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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권지예

권지예

1960년 경주 출생. 1997년 『라쁠륨』으로 등단.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무덤』 등이 있음. kjiye@paran.com

 

 

바람의 말

 

 

바람은 살아 있는 화석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살아남아서 떠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바람의 세계 속에서 울다 간다

 

바람이 불자

새들이

자신의

꿈속으로 날아간다

 

-김경주의 시 「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중에서

 

 

룽다야, 우지 마라

 

바람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썬글라스 낀 눈 속으로 모래가 들어갔는지 눈이 따가워서 눈물이 찔끔 난다. 고개를 들어 잠시 드넓은 칼리간다키 강바닥이 만들어내는 지평선을 바라보는데, 몸이 휘청거려 걸음이 흐트러졌다. 스틱으로 몸을 지탱하지 않는 한 날아갈 것만 같다. 풍광은 점점 고원지대로 변해간다. 바람 부는 황무지.‘검은 강’이란 뜻의 칼리간다키, 물도 없는 메마른 강.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 깊은 계곡이라 했다. 드러난 뼈처럼 자갈들만 가득한 황량한 강바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엄마는 아직까지 화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등산모를 깊이 눌러쓰고 고글형의 커다란 썬글라스에 자외선 차단 마스크로 온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엿보긴 쉽지 않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면 삐친 어린애처럼 스틱을 질질 끌며 뒤처져 걸어오고 있다. 엄마의 뒤를 가이드인 마일라가 묵묵히 뒤따르고 있다. 내가 너무한 걸까? 하지만 엄마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어. 일행들을 따라 산을 내려갈 수 있었어. 오늘 아침, 좀솜에서 일행들은 산을 내려갔지만, 나는 그들을 보내고 귀국일정을 무작정 미루면서까지 끝까지 더 가고 싶었다. 하지만 왜였을까.

안나푸르나 서쪽 트래킹 코스의 종점은 묵티나트였다. 일행 중 두 사람이 트래킹 중에 심한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늦어진 일정 때문에 차질이 생겨서 일행은 묵티나트를 포기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기대 이상으로 잘 걸었지만 예상대로 엄마는 많이 지쳐 있었다. 삼사십대의 산악회 회원 여섯이 일행이 되어 떠난 이번 트래킹에서 십년은 젊어 보이는 엄마라도 환갑의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사흘을 더 연장하여 해발 3760미터의 묵티나트까지 혼자서 포터와 가이드를 데리고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엄마는 나를 산길에 푸지게 쌓인 당나귀똥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쟤 좀 말려봐요. 쟨 정말 이상한 족속이야. 여자 혼자 거길 왜 가겠다는 거야? 거기는 고소증도 온다는데. 난 인제 죽어도 못 가!”

“누가 엄마보고 가재요? 엄마는 이제 내려가요. 난 혼자 갈 거야.”

“얘, 너 원래 이렇게 고집이 셌니? 니 아부지도 안 그런 사람인데.”

“엄마 닮았나 보죠, 뭐.”

엄마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담배 한대를 꺼내 피워물었다. 그러고 나서 의외로 선선하게 말했다.

“자식이 웬수다. 그래, 그까이 꺼!”

엄마는 나를 위해서 마지못해 동행해준다고 했지만 나는 어쨌거나 혼자서라도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왜 거길 가려고 하는 거지? 그곳은 불교의 성지라고 한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이라고 가이드북에는 적혀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강바닥 위를 걸어오는 두 사람 뒤에는 비현실적인 무대장치처럼 설산이 갓 꺼낸 드라이아이스 같은 구름을 거느리고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아아, 거짓말 같아. 그러나 이건 환상이 아니야. 여긴 히말라야야. 마차푸차르, 다울라기리, 툭체, 닐기리. 히말라야 설산의 연봉들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조연처럼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나는 자주 헷갈렸다. 일주일 이상을 안나푸르나 서쪽 트래킹 코스를 돌고 있는 우리 눈앞에 매번 산들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날마다 나는 설산들의 또다른 쪽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 봉우리는 닐기리봉일 것이다. 부연 흙먼지 속에서도 설산은 티없는 거대한 다이아몬드처럼 광채를 내뿜었다.

우리 모녀의 짐을 진 포터 레크 아저씨는 성실한 거북이 같은 걸음으로 저만치 부연 흙바람 속의 지평선으로 까마득히 멀어져간다. 나는 엄마를 기다릴 겸 걸음을 멈추고 강바닥의 돌을 이리저리 골라본다. 도중에 티베트 난민의 돌움막집에 들러 블랙티를 마셨을 때, 주인 남자는 탁자에다 암모나이트 화석을 몇개 얹어놓고 팔았다. 내가 가격을 물어보자 그는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다. 그때 마일라가 말했다. “그런 거 이 강바닥에 수두룩해요.”

이곳의 돌은 갸름하면서 동글동글하다. 내가 돌을 고르고 있자 마일라와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는 힘이 드는지 한쪽 돌무더기에 엉덩이를 부려놓고 앉았다. 마일라가 이리저리 강바닥의 돌을 고르더니 달걀처럼 생긴 검은 돌을 뾰족한 돌로 쳐서 반으로 쪼개어본다.

귀곡성 같은 바람소리 속에 아련한 요령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끝없는 회색빛 강바닥 저 끝에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말을 탄 티베트 남자가 짐 실은 당나귀떼를 몰고 오고 있다. 방울을 단 당나귀 대열이 가까이 올 때까지 마일라는 돌을 고르는 데 몰두해 있다. 말이 지나가도록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우리는 자동차 꽁무니의 매연처럼 당나귀 발굽이 일으킨 매캐한 흙먼지를 고스란히 마실 수밖에 없다. 코가 매워져 나는 기침을 멈출 수가 없다. 몇번인가 돌을 쪼개어보던 마일라가 엄마에게 다가갔다. 반으로 잘린 검은 달걀 같은 돌을 펼쳐 보이자 마스크 쓴 엄마의 입에서 탄성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오오, 뷰리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검은 돌 안에는 긴 하트 모양의 무슨 새우인지 곤충인지가 화석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 검은 돌을 합쳤다 떼었다 하며, “어머, 꼭 무슨 정표 같구나!얘, 근데 정표를 영어로 뭐라 그러니?” 하고 묻는다.

