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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95년 『문학동네』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소설 창작 시작.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참말로 좋은 날』, 장편소설 『순정』 『인간의 힘』 등이 있음. ssje@paran.com
여행
오라고 팔 벌려 기다리는 사람 없고 언제든 가도 좋을 여행, 그것도 무전여행인데 남들 다 가는 휴가철 초입에 출발하기로 한 것은 삼자가 합의를 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일껏 만나자마자 비가 뿌리니 아무래도 때 잘 맞췄다고 표창장 주고받기는 틀렸다. 만재, 봉수, 영덕 세 사람은 보슬비 내리는 금천역 역전 마당에서 삼각형을 이룬 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만재는 서울에서 특별히 빨리 운행하는 기차[特急]를 타고 왔으므로 ‘무전(無錢)’의 취지를 시작부터 위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표 사는 데 돈을 들이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들이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동창회에서 철도고등학교에 다니던 기정을 만난 이래 만재는 기차표를 사서 기차를 탄 적이 없었다. 기정의 학생증만 있으면 개찰구를 그냥 통과할 수 있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철도공무원증이 나왔던 까닭에 조금 더 확실하게 공짜로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봉수는 애초에 여행을 제안했을 뿐 무전여행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만재가, 영덕이 기왕 여행을 할 바에는 돈이 안 드는 무전여행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 하더라고 했을 때 어차피 생돈 들여서 갈 생각은 없었노라고 했을 뿐이었다. 봉수는 늘 하던 대로 삼촌의 고물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기차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삼촌이 하루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받은 전화로는 오토바이가 완전히 뻗어서 낙동강 오리 곁에 놔두고 걸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덕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봉수를 뒤에 태우고 함께 역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배낭을 거북처럼 뒤로 멘 채로 자전거를 탈 수는 없었다. 영덕이 배낭을 가슴 앞으로 돌려 메고 봉수는 보통 거북 모양으로 배낭을 멘 채, 한 사람은 자전거 안장에 한 사람은 짐을 싣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명목이 무전여행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굶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동면을 앞둔 곰처럼 소화기관에 음식을 최대한 집어넣은 스무살의 두 청년에, 역시 먹을 것이 대부분인 배낭 두개의 무게를, 교사인 영덕의 아버지를 집에서 학교까지 삼십여년간 태우고 다니다 함께 퇴역한 낡은 자전거가 감당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타자마자 수십번을 때운 자국이 역력한 뒷바퀴 타이어에서 퇴임식을 하러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던 날 아침상 앞에서 내쉬던 영덕 아버지의 한숨 같은, 바람 빠지는 소리가 피슈우우욱, 하고 났다. 그를 무시하고 페달을 내리밟자 덩달아 앞타이어도 푸슉, 하며 납작해지는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배낭만 자전거에 싣고 걸어서 기차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오후 한시가 되자 봉수와 영덕은 만재가 약속한 대로 장비를 모두 갖춰 왔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별도의 가방에 든 텐트는 우산을 접었다 펴듯 쉽게 치고 걷을 수 있는 최신형 3, 4인용이었으나 몇번 쓰는 동안 손질을 전혀 하지 않아 찌든 라면국물 냄새와 녹 냄새가 났다. 기타는 만재가 고등학교 때부터 쳐온 낡은 클래식기타로 여섯달 전쯤 겨울에 봉수가 만재의 방에서 기식할 때 보았던 바로 그 기타였다. 이어 만재는 봉수가 점호를 하듯 “코펠, 버너, 알코올, 석유, 랜턴, 석유램프, 물통, 노래책, 비누, 수건, 치약”이라고 호명할 때마다 배낭을 탁탁 두드리며 있다고 답해주었다. 깜빡한 것은 지금 오고 있는 비를 가릴 수 있는 우산이었다.
우산은 물론 우의가 없기도 마찬가지인 봉수와 영덕의 배낭에는 옷가지 같은 개인 물품 외에 공통으로 된장과 고추장, 쌀이 담겨 있었다. 서울에 사는 만재가 공동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장비를 가져오는 대신 두 사람은 삼인분의 식량을 책임지기로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가지고 온 고추장, 된장의 양을 합치면 영덕의 큰누이가 일년에 한번 다니러 와서 가지고 가는 된장, 고추장의 절반쯤 되었다. 쌀은 두 사람의 것을 합치면 사과푸대 한말은 되었다. 큰누이를 본받아 영덕은 사이다병 하나에 간장을 담고 비닐로 마개를 한 뒤 검은 고무줄로 친친 동여매어 가져왔다. 그외 먹을 음식이며 반찬은 모두 ‘무전’이라는 막강하고 일관된 원칙을 고수하며 현장, 현지에서 조달하게 될 것이었다. 물품 확인이 끝난 뒤 각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고 동시에 불을 붙여 길게 내뿜는 것으로 그들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비는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일차 목적지로 역에서 백리, 곧 사십킬로미터쯤 떨어진 만폭동까지 갈 작정을 한 세 사람의 발걸음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만폭동은 내륙에서는 제법 유명한 휴가지였으므로 금천읍에서 만폭동까지 직행하는 임시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장에 나왔다 돌아가는 사람들이나 여남은명 태우고 가다 버스정류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내려달라는 데 태워달라는 데 아무데나 설 것이지만, 그러니까 말만 잘하면 공짜로 얻어타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임시운행 버스는 외양부터 다부져 보이는 것이 무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타기에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쫌 말랑하기 생긴 인간들은 다 예비군훈련 갔나.”
앞에 선 봉수가 운전석을 기웃거리며 지나쳤고 그뒤를 만재, 영덕이 따라갔다. 버스는 이미 승객으로 꽉 차 있었다. 좌석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통로에는 짐과 사람이 뒤엉켜 서 있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사람과 짐의 차이는 땀을 비 오듯 흘리느냐 아니냐의 차이 정도였고 모두 벌써 지친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오히려 선택받은 사람은 자신들인 듯 세 사람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야, 이거라도 있으이 다행이다. 비가 훨썩 덜 들어오네.”
봉수가 이불가게 앞에서 구한 비닐을 도롱이처럼 덮어쓰고는 소리쳤다. 도로변에 있는 이불가게는 한여름에 이불을 살 사람도 없으련만 가게를 열어두고 있었다. 안은 어두웠지만 불을 켜지 않았다. 실내의 어두움과 혈족이라도 되는 듯 어두운 표정의 여주인이 그들이 비닐을 주워 배낭과 모자 위에 덮고 목 주위를 끈으로 묶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런 대로 비를 가릴 만해지자 세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앞쪽 만암산의 정상부가 부옇게 개고 있었다.
세 사람이 무전여행에 합의한 건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 어느날이었다.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대학에 예비고사 점수로만 당락을 결정하는 무시험 특차전형을 통과하자마자 서울로 온 봉수가 마찬가지로 합격통지를 받은 친구를 고른 끝에 만재를 찾아왔다. 만재의 방에 두달가량 머무는 동안 봉수는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공단 배후지 동네라는 여건을 감안하여 음악다방의 디스크자키가 되었다. 봉수는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크리스마스이브와 제야에는 다방 주인과 협상해서 따로 표를 팔았고 이틀 밤의 수입이 한달치 월급에 해당했다. 만재는 자신이 태어난 도(道)를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으면서 서울에 온 지 칠년이 다 되어가는 자신보다 훨씬 더 능란하게 표준말을 구사하는 봉수에 잠깐 놀랐을 뿐, 일관되게 자신의 방식대로 놀았다. 그 방식에는 기식하는 친구에게 제 방을 비워주고 본고사 시험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친구의 자취방에 가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다 거꾸러져 자는 것도 있었는데 그 자취방은 대개 영덕의 방이었다. 대학 입학금을 장만하여 만재의 방을 떠나기 전 봉수는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서울에 온 건 말이다. 풍전호텔 나이트 가서 나이트 피버를 즐겨보고 마장동 도살장도 가보고 싶어서였는데 느덜 집이 그런 데에서 좀 멀다 보이까네 우째 하다 보이 돈만 벌고 말았다. 이 돈으로 여행이라도 가면 좋겠는데 지금은 입학식을 하러 가야 하는 고로 시간이 없구만. 원래 천리 여행을 가는 게 만권 책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더나. 우리 같이 올여름에 딱 천리 여행을 가기로 하자. 그래 젊은 시절을 멋지게 끝내고 나는 군대에 갈 생각이다.”
