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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경숙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2

엄마를 부탁해

 

 

제2장 미안하다, 형철아

 

그가 나눠준 전단지를 받아든 한 여자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전단지 속의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그를 기다리곤 했던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다.

 

그가 도시에 방을 갖기 시작한 후로 서울역에 도착할 때의 엄마는 전쟁이 터져 피난살이를 온 사람의 행색이었다. 엄마는 그에게 실어나를 것들을 머리에 이고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도 모자라 허리에 찬 채 서울역 플랫폼을 걸어나왔다. 그러고도 사람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엄마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나 호박 같은 것을 다리에 매달고라도 왔을 것이다. 엄마의 주머니에서 풋고추나 알밤, 신문지에 싼 깐마늘 들이 쏟아져나오기도 했으니까. 그가 엄마를 마중나가보면 엄마의 발치 아래엔 젊은 여인 혼자 들고 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보퉁이들이 수북했다. 엄마는 뺨이 상기된 채 그 보퉁이들 가운데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여자는 주춤주춤 그 앞으로 와서 저기요, 용산2가동 동사무소 앞에서 이분을 본 것 같아요, 전단지 속 그의 엄마를 가리켰다. 여동생이 만든 전단지 속에서 물빛 한복을 입은 그의 엄마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 옷을 입고 있었던 건 아닌데 눈이 너무 똑같네요. 소눈하고 똑 닮아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여자는 전단지 속 그의 엄마의 눈을 또 한번 들여다보더니 발등에 상처를 입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슬리퍼가 엄지쪽 발등을 파고들어갔고 살점이 떨어져나가 패어 있었다고 했다. 고름이 밴 상처 부위에 자꾸 파리가 날아와 앉으니까 귀찮은지 손을 뻗어 쫓곤 했었어요. 아플 것 같은데도 상처엔 무심한 듯 동사무소 안을 기웃기웃거리고 있었어요. 일주일 전 일이긴 해요.

일주일 전이면?

오늘 아침도 아니고 일주일 전에 동사무소 앞에서 본 것 같다는 여자의 말을, 그것도 전단지 속 엄마의 눈과 용산2가동 동사무소 앞에서 만난 여인의 눈이 서로 닮은 것 같다고 하는 여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는 여자가 총총 사라진 뒤에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가족들이 동원되어 서울역에서 남영동까지 식당이며 옷가게며 서점과 피씨방 등에도 전단지를 뿌리고 붙여놓았다. 불법이라고 뜯어내면 그 자리에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 그쪽만이 아니었다. 남대문과 중림동, 서대문까지 가족들은 번갈아가며 전단지를 돌리고 붙이고 뿌렸다. 신문광고를 보고는 전화 한통 없더니 전단지를 보고는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식당에서 본 것 같다는 제보를 듣고 쏜살같이 가보면 엄마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엄마 또래의 사람이었다. 한번은 자기네 집에서 보살피고 있으니 와보라며 주소를 또박또박 불러주기에 기대를 품고 달려가보았으나 주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단지에 보상금으로 적혀 있는 오백만원을 먼저 주면 엄마를 찾아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도 보름이 지나자 시들해졌다. 기대를 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의 가족들은 코가 빠진 채 서울역 시계탑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자마자 구겨서 바닥에 버리면 다시 주워 펼쳐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이는 여동생이었다.

 

전단지를 한아름 안고 서울역에 나타난 여동생이 그 옆에 섰다. 여동생의 메마른 눈이 그의 눈을 잠시 일별했다. 그는 여자의 말을 전하며 용산2가동 동사무소를 찾아가 그 주변을 살펴볼까? 물었다. 여동생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엄마가 왜 거길 갔겠어? 어쨌든 이따가 가보자, 짧게 대답하고는 우리 엄마예요, 버리지 말고 한번만 들여다봐주세요, 큰 소리로 말하며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냥 나눠주는 것보다 여동생처럼 외치며 나눠주는 게 효과는 있어 보였다. 그가 나눠줄 때처럼 돌아서자마자 전단지를 버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집이나 동생들의 집 말고 이 도시에서 엄마가 갈 만한 곳은 없었다. 그와 가족들에겐 그것이 고통이었다. 엄마가 찾아갈 만한 곳이 있으면 거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뒤져볼 텐데, 갈 만한 곳이 없으니 이 도시 전체에서 엄마를 찾아봐야 했다. 여동생이 엄마가 왜 거길 갔겠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여자가 말했던 용산2가동 동사무소가 자신이 이 도시에서 처음 근무했던 일터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벌써 삼십년 전의 일이니까.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는데도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묻어났다. 그는 나이 오십줄에 접어든, 아파트 전문 건설회사의 홍보부장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휴무지만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송도의 모델하우스에 있을 터였다. 송도에는 준공될 예정인 그의 회사의 대규모 아파트가 2차 분양중이었다. 100퍼센트 분양을 위해 그동안 그는 밤낮없이 일했다. 얼굴이 알려진 모델이 식상하다 하여 일반주부 중에서 광고모델을 선발하는 일의 실무를 지난봄 내내 맡아했다. 모델하우스를 짓는 일이며 언론사 기자들을 접대하는 일 들에 치여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요일엔 종종 사장을 비롯한 상무급 간부들을 수행해 속초나 횡성으로 골프를 치러 가기도 했다.

- 형! 엄마를 잃어버렸대!

그런 그에게 한여름 오후에 전해진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는 안쪽이 얼지 않은 얼음판을 디뎠을 때처럼 쩡 소리를 내며 그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둘째네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다가 아버지만 올라탄 지하철이 떠나버리는 통에 엄마 혼자 지하철역에 남게 되었는데 그 뒤로 엄마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길 전해들으면서도 그는 그것이 엄마의 실종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둘째가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을 때도 괜한 수선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신문광고를 내고 병원 응급실마다 연락을 취했다. 밤마다 편을 나눠 노숙자 보호쎈터들을 찾아가봤으나 허사였다. 엄마는, 서울역 지하철 구내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는 엄마는, 꿈처럼 사라졌다. 아버지에게 엄마와 같이 서울에 온 것이 사실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엄마는 흔적이 없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자 그와 그의 가족들은 다들 뇌 한귀퉁이를 손상당한 사람들처럼 허둥지둥거렸다.

그는 들고 있던 전단지를 여동생에게 넘겼다.

- 내가 가봐야겠다.

- 용산에?

- 그래.

-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 내가 서울 처음 왔을 때 살았던 곳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할 테니 휴대폰을 자주자주 확인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젠 필요 없는 말이다. 걸핏하면 전화를 받지 않던 여동생은 이제 벨이 세번 울리기도 전에 받는다. 그는 택시 승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삼십 중반을 넘겨서도 아직 미혼인 여동생 걱정을 많이 했다. 어떨 때는 첫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형철아! 지헌이네 좀 가봐라, 어째 전화를 안 받는다, 전전긍긍했다. 받지도 않고 하지도 않어야… 한달째 갸 목소리 한번 못 들었다. 글 쓴다고 틀어박혀 있거나 아니면 어딜 갔을 거라고 해도 엄만 그가 여동생 지헌의 오피스텔에 다녀오길 청했다. 혼자 아니냐, 어디 아파서 누워 있을 수도 있고 목욕탕에서 넘어져 못 일어날 수도 있고…… 엄마가 열거하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일들을 듣다 보니 딴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부탁을 받고 출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여동생의 오피스텔에 가보면 여동생의 부재를 알리는 증거로 문 앞에 신문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곤 했다. 그는 신문을 정리해 쓰레기통에 밀어넣고 돌아왔다. 신문이나 우유 같은 게 문 앞에 없을 땐 안에 있는 걸 다 안다는 듯이 초인종을 쉼없이 눌러대면 여동생은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며 왜 또? 하고 퉁명스럽게 굴었다. 언젠가는 초인종을 누르고 서 있다가 여동생을 찾아온 듯한 남자를 만나기도 했다. 남자는 멋쩍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까지 했다. 그가 누구냐 묻기도 전에 상대가 여동생의 이름을 대며 너무 닮아서 따로 물어볼 것도 없네요, 했다. 남자도 갑자기 여동생과 연락이 끊겨 찾아와본 거라고 했다. 엄마에게 여동생이 여행을 떠난 듯하다, 집에 잘 있었다,라는 소식을 전해주면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그러다가 갸가 죽어도 우린 모르고 있을 게다. 그러면서 갸가 하는 일이 대체 뭐라냐? 물었다. 여동생이 보름씩, 길게는 한달씩 소식을 끊어버리고 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써야 하는 것이냐? 물으면 여동생은 다음부터 엄마한텐 전화할게, 체념한 듯 말했다. 그뿐이었다. 아무리 엄마가 그리 나와도 이따금씩 식구들과 여동생의 단절은 계속되었다. 그가 엄마의 말을 두세번 지나친 다음부터 엄마는 그에게 여동생 집에 가봐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내 말에 귀기울일 새가 없구나,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여동생의 갑작스런 단절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그 대신 가족들 중 누군가가 엄마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후 여동생은 아무래도 내가 벌을 받나 봐…… 중얼거렸다.

서울역에서 숙대입구까지 길이 꽉 막혔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차창 밖 거리를 내다보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 인파 속에 혹시 엄마가 있나 해서.

- 손님! 용산2가동 동사무소라고 했지요?

숙대입구 쪽에서 용산고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며 택시기사가 묻는 말을 그는 놓쳤다.

- 손님?

- 예!

- 용산2가동 동사무소 앞이라고 했지요?

- 예.

스무살이던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걸어다니던 길이 차창에 스치는 풍경이 낯설기만 했다. 이 길이 맞나? 싶었다. 하긴 삼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변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 토요일이라 동사무소는 문 닫았을 텐데요.

