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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요코 이야기』가 불편한 몇가지 이유
손종업 孫鍾業
문학평론가, 선문대 교수. 저서로 『문학의 저항』 『극장과 숲』 등이 있음. sju6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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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문학동네 2004)가 국내외에서 불러일으킨 파장은 작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여전히 단순한 민족주의적 분격(憤激)에 머물거나, 파시즘적인 국가체제 또는 전쟁상황에 처한 소수자의 상처와 아픔을 그린 것에 우리가 과잉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반격이 있을 따름이다. 소설 속의‘요코’를‘디아스포라’로 읽어내려는 탈식민주의적 독법이 후자에 속한다. 그러한 관점은 우리의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서 가학적인 것으로 변질될 수 있거나 피해망상에 불과한 것을 발견해내고 그 메커니즘을 통찰하려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더 중요한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관행적 표현으로서‘편협한 민족주의’도 문제지만, 모든 소수적인 관점들이 가치있다는 식의 공허한 탈식민주의도 탈이다. 그런 와중에 이 논란은 오로지 저널리즘적인 방식으로 확대·재생산되었을 뿐이다. 이 소설에 대한‘세밀한 읽기’는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견고한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이러한 지적 성찰의 결핍은 최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경향인 듯하다. 세밀한 읽기를 동반하지 않은 주장이 공허한 메아리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가 기대야 하는 것은 주장(doxa)을 넘어서 진정한 앎(epistèmè)에 이르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논거들을 동반하는 끊임없는 미세한 질문과 성찰 들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의 논의는 텍스트 자체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나는 이 소설이 왜 우리말로 번역되어서 『요코 이야기』라는 예쁜 책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소설을 번역해 내놓은 출판사에서는 이 작품이 중국은커녕 일본에서조차 번역되어 있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번역되어야 한다는 반증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지금까지 대부분의 논자들이 한국어판 『요코 이야기』를 텍스트로 삼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번역본은 책의 내용 및 형식에서 원전과 여러가지 차이점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한국어판 『요코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의 청소년들이 직접 접했을 텍스트를 통해 이 소설을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자 요코 카와시마 웟킨스(Yoko Kawashima Watkins)는 매년 미국의 학교에 초청받아 이 이야기를 직접 학생들에게 해주었다는데, 이 소설이 그들에게 빚어낸 세계-이미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사용한 판본은 맥듀걸 리텔(McDougal Littell) 출판사에서 1986년에 나온 것으로, 원제는‘So Far from the Bamboo Grove’(대나무숲 저 멀리)이다. 본문에 인용하는 소설 내용은 내가 직접 번역한 것임을 알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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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만주국 관리의 딸인 요코가 1945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탈출해 새로운 삶을 꾸리기까지의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일단 잘 읽힌다는 점에서 『요코 이야기』는 소설로서 분명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많지 않은 분량에 쉽고 간명한 문체에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서사들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소설의 어떤 대목은 눈물겹게 읽어야 했다. 그런데 어쩌면 문제는 바로 이렇게 흘러넘치는 감동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모든 분석되지 않은 감동은 위험하다. 그것이 지닌 파장이 큰 반면에 독선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더욱 은밀한 형식 속에 숨겨져 있다. 바로 열두살 소녀의 모습으로. 번역본은 명백히 그러한 매혹에 눈먼 형태가 아닐까?
뒤에 서술하겠지만 이 소설은 치밀한 서사전략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열두살 소녀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한 지적 조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정교한 꼭두각시놀음을 연상케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한 소녀가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순간들에 온통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배후에서 그녀를 움직이는 작가에게도 그와 동일한 순진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요코 이야기』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이 소설에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이 모든 선택과 배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순진한 감동이 아니라 정치(精緻)한 정치학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이 소설이 단지 열두살 먹은 소녀의 순진성의 소산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어떠한 의미의 손상이나 첨삭 없이 한 소녀의 기억을 과거로부터 온전히 되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작가가 왜 이러한 기억을 이런 방식으로 과거 속에서 불러내야 했을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요코 이야기』가 단지 하나의 허구일 뿐이라면, 이 소설에서 어떤 세부들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가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리라. 설령, 함북 청진의 나남(羅南)에 대나무숲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문학으로서 그것은 충분히 자연스럽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대나무숲의 변화무쌍한 소리들을 직접 듣는 것 같았고, 일본으로 쫓겨가는 요코의 가족을 태운 기차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을 지나칠 때의 풍경도 눈에 잡힐 것처럼 선연했다.