만재는 “그래. 넌 모르겠지만 네가 영덕이 신세도 많이 졌으니까 걔도 같이” 하고 봉수의 어깨를 밀어 떠나보냈다. 어느날 영덕을 찾아간 만재가 “봉수가 여름방학 때 여행을 가자고 그러던데. 너도 갈 거지” 하자 영덕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재가 “너는 먹을 양식이나 제대로 싸가지고 와라. 다른 건 내가 준비할게. 봉수 그놈은 주둥이만 가지고 올 거 같지만” 했을 때 “나 돈 없는데” 한 게 영덕이 여행에 관해 한 말의 전부였다.
맨 앞에서 봉수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모자 차양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손으로 붙든 채 걷고 있었다. 세 사람 다 평균보다 키가 큰 편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봉수가 제일 컸다. 입이 무거운 것까지 몸무게로 친다면 영덕이 제일 무거웠다. 만재는 모든 면에서 중간쯤 되었고 세 사람의 가운데서 걷고 있었다.
출발한 지 한시간쯤 되었을 때 비가 그쳤다. 봉수의 걸음이 상당히 빠른 편이어서 대충 6,7킬로미터는 온 듯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봉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빗물이 흐르던 몸에 본격적으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걷기 시작한 지 세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면소재지가 있는 시가지가 나타났다. 만재는 길가의 우체국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물통을 채웠다. 셋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해가 안 나서 그렇지 한여름 대낮에 배낭 메고 걸어다닌다는 건 상당히 무리다. 지나가는 차를 타면 몇십분이면 갈 걸 하루 종일 걸어도 못 가겠다.”
만재가 허벅지를 두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무전여행 하는 인간이 정신자세가 글러먹었네. 젊은 놈이 한번 칼을 뽑았으마 죽든동 살든동 끝을 봐야지.”
봉수의 말에 만재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밑져봐야 손핸데 우리 히치하이킹이나 해볼까. 우리가 세 사람이니까 한가지 안건에 둘이 찬성하면 가결되는 거다. 조영덕, 찬성? 탕탕탕. 통과. 근데 이게 왜 지금 생각난 거지?”
만재와 영덕이 배낭을 들고 일어서자 봉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순간적으로 지도자의 위치를 빼앗긴 게 불만인 듯했다.
“셋이니까 둘은 숨고 한 사람이 서서 차를 잡자.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고생하기로 하고. 그럼 나네?”
처음에는 만폭동 쪽으로 갈 성싶은 승용차를 세워보려 시도했지만 어떤 차도 서지 않았다. 세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차는 없었다. 단 한번 운전자 혼자 탄 차가 서려고 하다가 셋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걸 보고는 달아나버렸다.
“같이 놀러가는데 어떤 놈 타고 가고 어떤 놈 걷고, 사람 등급이 있나. 난 인제 자존심 상해서 저 새끼들 차 태워준다고 절을 해도 안 탄다.”
봉수가 선언했다. 그러고는 긴 다리를 리듬있게 쭉쭉 뻗으며 걸음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걷던 만재는 봉수로부터 “갈구친다, 비키라”는 말과 함께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동양인의 전형이라는 걸 지적받았다.
만재는 승용차는 포기하고 트럭이라도 방향만 맞으면 타자고 했으나 휴가철에 농촌지역을 다닐 트럭은 거의 없었다. 아니 농촌에 트럭 자체가 많지 않던 시절, 1979년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트럭이라고 판별될 때마다 “트럭!”이라고 외치며 손을 들기를 몇번, 우체국 앞을 떠난 지 한시간이 흘렀다.
“만세, 경운기다!”
오른쪽 허벅다리에 가래톳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만재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경운기라고 아무나 태워주는 것은 아니었고 경운기를 몰고 만폭동까지 가는 농부는 없었다. 세대째 만에 2킬로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구간이나마 경운기를 얻어 타게 되기까지 만재는 목이 쉬었다. 만재가 타자 영덕이 말없이 경운기에 올라탐으로써 경운기를 타고 가는 게 전체의 의사가 되었다. 영덕은 그날 만재에게 “왔네?”라는 두 글자를 발음한 이후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봉수는 마지못해 경운기의 짐칸에 오르고는 배변을 할 때처럼 엉덩이를 경운기 바닥에 닿지 않게 든 채 앉았다.
타고 가는 동안 만재는 경운기에서 내리지 말고 가는 데까지 가자고 주장했다. 어차피 그날 그들이 만폭동에 도착할 수는 없는 일이니 어디선가 자야 할 것이고 그 어디선가가 경운기가 멈추는 곳이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느냐고. 영덕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게 찬성의 의사에 가깝다는 것을 알자 봉수는 앞에 나타난 저수지로 고개를 돌렸다.
경운기가 멈춘 곳은 국도에서 오백여미터 떨어진 마을 안에 있는 농부의 집 앞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버드나무가 둑에 서 있는 저수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수지 위쪽에 원두막이 서 있었다. 원두막이 있는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은 오이였다.
텐트 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 안도하며 그들은 원두막 아래로 기어들었다. 어느새 오이를 와그작거리며 씹던 봉수는 “아, 이왕에 원두막까지 짓고 했으마 수박이나 참외 같은 거, 하다못해 도마도라도 좀 심지. 고구마는 아직 안 익었을 거니까 말고라도 감자에 고추, 애호박 뭐 이런 거 좀 심었으마 우리가 맛있게 먹어주고 하면 좋잖아” 했다.
“돈 나가는 거 심었으면 원두막을 지키고 있겠지. 그럼 우리가 잘 자리가 어디 나와? 주인이 어디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여기 있다가 나중에 어두워지면 올라가자.”
만재의 말에 봉수는 오이꼭지를 버리며 “원두막 짓고 모기장도 좀 해놓지. 밤새도록 피 뜯기기 생爟네. 마이 먹어야 되겄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영덕이 뭐라고 한마디 했다.
“뭐, 뭐?”
“뭐?”
만재와 봉수가 영덕에게 동시에 묻자 영덕은 손가락으로 원두막 아래 놓여 있는 나무궤짝을 가리키며 “소주 됫병” 하고 말했다.
“아, 조선 천지에 이래 훌륭하고 착한 원두막 주인이 다 있구마이. 내, 모기장은 용서한다.”
봉수가 외쳤다. “조용히!” 하면서도 만재 역시 1.8리터 용량의 푸른 병에 3분의 2쯤 들어 있는 액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통에 있던 물로 밥을 지은 그들은 오이와 된장, 고추장을 놓고 식사를 했다. 오이를 고추장, 된장에 찍어먹는 것만으로도 반찬이 되었다. 식사를 마친 뒤 저수지 수문 쪽으로 가서 몸을 씻었다. 저녁이 되자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떨어지면서 첨벙첨벙 소리를 냈다.
별이 뜨고 나서 세 사람은 원두막 위로 올라가 삼각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만재는 기타를 잡고 오래도록 줄을 맞췄다. 줄을 맞추고 난 뒤에는 봉수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목청을 줄처럼 오래도록 가다듬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가늘고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By yon bonny banks and yon bonny braes, Where the sun shines bright on Loch Lomond, Where me and my true love were ever wont to gae, On the bonny, bonny banks of Loch Lomond.”