- 그렇겠지요.

택시기사가 그에게 뭐라 더 말을 붙이려다가 그만두려는 참에 그가 주머니에서 전단지를 꺼내 택시기사에게 내밀었다.

- 운전하시다가 혹시 이런 분을 보면 연락 좀……

택시기사가 그가 내민 전단지를 훑었다.

- 어머니신가요?

- 예.

- 어쩌다가……

 

지난해 여름 여동생에게서 엄마가 이상하다는 전화를 받고서도 그는 아무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그 연세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을 때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이 침통해하며 엄마가 두통 때문에 기절하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전해서 그가 시골집에 전화를 걸어보면 엄마는 형철이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으세요? 엄마는 수화기 저편에서 별일이라두 있었음 좋겄다! 하며 웃었다. 여그 걱정은 말어라. 두 늙은이 살림에 뭔 일이 있겄니. 너그들이나 잘 지내라.

- 서울에 한번 오세요.

엄마는 그래… 그러마, 하며 말끝을 흐렸다. 무심한 그에게 화가 난 여동생이 회사 앞으로 찾아와 엄마의 뇌 사진을 들이민 적도 있었다. 여동생은 엄마도 모르게 엄마 뇌 속으로 뇌졸중이 지나갔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그래도 그가 무심히 듣자 여동생은 오빠! 박형철 맞아?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 별일 없다고 하시는데 왜?

- 그 말을 믿어? 엄만 늘 그러잖아. 그게 엄마 어법이잖아. 알면서 왜 그래? 오빠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잖아.

- 나한테 뭐가 미안하단 말이냐?

- 그걸 내가 알아? 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 들게 해, 오빠는?

- 내가 뭘 말이냐?

- 아주 옛날부터 엄마 입에 붙은 말이잖아. 내가 묻고 싶어, 대체 엄마가 왜 오빠한테 미안한데?

 

삼십년 전 당시 5급으로 분류되던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그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용산동 동사무소였다. 시골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이 도시의 대학에 떨어졌을 때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엄마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 한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는 무슨 시험을 보아도 그는 일등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일등으로 붙어 입학금도 내지 않았다. 삼년 내리 일등이었으므로 그는 학교에 돈을 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그는 일등으로 합격했다. 아이구, 나는 우리 형철이 입학금 좀 내봤으면 좋겄다, 하는 것이 그를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그의 엄마가 쓰는 말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내내 일등이었던 그가 대학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은 엄마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등으로 합격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엄마는 아니 니가 안되면 누가 된단 말이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대학에 붙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또 일등을 할 생각이었다. 생각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쩌든지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떨어져버렸으니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재수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곧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냈다. 두 종류의 공무원시험을 보았고 모두 다 합격했다. 먼저 발령이 난 곳을 택해 집을 떠났다. 그리고 몇개월 후 이 도시의 야간대학에 자신이 가고 싶어한 법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원서를 내려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증명서가 필요했다. 졸업증명서를 떼어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그걸 시골에서 우편으로 부치면 원서마감일이 넘어서야 도착할 터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고속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사람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뒤 우체국에 가서 동사무소로 전화를 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몇시 차편인지 동사무소 전화로 알려주면 자신이 고속버스터미널에 나가서 그 차편을 기다려서 받겠다고. 내내 기다렸으나 그날 전화가 오지 않았다. 시골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어찌 됐는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다음날까지는 원서를 내야 하는데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한밤중에 누군가가 동사무소 문을 쾅쾅 두들겼다. 당시 그의 주거지가 저 동사무소였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서야 했지만 거처가 없던 그가 그 숙직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매일 숙직을 서는 셈이었다. 동사무소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어둠속에 웬 청년이 서 있었다.

- 이분이 어머니요?

그의 엄마는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청년의 뒤에 서 있었다. 그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의 엄마가 형철아! 나다! 엄마다! 앞으로 나섰다. 청년은 시계를 보고는 칠분 후면 통행금지요! 하더니 그의 엄마에게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는 통행금지 칠분 전의 어둠속으로 내달았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었다. 여동생이 편지를 읽어주자 그의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다가 그의 출신 고등학교를 찾아가 졸업증명서를 떼고 그 길로 밤기차를 탔다. 그의 엄마가 난생처음 타보는 기차였다.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한 그의 엄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용산동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묻고 있을 때 지나가던 청년이 그의 엄마를 본 모양이었다. 이 밤 안에 아들에게 꼭 전해줘야 할 것이 있다는 그의 엄마의 말을 듣던 청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엄마를 동사무소까지 바래다준 것이었다. 그의 엄마는 한겨울인데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을 추수 때 낫을 잘못 써서 엄지쪽 발등을 다쳤는데 아물지 않아 앞이 터진 신발을 찾다 보니 슬리퍼였다 했다. 그의 엄마는 숙직실 문 앞에 슬리퍼를 벗어놓고 들어와, 늦지나 않었는지 몰르겄다!며 그 앞에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내밀었다. 엄마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는 얼음장 같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이 손을, 이 손을 가진 여인을 어쩌든 기쁘게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입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따라오란다고 따라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엄마를 책망했다. 엄마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산다냐!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법이다!며 엄마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닫힌 동사무소 건물 앞에 서서 건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엄마가 여길 찾아왔을 리가 없다. 여길 찾아올 정도면 집을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그의 엄마인 듯한 사람을 봤다던 여자는 눈 때문에 기억한다고 했다.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도 했다. 파란 슬리퍼. 그의 엄마는 파란 슬리퍼가 아니라 베이지색 굽 낮은 쌘들을 신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어찌나 많이 걸었는지 슬리퍼가 엄지쪽 발등을 파고들어갔고 살이 깊이 패어 있었다고 말해주던 여자는 분명 파란 슬리퍼라고 했다. 그는 실종된 엄마가 신고 있는 신발이 굽 낮은 베이지색 쌘들이었다는 생각을 이제야 떠올렸다. 그는 닫힌 동사무소 안을 기웃거리다가 보성여고쪽 길과 은성교회로 이어지는 길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아직도 동사무소엔 그 숙직실이 있을까.

 

스무살의 그에게 졸업증명서를 가져다주려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온 엄마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잤던 그 숙직실. 그가 엄마와 그렇게 나란히 누워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거리를 향해 난 바람벽으로 찬바람이 쿨렁쿨렁 새어들어왔다. 나는 벽 쪽에 누워야 잠이 잘 온다, 엄마가 일어나더니 그와 자리를 바꿨다. 바람 들어오는데…… 그가 일어나 벽 쪽으로 가방과 책을 쌓아올렸다. 벗어놓은 옷가지도 쌓아올렸다. 괜찮다니까 그러는구나, 엄마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자라, 낼 또 일해야 할 터인데.

- 서울 처음 보니 어떠세요?

숙직실 천장을 보고 나란히 누워 그가 묻자 별것 아니구나, 엄마가 웃었다.

-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 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두 같구. 내가 뭘 알았어야 말이지. 열일곱에 시집와 열아홉이 되도록 애가 안 들어서니 니 고모가 애도 못 낳을 모양이라 해싸서 널 가진 걸 알았을 때 맨 첨에 든 생각이 이제 니 고모한티 그 소리 안 들어도 되네, 그게 젤 좋았다니깐. 난중엔 나날이 니 손가락이 커지고 발가락이 커지는디 참 기뻤어야.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랠 불렀네.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엄마는 그를 향해 등을 세우고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네.

- ………

- 너는 다른 애덜 같지 않게 말이 필요 없는 자식이었다. 뭐든 니가 알아서 했잖어. 얼굴은 이리 잘생기구 공부는 또 얼마나 잘했구. 자랑스러워서 난 지금도 가끔 니가 진짜 내 속에서 나왔나 신기하다니까…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겠냐.

 

그는 엄마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올 때 따뜻한 곳에서 잠잘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추운 데서 잠들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가 형철아!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잠에 떠밀린 그의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렸다. 엄마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는 일어나 앉아 잠든 그를 굽어보다 슬며시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는 눈물을 닦기 위해 그의 이마에서 얼른 손을 거뒀지만 벌써 그의 얼굴엔 엄마의 눈물이 톡톡 떨어져내렸다.

 

첫새벽에 깨어나보니 그의 엄마는 동사무소 바닥을 비질하고 있었다. 그가 말려도 엄마는 손은 뒀다가 뭐 한다니? 마치 손을 놀게 두면 누구한테 벌이라도 받게 되는 듯 대걸레에 물을 적셔 바닥을 민 다음 출근 전인 직원들의 책상 하나하나를 구석구석 닦았다. 엄마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고 신고 있는 파란 슬리퍼 앞으로 발등은 부은 채로 비어져나와 있었다. 콩나물해장국집이 문 열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사무소는 엄마 손으로 인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아직도 이 집이 남아 있네, 그의 눈이 커졌다. 엄마를 찾아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다 보니 삼십년 전에 그가 방을 얻어 살았던 그 집 앞에 서 있다. 대문 위에 화살처럼 뾰족한 쇠가 삼십년 전처럼 그대로 박혀 있다. 한때 그를 사랑했으나 그를 기다릴 수 없었던 여자가 이따금 거기에 호빵을 넣은 비닐봉투 같은 것을 걸어놓고 가곤 했다. 그 집만 빼고는 사방이 연립주택과 원룸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증금 1000-10만원

그는 대문에 붙어 있는 글을 읽었다.

보증금 500 내면 15만원에 가능.

8평. 씽크대 기본. 화장실에 샤워시설 있음.

