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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인터뷰

 

시민운동의 블루오션은 어디 있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의 대화

 

박원순 朴元淳

시민운동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참여연대 사무처장 역임.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원.

 

ⓒ이영균

 

왜 박원순인가? 이미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박원순 변호사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곧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대선 후에도 계속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그에게 한국사회와 시민운동의 발전방향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결코 급박하게 변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외면하는 한가한 일은 아니리라는 확신을 갖고 그의 희망제작소 사무실을 찾았다.

 

이남주 도전인터뷰라고 해서 제가 꼭 도전을 해야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는데,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서 대선후보들을 상대로 선생님께서 인터뷰하신 걸 보니까 아주 공격적으로 하셔서 부담은 많이 덜었습니다.(웃음)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상임이사님이라고 할까요?

박원순 좋을 대로 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안한 지 오래됐는데도 그냥 박변호사라고 말하는 분도 많고요. 저도 좀 헷갈려요.(웃음) 왜냐하면 일이 바뀌면 직책도 바뀌잖아요. 제가 참여연대에 있을 때는 사무처장이었거든요. 그래서 참여연대 간사들은 지금도 저를 사무처장이라고 부르는데, 심지어는 현 사무처장도 저보고 사무처장님이라고 해요. 자기가 사무처장이면서……(웃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호칭이 헷갈리는 경우가 없잖아요. 예컨대 전직 장관이면‘장관님, 장관님’그러고요. 그래서 그게 아니다 싶어서 고민하다가 우리는‘씨’로 해보자, 그래서 희망제작소에서는 사실 모든 사람들더러‘원순씨’라고 부르게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거든요. 근데 나이든 사람들은 또 그걸 못해요. 영국이나 미국에서‘미스터’라고 하거나 일본에서‘상’이라고 하면 어느정도 존칭이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원순씨’라고 하면 적정한 존칭이 될 수 있고, 특별한 경우는 선생님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이왕이면‘원순씨’라고 해주시죠.

 

쏘셜 디자이너 ‘원순씨’

 

이남주 저는 선생님이라고 하려고 했는데요.(웃음)

박원순 ‘원순씨’죠 뭐. 그것도 하나의 운동이니까요.

이남주 그럼 저도 호칭을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동안의 경력을 보면 변호사로 시작해 시민운동가로 활동하셨고, 요즘에는 쏘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그 다양한 직업 여정을 설명해주세요.

박원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변호사 그만둔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변호사이기도 하고, 실제로는 시민운동가죠. 활동가, 액티비스트(activist)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 내용 중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니까, 최근에 제가 쏘셜 디자이너라고 한 것은, 일부러 한국사회의 공공이슈를 좀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사람, 이런 직업을 한번 만들어본 거죠. 이름 하나, 호칭 하나에도 창의적인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남주 그렇게 칭하시는 분이 아직은 원순씨 한분뿐인가요?

박원순 많이 있습니다. 우리 희망제작소 사람들도 대부분 명함에 쏘셜 디자이너라고 쓰고 있고요. 또 어떤 분은 제 걸 보고 가더니 에듀케이션 디자이너(education designer)라고 쓰고 계시고요. 그래서 점점 한국사회에 디자이너가 많아지고 있습니다.(웃음)

이남주 그간의 여정 중에서 가장 힘들었거나 보람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걸까요? 지금 하는 일 빼놓고요.

박원순 글쎄요. 나름대로 다 보람있고 한계도 있고 그런데,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우선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시민운동 초창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인권변호사를 할 때는 선배들, 어르신들 따라서 했으니까 어떤 집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건 없잖아요. 그런데 참여연대를 시작할 때는 저도 시민운동이 처음이니까, 하다못해 모금하는 것, 캠페인하는 것 하나하나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힘든 것도 많고 동시에 보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걸 통해서 경험이 생기고 사람들도 그 경험을 인정해주게 되니까, 아름다운재단을 할 때는 비교적 쉬웠던 게 아닌가 싶어요. 처음 할 때는 뭐든지 힘들고, 힘들수록 고난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잖아요.

이남주 방금 원순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의 역할로서 시민운동가라는 걸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하시고, 과거 중에서도 참여연대 일을 가장 어려우면서도 보람있던 일로 지목하셨는데요. 최근에는 시민운동에 대해서 쓴소리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원순씨는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지금 하시는 일이 기존 시민운동과의 일종의 역할분담으로, 즉 다양한 활동공간을 창출해야 하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기존 시민운동과 자신의 새로운 사업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셨지요.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 기존의 시민운동에 뭔가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지점들이 있지 않은가 하고 강조하시는 경우도 종종 봤거든요.

박원순 저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운동이든 자기혁신 없이는 언제고 정체하고, 정체하면 부패하고 만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사회는 크게 변하는데, 운동의 내용이나 형식도 함께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봐요. 제가 흔히‘냉장고이론’같은 걸 간사들에게 많이 얘기하는데, 성능 자체가 계속 바뀌고 나아져야 할뿐더러 디자인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운동도 마찬가지로 10년, 20년 전의 운동은 우리가 당시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고, 지금은 사회가 변했는데 똑같은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하면 안된다는 거죠. 우리가 민주화운동 시기에 민주적인 정권을 만들어내고 민주화 이후의 이행기에는 사회전환기적인 운동을 했다면, 지금은 포스트 민주주의 혹은 포스트 이행기의, 좀더 본격적이고 포지티브한 시대의 담론과 구체적 제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해요. 옛날에는 사회가 워낙 허름했고 황당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 주장을 해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도 많이 바뀌고 기업도 상대적으로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담론, 새로운 형식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계속 하는 거죠.

이남주 그러면 이전의 형식을 가지고 발전해온 시민운동이나 시민단체는, 일하셨던 참여연대나 기타 지방에 만들어진 기존 시민단체의 경우는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신 것 같은데, 그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요구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박원순 그렇죠. 다른 단체에 대해서는 제가 말하기가 좀 그렇고, 참여연대의 경우는 여전히 소중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권력과 재벌 혹은 국민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참 힘들지만 끝없이 계속되어야 할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젠다나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똑같은 게 지속되면 아무리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도 재미가 없잖아요.