“용용, 개코나 로몽이라니 뭔 가사가 그 모양이야. 너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가발을 쓰고 음악다방에 가서 디스크자키 일을 해왔다는 봉수는 팝송에 관해 언급할 때면 출신지역의 사투리를 버리고 자동적으로 표준말이 되었다. 그 노래의 가사가 사투리나 고어로 되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뭘? 원래 이런 가사야. 스코틀랜드 민요라고.”
“왜 그걸 오늘 네가 이 자리에서 불러야 하는데?”
“야, 이건 본인이 졸업한 고등학교 교가다. 그 노래 원어가 원래 이래. 권투 세계타이틀전 하기 전에 가수가 부르는 애국가 같은 거니까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어.”
만재는 후렴을 마저 부르기 시작했다.
“O you’ll take the high road and I’ll take the low road, and I’ll be in Scotland afore ye, But me and my true love will never meet again on the bonny, bonny banks of Loch Lomond.”
이어서 잠깐 반주를 쉬는 듯하다가 그만 했으면 하는 봉수의 간절한 바람을 짓뭉개며 2절로 들어갔다.
“’Twas then that we parted in yon shady glen, On the steep, steep side of Ben Lomond……”
“스톱. 제발 스톱. 고문이네, 고문. 너 나한테 무슨 감정 있냐?”
“조영덕, 넌 어때?”
만재는 영덕에게 시선을 돌렸다. 영덕은 말없이 원두막을 내려가버렸다. 만재는 그걸 중립으로 해석하고 3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The wee birdies sing and the wild flowers spring, And in sunshine the waters are sleeping, But the broken heart it kens nae second spring again, Tho’ the woeful may cease from their greetings.”1
경운기 붙드느라 쉰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만재는 그런 김에 눈시울이라도 시큰해지면 구색이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저수지 너머 들판이 어두워져오고 있었다. 거대한 천막이 쳐진 듯한 하늘에 송곳으로 구멍을 낸 듯한 자리에 별이 반짝거렸다. 저수지 둑을 내려다보며 제 나름의 침묵에 빠져 있는 만재를 향해 같잖다는 듯 하, 하, 하는 소리를 내던 봉수가 한껏 저음으로 말했다.
“분위기 삭 다 조지고 있네. 이런 칸추리 휠드의 이브닝에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로 확 휠링을 살려줄 수도 있고 그거 어려워서 못하겠으면 너 전에 네 방에서 아버지 귀청 떨어지라고 발악하면서 부르던 비지스의 돈 훠겟 투 리멤버를 해도 되잖나.”
“너 하고 싶은 건 네가 직접 해.”
“오 마이 갓, 무식하기는. 디제이가 기타 쳐가면서 노래 부르는 게 아니지.”
그때 영덕이 돌아와 한아름 따온 오이를 털퍼덕, 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교가 좋다. 한번 더 해라.”
오이를 반으로 부러뜨려 고추장을 찍은 뒤 입으로 가져가며 영덕이 그날 세번째로 입을 열었다. 코펠 뚜껑에 따른 소주를 마신 뒤 만재는 우리말로 된 고등학교 교가를 3절까지 불렀다. 그들이 함께 졸업한 초등학교 교가는 물론, 오이밭 원두막에 어울리지 않는 「호텔 캘리포니아」는 봉수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내 부르지 않았다.
각자 스무개 가까이 먹고도 오이는 많이 남았고 고추장도 거의 무한정이었지만, 술이 떨어지면서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술기운이 가시기 전에 잠이 들어야 했으므로 세 사람은 서둘러 원두막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누웠다. 만재는 아래에 있는 배낭에서 모포를 가져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 그냥 잠을 청했다.
새벽녘에 만재는 추워서 잠에서 깼다. 산 아래라 그런지 도시와는 온도가 달랐다. 잠결에 추위를 막아보려고, 체표면적을 최소화하려고 온몸을 얼마나 오그렸는지 근육통이 생길 정도였다. 봉수와 영덕도 몸을 새우처럼 한껏 오그리고 자고 있었다. 만재는 일어나 책상다리로 앉았다.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긴 허리를 한껏 굽혀 다리를 덮었다. 한결 따뜻했다. 이게 상체가 긴 동양인들이 유리한 점이지. 만재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추위 때문에 해 뜨기 전 눈을 뜬 세 사람은 전날 먹고 남은 찬밥을 물에 말고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으로 아침을 마쳤다. 마을 전체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 저수지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결에 잘그락, 삐거덕, 꼬꼬, 텅, 스르륵, 통통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둑을 따라 내려오며 만재는 다시 이곳을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목을 쓰다듬었다.
전날 지나치게 빨리 걸었던 것 같았다. 자신의 페이스가 아니라 봉수의 페이스에 따른 게 문제라고 만재는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맨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셋 중에 둘이 길에서 고꾸라져서 뒤져도 만폭동 가야지.”
봉수가 일부러 그러는지 무심결에 그러는지 자극을 해왔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삼십분쯤 걸었을 때 만재는 누군가 배에 철삿줄을 넣고 아래를 끌어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둘러보자 도로변에 블록으로 엉성하게 지은 창고가 있었다. 만재는 배낭을 벗어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꺼내 들고 창고 뒤로 달렸다. 바지를 끌어내리자마자 요란한 원동기 엔진소음과 그에 걸맞은 수준의 냄새가 피어올랐고 불그죽죽한 액상물질이 흙바닥에 닿았다 엉덩이에 튀었다. 만재는 신음소리를 냈다.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뒤로 두세번, 간헐적으로 원동기 엔진소리가 나고 난 뒤 만재는 일어났다. 개운하지 않았다. 개운할 수가 없었다. 창고 벽에 검은 페인트로 ‘멸공’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발치에 철이 두번은 지난 듯한 마른 똥이 산수교과서에서 찢어낸 종이를 물고 놓여 있었다. 거품이 채 가라앉지 않은 자신의 것을 비교한 뒤 만재는 휴지로 덮었다.
점심 때까지 열번 이상 바지를 끌어내렸다 올린 만재는 기진맥진했다. 다같이 먹은 오이와 고추장인데 왜 자신만 유독 물똥을 싸대는지 억울했다. 일행의 발걸음은 뜨거운 날씨와 만재의 상태 때문에 전날에 비해 형편없이 지체되었다. 그럼에도 그늘이 많아지며 만폭동이 가까워졌다는 표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피서객들이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스팔트가 벗겨진 길 위를 승용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관광버스가 줄지어 왔고 금천에서 온 임시운행 버스도 왔다. 걸어가는 사람은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그럴 때마다 봉수는 욕하는 걸 빠뜨리지 않았다.
만재는 무럭무럭 커지는 미움을 의식했다. 봉수의 목소리 자체가 듣기 싫었다. 함께 먼지를 덮어써도 희고 단정한 옆얼굴이 혐오스러웠다. 자신이 가래톳과 물집, 설사로 미적거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가 작동하듯 착착 나아가는 봉수의 걸음걸이가 미웠다. 그렇다고 가지 말자거나 쉬었다 가자거나 하는 말을 하기도 싫었다. 모든 게 싫었다. 자신의 무능한 몸까지.
“자, 밥 먹고 가세. 먹는 게 남는 거지, 뭐 여행의 낙이 뭐냐.”
봉수가 기운차게 말했다. 만재는 가까운 바위에 펄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긴 머리를 쓸어올렸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땀에 젖어 있었다.
영덕이 코펠에 쌀을 담아 계곡으로 가서 씻어왔다. 봉수는 “딩가당당 돈 훠겟 투 리메엠버 미”를 외치다 고음으로 올라가지 않자 휘파람으로 불었다. 만재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헉헉거리는 자신의 숨소리를 셌다.
“점심은 뭐여? 된장찌개? 선택의 여지가 없구먼.”
