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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비정규직, 현대판 신분제인가

 

 

박태주 朴泰鉒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전 대통령비서실 노동개혁태스크포스 팀장. 저서로『한국 노동시장의 현황과 과제』등이 있다.

 

오건호 吳建昊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 전 민주노총 정책부장. 저서로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등이 있다

 

ⓒ이영균

ⓒ이영균

 

 

오건호 해마다 5월 1일 노동절을 맞으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주창하는 구호가 많이 들립니다. 그전에는 그런 구호가 당위적인 가치로 여겨졌는데, 지금은 왠지 노동자 내부에 존재하는 커다란 장벽을 염두에 둔 무거운 주장으로 느껴집니다. 창비에서 마련한 오늘의 대화 주제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모두가 우리 사회 핵심 의제로 비정규직을 이야기합니다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원인 진단, 책임주체, 해결방법 등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박태주 노동전문지가 아닌 창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삼은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얼마나 중요한 현안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웃음) 지금 양극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놓여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소득격차는 벌써 5.4배를 넘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소득수준의 양극화는 근로소득의 양극화에서 비롯됩니다. 2007년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86.4%에 달하거든요. 남녀별, 기업규모별, 학력별 임금격차도 크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이는 이른바 합수(合水)지점이 비정규직이라는 겁니다.

오건호 선생님 말씀을 좀더 일상적인 말로 풀어보면,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는 희망이 상실된 사회를 뜻하겠지요. 그전에는 비록 가난하게 태어나고 부모가 재산이 없다 해도, 내가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일해도 못산다, 나만 못살 뿐 아니라 내 자식도 못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최소한의 자기존엄이라든지 사회적 가치 등에 대한 신뢰마저 약해져가는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극화 문제의 접점

 

박태주 운좋게 돈많은 부모에게 태어나는 것을‘정자복권’(sperm lottery)에 당첨되었다고 빗대죠.(웃음) 비정규직에서 비롯되는 빈곤의 대물림을 말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지금 양극화와 더불어 또 하나의 화두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화의 진전이라고 보면,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집단도 역시 비정규직입니다. 세계화의 진전이 규제완화나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양산을 촉진하고 있다는 거죠.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극화가 만나는 지점이 비정규직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비정규직 연구를 하면서 외국 논문들을 참고할 필요가 별로 없을 정도예요. 이 문제가 우리나라만큼 심각한 데가 없기 때문이죠.

오건호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지나치게 노동시장의 문제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비정규직 문제를 삶의 희망 상실이라고 얘기한 건 그것이 단순히 임금과 고용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노동자에게는 시장에서의 직접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를 통한 간접임금 혹은 사회임금도 중요합니다. 지금 한국의 사회복지, 사회안전망 제도상으로는 사회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즉 사회복지제도 내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들만 혜택을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비정규직은 고용이나 임금에서 일차적 차별을 당하고, 사회적 제도에서 이차적 차별을 당하는 거죠. 예컨대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에게는 매우 우호적인 제도입니다. 워낙 수익비(총급여액/총보험료액)가 높기 때문이죠. 비록 보험료 저항이 있지만 결국엔 자기가 낸 것의 4~5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보험의 0.8배와 비교해선 놀라운 혜택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노후에 연금수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노동시장의 차별이 노후의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죠.

건강보험에서도 사업장 가입자 자격을 얻지 못하기에 지역가입자로 본인이 보험료를 전부 내야 합니다. 여러차례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는데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기도 어렵구요.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거의 집 없는 서민들입니다. 투기적 부동산시장의 최종 피착취자로서 높은 전세값, 임대료에 시달리며 자산에서도 양극화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금융취약자여서 살인적 고금리 대출시장의 희생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같은 중층의 차별구조가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죠.

박태주 문제는 지금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비정규직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마저도 자신들의 미래가 비정규직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겁니다.

오건호 사회운동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에 대한 해법이 안 보여 갑갑해요. 사실 고용불안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규모나 차별의 폭, 비정규직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비교해본다면, 한국사회는 도가 지나칩니다. 적어도 노동력을 사용한 만큼, 그 노동력이 재생산될 만큼은 품삯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기업의 인식이 규제받지 않은 채 통용되는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얼마나 있다고 추산되나요? 이에 대해선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논란도 있는데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시대

 

박태주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규정이 합의되지 않았지만, 2007년 통계로 비정규직이 860만명 정도, 정규직이 730만명 정도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5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제 길을 막고 물어보면 비정규직이 더 많을 만큼 전형적인 노동자는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얘기죠.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고 차별이 심한 나라가 없어요. 정규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정규직 임금의 50% 정도를 받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사회복지로부터 배제당하고 근본적으로는 고용불안에 떨고 있어요.

오건호 방금 수치를 언급하셨는데, 노동계는 약 55%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하고, 정부는 35% 조금 넘는다고 하니까, 이 두가지 통계는 20% 정도 차이가 납니다. 규모로는 약 3백만명이 될 겁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명확한 개념규정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개념을 짚어봐야겠네요.