 

시민운동의 블루오션을 찾아라

 

이남주 그러면 아젠다로서 지금 주로 강조하는 것 중에는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논의가 많은데 좀 실사구시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박원순 예를 들어 정치개혁은 늘 필요했으니까, 부패방지법도 만들어내고 낙선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그게 사회에 큰 영향을 줬잖아요? 그런데 지금 낙선운동을 똑같이 하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요새 매니페스토운동이 유행인데, 이 운동의 실효성은 좀 의문이지만 아무튼 새로운 접근방법이니까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부패도 옛날처럼 거대한 부패는 상대적으로 사라졌잖아요. 최근 삼성에 대한 내부제보 사건을 보면 아직도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훨씬 미시적인 것들…… 예컨대 미국의 폴스 클레임즈 액트(False Claims Act)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부정주장법, 납세자소송법 같은 운동이랄지요.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 중에 프랭크 퍼미션(Frank Permission)이라는 게 있더라구요. 말하자면 국회의원이 보내는 편지의 우표를 정부 돈으로 쓸 수 있는 것과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 사이의 기준을 판단하는 위원회예요. 저는 문명이라는 건 이렇게 점점 더 치밀해지는 매뉴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처럼 선진적인 나라일수록 공공의 잣대나 기준이라는 게 훨씬 치밀해지거든요. 그런 쪽으로 운동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가들이 끊임없이 세상의 새로운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변화를 통찰력있게 바라보고, 이에 대한 대안적 아젠다를 갖고 있어야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이남주 그런 문제의식과 관련해서 기존 시민운동에 대해 나름대로 변해야 할 지점들을 강조하시지만, 한편 위기론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이를테면‘위기가 아니다. 시민운동에 블루오션이 많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는요?

박원순 그건 눈에 보이죠. 왜냐하면 사회가 발전하고 합리적으로 되어간다는 증거는 그만큼 인간의 자발적인 결사체들이 많아지고 자원봉사적인 조직체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거든요. 미국에는 그런 조직이 60만개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초창기예요. 과거에는 정치적인 변화, 제도적인 변화를 위해서 일하던 단체들이 시민운동의 중심으로 여겨졌지만 정부나 의회나 공공기관이 합리화되면서 애드보커씨(advocacy, 공익주장·대변) 기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공동체의 과제들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죠. 일본도 유럽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온갖 영역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움직임은 훨씬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남주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그런 현상들이 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박원순 그렇죠.‘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같은 것도 최근 몇년 사이의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를 휩쓰는 하나의 유령으로,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처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변화를 조금만 살펴보면 엔지오(NGO)나 엔피오(NPO), 시민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민운동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든가, 시민운동을 포함하여 진보개혁진영에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반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민운동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미시적인 대안 혹은 다양성을 강조한 그에게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자, 통합의 구심점으로 작용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전체 시민운동의 발전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남주 원순씨께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지금까지 하신 역할들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아직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거나 적어도 상당히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고 보면서, 그런 부분에서 역할을 계속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시는 미시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일들은 거기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는 분들도 계신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원순 그렇진 않고요.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오히려 훨씬 더 변경을 개척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으로써 사실은 강력한 애드보커씨 운동도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제가 참여연대에 있을 때도 아마 참여연대가 재벌을 개혁하는 경제민주화운동이나 낙선운동만 했으면 그렇게는 잘 안됐을 거예요. 저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다가가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는데, 작은 권리 찾기라든지 사회권운동 같은 것, 이런 걸 했거든요. 저는 이런 것이 없다면, 한 조직 안에서도 이런데 하물며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이렇게 유연하고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박는 운동들이 좀더 외연을 확장하지 않으면 운동의 고사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시민운동은 주로 학생운동권 출신의 사회운동가들이 했거든요. 지금은 시민단체들이 간사를 뽑는데 지원자들이 현저히 줄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런 운동가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주부라든지 은퇴자라든지 직장인, 청년 들을 사회 공공의 이슈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봐요. 말하자면 시민사회운동의 주체를 교체해야 하는 겁니다.

이남주 한국의 NGO들이 지난 10년간 많이 성장했고 큰 역할도 했는데, 조금 전에 말씀하신 관점들, 작은 권리를 통해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거나 실제로 시민들을 많이 참여시키는가를 보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고, 그런 면에서는 발전이 더딘 것도 아닌가,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는 회원들에 기반하는 NGO들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의 경우에는 그런 NGO의 수가 적고 최근에는 약화되는 현상도 있는 것 같거든요.

박원순 그래서 분발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처럼 이렇게 강력한 애드보커씨 운동단체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영향력을 미치는 예는 사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발견하기 힘듭니다. 비록 그것이 위로부터 이루어진 것이지만 한국만큼 지식인들이 참여해 만들어낸 운동조직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찾기 힘들거든요. 미국을 봐도 중앙정부에 이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조직은 없고요. 일본은 말할 것도 없죠. 그것은 우리 남주씨를 포함해서 교수분들의 헌신적인 사회참여와 그것이 기반이 돼서 생겨난 헌신적인 젊은 활동가들, 저는 이런 힘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지속되기에는 여전히 허약한 요인들이 많은데, 그래서 이런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을 계속 확산해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아름다운가게’가 어떻게 보면 그런 운동과 관계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거기서 풀뿌리운동을 우선 재정적으로 지원하고요. 그렇게 지원하면서 거기에서 활동하는 많은 주부들이나 일반인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효과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름다운재단도 1% 기부자들이 내는 돈에서 20, 30억 정도가 NGO쪽으로 가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사회적 인식이 별로 없는, 그렇지만 작은 양심을 가진 풀뿌리 시민들이 결국은 그런 변화에 참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남주 지금 구체적인 대안이나 미시적 접근의 필요성 등 새로운 변화를 강조하시는데요. 희망제작소 사업도 그 일환이겠죠? 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건 언제인가요? 아름다운가게나 아름다운재단의 경우에는, 전에 미국에 가서 조사하고 쓰신 걸 보니까 재단이나 기금에 대한 관심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런 고민을 해서‘아름다운재단’까지 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희망제작소의 경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박원순 저는 뭐든지 그렇게 되더라고요.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했던 일이 저 없이도 그런 대로 굴러갈 정도가 되면 구태여 제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하는 일 없이 월급이나 받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참여연대에서는 제가 7년 동안 사무처장으로 일했는데, 7년을 했으면 후배들도 사무처장이 될 기회가 있어야죠. 그래서 매년 바꾸는 건 무리가 있더라도 저는 한 3년 해서 두번, 그 정도면 적절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아름다운재단’도 5년이 되면서 보니까 나름대로 정착이 되는 것 같고요. 물론 제 욕심대로 하자면 한이 없지만 그래도 제가 없어도 괜찮은 조직은 저로서는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2004년에 3개월간 독일을 여행했고요. 독일에서도 참 많이 배웠습니다. 여러 기관들, 예컨대 막스 플랑크(Max Planck) 연구소니 많은 시민단체들에 가보면서 지금의 일들을 생각했고, 특히 제가 2005년에 스탠포드에서 한 학기 강의를 했는데 남는 시간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굳어졌죠. 그렇게 따지면 1년을 고민했네요. 그런데 뭐든지 시작하면 초기에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내가 잘못했나, 조금 후회가 될 때도 있었어요.(웃음) 그렇지만 이젠 어쩔 수 없죠.

