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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이지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poem-k@hanmail.net
모바일 오페라
철제빔과 유리로 된 빌딩들 사이로
늑대의 울부짖음이 황량하다.
핸드폰을 받기 위해 한 사람이 멈춰선다.
거리의 행인들이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든다.
핸드폰이 입을 연다. 당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세계의 중심들은 다시 걷기 시작한다.
(좀비들은 盛裝을 하고 무도회에 간다네.)
세계의 중심들은 움직인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핸드폰의 몽롱한 눈을 통해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인가?
눈 안의 환영적인 길을 통해 그들이 가려는 곳은?
(묻지마, 다쳐! 묻지마, 닥쳐?)
카메라폰이 찍은 낯익은 골목들은 아니리라.
기시감으로 비틀대는 모바일 리얼리티 안에 부랑자가 서 있다.
(거기 처마밑의 부랑자는 방금 ‘잠의 장소’로 떠났소.)
핸드폰 액정 안의 일그러진 풍경들, 세계의
일그러진 증식, 커뮤니케이션은 없고,
거기에 이야기가 있는가, 메씨지만이 흩어질 뿐인,
‘외로된事業’에의 골몰만이 있는, 혹은
골몰의 증식들, 혹은 ‘외로된事業’의 묘지!
거기서 무서운 아이들이 댄스 배틀(dance battle)을 하고 있다.
단지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에니콜!
문자메씨지 탄환을 날리며
토끼머리 모자를 쓴 아이가 그 옆을 지나간다.
아이는 핸드폰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다.
기자회견 공화국에서 날아온 동영상,
모바일 정치가 선도하는 ‘통합’! 당원이거나 파렴치한?
(힙합 각설이의 풍자 바이러스가 꿈틀대네.)
(누가 저 오래된 거물에게 진정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하얀 풍선을 쥐여줄 것인가.)
어느날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세계는 반투명의 젤리상태가 되어간다.
우리는 르네 마그리뜨의 ‘골꼰다’(Golconda)로 가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된 성채, 푸르게 증발하는 하늘,
누구든 지나기만 하면 부자가 된다는 골꼰다로!
모바일 인터넷은 거리를 증권거래소로 뒤바꾼다.
코스닭의 붉은 벼슬이 루주 바른 여자의 입술로 뒤바뀐다.
정보의 교환, 交驩?
백화점에서 모바일 캐시로 중절모와 신사복을 구입하고
미쯔꼬시 옥상으로 올라가서(그곳이 어디인가 하면……),
검은 목요일 정오의 싸이렌이 뚜우, 하고 울리면
현란할 것도 없는 대낮을 비처럼 떨어진다.
세계의 중심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그때마다 세계는 하나씩의 종말을 갖는다.
핸드폰이 ‘외로된事業’에 골몰하면서 거리를 활보한다.
구름 위 빌딩숲 모퉁이로부터
중절모를 쓴 핸드폰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돼지 멱따는 컬러링으로 합창을 한다. 먼지가 조금 나고,
……여전히 다소 황량하다.
천국보다 낯선
杜甫氏에게
두보씨, 감기는 좀 어떠십니까.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이라 적은
엽서 잘 받았습니다.
풀빛 짙어가고 나무는 그 뿌리가 더욱 깊어지는 봄이로군요.
헌데 봄이 오지 않는다면 어쩌겠습니까.
나라는 깨어지고 산하마저 눈보라 속에 파묻혀 있다면?
깊어가는 봄이 없다면 노래가 있겠습니까.
노래라도 진정 있겠습니까.
지금 서울엔 삼월에 눈보라가 몹시 불고 있습니다.
눈보라는 모든 익숙한 것들을 재우고
말하자면 이불 같은 것도 덮어주었지요.
서울은 이제 짐 자무시 영화 제목처럼
천국보다 낯선 곳이 되었습니다.
서리화로 선 가로수에는
죽은 사람들의 넋이 후줄근히 걸리기도 하지요.
얼어 죽은 노숙자, 자살한 사업가, 신용불량자들, 불타 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떨어져 죽은 사람, 굶어 죽은 사람, 지하철 안의 비명…… 살해된 자살자들은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웁니다. 눈보라는 잽싸게 울음을 먹고 자장가도 없는 잠을 쏟아냈습니다.
예민한 아이들은 죽은 사람들과 소곤대고,
노인들은 죽은 왕 얘기를 하곤 합니다.
기회주의자들의 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그들 데까당 옆에서 연명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저는 구체관절 인형처럼 우울하답니다.
사람들은 심란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죽지 않는 게 더욱 시적인 삶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가령 오르는 물가를 걱정하면서 물코를 탱 풀고
늙은 여자가 하나 지나갔습니다. 等等.
허나 더욱 참혹한 날들이 오리라는
오래된 讖謠처럼 눈이 참 오기는 많이도 옵니다.
어제는 三岳神이 나와 춤을 추었고
한강에는 백발삼천장 노파의 환영이
한동안 나타났다가는 사라졌습니다.
나라가 깨지려나보다고, 무슨 우화처럼
개구리군이 와서 걱정을 하고 가더이다.
아래턱을 달달 떨면서
더욱 혹독한 천국이 내려오리라고.
그래도 진정 노래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