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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바늘』 『명랑』,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등이 있음. hangomm@nate.com
그녀의 눈물 사용법
그 아이 이름은 그애
천도제를 지내야겠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엄숙하다 못해 비장했다. 아무래도 그애가 네 오라비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꿈을 꾸었는데 그애가 오라비 어깨에 올라타 있더라. 귀신이 씐 게 아니라면 순하기만 하던 오라비가 저리 변할 수 있겠니? 분명 그애 짓이야.
그애는 줄곧 내 옆에 있었으니 오라비 근처에도 안 갔을 거라고, 갔어도 해코지 같은 걸 할 애가 아니라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는 비굴해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짜내는 이기적인 눈물에 염증이 났다. 원하는 것은 기어이 얻어내고야 마는 탐욕스러운 눈물. 알았어요, 제가 알아볼게요. 아버지는 그제야 눈물을 멈추었다.
그애를 보내야겠다니. 줄곧 내 옆에 머물던 그애를,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던 그애를. 제 손으로 보내놓고 삼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엄마 뱃속에서 칠개월, 세상에 나와 하루를 살다 죽은. 비난과 변명, 억울함과 어쩔 도리 없음, 금기와 은폐, 당한 자와 저지른 자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삼십년 동안 1.1kg의 미숙아 혹은 일곱살 이갈이 무렵으로 남아 있는 그,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은 그냥 그애였다.
장롱 속에서
버스에서 내렸을 때 엄마 다리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엄마가 오줌을 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수에서부터 일곱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왔으니 어른이 오줌을 싼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엄마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내리려는 사람처럼 양미간을 모으고 터미널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음식 보따리와 내 손을 나눠 쥔 엄마가 사람들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엄마 손에서 서늘한 땀이 배어나왔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보따리를 풀어 찬장에 집어넣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내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착하게 있어, 엄마는 지금 아기를 낳으러 가야 해,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동생을 데려올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엄마의 단호한 눈빛에 기가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혼자 남아 시간을 보내고 착하게 구는 거라면 누구보다 자신있었다.
한밤이 되어서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쥐포를 입 안 가득 넣은 채 잠이 들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자는 건 착한 게 아닌데, 잠을 자면서도 나는 입 안에 든 불어터진 쥐포가 마음에 걸렸다.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눈도 채 못 뜨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말없이 내 머리만 쓰다듬었다. 뒤따라온 아버지는 포대기를 팔에 안은 채 문지방을 밟고 서 있었다.
포대기는 커다란 고치 같았다. 고치를 풀고 그 속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이부자리로 쓰러지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의 팔 힘이 너무 세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 품에서 버둥거리는 사이 방 안에 불이 꺼졌다. 나는 버둥거리는 걸 멈추고 엄마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장롱문이 가만히 열렸다 닫히는 소리도 들었다. 아버지가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깜깜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고양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곤충의 날갯짓 소리 같기도 한 어렴풋한 울음소리만이 어두운 방 안을 부유하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간헐적으로 끊겼다가 이어지곤 했다. 울음소리가 멈출 때마다 아버지의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 순간 딸꾹질을 하듯 울음소리가 끊기더니 더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방 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는 귀찮거나 화가 났을 때 그러는 것처럼 등을 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롱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눈을 뜨고 아버지가 장롱 안에서 포대기를 꺼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포대기에 싸여 집에 들어온 그애는 그 모습 그대로 집을 나갔다. 고치 모양의 포대기가 조금 작아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애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궁금했다. 한손에 삽을 든 아버지가 산길을 오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꽁꽁 언 강물을 깨고 고치를 집어넣는 모습도 그려졌다. 나는 아버지가 그애를 불태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에 태우세요. 한겨울이잖아요. 강도 땅도 다 얼었을 거예요. 예전에 앵무새가 죽었을 때처럼 땅에 묻지 마세요. 들고양이들이 흙을 파헤치고 구더기들이 들끓을 거예요. 불에 활활 태우세요.
화염에 휩싸인 작은 포대기 고치를 생각하자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그날 나는 불장난을 친 어린아이처럼 요에 오줌을 흠뻑 쌌다. 그애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장롱 속에 내버려둔 그날, 모두가 공범이면서 범인이 아니었던 그날. 내 나이 일곱살, 외벽에 앉은 서리꽃이 유난히 반짝거리던 새벽녘이었다.