어느새 봉수는 그들이 경계를 넘어온 지역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만재는 그것도 역겨웠다.
“근데 말이다. 찌개에 넣을 게 없네. 된장밖에.”
“왜, 근대 있다면서?”
만재가 안간힘을 다해 받았다. 봉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된장찌개를 할라면은 필수적으로 양파, 마늘, 두부, 파 이런 것들이 들어가서 조화를 이뤄야 된다 말이여. 우리한테는 하나도 없구만. 그러니까 무전여행의 수칙에 따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걸로 해결한다 이 말이여. 저게 민들레냐 질경이냐, 저거 넣어볼까?”
“독초면 어쩔라고. 네가 풀을 알아?”
“그러면 여기 밤나무잎은 워띠여. 열매는 원래 먹는 거이니까 독이 없을 거고 엽록소는 풍부해 보이는구나.”
그리하여 밤나무잎이 코펠 바닥에 깔려 된장과 함께 푹 삶겼다. 버너가 하나뿐이었으므로 찌개를 먼저 끓이고 밥을 하기로 했다. 밥을 하는 동안 된장찌개를 맛본 세 사람은 하나같이 이마를 찌푸렸다.
“세상에 이래 씨운 딘장찌개는 처음 먹어보네. 깅기랍이 이래 씹나, 소태가 이래 씹나?”
쓴맛을 본 봉수의 말투는 금방 사투리를 회복했다. 만재는 고추장은 보는 것도 싫어서 밥을 물에 말아서 된장을 조금씩 떼어서 먹었다. 영덕은 묵묵히 자신이 끓인 된장찌개를 먹었고 봉수는 고추장에 밥을 비벼서 먹었으며 조금 가벼워진 된장통과 고추장통을 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트림과 함께 한마디 덧붙였다.
“여행은 짐이 줄어가는 맛으로 하는 것이여.”
만재를 짓누르는 짐은 줄어들 가망성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두루마리 화장지, 담배 두갑, 버너용 알코올과 석유통과 버너 속의 석유 따위야 줄어들 수 있었지만 무게가 그다지 줄지는 않았다. 봉수는 계곡에는 뱀이 많다면서 화려한 빛깔의 등산용 양말을 꺼내 신었다. 그러고 보니 신발도 제대로 된 가죽 등산화여서 평소에 신고 다니던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온 만재와는 여러모로 비교가 되었다. 봉수가 날렵한 전문 산악인이라면 만재는 짐 많은 피난민의 몰골이었고 영덕은 세상만사에 초연한 나그네였다.
본격적으로 만폭동 안에 들어서자 계곡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휴가 온 사람들은 의외로 공간을 잘 나눠서 점유하고 있어 덩치 큰 세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곳은 조금도 없었다. 물줄기가 계곡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지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오면서 봉수는 밥을 해먹은 장소로 다시 가자고 했다. 계곡 바깥 후진 곳이라도 지금 자리를 잡아야 그나마 하루를 누워서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만재는 최대한 가까운 곳에 몸을 눕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밥을 해먹었던 자리도 이미 다른 가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요리에 필요한 도구와 고기, 상추 등속의 채소가 골고루 갖추어진 식탁에서 나는 지글지글 하는 소리, 고기 익는 냄새는 길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만재는 다시 뱃속에서 철삿줄로 훑어내리는 듯한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설사가 아니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아니 사람답게 먹고 싶다는 욕구가 그런 느낌을 가져오고 있었다.
“야, 이제 그만 가자. 난 때려죽여도 더 못 가겠다.”
봉수는 돌아보지도 않고 규칙적으로 걸음을 옮겨서 아래로 향했다. 봉수의 엉덩이에 만재는 또 적의를 느끼며 주저앉았다. 앞서갔던 봉수가 손짓을 하는 걸 보고 영덕이 만재의 기타와 텐트가방을 들고 따라갔다. 봉수가 자리를 잡은 곳은 전에 있던 사람이 남긴 음식쓰레기 냄새가 났고 이따금 지나는 차들이 피워올리는 먼지가 날아드는 곳이었다. 상류의 피서객들로 흐려지긴 했어도 물은 풍족했고 시원한 편이었다. 더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어서 만재는 배낭을 베고 누워버렸다.
저녁이 되어 영덕이 밥을 지은 뒤 만재를 깨웠다. 텐트 입구에 걸터앉은 봉수는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만든 젓가락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또 물 말아 먹어야 되냐?”
만재가 말하자 영덕이 간장병을 내밀었다. 그리고 비벼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만재는 비닐마개를 빼고 코펠에 담긴 밥에 간장을 부어서 비볐다. 입에 밥을 가져가자 한 숟가락도 다 먹기 힘들 정도로 짰다. 물을 마셔대는 그를 보며 봉수가 웃었다.
“어히이요, 그거 조선간장이다. 짠 줄 몰랐나?”
그 정보가 만재에게는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만재는 한끼를 걸렀다.
먼지가 덮인 텐트를 털어서 접어넣고 세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다. 전날 밤 정한 대로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휴가지이면서 사람이 훨씬 덜 가는 천곡사 계곡으로였다. 그곳으로 가려면 만폭동 뒤에 서 있는 정상이 해발 천미터쯤 되는 만암산을 둘러가야 했다. 출발한 지 한시간쯤 되었을 때 만재는 발을 절름거리기 시작했다. 운동화 왼쪽은 입을 벌렸고 오른쪽은 옆구리가 터졌다. 만재는 길에서 비닐끈을 주워서 신발을 묶었다.
텐트는 영덕이 들고 있었고 기타는 봉수가 들고 가며 이따금 줄을 훑어대고 있었다. 만재는 체면이고 뭐고 가게가 나오면 안으로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끓여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오로지 그 상상만 하며 절룩절룩 걷고 있었지만 산길로 접어들고 난 뒤 인가의 흔적이 끊어져버렸다. 만폭동 입구에서 많던 가게 중 하나에라도 들어갔을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왔고 왜 이 여행을 시작했던가, 하는 후회가 덧씌워지며 증폭되었다. 하필 이 인간들하고 알게 되었는가, 왜 비슷한 장소에 비슷한 때에 태어났는가, 어째서 세상에 나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 하는 식으로 후회는 이어졌고 결국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그런 정황을 들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앞서서 산길을 걷자니 힘은 더 들었고 서러움도 더했다.
산속으로 들어와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훨씬 많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도정의 반쯤 왔을까 싶었을 때 문득 자그마한 암자가 나타났다. 채마밭에 어린 배추와 무가 자라고 있었고 상추와 시금치, 고추도 보였다. 세 사람의 발길은 저절로, 빠르게 밭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인분냄새가 풍기는 것이 밭에 거름을 낸 지 하루이틀밖에 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 깨지고 잘되는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밭이라 카더이마.”
만재는 절 앞에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담배를 피워 무는 봉수에게 뭐라 할 기운도 없었다. 절간 요사채 마루에 수건과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만재는 배낭을 내려놓고 털썩 마루에 주저앉았다. 주전자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 물을 떠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만재는 주전자 뚜껑을 열고 물을 따라 벌컥대며 마셨다. 무심코 수건을 들어 입 주변을 닦았고 잘 마른 듯한 느낌이 좋아 얼굴과 목의 땀을 닦았다. 흰 수건이 금방 회색이 되었다. 주전자의 물과 수건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곧 돌아오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승복을 정갈하게 입고 이목구비가 단정한 삼십대 초반의 승려가 법당에서 나왔다. 봉수가 담배를 바닥에 밟아 끄고 박수소리라도 날 듯한 큰 동작으로 합장을 했다.
“시니임, 안녕하십니까.”
저음의 윤기있는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초대면을 하는 사람마다 잘난 디스크자키 생활로 갈고닦은 목소리를 강조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 만재에게는 못마땅했다. 만재는 몸을 일으켜 합장을 했다. 영덕은 절의 습속에 익숙하지 않은 듯 그냥 고개를 숙였다 세웠다. 승려는 미소를 띠며 합장을 해보였다.
