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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 건축대학장. 저서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등이 있음. archiban@archiban.co.kr

 

 

1. 들어가며

 

1967~69년 2년 동안 밤을 새워가며 쓰고 그린 「여의도 한강연안 개발계획」 책자를 분실했다가 최근에 청계천 헌책방에서 찾았다. 40년 전 나의 한반도 구상을 다시 읽으면서 분단체제가 한반도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새삼 실감하였다. 연전에 출간한 졸저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창비 2005)에서는 분단체제와 동아시아 전체의 변화를 의식하고 새로운 공간전략을 제시하고자 했으나 정작 한반도의 북녘에 대해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9월‘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란 주제로 제29차 세교포럼(세교연구소, 2007.9.14)에서 발표한 내용에‘흔들리는 분단체제’를 예언한 백낙청(白樂晴) 교수와 남북관계 전문가 서동만(徐東晩) 교수를 비롯한 세교연구소 회원들의 논평과 윤여준(尹汝寯) 전 환경부장관, 심재원(沈載元) 전 개성공단 및 케도(KEDO) 단장 등 초대손님의 의견을 더하여 「흔들리는 분단체제와 파동의 한반도」라는 글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 김영삼(金英三) 부산발전연구원장이‘수도권 도시회랑’과‘낙동강 운하도시’안을 구체화해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렇게 머릿속의 구상이 실제 프로젝트가 되고 보니 단순히 세교포럼 발표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공동사업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고, 도시사업은 대부분 수도권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한반도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게 될 경부운하, 세칭 한반도 대운하는 나의 남북한 대운하와는 발상부터 다른 일이지만, 그 기종점(起終點)인 낙동강 하구도시안을 제안하는 입장이다 보니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를 선언적으로 표명하는 것에만 그칠 수도 없게 되었다. 이 글은 이런 배경하에서 씌어진 것이다.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내면서도 그랬지만 공간형식을 언어형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한다. 구상중인 도시설계를 글로 쓰는 일은 작곡중인 음악을 설명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이다. 도시공간은 언어형식이 아니라 시각형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교포럼 발표에서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파동의 한반도라고 은유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는 한반도가 과거와 미래의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파동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구려가 평양과 만주를, 신라가 서울과 동남해안을, 백제가 부여와 서남해안을 아우르던 때가 한반도의 에너지가 최고이던 시기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한반도의 기반은 가야를 병합한 신라가 고구려의 동해안 거점인 원산과 백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여 바다를 장악한 뒤 당나라를 끌어들여 불완전하지만 삼국통일을 이룸으로써 마련되었다. 통일신라 이후 1300년을 하나의 정치·문화공동체로 지속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원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중국과 미국, 소련과 일본의 완충지대로 분단된 60년 동안, 북은 바다와 차단되고 남은 대륙과 단절된 채 상이한 길을 걸었다.

남한이 북한과의 대치 한가운데서도 이만한 경제대국이 된 것은 방패 역할을 맡은 북한과 달리 개방의 역할을 맡은 덕분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선이 된 북한은 세계와 차단되어 고립된 데 비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남한은 냉전시대는 물론 세계화시대에도 지속적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물적 배경을 얻었던 것이다.

현재 남한의 철강, 조선, 반도체는 세계 최강이고 남한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프랑스, 이딸리아에 버금가지만 북한은 경제사정이 심각하다. “남북관계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분단사회를 제대로 넘어선 신세계가 한반도에 자리잡으려면”(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삼국시대 한반도가 가졌던 역동적 에너지를 남북한이 함께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재현해내어 7세기의 삼국통일 같은 부분통합이 아닌 한반도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핵심이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인데,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둘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사업으로 봐야 한다.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파동의 한반도라 말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삼국시대같이 공존하면서도 각자의 내부 에너지를 키우고 대외적으로 강력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남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에너지와 물과 인구 문제는 이러한 상황 인식하에서만 특단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그 답이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인 것이다.

 

 

2. 수도권 메트로폴리스와 도시회랑

 

분단체제로 야기된 남한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서울 수도권 일극집중과 그에 따른 양극화 및 불균형 발전이다. 수도권의 과잉집중과 비효율은 남한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수도권 해법을 남한이 아니라 1천년 넘게 한반도의 수도였던 개성·서울과 7세기 삼국시대의 중심도시였던 평양·서울·공주를 포함한 대수도권에서 찾아야 한다.

