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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종천 崔鍾天
1954년 전남 장성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눈물은 푸르다』가 있음. ch3014eo@hanmail.net
가엾은 내 손
나의 손은 눈이 멀었다
망치를 쥐어잡기보다는
부드러운 무엇을 원하다
강요된 노동에 완고해지며
대책 없이 늙어가는 손
감각의 입구였던 열개의 손가락은
자판 위를 누비며
회색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던
손의 시력은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있다
열개의 손가락에서 노동은 시들어버렸다
열개의 열려 있는 입을 나는 주체할 수가 없다
모든 필요를 만들어내던 손
인간의 유일한 실재인 노동보다
입에서 쏟아지는 허구가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니
나의 손은 이제
실재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허구조작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노동을 잃어버리고
허구가 되어간다
상징이 되어간다
화곡역 청소부의 한달 월급에 대하여
올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겠다는
지원비가 드디어 한달에 100만원씩
1200만원으로 올랐다, 용렬하게
이 몸도 신청했다. 문득 화곡역 청소부에게
한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왜 물어보고 싶었을까?
63만원이라고 했다.
시집도 내고 목돈으로 1200만원이나 벌었으니
행복은 역시 능력있는 사람의
권리지 의무가 아니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배때지가 꼴린다, 내가 못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의 이 말은 은유도 비유도 아니다
부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그 청소부는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하고도 그것밖에 가지지 못하나
예술은 허구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시인만이 시인이라고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시인들이여
행복은 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다면 그대는
시인은 못되리라. 행복은 누구나의 의무이다
우리의 행복함은 곧 우리가 선함이요
우리의 불행은 곧 우리가 악하기 때문이라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원리는
화곡 전철역에서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월급이 63만원밖에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