남산이 가까워 운동하기 좋음. 20분 안에 강남 갈 수 있음. 종로 10분. 단점: 화장실이 좁은 편. 화장실에서 살 건 아니잖아요. 아마 용산에서 이만한 가격은 찾기 힘들 것임. 여러 여건이 좋은데 내가 이사를 가는 이유: 차가 생겨 주차장이 필요해서임. 문자 날려주거나 메일 연락 바람. 직접 방을 세놓는 까닭: 복덕방비를 아낄 수 있음.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까지 읽고 난 뒤 그는 대문을 빠금히 밀어보았다. 삼십년 전처럼 대문이 밀렸다. 그는 안을 살펴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ㄷ자 형태로 된 집에는 문들이 방방이 바깥으로 나 있다. 한때 그가 살았던 방에는 굳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 누구 없어요?

그가 목청을 돋워 큰 소리를 내자 두세개의 방문이 열렸다. 짧은 머리의 처녀 둘과 열일곱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 둘이 얼굴을 내밀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 혹시 이런 분 본 적이 있는지?

그는 짧은 머리의 처녀들에게 먼저 전단지를 내밀었다. 그냥 문을 닫으려는 남자아이 둘에게도 얼른 전단지를 내밀었다. 안에 또래의 여자아이 둘이 또 있었다. 그가 방을 들여다보는 것 같자 사내아이 둘이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방의 겉모습은 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한데 안의 구조는 원룸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부엌과 방을 합쳐서 개조한 모양이었다. 방 한쪽에 씽크대가 보였다.

- 몰라요!

처녀 둘이 다시 그에게 전단지를 내밀었다. 낮잠 자는 중이었는지 눈에 눈곱이 달라붙어 있었다. 처녀 둘이 다시 몸을 돌려 대문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막 대문을 나서려 할 때 닫혔던 쪽의 방문이 다시 열리고 사내아이가 저기요! 그를 불러세웠다.

- 이 할머니 며칠 전에 여기 대문 앞에 앉아 있었던 거 같은데……

그가 다가가자 또 한 사내아이가 얼굴을 내밀며 아니라니까! 부정했다.

- 이 할머닌 젊잖아. 그 할머닌 아주 쭈그렁쭈그렁했어. 머리도 이렇게 안 생기고… 거지였잖아.

- 그래도 눈이 닮았잖아. 눈만 봐봐. 눈이 이렇게 생겼었잖아… 찾아주면 진짜 오백만원 줘요?

- 찾지 못해도 얘기만 정확히 해주면 사례를 하겠다.

그는 사내아이들을 방 바깥으로 불러내었다. 방문을 닫았던 처녀들이 다시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 그 할머니는 저 아래 호프집 할머니야. 치매 걸려서 집에 가둬놨는데 몰래 나와서 길을 잃었나 보던데. 호프집 아저씨가 와서 데려갔어요.

- 그 할머니 말구 이 할머니도 봤는데… 발등이 찍혀서 고름투성이였어요. 자꾸 파리가 달라붙으니까 쫓고 있었는데… 냄새나고 더러워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 그래서? 어디로 갔는지도 봤냐?

그는 다급히 사내애에게 물었다.

- 아뇨. 난 그냥 들어왔죠. 자꾸 따라 들어오려고 해서 대문을 쾅 닫았는데……

 

사내애 말고는 엄마 같은 사람을 봤다는 이가 없었다. 사내애는 진짜 봤다니까요! 그를 뒤쫓아다녔다. 그보다 앞서서 이 골목 저 골목을 살피기도 했다. 그는 헤어질 때 사내애에게 십만원짜리 수표를 한장 주었다. 사내애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사내애에게 혹시 다시 그 할머니를 보게 되면 붙잡아두고 꼭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사내애는 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럼 오백만원 줘요?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애는 전단지를 몇장 더 달라고 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거기에 붙여놓겠다고 했다. 그걸 보고 할머니를 찾으면 자기 때문에 찾은 거니까 그때도 오백만원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마고 했다.

 

엄마를,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그를 바람벽 앞에 재우지 않으려고 나는 벽 쪽에 누워야 잠이 잘 온다,며 자리를 바꿔 눕던 엄마를 향해 가졌던 빛바랜 다짐들. 엄마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오면 따뜻한 방에서 자게 하겠다던 맹세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대체로 엄마를 잊고 지냈다. 엄마가 아버지가 탄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낯선 지하철역에 홀로 남겨졌던 그 시각에 나는 뭘 했던가? 그는 동사무소를 한번 더 올려다보고 뒤돌아섰다. 나는 뭘 했던가?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날 동료들과 마신 술자리 뒤끝이 좋지 않았다. 술에 취하기 전엔 서로 공손했던 동료 K가 술이 몇잔 들어가자 그에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며 교묘하게 비꼬았다. 회사에서 그는 인천 송도쪽 아파트 분양을 맡고 K는 용인쪽 아파트 분양을 맡고 있었다. K가 그에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던 것은 그가 모델하우스를 찾는 고객들에게 나눠줄 사은품으로 중년층에게 인기있는 가수의 공연티켓을 준비한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여동생의 생각이었다. 아내가 집에 찾아온 여동생에게 지난번 아파트 분양 때 사은품으로 썼던 욕실 러그를 가져가라고 주자, 여동생은 왜 회사들은 주부들이 이런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 몰라, 그랬다. 그는 그러잖아도 사은품을 뭘로 해야 할지 생각하던 중이라 그럼 뭘 주면 인상깊을까? 물었다. 글쎄, 건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건 금방 잊어버려요. 차라리 만년필 같은 게 낫지 않아? 생각해봐. 아내한테 생일날 주방기구 같은 거 선물하면 좋아하겠어? 아파트 분양 사은품이라고 발닦개 같은 걸 주면 그러려니 여기지. 하지만 책이라든가 영화티켓이라든가 그런 거면 어? 하고 가만 들여다볼 것 같은데. 그거 사용하느라 시간 내고 맞추고 어쩌고 하면서 계속 생각할 테고. 내 생각만 그런가? 여동생은 잊어버렸는지 아내가 챙겨준 러그를 두고 갔다. 회의중에 사은품 이야기가 나와 문화상품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했더니 특별히 싫다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중년층에게 인기있는 가수가 장기공연중이라 그 티켓을 대량으로 준비했는데 그 덕분에 상무에게 칭찬을 듣게 된 것이었다. 상무가 좋아하는 가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설문조사에서도 사은품이었던 공연티켓이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은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겠으나 그가 담당한 송도의 아파트는 거의 분양이 되었는데 K가 맡은 용인은 분양률이 60퍼센트에 그쳤다. 미분양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K를 긴장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웃어넘겼으나 술이 몇잔 더 들어가자 K는 그 비상한 머리를 다른 데 썼으면 아마도 검사장은 했을 거라고 했다. K가 하필 검사장이라고 빈정댄 것은 그가 법대 출신이며 사시공부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 소리였다. 회사 내의 주류세력인 Y대도 K대도 아닌데 무슨 발빠른 수를 썼기에 승진이 빠른지 모르겠다는 비꼼이 섞이기도 했다. 결국 막판엔 K가 따라준 술을 쏟아버리고 일어섰다. 아침에 아내가 서울역에 마중을 나가는 대신 진이에게 다녀와야겠다고 했을 때 그는 시간 맞춰 자신이 나가봐야지 생각했다. 출근하고 나니 몸이 으슬으슬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아버지가 잘 찾아올 수 있다고 하셨다니까…… 싶어 그는 서울역 대신 회사 근처의 싸우나에 갔다. 과음한 다음날이면 들르는 싸우나에서 그가 땀을 빼고 있던 그 시각은 아버지가 엄마를 두고 혼자 지하철을 탔던 시각이었다.

 

시골 소년이었던 그가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버지에게 실망해 집을 나간 엄마를 다시 집에 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데려온 여자는 피부가 희고 분냄새를 풍겼다. 여자가 대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오자 엄마는 샛문으로 집을 나갔다. 여자는 냉랭한 그의 마음을 사려고 날마다 도시락에 계란프라이를 얹어주었다. 그는 여자가 작은 보자기로 정성껏 싸놓은 도시락을 들고 나와 뒤란의 장독 뚜껑 위에 올려놓고 학교에 갔다. 동생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여자가 싸준 도시락을 슬그머니 들고 나갔다. 그는 학교 가는 길의 묘지 앞에 동생들을 불러모았다. 묘지 앞의 땅을 파고 그 속에 도시락을 묻게 했다. 남동생은 말을 듣지 않고 도시락을 들고 내빼려다가 그에게 붙잡혀 얻어맞았다. 여동생은 그가 하라는 대로 그가 파놓은 땅에 도시락을 묻었다. 그는 그렇게 하면 여자가 도시락을 못 쌀 줄 알았다. 그러나 여자는 읍내로 나가 새 도시락을 사왔다. 그것도 누런 도시락이 아니라 밥이 식지 않게 하는 보온도시락을. 그가 여자가 싸준 도시락을 학교에 가져가지도 않고 밥도 굶는다는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집을 나갔던 엄마가 학교로 그를 찾아왔다. 여자가 집에 들어온 지 열흘쯤 되던 날이었다.

- 엄마.

그가 왈칵 눈물을 쏟자 엄마는 그를 데리고 학교 뒷산으로 갔다. 그러곤 그의 바지를 걷고 종아리를 드러냈다. 엄마는 품에서 회초리를 꺼내 그의 종아리에 내리쳤다.

- 왜 밥을 안 먹냐! 니가 밥을 안 먹으면 내가 좋아할 중 알었냐!

