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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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河鍾五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님 시편』 『님』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등이 있음. hajongoh@hanmail.net

 

 

 

컨테이너 신혼방

 

 

1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스리랑카 여자가 눈 맞아

염색공장 옆 컨테이너에 살림을 차렸다

살림살이라고는 남녀 옷가방 하나씩이지만

벌써 아이를 배었다

그들이 쓰는 공용어는 한국어

한국어로는 전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서

야근 끝난 뒤 컨테이너 앞에 나앉아

남자는 우즈베키스탄 쪽 하늘을 같이 보려 하면서

한국의 겨울보다 함박눈이 더 내리는

고향을 몸짓으로 그려 보이고

여자는 스리랑카 쪽 하늘을 같이 보려 하면서

한국의 여름보다 해가 더 이글거리는

고향을 몸짓으로 그려 보였다

배불러오는데도 여자가 매일 야근하다가

하혈을 하면서 드러눕고

남자가 간병하느라 연일 야근을 못하자

염색공장 사장이 불법체류자로 신고하였다

옷가방 하나씩 달랑 챙겨들고서

우즈베키스탄 남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추방당했고

스리랑카 여자는 스리랑카로 추방당했다

 

 

2

네팔 처녀는 인도로 내려서자마자 주저앉고

네팔 청년은 우두커니 내려다보다가

일으켜세워 부축하고는 염색공장으로 향했다

도로변 축대에서 개나리 노란 꽃이

핑그르르 핑그르르 떨어져내렸다

제 영토에서 태어나는 아이를

제 국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에선

어미의 뱃속에서 죽는 게 운명이라고

처녀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임신 삼개월에 유산을 했고

의사는 푹 쉬라는 처방만 내렸다

오늘밤에도 야근을 하지 못하면

컨테이너를 비워주고 나와야 한다고

청년은 혼자 속으로 한숨쉬었다

길바닥에 자꾸자꾸 떨어지는

개나리 노란 꽃을 밟지 않으려고

처녀와 청년은 멈춰서서 생각하였다

고산지대 고향에선 여자가 아이를 배면

나무의자에 앉아 먼산바라기하며 쉬도록 놔두던가

십리 길 염색공장까지 걸어오면서

네팔 처녀는 철야라도 시키면 해야겠다고 이를 악물고

네팔 청년은 이달엔 체불임금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케팅 에피소드―쇼핑 카트

 

 

후발업체 대형할인마트에서는

선발업체 대형할인마트보다

쇼핑 카트를 더 크게 만들어놔야 할지

더 작게 만들어놔야 할지

담당자들이 종일 고민하고 있다

(고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넓이 엇비슷한 매장에

쇼핑 카트를 더 크게 만들면

고객이 상품을 더 실을 수는 있지만

판매대를 더 작게 만들어야 하므로

더 많은 가짓수를 진열할 수 없으니

매출이 늘지 줄지 알 수 없다

(고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넓이 엇비슷한 매장에

쇼핑 카트를 더 작게 만들면

고객이 상품을 더 실을 수는 없어도

판매대를 더 크게 만들어서

더 많은 가짓수를 진열할 수 있지만

매출이 늘지 줄지 알 수 없다

(고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후발업체 대형할인마트에서

선발업체 대형할인마트와

똑같은 가격으로 똑같은 상품을 팔아야 한다면

쇼핑 카트의 크기에서 결딴이 날지 안 날지

담당자들이 종일 고민하고 있다

(고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