내게로 온 우량아 권투선수
그애는 분유광고에 나오는 우량아 같았다. 뽀얗고 토실토실한 그애는 더이상 1.1kg의 미숙아가 아니었다. 포대기를 두르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애를 못 알아볼 뻔했다. 그때 나는 홍역을 앓고 있던 중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불이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고깔모자를 쓴 사내 요정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고, 눈을 뜨면 천장에서 별똥별들이 떨어져내려 온몸에 붉은 반점들을 만들었다. 내가 홍역을 앓고 있어도 엄마와 아버지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으므로 나는 고열과 고깔모자들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하늘색 포대기를 어깨에 걸친 그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천장 모서리에서 나타난 그애는 링에 올라선 권투선수처럼 포대기를 멋지게 집어던졌다. 이빨을 드러냈던 고깔모자들은 우량아 권투선수에게 꼼짝도 못했다. 고깔모자들을 모두 물리친 그애가 내 머리맡에 사뿐히 앉았다. 고치를 벗고 나왔구나, 내가 말했다. 그애가 웃었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차갑지만 보들보들한 그애의 손이 닿자 거짓말처럼 열이 내렸다.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그애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안 우는 데 성공했어
아버지가 운다. 아버지는 술에 취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 아버지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면 꼭 그애를 떠올린다. 노끈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도,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부도어음 때문에 집을 홀랑 날렸을 때도 아버지는 그애를 떠올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모두 제 탓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참회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죄책감의 허울을 쓴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두렵지 않을 때는 죄책감도 없고 눈물도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흐느끼다 울부짖기를 반복했다.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건지 그애가 잘못했다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서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전화를 끊지 않아서 다 잘될 거라고 덧붙였다.
물론 아버지 잘못이 아니다. 누구도 아버지를 비난한 적 없다. 그애를 장롱 속에 넣은 것은 아버지지만, 그건 아버지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큐베이터 사용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버지 잘못이 아니다. 숨만 간당간당 붙어 있던 그애를 그냥 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라며 돌려보낸 의사 잘못도 아니다. 아무리 그랬어도 젖 한번 물리지 않고 등을 돌린 엄마 잘못도 아니다. 만삭인 엄마에게 온갖 먹을거리들을 들려 보낸 할머니 잘못도 아니다. 왜 살아 있는 애를 장롱에 넣느냐고 묻지 못한 내 잘못도 아니다. 잘못은 그애에게 있다. 너무 성급하게 세상에 나온 그애 잘못이다. 서둘러 나올 생각이었으면 우량아로 나오든가 돈 많은 집에서 나올 것이지. 그애는 죽을 만해서 죽은 것이다. 나는 그애가 죽어 내 옆에만 머무는 것이 좋다. 죽어야만 내 차지가 되는 거라면 내 손으로 그애 숨통을 끊어놨을 것이다.
오라비가 운다. 오라비는 머리가 아프다. 오라비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억울해서 울고, 자꾸만 어긋나는 인생이 두려워서 운다. 오라비는 전화를 받아주는 내가 고마워서 울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자신이 미워서 운다. 한움큼의 약을 먹어도 여전히 우울해서 운다. 무서워서도 울고 기뻐서도 울고 슬퍼서도 울고 우울해서도 울고. 눈물은 오라비의 모든 감정이다. 오라비는 내가 함께 울어주길 바라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함께 우는 대신 오라비가 욕하는 대상을 향해 더 많은 욕을 해주었다. 그래야 오라비가 울음을 멈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올케가 운다.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상대가 나라서 운다. 오라비 하나 믿고 시집 왔는데 이젠 믿을 수가 없어져서 울고, 그런 사실이 겁나고 속상해서 운다. 어떻게 해야 병이 고쳐질지 모르겠어서 울고, 그만큼 병이 깊다는 걸 알아서 운다. 갑자기 아파트 난간에 올라가 죽겠다고 울부짖는 오라비가 무서워서 울고, 눈물 흘리는 오라비 때문에 덩달아 운다. 타인의 눈물에 쉽게 전이되는 헤픈 눈물. 올케의 울음은 자기연민이다. 오라비의 병이 자기 삶을 위협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분노의 눈물이다. 나는 묵묵히 올케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주길 바라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올케의 눈물은 제풀에 지쳐 그치게 되어 있다. 북받친 만큼 흘려야 멈추는 눈물. 그 시간을 가늠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한밤의 전화는 늘 울음소리를 동반한다. 밤의 전화벨 소리는 누군가의 울음보가 터지는 신호다. 이 집구석의 눈물샘들은 도대체 언제야 마를 것인지.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나는 좀 먹먹해진다. 먹먹해져서 나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까 잠깐 생각해보기도 한다. 엄마는 나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울지 않는 유일한 가족이다. 하지만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인 게이 점쟁이년한테 전화를 한다. 전화를 걸어 그녀가 퍼붓는 온갖 쌍스러운 욕지거리와 악악 고함을 듣는다. 나는 그녀가 더 흥분하게끔, 전화기에 대고 콧바람을 세게 불어넣는다. 그녀에게 욕을 들어먹으면 기분이 한참 좋아진다.