엄마의 회초리질은 매서웠다. 그러잖아도 동생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서러운데 엄마에게 매까지 맞으니 그는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분한 마음만 쌓였다. 엄마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도 그는 알 수 없었다.

- 도시락 가지고 다닐 테냐! 안 다닐 테냐!

- 안 다녀!

- 이놈이 이래도!

엄마의 회초리질은 더욱 세차졌다. 그는 엄마가 지칠 때까지 아프단 소리를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도망은커녕 자세조차 흩뜨리지 않은 채 입을 꽉 다물고 엄마가 내리치는 회초리를 맞았다.

- 이래도!

매질 자국이 번지다 못해 그의 종아리에 피가 맺혔다.

- 그래도!

그도 소리를 내질렀다. 결국 엄마는 회초리를 내던지고 아이구, 이놈아! 형철아! 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을 그친 엄마는 이제 그를 달랬다. 누가 해주든 밥은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네가 밥을 잘 먹고 있어야 엄마가 덜 슬프다고 했다. 슬픔. 엄마에게서 슬프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는 왜 자신이 밥을 잘 먹고 있어야 엄마가 덜 슬픈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여자 때문에 엄마가 집을 나갔으니 그 여자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 엄마가 슬퍼야 맞을 것 같은데 엄마는 반대로 말했다. 그 여자가 해주는 밥인데도 그걸 먹어야 엄마가 덜 슬프다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엄마를 슬프게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제서야 먹을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야지. 눈물이 가득 담긴 엄마의 눈에 웃음이 담겼다.

- 대신! 꼭 집에 돌아온다고 약속해!

그가 엄마에게 다짐을 받았다. 엄마의 눈이 흔들렸다.

- 집에 돌아가기는 싫구나.

- 왜 왜?

- 다시는 니 아버지 안 보고 잪다.

그의 눈에서 이제껏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진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누가 해주든 밥은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보다. 엄마가 아예 집에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는 더럭 겁이 났다.

- 엄마, 내가 다 할게. 논일도 하고 밭일도 하고 마당도 내가 쓸고 물도 내가 길어다줄게. 쌀도 내가 찧어다주고 불도 내가 다 때줄게. 쥐도 쫓아주고 제사 때 닭도 내가 잡아줄게. 그러니까 돌아와!

엄마는 제사나 명절 때면 상에 올릴 닭을 잡아달라고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남자들에게 통사정을 하곤 했다. 장마가 휩쓸고 간 산밭에 나가 온종일 쓰러진 콩대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엄마가, 술에 취한 아버지를 등에 업다시피 하고 집에 데려오기도 하는 엄마가, 울을 뛰쳐나온 돼지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려가며 다시 울에 집어넣기도 하는 엄마가 할 줄 모르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살아 있는 닭을 잡는 일이었다. 엄마는 그가 도랑에서 붕어를 잡아와도 붕어가 살아 있을 땐 손도 못 댔다. 쥐잡는날이 되면 진짜 잡았는지 확인하려고 학교에서 쥐의 꼬리를 잘라오라고 했다. 다른 집 엄마들은 쥐를 잡아 꼬리를 탁 잘라서 종이에 둘둘 말아 싸주는데 엄마는 말만 듣고도 에구, 하며 몸을 움츠렸다. 덩치가 커다란 엄마는 쥐를 잡기는커녕 밥을 짓기 위해 쌀을 푸러 광에 갔다가 쥐를 만나면 되려 엄마! 소리치며 뛰쳐나오곤 했다. 저런저런! 고모는 늘 혼비백산한 얼굴로 광 쪽에서 뛰어나오는 얼굴이 빨개진 엄마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곤 했다. 닭을 잡아준다고 해도 쥐를 쫓아준다고 해도 엄마는 집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게.

- 뭐가 될 건데?

- 검사!

엄마의 눈이 반짝 빛났다.

- 검사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가 아는 사람은 검사가 되려고 밤낮으로 공부를 했는디두 못 되고 그만 미쳐버린 사람도 있어.

- 엄마만 돌아오믄 난 한다니까……

엄마가 애타는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 그래, 너는 될 게야. 넌 백일도 안되서 나보고 엄마-라고 했어. 글을 가르킨 것도 없는데 학교 가자마자 책을 읽고 일등도 하구. 니가 그 집에 있는데 내가 왜 나와… 내가 그 생각을 어째 못했으까. 니가 거기 있는디.

엄마는 회초리질로 피가 맺힌 그의 종아리를 한참 바라보다 업히라며 등을 돌려 앉았다. 그가 멀거니 엄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고갤 돌렸다.

- 얼릉 업혀라, 집에 가자……

 

엄마는 그 길로 집에 들어와 여자를 부엌에서 밀어내고 밥을 지었다. 여자와 아버지가 마을의 다른 집을 얻어 살자 엄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그 집으로 달려가 여자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아궁이에 걸린 솥을 떼어내 도랑물에 떠내려 보내버렸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싸움꾼이 되기로 한 것 같았다. 엄마의 훼방을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여자와 함께 마을을 떠났을 때 엄만 그를 불러 무릎 앞에 앉혔다. 엄마마저 집을 나갈까 봐 두려워 겁을 내고 있는 그에게 엄마는 침착한 목소리로 오늘은 공부를 얼마만큼 했나? 물었다. 그가 백점 맞은 시험지를 내밀자 침울해 있던 엄마의 눈가에 화기가 돌았다. 모든 시험문제에 붉은 색연필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그를 끌어안았다.

- 아이구, 내 새끼!

아버지가 없는 동안 엄마는 그를 끼고돌았다.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를 타도록 허락했다. 아버지가 깔던 요를 그에게 내주었고 아버지가 덮던 이불을 그에게 덮어주었다. 아버지만 쓰던 큰 밥그릇에 밥을 퍼주었다. 국을 뜨면 맨 먼저 그 앞에 놓아주었다. 동생들이 밥을 먹으려 하면 형이 아직 숟가락을 안 들었는데! 나무랐다. 고무통에 포도를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온 과일장수에게 마당에 널어놓은 참깨를 반됫박 퍼주고 포도와 맞바꿔서는 이건 형이 먹을 거다,며 따로 두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에게 너는 꼭 검사가 되어야 한다, 다짐을 두었다.

 

그는 엄마를 집에 붙들어두기 위해서는 마땅히 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가을 엄마는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혼자 벼를 베고 훑고 말렸다. 그가 거들려고 하면 엄마는 너는 공부하거라,며 그를 책상 앞으로 밀었다. 엄마는 산밭의 고구마를 캐러 동생들을 몰고 가면서도 그를 책상 앞으로 밀었다. 고구마를 캐러 간 사람들은 해 저물녘에야 리어카에 고구마를 가득 싣고 돌아왔다. 자기도 공부를 하고 싶은데 엄마에게 끌려 고구마를 캐러 갔던 둘째동생이 샘에 엎드려 손톱에 덕지덕지 낀 황토를 씻어내다가 엄마에게 대들었다.

- 엄마! 형만 장땡이야?

- 그려! 형만 장땡이다!

엄만 생각해볼 것도 없이 둘째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그먼 우린 없어도 돼?

- 그려 없어도 돼!

- 그믄 우린 아버지 찾아간다!

- 뭐야?

엄마가 둘째동생의 머리를 한대 더 쥐어박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 그려! 너도 장땡이다. 너그들 다 장땡이여! 우리 장땡들! 이리들 와봐!

그제서야 샘가에 와르르 웃음소리가 퍼졌다. 방 안 책상에 앉아 샘가에서 들려오는 식구들의 소리를 듣고 있던 그도 씩 웃었다.

 

어느날부턴가 엄마는 밤이 되어도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또 어느날부턴가 아침에 밥을 풀 때 아버지 밥그릇에도 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어두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그는 더욱더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는 그가 논일을 거드는 것도 밭일을 거드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형제들에게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비 맞게 놔뒀다고 야단을 치다가도 그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것 같으면 목소리를 죽였다. 고단함과 수심으로 일그러져 있던 엄마는 그가 소리내 책을 읽을 적이면 분가루를 발라놓은 것처럼 눈가가 밝아졌다. 엄마는 그가 공부하고 있는 방의 문을 가만히 열어본 뒤에 가만히 닫았다. 삶은 고구마나 홍시 같은 것을 소리 안 나게 조용히 방 안에 들여놓고 또 소리 안 나게 문을 닫았다. 그해 겨울 눈이 마루까지 들이치던 날 아버지는 엄마가 열어둔 대문으로 걸어들어와 흠흠, 소리를 내며 토방에 눈 묻은 신발을 탁탁 턴 뒤에 방문을 열었다. 날이 추워 모두 한 방에 모여 자던 때였다. 아버지가 그를 비롯해 잠든 형제들의 이마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바라보는 것을 그는 실눈을 뜨고 보았다. 엄마가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을 상 위에 올리는 것도.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을 꺼내와 밥그릇 옆에 내려놓는 것도. 여름에 나갔다가 겨울에 들어온 아버지를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온 사람 대하듯 엄마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숭늉을 떠다 밥그릇 옆에 놓아주는 것도.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 입사시험에 합격했을 때 엄마는 기뻐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형철이가 나라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회사에 다니게 됐으니 좋겠다고 해도 엄마는 웃지 않았다. 엄마는 첫 월급을 타 내의를 사들고 온 그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 니가 되려던 것은 어쩐다니?

그는 냉랭한 엄마에게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이년 동안 돈을 모은 뒤 그 돈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때의 젊은 엄마는 그로 하여금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결의를 품게 하는 존재였다.