둘로 나누어진 화석을 보며 엄마는 정표(情表)를 떠올린다. 과연 엄마답다. 하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픈 연인들이라면 시간을 채집한 화석만큼 훌륭한 정표가 어디 있을까. 다갈색 썬글라스 속 엄마의 눈초리에 피로한 교태가 잠깐 흐른다.

“마일라, 생큐 포 정표!” 엄마는 손수건을 꺼내 돌을 깨끗이 닦더니 행여 두 조각 난 돌이 헤어지게 될까 봐 손수건으로 꽁꽁 묶어 점퍼 주머니 안에 얌전히 집어넣는다.

“누구 줄 사람이나 있어?”

내 말이 좀 고까웠는지 엄마는 다시 새치름해지면서 톡 쏘아댄다.

“흥, 남이사!또 아니?”

칼리간다키강의 메마른 하상(河床)을 꼬박 한시간 가까이 걷고 나자 눈앞이 화사해졌다. 연둣빛 보리밭이 나타났다. 바람 때문에 고개 숙인 보리이삭들이 일제히 바람을 피해 달아나며 한쪽으로 완만한 포물선을 그으며 쓸려간다. 보리밭 뒤로는 마치 제주도의 마을처럼 검은 돌을 쌓아올린 돌담이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그 돌담 사이사이로 복사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무채색의 모노톤 속에 연두와 분홍빛은 너무도 선연해 눈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돌았다. 마을의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 촛점을 맞추며 나는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마을의 이름은 카그베니. 마을 입구 한쪽으로 가파른 언덕이 시작된 곳에 또 하나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묵티나트 가는 길’(Way to Muktinath).

레크 아저씨가 짐을 부려놓은 로지의 방은 별채의 2층 끝방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소녀처럼 환성을 질렀다. 우리가 여태껏 지내온 산속의 어떤 방보다 아늑하고 전망이 좋았기 때문이다. 넓은 남향 창으로는 화사한 봄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텃밭이 보였는데 양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새잎이 돋기 시작한 버드나무 네그루가 돌담 앞에 정렬해 있고 그 사이에 룽다가 휘날리고 있었다. 돌담 바깥으로는 황폐한 황야에 거짓말같이 넓은 보리밭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보리밭 너머로 칼리간다키강의 하상이 펼쳐져 있다. 그뒤에 거칠게 커팅된 얼음조각상 같은 닐기리봉이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은유로 다가왔다. 바람소리가 폭풍소리처럼 들렸다. 룽다의 깃발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룽다의‘룽’은‘바람’이란 뜻이고‘다’는‘말[馬]’이란 뜻이라고 했던가. 풍마(風馬). 바람의 말. 불교의 경전을 인쇄한 천을 깃대에 달아 그 천이 풍화되기까지 바람결에 진리의 말씀을 멀리 전하고자 하는 티베트불교의 소박한 염원이 나는 애틋하게 느껴졌다. 깃대에 달린 조각천들이 말갈기처럼 마구 휘날린다. 서향 창에는 활짝 핀 복사꽃나무가 수줍게 가지를 뻗고 있다. 히말라야엔 사계절이 모두 다 있다.

“얘, 여긴 애인이랑 꼭꼭 숨으면 아무도 못 찾겠구나.”

엄마가 등산화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아련한 눈빛으로 말한다. 어쩌면 저 정념은 늙지도 않는 걸까. 징글징글해. 하지만 나 또한 이 방에 들어온 순간, 현우를 생각하고 만다. 꽁꽁 여며도 바람이 솔솔 들어차고 물이 스며들듯이 그에 대한 생각은 집요하게 들러붙는다. 생각은 이성인 걸까, 감정인 걸까. 이성으로는 이미 다 정리된 일인데, 생각은 감정도 없이 오래된 습관처럼 저 홀로 가동될 뿐이다. 스위치를 껐는데도 한참 건성으로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처럼 내 자신이 느껴진다.

“엄마는 애인이랑 이런 데 오고 싶어?”

“하긴 추워서 싫다. 뜨뜻한 물도 잘 안 나오고. 거기다 로지는 난방도 안되니 때려 죽여도 옷은 벗기 싫지. 그러니 침낭 안에서 자야잖아. 좁은 침낭에 어떻게 둘이 들어가니.”

“그럼, 그땐 어디 갔었어?”

“언제?”

“나 고3 때. 엄마 셰리랑.”

엄마 셰리. 나는 이제 좀 대담한 질문을 엄마에게 한다. 엄마와 16년 만에 처음으로 열흘 가까이 함께 있다는 것이 나를 용감하게 만드나 보다. 아니 나는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엄마는 복수의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말한다.

“몽블랑에 있었지.”

“아빠가 유럽에 간 거 같다고 하더니, 알프스에 갔었구나?”

“미쳤냐? 돈이 어디 있니? 그게 아니고.”

엄마는 갑자기 깔깔대면서 생기가 도는 눈빛이 되었다.

“몽블랑산장. 니 아빠가 방방곡곡, 전국을 이 잡듯이 찾을 거 같아서 몽블랑에 가니 찾지 말라고 했지. 니 아빠 둔한 건 알아줘야 해. 그거 지금은 없어졌을걸. 설악산에 있는 아주 작은 산장이었어. 장작을 얼마나 때주던지 두 사람 알궁둥이가 홀랑 익었다니까. 아휴, 얘, 너무 더워도 그거 하기 싫더라, 얘.”

엄마는 투정부리는 새색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엄마는 철부지 소녀처럼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내 눈에도 이러니 남자의 눈에는 사랑스러워 보일 만도 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건 내가 고3 때였다. 그것도 입시를 코앞에 둔 10월 어느날, 아버지와 내게 각각 짧은 편지를 한통씩 남겨두고 떠났다. 지금은 그 짧은 편지마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이 구절만은 깊이 새겨져 있다. “엄마를 용서해달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너도 여자니 언젠간 여자인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엄마는 내가 고1 때부터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보다 내가 더 먼저 알아차렸다. 엄마가 몰래 전화를 하는 걸 엿듣게 된 후였다. 엄마는 전화 속의 상대방을 셰리라 불렀다. 어느날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보다가 그 애칭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모른 척했지만, 늘 조마조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5년 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임종이 다가오자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집을 나가 엄마의 셰리랑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더 미웠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엄마 대신 내가 살림을 맡아할 수밖에 없었다. 고3 시절,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두개씩 싸며 아버지의 저녁상까지 보아야 했다. 나는 그때부터 어린 아내이자 딸이며 주부나 마찬가지였지만, 내 자신이 여자임을 용납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엄마를 용서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다.