박태주 일반적으로 누가 비정규직이냐고 묻는다면, 정규직이 아닌 사람이 비정규직입니다. 그러면 누가 정규직인가? 정규직은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고용의 상시성, 다시 말해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이 첫번째 요건입니다. 두번째로 정규직들은 전일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정규직은 사용자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계약관계와 지휘명령 계통이 같다는 얘기입니다. 이 세가지 요건이 주어져야 정규직이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첫번째에 대응하는 게 고용기간의 정함이 있는 사람, 즉 기간제(期間制) 노동자들이고, 두번째에 대응하는 게 시간제 근무, 단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번째는 간접고용, 즉 용역, 파견, 도급 또는 가내근로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밖에도 이른바 특수고용직이 있습니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사업주로 되어 있어 다른 사용자와 근로계약이 아니라 사업계약을 맺고 있죠. 형식적으로는 사장 즉 사용자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그들에게서 지휘명령을 받는 사람들을 말하죠. 가령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경기 보조원, 화물차나 레미콘 기사 등입니다. 이들이 이른바 비정규직입니다.

또 개념상으로 학계에서 또는 학계와 정부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게 장기 임시근로자입니다. 임시근로자란 한달 이상 1년 미만의 계약을 맺은 사람들인데, 근로기준법에서는 이러한 고용계약이 반복적으로 갱신되면 정규직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들을 상시고용 즉 정규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정리하면,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이 비정규직이고, 앞서 말한 정규직의 세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비정규직이라는 겁니다.

오건호 제가 보기에도 비정규직 규모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게 장기 임시근로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계약 관념이 약하다 보니까 조그마한 회사에서 계약서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들도 많고요. 일자리는 장기인데 고용형태가 임시로 반복되기 때문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지요. 노동부에서는 이들을 취약계층이라는 범주로 따로 취급해버립니다. 저는 비정규직의 본질이 고용의 불안정 그리고 그로 인한 차별이라고 보기 때문에, 단지 고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비정규직에 포함하지 않는 것은 관료적 형식논리라고 봅니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장기 임시근로자들의 고용조건은 대단히 불안정해요. 월급도 120만원대로 정부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거의 비슷하고요. 사회보험 가입비율도 30% 이하로 매우 낮습니다. 그들을 비정규직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죠. 최근에는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곧 중소기업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고용의 차별이 기업간 규모의 차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태주 중소기업 문제는 왜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이렇게 빨리 증가했는지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혹은 시장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거의 자영업에 가까운 영세기업들 간의 위계와 착취구조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청기업이 외주나 하청을 통해 단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그래서 거기 속한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 악화되는 연결고리를 말하는 거죠.

기업환경의 변화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치열한 국제경쟁과 더불어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거든요. 기술혁신 속도도 매우 빠르고 소비자의 기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중요해졌습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고용의 유연화, 국제경쟁에 대처하기 위한 저임금, 때로는 노조회피 전략의 일환으로 비정규직을 쓰고 있죠. 문제는 이러한 기업의 노동자 사용전략을 정부가 법제도적 규제라는 그물망을 쳐서 걸러내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그물망을 걷고 있는 실정이죠. 노조의 규제력도 솔직히 많이 줄어들었고요.

오건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요인들에 대해선 의견이 비슷한 듯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주체의 대응으로 논점을 옮겨가볼 필요가 있겠는데, 저는 자본에 맞서는 운동주체로서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노력은 했겠지만 사회적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의미를 넘어 그로 인해 정규직 노동운동 자체의 정당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동의 위기와 두가지 차원의 연대

 

박태주 공감이 가는 말씀인데, 노동운동의 위기, 노동의 위기에 진보의 위기까지 더해지고 있어요. 특히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진영이 이른바 지리멸렬한 상태인데, 새로운 노동운동이나 진보개혁운동을 재활성화하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가 저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노동운동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노조의 낮은 조직률이나 기업별 체제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비판받고 소외당하는 현실입니다. 여기에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비정규직을 같은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 껴안기보다는 그들을 고용의 안전판이자 임금인상의 보완물로, 때로는 도덕적 배제의 대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즉 비판의 핵심은 노동운동이‘제 밥그릇 챙기기’운동으로 전락했다는 거죠.

오건호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은 87년 투쟁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했고, 90년대 들어와서는 법적 시민권까지 확립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도 만들어졌고요. 저는 서구 노동운동이 1백년 전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 노동운동도 제도권밖 투쟁을 시작으로 해서 그 성과를 제도화해 완전한 법적 시민권을 획득해나가고, 이어 진보정당운동으로 정치적 권리를 확대해가는, 누적적인 발전경로를 밟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아 우려됩니다. 사회운동의 힘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얼마나 신뢰와 승인을 받느냐에 달려 있는데, 지금 노동운동의 법적 시민권은 분명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시민권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것을 노동운동이 무겁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태주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노동운동이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껴안을 수 있는 정체성의 확립도 필요하겠습니다만, 노동운동이 조직, 투쟁 측면에서 스스로의 동력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지를 비정규직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에 노조로서도 이들은 핵심적인 조직자원입니다. 또한 최근 정규직 노사관계는 급속히 안정되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사관계는 불안정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주요한 투쟁자원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큰 틀에서 그 해법을 연대, 두가지 차원의 연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연대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단체의 이른바 사회적 연대입니다. 두가지 연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문제를 껴안으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연대할 때 이루어지겠지요.