하지만 왜 유독 이 소설을 두고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는가를 우리는 또한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이 자기 체험을 꾸밈없이 그려낸 것이라는 작가 자신의 전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소설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논란에 대해서 작가 쪽이 내놓은 가장 효과적인 반박은 바로 이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그때 그것들을 실제로 겪었고 또 보았다는 것. 그리고 당시 그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소설의 내용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 그대로이지만, 만일 이러한‘사실’이 뜻밖에도 한국인들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그야말로 죄송할 따름이라는 것. 이게 작가의 노회한 답변일 때, 역으로 이 소설 속에 구축된 세계가 작위적인 것임을 밝히고 거기에서 어떤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일이 좀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바로 그런 맥락에서라면, 어떻게 저 북방의 도시 나남에 대나무숲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결코 사소한 게 아니다. 하물며 인민군의 존재1나 그 무렵 그 지역에 미군의 폭격이 있었는가 여부 등은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설 속의 세부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더라도 작가로서는 여전히 할 말이 있을 법하다. 여전히 그는 “나는 그렇게 보았으며, 그때 나는 어린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에, 열두살 소녀의 시선이 어떤 은밀한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것은 때로‘사악한’순진함일 수 있다. 하나의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보자. 소설 속에는 요코와 가족들이 왜 자신들의 나라에 있지 않고 나남에 있는가에 대해 어떤 성찰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것은 생래적인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에 드리운 제국주의적 폭력성-침략과 지배-은 철저히 괄호 속에 넣어진 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남에서의 그들의 삶은-아버지가 731부대와 연관되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그 자체로 하나의 원죄 아래 탄생된 것이다. 그들의 삶이 제국이라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여 있는지라, 그들은 멈추어 있을 때조차 제국적 책략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주인공 가족들은 예외없이 이러한 모순에 대한 어떤 의식도 지니지 못한 존재들이다.
열두살 소녀는 이런 모든 문제를 그 특유의 순진함 또는 무지함으로 뛰어넘는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소설에서 요코는 열두살 소녀가 아니라 훨씬 더 어린 아이로 취급되고 또 그렇게 행동한다. 소녀는 “작은애”(Little One)로 호명되는가 하면, 군 위문공연 때 군인들에게서 “너 아직도 기저귀 하니?”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렇게 어리고 순진무구한 소녀에게는 오로지 부끄러움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소녀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전쟁을 벌였는지 묻지 않는다. 소녀는 전쟁 속에서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괄호 속에 넣은 채, 침략을 통해 구축된 현실이라는 기반 위에서 극히 선택적인 방식으로 평화를 외친다. 이때 전쟁은 그들의 가족이라는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으로만 인지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역사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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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조금 확장된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인식, 그것은 패전에 따른 피해의식으로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 자체에 대한 죄의식을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원자폭탄에 의한 두 도시의 절멸은 그들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반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원자폭탄의 섬광 탓에 그들은 이전의 역사를 더이상 응시할 수 없게 된다. 한 논자에 따르면, 전후 일본에서는 전쟁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일부 군부지도자에게 전가되면서 개개인에 대한 면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전쟁의 기억을 상기하고자 하는 일본 국내의 논의들은 피해자로서의 전쟁체험의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가해자로서의 체험은 규탄의 대상이 되든가, 그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토오꾜오 대공습을 위시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둘러싼 이야기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폭과 그 비참한 참화를 둘러싼 이야기들, 혹은 구만주에서 벌어진 소련군의 폭행과 시베리아 억류자의 체험을 둘러싼 이야기들, 요컨대 “죽지 말지어다”라는 언설이 널리 유포되었다. 그 배후에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가해책임을 둘러싼 기억의 상기와 이를 다룬 이야기들은 억압되어, “죽이지 말지어다”라는 언설을 둘러싼 기억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쉽게 논의되지 못했다.2
『요코 이야기』는 이러한 국민적 기억과 정확히 겹쳐진다. 이 소설에서도 피폭의 비극성은 섬세하게 그려진다. 요코가 미군의 공습으로 토오꾜오 시내가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어머니는 오로지 전쟁의 참화가 가족들에게까지 번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라디오를 통해 그녀는 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는 한국인들이 항일공산군을 창설했다는 이야기도 요코에게 해준다.3 이는 철저히 일본인의 시각에 갇힌 상황파악으로, 전후 일본인에게 공식화된‘상상적’시선에 가깝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로서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기분과 감정수준에서 반미 내셔널리즘 및 반공·반소 내셔널리즘과 결합되어 사실상 국민 개개인의 수준에서 벌어진 가해행위를 논의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이에 따라 이들 개인 차원의 가해행위를 둘러싼 책임 소재도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4
자신들이 느끼는 전쟁의 비극은 오로지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들-부상병들,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겪은 고통, 패전 후의 시련-에 한정될 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머니의‘전황(戰況)’요약 뒤에 다음과 같은 황당한 진술이 끼어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의 일부였으나, 일본인들을 미워했고 전쟁에 대해서 행복해하지 않았다.”5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이 구절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어머니가 소녀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주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열두살 소녀 자신의 것일까? 아니면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정세인식이 그랬다는 것일까? 왜 저자는 좀더 성숙한 관점에서 이 내용들을 수정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끔찍한 일이야.”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주제를 바꿔서 전쟁으로부터 벗어났다. “내일이 병원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야. 저녁 먹기 전에 연습을 해두는 건 어떠니?”