이남주 후회를 하신다면 제일 어려운 문제는 어떤 게 있습니까?

박원순 많죠 뭐. 우선 팀워크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통의 마인드, 공통의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게 쉽지 않죠. 그런 문제가 제일 어렵고요. 그다음에 재정적인 고민이 있죠. 조직이 움직이려면 필요한 거니까. 그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될 수 있는가. 저는 언제나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내가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다음 계획은 중국에 가서 한 2년 머무는 거예요.

 

참여연대에 바란다

 

이남주 모든 일을 떠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요즘 제가 참여연대에 들를 일이 있어서 보니까 사무처장의 세대도 많이 바뀌었더군요. 그런데 지금 일하는 건 어떻게 보시는지?

박원순 불만이 없을 수 없죠.(웃음) 시어머니라고 할까? 그런 근성이 있잖아요. 이게 노인병인데 언제나 노파심이 생기고 저걸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제가 일부러 멀리합니다. 가까워지면 끊임없이 그런 관계가 형성되거든요. 사실 제가 참여연대를 그만둘 때 상임집행위원장이라는 자리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회의를 하는데 가서 보니까 다 눈에 보이잖아요. 그래서 잔소리를 한참 했더니 분위기가 그게 아니에요. 이미 떠난 사람인데 그렇게 계속 시어머니 역할을 하면 되나요? 와서 등 두들겨주고 밥이나 사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양립이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안 가기 시작했고요. 확실히 단절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도 끊어야 하는데 끊는 것도 참 쉽지가 않습니다.(웃음)

이남주 구체적으로 참여연대를 보시면서 이런 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은 없습니까?

박원순 뭐 잘하는 것도 있고요. 예를 들어서 사법감시쎈터 같은 데서 대법원판결 분석해내는 것, 이런 걸 보면 참 잘하더라고요. 제가 있을 때보다 더 잘해요. 그런데 저는 평화군축 이런 것까지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왜냐하면 참여연대가 이미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은데 또 새롭게 시작하면 안 다루는 게 없잖아요. 오히려 그 대신 국가권력 감시의 전형을 업그레이드하라고 했죠. 더 세밀하게 다뤄야 할 과제가 많은데 자꾸 넓히기만 하고 더 깊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죠.(웃음) 평화군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일단 맡고 있는 일에서 끝장을 봐라, 그거죠. 그래서 저는 한단계 운동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조직으로 파생되어나가는 게 좋다고 보거든요. 근데 자꾸 이렇게 벌이기만 하면 곤란하지 않나. 그런데 저도 여기에 와서 막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안됩니다.(웃음)

 

인터뷰어는 참여연대에서 주로 평화군축쎈터 일을 했는데 이를 꼭 집어 문어발식(?) 확장의 사례로 드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참여연대 내에서도 최근 사업의 초점이 약화된, 특히 참여연대 고유의 사업이 힘있게 전개되지 못한 데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제기는 그와 다른 시민운동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일한 고민의 선상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남주 현재 주력하고 계신 희망제작소 얘기를 좀더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홈페이지를 둘러보니까 굉장히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것들을 많이 강조하셨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영역이 좁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것들을 사회 전체의 변화와 연결지을 수 있는 철학적·이론적 전제가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제작소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를 싱크탱크로 발전시키는 걸 중요한 목표로 생각한다고 밝히셨는데, 저도 작년에 연구년으로 미국에 있으면서 싱크탱크에 관심을 두고 자세히 살펴본 경험이 있습니다. 거기의 싱크탱크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나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등은 나름의 철학적 전제 아래 모든 미시적인 문제들을 설명하고, 또 미시적인 설명이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이나 당파적 입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제작소에서 제시하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에서는 우리가 가야 할 전반적인 방향과의 연결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더군요.

