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농무』 『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등이 있음.

 

 

 

하느님은 알지만 빨리 말하시지 않는다1

 

 

이레 동안 줄기차게 비가 내려 강이 넘치고 성난 강물이 한밤중에 강마을을 덮쳤다.

죽고 다치고 떠내려가고 부서지고…… 백여 호 중 멀쩡하게 살아남은 곳은 단 세 군데, 교회와 동사무소와 슈퍼마켓.

건설현장에 함께 노무자로 다니던 부자는 십리 아래 갯벌에서 따로따로 시체로 발견되었다.

슈퍼마켓의 판매원 처녀는 반 토막이 난 달개방에 휩쓸려 떠내려가서는 열흘이 넘도록 찾아지지 않았다.

바쁠 때만 동사무소에 나가 일을 도와주는 늙은 퇴직 공무원은 큰 바위에 다리가 깔려 산송장이 되었다.

노래방에 도우미로 나간다고 풍문이 돌던 동사무소 아랫집 젊은 새댁은 다리 난간을 붙잡고 겨우 목숨을 구했으나 뱃속의 아기를 잃었다.

 ………

 

모처럼 햇살이 눈부신 주일날, 수마가 할퀴고 간 폐허 위라서 더 밝고 환한 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목사 소리 높여 설교하기를 “하느님은 알지만 빨리 말하시지 않는다.”

집을 잃고 이웃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엎드려 오오 하느님 울부짖기만 할 뿐,  감히 질문하지 못하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빨리 말하시지 않는다는 것인지, 하느님이.

 

 

 

용서

 

 

성당 앞 골목에서 아이들이 개미떼를 짓밟고 있다.

어떤 놈은 몸이 두 동강이 나고 어떤 놈은 머리가 땅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다리가 몽땅 떨어져나가 몸통만을 가지고 땅바닥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놈도 있다.

아이들은 더 신명이 난다. 조각조각 찢다 못해 가루가 되도록 짓이기는 녀석도 있다.

개미굴은 아예 까뭉개져 자취도 없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개미가 되어 거대한 존재한테 짓이겨지는.

내가 사는 도시가 조각배처럼 흔들리고 큰 건물들이 종이 집처럼 맥없이 주저앉는.

나와 내 이웃들이 흔들리는 골목을 고래의 뱃속에서처럼 서로 부딪치고 박치기를 하며 우왕좌왕하는.

우리가 사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우리의 존재와도 우리의 생각과도 우리의 증오와도 우리의 사랑과도 그밖의 우리의 아무것과도 상관이 없는 그 거대한 존재를 향해, 오오 주여, 용서하소서, 끊임없이 울부짖는.

천년을 만년을 그렇게 울부짖기만 하는.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무엇 때문에 용서하는지도 모르면서.

 

 

__

  1. 똘스또이의 동화 제목에서 따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