 

엄마가 그에게 본격적으로 미안하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시골의 여동생을 그에게 데려다주면서였다. 그가 돈을 모으기도 전에, 사법고시에 다시 도전해보기도 전에, 시골의 여동생을 도시의 그에게 데려다주러 온 엄마는 그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 야는 여자애니까… 학교를 더 다녀야 써. 어짜든 여기서 야가 학교에 다닐 길을 니가 맨드러봐라. 난 야를 나처럼 살게 할 순 없어야.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만나 열다섯 된 여동생의 손을 스물넷 된 그의 손에 넘겨주고 다시 돌아가려다가 엄마는 국밥이나 한그릇 먹자고 했다. 엄마는 국밥 속의 쇠고기 건더기를 자꾸만 그의 그릇에 옮겨주었다. 그가 다 못 먹는다고 엄마나 드시라고 해도 엄마는 자꾸만 자신의 국밥 속에 든 쇠고기 건더기를 떠 옮겼다. 국밥을 먹자고 해놓고 엄만 한숟가락도 입에 대지 않았다.

- 안 드세요?

그가 묻자 아니다, 먹는다, 먹어야재…… 하면서도 엄마는 자꾸만 그의 국밥 그릇에 쇠고기 건더기를 옮겨다 놓기만 했다.

- 근디 너는… 너는 어쩐다니?

엄마가 국밥이 묻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엄마가 죄가 많다. 너에게 미안하다, 형철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서 있는 엄마는 손톱이 바짝 잘린 투박한 두 손을 빈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눈물이 그렁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때의 엄마 눈이 소의 눈을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는 서울역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동생은 그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가만 있었다. 그가 먼저 뭐라고 얘기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전단지에는 형제들 모두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놓았는데 그동안 유독 여동생에게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대부분 헛된 정보였다. 어떤 인간은 지금 제가 그 할머니 데리고 있어요, 그랬다. 여기가 어디냐면요, 하면서 자세히 약도까지 설명해주었다. 여동생이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가보니 찾아오라고 했던 육교 밑엔 엄마하고는 성별도 다른 젊은 남자 취객이 술을 어찌나 많이 마셨는지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코를 골며 쓰러져 있었다.

- 못 찾았다.

여동생이 참고 있던 숨을 내쉬는 소리가 그에게 전해졌다.

- 거기 계속 있을 거냐?

- 좀 더 있다가… 전단지가 남았어.

- 내가 거기로 가마. 저녁이나 같이 먹자.

- 밥 생각 없어.

- 그럼 술이나 한잔 하든가.

- 술?

여동생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 전화가 한통 왔어. 역촌동 서부시장 앞에 있는 서부약국의 약사라고 하는데 아들이 들고 온 전단지를 봤대. 이틀 전인가 역촌동에서 엄마 같은 사람을 본 것 같다구… 근데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 하네. 어찌나 걸었는지 발등이 패고 발톱까지 염증이 번져서 약을 발라줬다고 하는데……

파란 슬리퍼? 그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었다.

- 오빠!

그가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 거기 가볼까 하는데 오빠도 같이 갈래?

- 역촌동이래? 서부시장이면 예전에 우리 살던 데 있던 그 시장 말이냐?

- 응.

- 알았다.

 

그는 집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여동생을 만난들 따로 할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집으로 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에 여동생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역촌동이라구? 그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엄마를 본 것 같다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 중에 파란 슬리퍼를 신은 엄마 같은 사람을 보았다고 말한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기묘하게도 예전에 그가 살았던 동네 이름을 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를 본 것 같다고 했다. 개봉동, 대림동, 옥수동, 낙산아파트 밑의 동숭동, 수유동, 신길동, 정릉. 찾아가보면 그들은 그 여인을 본 것은 사흘 전이라거나 일주일 전이었다고 했다. 엄마를 잃어버리기도 전인 한달 전에 봤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혼자서 혹은 동생들과, 어떤 때는 아버지와 함께 그 동네를 찾아가보았다. 그들은 보았다는데 그는 파란 슬리퍼를 신은 엄마 같은 사람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혹여 싶어 그 동네의 전신주나 공원의 나무, 공중전화박스 안에 전단지를 붙이고 돌아오는 것이 다였다. 그가 살았던 옛집 앞을 지나게 될 때면 그는 멈춰서서 이제는 다른 이들이 살고 있는 그 집 안을 기웃거리곤 했다. 어느 집에서 살았든, 엄마가 도시에 있는 그의 집을 혼자 찾아왔던 적은 없었다. 가족들 중 누군가가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나가 엄마를 모시고 오곤 했다. 엄마는 이 도시에 오면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주기 전에는 어디로도 이동하지 않았다. 둘째네에 갈 때는 둘째가 모시러 왔고 여동생네에 갈 때는 여동생이 모시러 왔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은연중에 그와 그의 가족들은 엄마가 혼자서는 이 도시의 어디에도 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엄마가 서울에 오면 누군가가 꼭 엄마 곁에 있었다. 엄마를 찾는 광고를 내고 전단지를 돌리고 인터넷에 올린 후에 그가 알게 된 일은 그가 이 도시에서 옮겨다니며 살았던 동네가 열두군데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등을 펴고 고개를 뒤로 젖혀봤다. 역촌동은 그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된 동네였다.

 

- 며칠 있으면 추석인데……

여동생이 역촌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손톱을 문질렀다. 그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큼, 소리를 내며 이마를 찌푸렸다. 추석 연휴가 여러 날이었다. 매년 추석 때면 올해는 유난히 해외로 나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사회다. 몇해 전까지는 명절에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놓고 조상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까지 하고 공항으로 나선다. 한때는 콘도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고 해서 조상이 어떻게 콘도를 찾아오느냐 했었는데 이젠 아예 비행기를 타버리는 형국이었다. 아침에 신문을 읽던 아내가 추석에 해외로 떠나는 인파가 백만을 넘을 예정이라네, 새로운 뉴스이기라도 한 듯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돈도 많군, 그가 대꾸하자, 못 떠나는 사람들만 바본 거죠, 뭐. 아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딴 집 애들이 추석에 해외로 관광 가게 되니까 우리 애들도 우리도 한번 그래봤음 좋겠다, 하데요. 듣다 못해 그가 아내를 노려보자 아니, 애들은 그런 일에 민감하잖아요…… 아버지가 식탁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미쳤어? 지금 그게 할 소리야? 그가 다그치자 아내는 애들이 그랬댔지 내가 뭐랬다고 그래요? 아니 애들이 한 말도 못 전해요! 답답해 죽겠어요. 아무 말도 말고 살아요? 이번엔 아내가 식탁에서 먼저 일어서버렸다.

 

- 차례는 지내야 하지 않겠어?

- 니가 언제 차례 걱정했냐? 명절 때면 집에 코빼기도 안 비췄으면서 새삼 추석은 무슨!

- 내가 잘못했네. 그러지 말걸.

그는 여동생이 손톱을 문지르던 행동을 멈추고 두 손을 윗옷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다. 그 앞에서 긴장이 될 때면 여동생이 하는 버릇이다. 쯧.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가 언젯적 일이라고 아직도 저 버릇을 못 고치다니.

 

그들이 함께 살 때, 한 방에서 남동생과 셋이 자야 했을 때, 여동생은 벽 쪽에 눕고 그가 가운데에 눕고 남동생이 다른 벽 쪽에 누워 자곤 했다. 잠을 자다가 얼굴을 얻어맞고 놀라서 눈을 떠보면 남동생의 손이 그의 얼굴에 걸쳐져 있기도 했다. 가만히 내려놓고 다시 잠들라 치면 이번엔 여동생의 손이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 시골의 넓은 방에서 제멋대로 뒹굴며 자던 버릇이었다. 한번은 그가 눈을 얻어맞고 비명을 질렀다. 잠들었던 두 동생들이 그의 비명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 야! 너! 너!

뒤늦게야 사태를 파악한 여동생은 안절부절못하며 얼른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너 계속 그따위면 집에 가!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는 고갤 돌려 여동생을 보았다. 그가 그랬다고 여동생은 다음날 정말 엄마에게 갔다. 제 짐까지 챙겨 싸들고. 엄마가 다시 여동생을 데려왔다. 여동생을 그 앞에 무릎 꿇리고 잘못했다고 빌라고 했다. 여동생은 입을 꾹 다물었다.

- 빌라니까!

엄마가 다시 말해도 여동생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순해 보이지만 한번 고집을 피웠다 하면 누구도 꺾지 못했다. 중학교 때던가. 초등학생이었던 여동생에게 빨기 싫다는 운동화를 빨아달라고 억지로 맡긴 적이 있었다. 평소엔 다소곳이 깨끗하게 빨아주던 운동화였다. 그런데 그날은 분한 듯 씩씩거리더니 새 운동화를 도랑에 가지고 가 물에 떠내려 보내버렸다. 물에 떠내려간 운동화를 찾으러 도랑 끝까지 물길을 따라 뛰어다녔던 그런 날들. 세월이 이리 지나고 보니 오누이가 아니면 나눠 가질 수 없는 추억이 되었지만 물때와 물풀이 덕지덕지 붙어 푸른색으로 변해버린 운동화를 그것도 한짝만 겨우 건져 돌아와야 했던 그때는 그도 분이 나서 당장 엄마에게 고해바쳤다. 엄마가 어디서 그런 못된 성질을 배웠느냐며 부지깽이를 들어도 여동생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다. 되려 엄마에게 성을 냈다. 하기 싫댔잖아! 하기 싫다고 말했단 말이야! 난 하기 싫은 건 안하고 살 거란 말이야!

- 빌라고 했지. 여기선 오라비가 부모랬잖어. 오라비가 야단 좀 쳤다고 짐 싸들고 나가는 버릇 지금 안 고치면 너 평생 간다이. 시집가서도 쫌만 수틀리면 짐 싸갖고 나올 테냐!