오라비가 웃는다. 오라비는 기분이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오늘은 안 우는 데 성공했어. 오라비가 말한다. 그래 잘했어. 내일도 성공하길 바래. 나는 머리를 쓰다듬듯 부드럽게 대답해준다. 오늘은 안 울었으니 내일은 더 많이 울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애가 오라비를 울리고 있는 걸까?
내 안에는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일곱살 소년이 살고 있다
신생아들은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샘이 채 뚫리지 않아 아무리 크게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장롱 속에서 울음소리조차 크게 못 내던 그애의 눈에서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애는 평생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 셈이다.
나는 그애의 분홍빛 잇몸에서 앞니가 나고 보드라운 발뒤꿈치가 단단해지고 숫구멍이 막히면서 머리털이 새카매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애는 내 안에 머물면서 나와 함께 성장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그애는 네개의 이를 가졌고, 내가 초경을 치를 때 갑자기 성장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그애가 장롱 속에 들어갈 때의 내 나이 즈음, 이갈이를 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성장을 멈춘 것이다. 그후로 그애는 일곱살 소년의 모습으로 나와 함께 이십여년을 살았다.
나는 그애가 샴쌍둥이처럼 내 몸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애를 떼어낸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몸 곳곳에 퍼져 있는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일보다 무모하다.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그애. 서른일곱살 여자의 몸속에 살고 있는, 단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일곱살 소년.
내 친구 게이 점쟁이 기치료사 보조작가가 말하길
그애가 정말 오라비 어깨에 올라탔을까? 어떻게 생각해? 그애가 정말 천도제를 바라는 거야? 나하고 사는 게 싫어서 오라비한테 간 거야? 오라비한테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여태 같이 잘살아왔으면서 갑자기 떠나겠다는 건 뭐지?
말 좀 그만해, 이년아. 기가 다 빠져나가잖아.
그녀는 내 벗은 등짝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말했다.
목덜미에 아주 돌덩이를 달고 사는구나. 그러게 진작 그애를 제대로 받으시지 그랬어. 그럼 이렇게 근육을 혹사시키면서 살지 않아도 되잖아. 내가 신어미 소개시켜준다고 할 때는 그렇게 싫다더니. 왜, 이제 와서 보내려니까 아쉬우셔?
그애는 나한테 암말도 안해. 그냥 내 옆에 가만히 있는 애한테 점쟁이 하자고 꼬실 순 없어. 너야말로 점쟁이 일에나 충실하면 안돼? 점쟁이면 점쟁이고, 기치료사면 치료사지. 비굴하게 보조작가는 또 뭐야? 게이 점쟁이 기치료사 보조작가. 너한테 붙은 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이랑 점쟁이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된 거고, 기치료사는 있는 능력 가지고 아픈 사람 치료하면서 덤으로 돈 버는 거고. 내가 공짜로 해주니까 네가 모르는 모양인데,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치료받겠다고 몇달씩 기다린다구. 그리고 보조작가가 어때서? 곧 메인작가가 될 몸인데. 곧 내 이름으로 작품 올릴 테니 그냥 드라마작가라고 부르셔. 너한테도 여자 수다쟁이 목수 이렇게 부르지는 않잖아? 맨날 손에 망치나 대패나 들고 설치면서 아저씨들하고 싸우는 게 여자냐?
그냥 점쟁이만 하면 안돼? 절대적이고 위압적이고 제멋대로면서 돈도 제법 벌잖아. 그냥 기치료사나 하든가. 눈물 질질 짜는 드라마 작가가 뭐가 좋다구 그래? 맨날 사랑하고 배신하고 울고 복수하고 또 울고.
그녀가 다시 내 등짝을 후려쳤다. 이번엔 손이 아주 매웠다. 손끝에 병을 잡아내는 송곳이 들어 있어서 근육통은 물론 온갖 병들을 치유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 손이었다.
그런데 네가 점쟁이가 된 게 게이가 된 다음이야, 아니면 할매신을 받은 다음에 게이가 된 거야?
난 태어나면서부터 게이였어!
게이는 장군신 같은 건 못 받아?
왜 안되겠어? 그냥 내가 받은 게 할매신인 거지. 넌 장군신이 더 좋다고 생각해?
아니. 나도 할매신이 더 좋아. 근데 천도제 하면 진짜 저기로 갈까?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어디서 할 건데? 난 그런 거 안해, 알지?