메트로폴리스는 대도시가 중소도시와 농촌을 종속시킨 거대도시와 달리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군소도시가 상생하는 어번클러스터(urban cluster)이다. 오늘의 세계는 서구열강이 아니라 런던·빠리·뉴욕·토오꾜오·뻬이징·샹하이 등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환황해경제권과 환동해경제권의 다섯 메트로폴리스

환황해경제권과 환동해경제권의 다섯 메트로폴리스

 

서울 수도권은 경제로는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불완전한 미완의 메트로폴리스다. 다른 메트로폴리스와의 경쟁에서는 약하고 한반도 안에서는 주변도시와 지방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문제적인 메트로폴리스인 것이다. 뻬이징과 톈진 대도시권은 세계도시와 경쟁하면서 농촌과 도시가 함께 가는 지속발전 가능한 신도시공동체 계획을 시작하고 있으며, 토오꾜오도 한때 수도이전을 논의하고 수도권 규제를 강화했으나 지금은 토오꾜오 중심부의 과잉인프라를 상부구조화하고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해안과 내륙을 고속교통망으로 엮는‘복수의 부챗살 메트로폴리스’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샹하이도 세계 물류를 장강(長江)으로 끌어들여 샹하이가 6억 장강공동체 메트로폴리스의 용 머리가 되게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뻬이징, 토오꾜오, 샹하이가 메트로폴리스의 길로 가고 있는데 남한만의 세상을 꿈꾸는 성장론자들은 수도권 집중을 더 강화하는 경부대운하로 대중을 현혹하고 있으며, 수도권 규제의 덫에 걸린 경기·서울·인천은 각자 제 살길만 찾고 있다. 그런데 뻬이징과 샹하이 도시권이 앞서가는 것 같지만 이들의 도시 경제력은 우리 수도권의 반밖에 안된다. 수도권의 문제는 서울에 핵심기능이 집중되어 서울만한 인구와 경제력을 가진 경기도가 서울에 종속되고 인천경제특구도 서울의 베드타운이 되어가고 있는 데 있다. 수도권이 사대문 안과 강남의 중심지역에 종속된 상황에서는 뻬이징, 토오꾜오, 샹하이의 3천만 메트로폴리스와의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인 나라의 주산업은 써비스산업과 창조산업이고 이들 산업은 메트로폴리스와 주변지역에서 일어난다. 맨해튼의 부자들 반 이상이 초고층 건축군의 계곡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보스턴 교외 128번 고속도로 주변에서 씰리콘밸리 못지않은 창조산업이 번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구가 1천만 이상이면 도시 중심부에 과부하가 생기고 변두리와 문제구역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반도 인프라의 근간은 식민지하에서 일본의 대륙진출 라인으로 건설되었고 분단 60년 동안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공항과 항만, 국도와 고속도로, 철도와 고속철도 모두가 서울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국가 핵심기능 대부분이 서울에 집중한 것이 문제다.

한반도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경부선·경인선·경의선·경원선·호남선 모두가 서울과 부산·인천·신의주·원산·목포항을 연결한 도시간 인프라이고 분단체제하에서 만들어진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국제공항·항만·철도·고속도로·고속철도의 양에 있어서는 서울 수도권 어번인프라가 세계도시인 뉴욕, 토오꾜오, 런던보다 앞선다. 그러나 지나친 서울 편중으로 세계 물동량의 가장 큰 흐름이 지나는 부산도 서울에 예속되고 동북아 허브공항 인천도 서울의 변방도시가 되었다. 해방후 60년을 가리켜 성공한 역사라 말하지만 그 기간은 국가 하드웨어가 서울에 집중되어 국가의 균형이 무너진 세월임을 알아야 한다. 세계 최강의 산업도시인 포항·울산·구미조차 인구와 자본과 정보가 서울에 매여 있다. 포항·울산·구미의 세계기업인 포스코·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삼성전자 본사가 모두 서울에 있을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상황은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강을 중심가로로 한 1969년「여의도 한강 마스터플랜」

한강을 중심가로로 한 1969년「여의도 한강 마스터플랜」

 

도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화하는 단계에서 대부분의 기능이 서울로 집중되어 고속도로와 철도, 국도의 유기적 집합이 이루어지지 못한 수도권의 경쟁력과 삶의 질을 지속가능케 하려면 수도권의 제1공간인 주거도시와 제2공간인 직업도시를 조화시키는 도시회랑(都市回廊)을 만들어야 한다.