“오느라 힘드셨지요?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다 가세요.”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승려가 절에 오기로 약속한 사람으로 오해를 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승려는 마루로 다가와 주전자를 들어보고는 주전자와 수건을 들고 요사채를 돌아 사라졌다. 만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승려는 돌아오면서 더 큰 주전자와 깨끗한 수건 세개를 가지고 왔다. 봉수가 넙죽 그것들을 받아들었고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많이 마시는 것이 보답이라도 되는 듯이.
승려는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주전자와 수건을 준비해두는 게 틀림없었다. 마치 불전(佛前)의 공양구인 정병(淨甁)에 언제나 물을 담아두듯이. 만재에게 가슴 한구석에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약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시님, 저희들이 지금 걸어서 무전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밥 좀 해먹고 가도 되겠죠?”
봉수의 말을 듣는 동안 승려의 얼굴에는 꽃이 피듯 웃음기가 번졌다.
“저는 좀전에 공양을 해서…… 편한 대로 하십시오. 저기 나무그늘이 시원하겠군요.”
세 사람은 늙은 감나무가 서 있는 마당의 바위 아래로 향했다. 잠깐 모습을 감추었던 승려가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레토르트 자장이 두 봉지 들려 있었다. 봉수가 벌떡 일어나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아이고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승려는 웃음소리도 맑았다.
“며칠 전에 등산하시는 분이 지나가면서 저희 먹으라고 두고 가신 거예요. 마침 잘됐네요.”
그러지 않아도 뭔가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장아찌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던 만재의 가슴이 다시 떨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
만재는 진심에서 우러난 인사를 했다. 만재가 고개를 들자 승려는 맑은 눈으로 그를 정시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신 게 인연이지요. 육류가 조금 섞여 있어서 제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인데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먹어주신다니 제게 참 고마운 일입니다. 가난한 암자라 드릴 수 있는 게 물밖에 없네요. 공양 맛있게 하세요.”
자장 봉지를 물에 데워서 내용물을 뜨거운 밥 위에 얹고 한꺼번에 비볐다. 어떤 산해진미보다 더 큰 감동이 혀를 비롯해 이, 목구멍, 식도, 위장까지 퍼져나갔다. 세 사람은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난 뒤 숨소리를 식식대며 앉아 있었다.
만재는 장독대에 놓인 독이 다섯개밖에 없는 것을 보고 암자가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다. 쌀이라도 시주를 하고 가는 게 어떨까 싶었지만 봉수가 대뜸 제 배낭의 쌀을 몽땅 꺼내고 “여행의 재미는 짐 줄이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는 정황이 연상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석유나 알코올을 시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만재의 눈에 신발에서 튀어나온 발가락이 들어왔다. 산을 내려가 시장에 가게 되면 신발부터 사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비상금을 다 털어도 오로지 걸어서 행로를 주파하는 무전여행에 걸맞은 튼튼한 신발을 살 수는 없을 것이지만. 한숨을 쉬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만재의 눈길이 요사채 마루 쪽으로 향했다. 마루 밑에 농구화 한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 옆의 기둥에 기대어 있는 지게와 지게작대기, 통은 거름을 나를 때 썼던 게 분명했다. 낡았지만 모두 깨끗했다.
“저게……”
말을 하다 말고 만재는 일어나서 마루로 다가갔다. 가는 중에 신발이 벗겨졌다. 물론 저절로 벗겨진 것은 아니었다. 농구화에 만재의 발이 들어간 것은 거의 저절로 이루어진 동작이었다. 나머지 발이 한쪽 신발에 들어가는 순간 봉수가 다가와 속삭였다.
“맞나?”
만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덕이 배낭에 코펠과 버너 따위를 한꺼번에 쑤셔넣고 다가왔고 만재가 신발끈을 매는 사이 지게작대기를 든 봉수가 이미 앞장을 서고 있었다. 들어오면서는 보지 못했던 무진암(無盡庵)이라는 나무 현판이 처마 밑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며 세 사람은 구렁이 담 넘듯 산속으로 도망쳤다. 소리를 내도 괜찮을 만한 거리가 된다고 판단하자 봉수는 지게작대기로 풀을 후려쳐가며 길을 만들었다.
자장과 함께 배 터지게 먹은 밥에서 난 힘으로 만재는 산 위를 향해 뛰었다. 허벅지며 발바닥의 아픔 따위는 온데 간데 없었다. 가슴이 방망이질칠 뿐이었다. 이십여분 뒤에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달한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배낭을 던지고 드러누웠다. 만재가 먼저 웃기 시작했다. 봉수가 따라 웃었다. “아아하하하” 하는 소리가 각자의 몸 안팎을 울렸다. 바람이 솨아솨아 하고 비슷한 소리를 냈다. 봉수를 향한 적의는 웃음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신발이 편해지자 만재의 걸음은 한결 빨라졌다. 만재는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차례 더 웃음이 터졌다. 일행에게 농구화와 지게작대기 말고도 전에 없던 활기와 결속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만암산은 이름처럼 바위가 많았고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바위를 서너개째 타넘고 나자 가파른 흙길이 나타났다. 길 끝은 굽어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봉수의 제안으로 깨지는 것을 빼고 배낭을 아래로 먼저 굴려 보내고 몸이 따라가기로 했다. 봉수가, 다음에 영덕과 만재가 차례로 배낭을 굴렸다. 만재는 유리로 된 간장병을 들었고 영덕은 기타를 들었다. 봉수는 석유통을 쥐고 맨 뒤에 섰다. 만재가 먼저 발을 디뎠다. 몇걸음 못 가 흙길에 떨어져 있던 작은 나무토막을 밟았다. 나무토막이 도르래처럼 돌며 한발이 미끄러졌고 만재의 몸은 균형을 잃고 경사지에 나가떨어졌다. 몸이 굴러내리기 시작했다.
“간장, 간장!”
봉수의 외침이 들렸다. 만재는 그 와중에도 간장병을 들어서 땅에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마지막 바퀴를 굴렀을 때 간장병은 만재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주변에 훅, 하고 간장냄새가 퍼졌다. 만재는 눈을 더듬었다. 안경이 달아나고 없었다. 뒤따라 내려온 봉수는 대자로 누워 있는 만재의 몸 위에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터뜨렸던 것과 같은 웃음소리를 쏟아부었다.
“야 이 새끼야, 넌 간장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간장. 그 다음이 병.”
만재는 적의가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봉수 혼자 웃고 있었다. 영덕이 주변을 한참 뒤진 끝에 안경을 찾아왔다. 왼쪽 알에 서너줄의 금이 갔고 다리가 떨어져나갔다.
만암산을 내려온 뒤에 만재가 맨 먼저 한 일은 가게에 들러 실을 얻은 것이었다. 안경다리가 떨어져나간 자리에 실을 걸어 귀에 맨 만재는 농구화가 밑창이 얇아 전날보다 더 큰 물집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절뚝절뚝 걸어갔다. 곧 면소재지가 나타났으나 작은 시가지에는 안경점이 없었다. 단층건물 유리에 다방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을 보자마자 만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밀었다. 봉수와 영덕이 따라 들어왔다.
세 사람은 커피를 주문하고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만재는 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안경 없이 여행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자신의 입으로 여행을 그만두자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생고생이 아깝기도 했다.
“먼저 안경부터 고쳐야겠다. 이 동네는 안경점이 없으니까 차를 타고 큰 데로 나가든지 해야겠어.”
조금 떨어져 앉아서 껌을 씹으며 신기하게 세 사람을 보고 있던 여종업원이 “읍에 가야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읍으로 가는 버스는 세시간쯤 뒤에 있을 것이고 삼십분쯤 걸린다는 것도. 그들이 가려는 계곡으로 향하는 버스 역시 세시간쯤 뒤에 있었다.