박원순 맞습니다. 그래서 숲속에 들어가버리면 전체 숲을 바라볼 기회가 없이 방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늘 숲속에 들어가지는 않고 숲 바깥에서 저 숲이 어떻다고 얘기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너무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았나 해요. 왜냐하면 저희가 정부나 재야, 외부 사회단체들, 심지어는 종교단체들까지 컨썰팅하고 있는데, 그런 일을 해보면 참 많은 부분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총론적 접근을 하는 기관도 있어야죠. 그렇지만 우리는 미시적이고 각론적인 접근을 해보자는 원칙을 세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에게 기본철학이나 이런 게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그게 어떻다고 얘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예컨대 제가 살아온 배경이 있고 여기 집단의 성격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어디를 지향한다고…… 밖으로는 평화통일이고 내부로는 뭐다 하고 선언을 안해도 저는 그런 철학적 입장이나 일정한 성향, 관점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남주 지금 한국사회가 다원화되고 해결되어야 할 미시적인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이 해결되면 사회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질 거라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하는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진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뭔가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담론이랄까 이념이랄까 방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요. 제가 희망제작소의 대안쎈터 소개글을 보니까 거기에‘따뜻한 시장경제’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연관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박원순 사실 저희들이 거기에 내세워놓은 목표랄까 하는 것들은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난 시기나 현상황을 반성적으로 고찰해본다면,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까지 그런 총론이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큰 그림이 없어서 이런 위기 내지 어려움에 처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번 대선시기에도 이른바 진보세력의 위기를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담론적인 측면보다는 정권까지 맡아놓고 구체적인 컨텐츠와 그것을 장악하고 추진해가는 힘이 우리에게 부족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물론 저는 그게 양립 불가능한 거라고 보지는 않고요. 어쨌든 우리가 좀더 집중해야 하는 건 구체성의 세계다, 구체적인 정책을 생산하는 일이 전체적인 틀이나 얼개와 끊임없는 상호 커뮤니케이션 없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함께 가야 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우리가 소홀히했던 것을 중시하자, 이런 것이죠.

이남주 대안쎈터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연구주제와 분과가 나뉘어 있는데, 재정에서부터 사람, 삶의 질, 경제, 이런 것들이 다 잘됐을 경우에 희망제작소가 지향하는 어떤 모델…… 말은 쉽게 썼지만 사실 국가경영인데요.(웃음)

 

지방에 뿌리를 둔 희망의 네트워크

 

박원순 저희들에게 중심은 있습니다. 일단 저희들은 상대적으로 우리 사회가 소홀히해온 지역공동체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우리 희망제작소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참여연대가 잘하고 있는데 우리가 할 필요가 없고 아름다운재단이 잘하고 있는데 우리가 할 필요가 없고. 또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연합이 있는데 환경문제를 우리가 집중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국가적 과제들에 접근할 때도 지역의 관점으로 고민해보자, 그래서 우리 사업은 거의 지역에 관계된 것들이거든요. 그런데 지역이 중앙정부나 이런 쪽과 연결이 안될 리가 없거든요. 우리 사회가 전환기적 과정을 어느정도 거치면서 과거 군사정부의 폐해랄까 유산을 상당히 극복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그리는 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봐요. 그런데 기존의 틀로 보면 그것의 이데올로기가 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아까 얘기했던 투명성, 책임성, 생태적인 관점, 문화예술, 지방적 관점, 또는 풀뿌리 혹은 시민사회적 관점, 이런 것들이 많이 떠올라요. 이러한 대안적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미래를 설계해내야 한다고 봅니다.

이남주 저는 그중에서 싱크탱크에 대한 연구프로젝트에 관심이 가더군요. DJ정부에서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비판적 지식인들이 정책논의에 참여할 기회가 증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깊이있는 공부보다는 소위 로드맵을 그리는 것 같은 단기적 일이 많다 보니 공부가 부족해진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요즘엔 싱크탱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7, 8년 동안 뜸하게 활동하던 소규모 연구그룹들이 활동을 재개하고 연구도 많이 활성화되는 것 같아요. 또 상황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어떻게 싱크탱크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는데, 미국의 포드재단(Ford Foundation)은 밖으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나눠주면서 다양한 싱크탱크들이나 NGO들에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들을 잘 구축하더라고요. 자기가 다 맡는 게 아니라…… 저는 희망제작소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구그룹들을 발굴해서 그런 것들을 꼭 다 희망제작소 안으로 통합하는 게 아니라 더 확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박원순 맞습니다. 저희가 지금 사무국 조직까지 합쳐서 60명이거든요. 이게 저희들 욕심대로 계속 커지면 아마 한국에서 공공의 이슈를 다루는 민간기관으로는, 예컨대 삼성경제연구소라든지 한두 군데 빼고 나면 규모로도 최고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즘 세상이라는 게 자기 조직 안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순 없잖아요. 어떻게 하면 파트너십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데, 그래서 지역에 희망제작소를 만들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아직은 안하고 있는 이유가…… 참여연대 때도 그랬는데요. 우리의 원칙은 우리가 전국을 다 망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역에도 이런 비슷한 단체가 생기도록 유도하거나 기존의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함께 해결해가는 방식으로 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늘 우리 연구원들에게 “유능한 연구원은 자기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연구자들을 조직해내고 이런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점에서는 남주씨 얘기와 일치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지금 희망제작소가 사실 그런 전통적 의미의 싱크탱크냐? 저도 헷갈리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러가지 복잡한 위상을 가지는 거예요. 우리는 컨썰팅펌(consulting firm)이기도 해요. 시민단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뭔가 말해놓고 아무것도 책임을 안 지는 조직은 아니거든요. 그다음에 싱크탱크 기능도 있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다 종합된, 또 다양한 기능을 행사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다른 단체들, 이렇게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조직들이 많이 생겨나는 게 저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예컨대 교수들 모임이라든지 이런 걸 싱크탱크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런 건 학회라든지 그런 조직이 되는 것 같고요. 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아무튼 희망제작소의 미래 운명은 하다 보니 조금씩 성격이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이남주 미국에서 보면 싱크탱크들을 언론에서 소개할 때 당파적(partisan), 비당파적(non-partisan), 이런 구분이나 규정을 해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 기준을 혹시 희망제작소에 적용하면……

박원순 저희들은 후자를 지향하죠. 왜냐하면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거나 특별한 관계를 가진 조직으로서는 한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보고요. 어디까지나 당파적으로 보면 중립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성원 개인의 입장이나 혹은 그야말로 표명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입장과 성향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또한 그것은 우리의 연구 결과물이나 리포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특정 정당과 일을 할 수는 없죠. 이번 대선에서도 우리가 특정 후보와 결합해서, 지방정부를 컨썰팅해주듯이 공약을 만들어준다고 하면 아주 신선한 것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그걸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 되니까요.

