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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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李宗郁

1945년 경북 예천 출생. 197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꽃샘추위』가 있음. mayolee@dreamwiz.com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을 맞은 이종욱에게

 

 

꽤 너끈한 그림자 만들어주다가

무성한 잎 속에 징그러운 벌레까지 키우다가

어느새

혹한에 이파리 몇낱 끌어안고

까치둥지 여전히 키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알겠지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만족이 따뜻함이

사랑이 무엇인지

나눔이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비로소

느끼겠지

짜릿한 생기를

어차피 후회할 것은 없다는 것을

남겨야 할 것은 없다는 것을

 

무척 궁금하지

나에게도

회한이

서러움이 있는지

나는 그저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가 좋고

이 마을의 적막, 짙은 어둠마저 좋다

개천의 물안개

홀쭉해지고 키 작아진 갈대들이 정겹다

인적에 놀라 날아오르는 산비둘기들이

쫑쫑쫑 겁없이 찻길을 가로지르는 꿩들이

앞산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일가붙이들이 미덥다

그렇지 않은가

 

정원에서 키울 나무가 아니라고

나를 베어버리려 했지 너는

무엇을 길러본 적 있니

누구에게 빈자리 내어준 적 있니

소갈머리를 베어내고 또 무엇을 더 베어내야 할지 모르는

너는 어디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인간이냐

‘휴업중인 시인’이라는데

나는 태어나면서 시인인 것을

 

지그시 만져보라 나를

거친 껍질을 쓰다듬어보라

그 밑의 버짐을

흉터 많은 몸통을

슬며시 끌어안아보라

 

 

 

살고 싶다

 

 

죽을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죽음이 코앞에 닥치지도 않았는데

살고 싶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미처 못한 일을 빨리 하고 싶다

가지 못한 곳을 어서 가고 싶다

깊이 사귀어야 할 책이 겁나게 많다

 

그러고 보니 쉰도 못 넘겼다

종민이, 조민기, 강정문, 이의직 부장, 그리고 안종필 위원장

도연이, 남주, 그리고 채광석

언뜻언뜻 눈앞에서 천연히 걸어오고

때로는 느닷없이 곁에서 어깨 툭 치는데

안타까움도 절망도

서글픔과 회한도 묻어 있지 않은 미소 짓는데

살아 있음이 버거운 빚인데

지는 꽃이 피는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더라도

살고 싶다

 

더이상 조시를 쓰고 싶지 않다

마음속으로라도 나를 위해 조시를 쓰게 하고 싶지 않다

 

위를 잘라내고

어디를 또 잘라낼지라도

담배 한모금으로

소주 한잔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 바라보고

욕하고 싶은 사람 욕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