“일단 한 게임 치민서 생각하는 기 어떻노.”
봉수가 당구를 치자고 제안했다. 이미 커피 때문에 무전여행의 ‘무전’의 원칙이 깨진 마당이었다. 당장 다방의 커피값은 영덕이 계산하고 그것까지 당구 내기에 포함하기로 했다.
원래 당구 실력은 만재가 250으로 가장 셌다. 그러나 그에게는 오른쪽 안경 알밖에 못 쓴다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를 감안하지 않고 평소 실력대로 치다가 150인 봉수는 물론이고 120인 영덕에게도 지고 말았다. 게다가 자장면까지 시켜 먹으며 당구를 치다 보니 세시간이 지나자 당구장에 지불해야 되는 돈에 커피값까지 합하여 내기의 승패에 상관없이 세 사람이 가진 돈이 거의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안경점을 가봐야 안경을 고칠 수 없으니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천곡사 계곡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세 사람의 남은 돈을 다 합쳐도 담배 한갑 살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잠시의 유전(有錢) 상태에서 제대로 된 무전 상태가 되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마 꽁치통조림이라도 하나 사놓고 당구를 시작하는 긴데. 촌동네가 당구장 게임비는 도청 소재지하고 똑같네. 에라이, 도둑놈들아.”
만재는 기력도 의욕도 없이 앉아 있었다. 털털거리며 가는 버스 옆으로 붉은색 승용차가 지나갔다. 썬글라스를 낀 세 청년이 타고 있었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달콤한 사아랑을 속삭여줘어요. 불 타아는 그 입술 처음으로 느꼈네.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 먼지 구디를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가마 뭐 하는데. 미친놈들.”
봉수는 끈덕지게 세상만사에 제 나름의 해석을 붙이고 있었다. 만재가 눈을 감아도 계속 들려왔다. 다행히 오래가지 않아 버스가 천곡사 입구에 멈췄고 일곱밖에 안되는 승객들이 내렸다.
천곡사 계곡은 만폭동에 비하면 사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야영장도 텅 비어 있다시피 했고 몇 안되는 가게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여름 오후 특유의 뜨끈하고 끈질긴 햇빛에 넌더리를 내며 일행은 야영장 바깥, 포플러나무 아래로 천막 칠 장소를 정했다. 야영장에는 그들이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본 붉은색 승용차가 서 있었고 그들 역시 천막을 치고 있었다. 만재가 가지고 온 텐트의 두배는 될 듯했고 따로 널찍하게 그늘막을 치고 해먹을 매달았다.
“그 새끼들, 팔자 한번 더럽게 좋은 놈들이네.”
봉수는 논평을 하면서도 혹시 뭔가 빌어먹을 게 없을까 싶었는지 소리를 낮췄다. 새끼손가락을 세웠다 굽히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까이들은 안 데리고 댕기지? 우리맨구로 없는 놈들한테 비키니 구경이라도 시켜주면 좋잖아?”
만재는 전날처럼 배낭을 벤 채 누워버렸다.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며 포플러잎이 흔들릴 때마다 비쳐드는 햇빛을 성가셔 하던 만재의 눈앞에 쌀이 든 코펠이 보였다. 봉수와 영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만재는 지금까지 계속 영덕이 밥을 도맡아 해온 것을 상기했다. 코펠을 들고 일어섰다. 야영장 옆 움푹한 곳에 샘이 있었고 저녁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몇 보였다.
“어디서 오셨어요?”
썬글라스를 샘가 돌 위에 걸쳐놓고 상추를 씻던 청년이 안경을 벗던 만재에게 물었다. 장발이긴 했지만 소년처럼 해사한 얼굴이었다. 만재는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쪽은요? 저 차, 타고 오신 거죠?”
청년은 그렇다고, 다소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T시에서 왔으며 시끄러운 곳, 해수욕장이나 만폭동 계곡 같은 데가 싫고 천곡사 계곡이 한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너무 사람이 없으니까 좀 이상하다고 했다. 만재는 자신은 걸어서 무전여행중이라 가고 싶은 데를 이곳저곳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정말 부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제 갈 계획이냐고 물었다.
“너무 심심해서요. 오늘 같이 온 친구들하고 이야기 좀 해보고요. 내일 바로 갈지도 모르죠.”
그럼 가는 길에 안경점이 있는 곳에 좀 데려다줄 수 있느냐고 만재는 물었다. 가게 되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청년은 선선히 대답했다. 만재는 안경점에 가서 외상을 하든, 협박을 하든 일단 안경알을 해넣고 나서 그다음 일을 생각해볼 참이었다.
“그런데 반찬은 뭘 드세요?”
청년이 물었다. 무전여행이라는 단어며 비범한 안경, 행색이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된장요. 아니면 고추장.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물에 말아 먹죠. 간장에 비벼 먹기도 했는데 오늘 제가 병을 깨서 그건 힘들게 됐고요. 오이는 줘도 싫고.”
이어서 들려준 오이와 설사의 상관관계에 관한 이야기에 청년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상추가 든 그릇을 들고 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안경을 쓰고 왼쪽 눈을 감자 그들이 캔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 흐이구, 소리가 절로 만재의 입에서 나왔다.
청년이 타박타박 정확한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청년의 옷에 새겨진 마크는 만재의 누나가 첫 월급을 타서 큰마음 먹고 만재에게 사준 유명 의류회사의 것이었다. 만재는 그 옷이 떨어질까봐 집에 놔두고 왔다.
“저기요, 괜찮으시면요, 저희랑 같이 저녁 드실래요? 음식을 좀 넉넉하게 준비해왔거든요. 어차피 남기고 갈 것도 아니고 하니까요. 다른 분들도 괜찮다고 하시면요.”
만재는 무조건 괜찮다, 지금 가도 된다고 하면서 그 대신 밥은 우리 쌀로 하자고 제안했다. 청년은 좋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재가 청년의 천막에 합류하고 나서 십여분 뒤에 영덕과 봉수가 감자를 몇개씩 주머니에 넣고 머리에는 거미줄, 손은 흙투성이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천막으로 다가왔을 때 청년들은 위스키를 꺼낸 참이었다. 담배는 말보로였다.
“아, 이거 걸리면 개박살나는 거 아냐? 양담배 한대 피우면 벌금이 얼마지? 대마초하고 같나?”
봉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청년들은 아이스박스도 가지고 왔다. 드라이아이스가 김을 뿜어올렸고 그 안에 양념을 해서 재어온 불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캔맥주도 있었고 병맥주도 청량음료도 있었다. 봉수가 대뜸 사이다부터 집어들었다. 병뚜껑을 이로 물어서 따더니 숨도 쉬지 않고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아, 이거 정말 죽인다. 이런 사이다 맛은 평생 처음이네.”
청년들이 불을 피우고 팬을 올려놓았다. 불고기가 익는 냄새가 나자 만재는 현기증을 느꼈다. 냄새만으로 황홀할 수가 있구나. 만재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청년들은 코펠을 각자 한벌씩 가져왔다. 알루미늄 그릇에 위스키를 받아서 단숨에 들이킨 만재는 속이 찌르르 하는 느낌에 공명하듯 어깨를 떨었다. 상추에 불고기를 올려서 입이 미어터져라 밀어넣고 씹기 시작했다. 입아귀가 맹렬하게 반응했다. 빨리 씹어서 다음 차례의 소화기관에도 그 미칠 듯한 맛을 보게 해주겠다는 듯, 입 근육을 모두 전력으로 가동했다. 봉수도 눈이 가운데로 몰린 채로 넋을 잃고 고기를 씹고 있었다. 영덕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년들은 약간 놀란 듯 그런 그들을 지켜보았다. 만재가 슬쩍 청년을 보자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맥주를 마셨다. 상추로 싼 불고기를 열번쯤 맛보고 난 뒤에야 위에서 이젠 천천히 보내도 된다는 신호를 해왔다. 그때부터는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다시 위에서 신호를 보낼 때까지 위스키 한병을 비웠다.