 

 

3. 수도권 도시회랑 구상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수도권 신도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문제였다. 1789년 왕권(王權)의 군사도시로 성벽과 문루만 건설된 신도시 화성(수원) 이후 180년 만에 만든 성남·광명·과천·시화·안산 등 수도권 신도시는 문제가 되는 인구와 산업기능을 서울 바깥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후 20년 만에 다시 만든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다섯 신도시는 서울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거도시다. 또다시 20년 만에 짓고 있는 교하·양촌·동탄·송파·광교 신도시도 서울 특정지역의 부동산 거품을 해결하겠다고 만드는 주거도시다.

수도권 신도시 모두가 서울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신도시는 서울에 목을 맨 비자립적 식민도시가 되어 경기도는 서울 메트로폴리스의 변방지대이면서 서울과 같은 규제를 받는 억울한 수도권 외곽지대가 되어버렸다.

서울 강남과 판교·분당에서 용인·화성까지 100km에 걸쳐 비자립적 주거도시가 들어서 서울과 이 도시들 간의 어번인프라는 종일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수도권 도시회랑은 주거도시로 전락한 수도권 신도시군을 일터와 집터가 함께하는 완전도시로 만드는 계획이다. 도시공간의 기본은 잠자는 제1공간과 일하는 제2공간의 조화에 있는데 현재 수도권의 제2공간은 서울에, 제1공간은 경기도 사방에 흩어져 있다. 경기도의 주거도시를 완전도시화하려면 신도시군 사이에 서울에 가지 않고도 일하며 살 수 있는 제2공간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뉴 어번인프라가 도시회랑이다.

도시회랑은 주거도시군 사이에 제2공간도시를 특단의 교통방식으로 연결한 어번갤러리(urban gallery)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는 도시회랑이 될 수 없다. 제1공간도시인 주거도시 사이에 제2공간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운하와 경전철로 서울 도시회랑까지 잇는 수도권 도시회랑이 수도권이 가야 할 길이다.

수도권 신도시가 줄지어 선 분당·의왕·죽전·용인 사이의 수원 광교신도시와 평택 국제화도시를 운하와 순환철도가 결합한 뉴 어번인프라의 제2공간도시로 만들어 평택항과 한강으로 연결하고, 이를 평양과 개성과 공주까지 확대하는 수도권 도시회랑을 만들면 서울 수도권이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가 될 수 있다.

 

수도권 도시회랑 개념도

수도권 도시회랑 개념도

 

베드타운인 제1공간도시와 대학, 공단, 오피스군으로 이루어진 제2공간도시가 수로와 궤도교통으로 모(母)도시와 대응케 하는 도시 하부구조와 상부구조가 결합한 도시형식이 도시회랑인 것이다. 현재의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는 도시 외곽을 통과하지만 도시회랑의 운하는 도시와 하나가 된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제2공간도시의 핵심은 대학(U) 중심의 산학연클러스터, 제조업과 써비스산업이 융합된 모던 팩토리(F), 업무공간인 오피스(O)로 이루어진 도시의 U.F.O다.

각각 5백만 인구가 한강을 중심으로 마주하고 있는 서울과 다시 1천만 인구가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를 운하와 궤도교통이 선형도시를 이루는 도시회랑으로 재조직하려면 수원과 평택항을 잇는 도시운하가 한강에 닿아 수도권과 서울을 아우르게 하고 경의선, 경원선으로 북에 이르게 하는 대수도권 도시회랑으로 확대해야 한다.