마일라가 문을 두드렸다.

“런치 오더!”

메뉴판을 들고 온 그에게 엄마는 야채볶음밥과 야채수프를, 나는 네팔 가정식인 달바트와 찐 감자를 주문한다. 과묵한 마일라가 우리 얼굴을 보더니 어눌한 한국말로 묻는다.

“여기, 쪼아요? 투모로우는 마니마니 힘들어.”

“아이고, 그럼 난 여기 있을래. 올라갔다 와. 힘들면 난 못 가.”

엄마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마일라가 힘주어 말했다.

“유 캔!”

30분 후에 레스또랑으로 점심식사 하러 내려오라고 이른 후 마일라가 방을 나갔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아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스토리는 모호하지만 장면은 선명한 꿈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내 생이 순간, 한장의 스틸사진으로만 남은 옛날 영화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살포시 잠이 들었다. 마일라가 노크를 하며 점심이 준비되었다고 해서 엄마를 깨웠다.

레스또랑에는 독일인과 미국인 그룹이 막 식사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이 “나마스떼!”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붉은 방석이 깔린 긴 의자로 사면이 둘러싸인 식탁 위에는 선인장 화분이 장식되어 있었다. 햇빛 들이치는 창가에 앉아 엄마와 나는 풀풀 날아가는 밥을 수저로 꼭꼭 눌러가며 먹는다. 거친 음식이지만 등 뒤를 감싸안는 따스한 햇볕 덕에 포근한 기분이 든다. 가슴으로 받는 햇살은 에로틱하지만, 등으로 받는 햇살은 행복하다.

“아, 먹는 게 지겹다, 이제. 싱싱한 회 좀 먹어봤으면. 이 나라 사람들은 회맛을 알라나?”

엄마는 예전에 유난히 바다음식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건강을 위해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했다. 오후가 될수록 더 거칠어진 바람이 등 뒤에서 성난 말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나는 기름기 없는 흰밥을 천천히 씹으며 마치 바람의 존재를 확인하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바람이 보인다. 칼리간다키 계곡으로부터 모래먼지를 퍼올리며 수많은 말무리가 달려오는 게 보인다. 룽다의 오색천 너머로 보리밭이 미친 듯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창밖의 룽다가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빛바랜 오색의 말갈기를 휘날리며 바람을 타고 달려와 나를 향해 울고 있는 저 말[馬]의 말[語]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말을 달래듯 속으로 말해본다. 룽다야, 울지 마.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얘, 너 양볼에 기미 앉은 거 봐라. 에구, 그러는 나도 얼굴꼴이 말이 아니네. 그렇게 썬크림 바르고 복면 쓰듯 가리고 다녀도 소용없어. 히말라야도 좋지만 얼굴 완전히 베렸다. 서울 가자마자 필링을 하든가 해야겠어.”

엄마는 마싸지용 마스크시트를 꺼내 나더러 붙여달라고 한다. 뚫린 눈과 입 구멍을 잘 맞춰 얼굴에 흰 시트를 붙이니 엄마는 데스마스크를 쓴 것 같다. 이제 마지막 한장이 남아 있다. 내가 한장을 꺼내려 하자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엄마가 귀신같이 말한다.

“그거 손대지 마. 마지막이잖아. 어째 늙은 에미 걸 손대냐. 늙으면 피부가 회복이 잘 안돼. 마지막날 한번 더 붙여야겠다. 너도 이제 피부에 신경 좀 써. 니 나이가 젊은 나이니? 오서방이 불쌍하다.”

푼수!끝말은 좀 하지 말지. 언제까지 여자인 엄마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되는 걸까.

“그런다고 젊어져? 엄마 셰리를 영원히 잡아둘 수 있었어?”

아, 나도 끝말은 하지 말걸.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 독설에 내가 먼저 짜증이 인다.

“미친년!”

데스마스크의 뚫린 입으로 싸늘한 욕이 튀어나온다.

나는 윈드스토퍼를 챙겨들고 방문을 열고 나와버린다.

“독, 독!독한 생각과 말들!가슴과 마음속에 품은!그게 바로 독이지!”

내 등 뒤로 대사를 치는 듯한 명쾌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렴, 젊은 날 한때 엄마는 연극배우이자 희곡작가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다. 아하!「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다. 여주인공 매기의 대사를 외우던 젊은 엄마가 떠오른다.

레스또랑의 유리문을 지나며 보니, 마일라와 레크 아저씨가 부엌 쪽의 작은 식탁에 앉아 달바트를 먹고 있다. 오른손으로 커리와 비벼서 뭉친 밥을 입으로 부지런히 집어넣고 있다. 달바트는 손으로 먹는 게 맛있어요. 손으로 먹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자 그가 씩 웃으며 한 말이었다. 네팔의 음식은 네팔인들이 가장 맛있게 먹을 줄 알 것이다.

두 사람은 구룽족이라고 한다. 구룽족은 정직하고 용감하여 명예로운 전사(戰士)의 후예로 자부심이 강하다. 조상이 몽골계여서 한국사람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카스트제도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그들이어서 그럴까. 이곳에선 손님이 왕이어서 그럴까. 우리와 함께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걸 늘 사양하며 하인처럼 우리가 먹고 난 후에 먹는다. 서른세살의 젊은 가이드 마일라보다 오히려 오십이 넘은 레크 아저씨가 정말 조선시대의 하인처럼 굴어서 민망할 때가 많다. 체구가 아주 작은 레크 아저씨는 젊은 시절, 용병을 지원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오랜 세월 인도를 떠돌며 잡역부로 일하다 고향인 안나푸르나로 돌아왔다. 뒤늦게 장가를 들어 농사를 짓는데, 농한기에 포카라에 와서 가끔 포터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로지를 나와 돌이 깔린 마을길을 걸어간다. 대부분 트래커들을 위한 로지들이지만 편편한 지붕에 장작을 쌓아올린 티베트식 주택이 골목에 몇채 있다. 햇빛을 받아 흰색 벽과 나무 대문은 눈이 부시게 환하지만 벌쭘이 열린 대문 안쪽의 마당은 깊은 그늘에 잠겨 있다. 골목길에 누런 소 한마리가 퍼져서 자고 있다. 네팔의 소는 팔자가 좋다. 아무도 누워 자는 소를 건드리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는다. 꼬질꼬질한 입성의 아이들이 어디로 물을 길으러 가는지 물통을 들고 가고 있다. 얌전하게 걸어가던 아이들 중 뒤의 사내아이 둘이 모른 척하며 들고 가던 물통으로 툭툭, 소의 잔등을 때린다. 금기를 깬 것 같은 고소함이 느껴진다. 마을의 끝에서 하얗게 콧물이 말라붙은 어린 계집애가 나를 보자, “스위트!스위트!”하며 조른다. “노 초콜릿, 노 캔디.” 나는 미안해하며 얼른 마을을 벗어난다.