오건호 저는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이 그것을 방기하지는 않았다고 봐요. 그렇지만 훨씬 더 지혜롭고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는 비정규직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우리 안에 관성적으로 녹아 있는 기존의 인식틀이 너무 강력하다는 걸 가끔 느낍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정규직 노동운동에서 비정규직 연대를 바라보는 접근법이 완전히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부족하다는 의미예요. 앞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제기되었는데, 저는 이 연대가 투쟁연대로 환원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랜드사태를 예로 들면, 조합원들이 기금을 모아서 생계비를 지원하고 집회에 같이 참여합니다. 이건 굉장히 높은 수위의 투쟁이고 중요합니다. 사실 이런 투쟁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대단히 선도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죠. 그런데 민주노총, 진보정당 등 진보적 사회운동 측에서는 단지 생계비를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진보적 시각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수긍할 수 있는 스토리’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벌여야 합니다. 그나마 어렵게 활동하는 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전국적 조직이라면 비정규직 의제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죠.

박태주 얼마 전 이랜드 노동자 한명이 이랜드투쟁 300일을 맞아 민주노총은 깃발을 내리라고 말했더군요.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이랜드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민주노총의 깃발을 내리겠다”고 한 말을 비꼰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더라도 책임을 노동운동에만 물을 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사회적 연대와 관련해서, 이른바 엘리뜨, 명망가 중심의 진보운동에서 노동 개념은 추상화되고 관념화되어왔어요. 지금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성장담론을 밀어붙이고, 벌써부터 기업친화적이고 노동배제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저항의 연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진보진영의 중요한 과제라면, 거기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결합, 또 이를 위한 노동운동의 적극적인 노력과 더불어서 진보진영도 이제 평론가나 계몽자의 자리에서 대중의 살아 있는 삶의 현장으로‘하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이어주는 핵심고리 가운데 하나가 비정규직이 되리라고 본다는 거죠.

오건호 이제 구체적 쟁점인 비정규직화 혹은 유연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난 배경에는 초기 담론지형에서 기업이 주도권을 행사한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기업은 비정규직화를 유연화로 설명했죠. 유연화란 말은 매우 긍정적인 기업 경영조치라는 인상을 줍니다. 만약 노동 측에서 담론 생산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었다면 유연화를 기업들에 의한‘고용의 불안정화’, 비정규직화라고 공론화했겠죠. 똑같은 현실을 두고 어떻게 개념화하느냐에 따라 논의방향이 달라지는 것이죠.

덧붙이면, 지금 이명박정부에서 추진하는 규제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제란 말이 속박한다는 의미니까 사람들은 규제가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규제완화가 자유, 해방이라는 의미로 들린다는 겁니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거대권력이 시장에서 자신의 권한을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전체 구성원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거예요. 그래서 규제는 일종의‘공공성의 제도화’인데, 그쪽에서는 이것을 대단히 속박적인, 자유주의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거죠. 공기업 민영화도 관료들의 손에 있던 국가기업을 이제 국민들에게 준다는 의미에서 민영화라고 부릅니다. 진보진영에서는 공적 운영을 사적 이윤기업에 넘긴다고 해서‘사유화’라고 표현하구요. 최근 진보운동이 유연화를 불안정화, 규제를 공공성의 제도화, 민영화를 사유화 등으로 대항담론, 대항개념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상황이 쉽지 않네요. 얘기가 조금 옆으로 빗나갔는데, 유연화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노동의 유연화가 지닌 양면적 성격

 

박태주 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소장이 놀라운 연구결과를 제시했는데, 노동시장의 유연성, 고용의 탄력성, 임금의 탄력성에서 최근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치고 OECD국가 중 1위로 등극했다고 해요. 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를 봐도, 경기변동에 따르는 고용의 조정속도 역시 우리나라가 OECD국가 가운데 1위라고 하고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도가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죠.

저는 유연화가 일정부분 필요하고 또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세계화의 성격을 한마디로 불확실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처럼 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된 경제상황에서 유연성은 경기변동에 대한 완충장치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요. 물론 무제한적인 유연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규제된 유연화’(regulated flexibilization)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유연화 못지않게 어떤 형태의 유연화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연화는 일반적으로 수량적 유연화, 기능적 유연화, 임금의 유연화, 노동시간의 유연화 등으로 나누는데, 흔히들 수량적 유연화를 외적 유연화, 나머지 유연화는 내적 유연화라고 부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유연화라고 하면 수량적 유연화, 다시 말해서 해고의 자유로 이해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연화에 반대하고 그것을 불안정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내적 유연성은 노동조합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어요.