“끔찍한 일이야”라는 말이 따로 떨어져서 앞의 진술 다음에 이어짐으로써 파생되는 효과는 명백하다. 그것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일본제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일본인들을 미워하고 전쟁을 행복해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한 감정표현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관적이고 편의적인 역사해석은 다른 면에서도 발견된다. 병원에서의 위문공연을 전쟁으로부터 벗어나는(away from war) 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군부대 내 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상대로 하는 위문공연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요코의 관심사는 단지 춤을 추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언니는 “그들은 우리나라를 위해 싸웠어”라는 말로 나무라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들이 전쟁에서 벗어나는 게 될 수 있을까? 식량 부족으로 반찬투정을 하는 열두살 소녀의 말 때문에?
요코의 눈에 비친 일본 군인의 두가지 이미지는 오로지 국가와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끔찍한 부상에 한정될 뿐이다. 전쟁의 주체로서 그들이 어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가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요코 이야기』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공허하다. 전쟁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이 없는 평화주의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더욱이 그 내부에 모호한 이중성이 자리하고 있다면?
이 소설에서 평화주의는‘요까렌’(豫科練, 일제말 카미까제 훈련 프로그램)에 학도병으로 지원하려는 오빠를 만류하는 어머니에게서 겨우 그 형해가 발견된다. “우리 조국은 젊은 병사들을 원합니다”라는 오빠 히데요의 말에 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토오조오(東條)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려고 진주만을 공격한 것은 정말 옳지 않았어. 너희 아빠도 일본정부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어 남편과 아들을 잃기보다는 일본이 전쟁에서 지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겐 평화주의로 읽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진술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진주만 공습 이전의 끔찍한 전쟁이 그들에게는 전쟁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는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소설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상병 마쯔무라도 마찬가지로 결코 자신이 참가했던 전쟁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면모만 드러낼 뿐이다. 종전 후에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가업을 이어간다. 이러한 침묵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왜 일련의 공산주의자 청년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요코의 가족을 찾아내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아버지가 만주국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가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는가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전범(戰犯)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와서 그녀를 곤경에서 구해주기를 바란다. 마치 『소공녀』를 읽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들에 의해 끌려간 바로 그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만일 훌륭한 작가였다면, 요코는 자신이 머물렀던 나라에 대해서 더 성숙한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소설 『요코 이야기』는 철저히 일본인 소녀의‘페르쏘나’속에 파묻힌 전쟁 이야기다.
이야기는 절묘하게도 오빠의 귀환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설에 그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귀환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토록 절실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아버지의 귀환을 생략한 채 소설을 끝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미학적인 이유로? 혹은 딸은 언제나 아버지의 세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그렇지는 않으리라. 그의 순진한 꿈이 계속되기 위해서 아버지는 돌아와선 안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야만 그녀는 한 식민주의자의 삶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로, 그녀와 가족들이 얼마나 가슴 아픈 수난을 겪었는가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어놓는 이 선택과 배제 속에 집요하고도 일관된 정치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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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하자면, 요코의 가족들이 마주하는 폭력들은 상세히 묘사된다. 즉 나남에서부터 부산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은 수난사는 핍진한 바가 있다. 그들의‘수상쩍은’이동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들이‘아버지의 지시’와‘마쯔무라의 충고’에 따라 나남의 집을 떠나는 것은 1945년 7월 29일의 일이다. 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재빠른 탈출과정 내내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냉철하게 행동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편지를 통해, 비록 여름이지만 겨울옷을 챙길 것까지 미리 당부한다. 후에 감동적인 방식으로 밝혀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보다 보름쯤 전에 이미 보자기 속에 비상용 속주머니를 만들어서 상당한 액수의 비상금을 숨겨놓고 있었다. 또한 홀로 남겨진 아들을 위해 재봉틀 위에 쌀그릇을 올려놓고 그 안쪽에 초서체로 메씨지를 남겨놓는 교지(狡智)를 발휘한다.