서울의 부동산 파국은 핵심지역의 토지 부족에서 연유한 것이다. 토오꾜오와 서울을 이용 가능한 토지밀도로 비교해보면, 서울의 토지가 토오꾜오보다 비싼 것이 정상이다.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강남 땅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서울과 경기도 외곽 사이에 창조적 신산업의 자립도시군을 만들어 서울 외곽의 주거도시군과 수도권 도시회랑을 이루게 하고, 이를 수도권 1번가로인 한강에 닿게 하여 수도권 제1공간과 제2공간을 조직화하면 부동산 파국도 정상화할 수 있다. 한강을 지나는 수도권 철도라인과 수도권 외곽도시를 운하와 궤도교통으로 집합하여 수도권 도시회랑을 만들면 수도권 사방이 서울의 외곽이 아니라 수도권의 핵심지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세계의 운하도시모델과 의미

 

1969년 「여의도 한강 마스터플랜」, 1995년 「꿈꾸는 한강」, 2000년 「한강과 서해안을 잇는 수도권 비전플랜」, 2002년 「새만금 바다도시」, 2006년 「새만금-금강운하 프로젝트」를 통해 한반도 해안과 내륙을 잇는 운하도시계획안을 발표했으나 지식인들조차 대부분 무관심하였다. 그런 와중에 난데없이 정치권에서‘한반도 대운하’가 대선공약이 되었다.

우리는 운하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현재 정치권의 대운하 제안이 갖는 폐단의 하나는 모든 운하 구상을 외면 또는 폄하하는 풍조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운하라는 인프라가 갖는 정확한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하는 본래 철도와 고속도로가 없던 시대의 지역간 인프라다. 철도와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운하는 물류기능보다 도시간 소통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점은 『창작과비평』 2007년 봄호 도전인터뷰(김석철-이일영)에서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즉, “운하는 운하변의 중소도시와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인프라입니다. 운하계획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 지방의 중소도시들과 대도시가 공존공영하는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 그런 준비 없이 경부운하 운운하는 것은 영남이나 충청내륙권에 개발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에 불과하지요. 강이 바다로 가게 하는 것이 운하를 만드는 목적이고, 강에 배가 다니도록 하여 도농복합체를 이루게 하는 것이 운하의 기능입니다. 운하로 연결된 도농복합체가 대도시 못지않은 경쟁력과 삶의 질을 갖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수나라 양제 때 만든 뻬이징과 항저우를 연결하는 경항운하(京杭運河)는 중국의 남과 북을 연결한 세계 최대의 운하다. 뻬이징-샹하이간 고속도로·고속철도 건설과 함께 지금 중국이 수 양제 때의 경항운하를 복원하는 까닭은 운하가 남과 북의 도시와 농촌을 하나가 되게 하는 물길이면서, 물이 부족한 북부와 물이 남는 남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강이나 호수와 함께 이어진 운하는 수로(水路)와 수자원(水資源)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하면서 대도시와 소도시, 소도시와 농촌의 인구를 하나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국토의 혈맥으로 기능한다.

운하는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이다. 바다에는 어디나 배가 다니지만 강은 그렇지 못하다. 배가 다닐 수 있는 강과 배가 다닐 수 없는 곳에 만든 수로인 운하를 연결하여 강과 바다를 연결한 것이 경항운하고 라인-도나우(Rhein-Donau)운하다. 필자가 중국 도시학회 회장인 칭화대학 우 량융(吳良鏞) 교수와 함께 제안한 취푸(曲阜) 신도시계획은 경항운하에서 물을 끌어와 유학의 발원지인 취푸를 중국의 예루살렘이나 메카와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려고 한 운하도시계획이다. 현대의 어번인프라인 고속도로·고속철도를 과거의 인프라인 운하와 결합하여 역사와 지리를 미래의 인문과 결합하려 한 도시설계 제안으로, 2004년 베네찌아비엔날레와 2006년 2월 뻬이징 따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중국전략논단에서 발표되었다.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이 칭화대학과 취푸 운하도시계획을 5년 동안 계속한 것은 취푸 운하도시가 북한의 도시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운하도시의 사례-중국 취푸 운하도시 조감도

운하도시의 사례-중국 취푸 운하도시 조감도

 

나뽈레옹이 감동한 프랑스의 미디(Midi)운하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한 운하다. 보르도에서 뚤루즈까지는 가론강이 흐르지만 뚤루즈부터 대서양 사이에는 강이 없다. 뚤루즈와 대서양 사이에 인공수로인 미디운하를 만들어 가론강과 미디운하로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의 농촌과 도시를 하나의 생활권, 경제권으로 만든 도시사업이었다.