오건호 지금 말씀이 논리적으로 그렇게 틀리지는 않다고 보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유연화는 거의가 수량적 유연화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기능적, 노동시간 유연화를 언급하면서 유연화의 긍정적 가능성을 유포하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한국에선 유연화가 공정한 개념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박태주 제 생각에는 내적 유연화와 외적 유연화 간에 모순관계가 있는 것 같거든요. 가령 전환배치를 통해 시장수요에 따른 생산량의 변화에 대처해나가는 것이 기능적 유연화인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숙련이 뒷받침되어야죠. 그런데 고용이 불안하면 노사 양측이 교육, 숙련에 투자하지 않게 됩니다. 일본의 토요따가 기능적 유연화의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한편 노동시간 유연화의 적절한 예가 독일의 폭스바겐입니다. 90년대 초반에 폭스바겐은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를 겪었어요. 그때 회사가 10만명의 노동자 중 3만명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노조에 통보합니다. 수량적 유연화를 통해서 경영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입장이었죠. 결국 어떤 식으로 타결됐냐면, 노동시간을 주당 28.8시간으로 줄이고 동시에 노동시간 계좌제라는 걸 도입해서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기로 노사가 합의했습니다. 노동시간 계좌제란 일정 노동시간을 넘기면 초과된 노동시간을 은행계좌처럼 적립했다가 노동자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제도입니다. 원칙적으로 적립된 노동시간은 임금으로 지불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동시간의 단축과 유연화를 노조가 받아들이면서 수량적 유연화, 즉 해고를 사실상 막았죠. 우리 역시 유연화 자체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유연화의 방식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로 고민의 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건호 폭스바겐의 예를 드셨지만, 그건 서구적 상황인 것 같습니다. 유연화는 노사간의 계약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피계약자인 노동자들도 인정할 때라야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봐요. 서구에서는 주부노동자들이 파트타임으로 많이 일하는데 대부분이 자발적 파트타이머예요. 그래도 복지나 임금의 차별이 없기 때문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파트타임을 선택하고 있어요. 그런 유연화가 사용자와 주부노동자의 적극적인 동의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사회 인프라의 차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유연적 모델이 작동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잖아요?

박태주 기업경영의 관점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연화나 비정규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고용 창출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고용 창출과 차별 철폐 둘 중에서 노동운동의 핵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와 관련되는 부분입니다. 지난번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될 때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오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오건호 우리나라는 일자리 양보다는 질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연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일자리 질을 더 악화시키는, 그래서 거꾸로 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기업들이 유연화를 추진하는 까닭이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죠.

박태주 영국의 경제학자 조운 로빈슨(Joan Robinson)이 했던 말이 있죠.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보다도 나쁜 것 중 하나는 자본에 의해 착취조차 당하지 못하는 것이다.”(웃음) 실업문제를 얘기하는 겁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일자리 만들기가 핵심공약으로 등장했죠.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해요. 고용의 질도 문제지만 고용의 양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이고, 그래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유연화가 필요하고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죠. 그런데 비정규직들이 우리 사회의 전체 일자리를 늘리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대체하는 형태예요. 이랜드처럼 정규직을 해고하고 사내하청이나 외주로 돌리는 것은 고용 창출과는 무관하거든요.

오건호 물론 고용 창출과 관련해서 정규직 노동시장에서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초과노동, 즉 노동시간을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독점하고 있는 점, 내부 전환배치가 지나치게 어려운 점 등은 지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박태주 ‘믿을 건 돈밖에 없는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불가피하죠. 그렇지만 장시간 노동은 더이상 근면의 상징이 아니라 남의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입니다. 유연성만 해도 그래요. 자동차회사에 1공장과 2공장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1공장에는 물량이 많아서 그야말로 잔업, 특근을 해도 물량을 못 채우는데, 2공장은 8시간 노동도 제대로 못할 만큼 물량이 없을 경우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2공장의 노동자들 일부가 전환배치를 통해서 1공장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유연성이죠. 이를 못하면 회사의 선택은 1공장에서 일할 비정규직을 더 뽑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사측이 일방적으로 시행해서는 안되지만 노조 측이 이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2공장 사람은 잘라내고 1공장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즉 수량적 유연화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형태의 내적 유연성은 필요합니다.

오건호 논리적으로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노사간 불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양자가 그동안의 노사관계에서 획득한 체험효과죠. 그래서 이에 준하는 시간이 걸리든지 아니면 획기적인 계기가 필요한데, 노사 어느 쪽에서든 계기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예컨대 회사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혁신조치를 취하든지 아니면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연대전략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든지 말입니다. 아까 일자리 양보다는 질 문제라고 했는데 사실 실업문제도 큰 이슈입니다. 특히 청년실업이 문제죠. 이 주제로 옮아가볼까요?

 

청년실업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이유

 

박태주 청년의 실업률도 높지만‘백수율’은 더욱 심각하죠. 통계청 자료에 따라 20대의 고용지도를 살펴보면, 실업자가 31만명이고 취업준비자가 41만명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냥 쉬는 사람과 진학이나 군입대 대기자까지 합치면 무려 109만명이 유휴인력이랍니다. 20대 인구의 16.4%에 이른다고 하는데(한겨레신문, 2008.4.21)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서 왜 실업자로 머무르고 있는가?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우리나라가 저성장체제로 들어섰고, 고학력 노동인력이 과잉공급되고 있는데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력자를 선호합니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얘기해요. 눈이 이마 위에 올라가 붙어 있다고까지 하는데,(웃음) 그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실업자로 머물며 좀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나의 평생소득에 도움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까를 경제학적으로만 따지자는 겁니다. 내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더라도 그것이 경력이 되고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디딤돌이 된다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취업한다는 건 경제적 손실과 나쁜 사회적 평판을 감수하겠다는 뜻도 되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것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덫이 된다는 점이거든요.‘88만원 세대’라는 게 바로 그것이잖습니까?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다, 그렇다면 눈높이를 낮춰서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래서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서 어렵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못 구해서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비정규직을 늘려서 아니면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서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는 없어요. 이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고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야만 대졸 실업자들을 흡수할 수 있겠지요. 고용의 질이 해결되지 않으면 고용의 양도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 왔다는 겁니다.