이러한 치밀함과 용의주도함에는 분명히 감동적인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석연치 않은 구석도 적지 않다. 피난길에서도 그들은 집요한 생명력과 놀라운 환경적응력을 보여준다. 그들이 군인들에게 붙잡혔을 때가 그렇다. 갑자기 비행기가 날아와 폭격할 때, 스스로를 “잘 훈련된, 우리, 셋”이라고 표현한 그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림으로써 목숨을 구하는 반면에, 병사들은 죽고 만다. 거기서 그들은 죽은 병사의 군복을 벗겨 입는가 하면 작은 가위로 자신들의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훈련이 언제,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는 의문스럽다.
어쩌면 그들은 그해 7월 29일에 출발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기차역으로 가던 그들이 항일공산군에게 쫓기는 장면이나, 기차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그러한 심증을 갖게 한다. 기차 안에서 어떤 피난민의 아기가 죽자, 간호사와 위생병은 어미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 추호의 주저도 없이 기차 바깥으로 집어던지는데, 그러자 그 어미도 아기를 따라 기차 밖으로 몸을 던진다. 이 사건의 비극성은 눈물겹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역사적인 정황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한편, 작가가 사건이 벌어진 시기를 앞당겨서 기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다른 증거도 있다. 최근에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실제로 아사히(朝日)신문 주최 글짓기대회에서 입상한 해가 1947년이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소설에 기술된 시기보다 일년 남짓 늦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두가지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그녀가 소설 속에 기술된 것과 같은 시기에 출발했지만, 허구적인 폭력들-전후 일본의 공적인 기억들-을 삽입해 넣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더 늦게 출발했으면서 모종의 이유 때문에 그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이 소설적 욕망에 의해 가공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그런데도 작가는 체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녀는 신뢰하기 어려운 열두살 소녀의 이미지 뒤로 살그머니 몸을 숨긴다. 그럴 때 남는 것은 오로지 그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수난의 연속일 뿐이다.
그녀는 자기가 속한 국가의 치부를 드러내야 할 경우에는 열두살 소녀의 관점으로 그것을 단순화하거나 괄호 속에 집어넣는 반면, 자신들이 당한 폭력에 관해서는 총체적인 형태의 진술을 시도한다. 나는 당시 일본인 피난민들에게 어떤 폭력도 가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처리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피난길에서 세 모녀는 자신들을‘강간하려는’한국인들을 피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것은 이 짧은 소설 안에서 집요하고 또 점층적인 방식으로 반복된다. 1) 그들을 붙잡은 병사들 중 하나가 언니 코를 보며 말한다. “오늘밤 즐기기에 딱 좋겠어.” 하지만 전투기의 느닷없는 공습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후 그들은 머리를 깎고 남장을 하게 된다. 2) 그들 일행이 서울역에서 오빠 히데요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언니 코가 와서 말한다. “우리는 서울을 떠나야만 해요. 한국인 사내들 몇이 여자애들을 숲으로 끌고 가는 걸 보았고 한 남자가 어린 여자애를 강간하는 걸 보았어요. 여자애들은 일본말로 도와달라고 외쳤어요. 내 머리를 다시 밀어주실래요?” 이렇게 불안감은 한없이 증폭된다. 3) 부산역의 화장실에서도 그들은 비슷한 일을 경험한다. “잠시 후 도와달라는 그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그녀는 우리 줄의 맨 끝에서 네명의 남자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4) 그날 이후로 그들은 선 채로 오줌을 누는데 그럴 때마다 옷이 다 젖었지만 안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이어진다. “그날은 악몽과도 같았다. 해방을 자축하던 술 취한 한국인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남자 하나가 건들거리며 코에게 물었다. “너 사내애냐, 계집애냐?” “사내애요.” 언니가 대답했다. “계집애 목소린데. 만져봐도 돼?” “마음대로.” 누군가 와서 우리를 구출해주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아무도 어린 여자애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는데, 그게 한국인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어서 수용소와 사람들을 불태우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즈음,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술 취한 남자가 그의 커다란 손을 코의 가슴 속으로 집어넣었다. “밋밋하잖아.” 그가 말했다. “사내놈은 재미없어.” 남자들은 우리 곁에서 떠나갔지만, 사람들 사이를 비틀거리며 걷다가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여자들을 사냥했다. 그들은 아무나 발견하는 대로 여자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여자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어머니와 코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5) 바로 다음에 요코는 덤불 속에서 강간당하는 어떤 소녀를 다시 목격한다.
