 사내들에게서 반응이 오자 타이 한은 옳거니,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구나, 눈을 번뜩이며 사내들 앞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그 꼴을 보자 어진은 그곳에 잠시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간 아낙이 전통의상을 입은 소녀를 데려온다 해도 어차피 몇달러에 볼 수 있는 값싼 구경거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깊은 산중에서 우리도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한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을 만났다는 감격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그 손을 맞잡았을 때 아주 작은 떨림도 경험할 수 없는 만남이라면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 잘 찍어놓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어진은 밖으로 나와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등뒤로 사내들과 여자 값을 흥정하는 타이 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진은 체념하듯 몇번인가 고개를 내저었다.

 

 

5

 

코끝을 스치는 밤공기가 차가워지고 있었다. 움막 앞에 모여앉아 베틀을 돌리던 여자들은 댓잎으로 짠 바구니에 색실들을 꾸려 담고, 공터에 모여 돼지를 잡는 사내들은 커다란 나뭇잎으로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서둘러 털을 뽑기 시작했다. 저만치 공터 뒤로 어진이 하룻밤을 보낼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초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계집애들 몇이 초등학교 입구의 계단에 모여앉아 실뜨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손가락에 실을 걸고 있는 아이나 그 실을 들여다보는 아이 모두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만큼 놀이에 몰두해 있었다. 골목길이 아이들로 넘쳐나던 시절에 어진도 곧잘 하던 놀이였다.

어진이 다가가 실 사이로 손가락 네개를 밀어넣어 별 모양을 만들어 보이자 여기저기서 와— 하는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저희들의 놀이를 관광객인 어진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들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한 듯했다. 신기하기는 어진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인 놀이를 오지라 불러도 좋을 이국의 숲속 마을에서 마주친 것이다.

계집애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실뜨기놀이를 하고, 사내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팽이치기를 하다 컹컹 개 짖는 소리에 섞여 난데없이 제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둘러 집으로 뛰어갔다. 어진의 눈에는 이 모든 풍경이 너무도 낯익어서 그 낯익음이 오히려 낯설 정도였다.

어진은 빈 교실로 들어가 한쪽에 마련된 간이침대 위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똑바로 앉아 책상이며 의자를 보고 있으려니 오늘 낮에도 이곳에 나란히 늘어앉아 수업을 들었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학교라고 했으니 이제 이곳의 아이들도 태국말을 배울 것이다. 얼마 안 가 아이들은 제 부족의 말을 잊거나 잃어버릴 테고 나중에는 산을 내려가 도시에 정착해 어엿한 태국 시민이 될 것이다.

“라후족을 통해 내가 밝혀보고 싶은 건, 고구려 포로들이 과연 언제까지 중국인으로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남았느냐는 거야.”

신혼여행에서 최선생을 만난 뒤로 전남편은 한동안 이 주제에 매달렸다. 최선생이 준 두권의 책에 붉은 펜으로 밑줄을 긋고, 여백마다 빼곡히 메모를 하는가 하면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태국의 최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석사를 마치자마자 학원이나 기업체로 옮겨가 그럭저럭 먹고는 살 만하게 되었다는 국문과 동기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다 들어온 날이면, 전남편은 괜히 박사실업자 되지 말고 너도 빨리 먹고살 궁리를 하라는 친구들의 충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열심히 참고서적들을 들여다봤다.

어진은 배낭에 꾸려온 최선생의 책 두권을 꺼냈다. 책장을 몇장 넘기자 전남편이 붉은 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중국 서남부, 미얀마 동북부, 라오스 서북부, 태국 북부가 접경한 일명 황금의 삼각지대 일대에는 약 50만명의 라후족이 살고 있다. 이 연구는 왜 라후족의 언어, 풍속, 탄생설화, 체질 등이 우리 민족과 그렇게도 유사한가 그 내력을 밝히기 위해 역사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고 옛 고구려 영토에 반당 독립운동이 일자 당나라는 붙잡아왔던 보장왕을 다시 옛 고구려 영토로 보내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보장왕마저 반당집단에 연계되자 당나라는 보장왕을 공주로 귀양보내고 고구려 백성 상당수를 당나라 서북부 농우로 보내 정착시켰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지역으로 끌려갔던 고구려 백성들은 모두 한족화(漢族化)되었는데, 오직 강족과 이웃하고 살았던 농우지역의 고구려 백성들은 10~13세기 중국의 서남쪽 운남지역으로 이주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운남성에 거주하는 이족, 강족의 기록과 라후족의 구전과 일치한다. 즉 고구려 유민의 후손들인 라후족은 고구려 옛 영토 마메무메(?)—하북성 동남부(뻬핑)—내몽고(천혜)—청해성 서부(농우)—운남성(대리)의 경로로 이동해왔음이 확실해 보인다.

 

“고구려의 옛 영토 마메무메라, 그게 도대체 어디였을까?”

전남편은 마메무메에 대한 기록을 찾겠다고 도서관들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 찾아내지 못했다.