오건호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가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들의 참여를 주춤하게 해 청년실업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으니 결국 문제는 다시 비정규직화로 귀착되는군요. 이명박정부는 일정한 성장을 달성하면 새로운 일자리,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건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장은 재벌의 성장을 의미하는데, 재벌기업들이 정규직을 줄이고 외주, 하청을 통해서 그 성장 동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박태주 사회적으로 거대한 착취현상을 조장하고 활용하는 거죠.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때 공약에서 일자리 300만개, 그러니까 매년 60만개를 만들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35만개로 낮췄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3월 통계를 보면 연간 20만개가 채 안 만들어질 거 같아요. 이명박정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서 성장을 일으키고,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복지도 해결된다. 굉장히 단순한 일차방정식이죠. 이는 성장이 덜커덩거리면 모두 흔들려버리는 씨스템이에요. 정부는 올해의 경제성장률을 6%로 잡고 있지만, 참고로 우리나라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4.6% 정도이지요.

목표 성장률의 달성도 쉽지 않지만 그게 달성되더라도 일자리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인가도 의문입니다. 사실 재벌 중심, IT중심, 수출 중심의 성장이 고용에는 쥐약입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야기죠. 우리나라에서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건 중소기업들, 특히 내수기업들인데, 이들의 성장이 확보되지 않아 성장의 고용 유발효과가 가로막히고 있거든요. 게다가 이 정부에서 사회복지체제가 더 나아질 거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일자리 찾기가 더 어려워지면 고용의 질은 더욱 악화될 테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겠죠.

 

이랜드사태, 의도하지 못한 결과인가?

 

오건호 어찌되었든 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비정규직 법안을 두고 국가, 자본, 노동이 한판 대결도 벌였습니다. 2006년 11월 30일 많은 논란 속에서 비정규직 법안 3개, 기간제, 단시간 노동자, 파견근로자 보호에 대한 법률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태주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전면 재개정하자는 쪽과 현행법을 유지하면서 행정조치로 보완하거나 부분적으로 개정하자는 쪽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안 중에서 단시간 노동자에게 비례보호의 원칙을 적용하고, 이들의 초과노동 시간을 주당 12시간으로 줄인 것에는 논란이 별로 없습니다. 파견노동에 대해서도 대상업무 열거방식(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의가 별로 없어요. 파견노동자나 기간제 노동자를 2년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문제가 되는 게 뭐냐면, 이번 법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했는데 과연 차별시정 효과가 있을 것인가예요. 법적으로 차별시정의 요구 주체는 노동조합이나 제3자가 아니라 본인입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85%가 100인 미만, 대부분 노동조합도 없는 기업에서 일하는데, 이 사람들이 과연 차별시정을 요청할 수 있겠어요? 물론 법에는 차별시정을 신청한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현실이 그럴까요? 그리고 차별시정의 비교대상이 같은 사업 내지 사업장에서 일하는 동일 또는 유사업종의 정규직이에요. 만일 내가 청소를 하는데, 우리 회사 내에 청소하는 정규직이 없다면 비교대상이 없는 거예요. 비교대상이 없으면 차별도 없습니다. 차별의 판단기준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선험적인 판단에 따르기보다는 노동위원회의 판정과 법원의 판결이 축적되면서 가름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것들 때문에 비정규직법이 차별시정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차별시정이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이런 얘기는 기간제에 해당되지, 간접고용은 그나마 보호장치조차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비정규직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보다는 법 취지에 맞게끔 부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여기에는 차별시정의 신청주체를 노조까지 늘린다든지 비교의 대상을 기업 외부로 확대하는 것이 포함될 겁니다. 또한 간접고용, 특히 사내 하도급에 대한 보호와 규제가 덧붙여져야겠죠.

오건호 저는 당시 정부도 그 법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비정규직이 되더라도 정규직에 비해 차별받지 않게 하겠다, 즉 차별시정 조치가 포함되었으니 이 법안은 좋은 법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박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차별시정 효과가 미미합니다. 최소한의 정당성도 찾기 어렵게 된 것인데요.

박태주 비정규직법을 만들 때 논란이 됐던 것이 사유 제한과 파견제도의 철폐 문제였습니다. 현재 법안의 전면적인 개정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러한 조항들이 빠진만큼 차별시정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사유 제한이나 파견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은 상당히 약화됐습니다.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보는데, 비정규직 보호법이 차별시정 효과는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법을 만들 때 신경쓸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 즉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어떻게 막아내는가입니다. 기간제를 2년 내로만 쓰라고 하니까 이랜드는 외주화하거나 계약을 해지했죠.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의도하지 않은 결과거든요. 기간제를 2년간 쓰면 그후에는 무기계약으로 간주해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한 것인데, 사용자들은 계약을 해지하거나 외주화해버리더라는 거죠.