제국주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수행되었든, 거기서 해방된 민중에 의해서 저질러졌든, 이러한 행위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세 모녀가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빌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한반도는 끔찍한 악몽의 공간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만큼 이 사건들은 우발적인 현실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잘 짜여진 소설적 구조를 지녔다. 게다가 이 소설은 그러한 악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풀려날 수 있었던 이유가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한국이 해방되었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소설 속 열두살 소녀의 관점은 이렇게 편의적인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하더라도, 그녀는 결코 객관성에 이를 수 없다. 그 시선은 결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게 아니라, 패전후 일본국민이 지니게 된 피해담론을 정교화하는 것일 뿐이다.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구한다는 점에서 일부 논자들이 앞의 진술과 대비되는 긍정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오빠 히데요의 경험담도 예외가 아니다. 항일공산군은 피난민인 일본인들을 죽여 금니까지 빼내고, 그렇게 약탈한 물건을 놓고 싸우다가 서로 죽고 죽이는 탐욕스런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폭력성은 동시에 또다른 코드를 지닌다. 폭력의 주체가 예외없이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공식이 도출된다. 공산주의자들은 폭력적이고 위험하며, 공산주의자가 아닌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호의적이다. 이는 그들이 누구와 싸웠는가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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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눈에는 『요코 이야기』가 열두살 일본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편견에 가득찬, 자전적 체험과 허구적 상상이 교묘하게 뒤섞인 소설임이 명백해진다. 『안네의 일기』와 이 소설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즉 『요코 이야기』는 진실성이 치명적으로 손상된 것이다. 요코는 언제나 손쉽게 피해자로서의 논리만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가해자로서 그들의 삶이 놓여 있던 자리를 외면한다. 그녀는 단 한번도 왜 자신의 대나무밭 집이 두만강 근처에 있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 오로지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을까”를 물을 뿐이다. 그렇게 끔찍한 한국땅을 떠나면서도, 그들은 가보로 전해 내려오는‘단검’을 코의 다리에 감은 붕대 속에 몰래 감추고서 길을 나선다.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장면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 얼마나 주관적인가를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루스 베네딕트(R. Benedict)의 『국화와 칼』을 빌리지 않더라도,‘칼’이 일본인에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요코의 가족이 그토록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도 바로‘칼’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그들은‘칼’하나를 포기하지 못할 만큼이나 가해자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후 일본에 관한 몇개의 불쾌한 장면 때문에 이 소설이 일본에서 출판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차치하고서, 무엇보다 명백한 것은 소설 『요코 이야기』가 미국 중학교의 교과서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이 지닌 부당성이다. 미국에서는 책의 말미에 헤밍웨이를 비롯한 여러 기념비적인 전쟁문학의 예들을 제시한 뒤에 이를 『요코 이야기』와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토론문제들을 던지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소설 『요코 이야기』는 미국의 학생들에게, 단지 한편의 소설이 아니라 정전의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서, 하나의 상상적 역사를 각인시킨다. 왜 미국인들이 이 소설을 선택했는가는 『요코 이야기』가 지닌 일련의 코드 속에서 좀더 깊이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무엇에 앞서 이 소설은 태평양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심상지리가 어떠한 것인가를 환기시켜준다. 왜 이 소설이 그들에게 문제적인가는 왜 다른 한국의 소설들이, 예컨대 허준(許俊)의 「잔등」(1945) 같은 작품이 그 자리에 들어설 수 없는가를 역으로 말해준다. 즉 이 소설은 그들이 관여한 전쟁의 이미지를 그려 보여주는 것이다. 진주만 이후 태평양전쟁이 그것이며 일본의 두 도시에 그들이 투하한 핵폭탄이 그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의가 또한 그렇다.
미국인들도 일본인들도 그 섬광에 눈이 멀었다. 거기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태평양전쟁에 관한 미국인들의 심상지리 속에 한국은 마치 여백과 같다. 그들은 오로지 일본제국과 전쟁을 치렀을 뿐이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 전쟁의 끝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소설 『요코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미국인들이 상상하는 태평양전쟁을 구체화한다.