복사꽃이 핀 돌담길을 지나자 보리밭이 펼쳐진 한적한 길이 나타났다.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윈드스토퍼 위에 재킷을 또 하나 걸쳐입는다. 모자를 두고 와서 내 머리칼은 야생마 갈기처럼 휘날린다. 흙바람이 재킷에 부딪히는 소리가 양철지붕에 가랑비가 내리는 소리 같다. 바람의 손길이 보리이삭을 빗질하듯 쓸어 넘긴다. 나는 자꾸 보리밭 물결 속으로 들어간다. 보리이삭의 수염들이 햇빛에 솜털처럼 빛난다. 현우의 머리칼이 생각난다. 숱 많고 검은 그 머리칼을 내가 손으로 쓸어주는 걸 그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자기가 머리칼을 쓸어주면 난 한없이 잠이 와. 머리칼을 만진 지 삼분도 안되어 그는 노곤한 목소리로 속삭이곤 했다. 한없이 예민한 그가 내 손길에 아기처럼 까무룩 잠드는 걸 보면, 나는 그를 버릴 수가 없는 심정이 되어 고통스러웠다. 결혼한 여자를 사랑하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 사랑도 게임이라면 이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사랑의 다른 얼굴인 소유욕과 집착으로 영혼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남자에게 나는 기껏 머리칼만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와.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 살자. 수년간 어린애처럼 보채던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인연이었던 걸까. 그와 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샴쌍둥이처럼 하나가 되어버렸다. 등이 붙어버린 샴쌍둥이. 서로 다른 곳을 볼 수밖에 없는 샴쌍둥이. 우리의 불행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헤어지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 인연은 고통이었다. 그가 두번의 자살시도를 했을 때, 나는 숙명이라면 받아들일 각오를 했다.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남편과 여덟살짜리 아들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그때 엄마를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나이에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딸과 성실한 남편을 버리고 떠났던 엄마. 그 엄마를 용서하지 못해 여자로서의 자의식마저 팽개쳤던 딸. 엄마는 나를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절대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나도 결국 엄마와 같은 운명의 덫 속에 갇혀버렸다. 나는 엄마와 내 몸속에 흐르는 피를 저주했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떠나는 것이 애초에 타고난 유전자처럼 여겨져버렸다.

그러나 신은 심심했던 걸까. 운명을 갖고 장난을 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뿐일 걸까. 맹세는 꺾이기 위해, 믿음은 배반당하기 위해 장치한 것인가. 어느날, 현우는 고백했다.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고. 그러나 결혼 후에도 너를 만나고 싶다고. 이제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 순간 샴쌍둥이같이 붙어 있던 내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내 앞의 길을 곧장 걷기로 했다. 등이 아프고 시렸다.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간 내 몸의 뒷면은 분리의 상처로 피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별만이 상처와 모멸로부터 벗어나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신은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간을 몰아붙이고, 인간은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다. 현우는 결별 후 몇번의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받지 않았다. 히말라야로 떠나기 며칠 전, 그에게서 결혼 날짜를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했던가. 떠나오던 날, 새벽에 유서를 썼다. 그 문서파일을 출력하여 곱게 접어 봉투에 넣어 책상서랍 속에 두고, 현우에게는 첨부파일로 그의 메일주소로 보냈다. 그 순간은 절박했지만, 결국 치기였을까.

나는 눈 덮인 거대한 닐기리봉을 바라본다. 저 눈은 언제 녹는 걸까. 만년설. 만년 동안 쌓여온 눈일까? 오래 쌓여 녹지 못한 눈이 얼음이 되어 단단한 금강석처럼 반짝인다. 서울에서의 일이 한생 저편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히말라야는 죽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나는 죽지 못했다. 죽지 못한 나는 지금 황무지마을의 보리밭에 앉아 있다. 보리밭 사잇길에 앉아 있으니 바람과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바람은 나를 두고 지나쳐간다. 나는 고개를 두 무릎에 묻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보라색 꽃을 달고 있는 연약한 풀이 보였다. 그때 보라색 꽃을 조심스레 피하며 우뚝 멈춘 등산화가 보였다. 고개를 드니 마일라가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다.

“걱정이 되어 나와봤어요.”

“왜요?”

“음, 그냥…… 그냥 알 수 있는 게 있잖아요.”

과묵한 그는 입을 다물고 보리밭의 물결을 바라본다.

“여기 바람이 참 좋아요.”

“바다의 파도가 이럴까요?”

그가 묻는다. 그러고 보니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보리밭 물결이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일라, 바다에 가본 적 있어요?”

“아뇨. 네팔엔 바다가 없어요.”

그가 웃는다.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가 어눌하게 한국말로 묻는다.

“윈드, 그러케 쪼아여?”

“네. 이곳의 바람은 특별하네요.”

“윈드를 한국말로 뭐라 그래요?”

“한국말로? 바.람.”

“바.람. 소리가 예쁘네요.”

“다른 뜻도 있어요. 부도덕하고 아름답지 못한 사랑도 바람이라 부르죠.”

“바람은 빈 곳에 부는 게 바람인데…… 사랑도 빈 곳을 찾고요. 참!한 삼개월 후면 제가 한국에 가게 될 거 같아요. 에이전씨에서 수속중이에요.”

“왜요?”

“돈 벌러. 한국에서 몇년 일하면 네팔에 돌아와 좋은 집 짓고 부자 돼요.”