엄마가 그에게 빌라고 할수록 여동생의 두 손은 주머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오히려 서러워진 엄마가 이젠 이 애도 내 말을 안 듣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부모라고 이 애도 나를 무시허네……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내보였다. 슬그머니 시작된 엄마의 한탄이 굵은 눈물방울로 이어졌을 때에야 여동생은 그건 아니야, 엄마! 말문을 열었다. 울음을 멈추지 않는 엄마를 달래느라 할 수 없이 여동생은 빌게요, 빌면 되잖아요, 그제서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그에게 빌었다. 그 후로 여동생은 잠을 잘 때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잤다. 그가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얼른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랬던 여동생이 엄마를 잃어버린 후엔 누가 뭘 조금만 지적해도 내가 잘못했네, 그러지 말걸,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인정했다.

 

- 집의 유리창은 누가 닦는대?

- 뭔 소리냐?

- 이맘때 전화하면 엄마가 집 유리창을 닦고 계시곤 했어.

- 유리창?

- 힘들게 유리창을 왜 닦고 있냐고 물으면 추석이라 식구들이 올 텐데 유리창이 더러우면 되냐면서.

그 앞으로 얼른 시골집의 수많은 유리창들이 스쳐지나갔다. 몇년 전에 새로 지은 집은 옛집의 문짝 대신 거실을 비롯한 모든 방에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 사람을 불러 닦으라고 하면 이런 촌에 누가 유리창을 닦으러 오냐… 그러셨어.

여동생은 한숨을 푹 내쉬며 택시 유리창에 손을 뻗더니 창을 벅벅 문질렀다. 엄마가 이맘때쯤이면 유리창을 닦았던가.

- 어렸을 땐 유리창이 아니라 추석 무렵에 집의 문짝들을 죄다 뜯어내곤 하셨는데… 그랬던 거 생각나?

- 난다.

- 생각나?

- 난다니까!

- 거짓말!

-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냐? 생각나. 문짝에 단풍잎 붙여두곤 했잖아. 고모한테 지청구 들으면서도.

- 진짜 기억하네. 그 단풍잎 내가 주워다주곤 했었어.

 

새집을 짓기 전에 엄마는 추석 무렵이면 볕 좋은 하루를 잡아 집 안의 문짝이란 문짝을 죄다 떼어냈다. 문짝들을 물로 싹싹 씻어내고 햇볕에 말린 뒤 풀을 쑤어 새 문종이를 발랐다. 문이 많은 집이어서 떼어낸 문짝들이 담장에 쭉 기대진 채 마르고 있는 걸 보면 아, 추석이 오는구나, 여겼다.

그는 흠흠, 괜한 목청을 가다듬었다.

집안에 남자들도 많았는데 왜 엄마가 문종이를 바를 때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여동생도 묽은 풀이 든 양동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휘휘 저으며 장난질이나 쳤던 것 같다. 엄마는 혼자서 풀비를 들어 마치 난을 치듯 쓱쓱 창호지에 풀칠을 한 뒤 말끔해진 문짝에 문종이를 척척 바르곤 했다. 경쾌하고 명랑해 보이는 몸놀림이었다. 그때의 엄마 나이를 훨씬 지난 지금의 그도 엄두가 나지 않을 일을 엄마는 마치 손가락을 접는 간단한 일처럼 순식간에 해냈다. 문에 새 문종이 바르는 일을 혼자 도맡아해내는 와중에 엄마의 낭만이 발동하는 순간이 있었다. 어느 순간 풀비를 든 엄마가 풀을 저으며 놀고 있는 여동생이나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묻는 그에게 단풍잎이나 따 오너라, 주문했다. 감나무, 자두나무, 쭝나무, 대추나무 등등 나무깨나 있는 집이었는데도 엄마는 그 집에는 없는 단풍나무 잎사귀를 주문했다. 엄마가 지목한 단풍잎을 따러 대문을 나서서 골목을 지나 도랑을 지나 신작로까지 나서서 고모집에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단풍잎을 따고 있는 그에게 건 뭐에 쓰려구? 묻던 고모가 니 에미가 시키디? 물었다. 아이구, 니 에민 그게 무슨 낭만이라냐! 한겨울에 단풍잎 붙은 문을 열라 치면 더 썰렁하기만 허더마는 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또 붙일 모양이구만!

그가 양손에 단풍잎을 가득 따다 갖다주면 엄마는 수많은 문짝의 문고리 바로 옆마다 반듯하고 예쁜 것 두장을 마주보게 편 뒤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발랐다. 문을 열 때마다 사람의 손이 타 찢어지지 말라고 창호지 한장을 덧바르는 자리였다. 그가 쓰는 방 문짝엔 다른 문짝보다 세장이나 더 많은 다섯장을 꽃처럼 펼쳐놓고 바른 뒤 정성스레 손바닥으로 꾹꾹 덧눌러주며 맘에 드냐! 물었다. 어린애가 손가락 다섯개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고모가 뭐라든 그의 눈엔 예뻐 보였다. 그가 멋지다고 하자 엄마의 얼굴에 함빡 웃음이 피어났다. 여름을 지내는 동안 문을 함부로 여닫느라 구멍이 숭숭 나거나 창호지가 찢어진 문을 두고는 명절을 맞이하기가 마뜩찮았던 엄마에게 새 문종이를 바르는 일은 가을맞이이며 추석맞이였다. 여름 지나 선득하게 달라진 바람에 식구들이 감기 들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발동해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그게 그 시절에 누린 엄마의 최대의 낭만이었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여동생처럼 양복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문고리 옆에 덧붙여진 단풍잎은 추석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흰 눈이 내릴 때도 그리고 새봄이 와 새 단풍잎이 돋을 때도 그 자리에서 식구들과 함께 있곤 했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그 문짝까지도.

 

역촌동도 옛날의 역촌동이 아니었다. 그가 이 도시에 맨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가졌을 땐 골목이 많고 주택이 많은 동네였으나 지금은 고층아파트들이 쭉쭉 뻗어 있고 의류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때는 역촌동 중심부에 있었던 서부시장을 찾지 못해 그와 여동생은 아파트 앞과 뒤를 두번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서부시장이 어디냐고 물어야 했다. 여학생이 저쪽으로 가면 나온다고 일러주는 방향은 그들이 이쪽일 거라고 생각하며 찾고 있던 곳의 반대편이었다. 그가 매일 지나치며 바라보던 공중전화박스가 있던 자리엔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었다. 아내가 갓 태어난 딸이 세살이 되면 입히겠다며 스웨터를 뜨기 위해 손뜨개를 배우러 다니던 털실가게 따위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 저긴가 봐, 오빠!

그때는 대로변에 있었다고 기억되는 서부시장은 새로 난 길 사이에 묻혀 간판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서부시장 앞이라고 했는데.

여동생이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먼저 뛰어가더니 그가 있는 쪽으로 돌아서서 상점들을 쭉 살펴보았다.

- 저기네!

여동생이 가리키는 쪽을 돌아다 보니 분식집과 피씨방 사이에 서부약국이란 간판이 보였다. 안경을 쓴 오십대 중반의 약사가 약국으로 들어오는 그와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여동생이 아드님이 가져온 전단지 보고 전화 주셨죠? 하고 묻자 약사는 안경을 벗었다.

- 근데 어쩌다가 어머니를 잃어버렸소?

엄마를 잃고 지금까지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듣기 거북한 소리였다. 엄마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리려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엄마를 찾으려고 하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매번 어쩌다가 어머니를 다 잃어버렸냐고 물어왔다. 그 질문에는 호기심과 질타가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세세히 서울역에서, 지하철역에서…… 설명하던 그들은 이제 그렇게 됐습니다, 하고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 어쩌다 잃어버렸느냐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혹시 치매요?

여동생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는 아니라고 했다.

- 그런데 찾는 마음이 어째 그렇소? 전화한 지가 언젠데 이제 오시오?

약사는 마치 일찍 왔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이 늦게 와서 방금 엄마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라도 한 양 말했다.

- 언제 보셨어요? 제 엄마 같아요?

여동생이 전단지를 내밀며 엄마를 가리키자 약사는 엿새 전에 보았다고 했다. 약국 건물 3층에서 살고 있다는 그 약사는 새벽에 약국 셔터문을 열려고 내려왔는데 옆의 분식집 쓰레기통 곁에 한 여자가 자고 있었다고 했다.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엄지쪽 발등이 깊이 패어 뼈가 들여다 보일 지경이었다고 했다. 상처가 곪아터지고 또 터져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했다.

- 내가 약사인데 그 상처를 보구선 그냥 둘 수가 없었소. 상처를 소독하는 게 우선인 거 같아서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와 소독제와 탈지솜을 꺼내가지고 갔더니 깨어 있습디다. 낯선 사람인 내가 발을 만지는데도 무기력하게 가만 있었소. 그 정도 상처면 소독할 때 비명을 질러야 옳은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내가 다 의아했소. 염증이 오래되어 농이 계속 흘러나왔소. 냄새도 지독히 났소. 소독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오. 소독을 마치고 약을 바르고 밴드로는 안되겠기에 붕대로 감아주었소. 아무래도 누가 보호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려고 안으로 들어와 전화를 걸려다가 혹시 누구 아는 사람이 있나 물어나 보려고 다시 나왔더니 배가 고픈지 쓰레기통에 버려진 김밥을 집어먹고 있습디다. 내가 밥을 먹게 해줄 테니 그건 버리라고 해도 안 버려서 내가 뺏어다 버렸소. 버리라고 해도 안 버리더니 뺏으니까 또 가만 있습디다. 우선 약국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소. 말을 못 알아듣는지 그래도 가만 있습디다. 혹시 귀를 못 듣소?