두 제국이 주고받는 이러한 상상의 거래에 대해서 우리는 단순히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데 머물 수 없다. 그들에게서 결코 드러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전쟁에 대해서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근대의 초입에서 한국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짓밟히고 마침내 국토가 분단되는 비극을 경험한다. 지금도 여전히 주변의 제국적 시선에 잡히지 않는 슬픈 전쟁들이 있었던 것이다. 더욱 서글픈 현실은 우리 스스로가 그러한 과거에 대한 해석학적 투쟁이 이미 완료되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정래(趙廷來) 황석영(黃晳暎) 박완서(朴婉緖), 조금 특이한 방식의 김영하(金英夏)나 유미리(柳美里) 같은 작가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문학은 이제 그 시절을 벗어나서 상상의 중음계(中陰界)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소설 『요코 이야기』에 대한 비판은 두 제국적 시선이 놓치고 있는 또 하나의 전쟁을 드러내 보여준다. 물론, 이에 대해서라면 더 설득력있고 의미있는 문학적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 전쟁에 대한 해석학적 전쟁은 여전히 지속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논란 속에서, 여러 언론매체들을 통해 적지않은 논객들이 보여준‘너무도 인간적인’관대함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그들은 이제 경직된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모든 일본인은 악하다’라는 인식엔 분명 문제가 있다. 모든 한국인이 선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그들은 너무도 쉽게 일본인들도 피해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논자가 “나는 『요코 이야기』에 한국인들이 분노만 할 뿐, 아파하지 않는 현실에서 참담함을 느꼈다”고 말할 때,6 그는 한가지 점에선 옳았고 한가지 점에선 틀렸다. 옳은 것은 『요코 이야기』에 동원되는 이야기와 이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방식이 모두 국가의‘공적 기억’을 동원하고 있으며, 그래서 전체와 분리된 어떤 개인의 아픔에 대한 성찰이 누락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틀린 것은 그 개개인들의 아픔 또한 전체에 대한 통찰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코 이야기』는 과연 진실을 응시하고 있는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일본 내부와, 또 부분적으로는 미국과 결탁되어 있는가? 제국의 내부에도 당연히 그 그늘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라면, 요코에게는 제국 자체의 메커니즘을 고발하고 생래적으로 낙인찍힌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먼저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아시아를 대상으로 자신의 조국이 저지른 침략의 역사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는 그 모든 구조를 떠나서 열두살 소녀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들과 싸웠는가 보아달라고 말할 뿐이다. 아마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패전하지 않았더라면 요코의 가족들은 이 땅 위에서 단란하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 불운에 눈물을 흘려주어야 하는 것일까? 작금의 우리 지성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적이거나 탈식민주의적 관점은 때로 문제의 핵심을 놓친 채, 구조를 버린 채, 변죽만 울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내가 『요코 이야기』를 읽어봤는데 그렇게 문제될 게 없더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읽었는지 세부를 드러내고 판단을 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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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속‘인민군’에 관한 서술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 같지는 않다. 원문에는‘Anti-Japanese Communist Army’라고 표기돼 있는데, 이를 ‘인민군’으로 번역하는 일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낯설고 무지한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에 대해, 실제 역사 속에서 그에 맞는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고심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서구인들이 아프리카 원주민을 아무렇게나‘마사이족’으로 호명하는 것처럼, 작가는 그저 자기 가족을 둘러싼 위협의 대상에 그런 어정쩡한 이름을 갖다 붙였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를‘항일공산군’이라고 그대로 옮겨 부를 것이다.↩
- 코모리 요오이찌(小森陽一) 「문학으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문학」, 코모리 요오이찌 외 엮음 『국가주의를 넘어서』, 삼인 1999, 36~37면.↩
- 인터넷에는 이 항일공산군이 관동군일 거라는 주장도 떠돌고 있는데, 작품 속에서 한국말을 구호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떨어진다.↩
- 같은 책 37면.↩
- 참고로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The Koreans were part of the Japanese empire but they hated the Japanese and were not happy about the war.” 문학동네판에서는 이를 “조선은 일본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을 미워했으며, 전쟁에 대해서도 달가워하지 않았다”라고 번역해놓았다. 이는 번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창작에 가깝다. 모든 미세한 부분들을 다 우리의 처지에 맞추어놓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은 저자의 생각이 아니며, 미국의 청소년들이 읽고 있는 그것도 아니다.↩
- 김학이 「요코 이야기 파문」, 『교수신문』 2007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