“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우리가 술을 다 먹어버렸네.”
만재가 말보로를 입술에 문 채 인사를 차렸다. 세 청년은 생김새는 달랐지만 옷차림이며 태도, 말투는 형제처럼 닮아 있었다. 한결같이 귀한 집안에서 자란 자제들의 태가 났다.
“아뇨, 더 있어요. 종류가 좀 다른데, 이건 보드카거든요.”
어차피 세 사람은 잔에 따라놓으면 뭐가 뭔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냥 비싼 술이다, 바다 건너왔다, 남보다 한잔이라도 더 마시자가 대응방법이었다. 청년들은 캔맥주를 다 마시고 나서는 영국산 진을 꺼내 토닉워터와 섞어서 칵테일을 만들어 마셨다.
청년들은 T시에 있는 국립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전공은 화학, 수학, 기계공학으로 다 달랐지만 두 사람은 중학교 동창, 세 사람 공히 고등학교 시절 가입한 T시의 남녀 혼성써클 동기였다.
“그게 뭐 국민학교 동창회하고 마이 다른 건가요? 우린 고등학교 때 여자들 있는 써클에 못 들어가 봐가이고.”
처음에 그 써클은 공통된 종교를 가진 고등학생들로 만들어졌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소그룹으로 분화되었다. 그들이 소속된 그룹은 스무명 남짓 된다고 했다. 모임에서 종교의식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대화를 하며 주변의 명소에도 함께 가고 스케이트도 같이 탄다고 했다. 겨울에는 얼음판에서, 다른 계절에는 롤러스케이트를. 집안의 경제수준이 비슷하고 아버지들의 직업 역시 비슷하다는 말이 나왔을 때 봉수의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의사? 변호사? 아버지가 군수, 아니면 시장이시라고? 끼리끼리 결혼도 하겠네. 아도 낳고. 그래마 가들이 또 뭐 육사 가고 고시 해가이고 또 우리 겉은 민중을 다스리시고? 좋네, 좋아.”
만재가 샘터에서 만났던 청년이 해명했다. 자신들이 일부러 그렇게 만나려고 한 게 아니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다 보니 그 사람의 친구가 오게 되고 비슷하니까 친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차별해서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마 디제이 하는 나 같은 사람도 끼워줄 수 있어요? 안되지? 절대로 그래는 안되지요?”
내내 말없이 앉아 있던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이 지금은 새로운 멤버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 써클은 고등학교 때 있었을 뿐 지금은 존재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이래 외제 스포츠카 타고 몰리댕기는데요? 말해보소, 응?”
“이 차는 외제 아니고 스프츠카도 아니에요. 마침 타고 올 수 있는 차가 이것뿐이어서 타고 온 거예요.”
“왜 해필 빨간색으로 타는데? 기집아들 꼬실라고?”
“형씨, 말씀이 좀 지나치네요. 우리가 무슨 색 차를 타든 그쪽에 결례를 한 것도 아니고 피해를 입힌 게 아니잖습니까?”
“아이지, 당신네 차 때문에 길가에 사는 사람들이 먼지를 뒤집어쓰잖아요. 우리도 어제 밤새도록 길가에서 먼지를 먹었다고. 우리가 원래 이래 더럽고 거지 꼬라지였는 줄 알아요?”
“나 원 참, 그거야 도로가 포장이 안돼서 그런 거지, 우리 때문입니까?”
“지금 정부가 나쁘다고 말하는 거지요? 대한민국 정부를 비방하는 거 아냐? 우리나라가 도로 포장도 못할 정도로 후진국이다, 이거지? 기름 한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차나 끌고 댕기고, 한심하기는.”
“한심하다니요. 초면에 심하군요. 이것 봐요. 더이상 쓸데없는 말씨름하기 싫으니까 그만합시다. 다 드셨으면 나가주세요. 우리는 우리끼리 쉬고 싶으니까.”
보다 못한 만재가 나섰다. 자신의 한몸을 제단에 던지는 기분으로. 무슨 제단인지는 모르지만.
“죄송합니다. 우리가 요 며칠 힘든 일이 많아가지고 그러는 거니까 이해를 좀 해주시고요. 저녁 잘 얻어먹고 이게 무슨 꼴인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야, 변봉수, 가자.”
그러나 청년 쪽은 분이 안 풀린 듯했다.
“그쪽 분이 사과할 일은 아니지요. 사과할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엉뚱한 사람이 말로 하는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안 받을 거고 안 받아도 좋으니까 가세요.”
만재가 말했다.
“그럼 어쩌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얘를 두들겨 팰까요? 패서라도 사과를 하면 받으시겠습니까?”
“그거야 그쪽 사정이니 알아서 하실 일이지요.”
이번에는 청년이 끼어들어 친구를 제지했다.
“영훈아, 너 좀 가만히 있어. 저기요, 지금 이 분위기에서는 대화를 더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냥 가주시죠. 제가 아까 사람을 잘못 봤네요.”
마지막 말이 만재의 뱃속에 들어 있는 철삿줄을 끌어내리는 듯했다.
“지금 저녁 같이하자고 초대하신 분 말씀이, 자신이 초대한 사람은 하나뿐인데, 그 사람을 잘못 봤다고 하신 거죠. 그럼 하나 물어보죠. 제가 무슨 결례를 했습니까? 이 친구가 잘못한 게 제 잘못인가요? 그럼 그쪽 친구 분은 뭘 잘하신 겁니까? 여러분들은 양주 마시고 양담배 피우니까 우리와 수준이 다른 훌륭하신 분이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그런 말이 아닌데. 우린 지금 나름대로 굉장히 힘들다구요. 힘들어서 우리끼리 조용한 데 놀러온 거예요. 더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거죠.”
“빨간 외제 스포츠카 타고 띵까띵까 놀러나 댕기민서 뭐가 힘들다고? 노는 기 힘들겠어, 먼지 먹는 기 힘들겠어?”
봉수가 놓치지 않고 틈을 파고들었다. 영훈이라는 청년 역시 재빨리 가세했다.
“그런 컴플렉스 가지고 남한테 피해주면서 살지 마쇼. 근데 아까부터 왜 반말을 하고 그러냐?”
“뭐, 콤플렉스? 이 새끼가 뒤질라고 지랄 떠네.”
술잔이 날았다. 캔이 날고 병이 날았다. 청년 역시 곁에 있는 코펠, 날아온 병과 캔에 프라이팬을 집어던졌다. 프라이팬에 있던 식은 불고기가 영덕에게 들씌워졌다. 야영장의 가로등이 비치는 가운데 난투극이 시작되었다. 세 사람의 몸무게를 합치면 청년들보다 반사람분은 더 나갔다. 청년들은 주먹이 세거나 무술을 익히지도 않았고 싸움에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심신을 단련하는, 이를테면 펜싱이나 승마 같은 귀족스포츠조차 하지 않은 듯했다. 싸움을 할 때도 묵묵히 싸우는 영덕은 합기도 유단자였다. 그런 까닭에 안경 때문에 앞을 잘 못 보는 만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패는 쉽게 결정되었다.
청년들은 몸 곳곳에 멍이 들고 옷에 피가 묻은 채 무릎을 꿇고 나란히 앉혀졌다. 영덕이 앞뒤로 어슬렁거리다 이따금 손바닥에 침을 뱉은 뒤 몽둥이를 탁탁 쳤고 질문은 봉수가 했다.
“야, 뭐가 힘들어? 뭐가? 너희 새끼들 여기 왜 온 거야? 솔직히 말 안하면 진짜 초상난다. 너 아까부터 징징 짜는 놈. 대답해봐.”