여동생은 가만 있었고 그는 아니라고 했다.

- 어디 사느냐? 아는 사람 이름이 있느냐? 알고 있는 전화번호를 대면 전화를 걸어주겠다, 별별 말을 다 해봐도 그냥 눈만 껌벅거리고 가만 있었소… 안되겠다 싶어 약국 안으로 들어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놓고 나와보니 없었소. 이상한 일이지. 전화 건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사이에 보이질 않습디다.

- 우리 엄만 파란 슬리퍼를 신지 않았어요. 베이지색 쌘들을 신었어요. 분명히 파란 슬리퍼예요?

- 그렇소. 하늘색 셔츠를 받쳐 입었는데 겉에 입은 것이 흰색인지 누런색인지 너무 더러워서 분간이 안 가긴 했소. 치마도 흰색이 더럼을 타서 베이지색이 된 건지 어쩐지 모르지만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소. 종아리는 모기에 뜯겨 성한 데가 없이 피투성이였고.

파란 슬리퍼만 빼고는 실종된 엄마의 복색이다.

- 여기 엄마는 한복 차림이잖아요. 머리스타일도 완전 다르고… 잃어버렸을 때 모습이 아니라 최고로 단장하고 찍은 사진이에요. 그분의 꼴을 보고 어떻게 우리 엄말 떠올리죠?

약사가 봤다는 사람의 행색이 너무 처참해서인지 그의 여동생은 엄마가 아니길 바라는 눈치였다.

- 이분 맞아요. 눈이 똑같았소. 내가 어려서 소몰이를 해봐서 이 눈을 많이 봤소.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거나 눈이 똑같은데 왜 몰라본단 말이오?

여동생이 약국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 그래서 경찰은 왔습니까?

- 바로 다시 전화를 했지. 사라져버렸으니 올 필요가 없다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여동생이 그의 축 처진 어깨와 느린 걸음을 보고는 어린이 놀이터의 나무의자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은 탓인지 놀이터에 아이들은 없고 산책 나온 노인들 몇몇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약국에서 나온 그와 여동생은 새로 생긴 아파트 안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두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흩어졌다. 그는 그가 살던 때의 집들이 사라지고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 쪽을, 여동생은 옛날 거리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 서부시장 쪽을 뒤졌다. 혹시 엄마일지도 모를 그 여인이 분식집 옆의 쓰레기통에서 김밥을 주워먹었다는 얘기를 들어서일 것이다. 그는 모든 건물의 쓰레기통 옆을 유심히 살폈다. 아파트 분리수거함들이 놓인 곳도 빠짐없이 훑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가 살던 집이 있던 자리는 어디쯤일까 가늠해봤다. 이 동네에서 가장 길었던 골목 끝에서 두번째 집. 골목이 너무 길어 밤늦게 귀가할 때면 두번쯤은 뒤돌아보아야 도착할 수 있었던 그 집.

 

혹시 엄마가 그 집을 찾아 여기에 왔던 것일까?

 

그 집에 처음 방문하던 날 엄마는 시골에서 웬만한 찜통 크기의 양은주전자에 가득 팥죽을 끓여서 들고 서울역에 내렸다. 자동차가 없던 때라 마중을 나간 그가 팥죽이 든 주전자를 받아들며 이 무거운 걸 뭐하러 들고 왔느냐고 짜증을 내도 엄마는 마냥 웃기만 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이 집이냐? 묻고 지나치면 다음 집을 가리키며 저 집이냐? 물었다. 그가 그 옛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이 집이에요, 했을 때 엄마의 얼굴에 번지던 웃음. 대문을 슬쩍 밀어보는 엄마는 여행을 떠나온 소녀 같았다. 와, 마당도 있구나. 감나무도 있고 이건 뭐냐 포도나무 아니냐! 엄마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팥죽 주전자에서 팥죽을 한사발 덜어내 집구석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뿌렸다. 이래야 나쁜 운이 못 들어온다, 했다. 이 도시에 처음 집을 갖게 된 건 마찬가지였던 그의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방 세개 중 하나의 방문을 열어 보이며 이젠 여기가 어머니 방이에요, 서울에 오시면 이제 여기서 편히 주무세요, 하자 엄마는 방 안을 들여다보며 내 방도 있느냐!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밤 자정도 지나서였다. 마당에 기척이 느껴져 그가 방 안에서 창으로 마당을 내다봤다. 엄마가 마당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엄마는 대문을 만져보고 포도나무를 만져보고 현관으로 들어오는 계단에 앉아보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감나무 아래로 가서 서보기도 했다. 밤새 엄마가 그 집의 마당을 서성거릴 것 같아 그가 창을 열고 내다보며 그만 들어와 주무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너는 왜 안 자냐! 하더니 그의 이름을 처음 불러보는 사람처럼 은근히 형철아 이리 좀 나와봐라, 했다. 그가 마당으로 나오자 엄마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제 문패만 달면 되겠구나. 문패는 꼭 이 돈으로 해라. 그가 문패값이 든 봉투를 든 채로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는 빈손을 마주 비볐다.

- 엄마가 미안하다, 니가 집을 사는디도 아무것도 못히줘서.

 

그날 첫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그는 엄마가 자고 있는 방의 문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엄마는 여동생과 나란히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엄마의 입은 벌어진 채 웃고 있었고 여동생의 팔은 자유롭게 저만치 뻗쳐 있었다.

 

서울에서의 첫 밤을 스무살이던 그와 동사무소의 숙직실에서 보낸 후로도 여태껏 엄마는 서울에 와도 편히 잘 방이 없었다.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에 온 엄마를 그나 동생들이 보러 가는 그때도 엄마의 짐은 한보따리였다. 엄마는 결혼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나 동생들을 재촉해 그들이 살고 있는 자취방으로 왔다. 엄마는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입었던 양장을 재빨리 벗었다. 엄마의 보퉁이에선 신문지에 싸고 비닐에 싸고 때로는 호박잎에 싼 것들이 수두룩이 쏟아졌다. 엄마가 보퉁이 한구석에 둘둘 말아 끼워둔 헐렁한 셔츠와 잔꽃무늬 몸뻬바지로 갈아입는 데는 일분도 안 걸렸다. 신문지와 비닐과 호박잎 속에서 나온 밑반찬들을 찬장의 그릇에 옮겨 담아놓은 뒤 엄마는 손을 탁탁 털고서는 얼른 이불을 뜯어 빨았다. 절여서 물을 빼온 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연탄불이나 곤로에 그을린 밥솥을 쇠솔로 박박 문질러 윤이 번쩍 나게 닦고 그사이 옥상에 널어놓아 볕에 마른 이불을 꿰매주고 쌀을 씻고 된장국을 끓여 저녁상을 보았다. 상 위엔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온 장조림, 멸치볶음, 깻잎김치 들이 접시마다 소복이 놓였다. 엄마는 그와 동생들이 밥을 뜨면 밥숟가락에 장조림을 하나씩 얹어주었다. 엄마도 먹으라고 하면 나는 배부르다…… 했다. 그들이 물린 상을 치우고 수도꼭지 밑에 받쳐져 있는 고무통에 물을 가득 받아 수박 한 통을 사다 띄워놓은 뒤 엄마는 또 재빨리 결혼식장에 갈 때만 입는 단벌 양장으로 갈아입고는 나 좀 서울역에 데리다도라, 했다. 그땐 이미 밤이었다. 하룻밤만 주무시고 가라, 해도 엄마는 나는 가야 헌다, 낼 볼일이 있다, 했다. 엄마한테 볼일이란 밭일이거나 논일이었다. 밭일이나 논일이 하룻밤 자고 간다 해서 잘못될 것도 없음에도 엄마는 그 밤에 기어이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방이 두개도 아니고 한개뿐이어서였으나, 다 자란 자식 셋이 맘껏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로 부딪칠까 봐 웅크리고 자야 하는 방이라서였으나 엄마는 그저 나는 가야 한다, 낼 볼일이 있다, 했다.

 

빈손으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기다리는 서울역에서 엄마의 고단한 모습은 그에게 늘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했다. 어서 돈을 벌어 방 두개가 있는 곳으로 옮겨야지. 전셋집을 얻어야지. 이 도시에 어서 집을 가져야지. 그래서 저 여인이 편히 자고 갈 수 있는 방을 마련해야지. 그는 엄마가 밤기차를 타고 돌아갈 때마다 입장권을 끊어 엄마와 함께 기차가 서 있는 역 구내로 들어갔다. 엄마가 앉을 좌석을 찾아주고 엄마 손에 바나나우유나 붉은 귤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 졸지 말고 꼭 J역에 내리세요.

엄마는 슬픈 얼굴로, 어떤 때는 단호한 얼굴로 그를 단속했다.

- 여그서는 동생들한테 니가 아비고 어미다.

고작 스물몇살의 그가 손을 비비고 서 있으면 엄마는 좌석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바르게 펴주고 어깨도 바르게 펴주었다.

- 형이 의젓해야 쓴다. 형이 본보기가 되어야 해. 형이 엇나가믄 동생들도 그 길로 가는 법이다.

기차가 떠나려 하면 엄마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고인 눈으로 엄마는 그를 보며 웃었다. 그러곤 말했다. 엄마가 미안하다, 형철아.

 

그의 엄마가 J역에 내렸을 때는 꼭두새벽이었을 것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첫 버스는 빨라도 아침 6시가 지나서 있었을 것이다. 그의 엄마는 기차에서 내려 새벽길을 걸어걸어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 전단지라도 더 가져왔으면 붙이고라도 갈 텐데.