이남주 아까 희망제작소의 확산과 관련해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단체와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패권적인 방식들로 발전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한편으로 원순씨도 보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강준만씨의 칼럼에 박원순모델은 필요하지만 현재의 사업방식이 지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밖에도 희망제작소 등의 사업과 지방 NGO들의 사업 간에 갈등적 관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구요.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원순 세상은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말하자면 어떤 하나의 모델 또는 입장이 다 옳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대한민국이 참 좋다. 말하자면 제가 하는 일을 아무도 비판을 안하고 다 옳다고 하는 사회라면 죽은 사회 아닙니까? 그런 것처럼 저는 좀더 활발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내부에서도 그렇고 외부에서도 그렇고 저희들이 하는 게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어쨌든 본의 아니게 지역에도 영향력을 미치니까 그런 것들이 지역의 고유한 발전이나 자생적인 씨앗이랄까 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나 스스로 경계하고…… 컨썰팅할 때도 가능하면 그 지역의 단체들과 협력해서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고 나오더라도 그것이 지속가능성이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부족한 점이 많고 그런 비판도 있을 수 있죠.

이남주 워낙 영향력이 있으니까 한번 지방의 사업에 영향을 미치면 지방의 자원이 원순씨가 하는 사업으로 몰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는 것 같거든요.(웃음)

박원순 네. 그런데 저는 언제나 자원 부족 때문에 허덕이는데 다른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럴 수도 있겠죠. 예컨대 그전에도 녹색가게라든지‘아나바다’같은 운동이 있었는데,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에 생기니까 피해의식이랄까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고요. 저는 부분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 운동의 영역이 줄어들면 문제인데, 그로 인해서 오히려 다른 조직이 더 자극받고 그 영역이 더 커진다면 오히려 그런 도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아름다운가게가 성공하고 나서 녹색가게도 더 분발했고, 그다음에‘행복한 가게’라고 해서 전국에 10개가 생겼거든요. 미국의‘굿윌(Goodwill) 가게’도 한국에 상륙했고 구세군도 가게를 세개나 열었어요. 그리고 일반 기업들도 여기에 진출해서 압구정동에 가면 중고 명품가게가 많이 생겨났어요. 그런 식으로 재활용이라는 영역이 활성화됐다고 봐요. 다만 아름다운가게는 그걸 훨씬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비즈니스모델로 만들었던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떤 영역에서든 새로운 혁신과 모델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침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기가 죽거나 그러기보다는 그걸 통해서 또 대안을 만들어내고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남주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 사업과 관련해서 기업과의 관계가 많이 논란이 됐죠. 이미 이에 대해서는 NGO들이 정부를 포함한 기업과의 관계에서 긴장도 필요하지만 생산적 관계는 형성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기업 혹은 재벌과의 관계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민감한 문제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최근에 삼성 비자금사건 때문에 전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이 일지 않았습니까? 아름다운재단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 기업들과 사업을 해본 경험들이 있으실 텐데 그런 사업들을 평가해보면 어떨까요?

 

시민운동의 기업에 대한 견제와 보완관계

 

박원순 뭐든지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사실 기업들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하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문제가 있었고요, 또 하나는 분식회계 같은 부정한 행태들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버넌스의 문제는 굉장히 경각심이 많아지고,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기업들도 많이 있지만 지주회사로 변하기도 하고 또 차후에는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대기업의 사례도 한둘씩 생기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분식도 몇번 경을 칠 일들이 생겼잖아요. 재벌회장들이 감옥도 가고 지금도 그렇고요. 참여연대 때문에 아예 기업이 붕괴된 경우도 있죠. 말하자면 신동아의 경우는 아예 해체되었죠. 이런 값비싼 경험을 거치면서 지금은 상대적으로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삼성사태는 대표적인 우리나라 재벌기업이 아직도 얼마나 전근대적 방식으로 경영을 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지만, 동시에 그런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은 어떤 식으로든 파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불법 정치자금이 지금도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과거처럼 차떼기로 가는 건 엄두를 내기 힘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까 사회공헌 쪽에 눈을 많이 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전경련 조사인가를 보면 지금 1조 이상이 사회공헌 쪽으로 들어가고 있고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체로 불우이웃돕기라든지 굉장히 단편적인 일들을 많이 지원해온 것 같아요.

 

ⓒ이영균

ⓒ이영균

 

그래서 요새 제가 강의하고 다니며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전략적 기부(strategic giving)예요. 쓴 돈이 사회변화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래야만 나중에 기업이미지도 좋아지게 된다. 누구에게 1백억을 줘서 잠깐 언론에 보도됐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그 돈을 효과적으로 운용해서 사회에 변화를 줄 것인가? 이런 전략적인 고민들이 기업에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정경유착시대에서 전환기적 과정을 거치며 기업들이 사회공헌의 필요성을 느끼고 거기에 상당히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면, 지금은 더 나아가서 그것이 사회변화로 이어지는 전략적 기부의 형태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유도해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요. 이게 세계적인 흐름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한국기업과 시민사회의 결합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참여연대 같은 경우는 견제기능이 우선이고, 그런 기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사회와 기업의 변화·발전에 따라 아름다운재단을 포함한 많은 NGO들이 기업과의 관계에서 보완적 기능, 즉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다고 봐요.

이남주 제 인상으로는 지난번에 삼성이나 현대자동차에서 낸 사회공헌기금도 그렇지만, 상당부분은 제도나 사회적 압력 때문에 방어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이번 삼성사태에서 보듯이 재벌들의 탈법행위도 여전하구요. 기업의 사회기부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재벌이나 기업가 들이 이런 사회공헌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또 그들이 변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보수적인 태도, 세상을 보는 눈이나 인생관이 보수적으로 굳어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고……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 어떤지요?

박원순 그래서 제가 단계적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저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과연 뭔가, 우리가 이루어온 자본주의가 과연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자본주의인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거든요. 아직도 성장단계에 있는 천민적 자본주의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이번에 한국에 와서 굉장한 주목을 받은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이 빌 게이츠와 토론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저보다 더한 액티비스트예요. 정부가 세금정책을 어떻게 이렇게 미온적으로 하느냐? 나 같은 사람만 덕을 보게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된 정부냐 하고 비판도 하고, 아버지가 부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부자가 되는 이런 사회는 미국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라는 얘기도 했고요. 그게 얼마전 KBS에 한두시간 방송됐어요.