미디운하 같은 내륙운하는 수량을 유지하기 위해 댐을 만들고 댐을 거슬러가기 위해 갑문을 만든다. 미디운하에도 70여개의 갑문이 있고 갑문마다 소도시가 있다. 운하는 운하고 강은 강이다. 강으로 지나던 배가 운하로 가려면 갑문을 지나야 한다. 하천 대부분이 서해와 남해안으로 흐르는 한반도에 제대로 된 운하도시를 만들려면 바다를 깊이 내륙으로 끌어들인 로테르담 하구의 바다도시와 농촌형 도시군을 운하로 연결하여 대도시 못지않은 도시경쟁력을 이룬 미디운하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독일의 경제기적을 이룬 라인-도나우운하나 뉴욕과 5대호를 연결한 이리운하, 그리고 수에즈운하, 빠나마운하 등은 한반도와는 다른 여건에서 다른 목적으로 만든 것이기에 우리와 크게 상관이 없는 예들이다.

 

 

5. 남북한 대운하 구상

 

수도권 과밀화와 외곽도시의 변방화를 해결하는 길이 수도권 도시회랑이라면 동해와 서해를 잇는 남북한 대운하는 수도권을 한반도 전체와 소통케 하는 길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남북한 대운하는 앞의 취푸 신도시계획과 동일한 도시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동해안의 원산·안변 일대를 임진강과 한강 하구까지 연결하는 사업이다. 즉 북한에서 이미 완성해놓은 금강산댐의 수자원과 인프라를 활용하여 천혜의 조건을 갖춘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에 에너지와 물과 인간의 흐름을 집합한 운하도시들을 만들고 이를 임진강으로 연결하여 한강에, 그리고 안변을 거쳐 원산에 닿게 함으로써 서해와 동해를 연결하려는 구상인 것이다.

경쟁력있는 도시의 조건은 에너지와 좋은 물과 창조적 인구에 있다. 수도권 에너지의 대부분이 머나먼 중동에서 오고, 물은 식수로 볼 수 없고 수공간(canal)은 부족하며 창조적 인구는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 대운하에 러시아 천연가스를 끌어오면 평양과 개성의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수도권 일대는 좀더 경쟁력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수도권에 더 값싼 에너지를 끌어오고 백두대간의 맑은 물을 공급하며 창조적 인간이 일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방도가 임진강과 추가령구조곡과 원산항을 잇는 남북한 대운하다.

 

남북한 운하도시 개념도

남북한 운하도시 개념도

 

추가령구조곡은 백두대간의 단층화산지대다. 추가령구조곡에 금강산댐으로 마련된 백두대간의 물을 모아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운하를 만들어 원산항과 연결하고 임진강을 지나 한강으로 들어오게 하면 동해와 서해를 수도권 도시회랑에 접속시킬 수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원산까지 LNG선으로 운송하여 추가령구조곡 운하가스관을 통해 수도권으로 들여오고, 백두대간의 물을 임진강과 한탄강, 추가령구조곡이 만나는 지점에서 취수하여 도수관으로 수도권 도시회랑으로 끌어오면, 추가령구조곡 운하 주변에 북한과 남한의 창조적 인구가 모이는 산상의 수상도시를 만들 수 있다. 북한 인구를 지식산업사회에 맞는 높은 지능과 창조적 문화유전자를 가진 인적 자산으로 생각해야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함께 잘살 수 있다. 백두대간과 추가령구조곡은 한반도의 청정지역이다. 남북한 대운하는 남한의 도시화가 걸어온 자연훼손의 전철을 밟지 않는 21세기 도시의 모델이 되도록 자연은 최대한 보존하고 최소의 에너지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도시가 되게 하는 것을 대전제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 추가령구조곡의 존재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수로와 운하 건설에 따른 자연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상당한 생태질서 교란을 가져왔으리라 짐작되는 금강산댐 및 터널수로 건설작업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상태다.