어진은 들여다보던 책을 내려놓고 다른 한권을 펼쳐보았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당군은 고구려 유민들을 가족단위로 붙들어 가서 정착시켰다. 고구려 포로들은 광막한 땅에 옮겨졌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에서 고구려 포로들만 따로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 포로들이 그들끼리 마을을 이루고 고구려의 언어, 풍속 등을 지키며 독자적으로 살았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 그러나 라후족과 거의 동시대에 운남성 일대로 이주해왔으리라고 추측되는 이족은 자체 문자가 있어 일부 기록이 남아 있지만, 라후족은 기록해둔 것이 없다. 더욱이 몇십대를 살아오는 동안 인멸되어 남은 것은 오직 빈약한 구전(口傳)뿐이다. 라후족 구전의 대부분은 시가(詩歌)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중국군대와의 처절한 싸움을 담은 서사시적인 것이 많은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라후족은 수백년 동안 중국군대와 싸우며 쫓겨다니는 과정에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전남편이 책을 들여다보다 말고 어진을 향해, “라후족을 통해 내가 밝혀보고 싶은 건, 고구려 포로들이 과연 언제까지 중국인으로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남았느냐는 거야”라고, 뜬금없는 말을 한 뒤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앉았을 때는 이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난 직후였는지도 모른다.

어진은 전남편의 그때 그 열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두권의 책을 들고 앉아, 이름난 논술강사로 성공한 뒤로는 더이상 이런 책은 읽지 않게 된 전남편의 얼굴 위에 붉은 펜으로 밑줄을 긋던 남자의 얼굴을 겹쳐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또 그 위에 실뜨기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들의 모습을 겹쳐보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바른 자세로 늘어앉아 칠판에 씌어진 글자들을 따라 읽으며 열심히 태국말을 배우는 소수부족 아이들의 모습만이 또렷해지는 것이었다.

 

 

6

 

밤은 빠르게 검은빛으로 변해갔다. 어둠속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울타리에 묶인 말이 달려오는 밤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되게 한번 울고는 잠잠해졌다.

모닥불이 탁탁 튀는 소리와 밤이슬에 젖은 풀들이 몸을 낮추는 소리 위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는데 요란하게 문이 열리며 타이 한이 뛰어들어왔다. 다짜고짜 어진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타이 한은 자꾸만 살려달라고 했다. 부들부들 떨며 무섭다고 외쳐대는데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사자가 쫓아온다는 거였다. 그러나 타이 한을 쫓아들어온 것은 사자가 아니라 비쩍 마른 개였다.

그 개의 꼬락서니가 어찌나 형편없던지 어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는데 이게 다 수작이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손이 올라갔다. 어진이 있는 힘껏 따귀를 올려붙이고 밀쳐내는데도 타이 한은 어진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방으로 눈알을 굴려대다 문가에 서 있는 개를 보고는 간이침대 위로 펄쩍 뛰어올라 어진의 등뒤로 숨는 것이었다. 어진의 팔뚝을 꽉 붙든 타이 한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타이 한의 눈에는 그 비쩍 마른 개가 정말 사자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마약이 불러온 환각이라고는 해도 왜 하필 저를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야수란 말인가. 발톱을 세우고 쫓아와서는 당장이라도 목에 송곳니를 박겠다고, 물어뜯어버리겠다고 버티고 서 있는 야수를 지금, 타이 한은 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진은 타이 한에게로 돌아앉아 공포로 부릅떠진 그의 두 눈을 들여다봤다. 불행을 피해 달아났다가 더 불행해진 사람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타이 한의 얼굴 위로 또 한사람,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사람의 얼굴이 겹쳐졌다. 지도교수가 논문의 주제와 연구성과를 가로채어 한 학회지에 소논문을 발표했을 때, 남편은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과 싸우는 대신 자신을 끝장낸 지도교수보다 더 비열해지는 것으로 앙갚음을 했다. 학문에 기울였던 노력을 협박과 책략의 기술을 습득하는 데 쏟아부었고, 학원가로 자리를 옮긴 뒤로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순진한 후배들을 꼬드겨 원고를 쓰게 하고는 그것들을 묶어 제 이름으로 교재를 출판하는 짓까지 하게 되었다.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는 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니고 있는 출판사의 동료들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이혼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진은 타이 한의 눈에서 전남편의 얼굴과 자기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약에 취하거나 돈에 집착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결국은 모두, 더 불행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일 뿐이다. 어느새 어진은 타이 한의 머리를 제 가슴으로 끌어당기고 그의 등줄기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타이 한의 공포까지도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발소리가 부산해지고 라후족 처녀가 불붙인 초 하나를 들고 타이 한을 찾아 교실로 들어설 때까지 어진은 그렇게 제 몸이나 된 듯이 타이 한을 끌어안고 있었다.

처녀가 등지고 서 있는 문 너머로 마을 사람들이 밝혀 든 촛불들이 보였다. 밤을 낮인 듯 밝히고 있는 그 불빛들을 향해 타이 한은 비척거리며 걸어나갔다. 굶주린 짐승이 본능적으로 피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가듯이 타이 한은 어둠을 등지고 나가 불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신이 태초의 어둠에 빛을 주셨네.”