예컨대 그런 사람이 와서 강연도 하고 그런 것들에 계속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번에 삼성이나 현대는 그렇게 원치 않던 돈을 내놓은 거잖아요. 그렇지만 사실 국민적인 효과가 별로 없었어요. 왜냐하면 판결에 의해서나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내놓은 거니까. 그런 게 아니고 정말 선의로 미리 내놓았으면 찬사와 박수를 받았겠죠. 그런데 아무리 몇천억을 내놓아도 뒤에서 탈법행위를 일삼고 불법을 저지른다면 그 모든 것이 거짓이 되고 사기가 되는 겁니다. 근본과 체질을 바꾸어야지 화장만 고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걸 보면서 저는 많은 기업들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요새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한국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가입한 기업들, 그리고 윤리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경영인들도 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좋은 경영자들의 모임이 자꾸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참여연대처럼 부정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부각시키고 매를 때려서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그들이 좋게 변할 수 있도록 모델을 자꾸 만들어나가는 것도 필요해요. 둘이 함께 감으로써 사회가 균형있게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박한 한반도의 격변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남주 화제를 좀 돌려보겠습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도 있었고 북미관계도 빠르게 변화하면서 통일과 평화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희망제작소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이나 사업계획들을 보면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것들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독일 방문 후에 쓰신 책에는 동독지역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생각하신 것들도 밝혀놓으셨는데, 희망제작소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왜 관심을 적게 가지는 것처럼 보일까요?

박원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그것까지 하면 좋겠지만 여력도 없고요. 지금 벌여놓은 것만도 다 못하고 있는데 그것마저 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제가 동독지역을 한 2주 정도 돌면서 굉장히 깊은 인터뷰를 했어요. 역시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렇기는 한데 제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해서 다 취급할 수는 없잖아요. 그 이유뿐입니다. 그리고 통일은 상대적으로 여러 통일운동단체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이남주 제 생각에는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미시적이고 실사구시적인 대안들이 필요하고, 또 한편으로는 재정이라든지 법제도의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 되어가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한데 통일운동진영이라고 해도 사실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준비가 잘 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희망제작소가 적극적으로 고민할 사안으로 보이는데요.

박원순 그건 남주씨가 하시면 되죠.(웃음) 말씀하셨듯이 서독에서는 통일 전에 나름대로 준비가 있었잖아요. 헌법상에 서독 법제도의 효력이 통일이 되더라도 동독지역에 미치지 않는 걸로 했기 때문에 그나마 충격이 덜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여파가 서독의 경제나 동독의 경제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전혀 그런 준비가 없고, 우리 헌법과 법령에 따르면 통일되는 순간 북한 주민은 전부 대한민국 주민이 되는 거죠. 아니 지금도 법적으로는 대한민국 주민입니다. 이런 법제가 현실입니다.

이남주 지금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원순 10년 이내에 고등학생들이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연해주나 시베리아철도를 거쳐서 모스끄바나 프랑크푸르트로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 온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제가 수정을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5년 이내로 해야 할 것 같아요.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잖아요. 심지어 공화당이 되더라도 기존 부시정부의 정책과는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고, 그 핵심은 결국 북미관계의 정상화 내지 상당한 관계의 진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벌써 8년 전 클린턴 행정부에서 올브라이트(M. Albright)가 북을 방문하고…… 이 시기에 아마 고어(A. Gore)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많은 거거든요. 어찌됐든 미국의 영향력이 크니까 그렇게 되면 북일관계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있고, 우리가 안 갈 수 있나요? 저는 한반도에서는 정말 실질적인 해빙, 혁명적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경우에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또 민간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나름의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저도 그런 걸 한번 해보고 싶은데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아서……(웃음)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따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남북관계나 동북아정세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지만, 향후 남북관계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내부의 과제를 해결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가 협상을 통한 해결에 성원을 보내는 것 이외에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답변도 이러한 현실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그렇지만 다른 이야깃거리도 남아 있어 앞으로 적극적으로 함께 고민해보자는 정도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그의 말대로‘분단체제’라는 문제의식이 이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 대안과 만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모두가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시민운동의 정치참여와 남겨진 숙제

 

이남주 그럼 정치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시민운동가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칙적으로는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말씀하신 듯한데 지금까지의 정치참여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박원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국의 시민운동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어요. 그것은 워낙 다른 쪽이 부패한 데 비해서 헌신적 시민운동 집단이 그 시대의 아젠다를 가장 먼저 채택해서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그 주장들이 끊임없이 받아들여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한편으로 이만큼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정책만 흡수된 게 아니라 동시에 사람도 끊임없이 흡수당해왔죠. 참여연대의 경우에는 그래도 적은 편이지만 몇명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었고요. 시민단체를 주도하던 많은 분들이 정부 쪽으로 들어갔죠. 그게 개인적인 변절이라기보다는, 거기에 가서 또 그만큼의 역할을 알게 모르게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대신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와 아젠다로 무장해서 계속적으로 우리 사회가 더 바람직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바뀌어가는 데 기여해야 하는데, 그게 힘에 부치기 시작한 거죠. 그것은 기존의 시민운동가가 정부에 수용됐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새로운 운동가들의 배출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또다른 대안으로 시민운동가에 의한 시민운동을 넘어 주부나 은퇴자나 청년 들의 시민운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과거와 같이 투철한 이념이나 사명감으로 뭉쳐진 시민운동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가피한 일이지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굉장히 좋은 시기거든요. 청년실업에 대한 발상을 달리해서 그들을 NPO로, 블루오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모아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개인적인 결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건 아니지요. 새로운 사람들로 충원해내는 씨스템이랄까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남주 그동안 정치에 대한 제안을 많이 받으셨고 지금은 어쨌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정리된 상태인데,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면 내가 정치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나요?