오건호 저는 좀 다르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법이 개정될 당시 비정규직에 대한 효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컸어요. 하지만 지금 보면 법 때문에 비정규직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정부나 기업들도 부정하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에 나오는 논리가 지금 박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비정규직 법안이 효과가 있다고 했다가, 효과가 없으니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건 정직하지 못한 거라고 봅니다. 의도되었던 결과고, 의도했던 결과였습니다. 비정규직 법안을 논의할 당시 경총이 회원사를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법안이 통과되면 정규직을 늘리기보다는 비정규직을 더 쓰겠다는 답변이 다수로 나와 있었고, 실제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박태주 의도했던 결과라고 하면 너무 세니까 예상된 결과라고 하는 게……(웃음) 사실 비정규직법이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과 공기업에 시행되었고 올 7월부터 100~299인 기업에 적용되거든요. 따라서 법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거나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건 성급하다고 봅니다. 통계적으로도 그런 사실이 아직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충분히 많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확대에 따른 사회적 저항이나 기업 경쟁력의 약화도 고려해야 하거든요. 다만 비정규직의 구성이 기간제에서 간접고용으로 전환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간접고용은 사실상 법적인 규제가 없는 동네이기 때문이죠.

오건호 비정규직 법안을 논의할 때 경총에서 회원사업자 조사를 했어요. 기간제를 한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90%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습니다. 기업주가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가 인건비를 줄이려는 건데, 법이 정규직화하라면서도 회피할 방안을 다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구멍이 뻥뻥 뚫린 법안을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은-

박태주 제가 말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사유 제한 제도의 도입이라든지 파견노동 철폐에 대한 것입니다. 이랜드사태에서도 보듯이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제도를 도입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고 봐요. 간접고용 중에서도 사내 하도급, 원하청 연대책임, 무분별한 외주 같은 부분들을 비정규직법 제정시 간과한 거죠. 사내하청이나 용역, 파견 등 간접고용으로 도망갈 수 있는 문을 열어둔 상태로 기간제보호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건호 저와 박선생님이 컵에 들어 있는 절반의 물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는 셈입니다.(웃음) 어찌됐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실천이 필요한 때인데요. 저희가 노동계에 속해 있으니 정부와 자본에 대한 요구에 앞서 노동운동에 대한 요구나 제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죠. 그런데 지금 노동운동은‘정규직 노동운동’으로 몰려 있습니다. 어디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박태주 조금 전에 비정규직 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만, 사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에는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와 성격이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노동조합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죠.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은 고용불안이에요.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이제는 정규직마저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거든요. 가령 현대자동차의 경우에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맺은 단체협약을 완전고용 보장협약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단체협약만으로 보면 굉장히 잘되어 있죠. 그런데도 2006년 1월에 조합원 설문조사를 했더니 조합원의 76%가 고용이 불안해서 못살겠대요. 정규직들이, 더군다나 잘나가는 기업이자 최강의 노동조합을 갖고 있다는 현대자동차에서요.

지금 우리나라 정규직들의 이직율은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이건 고용안정의 표현이 아니라 고용불안의 표현이거든요. 이렇게 고용이 불안하면 대기업 정규직으로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자는 극단적인 경제적 실리주의가 나타나고, 이를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가 보완해주는 형태지요. 여기서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정규직 운동논리가 나오는 거죠.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산별노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산별노조의 새로운 가능성, 보건의료노조

 

오건호 저도 정규직 노동조합의 그런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정규직, 경제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이는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닐 텐데요.

박태주 그런 면에서 지난해 보건의료노조가 맺었던 단체협약이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왜 정규직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가가 노동계 일반의 논리였다면,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적어도 마중물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했거든요. 지난번 단체협약에서 임금인상분의 30% 정도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따로 적립했어요. 그 금액이 320억원 정도 됐습니다. 이 자금으로 67개 병원에서 비정규직 2,400명 정도를 정규직화하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했어요. 물론 당장은 출발점이니까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의 모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건호 보건의료노조의 단체협약에 대해서 고용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는데 왜 노동자의 임금인상분을 쓰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저도 보건의료노조 협약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작년에 보건의료 분야에서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현재 보건의료 분야에는 산별노조가 둘이에요. 보건의료노조, 의료연대노조죠. 원래는 하나였는데 내부갈등으로 2개로 분리되었습니다. 작년에 보건의료노조가 임금인상분의 1/3을 출연해 2천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면, 보건의료노조에서 분리되어 새로 탄생한 의료연대노조는 대학병원 10개 정도가 주축이 되어,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협약을 성사시켰습니다. 방식은 다릅니다만, 보건의료 분야에서 의미있는 실천이었습니다.

박태주 그런데 이런 경험이 다른 분야에까지 제대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입니다만, 2005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 반대투쟁에 들어갔을 때 정규직 노조는 사실상 이를 방치했고 그 때문에 비정규직 노조는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고 말았거든요. 2006년 6월, 현대자동차노조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로 바뀌었습니다. 금속노조 규약에 따르면 같은 회사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의 조직형태로 통합하게 되어 있어요. 물론 해당 단위의 결정에 따른다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현대차지부 대의원대회에서는 비정규직 조합원과의 통합방식을 두고 논란을 벌이다가 결국 통합 자체를 부결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조직통합을 못하고 있어요.