“부자 되고 싶어요? 아내와 아들은 어쩌고?”

“부자 되기 위해서 잠시 헤어져야죠.”

“한국에 오면 내가 바다에 데려가줄게요.”

마일라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참!엄마가 울어요.”

방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취해 있었다. 얼굴이 발갛고 눈자위가 부어 있다. 빈 맥주병 두 개가 탁자에 놓여 있다.

“나쁜 년!이러자고 날 히말라야에 데려온 거냐?”

엄마가 나를 보며 꼿꼿해진 눈으로 따졌다.

“너도 속아지를 비워야지. 니가 나를 곱게 보지 않는 거 다 안다. 아닌 말로 너에게 못할 짓은 했다만, 넌 그때 거의 성인일 만큼 컸었어. 난 내 인생에 후회 없어.”

“엄마가 얼마나 이기주의자인지 알아? 엄마 때문에 내가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나 여자를 포기하고 살고 싶었어. 남자랑 행복하게 사는 거 두려웠어. 그게 다 잘난 엄마가 영원한 사랑, 운명적인 사랑을 외치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떠났기 때문이야. 그래서 엄마의 그 젊은 셰리가 엄마를 끝까지 지켜줬어? 그 수컷은 늙은 엄마를 버리고 더 젊은 암컷한테 갔잖아. 겨우 고작 그런 결말을 위해서 엄마는 그런 선택을 했던 거야? 응?”

아아, 이래선 안돼. 내 안의 묶여 있던 분노와 살의를 이렇게 풀어서는 안돼. 하지만 나는 피돌기가 생생해지면서 각성제를 먹은 듯 머릿속이 하얘졌다. 엄마가 내게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아!이 못된 것아!그러는 넌!데친 시금치 같은 얼굴을 하고 오서방과 민석이를 허수아비 보듯이 사는 너는 꽤나 잘살고 있구나, 응? 내 눈은 못 속여. 너는 니 자신도 속이고 있는 거야. 잘난 척하지 마, 이것아. 여자를 포기했어? 너 같은 년을 데리고 사는 오서방이 불쌍하다, 그 얘기야.”

내가 현우를 내 인생에서 완전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남편과 자식에게 마음속으로 이별의식을 치르고 나자 내 마음은 정말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현우와 결별하고 나서 남편과 아이에게 돌아가고 싶어도 유리동물원에 갇혀버린 짐승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단절감 때문에 나는 고통스러웠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 없었지. 엄마의 그 욕망 때문에 아빠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지. 알궁둥이가 익는 그 시간에 엄마가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오죽하면 아빠가 암에 걸려 죽겠어?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엄만데.”

갑자기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분수처럼 울음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지만 나는 눌러 참았다. 대신 엄마는 갑자기 냉정을 찾은 사람처럼 맞은편 서향 창의 복사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산에서는 저녁이 빨리 찾아온다. 어느덧 혼곤한 황혼빛이 하늘에 어렸다. 금강석처럼 차게 빛나던 설산이 복사꽃빛으로 물들었다. 엄마가 꼭꼭 씹듯이 독백처럼 말했다.

“나 또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산 세월이었다. 니가 어떻게 아니? 죽지도 못하는 고양이의 타들어가는 발바닥을.”

갑자기 욱, 하고 무엇이 각혈처럼 솟구쳤다. 내 입에서 헉!단단하고 질긴 울음이 터져나왔다. 자칫 통곡이 될 거 같아 입을 틀어막고 방을 뛰쳐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 마당으로 가 텃밭 앞에 쪼그려 앉자마자 기어이 긴 울음이 터져나왔다. 현우와 결별하고 처음으로 소리내어 우는 울음이었다. 그전에는 도무지 울고 싶어도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16년 만에 처음 터진 울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내 안에는 슬픔이 눈처럼 쌓여 녹지 못한 채 만년설이 되어 얼음처럼 굳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황혼이 내리는 어둠 속에서 텃밭의 동글동글한 양배추는 털실뭉치처럼 보였다. 텃밭에 세워놓은 룽다는 말발굽소리를 내며 펄럭였다.

엄마의 남편은 삼년 전에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엄마와 이혼을 했다. 엄마가 내게 연락을 해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마지못해 엄마를 받아들였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지는 않았다. 올해 엄마는 환갑이다. 아무리 미운 엄마지만,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버림받은 늙은 여자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남들처럼 환갑기념으로 조촐하게 여행이나 보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의 통화에서 나는 등산모임 멤버들과 히말라야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반색을 하며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더 건강관리에 철저하게 되었다고 한다. 식이요법과 건강보조식품은 물론 매일 두시간씩 뒷산을 산책하는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젊으며 체력이 좋은가를 내게 설득했다. 그런데 설득의 말미에는 꼭 자신이 아직도 얼마나 성적인 매력이 있는지를, 아직도 얼마나 낭만적인지를 자랑삼아 말했다. 엄마의 공주병은 말기암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모임의 회원들이 반대했다. 노인네 데려갔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고 모두들 우려했다. 엄마에게 다른 곳으로 환갑기념 여행지를 골라보라고 했지만, 시큰둥해했다. 엄마의 히말라야행은 함께 가기로 한 멤버가 갑작스레 맹장수술을 받는 통에 이루어졌다.

울음을 추스른 나는 어둠이 내린 마당을 고양이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방으로 올라갔다. 레스또랑 앞에서 마일라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1층의 끝방을 지나가는데 안에서 찬불가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나왔다. 포카라의 음반가게에서 자주 듣던 「옴마니 반메훔」이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오체투지를 하는 주인 남자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며칠 전 마르파에 있는 불교사원인 곰파에 갔을 때 걸려 있던 기하학적인 인연도가 생각났다. 그물처럼 엮인 인연의 고리 중에서 엄마와 나의 인연은 혈육이라는 가장 질긴 실로 엮인 그물이다. 침낭 속에서 마치 애벌레처럼 잠든 엄마의 몸 위에 담요 한장을 덧씌워주었다. 엄마는 요즘 내게 이렇게 자주 말한다. 얘, 이제 나한테 이 세상에 누가 있니. 인간의 감정 중에 애증만큼 절절한 게 또 있을까. 사랑 또는 미움만 있다면 인간의 관계는 훨씬 단순할 것이다. 나는 갑자기 엄마의 머리칼을 쓸어주고 싶은 짧은 충동을 느꼈다.