박원순 아마 그쪽으로 옮겨가는 사람들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민운동이 참 피곤하고 힘듭니다. 제가 앞에도 비슷한 표현을 썼습니다만, 완전히 황무지를 가는 느낌이에요. 농사를 지을 때 쟁기질을 하잖아요? 어렸을 때 쟁기 위에 나를 앉히고 아버님이 소를 모는데, 아이를 태워야 깊이 갈리거든요, 돌이 하나 걸리면 덜커덩 하는데 그게 몸에 전해져와요. 그런 느낌이죠. 사실 이게 개인에게는 희생과 헌신과 열정의 길입니다. 그리고 생각에 따라서는 그렇게 해서 얻는 결과보다 오히려 정부에 들어가거나 국회의원이 되면 훨씬 더 영향을 미칠 수 있죠. 그래서 끊임없이 그런 유혹들이 존재한다고 보고요.

저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으니까 속으로야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봤죠. 하지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디 토론회에 갔는데 방청석에 사람이 몇명 없단 말이에요. 나도 다른 데로 또 가야 하는데 나마저 일어서면 모두들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차마 못 일어서고 계속 전전긍긍하는 그런 상황 말이죠. 제가 그런 성격이거든요.(웃음) 또 개인적으로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 감히 간다는 생각을 못해봤죠.

이남주 진지하게 고려해보지는 않으셨군요.(웃음) 지금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두달도 안 남은 상태입니다. 아직은 매우 유동적이지만 어쨌든 각당의 후보도 정해지고 어떤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당 진영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화제가 되는 게 노무현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입니다. 겉으로는 친노/반노로 표현되지만 내용적인 측면을 보면 노무현정부가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잘못했다고 하는 두가지 경향들이 계속 균열하고 충돌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원순씨도 일전에 통합신당 후보자들과 인터뷰를 하시면서 노무현정부가 몇가지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잘못한 것이 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정부가 그동안 국민들의 희망을 저버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본질적인 문제가 어떤 것이고, 그걸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이 정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정부,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쉽다

 

박원순 사실은 노무현정부가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도 민주주의를 더 강화하고 확장·심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집권하고 있을 때는 다들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죠. 우리가 투명성 얘기를 했잖아요? 기록의 문화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진전이 있었어요. 그다음에 정치자금이라든지 권위주의의 혁파라든지…… 검찰만 보더라도 과거 어느 시기에도 대통령에게 이렇게 대들고 그럴 수가 없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저희들은 욕심이 크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존 정부와 차별성이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차별성이 없었던 것, 다시 말해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봐요.

노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잖아요. 그래서 좀더 생태적이고 좀더 문화예술적이고 좀더 시민사회적이고, 경제에서도 좀더 중소기업 중심의 창의적인 시대를 여는…… 이런 부분에서는 노대통령 개인과 그 정부가 가진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컨대 지방분권 같은 것도 많은 생각과 실천을 했지만, 정교한 디자인 같은 게 없었다는 거죠. 혁신도시라고 해서 서울에 있는 정부기관들을 지역으로 내몰았잖아요. 그런데 이건 강제적인 외과수술이거든요. 그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지방분권이 되고 지역경제가 살고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되도록 착근할 수 있는가? 저는 그렇진 않다고 보거든요. 저는 그렇게 대대적인 조치나 큰 돈이 없어도 굉장히 다양한 수단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서툴고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이렇게 보는 거죠.

이남주 제가 보기에는 내년까지도 이런 게 계속 문제가 될 것 같아요. 겉으로는 친노/반노 프레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지난 5년의 참여정부 혹은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와 민주세력들이 어떻게 단결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도 항상 제기될 것 같은데, 진보개혁세력이 친노/반노의 프레임을 넘어서서 미래지향적 세력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원순 정치인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만약에 노대통령 입장이라면‘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본인이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후배세대는 자기보다 더 잘해야죠. 자기가 떠나온 친정이 잘되어야 자기가 큰소리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와 다르게 말하고 자기를 비판하는 것에 저렇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최근에 몇권의 책을 사왔는데요.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기빙』(Giving)이라는 책이에요. 이 사람이 요새 글로벌 이니셔티브(global initiative)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미 카터(Jimmy Carter)의 책도 하나 나왔어요. 이렇게 저는 오히려 포스트 프레지던씨(post-presidency),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 어떻게 평범한 시민으로 복귀해서 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가? 굉장히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한번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음으로 국정이라는 게 굉장히 다양한 측면이 있고 그걸 분석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잖아요. 전악(全惡)이나 전선(全善)이 있을 수 있나요? 잘한 부분이 있고 잘못한 부분이 있고, 또 잘된 것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고, 또 강조한 점이 있고 소홀한 점이 있고 여러가지 있을 텐데, 저는 다음 정부를 고민하는 쪽이라면 이어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볼 때 어쨌든 연속성이라는 것도 신선한 것 중 하나라는 겁니다. 이 정부가 100%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잘한 것도 있단 말입니다. 그건 이어받겠다고 하는 것, 그게 현명한, 성숙한 리더의 자세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게 있는 반면에 더 업그레이드하고 자신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있겠죠. 그렇게 좀더 성숙된 자세로 보고 말하고 국민들도 그걸 그렇게 바라봐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작년 인터뷰에서는 대선에서의 역할과 관련해서 감성적인 논쟁보다는 정책 중심의 경쟁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최근의 인터뷰에서는 현재 희망제작소의 준비상황을 고려하면 대선에서 어떤 역할도 하기 어렵다고 하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시민사회 전체에도 이러한 고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원순 저 개인적으로나 희망제작소 입장에서 보면 아직 그렇죠. 저희들이 아직 국정 전반에 걸쳐 대안을 제시할 만큼 역량이 충분하지 않고요. 또 하나는 제가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아서 뭘 말하기가 적절치 않은 상황이 됐어요. 그러니 다음 5년을 기다려서 그때는 훨씬 더 활발한 활동을 해야죠. 그다음에, 시민운동에서 대선연대가 꾸려져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참여연대가 이런 큰 이슈에서도 폭발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굉장히 유연한 그래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데 있거든요. 그래서 신뢰가 생겨야 아주 센 소리를 해도 저것도 바른 소리구나 하고 받아들이지, 그렇지 않고 저기는 맨날 시끄러운 소리만 하는 데라고 생각하면 영향력이 없어져요. 그래서 저는 시민사회가 좀더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대중을 자기의 우호세력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기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거부했다가는 상당히 득표에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제가 지역을 다녀보면 아직도 그런 부분에서는 한참 못 미쳐요. 우리가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만 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훨씬 더 대중적인 조직화운동을 현장에서부터, 뿌리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사회가 되어야

 

이남주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중요시하는 쟁점이나 이슈 같은 게 있을 텐데, 어떤 것들입니까?