2006년부터 KTX투쟁이 본격화되었는데, 철도노조에서는 현대차지부와는 달리 KTX여승무원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고 노사협상의 주요 쟁점으로 삼았어요. 물론 일반적인 철도노동자와 KTX의 여승무원은 직군과 직종이 다르기 때문에 상호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차이는 있었지만요. 또 하나는 역사성이에요. 사내 하청노동자와 우리는 다르다는…… 이같은 역사적 차이와 산업구조나 노동시장의 차이 그리고 노조 조직형태의 차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뭉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어왔죠.

오건호 그래서 금속, 화학, 제조업 분야가 좀 몰매를 맞고 있는데,(웃음) 이들 제조업 분야와 보건의료 분야에서 드러난 실천의 차이를 잘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우선 양자는 노조활동에서 역사적 경로가 달랐습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과거부터 사회적 이슈 투쟁을 많이 해왔어요. 의료공공성 문제라든지 병원 민주화 등으로 여러번 파업을 벌였죠. 이들은 파업을 하면서 사회적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가, 의료노동자들의 고용권도 중요하지만 의료산업이나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의제를 가지고 투쟁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 거예요. 의제의 성격이 그렇다 보니 참여연대 같은 일반 시민단체나 보건의료단체들과도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고요. 이러한 공공성 투쟁 경험이 비정규직 문제, 즉 사회적 의제 해결에 조직적 무게를 두도록 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내부의 경쟁이 작용했습니다. 하나로 있다가 둘로 분리되었거든요. 그 이유가 뭐냐면 누가 좀더 취약한 노동자, 즉 중·소병원 소속 노동자를 대변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뉜 거죠. 그 구성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각각이 조직적 정통성을 얻기 위해 굉장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공공성을 위한 내부경쟁이지요.

세번째는 산별 효과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10년 가까이 산별교섭 요구투쟁을 해왔습니다. 좌절을 거듭하다가 산별교섭 테이블이 마련된 지 몇년 안돼요. 그러다 이번에 산별 합의문을 만들어낸 거죠. 의료연대노조도 그전에 보건의료노조에 속해서 산별교섭을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을 했고, 의료연대노조는 아직 산별교섭 테이블이 없었지만 중앙의 교섭 기준에 맞추어 개별 국립대병원에서 동일하게 따낸 것이죠. 형식은 다르지만 산별교섭의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즉 오랜 산별교섭 활동 경험이 컸습니다.

박태주 산별체제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하는 전략의 중심에 산별노조가 있다고 봅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핵심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 산별체제가 중요한 이유는 몇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산별은 비정규직을 조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물적·인적 토대를 갖추고 있습니다. 둘째, 산별의 임금원리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입니다. 이건 사측이 강요해서도 아니고 정부가 법으로 정해서도 아닌 노동운동 스스로의 발전과정에서 느껴왔던 임금원리거든요. 물론 우리나라같이 직무급 임금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연대임금의 원리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조직형태가 산별노조이지요. 셋째는 지금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임금인상이 아니라 고용보장입니다. 산별노조를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산별 고용체제거든요. 산별 직업훈련체제와 산별 고용안정씨스템, 고용안정기금 등이 예가 되겠지요.

노동 차원의 대안으로 산별체제를 꼽는다면, 사회적 차원에서는 노사정위원회로 대표되는 사회협약정치를 들 수 있을 거 같아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많은 한계를 갖고 있더라도 저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선생님은 물론 아니라고 얘기할 것 같은데……(웃음)

 

이명박정부하의 노사정위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오건호 저는 노사정위원회 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아닙니다. 들어가야만 일이 된다는 주장도, 절대 들어가선 안된다는 주장도 모두 관념적이라고 봅니다. 저는 노사정위는 들락날락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서 사회적 의제를 다루고, 패가 뒤틀리면 나와 대중투쟁을 벌이고, 또 전국적 협상이 필요하면 머리를 맞대고 앉으면 됩니다.

문제는 지금 시점이 어떠하냐인데 중앙과 지방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현재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고 한국노총이 이명박정부에 사실상 투항한 상황에서, 중앙 노사정위원회는 실질적으로 가동되기 어렵습니다. 노동계 두 노총이 공동의 교섭전략을 지니고 있지 못한데, 어떻게 노사정위가 가능하겠습니까? 노동계가 삼자모델에서 대표성을 지닐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역은 상황이 다릅니다. 지역별로 모두 다르지만, 지역 현안을 두고 노동계가 비슷한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앙정치에 덜 구속받기 때문이죠. 게다가 지역 노동사안은 지역사회의 핵심현안이기도 합니다. 지역사회가 조정의 중재자로 나서기도 하고요.