20세기가 무기와 석유를 둘러싼 전쟁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인간과 물을 둘러싼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한반도는 강수량의 부족이 아니라 하천인프라 미비로 이미 10년 전 물부족 국가로 지목되었고 이대로 가면 물기근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서울은 1년에 130억톤의 물을 쓰고 있다. 북한이 높이 120미터의 금강산댐을 완공하자 남측이 유사시에 대응하겠다고 평화의 댐을 건설한 후 10억톤 정도의 물이 내려오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 안변청년발전소가 준공되면 물부족량은 20억톤으로 증가한다. 있지도 않은 금강산댐의 수공(水攻)이 아니라 수도권 물기근 대책이 더 시급한 일이다. 남북한 대운하는 서해와 동해를 잇는 에너지와 물류의 길이며 수도권 물문제를 해결하는 물길이다. 팔당댐의 물은 마시기 힘든 상태지만 백두대간의 물은 무공해 청정지역의 것이어서 생수 못지않다. 이 물을 적당한 가격으로 받아올 경우 북한에는 엄청난 수입원이 생기면서 남한의 물값 절약에 기여할 것이다.

임진강은 60년 동안 준설하지 못해 상류인 한탄강 유역이 홍수만 나면 범람한다. 99년 하루 200mm비로 4000억원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에서 1조 6천억원을 들여 홍수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이 지역은 남측 유역면적이 16%밖에 안되므로 남쪽에서 아무리 돈을 들여봐야 의미가 없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하구구역에 60년 동안 쌓인 30억톤 정도의 모래로 연간 1억톤에 달하는 수도권 골재 수요를 30년간 충당할 수 있고 금강산댐에는 26억톤의 거대한 수자원이 있다. 남북한 대운하는 수도권 물문제와 홍수와 골재파동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6. 맺는 말

 

행정수도, 혁신도시, 경부대운하는 지방 유권자를 현혹시킬 수는 있으나 그들을 잘살게 하는 길이 아니다. 한반도가 다 잘살려면 서울 중심부와 경기도의 신도시군을 수도권 도시회랑으로 직통케 하고, 수도권 바깥에 창조적 인간과 정보와 자본이 모이는 제3공간도시를 만들며, 수도권의 영향권 밖인 부산은 큐우슈우(九州)와, 목포는 롄윈강(連雲港)과, 제주는 싱가포르와 연계한 다국적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겠지만 수도권 신도시들이 제1도시공간과 제2도시공간의 도시연합을 이루게 하는 수도권 도시회랑과, 추가령구조곡에 백두대간의 물을 끌어오고 서해와 동해를 큰 물길로 이어 러시아와 일본의 에너지와 물류, 백두대간의 물과 남북한의 창조적 인구를 모이게 하는 남북한 대운하야말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인천항과 서울, 부산항과 대구도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부대운하를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점을 제쳐두고도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남북한의 창조적 인구를 모이게 할 획기적 발상이 결여된 개성공단, 해주공단 등은 장기적으로 남과 북의 진정한 이익에도 배치될 것이다. 수도권 도시회랑과 한반도의 동서회랑인 남북한 대운하는 21세기 한반도의 남북도시축에 서해와 동해를 잇는 동서축을 이룸으로써, 서울·평양 통일수도권을 21세기 메트로폴리스로 만드는 동시에 경부·경의선축에 편중된 불균형을 시정하는 한반도 지속가능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남북공동사업의 요체는 가능성과 현실성의 문제이다. 쌍방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 구상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양측의 공동연구가 필수적이다.

한반도식 통일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넘어 희망의 한반도를 이루려면 천년 넘게 한반도의 중심이던 한반도 수도권을 재조직하여, 어느날 문득 찾아올 통일의 장이 되게 하는 수도권 도시회랑과, 수도권 도시회랑에 에너지와 물과 인구를 공급하는 남북한 대운하를 세계가 알게 하여 세계의 지식인과 자본이 참여하도록 남한과 북한이 함께 나서야 한다. 수도권 도시회랑과 남북한 대운하는 바로 그 염원을 담은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인데, 욕심은 크나 연구는 그만하지 못하여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