레스또랑의 식탁에 홀로 앉아 나는 스테이크로 나온 야크 고기를 오래도록 천천히 씹는다. 1층의 끝방에서는 여전히 찬불가 소리가 인연의 고리처럼 이어진다.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

 

 

묵티나트 가는 길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나가보니 레스또랑의 창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잇살이 붙지 않아 나이를 통 짐작할 수 없는 여자의 뒷모습. 아침의 찬 공기 속에서 엄마의 등을 보자 마음이 시려온다. 첼로보다는 작고 바이올린보다는 좀더 커 보이는 씰루엣의 저 몸에도 얼마나 많은 슬픈 악보들이 내장되어 있을 것인가. 바이올린의 선율 같은 가늘고 푸른 연기가 엄마의 오른손에서 올라왔다. 엄마가 손에 든 담배를 끄려고 몸을 돌리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색했다. 엄마가 먼저 말을 붙였다.

“잘 잤니? 난 어째 머리가 아프다. 고산증인지……”

“응, 잘 잤어. 엄마 어제 술 마셔서 그렇지 뭐. 여기 뭐 해장할 거 없나?”

나는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애써 다정하게 말을 하며 엄마 옆에 앉았다.

“해장은 무슨 해장. 여기 라면이나 먹으면 됐지. 누들 수프라고 했나? 그거나 하나 시켜라. 고추장 남았지? 그거 좀 풀고.”

엄마는 내 눈을 맞추지 못하고 앞만 바라본다. 나 또한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아 새 아침이 열린 창밖을 바라본다. 룽다는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다. 대신 보리밭에 까마귀떼들이 산탄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했다.

“너 새벽에 무슨 꿈 꿨니?”

“아니.”

“잠꼬대를 하더구나. 현우라 그러던가……”

꿈을 꾼 기억이 전혀 없는데 내 입을 통해 그의 이름이 새어나갔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까마귀떼의 울음이 처절하게 들려왔다. 엄마와 나는 한동안 까마귀떼의 군무를 바라보았다.

아침식사 후 묵티나트로 갈 행장을 꾸리고 로지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니 안주인이 하녀와 함께 달려나왔다. 그녀는 우리에게 합장을 하더니 엄마와 나의 목에 흰 천을 스카프처럼 묶어주었다. 그 천을 카타라고 부르며 길손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의미로 여주인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라고 마일라가 설명했다.

묵티나트에는 오후에 떨어지지만 오늘은 고도를 1000미터 가까이 올려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황량한 오르막길이 계속 펼쳐졌다. 붉은 사리를 입은 여인이나 남자 들이 제법 보였다. 오늘이 마침 힌두사원이 함께 있는 묵티나트에서 축제가 있는 날이라 성지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마일라가 말해준다. 카그베니 마을을 에돌아 폭풍의 언덕에나 나올 법한 가시돋친 자주색 히스들이 군데군데 나 있는 사막 같은 고개 하나를 넘으니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적톳빛 산들이 나타났다. 마치 그랜드캐니언처럼 보인다.

“세상에!저건 신들의 탁자구나.”

아래는 여러개의 코끼리 다리가 받쳐주는 것처럼 생겼는데 위는 깎은 듯 평평한 산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는 그곳은 모든 존재의 시원 이전 같은 원시성이 느껴진다. 엄마의 표현대로 신들이 모여 그들의 계획을 의논했을 것만 같은 넓은 암반이다. 엄마의 비유는 적격이었다. 비록 속물처럼 늙은 엄마라도 엄마는 희곡작가였고 예술가였다.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순례자의 행렬이 조금씩 늘어간다. 순례 행렬을 상대로 길옆에 테니스공만한 마르파산(産) 작은 사과를 파는 노인들이 보였다. 네개를 사서 우리 일행 네사람이 나눠먹었다. 작지만 아주 달고 시원해서 갈증마저 사라졌다.

카트만두에서 순례 온 젊은 남자들이 서글프면서도 흥겨운 네팔 민요 「레썸 삐리리」(만장이 펄럭인다)를 합창하며 지나간다.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져 올려다보니 거친 황야에 돌탑의 꼭대기들이 무더기로 보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꼭대기에 다다르니 위는 의외로 평평했다. 큰 돌탑, 작은 돌탑. 사람들의 염원이 눈에 보였다. 순례자 중 누군가가 방금 새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새끼 돌탑. 엄마가 돌탑 위에 돌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나는 초코바를 꺼내 마일라와 레크 아저씨에게 건네준다. 레크 아저씨는 그 작은 초코바를 두툼한 두 손으로 황송하게 받으며 웃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인다.

“우리 점심은 어디서 먹는 거지, 마일라?”

엄마가 썬크림을 얼굴에 덧바르며 물었다.

“저기 보이는 자르코트 마을에서 먹어요.”

마일라가 손으로 가리키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폐광촌 같기도 하고 요새 같기도 한 흙빛의 집들이 황량해 보인다.

“저기까지 얼마나 더 가야 되죠?”

“두시간.”

“뭐? 두시간? 바로 조긴데?”

엄마가 등산화 끈을 묶다가 고개를 들고 호들갑을 떤다.

히말라야에서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도 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느긋한가 보다. 서울의 내 자동차 싸이드미러에 쓰인‘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오후 한시나 되어서야 자르코트에 도착하여 점심식사와 커피를 들고 다시 묵티나트로 향했다. 묵티나트로 가는 길에는 티베트 난민들이 그들의 수제품과 골동품을 펼쳐놓고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묵티나트에 도착하여‘니르바나’로지에 짐을 풀자 마일라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사원에 다녀와야 한다고 서둘렀다. 카메라만 들고 나가보니 레크 아저씨와 마일라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도 불교신자라 사원에 가서 경배할 준비를 했나 보다. 짐을 두고 홀가분해진 레크 아저씨는 그새 말끔하게 세수하고 면도까지 한 모습이었다.