박원순 여러가지가 있겠죠. 우선 경제적 논쟁도 있는데, 사실 저는 경제라는 걸 경제로 풀면 절대로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로 우리 경제를 강화하고 업그레이드하려면 경제 외적인, 예를 들어서 생태적인,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문화예술적인 디자인, 이런 걸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새 토요따자동차가 뭘로 성공하고 있습니까? 결국은 하이브리드차라든지 디자인 혁신 같은 것들이거든요. 저는 이렇게 상상력이 커져야 기업도 새로운 차원으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선산업을 예로 들면 이번에 STX가 유럽 최고의 크루즈선 제작사를 인수했고요, 삼성중공업은 크루즈사업에 진출했어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훨씬 더 정교한 디자인이 필요한 거예요. 이렇게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산업이 30년 후에는 브라질, 인도, 중국, 베트남 등으로 옮겨갈 거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우리는 더 부가가치가 높고 기술·자본집약도가 높은 산업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생각하지 않았던 써비스업 같은 부문에 훨씬 더 체계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외국에 가면 그런 게 많아요. 에컨대 스웨덴의 DIY(do-it-yourself) 가구회사 이케아(IKEA) 같은 것,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요, 삼성전자라든지 재벌그룹만 있지. 그리고 강소(强小)기업 같은 게 사실 우리나라에도 있긴 있지만, 독일 같은 나라보다는 훨씬 적죠. 이런 게 논쟁이 됐으면 좋겠는데 그냥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고 하면 통하는 분위기가 아쉬워요.

이남주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대선후보들에게 어떤 느낌을 받으시는지요? 지지나 반대, 이런 걸 떠나서 평가를 한번 해주시죠.

박원순 지난번에 비해서 정책적 논쟁이 훨씬 많아졌어요. 저는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지금만 보고 얘기하는데 과거와 비교해서 보면 그렇지요. 지난번 대선 때도 제가 패널로 많이 나갔거든요.(웃음) 그때만 해도 한시간에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다 묻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정책을 계속 발표하고 그러잖아요? 어쨌든 조직선거보다는 정책선거로 과거보다 많이 진전된 거죠. 그렇지만 그게 훨씬 미세해져야 차별성이 생기고 그래야 투표행태도 근대화되고 합리화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아직 그런 징후는 충분치 않다고 봅니다.

이남주 그간 인터뷰해보신 모든 후보들에게서 그런 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겁니까?

박원순 아뇨. 꼭 그런 건 아닌데…… 전보다는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더라고요.(웃음) 어쨌든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그건 분명한데, 문제는 생태면 생태, 경제면 경제로 들어가서 충분한 논쟁이 벌어지고 그 차이점이 부각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아니었죠. 예컨대 몇퍼센트 성장하겠다는 주장들이 대세예요.

이남주 지난 9월에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실 때는 오연호 기자가 문국현 후보와 관련된 문제를 많이 질문했던데, 거기에 대답하신 걸 보니까 그래도 후보들을 놓고 개인적 선호는 있다고 하셨어요. 그 점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없으세요?

박원순 그건 제가 밝히기가 좀 그렇죠. 개인적 선호가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남주 그런데 여권에서는 후보단일화가 될까요?

박원순 어쨌든 단일화되어야 하고…… 근데 참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정동영 후보나 문국현 후보는 모두 각각의 한계가 있어서 합쳐지더라도 과연 얼마나 큰 경쟁력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저는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대통령을 잘 뽑는 게 최고의 화두이기는 하지만, 대통령 한사람에 우리나라의 운명을 다 갖다 바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대선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고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저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 사회가 건강한 균형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사회, 그런 사회체제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들도 하고 있습니다.

이남주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대선이 마무리되고 난 다음에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랄까 시민사회적 과제로는 어떤 게 있을지 창비 독자들에게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원순 사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 것인가에 따라 향후의 과제에서 굉장한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만약에 한나라당이 승리한다면 아마 정부와의 긴장이 높아지고 대정부 견제가 심해지겠죠.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일부러 그런 정치적 성향을 보여서가 아니라 어쨌든 현정부와는 다른, 때론 적대적인 관계도 될 수 있으니까 역할도 많이 달라지겠죠. 만약에 이른바 범여권 쪽이 당선되면 저는 노무현정부에서 겪었던 굉장히 불안한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요. 분명히 제대로 하지 못해서 비판할 대목이 많은데 실제로 그런 역할은 수행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 된다고 보거든요.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운 구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쪽이든지 쉽지 않은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봐요. 어찌됐든 좀더 깊이있는 고민과 대안적 노력을 해야 할 시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정리하는 동안에 이회창씨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등 대선정국은 또 한차례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고려하면 아마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이에 버금가는 사건들을 한두차례 겪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할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에피소드적 사건들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복잡한 정치상황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가 이러한 지혜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인터뷰 전에는 항상 바쁜 그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커다란 고민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 이상으로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시민운동의 문제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은 최근 그의 화려한 변신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쉬운 말로 표현되었지만 시민운동의 중점 이동, 기업과의 관계, 노무현정부에 대한 평가 등 진보개혁세력에는 적지 않은 논쟁거리가 될 아이디어와 입장도 발견할 수 있다. 모쪼록 이 인터뷰가 지난 상황에 대한 정리보다는 발전적 토론의 계기로 읽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