물론 알아. 알아본 절이 있긴 한데, 내가 아직 결정을 못했어. 지금 내가 그애를 받으면 천도제를 지내지 않아도 될까? 내 몸속에 이미 들어앉은 애를 어떻게 또 받는지 모르겠지만. 내림을 안 받아도 들어온 애가 천도제를 한다고 가겠어? 오라비 어깨에 올라탔다는 것도 말이 안되잖아? 말이 된다 해도 해코지 같은 걸 할 애가 아니야. 안 그래?
뭐가 그렇게 질문이 많아 이년아, 정신 사나워서 더 못하겠다. 그냥 천도제 해서 보내버려. 그동안 그애한테 잘해준 것도 없으시잖아. 책임도 못 지면서. 정신 시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좀 궁금해하시고, 일어나서, 옷이나 입으셔.
내가 그애한테 뭐 해준 건 없지만, 너라고 다를 건 없잖아. 할매신 받았다고 기껏해야 떡이나 좀 올려주는 거 말고……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할매신이라도 계속 붙잡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데.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금방 토라지고 화를 낸다고. 해마다 기도하러 들어가는 거 너도 알잖아. 냉정한 기집애!넌 눈물 없어서 신도 못 받을 거야. 신 내릴 때 얼마나 우는지 알아? 진이 빠질 때까지 울어야 몸이 바뀌는 거야. 암것도 모르면서!
내가 눈물이 없다고 점쟁이까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전에는 안한다고 뭐라 하더니. 왜 다들 울지 못해 안달이고, 울리지 못해서 난리들이야? 나도 울어!방식이 다를 뿐이지. 꼭 눈물을 흘려야 우는 건 아니라구!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누군가 내게 돌을 던졌다. 뒤통수에 돌을 맞고 돌아봤을 때 남자 녀석 넷이 골목 어귀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녀석들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눈물을 원했다. 굴복과 복종의 표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겁에 질린 눈빛.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를 찾아 도망가는 패배자의 줄행랑.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엄마는 집에 없었고, 있다 해도 눈물범벅으로 엄마에게 달려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피가 흘렀다. 머리통이 욱신거리며 어찔어찔 어지럼증이 일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물은 통증을 배가시킬 뿐이었다. 나는 눈물을 보이는 대신 눈을 부릅뜨고 무리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목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다음 이를 세워 머리통에 박아넣었다. 나머지 셋이 나를 떼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녀석의 머리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기를 쓰고 매달려 있었다. 결국 굴복한 것은 둥그런 잇자국을 머리통에 새긴 녀석이었다. 이미 남의 머리통에서 피를 보게 했던 탓에, 녀석의 엄마가 질질 짜는 녀석을 앞세워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내 뒤통수에 누군가 돌을 던지는 일도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발을 걸었다. 나는 책상 모서리에 턱을 부딪치고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치마가 치켜올라가는 바람에 허벅지와 팬티가 그대로 드러났다. 고개를 들었을 때 키득거리는 계집애들과 눈살을 찌푸리는 남자애들 얼굴이 보였다. 그 많은 애들의 머리통을 일일이 물 수도 없었고 마침 수업시작 종소리가 울리기도 해서, 그냥 조용히 일어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울컥 솟구칠 것만 같았다. 그때 그애가 나타나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내 턱을 쓰다듬어주었다. 찡긋 한쪽 눈을 감으며 울지 마, 신호를 보냈다. 나는 턱을 쓰다듬는 그애의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간지럼 타는 어린애처럼 폭발적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판서를 하던 선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봤고, 동시에 계집애들의 야유가 퍼부어졌다. 어떤 야유와 경멸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한 나는 급수 주전자에 물을 받은 다음 그 위에 앉아 오줌을 쌌다. 참고 있던 눈물을 모두 쏟아낸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했다.
누군가 책상 서랍에 피 묻은 생리대를 넣어두었다. 누군가는 도시락 안에 죽은 바퀴벌레를 넣었다. 마주오던 누군가가 내 면전에다 미친년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 옆에 있던 누군가는 재수없다며 침을 뱉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급수 주전자나 대걸레나 누군가의 의자나 사물함 같은 데다 오줌을 쌌다. 언젠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한 남자가 너같이 뻑뻑한 여자는 처음 봤다고 말하며 떠났을 때도 나는 신촌의 여관골목 한복판에서 오줌을 쌌다. 오줌을 싸고 나자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쏟아낼 때면 내 몸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물기가 빠지면서 단단히 굳는 진흙처럼 시멘트처럼. 나는 오줌을 싸면서 더 단단하고 건조해지고 딱딱해지길 바랐다. 그래서 어떤 물기에도 풀어지지 않고 질퍽거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은 굴복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슬픔과 고독에 대한 굴복의 징표다.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울고 싶을 때 오줌을 싸다가 문득문득 돌출된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몸을 탓하는 대신 다른 방도를 찾기로 했다. 침을 뱉거나 땀을 흘리는 것으로도 몸의 물기는 배출될 테니까.