햇빛은 투명했으나 올라갈수록 공기가 쌉쌀하다. 길가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회갈색 고원에 높이 위치한 묵티나트사원의 흰 담장과 붉은 지붕이 보인다. 네 사람은 묵묵히 묵티나트사원으로 향했다. 긴 경사로가 이어지고 돌계단 위에 붉은 지붕을 가진 흰 아치문이 보였다. 아치문의 지붕 밑에는 힌두교의 신들이 그려져 있다. 문앞 양쪽에는 커다란 종이 걸려 있다. 붉은 치마를 입은 순례객 여인들이 계속 종을 치며 들어가는 바람에 고원의 골짜기엔 뎅그렁뎅그렁,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와 엄마도 종을 쳤다. 큰 종인데 생각보다 소리가 맑고 청아했다.

이곳은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성지라고 마일라가 설명했다. 힌두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힌두교 고행자인 사두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순례객들이 시주한 쌀과 지전이 펼쳐져 있었다. 사원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온통 붉은색과 노란색의 안료와 꽃과 쌀 등이 흩어져 있는 신상들. 이마에 붉은 티카를 찍기 위해 모인 신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무엇을 태우는지 작은 접시 안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강하고 역한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가 알고 있는 힌두의 신들은 육욕의 화신들처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인간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사원에는 여든네 종류나 되는 신들의 쎅스 체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을 몇컷 찍고 있으니 한쪽에 있던 사두가 내게 윙크를 하며 손짓했다.

엄마는 오래된 보리수 앞에 서성이고 있다. 말로만 듣던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 된 보리수들 사이로‘돌라메바르 곰파(사원)’라고 화살표가 그려진 이정표가 보였다. 벌거벗은 커다란 보리수 가지들이 엉켜 있는 모습이 힘줄 불거진 탐욕스런 인간의 팔들이 얽혀 있는 것 같다. 하늘은 눈부시게 새파랗고 곰파 가는 길에 세워진 소박한 스투파(탑) 너머로는 만국기 같은 오색천이 펄럭였다. 룽다가 한폭의 커다란 깃발이라면 이것은 경전을 인쇄한 오색천을 줄에 걸어 바람에 날려 말씀을 퍼뜨린다는 타르초다. 곰파가 있는 고원의 산은 설탕을 묻힌 도넛처럼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에 덮여 있다. 사원으로 가는 길 입구 양쪽에 마니차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옴마니 반메훔’이란 진언이 새겨진 그것들을 오른손으로 계속 돌려본다. 작은 술통처럼 주르륵 매달린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돌고 있다. 엄마도 뒤에서 나를 따라 재미있다는 듯 돌린다. 마일라와 레크 아저씨도 돌린다.

“이 사람들 종교는 참 인간적이야. 순진한 건지, 순박한 건지. 이걸 돌리면 경전을 깨우치고, 룽다나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면 저절로 말씀을 알아듣고…… 그렇게 믿는다는 거 아냐? 하긴 종교는 그래야 할 거 같아. 경전 몇구절 아는 게 뭐 중요하겠어. 그 이전에 그저 믿는다는 소박한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지.”

내가 알고 있기로 엄마는 그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의 종교를 따라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앞서 가던 마일라와 레크 아저씨가 소박한 이층의 흰 돌담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의 입구에 들어서서야 그곳이 사원의 법당이라는 걸 알아챈다. 세계적인 불교 성지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에 엄마와 나는 어이없어한다. 두 사람은 이미 신발을 벗고 들어가 불상을 향해 경배를 하고 있다. 엄마와 나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 조심스레 법당 안을 구경한다. 절을 끝낸 마일라가 엄마와 내게 손짓을 한다. 그리고 불상전 밑의 마루에 납작 엎드려 눈을 들이댄다. 철망으로 뚫린 마루 밑 어두운 저 심연에 무엇이 어룽댄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에요.”

 

 

내 몸으로 쏴아아, 시간이 지나간다

 

아침에 일어나 묵티나트에서 좀솜으로 느지막이 출발했다. 이제 반나절 거리의 좀솜으로 다시 돌아가 다음날 경비행기를 타고 트래킹의 출발지 포카라로 가는 일정만 남아 있다. 그런 이유로 여유롭기도 했지만 어젯밤 쫑파티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좀솜에 가면 포터와 가이드가 필요없다. 묵티나트의 마지막 날 그들의 수고비도 정산할 겸 나는 어제저녁, 저녁식사와 술을 냈다. 네팔의 특산 에베레스트 맥주와 애플 브랜디를 곁들인 푸짐한 식사는 네 사람의 여독을 풀어주고 여흥을 돋우기에도 충분했다.

술이 오른 넷이 급기야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알아들을 수 없는 각자의 모국어로 저마다의 감정에 겨워 노래를 해도 우리는 그 순간 일체감을 느꼈다. 술이 주는 효과이고 히말라야가 선사하는 선물이었다. 고도 4000미터 고산지대의 밤은 추웠다. 로지의 주인은 티베트식 긴의자 밑에 발화로를 넣어주었다. 술에 취한 레크 아저씨는 일어나서 평소의 수줍은 모습과는 달리 춤을 추었다. 어찌나 우리나라 시골 촌부의 춤사위와 비슷한지. 마일라는 애상조의 네팔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곡으로 비틀즈의 「렛잇비」를 불렀다. 엄마와 내가 크게 따라 불렀다. 갑자기 엄마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렛잇비. 알겠니? 다 잊어버려. 다 내려놔. 알겠니? 렛잇비 하라잖아.”나는 엄마에게 한번도 내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왠지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엄마가 잠깐, 나를 응시했다. 엄마의 눈빛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었다. 「렛잇비」가 끝나자 엄마가 연달아, 「봄날은 간다」와 「과거는 흘러갔다」 「산장의 여인」 같은 흘러간 옛노래를 세곡 부르더니 탁자에 고개를 박고 잠이 들었다. 곧이어 취한 레크 아저씨도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자리를 떴다. 마일라와 나만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말없는 건배를 했다.

“오늘 묵티나트 좋았어요?”

“네…… 그런데 좀 시시하기도 했어요. 너무 소박한 사원이며 영원히 타오르는 불도 그렇고. 저는 활활 타오르는 굉장한 화염을 생각했거든요. 성화(聖火)니까요. 그런데 그 불은 너무 미약해 보였어요.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절대 꺼지진 않을걸요.”

“하긴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니까.”

내가 말하자 마일라가 웃었다.

“그 마루 밑이 천연가스가 끊임없이 나오는 곳이거든요.”

“그럼 가스불?”

