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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미국 신보수주의 내부의 대안 찾기

프랜시스 후쿠야마 『기로에 선 미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김윤경 金倫經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서양사학 yetla@hanmail.net

 

 

135-321

얼마 전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또다시 증파하는 새로운 이라크전략을 발표했다. 이라크전쟁을 조속히 마무리짓고 싶어하는 부시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은 전쟁의 깊은 수렁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내 여론이 악화되고 부시정부의 대외정책과 그 이념적 토대인 신보수주의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랜씨스 후꾸야마(Francis Fukuyama)의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the Crossroads)은 신보수주의와 관련된 쟁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이 갖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이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신보수주의 ‘내부’로부터 나온 비판이라는 점이다.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의 저자이기도 한 후꾸야마는 오래전부터 신보수주의를 신봉해온 인물이지만 여기서는 부시정부와 신보수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자못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이 신보수주의 옹호자에서 비판자로 돌아서게 된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가 다른 신보수주의자들과 결별하게 된 계기는 찰스 크라우트해머(Charles Krauthammer)의 연설이었다. 세계에서 미국이 거의 고립되어 있는데도 이라크전쟁을 무조건적인 성공으로 보는 크라우트해머의 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른 신보수주의자들이 믿는 것과 자신이 믿는 것 사이에 균열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신보수주의가 이제는 내가 지지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결론”(9면)을 내린다.

그래서 그는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과 신보수주의가 남긴 유산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하는데, 우선 부시 대외정책의 실책을 크게 세가지로 나눈다. 첫째, 부시행정부가 위협의 성격을 잘못 판단하고 과대평가했다는 것이다.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테러리즘의 위협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위협과 결합되면서 실제보다 훨씬 크게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군사적인 힘을 강조할 뿐 부드러운 힘의 사용은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라크전쟁 이후의 제도 건설 같은 체제변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셋째, 국제법·국제기구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국가에 대한 경멸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직면한 위협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급진 이슬람주의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비판한다. 이 때문에 선제공격의 개념이 ‘예방전쟁’을 포함하는 것으로까지 잘못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하드주의를 현대화와 세계화의 산물로 보면서 가장 위험한 집단은 중동의 독실한 무슬림들이 아니라 서구의 소외된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한다(102면). 따라서 해결책은 중동이 아니라 이미 서구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을 사회에 통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이슬람 문제를 흔히 종교나 문화의 차원으로 단순화해버림으로써 그 본질을 왜곡하는 주장들과는 달리, 그 속에 내재된 사회경제적인 관계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저자는 급진 이슬람주의를 서구사회의 내부문제로 한정함으로써 그것이 세계체제내 미국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에 대한 이슬람의 저항이라는 측면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후꾸야마가 신보수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해서 그를 ‘변절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신보수주의와 완전히 결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신보수주의 자체보다는 그 원칙들의 그릇된 적용이 문제라고 본다. 이 책의 2장은 1930~40년대 뉴욕시립대학의 유대 지식인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보수주의가 어떻게 변화·왜곡되어왔는지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신보수주의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여러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그 속에는 정치체제의 내적 성격의 중요성, 미국이 도덕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 사회복지 프로그램 같은 “사회계획을 위한 야심찬 노력”에 대한 불신, 국제법 및 국제기구의 정당성과 효율성에 대한 회의 등 네가지 기본원칙이 관류하고 있다(72~73면). 이것들이 냉전 이후 특정한 방식으로 왜곡되면서 편향된 판단을 낳았고 신보수주의적 이라크전쟁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좀더 ‘현실주의적인 윌슨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미국 대외정책의 극적인 탈군사화와 다른 유형의 정책수단에 대한 재강조”(229면)를 의미한다. 미국 대외정책의 네가지 접근법인 신보수주의, 현실주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잭슨주의적 민주주의(미국의 국익을 안보와 관련된 협소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 다극주의를 불신하며 때로는 고립주의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중 어느 것도 21세기 세계에서 미국이 취해야 할 태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부드러운 힘’(soft power)과 ‘다자-다극주의’(multi-multilateralism)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군사력보다는 본보기 제시, 교육과 훈련 제공, 조언과 자금 지원 같은 ‘부드러운 힘’으로, 그리고 민주주의와 개혁을 장려하는 대안적인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와 관계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주의적 윌슨주의’의 뿌리가 다름아닌 신보수주의의 원리임은 분명하다. 여기서 저자의 신보수주의에 대한 애착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정치체제 중심 원칙과, 도덕적 목적을 위해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는 원칙, 사회계획 프로젝트에 대한 불신이라는 원칙을 새로운 접근법의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다(24면). 국제기구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 원칙을 뺀 나머지 신보수주의 원칙들을 토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각국의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증진시키고 건전한 통치질서, 민주주의, 강력한 제도를 수립하는 일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체제의 변화에서 특히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한 보수적인 미국 지식인이 세계체제 내에서 어떻게 하면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부시행정부에 보내는 충고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이 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반에 흐르고 있는 미국우월주의에 있다. 이것은 서구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미국예외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면서도 기본적으로 미국의 힘이 세계질서 유지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문제삼는 것은 미국이 각국에 힘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행사하느냐이다. ‘부드러운 힘’을 강조하는 것도 힘의 행사방법에서 지배를 완화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237면). 사실상 그것은 ‘부드러운’ 탈을 쓴 또 하나의 제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진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국우월주의에 입각한 패권전략을 버리고 세계 각국과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의 몰락’이 곧 도래할 것임을 미국은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