유방절제자를 위한 브래지어
엄마는 유방을 잘라낸 후부터 눈물이 말랐다고 했다. 유방과 눈물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는 그렇게 믿고 있다. 엄마 말대로라면 자궁을 들어내거나 나팔관이 막히거나 폐경이 돼서 눈물이 마른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유방도 완전하고 폐경도 아니고 자궁을 들어내지도 않았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거나 하품을 할 때 적당량의 눈물이 나오는 걸 보면 눈물샘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눈물이 마른 것은 언제부터인지.
젖 물릴 때는커녕 폐경기가 지난 엄마가 젖줄이 잘려 눈물까지 말랐다고 억지를 부리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는 유방이 있었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젖이 돌아도 젖을 물리지 않았던 사람이다. 내가 백일이 막 지났을 무렵 엄마는 젖통을 부여잡고 힘차게 젖을 빨고 있는 계집애가 갑자기 징그럽게 느껴졌단다. 그래서 엄마는 혀를 모으고 힘을 주고 있는 나를 떼어내고 젖꼭지에 옥도정기를 발랐다. 그것도 모르고 젖꼭지를 되물었던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쓰디쓴 젖꼭지를 혀로 밀어냈다. 그러곤 두번 다시 젖을 빨지 않았다.
독한 년. 유방암 수술을 하기 위해 병실에 누워 있던 엄마가 옥도정기 얘기를 꺼내며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이 두번 다시 젖을 물지 않은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옥도정기를 바른 자신을 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오라비 때도 옥도정기를 발랐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는 엄마의 유두가 함몰된데다가 오라비의 입힘이 세지 않아서, 거의 대부분의 젖은 함몰된 유두를 잡아빼기 위해 노력한 아버지 차지였다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그애가 먹을 뻔했던 젖은 누구 차지가 되었느냐고도 묻고 싶었다. 그때 어찌나 비리고 밍밍하던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아버지가 덧붙이는 바람에 기회를 놓쳐버렸다. 나는 소비되지 않아 남아돌던 젖이 오랜 시간 썩고 뭉쳐서 암덩어리가 된 것이라고 단정했다.
수술을 한 후 엄마는 꼿꼿이 선 유두가 달린 동그란 젖통 한쪽과 터져서 쪼그라든 고무풍선 모양의 젖통 한쪽을 갖게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유방절제자를 위한 브래지어를 퇴원선물로 주었다. 몰딩 처리가 된 캡 안에 씰리콘 주머니를 넣을 수 있는 브래지어였다. 그것은 엄마가 균형잡힌 가슴을 가졌을 당시 젖통의 크기와 모양을 측정해서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씰리콘 주머니에 익숙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한번도 그걸 착용한 적이 없을뿐더러, 불균형한 가슴을 여지없이 드러내주는 신축성 좋은 소재의 옷들만 입었다.
엄마의 불균형한 가슴은 방패막이였다. 느닷없는 짜증과 변덕에도 다 이유가 있었고, 온갖 산해진미를 탐하며 며느리를 닦달해도 토를 달지 못하게 만들었다. 발 뒤에 숨어서 섭정을 행하는 늙은 대왕대비 마마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온 식구들을 조정하려 해도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눈물을 질질 짜며 푸념이나 하는 엄마보다는 짝가슴을 훈장처럼 내밀며 기세등등한 엄마가 더 좋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가진 짝가슴 방패막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눈물이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고 아이고 곡은 하면서도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울지 않는다고 비난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움푹 들어간 젖가슴 한쪽에 손을 얹으며 유방을 잘라낸 후부터 눈물이 말랐다고 변명했다. 그 순간 어미를 잃은 자식의 슬픔에 유방을 잃은 여자의 고통까지 얹어져, 엄마는 누릴 수 있는 모든 동정과 측은함을 한몸에 받았다. 엄마는 눈물 없는 곡소리조차 낼 필요가 없었으며, 그때부터 장례식장 한자리에 앉아 섭정관 특유의 단호함과 우아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눈물과 곡소리를 함께 낸 것은 족보상 상주인 작은할아버지의 차남이었다. 나는 엄마의 눈물이 마른 시점이 진짜 언제부터였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삼킨 눈물의 승리
영정사진 속의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은 할아버지가 죽고 난 직후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눈이 약간 부은 것도 같았지만, 진달래색 블라우스 때문인지 대체적으로 화사한 느낌을 주는 사진이었다.