왠지 속은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때 마일라가 갑자기 생각난 듯 배낭을 뒤지더니 봉투 한장을 꺼냈다.

“한국에 가면 이분한테 이걸 좀 전해주시겠어요? 명함이 여기 들어 있어요. 제가 가서 줄 수도 있지만 한국에 나가는 게 아직 확정이 안된데다가 그때는 너무 늦을지 몰라서……”

“뭐죠?”

“사진이에요. 얼마 전에 한국 사진작가를 가이드한 적이 있어요. 티베트식 장례, 천장(天葬) 현장을 촬영하고 싶다고 해서 티베트에 함께 간 적이 있어요. 사원 측에서는 허가가 났는데 분노한 유족들에게 구타당하고 카메라도 파손되었죠. 필름은 나중에 제가 몰래 빼내서, 몇장 현상했어요.”

“봐도 돼요?”

내가 묻자 마일라는 머뭇거렸지만 말리진 않았다. 나는 봉투를 열어 사진을 꺼냈다. 첫 사진은 나무 하나 없는 티베트의 고원지대에 흙빛깔의 송아지만한 독수리떼들이 음험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조장(鳥葬)이라고도 하죠.”

마일라가 말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자루를 들고 오는 사진. 그 안에 시신이 들어 있나 보다. 다음 사진에는 커다란 나무도마 위에 금방 고기를 다졌던 정육점 인부같이 보이는 남자가 하반신을 다 가리는 큰 앞치마에 칼을 들고 있었다. 칼과 그의 앞치마, 그의 얼굴에는 다진 고기가 튀어 있다. 나는 금세 손이 떨려왔다. 그러나 내 손은 그다음 사진을 넘기고 있었다. 큰 도마 위에 젊은 남자가 알몸으로 엎드려 있다. 아름다운 몸이다. 그러나 그 몸에는 여러군데 칼집이 나 있다. 가죽이 벌어진 곳에 마치 쇠고기처럼 보이는 인간의 붉은 살이 근육의 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독수리들이 먹기 좋으라고 칼집을 낸 거죠. 토막을 내기도 해요.”

그다음 사진은 시신에 독수리떼가 가득 달라붙어 있는 장면이었다. 그 주위에 무표정한 유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사진을 보고 나는 오랫동안 숨을 쉴 수가 없다. 그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머리칼만 붙은 온전한 해골 한구가 도마에 남아 있다.

“삼십분이면 새가 이렇게 깨끗하게 먹어치우죠.”

그다음 사진은 손을 찍은 것이다. 다른 모든 부분이 뼈만 남았는데 살이 별로 없는 손만이 온전하게 남은 사진이었다. 깨끗하게 뼈만 남은 막대 같은 팔뼈에 장갑을 씌운 듯 훼손되지 않은 남자의 손이 있었다. 남자의 왼손 약지에 미처 빼지 못한 가는 반지가 보였다. 결혼반지인가. 그걸 보자마자 가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내 볼에서 어느새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마일라가 나머지 사진들을 보여주며 침착하게 설명을 한다.

“뼈만 남으면 천장장이들이 망치로 뼈를 잘게 바수어 보릿가루와 버무려 독수리들에게 마지막 보시를 합니다. 남김없이 먹입니다. 살면서 제 살을 위해 애썼던 인간의 몸을 그대로 새에게 먹임으로써 하늘에 돌려주는 겁니다.”

술이 취했던 걸까. 내가 흐느껴 울기 시작하자 잠이 깬 엄마가 탁자에서 머리를 들었다. 엄마는 울고 있는 나와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엄마가 사진을 집어들었다. 엄마는 사진을 한참 보더니 말없이 방으로 올라갔다. 나도 레스또랑을 나와 바깥의 테라스로 나왔다. 달이 없는 검은 장막 같은 하늘에 스팽글처럼 박힌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정말로 살아 있는 별처럼 팅클팅클, 발광(發光)하고 있었다. 내 눈에도 북두칠성은 금방 눈에 띄었다.

“인생에서 일어난 일은 그저 이 인생에서 받아들이세요. 다행이에요.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되어서.”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말했다. 마일라였다. 그는 말은 안했지만 그동안 나를 위험스레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뭐라고 물으려 하자 그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냥…… 그냥 알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그러고는 그는 자신의 목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무언가를 빼어 내 목에 걸어주었다. 목이 따스해졌다.

“백팔염주예요. 내게는 큰 위안이 되는 건데. 가지고 있으면 힘이 될 거라 믿어요.”

내가 사양할 틈도 없이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탁자로 돌아가 벗어놓은 재킷과 사진봉투를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침낭의 지퍼를 꼭 채우고 잠들어 있었다. 침낭이 커다란 누에고치 같다. 침낭 안에 꼭꼭 몸을 숨긴 엄마가 고치 속의 누에 같은 생각이 든다. 침낭이 가늘게 떨렸다. 혹시 엄마도 소리없이 울고 있는 걸까.

묵티나트에서 출발하여 고원길을 걸으니 저 아래로 구불구불 뱀처럼 몸을 틀고 있는 강의 물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칼리간다키강이다. 카그베니를 오른쪽에 버려두고 길을 걸은 지 한시간쯤 되니 다시 칼리간다키 하상에 다다랐다. 우리 네 사람은 각자의 침묵에 빠져 일렬로 그 길을 걸었다. 그저께 지나온 길을 거꾸로 되짚느라 그럴까. 태양과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정오의 태양은 머리 위를 뜨겁게 달구고 바람은 나를 막아서며 내 온몸을 휘갈겼다. 정신없이 내 뺨을 때렸다.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내 몸을 지탱하며 걷는 게 신기했다. 그래도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신통했다. 무엇이 나를 이 바람 속에서 앞으로 가게 하는 걸까.

바람이 나를 샅샅이 뜯어먹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내 몸의 장례를 치르며 나아간다. 어젯밤에 본 손만이 온전하게 남았던 남자의 해골이 떠올랐다. 나는 점점 머리칼만 붙은 해골이 되어 텅 비어버린다. 바람은 내 갈비뼈를 통과하고 내 골반을 통과한다. 내 몸으로 꿈속 같던 먼 시간들이 쏴아아, 지나간다. 흩어지는 시간은 먼지바람이 되어버린다. 나는 흩어지는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