소년 같은 청년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우리 써클 여자애가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갔다 한달 전에 나왔어요. 안에서 고문을 받고 멍석말이를 당했다고 그러더라구요. 걔가 얼마 전에 이 친구 아버지 병원에서 죽었어요.”
“이런 미친 놈의 새끼들, 차만 빨간 게 아이네. 니들 진짜 빨갱이 아니야?”
“아녜요. 우린 빨갱이 아니에요. 솔직히 요새 대학생이면 민주주의 안 바라는 사람 없잖아요. 그냥 민주화에 관해 토론 좀 하고 책을 읽은 것뿐이에요. 그런다고 잡아갔어요.”
“야, 너만 대학생이야? 지금 정권이 어때서 그래? 지금 철없이 데모하고 그러면 북쪽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애? 이것들이 호의호식하고 살아서 전쟁 무서운 줄 모르지. 또 그러면 조용히 죽은 사람을 위해서 절에 가서 제사나 지낼 것이지, 아이스박스에 불고기 재가지고 양주 처먹어가면서 놀러 댕겨?”
“그러니까요. 우린 그런 인간이에요. 개인주의자라고요. 그런데 이 정권이 그런 개인주의자인 친구를 죽였다고요. 고문하고 때리고 뼈를 다 조각조각 부수고 장파열을 시켜서 죽였다니까요. 우리 눈으로 직접 봤어요.”
“그런데 너희들 그 정도 맞았다고 찔찔 우는 거야? 한심한 새끼들, 너 몇살이야, 도대체?”
만재는 그 질문은 제지하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고 대답을 막는 데도 실패했다.
“스물두살인데요.”
봉수는 전혀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디스크자키 경력이 4년이었으니까.
“몇학번이냐고 물었다. 나이가 아이고.”
“칠육학번요.”
“그럼 스물세살이잖아, 인마.”
“만으로 스물둘인데요. 지난달이 생일이거든요.”
만재가 다시 몸을 던졌다.
“야, 그만 됐으니까 가서 자자. 우리 내일 일찍 가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음날이 시작되기 2시간 전, 승용차가 사라지고 난 뒤 세 사람은 최대한 빨리 텐트를 걷어 천곡사 입구를 빠져나왔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가령 만에 하나 경찰이 신고를 받고 들이닥친다든지 하는 것을 감안해서 랜턴의 불도 켜지 않았다. 다행히도 길은 널찍하게 쭉 뻗어 있어서 걸어갈 만했다. 삼십여분을 걸어서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싶은 곳에 마을이, 마을 한가운데 공사장이 있었다. 외벽과 지붕은 만들어져 있는 양옥집이었다. 그들은 텐트를 칠 겨를도 없이 각자 모포를 꺼내 돌돌 말고 잠이 들었다.
여름철이라 공사장의 일은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쫓겨난 세 사람은 공사장 앞에 있는 샘으로 비틀비틀 걸어가 물을 마시고 배낭을 멨다.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에서는 맑고 깨끗한 물이 풍성하게 솟아나왔고 그 물을 잠시 가둬놓은 시멘트 저수통 안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새마을구판장 앞에서 봉수가 각자 남은 돈을 다 걷어서 담배를 샀다. ‘태양’이었다. 봉수는 발을 놀리는 한편 입으로 쎌로판지를 뜯으며 말했다.
“야, 이거 우리 나중에 어데 가든동 어제 같은 쪽팔리는 일이 있었다고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자.”
만재가 물었다.
“너 지금 어쩌려고 그러는데? 지금 담배를 삼등분하려고? 담배 한갑에 스무개비 들었는데 어떻게 나눠져?”
세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공통점이 많아졌다. 얼굴이 햇빛에 그을리고 더럽고 눈이 커보인다는 점에서.
“여섯, 여섯, 여섯, 이래 논구고. 그래마 두개가 남는다. 둘 나누기 셋은 영 쩜 육육육쩜쩜쩜, 하고 무한대다. 장께미나 홀짝으로 해서 맞추는 사람이 한가치씩 가지는 거 어떠냐.”
샘에서 발원한 물은 이끼와 자갈, 물풀 위를 흐르면서 개천으로 들어가 언덕과 논에서 나오는 물과 합쳐졌다.
“가위바위보나 홀짝이나. 난 그렇게 우연에 맡기는 게 싫다.”
물 따라 둑이, 둑에 갇힌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마 이래자. 두개를 한꺼번에 불을 붙이가이고 돌아가민서 삼분의 이씩 피우마 되잖아.”
왜가리가 논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무슨 수로 삼분의 이를 피웠는지 아느냐고. 난 남의 침 묻은 담배 피우기 싫어.”
떴다, 담배와 같은 이름, 태양이.
“갑을 담배 하나로 보고 두 사람은 담배 하나씩, 한 사람은 갑을 가지기로 하자고. 갑 있으마 담배 간수하기 좋지.”
어디선가 물이 솟아나고 어디론가 물은 흐른다.
“갑하고 담배가 같다는 논리에 반대한다.”
개가 짖었다.
“에이, 씨부랄. 그 새끼 더럽게 따지쌌네.”
봉수가 담배를 두 손으로 잡아 비틀고는 개천에 던져버렸다. 만재가 소리를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왜 네 맘대로 담배를 집어던져! 너한테 그런 권리가 어디 있냐고!”
반은 붉고 반은 흰 담배가 갑째 떠내려가고 있었다.
“담배가 있어서 우리 사이가 깨지잖아, 새꺄. 담배 한갑이 뭐 그렇게 대단해?”
밑변이 짧고 양쪽 변이 긴 이등변삼각형을 이룬 채로 세 사람은 한동안 서 있었다.
“우리 사이에 뭐가 있기는 했어? 담배는 확실히 있었다.”
침묵이 세 사람을 감싸고 돌았다. 길가 배롱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다. 물은 낮은 곳으로 아래로 앞쪽으로 흘렀다. 만재는 진홍빛 꽃을 보며 침을 꾹꾹 삼켰다. 봉수는 담배가 흘러간 쪽으로 시선을 던진 채 꼼짝하지 않았다. 영덕이 천천히 물었다.
“이제, 우리, 어, 디, 로, 가, 나?”
만재가 말했다.
“너희가 위면 나는 아래, 너희가 아래면 나는 위로.”
세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점점 삼각형의 변이 길어지더니 마침내 삼각형이 깨졌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었던 삼각형은 다시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 아름다운 둑, 아름다운 언덕 어디서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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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ch Lomond」. 스코틀랜드 최대의 호수인 로몬드호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민요. 가사의 대의는 다음과 같다.
저 아름다운 둑, 저 아름다운 언덕 햇빛 빛나는 로크 로몬드에 나와 내 사랑이 늘 가곤 하던 아름답고 아름다운 로크 로몬드의 둑
오 그대는 높은 길로 가고 나는 낮은 길을 선택하거니 나는 앞쪽에 있는 너 스코틀랜드로 갈 거라네 그러나 나와 내 진실한 사랑은 다시 만나지 못하리니 아름답고 아름다운 로크 로몬드의 둑에서는
우리가 헤어진 곳은 저 그늘진 계곡 험하고 험한 벤 로몬드 옆 진홍빛 짙은 하일랜드 언덕을 우리는 보네 달은 노을 속에 나타나고
오 그대는 높은 길로 가고 나는 낮은 길을 선택하거니 나는 앞쪽에 있는 너 스코틀랜드로 갈 거라네 그러나 나와 내 진실한 사랑은 다시 만나지 못하리니 아름답고 아름다운 로크 로몬드의 둑에서는
작은 새들은 노래하고 야생화는 피어나니 햇빛 속에서 물은 잠드네 그러나 부서진 마음은 다시는 또 다른 봄을 누리지 못할 것을 아네 애처로운 봄은 인사로 그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