그애가 나서 죽던 해 봄, 할아버지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할머니에게 돌아왔다. 작은마누라와 함께 집을 떠난 지 십년 만의 귀환이었다. 떠날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기세등등했지만, 돌아올 때는 휠체어에 앉은 채 몸도 못 가누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작은마누라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집을 지켰다. 결국 승리는 삼킨 눈물 쪽이었다. 할머니는 골방 한구석에 할아버지를 눕히고, 그동안 눈물을 삼키느라 진창이 된 가슴을 쏟아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던져주는 멀건 죽을 넘기며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십년을 더 살았다. 골방에서 십년 동안 할아버지를 지켜준 것은 낡은 텔레비전 한대뿐이었다.
숨을 거둘 당시 할아버지의 몸은 잘 마른 장작 같았다. 뼈만 남은 팔뚝 위에는 시체들에서 발견되는 비누화현상이 일어나 있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몸에 남은 마지막 물기를 소진하듯 진물 같은 눈물 한방울을 흘리고 죽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이산가족찾기 특별방송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온 국민들이 눈물에 전염되기 위해 울 준비를 하고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던 그때.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재회가족의 통곡소리만이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 통곡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두던 그 순간, 할아버지는 누군가를 찾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분례나 순례나 순임 같은 이름과 함께 귀 뒤에 큰 점이 있다거나 홍은동 천변에 살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을지도. 그리하여 언젠가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쫓아내라고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던 분례 혹은 순임과 재회를 이루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는 장례식 내내 엄청난 양의 눈물을 쏟아냈다. 화장절차를 밟기 전 관을 붙들고 통곡을 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죽은 지아비를 따라 목숨이라도 끊을까 봐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고 나자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물의 흔적까지 말끔히 지워버렸다. 그리고 두번 다시 눈물을 흘리지도 삼키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던 모든 전답과 집을 정리한 다음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눈물을 삼키던 세월 동안 못했던 수많은 일들을 하면서 살았다. 수영과 춤과 운전을 배웠으며 국내의 유명한 섬들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고, 가끔은 고아나 지체장애인 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가진 재산을 남김없이 쓰고 난 후, 잠든 상태에서 고요히 생을 마감했다.
네가 그냥 소년이었으면 좋겠어
내 젖을 물어. 내 젖은 달고 안전해. 옥도정기도 안 발랐어. 내 젖을 먹고 쑥쑥 자라. 네가 자라면 그 포대기를 치우고 멋진 옷을 입혀줄게. 머리를 쓸어올려주고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어줄게. 얼마나 힘차게 빨아대는지 젖꼭지가 얼얼하잖아. 우량아 대회에 나가도 되겠어. 내 젖을 만지는 이 포동포동한 손 좀 보라지.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는 거야? 입가의 그 비열한 웃음은 뭐지? 그렇게 빨리 자라면 어떡하니. 너무 무거워서 안고 있을 수가 없잖아. 턱에 난 수염은 뭐고, 볼록 튀어나온 목뼈는 다 뭐야. 더이상 자라지 마. 네가 그냥 소년이었으면 좋겠어. 우량아라도 좋아. 징그러워. 내 젖에서 떨어져. 거친 손길은 싫어. 내 눈앞에서 그런 짓은 하지 마.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그 예쁜 손으로 수음을 하는 꼴이라니. 너는 영원한 일곱살 소년.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소년 아니니. 그렇다고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서 가버리면 어떡해. 가지 마, 제발.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났다. 지독한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멀어져가던 그애의 뒷모습이 선했다. 징그러운 성기를 붙들고 나를 바라보던 이상한 눈길도 생각났다. 멀어지던 그애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무서운 표정으로 했던 말도 귀에 쟁쟁했다. 따라오지 마.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와 기력이 쇠한 늙은이의 목소리가 뒤섞인 그 이상한 목소리.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협박전화를 건 유괴범의 변조된 목소리처럼 냉혹하면서 무섭고 징그러운 그 목소리.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애를 어떻게 했어요? 이 새벽에 무슨 일이냐? 그애를 어디다 묻었느냐고요. 산에 묻었어요? 불에 태웠어요? 아니면 그냥 쓰레기통에 처넣었어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천도제를 지내자, 천도제를 지내면 그애도…… 도대체 그애를 어떡했냐구요! 강물에……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검은 물 노란 꽃
아버지는 포대기에 싸인 그애를 안고 하염없이 걸었다. 원효로에서 걷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한남동에까지 다다랐다. 한강 둔치에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니, 언젠가 한강을 횡단하겠다고 팬티바람으로 강물에 뛰어들었던 청년시절이 떠올랐다.