무당의 주술이 울려퍼졌다. 신목 주위에 꿇어앉아 있던 사람들이 손에 쥔 쌀을 일제히 머리 위로 높이 던지며 일어섰다. 생황 소리가 무당이 외우는 주문 소리를 뒤덮고 밤이 웅성거리며 살아났다. 마을 사람들 모두 서로의 손을 잡고 신목 주위를 돌며 춤추기 시작했다. 오른발 앞, 왼발 앞, 왼발 뒤, 오른발 앞, 타이 한도 한데 어울려 발을 구르고 머리를 흔들었다. 한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 불리며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만 노래하던 사내가 이제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 한명 없는 곳에서 울부짖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진은 그가 김민이라 불리던 시절과 가수 김민의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들여다보던 자신의 소녀시절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때 어진은 가수 김민을 보기 위해 ‘화요일에 만나요’라는 공개방송을 보러 다녔고, 어느날인가에는 정동극장 입구에 줄지어 서 있던 소녀들이 질러대는 비명 속에서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기도 했다. 그날 김민은 양쪽 어깨에 푸른색 구슬이 박힌 흰색 재킷을 입고 허리띠 아래로는 어깨에 박힌 구슬과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나타나 소녀들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곧장 극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날의 그 빛나던 가수는 어디로 갔으며, 그 가수를 본 감격에 울음까지 터뜨렸던 그 소녀는 또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 소녀를 어디에 버려두고 나는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것일까?

타이 한이라면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진이 다가가 당신은 왜 김민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타이 한이 되었느냐고,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기만 한 이 오지로 들어왔느냐고 묻기도 전에 타이 한은 그 언젠가처럼 또 어진에게 등을 돌리고 어둠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춤추다 말고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옆에서 춤추던 라후족 처녀의 팔목을 붙들고 움막 뒤로 뛰어가더니 타이 한은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엉겁결에 끌려온 처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타이 한의 등뒤에 서 있는 어진을 바라보았다. 이 난처한 상황에서 저를 좀 구해달라는 듯도 했고, 당신이 있어서 부끄러우니 제발 자리를 피해달라고 부탁하는 듯도 했다.

어진이 몇발짝 앞으로 걸어가자 라후족 처녀는 눈을 내리깔며 타이 한 앞으로 바싹 다가가 앉았다.

“너 날래 나 하외라?”

타이 한이 처녀의 손을 그러쥐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도 처녀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 날래 나 하외라? 말해봐. 너 나 사랑하니, 응?”

타이 한의 말에 처녀는 내리깐 눈을 들어 제 앞에 앉은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옷 가장자리의 테두리마다 손으로 정성스레 수를 놓은 색동저고리를 입고 앉아 라후족 처녀는 제 부족의 말로 타이 한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타이 한 쪽에서 다시 처녀에게 물었다.

“나랑 갈래? 널래 날래 까우리로 까이라? 너랑 나랑 같이 한국으로 갈래? 그럴래?”

처녀에게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네 말은 영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타이 한을 쳐다보다 라후족 처녀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타이 한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쥐고 있던 처녀의 손을 더 꼭 움켜쥐고 혼잣말 하듯 몇번씩이나 나랑 같이 한국으로 가자며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어서 어진으로서는 타이 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들썩이는 어깨와 토해내듯 ‘한국’이라는 말을 내뱉어놓고는 그 말이 불러일으킨 파문에 휩싸여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목소리만으로도 어진은 알 수 있었다. 타이 한이라는 사람이 이 말을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를. 겉으로는 모든 것에 초연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타이 한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었다. 마약을 하거나 뚜쟁이 노릇을 하면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실은 실패와 후회로 얼룩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흘러간 것들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떠나간 시간을 저토록 아파할 수 있다면 아직 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어진은 한순간이나마 만개한 꽃처럼 찬란하게 저를 몽땅 피워본 사람만이 저토록 오래 앓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지금 제 눈앞에서 울고 있는 타이 한이나, 고구려니 고구려의 후손이니 하는 말만 들어도 모욕을 당한 것처럼 화를 내게 된 전남편이나, 그런 전남편 보란 듯이 그가 내팽개친 논문의 주제로 책을 내고야 말겠다고 이곳까지 찾아온 자신이나…… 실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어진은 비로소 자신이 찾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듯도 했다. 무엇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지. 어진은 등 돌리고 앉아 있는 타이 한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타이 한의 등에 대고 자신 역시도 오래 참아왔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널래 날래 까우리로 까이라?”

저만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의 모든 노래는 신께만 바치는 노래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이도 그 노래를 듣는 이도 모두가 귀를 막고서 신께만 바치는 노래가 어둠속으로 스며들어가 숲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 작품에서 인용된 글은 필자가 1998년 태국에서 만난 김병호 선생에게 건네받은 자료 「라후족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 실린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