박태주 비정규직과 관련해, 지역 차원에서는 사회적 대화 형태로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예컨대 울산 건설플랜트가 2006년 파업에 들어갔을 때 결국은 울산의 시민단체와 울산시, 노사가 한데 모여 의논해서 풀었어요. 또다른 예가 여수의 하이스코 사례입니다. 여기에서 비정규직 노사갈등이 번졌을 때도 똑같은 형태로 여수시, 여수의 시민단체, 민주노총과 원청업체가 참가해 이른바 사회적 대화 형태로 문제를 풀었거든요. 포항 건설플랜트 노조가 포스코를 점거했을 때도 포항의 시민단체들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이같이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 양 당사자에게 맡겨두기보다는 지역 차원의 노사정, 지역 차원의 사회적 대화로써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 차원의 노사정위원회는 말씀하신 것처럼 상황이 굉장히 어렵죠.

오건호 선생님도 이명박정부하에서 중앙차원의 노사정위는 어렵다고 보시는군요.

박태주 그렇더라도 현재 사회적 차원에서 노사와 정부가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안타깝게도 노사정위원회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떤 반박이 들어오느냐면, 옛날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특히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 사회적 대화가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거예요. 노동계와 정부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도대체 뭐가 있느냐는 거죠.

이런 점에서 저는 아일랜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아일랜드 정부가 87년 사회적 협약을 위한 대화를 요청했을 때, 노동조합 측에서는 안 봐도 안다, 이웃 나라 새처(M. Thatcher)의 신자유주의를 수입하는 데 들러리로 우리를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지금 민주노총의 입장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내부토론을 거쳐서 어떻게 결정했느냐면, 우리가 참가하지 않아도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할 거고 그러면 우리는 총파업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산별노조가 있었고 조직률이 35%였습니다. 그런데 논의가 진전되면서 결론은 바뀌었습니다. 최종적인 결론은, 총파업만으로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 정 안될 때는 파업을 하더라도 정부가 제안하는 전국사회경제위원회에서 일차적으로 방어막을 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사회적 대화에 들어갔고, 지금까지도 3년마다 한번씩 사회적 협약을 생산해내고 있거든요. 초기에는 사회적 협약에서 경제위기 극복이나 성장이 중시되었지만, 최근에는 분배와 아울러 사회통합이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지요.

오건호 저도 그런 실례를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유연화 문제에서 얘기했듯이 우리의 역사와 현실이 아일랜드와 달라서…… 우선, 민주노총은 과거 외상이 너무 커요. 98년 정리해고 문제가 터졌을 때 거의 조직의 정체성까지 흔들릴 만큼 정치적 쟁점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양 노총이 노사정 테이블에서 단일한 주체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죠. 사와 정은 대표성과 정체성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 참여는 노동 측의 자충수가 될 것입니다. 물론 민주노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한국노총의 행보는 다를 수 있고요.

박태주 저는 노동운동과 이명박정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아서 한국노총이 정부와 정치적 연대를 맺은 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국노총 상층부가 군사독재시절의 어용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조합원 대중의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보는 거죠. 이런 점에서 저는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으로서도 투쟁만으로 상황을 돌파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 적극적으로 도입될 거라고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정권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수준이 낮다는 거죠. 방금 제가 아일랜드 협약을 말씀드렸습니다만, 네덜란드의 82년 바쎄나르(Wassenaar)협약이나 스페인의 97년 협약처럼 유럽에서도 보수당 정권에서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정권에 대한 노동자의 기대가 낮다는 사실도 작용했죠.

오건호 저희가 보건의료 분야 산별노조의 새로운 활동에 대해선 공감대를 확인했고, 지역 차원 노사정 실천도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만, 여전히 중앙 노사정위 모델에 대해선 시각 차이가 존재하네요. 워낙 중요한 주제인지라 여러 영역을 다루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해야 할 곳에 섰습니다. 앞으로 비정규직 의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염두에 두면서 마지막 말씀을 해주시죠.

박태주 얼마 전 교육정책을 전공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국내총생산 대비 교육비 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이처럼 부모들이 자식교육에 매달리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 화제의 하나였습니다. 결론은 부모들이 자식을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으로 만들거나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업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다른 말로 바꾸면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취직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교육열풍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기업 정규직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만큼 교육경쟁은 무한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육문제의 해결도 요원하다는 겁니다. 만일 학원가를 중심으로 집값까지 오른다면 민생의 핵심의제인 취업-교육-집값의 문제는 하나로 연결된 순환의제가 되겠죠.

비정규직 문제는 양극화의 문제이자 빈곤의 문제입니다. 이를 정부나 여의도의 의회정치에 맡겨둘 수는 없는 상태에 와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지형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라면, 우리 사회 전체가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전망을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이제는 단순한 노동문제가 아니고 그런만큼 노동조합만이 해결의 주체는 아니라는 말이죠.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와 사회단체가 만나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조직하는가가 노동의 위기, 나아가 사회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건호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일종의 시대사적 의미를 갖는 과제입니다. 80년대에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는 민주화운동, 노동기본권의 획득 같은 것이 그랬다면, 지금은 사회적 자유, 생존권, 생활권 등이 시대적 아젠다가 되고 있고, 그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시기 자본주의 발달과정이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획득해나가는 역사였다면, 앞으로 한동안의 자본주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이들의 기본권을 형성해나가는 시기일 것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지만 회피할 수도 없는 시대적 화두입니다. 이제 수로는 다수지만 권력으로는 마이너리티인 새로운 대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역사를 맞게 될 것입니다. 긴 시간 많은 얘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4월 21일, 세교연구소)