강물이 생각보다 차고 검었지만 수영을 하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고, 수영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바닷가 출신이라는 자부심도 한몫했다.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반쯤 채 못 갔을 때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서 쥐가 난 것이 문제였다. 뻣뻣하게 뒤틀리는 다리 한짝이 온몸을 장악해갔다. 그 순간 아버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지 되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를 가늠해보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편이 수월할 듯했다. 아버지는 죽을힘을 다해 팔을 저었다. 결국 아버지는 옷을 벗어놓았던 곳에서 하류 쪽으로 한참 내려간 지점에 도착했다. 얼마나 많은 물을 먹었는지 머릿속까지 물이 꽉 찬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숨을 고르며 강둑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분간이 된 사물은 호박꽃이었다. 노랗디노란 호박꽃들.
아버지는 둔치에 앉아 언젠가 생을 마감할 뻔했던 지점을 가늠해보았다. 제3한강교의 다섯번째 교각 아래 즈음. 입가에 허망한 미소가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던 아버지 눈에 마침 비료자루 하나가 띄었다. 포대기 하나를 넣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아버지는 비료자루에 포대기를 넣고 주변에 있는 돌들도 주워 함께 넣었다. 그러고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훨씬 무거워진 포대기 자루를 어깨에 메고 강둑을 내려갔다. 한강 횡영과 같은 치기어린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한 짓은 비료자루를 강물에 가만히 내려놓은 것뿐이었다.
49일
나는 오라비에게 그애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천도제를 지내야겠다고 졸라대던 아버지의 믿음도 함께 전해주었다. 오라비는 예상과는 달리 내 얘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천도제에 나섰다. 그렇게 천도제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는 차마 따라나서지 못했다. 엄마는 미리 맞춰놓은 모시 개량한복을 입고 나들이가는 마나님처럼 우아한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천도제는커녕 예불 한번 드려보지 못한 엄마와 오라비는 법당보살과 집도스님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해야 했다. 법당 예절에 문외한이었던 엄마는 유교식 절을 지적받았고, 오라비는 스님의 좌복 위에 앉았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다. 기분이 나빠진 엄마는 두 손을 모은 자세의 큰절을 세번 하고는 사뭇 도도한 모습으로 법당을 나가버렸다. 어쨌든 모시 한복을 입고 큰절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폐백을 드리는 새색시처럼 단아해 보이기는 했다.
엄마는 그애가 태어난 연도와 계절만 기억할 뿐 날과 시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름도 사진도 없고, 태어난 시도 모르고, 죽은 지 삼십년이 지난 애의 천도제는 어쩐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오라비는 일곱번의 천도제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나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 그애를 아쉬워하며 영영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애는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막제는 들뜬 분위기였다. 아버지를 비롯해 오라비의 식구들과 친구들까지 가세했다. 물론 마나님 같은 복장의 엄마도 함께였다. 막제에는 이름 없는 그애의 위패와 함께 나흘 전에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내아이의 사진이 함께 올려졌다. 제를 끝내고 모든 짐을 벗을 준비가 된 우리들과는 달리 이제 막 죽은 아이의 가족은 침울한 분위기였다. 아이 엄마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울부짖다가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짓찧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는 소지(燒紙)를 위해 두켤레의 신생아용 양말과 하늘색 코끼리가 그려진 배내옷을 준비했다. 그애를 저승으로 보내기 위한 마지막 절차였다. 그것들을 화로에 넣기 전 나는 양말 한짝을 빼돌렸다. 불이 사그라질 즈음 가족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나뿐이었다.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화로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원하게 펑펑 눈물을 흘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단 한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랜 세월 단련되어 화석처럼 굳어버린 내 눈물. 돌눈물이라도 흘리면 좋을 것을. 나는 시커먼 재를 바라보며 오줌을 쌌다. 뜨거운 오줌물이 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리는데도 도무지 시원해지지가 않았다.
천도제가 끝나고 나자 오라비는 거짓말처럼 안정을 찾았다. 이젠 약을 먹지 않아도 눈물을 참을 수 있다고 오라비는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두려운 목소리로 그애 탓을 하는 아버지 전화도 오지 않았다. 이젠 아무도 울음소리를 동반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나는 그애가 여전히 내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애는 더이상 권투선수 복장으로 누군가를 물리치러 오지도 않았고 내 머리칼을 쓸어올려주지도 않았다. 울음소리가 그리웠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언제까지라도
아이를 자루에 담아 강물에 던진 남자 얘기 알아?
그 유괴범 얘기 말이야?
유괴범이라니?