- 내일 내가 가져와서 붙일게.

그는 내일 홍천으로 사장 측근들을 수행해야 했다.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 진이 엄마 보낼까?

- 올케는 쉬게 둬. 아버지도 계신데.

- 그럼 막내를 부르든지.

- 그 사람이 도와줄 거야.

- 그 사람?

- 엄마를 찾으면 그 사람이랑 결혼하려구. 엄마가 나 결혼하길 원했잖아.

- 그리 마음먹기 쉬운 일이었음 진작에 할 일이지.

-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니 모든 일에 답이 생기네, 오빠. 엄마가 원하는 거 그거 다 해줄 수 있어. 별일도 아니었어. 내가 왜 그런 일로 엄마 속을 끓였나 몰라. 비행기도 안 탈거야.

그는 침울해져 여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엄마는 여동생이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사고가 나면 한꺼번에 이백명도 넘는 사람이 죽는다는데 무섭지도 않으냐는 것이었다. 전쟁통이라면 자기 힘으론 할 수 없어 그런다지만 어찌 그리 자기 목숨을 허망하게 내놓고 다니느냐는 것이 엄마의 의견이었다. 비행기 타지 말라는 엄마의 간섭이 심해지자 여동생은 엄마 몰래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개인적인 여행을 가든 일로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갈 일이 생기면 여동생은 엄마에겐 알리지도 않고 떠났다.

 

- 그 집의 장미꽃이 참 이뻤는데……

그가 어둠속에서 여동생을 응시했다. 그도 막 그 집의 장미를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가 집을 갖게 되고 처음 맞이한 봄에 서울에 온 엄마는 장미를 사러 가자고 했다. 장미요? 엄마의 입에서 장미라는 말을 듣자 그는 마치 잘못 듣기라도 한 듯 장미 말인가요? 다시 물었다. 붉은 장미 말이다, 왜? 파는 데가 없냐? 아뇨, 있어요. 그가 엄마를 구파발에 쭉 늘어서 있는 묘목을 파는 화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엄마는 나는 이 꽃이 젤 이뻐야, 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장미 묘목을 사와서 담장 가까이에 구덩이를 파고 허리를 굽혀가며 심었다. 그는 엄마가 콩이라든지 감자라든지 들깨가 아닌, 배추나 무나 고추같이 씨앗을 뿌리든 모종을 하든 수확해서 먹을 것이 아닌, 보기 위해서 꽃을 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엄마의 그 모습이 낯설어 그가 담과 너무 가까이에 심는 거 아니냐고 하자 엄마는 담 바깥에 사람들도 지나다님서 봐야니께, 했다. 그 집을 떠나올 때까지 봄마다 장미는 만발했다. 장미를 심을 때의 엄마의 소망대로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장미가 필 적이면 그 집의 담장 아래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큼큼 장미향기를 맡았다. 비가 오고 난 뒤면 담장 아래 떨어진 붉은 장미꽃잎이 수두룩했다.

 

저녁밥 대신 역촌동의 대형마트 안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두잔 마신 여동생이 가방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어느 쪽을 펼쳐 그 앞에 내밀었다. 생맥주 두잔인데 빈속에 마신 것이어서인지 여동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여동생이 내민 수첩에 적혀 있는 문장을 불빛에 비춰가며 읽었다.

 

나는 앞을 못 보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생각이다.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나는 돈을 많이 가지게 되면 소극장을 소유하고 싶다.

나는 남극에 가보고 싶다.

나는 싼띠아고 성지 트레킹을 떠나고 싶다.

 

밑으로 서른칸은 넘게 나는…으로 시작되는 문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 이게 뭐냐?

- 지난 12월 31일날 새해를 맞이하며 글 쓰는 거만 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재미로 적어본 거야. 앞으로 십년 동안은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거나 하고 싶은 것들. 근데 내 어떤 계획 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 하겠다는 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렇더라구.

여동생의 눈이 물기로 반짝였다.

 

술에 취한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초인종을 눌렀으나 안에서 문을 여는 기척이 없었다. 그는 몸을 비틀거리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땄다. 여동생과 헤어져 집에 오는 동안 그는 술집을 두군데 들렀다. 어쩌면 엄마일지도 모르는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는, 어찌나 걸었는지 슬리퍼에 발등이 패어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는 사람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술을 한잔씩 더 마셨다. 실내등이 켜진 거실에 정적이 흘렀다. 엄마가 가져다놓은 성모상이 그를 응시했다. 그는 비척거리며 안방으로 가려다가 아버지가 기거하고 있는 딸의 방의 문을 슬며시 밀어보았다. 딸의 침대 아래 요를 깔고 등을 모로 세우고 잠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 밀려나간 이불을 끌어당겨 아버지를 덮어주고 가만히 문을 닫고 나왔다. 부엌으로 들어가 식탁에 놓여 있는 물병을 기울여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도 여전하고 설거지를 뒤로 미루기 좋아하는 아내가 개수대에 쌓아놓은 그릇들도 그대로다. 그는 얼굴을 떨구고 안방으로 들어가 자고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내의 목에서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그는 아내가 덮고 있는 침대 시트를 확 젖혔다. 아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 언제 왔어요?

지금 잠이 오느냐!는 무언의 질타를 내포하고 있는 그의 거친 행동에 아내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후 날이 갈수록 그는 불쑥불쑥 화가 치밀었다. 집에 들어오면 화가 더 났다. 지방에 살고 있는 셋째가 전화를 걸어와 상황을 물으면 몇마디 대꾸해주다가 니가 나한테 알려줄 건 없냐! 너는 대체 뭐하는 놈이냐!고 버럭 성을 냈다. 아버지가 당신이 서울에 있다 한들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시골에 내려가겠다고 할 때도 그는 시골에서 뭐하시게요! 언성을 높였다.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식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출근하기 일쑤였다.

- 술 마셨어요?

아내가 그가 쥐고 있는 침대 시트를 빼내 펼쳐놓았다.

- 잠이 와!

아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 잠이 오냐구!

-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구요!

참다 못한 아내가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 당신 때문이야!

억지라는 것을 그도 알았다.

- 왜 나 때문이에요?

- 마중 나갔으면 됐잖아!

- 진이 반찬 갖다주러 갔다 왔다고 했잖아요.

- 왜 그날 가! 부모가 시골에서 올라온다는데 그것도 생신이라서 올라오는데 왜 하필 그날 갔냐구!

- 아버님이 혼자서 찾아오실 수 있다고 했다구요! 그리구 서울엔 우리만 있어요? 둘째네도 있고 아가씨네도 있고… 막내도 있잖아요. 서울에 오신다고 꼭 우리 집에 계셔야 하는 법이라도 있느냐구요. 진이한텐 이주일째 가보지 못해서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안 가봐요. 나도 진이한테 다니랴 어쩌랴 몸이 부서진다구. 게다가 진이도 시험인데… 진이한테 그게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 줄 알고나 있어요?

- 다 큰애를 언제까지 반찬해서 날라다주고 있을 거며 할머니를 잃어버렸다는데도 얼굴도 안 비추는 애야.

- 진이가 와서 뭘 해요? 내가 오지 말라구 했어요. 우리도 찾아볼 만큼 다 찾아봤잖아요. 경찰도 못 찾는 걸 우리가 어떡해요. 서울의 이 많은 집들마다 초인종 눌러가며 혹시 여기 우리 어머니 안 계시냐고 물어요? 어른들도 속수무책이라 이러구 있는 판인데 진이가 뭘 하느냐구. 학교 다니는 아이는 학교 다녀야지, 그럼 어머니 안 계시다고 우리 모두 자기 일 팽개치고 말아요?

- 안 계신 게 아니라 잃어버렸잖아.

- 글쎄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구요! 당신도 회사 다니잖아요!

- 뭐?

그가 분개해서 방 안에 있는 골프채를 집어던지려고 할 때였다.

- 형철아!

딸의 방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열린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손에서 골프채를 내려놓았다. 그와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가 몸을 돌렸다. 자식들 편하라고 생신을 지내러 서울에 온 아버지였다. 예정대로 생신이 치러졌다면 아내가 예약해놓은 한정식집이 차려낸 식탁 앞에서 엄마는 또 내 생일도 이거와 함께인 거다!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리는 통에 생신을 치르기로 한 날도 그냥 지나갔고 아버지 생신 며칠 뒤에 연이어 있는 시골 제사도 작은집과 고모가 지냈다.

그가 따라나갔을 때 아버지가 방문을 열다가 뒤돌아보았다.

- 다, 내 죄다.

- ………

- 싸우지 마라. 니 마음 모리는 것 아닌디 그런다고 뭔 방도가 있냐. 나 만나 못나게 살었지만 덕이 많은 사람인게 살어는 있을 것이여. 살어 있으믄 뭔 소식이 오지 않겄냐.

- ………

- 내일 집에 갈란다.

아버지는 잠시 그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불쑥 가슴으로 열기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두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습관처럼 얼굴을 비비려다가 손을 내렸다. 엄마의 온화하고 투박한 손길이 느껴졌다. 엄마는 그가 손바닥을 마주 비비거나 어깨를 움츠리는 것을 싫어했다. 엄마 앞에서 그 모습을 보이면 엄마는 당장 그의 손바닥을 펴주고 어깨를 바로 세워주었다. 그는 검사가 되지 못했다. 엄마는 그에게 니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에 꾸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엄마가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게 당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미안한 사람은 저예요, 나는 약속을 못 지켰으니까. 엄마를 찾아내면 오로지 엄마만을 돌보고 싶은 욕망으로 그의 가슴이 터질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이미 그럴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