아이를 유괴해서 산 채로 강물에 집어던진 남자 있잖아. 집장만 하느라 대출받은 일억 빚 갚으려고 그랬대. 유괴한 남자애를 자루에 담아 트렁크에 싣고 다녔는데, 그만 덜컥 죽어버려서 강물에 버렸다는 거지. 근데 나중에 아이 시신을 찾아서 부검해보니까 폐에 물이 꽉 차 있었다지 뭐니. 살아 있었을 때 던졌다는 증거란 말이지. 뭐 그런 자식이 다 있냐. 애도 있는 놈이라던데. 그 손으로 집에 들어가서 지 새끼 머리 쓰다듬었을 거 아냐.
난 죽은 아이를 강물에 던져버린 남자 얘기였어.
죽은 애든 산 애든. 어떻게 아이를 강물에 던져버린다니?
저절로 빠져죽은 애도 있어. 우리 막제 지낼 때 초제 지냈던 사내애.
천도제도 끝났는데 왜 자꾸 절에 드나드나 했더니, 그거 때문이었구나. 너 또 누굴 묻혀오려고 그래, 정말.
그냥 울음소리가 좀 듣고 싶어서 그래. 죽은 애 엄마. 이젠 눈물이 마를 만도 한데, 매번 눈물바다야. 혼자 앉아서.
남편은 없고? 그 여자 과부야?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누군지 몰라도 팔자 드럽게 쎈 년인가 보다. 애는 어쩌다 그랬는데?
해외 영어캠프에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데. 사람들이 다들 아이 엄마를 비난하더라고. 그 여자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아직 못했어.
무슨 얘기를 하시려구.
그애랑 한 상을 받았으니, 그애가 잘 보살펴줄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그러면 그 여자 눈물이 멈출까? 이상해. 눈물 흘리는 여자들이라면 질색이었는데. 그 여잔 자꾸만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어. 머리칼도 쓸어올려주고 싶고. 옛날에 그애가 했던 대로 뜨거운 입김도 불어넣어주고 싶고. 아니면 함께 눈물 흘려도 좋고.
질질 짜는 얘기라면 펄쩍 뛰던 년이 왜 갑자기? 그냥 니 앞가림이나 잘하시지? 나 같은 게이년하고만 노는 것부터 이상한 년이시라는 걸 알아야지.
또 그 타령!
이참에 당신 성적 정체성을 한번 의심해보지그래? 난 레즈비언은 질색이야, 알지?
그냥 눈물을 흘려보고 싶을 뿐이야. 울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 그럼 그애도 다시 올 것 같구.
맘대로 하셔.
근데 오늘 너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야?
내 기분은 왤케 좋을까. 오늘 그이가 오기 때문일까?
그 미국 사는 남자?
엉. 이따가 공항에 마중나갈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애도 있고 부인도 있다며.
언제까지라도.
그러다가 그 사람이 그만둔다고 하면 어쩔 건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셔. 내가 고등학교 때 애들한테 돌팔매질 당할 때부터 지켜줬던 사람이야. 반듯하고 똑똑하고 멋지고. 애들만 다 자라고 나면 결국 내 차지가 되는 거지. 아시겠어요?
변심한 애인을 위한 레씨피
언제까지라도 함께할 거라던 남자는 그녀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이십년 가까이 유지해오던 관계였다. 그녀는 남자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남자는 더이상 이중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를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그냥 남자와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 순순히 보내주었다. 그리고 남자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고 있는 동안 변심한 애인을 위한 장문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고 배신하고 복수하고 견디고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에는 능통한 작가적 기질이 충분히 발휘된 편지였다. 그녀는 울음바다를 만들며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꾹꾹 눌러쓴 편지 한장이 남자의 마음을 움직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 쓴 편지를 접기 전에 그녀는 몇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것은 의도된 것이기도 했고, 저절로 흐른 것이기도 했다. 눈물 젖은 그 편지는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자는 그녀의 절대적인 헌신과 그녀가 선사했던 최고의 쎅스와 그밖에 그녀와 보냈던 십수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물자국 위로 남자의 눈물이 보태졌다. 남자는 며칠 뒤 그 편지를 들고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그 편지는 잉크와 눈물을 주재료로 한,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돌리는 최고의 레씨피였다.
눈물의 맛
나는 여자에게 내 속에 살았던 소년 얘기를 해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애가 남기고 간 양말 한짝을 선물로 주었다. 내 위에 누운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이 내 눈꺼풀을 적셨다. 눈꼬리로 떨어진 눈물이 내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자의 눈가에 혀끝을 갖다댔다. 눈물은 짜고 시고 달았다.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나올 때면 오줌을 싼다. 오줌을 싸면서 나는 자그마한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는 일곱살 소년을 생각한다. 내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울지 않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